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21:11:45

윌리엄 프리드킨

윌리엄 프리드킨의 주요 수상 및 수훈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베니스 국제 영화제 로고.svg

베니스 국제 영화제 명예 황금사자상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70년 1971년 1972년
오슨 웰스 잉마르 베리만 마르셀 카르네 존 포드 찰리 채플린
1972년 1982년
아나톨리 골로브냐 빌리 와일더 알레산드로 블라세티 루이스 부뉴엘 프랭크 카프라
1982년
조지 큐커 장뤽 고다르 세르게이 유트케비치 알렉산더 클루게 구로사와 아키라
1982년 1983년
마이클 파웰 사티야지트 레이 킹 비더 세자르 자바티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1985년 1986년 1987년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존 휴스턴 페데리코 펠리니 타비아니 형제 루이지 코멘치니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요리스 이벤스 로베르 브레송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얀초 미클로시 마리오 모니첼리
1991년 1992년 1993년
지안 마리아 볼론테 잔느 모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파올로 빌라조 스티븐 스필버그
1993년 1994년
로버트 드 니로 로만 폴란스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알 파치노 수소 체키 다미코
1994년 1995년
켄 로치 우디 앨런 모니카 비티 마틴 스코세이지 알베르토 소르디
1995년 1996년
엔니오 모리코네 주세페 드 산티스 조프레도 롬바르도 알랭 레네 로버트 올트먼
1996년 1997년
비토리오 가스만 더스틴 호프먼 미셸 모르강 제라르 드파르디유 스탠리 큐브릭
1997년 1998년 1999년
알리다 발리 워렌 비티 소피아 로렌 안제이 바이다 제리 루이스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에릭 로메르 디노 리시 디노 드 로렌티스 오마 샤리프
2004년 2005년 2006년
스탠리 도넌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미야자키 하야오 스테파니아 산드렐리 데이비드 린치
2007년 2008년 2009년
팀 버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에르만노 올미 존 라세터 브래드 버드
2009년 2010년 2011년
피트 닥터 앤드루 스탠튼 리 언크리치 오우삼 마르코 벨로키오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프란체스코 로시 윌리엄 프리드킨 델마 스쿤메이커 프레더릭 와이즈먼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2016년 2017년 2018년
장폴 벨몽도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제인 폰다 로버트 레드포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2018년 2019년 2020년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줄리 앤드류스 페드로 알모도바르 허안화 틸다 스윈튼
2021년 2022년 2023년
로베르토 베니니 제이미 리 커티스 카트린 드뇌브 폴 슈레이더 양조위
2023년 2024년 2025년
릴리아나 카바니 피터 위어 시고니 위버
}}}}}}}}} ||

파일:oscar_logo.svg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
'''[[틀: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Academy Award for Best Director]]'''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e5e5e5
제1회
(1929년)
제2회
(1930년)
제3회
(1931년)
제4회
(1932년)
제5회
(1933년)
코미디:
루이스 마일스톤
( 미인국 2인 행각)
드라마:
프랭크 보제이지
( 제7의 천국)
프랭크 로이드
( 정염의 미녀)
루이스 마일스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노먼 터로그
( 스키피)
프랭크 보제이지
( 나쁜 여자)
제6회
(1934년)
제7회
(1935년)
제8회
(1936년)
제9회
(1937년)
제10회
(1938년)
프랭크 로이드
( 캐벌케이드)
프랭크 카프라
(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존 포드
( 밀고자)
프랭크 카프라
( 천금을 마다한 사나이)
레오 맥캐리
( 이혼 소동)
제11회
(1939년)
제12회
(1940년)
제13회
(1941년)
제14회
(1942년)
제15회
(1943년)
프랭크 카프라
( 우리 집의 낙원)
빅터 플레밍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존 포드
( 분노의 포도)
존 포드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윌리엄 와일러
( 미니버 부인)
제16회
(1944년)
제17회
(1945년)
제18회
(1946년)
제19회
(1947년)
제20회
(1948년)
마이클 커티즈
( 카사블랑카)
레오 맥캐리
( 나의 길을 가련다)
빌리 와일더
( 잃어버린 주말)
윌리엄 와일러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엘리아 카잔
( 신사협정)
제21회
(1949년)
제22회
(1950년)
제23회
(1951년)
제24회
(1952년)
제25회
(1953년)
존 휴스턴
(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
조셉 L. 맨키위즈
( 세 부인)
조셉 L. 맨키위즈
( 이브의 모든 것)
조지 스티븐스
( 젊은이의 양지)
존 포드
( 말 없는 사나이)
제26회
(1954년)
제27회
(1955년)
제28회
(1956년)
제29회
(1957년)
제30회
(1958년)
프레드 진네만
( 지상에서 영원으로)
엘리아 카잔
( 워터프론트)
델버트 만
( 마티)
조지 스티븐스
( 자이언트)
데이비드 린
( 콰이 강의 다리)
제31회
(1959년)
제32회
(1960년)
제33회
(1961년)
제34회
(1962년)
제35회
(1963년)
빈센트 미넬리
( 지지)
윌리엄 와일러
( 벤허)
빌리 와일더
(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데이비드 린
( 아라비아의 로렌스)
제36회
(1964년)
제37회
(1965년)
제38회
(1966년)
제39회
(1967년)
제40회
(1968년)
토니 리차드슨
(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
조지 큐커
( 마이 페어 레이디)
로버트 와이즈
( 사운드 오브 뮤직)
프레드 진네만
( 사계절의 사나이)
마이크 니콜스
( 졸업)
제41회
(1969년)
제42회
(1970년)
제43회
(1971년)
제44회
(1972년)
제45회
(1973년)
캐럴 리드
( 올리버!)
존 슐레진저
( 미드나잇 카우보이)
프랭클린 J. 샤프너
( 패튼 대전차군단)
윌리엄 프리드킨
( 프렌치 커넥션)
밥 포시
( 카바레)
제46회
(1974년)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제49회
(1977년)
제50회
(1978년)
조지 로이힐
( 스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대부 2)
밀로스 포먼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존 G. 아빌드센
( 록키)
우디 앨런
( 애니 홀)
제51회
(1979년)
제52회
(1980년)
제53회
(1981년)
제54회
(1982년)
제55회
(1983년)
마이클 치미노
( 디어 헌터)
로버트 벤튼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로버트 레드포드
( 보통 사람들)
워렌 비티
( 레즈)
리처드 애튼버러
( 간디)
제56회
(1984년)
제57회
(1985년)
제58회
(1986년)
제59회
(1987년)
제60회
(1988년)
제임스 L. 브룩스
( 애정의 조건)
밀로스 포먼
( 아마데우스)
시드니 폴락
(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올리버 스톤
( 플래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마지막 황제)
제61회
(1989년)
제62회
(1990년)
제63회
(1991년)
제64회
(1992년)
제65회
(1993년)
배리 레빈슨
( 레인 맨)
올리버 스톤
( 7월 4일생)
케빈 코스트너
( 늑대와 춤을)
조나단 드미
( 양들의 침묵)
클린트 이스트우드
( 용서받지 못한 자)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제68회
(1996년)
제69회
(1997년)
제70회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
( 쉰들러 리스트)
로버트 저메키스
( 포레스트 검프)
멜 깁슨
( 브레이브 하트)
안소니 밍겔라
( 잉글리쉬 페이션트)
제임스 카메론
( 타이타닉)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73회
(2001년)
제74회
(2002년)
제75회
(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샘 멘데스
( 아메리칸 뷰티)
스티븐 소더버그
( 트래픽)
론 하워드
( 뷰티풀 마인드)
로만 폴란스키
( 피아니스트)
제76회
(2004년)
제77회
(2005년)
제78회
(2006년)
제79회
(2007년)
제80회
(2008년)
피터 잭슨
(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클린트 이스트우드
(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안
( 브로크백 마운틴)
마틴 스코세이지
( 디파티드)
조엘 코엔
에단 코엔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81회
(2009년)
제82회
(2010년)
제83회
(2011년)
제84회
(2012년)
제85회
(2013년)
대니 보일
( 슬럼독 밀리어네어)
캐스린 비글로
( 허트 로커)
톰 후퍼
( 킹스 스피치)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 아티스트)
이안
( 라이프 오브 파이)
제86회
(2014년)
제87회
(2015년)
제88회
(2016년)
제89회
(2017년)
제90회
(2018년)
알폰소 쿠아론
( 그래비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데이미언 셔젤
( 라라랜드)
기예르모 델 토로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제91회
(2019년)
제92회
(2020년)
제93회
(2021년)
제94회
(2022년)
제95회
(2023년)
알폰소 쿠아론
( 로마)
봉준호
( 기생충)
클로이 자오
( 노매드랜드)
제인 캠피온
( 파워 오브 도그)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제96회
(2024년)
제97회
(2025년)
제98회
(2026년)
제99회
(2027년)
제100회
(2028년)
크리스토퍼 놀란
( 오펜하이머)
- - - -
}}}}}}}}}}}}}}} ||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감독상
제28회
( 1971년)
제29회
( 1972년)
제30회
( 1973년)
아더 힐러
(러브 스토리)
윌리엄 프리드킨
( 프렌치 커넥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대부)
제30회
( 1973년)
제31회
( 1974년)
제32회
( 1975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대부)
윌리엄 프리드킨
( 엑소시스트)
로만 폴란스키
( 차이나타운)

{{{#!wiki style="margin:-10px -10px" <tablewidth=90%><tablebordercolor=#fff,#1c1d1f>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svg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 화이트.svg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윌리엄 프리드킨
WILLIAM FRIEDKIN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입성날짜 1997년 8월 14일
위치 6925 Hollywood Blvd. }}}}}}}}}


}}} ||
<colbgcolor=#00001b><colcolor=#fff> 윌리엄 프리드킨
William Friedkin
파일:external/screen-space.squarespace.com/william-friedkin-publicity-photo-rome-1.jpg
출생 1935년 8월 29일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사망 2023년 8월 7일[1] (향년 87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3cm
직업 영화감독
활동 기간 1962년 ~ 2023년
배우자 잔느 모로(1977년 ~ 1979년)
레슬리 앤 다운(1982년 ~ 1985년)
켈리 레인지(1987년 ~ 1990년)
셰리 랜싱(1991년 ~ 2023년)
자녀 아들 잭슨 프레드킨, 세드릭 프레드킨
서명
파일:William Friedkin Signature.svg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영화들4.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영화감독. 1970년대를 풍미한 영화 감독 중 한 명이다.

2. 생애

일리노이 시카고 출신으로 부모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다.[2] 시카고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농구를 잘해서 프로 농구선수가 될 뻔 했다고 한다. 그렇게 모범생은 아니라서 간신히 졸업할 정도의 성적만 받고 20세 때 2-3년제 전문대학을 졸업을 한 이후부터 방송국에서 수백~수천편의 TV쇼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 윌리엄 프리드킨은 이렇게 몸으로 익힌 촬영 스타일을 바탕으로 프렌치 커넥션 엑소시스트 등의 리얼한 장르 영화들을 만들어서 아카데미를 싹쓸이 하면서[3]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피터 보그다노비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과 함께 70년대 헐리웃의 기린아로 떠오르게 된다. 70년대 후반은 명실상부 프리드킨의 리즈 시절로, 젊은 거물이 되어 연예인에 가까운 삶을 사는 등(...)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쥘과 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등에 나온 저명한 프랑스 배우 잔느 모로와 1977년에서 1979년까지 결혼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바닥이 그렇듯 마약 중독[4]과 섹스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결국, 엑소시스트 이후로 찍은 작품의 평가가 점점 안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프랑스 걸작 ‘공포의 보수 (Le Salaire De La Peur/The Wages Of Fear, 1952)’를 리메이크한 <소서러>를 대차게 말아먹고 명성이 점점 묻히게 되었다. 이는 프리드킨의 개인적인 방탕함도 한 몫하지만, 그의 영화적 방법론인 대중적 장르와 다큐멘터리적 접근을 결합하는 것의 근본적인 한계였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점차 뉴 아메리칸 시네마와 누벨바그에서 시작한 자유롭고 파괴적인 영화 문법이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지게 되었고, 프리드킨의 영화들이 더 이상 신선한 무언가가 아니게 된 것. 나름대로 적절하게 두 스타일이 조화된 엑소시스트까지 대히트를 쳤으나, 점점 권한이 커진 프리드킨은 막대한 제작비와 제작기간을 연장해가며 자기 맘대로 영화를 찍게 되었고, 대중들이 외면하면서 커리어는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5] 프리드킨은 커리어 내내 어두운 에너지와 인간의 금기시된 광기를 주목하였는데(지금으로 치자면 나홍진 같은)[6], 이런 어둡고 음습한 에너지의 영화들이 점차 대중들에게 잘 먹히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결국 프리드킨은 암흑의 8-90년대를 잊혀진 스타로 지내게 되고, 절치부심하여 자신의 정수만 모아 만든 근작 킬러조로 어느 정도 복귀하게 된다.

자기 작품 홈비디오 출시에 열정적인 감독으로 유명하다. 프렌치 커넥션 블루레이처럼 병크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음성 해설이라던가 인터뷰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편. 원래 자기 과시가 심한 감독이기도 했으나 나이 들어 자신의 화려한 리즈 시절(...)을 가감없이 고백하기도 한다. 자기와 잔 여배우만 몇백명이라거나 리스트를 모아놨다는 등...

2023년 8월 7일, 87세의 나이로 타계하면서 베니스 영화제 출품을 앞둔 케인호의 반란 군사재판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

3. 영화들

이후에 1994년에는 <블루 칩스>(국내 제목은 NBA 캠프)라는 샤킬 오닐 주연 농구 영화를 감독하여 실패했다. 이후 스릴러물인 <제이드> (1995)가 엄청난 악평[12]을 받으면서 제작비 5천만 달러에 월드와이드 수익은 고작 약 985만 달러를 벌어 크게 흥행에 실패하면서 휘청한다. 이후에 TV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1997)를 찍었고 호평을 받았다. 2000년대에 와서 찍은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헌티드>[13]는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그리고 저예산 심리 호러물 <버그> (2006)으로 돌아왔는데, 애슐리 주드와 마이클 섀넌의 연기가 큰 호평을 받았다. 제작비 400만 달러에 월드와이드 수익은 약 809만 달러로 흥행은 본전치기였다. 그리고 <CSI>의 에피소드 두 편(S08E09, S9E18)을 감독했다.

2014년 < 트루 디텍티브> 시즌 2 에피소드 감독 논의로 닉 피졸라토와 만났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 2015년 매튜 매커너히, 월튼 고긴스 주연으로 돈 윈슬로의 소설 <프랭키 머신의 겨울> 영화화 감독으로 내정되어있었으나 # 제작이 엎어졌다.

4. 여담



[1] 88세 생일을 22일을 남기고 사망했다. [2] 그의 아버지는 세미프로 소프트볼 선수이자 상선 대원, 남성복 판매원이었고, 어머니는 수술실 공인 간호사였다. [3] 특히 프렌치 커넥션은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각색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4] 70년대 서양 연예계에서 마약은 거의 당연한 문제였지만... [5] 사실 이건 프리드킨만 그런게 아니라 동료 감독들도 비슷했다. 프리드킨은 그나마 최근작 킬러 조로 스타일 면에서는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한 편이었고, 피터 보그다노비치(1939~2022)나 할 애슈비, 제리 샤츠버그(1927~ ) 같은 감독들은 아무도 안 불러줄 정도로 몰락해버렸다. [6] # 나홍진은 윌리엄 프리드킨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인터뷰했을 정도로, 프리드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이 인터뷰에서도 본인에게 자극을 준 감독 중 한 명으로 꼽을 정도. # 또한, 프랑스 매체에서도 나홍진의 곡성을 호평하면서 윌리엄 프리드킨을 언급했다. # 영화감독 박수민은 나홍진의 곡성과 프리드킨의 작품을 연관지었다. [7] 막판의 엔딩 및 여러 장면은 지금 봐도 뒤쳐지 않는 장면이다... 오죽하면 당시 이걸 본 이승만이 충격을 받아서 자르라우요! 이랬을까... [8] 애초에 프리드킨부터가 원작을 능가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단다. 원작의 감독인 앙리-조르주 클루조를 만나 리메이크 계획을 밝힌 다음 "하지만 감독님 작품만큼 잘 만들지는 못할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9] 제작비가 2200만 불인데 전 세계 흥행은 500만 불에 불과했다! 참고로 같은 해(1977년)에 개봉한 스타 워즈 제작비가 800만 불이었다! [10] 당초 리처드 기어가 주인공역을 맡으려 했으나 70년대를 제패하다 시피했던 알 파치노가 흥미를 보이면서 기어는 밀려나게 되었다. 프리드킨은 캐스팅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현재는 파치노의 연기에 만족한다고 밝힌바 있다. [11] 다만 로저 에버트 만점을 줬다. [12] 샌프란시스코 카체이싱 장면은 호평을 받았지만, 영화를 뒤집을 만큼 호평을 받지 않았다. [13] 흥행실패에 평은 안 좋았지만,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4점 만점에 별 3.5개를 주며 윌리엄 프리드킨의 긴박한 연출을 칭찬했다. 그 외에 베니시오 델 토로 토미 리 존스의 날것에 가까운 나이프 파이팅 장면이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