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킬 오닐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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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킬 오닐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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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1994[1] |
2000 | 2001 | 2002 | 2006 |
{{{#!wiki style="margin:0 -10px -5px" {{{#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55-56 | 1956-57 | 1957-58 | 1958-59 | 1959-60 |
밥 페팃 | 밥 쿠지 | 빌 러셀 | 밥 페팃 | 윌트 체임벌린 | |
1960-61 | 1961-62 | 1962-63 | 1963-64 | 1964-65 | |
빌 러셀 | 빌 러셀 | 빌 러셀 | 오스카 로버트슨 | 빌 러셀 | |
1965-66 | 1966-67 | 1967-68 | 1968-69 | 1969-70 |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웨스 언셀드 | 윌리스 리드 | |
1970-71 | 1971-72 | 1972-73 | 1973-74 | 1974-75 | |
루 앨신더 | 카림 압둘자바 | 데이브 코웬스 | 카림 압둘자바 | 밥 맥아두 | |
1975-76 | 1976-77 | 1977-78 | 1978-79 | 1979-80 | |
카림 압둘자바 | 카림 압둘자바 | 빌 월튼 | 모제스 말론 | 카림 압둘자바 | |
1980-81 | 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
줄리어스 어빙 | 모제스 말론 | 모제스 말론 | 래리 버드 | 래리 버드 | |
1985-86 | 1986-87 | 1987-88 | 1988-89 | 1989-90 | |
래리 버드 | 매직 존슨 | 마이클 조던 | 매직 존슨 | 매직 존슨 | |
1990-91 | 1991-92 | 1992-93 | 1993-94 | 1994-95 |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찰스 바클리 | 하킴 올라주원 | 데이비드 로빈슨 | |
1995-96 | 1996-97 | 1997-98 | 1998-99 | 1999-00 | |
마이클 조던 | 칼 말론 | 마이클 조던 | 칼 말론 | 샤킬 오닐 | |
2000-01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
앨런 아이버슨 | 팀 던컨 | 팀 던컨 | 케빈 가넷 | 스티브 내시 | |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
스티브 내시 | 디르크 노비츠키 | 코비 브라이언트 | 르브론 제임스 | 르브론 제임스 | |
2010-11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
데릭 로즈 | 르브론 제임스 | 르브론 제임스 | 케빈 듀란트 | 스테판 커리 | |
2015-16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
스테판 커리 | 러셀 웨스트브룩 | 제임스 하든 | 야니스 아데토쿤보 | 야니스 아데토쿤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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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요키치 | 니콜라 요키치 | 조엘 엠비드 | 니콜라 요키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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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51 | 1951-52 | 1952-53 | 1953-54 | 1954-55 |
에드 맥컬레이 | 폴 아리진 | 조지 마이칸 | 밥 쿠지 | 빌 샤먼 | |
1955-56 | 1956-57 | 1957-58 | 1958-59 | 1959-60 | |
밥 페팃 | 밥 쿠지 | 밥 페팃 |
엘진 베일러 밥 페팃 |
윌트 체임벌린 | |
1960-61 | 1961-62 | 1962-63 | 1963-64 | 1964-65 | |
오스카 로버트슨 | 밥 페팃 | 빌 러셀 | 오스카 로버트슨 | 제리 루카스 | |
1965-66 | 1966-67 | 1967-68 | 1968-69 | 1969-70 | |
애드리언 스미스 | 릭 배리 | 할 그리어 | 오스카 로버트슨 | 윌리스 리드 | |
1970-71 | 1971-72 | 1972-73 | 1973-74 | 1974-75 | |
레니 윌킨스 | 제리 웨스트 | 데이브 코웬스 | 밥 레이니어 | 월트 프레이저 | |
1975-76 | 1976-77 | 1977-78 | 1978-79 | 1979-80 | |
데이브 빙 | 줄리어스 어빙 | 랜디 스미스 | 데이비드 톰슨 | 조지 거빈 | |
1980-81 | 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
네이트 아치발드 | 래리 버드 | 줄리어스 어빙 | 아이제아 토마스 | 랄프 샘슨 | |
1985-86 | 1986-87 | 1987-88 | 1988-89 | 1989-90 | |
아이제아 토마스 | 톰 체임버스 | 마이클 조던 | 칼 말론 | 매직 존슨 | |
1990-91 | 1991-92 | 1992-93 | 1993-94 | 1994-95 | |
찰스 바클리 | 매직 존슨 |
존 스탁턴 칼 말론 |
스카티 피펜 | 미치 리치몬드 | |
1995-96 | 1996-97 | 1997-98 | 1998-99 | 1999-00 | |
마이클 조던 | 글렌 라이스 | 마이클 조던 | (NBA 파업) |
샤킬 오닐 팀 던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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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
앨런 아이버슨 | 코비 브라이언트 | 케빈 가넷 | 샤킬 오닐 | 앨런 아이버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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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
드웨인 웨이드 | |
2010-11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
코비 브라이언트 | 케빈 듀란트 | 크리스 폴 | 카이리 어빙 | 러셀 웨스트브룩 | |
2015-16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
러셀 웨스트브룩 | 앤서니 데이비스 | 르브론 제임스 | 케빈 듀란트 | 카와이 레너드 | |
2020-21 | 2021-22 | 2022-23 | 2023-24 | 2024-25 | |
야니스 아데토쿤보 | 스테판 커리 | 제이슨 테이텀 | 데미안 릴라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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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메이네케 | 레이 펠릭스 | 밥 페팃 | 모리스 스톡스 | 톰 하인슨 | |
1957-58 | 1958-59 | 1959-60 | 1960-61 | 1961-62 | |
우디 솔즈베리 | 엘진 베일러 | 윌트 체임벌린 | 오스카 로버트슨 | 월트 벨라미 | |
1962-63 | 1963-64 | 1964-65 | 1965-66 | 1966-67 | |
테리 디싱거 | 제리 루카스 | 윌리스 리드 | 릭 배리 | 데이브 빙 | |
1967-68 | 1968-69 | 1969-70 | 1970-71 | 1971-72 | |
얼 먼로 | 웨스 언셀드 | 루 앨신더 |
데이브 코웬스 제프 페트리 |
시드니 윅스 | |
1972-73 | 1973-74 | 1974-75 | 1975-76 | 1976-77 | |
밥 맥아두 | 어니 디그레고리오 | 자말 윌키스 | 앨번 애덤스 | 애드리언 댄틀리 | |
1977-78 | 1978-79 | 1979-80 | 1980-81 | 1981-82 | |
월터 데이비스 | 필 포드 | 래리 버드 | 대럴 그리피스 | 벅 윌리엄스 | |
1982-83 | 1983-84 | 1984-85 | 1985-86 | 1986-87 | |
테리 커밍스 | 랄프 샘슨 | 마이클 조던 | 패트릭 유잉 | 척 퍼슨 | |
1987-88 | 1988-89 | 1989-90 | 1990-91 | 1991-92 | |
마크 잭슨 | 미치 리치몬드 | 데이비드 로빈슨 | 데릭 콜먼 | 래리 존슨 | |
1992-93 | 1993-94 | 1994-95 | 1995-96 | 1996-97 | |
샤킬 오닐 | 크리스 웨버 |
그랜트 힐 제이슨 키드 |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 앨런 아이버슨 | |
1997-98 | 1998-99 | 1999-00 | 2000-01 | 2001-02 | |
팀 던컨 | 빈스 카터 |
엘튼 브랜드 스티브 프랜시스 |
마이크 밀러 | 파우 가솔 | |
2002-03 | 2003-04 | 2004-05 | 2005-06 | 2006-07 | |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 르브론 제임스 | 에메카 오카포 | 크리스 폴 | 브랜든 로이 | |
2007-08 | 2008-09 | 2009-10 | 2010-11 | 2011-12 | |
케빈 듀란트 | 데릭 로즈 | 타이릭 에반스 | 블레이크 그리핀 | 카이리 어빙 | |
2012-13 | 2013-14 | 2014-15 | 2015-16 | 2016-17 | |
데미안 릴라드 | 마이클 카터윌리엄스 | 앤드류 위긴스 | 칼앤서니 타운스 | 말콤 브록던 | |
2017-18 | 2018-19 | 2019-20 | 2020-21 | 2021-22 | |
벤 시몬스 | 루카 돈치치 | 자 모란트 | 라멜로 볼 | 스카티 반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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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반케로 | 빅터 웸반야마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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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47 | 1947-48 | 1948-49 | 1949-50 | 1950-51 |
조 펄크스 | 맥스 자슬로프스키 | 조지 마이칸 | 조지 마이칸 | 조지 마이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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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아리진 | 네일 존스턴 | 네일 존스턴 | 네일 존스턴 | 밥 페팃 | |
1956-57 | 1957-58 | 1958-59 | 1959-60 | 1960-61 | |
폴 아리진 | 조지 야들리 | 밥 페팃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
1961-62 | 1962-63 | 1963-64 | 1964-65 | 1965-66 |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윌트 체임벌린 | |
1966-67 | 1967-68 | 1968-69 | 1969-70 | 1970-71 | |
릭 배리 | 데이브 빙 | 엘빈 헤이즈 | 제리 웨스트 | 루 앨신더(카림 압둘자바) | |
1971-72 | 1972-73 | 1973-74 | 1974-75 | 1975-76 | |
카림 압둘자바 | 네이트 아치발드 | 밥 맥아두 | 밥 맥아두 | 밥 맥아두 | |
1976-77 | 1977-78 | 1978-79 | 1979-80 | 1980-81 | |
피트 마라비치 | 조지 거빈 | 조지 거빈 | 조지 거빈 | 애드리안 댄틀리 | |
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1985-86 | |
조지 거빈 | 알렉스 잉글리시 | 애드리안 댄틀리 | 버나드 킹 | 도미니크 윌킨스 | |
1986-87 | 1987-88 | 1988-89 | 1989-90 | 1990-91 |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
1991-92 | 1992-93 | 1993-94 | 1994-95 | 1995-96 |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데이비드 로빈슨 | 샤킬 오닐 | 마이클 조던 | |
1996-97 | 1997-98 | 1998-99 | 1999-00 | 2000-01 | |
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 앨런 아이버슨 | 샤킬 오닐 | 앨런 아이버슨 |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2005-06 | |
앨런 아이버슨 |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 앨런 아이버슨 | 코비 브라이언트 |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2010-11 | |
코비 브라이언트 | 르브론 제임스 | 드웨인 웨이드 | 케빈 듀란트 | 케빈 듀란트 |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2015-16 | |
케빈 듀란트 | 카멜로 앤서니 | 케빈 듀란트 | 러셀 웨스트브룩 | 스테판 커리 |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2020-21 | |
러셀 웨스트브룩 | 제임스 하든 | 제임스 하든 | 제임스 하든 | 스테판 커리 | |
2021-22 | 2022-23 | 2023-24 | 2024-25 | 2025-26 | |
조엘 엠비드 | 조엘 엠비드 | 루카 돈치치 | - | - | }}}}}}}}}}}} |
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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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 1997-98 ·
1999-2000 ·
2000-01 ·
2001-02 ·
2002-03 ·
2003-04 ·
2005-06 2nd : 1994-95 · 1998-99 3rd : 1993-94 · 1995-96 · 1996-97 · 20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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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 1999-2000 · 2000-01 · 2002-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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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284c> |
기네스 세계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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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NBA 2K cover star to win the NBA Finals in the same season
(같은 시즌 NBA 파이널에서 우승한 최초의 NBA 2K 커버 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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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대상 | 기록 | 장소 | 등재 시일 | |||
<rowcolor=#000,#fff> 샤킬 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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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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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항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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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세계 기록 설명 페이지 |
{{{#!wiki style="margin:-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284c> |
기네스 세계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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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est field goal percentage in professional basketball (career)
(프로 농구 최다 야투율 성공률 (커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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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대상 | 기록 | 장소 | 등재 시일 | |||
<rowcolor=#000,#fff> 샤킬 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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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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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항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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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세계 기록 설명 페이지 |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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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킬 오닐 | |
헌액 연도 | 20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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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킬 오닐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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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BFC7 [[올랜도 매직|올랜도 매직]] 등번호 32번}}} | |||||||||||||||||||||||||||||||||||||||||||||||||||||||||||||||||
오티스 스미스 (1989~1992) |
→ |
샤킬 오닐 (1992~1996) |
→ |
제레미 리처드슨 (2008~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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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왓슨 (2016~2017) |
→ |
샤킬 오닐 |
→ | 영구 결번 |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번호 34번 | ||||||||||||||||||||||||||||||||||||||||||||||||||||||||||||||||||
조지 린치 (1995~1996) |
→ |
샤킬 오닐 (1996~2004) |
→ | 영구 결번 | ||||||||||||||||||||||||||||||||||||||||||||||||||||||||||||||
마이애미 히트 등번호 32번 | ||||||||||||||||||||||||||||||||||||||||||||||||||||||||||||||||||
타이론 힐 (2003) |
→ |
샤킬 오닐 (2004~2008) |
→ |
미켈 글라드네스 (2011~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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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에니스 3세 (2014~2015) |
→ | 샤킬 오닐 | → | 영구 결번 | ||||||||||||||||||||||||||||||||||||||||||||||||||||||||||||||
피닉스 선즈 등번호 32번 | ||||||||||||||||||||||||||||||||||||||||||||||||||||||||||||||||||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2002~2006) |
→ |
샤킬 오닐 (2008~2009) |
→ |
테일러 그리핀 (2009~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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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등번호 33번 | ||||||||||||||||||||||||||||||||||||||||||||||||||||||||||||||||||
데빈 브라운 (2007~2008) |
→ |
샤킬 오닐 (2009~2010) |
→ |
알론조 지 (2010~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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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셀틱스 등번호 36번 | ||||||||||||||||||||||||||||||||||||||||||||||||||||||||||||||||||
창단 | → |
샤킬 오닐 (2010~2011) |
→ |
마커스 스마트 (2014~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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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31006F><colcolor=#fff>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No. 34 | |
마이애미 히트 No. 32 | |
올랜도 매직 No. 32 | |
샤킬 러숀 오닐 Shaquille Rashaun O'Neal, Ed. D.[2] |
|
출생 | 1972년 3월 6일 ([age(1972-03-06)]세) |
뉴저지 주 뉴어크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일반전공학부[3] (인문학[4] / 학사) 피닉스 대학교 (경영학 / 석사) 배리 대학교 (교육학 / 박사) |
신장 | 216cm (7' 1")[5] |
체중 | 168kg (370 lbs)[6] |
윙스팬 | 231cm (7' 7") |
후원사 | 리복 |
포지션 | 센터 |
드래프트 |
1992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올랜도 매직 지명 |
소속 팀 |
올랜도 매직 (1992~1996)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6~2004) 마이애미 히트 (2004~2008) 피닉스 선즈 (2008~2009)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09~2010) 보스턴 셀틱스 (2010~2011) |
가족 | |
SNS |
[clearfix]
1. 개요
|
별명이자 애칭인 샤크(Shaq)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린다. 본인 스스로는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선수라는 의미에서 MDE(Most Dominant Ever)라 칭하며, 자칭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대개 수긍하는 편. 또 다른 별명으로 빅 아리스토텔레스도 있고, 자칭 타칭 진짜 슈퍼맨이라고도 불린다. 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전설적인 캐스터 칙 헌은 오닐을 빅 펠라(Big Fella)라는 별명으로도 불렀다.[12]
한국에서는 애칭을 딴 '흑상어'와 더불어 그 육중한 몸집과 파워 탓에 '공룡센터'라는 별칭으로도 자주 불렸으며, 하킴 올라주원,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과 함께 4대 센터 중 한 명으로 일컫어진다.[13]
농구 광팬이 아닌 일반인 기준으로도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높은 선수다. 한국에선 래리 버드, 매직 존슨[14] - 마이클 조던으로 이어지던 NBA 간판스타 계보를 이은 인물이다. 마지막 승부 이후 터진 한국의 농구열풍 당시 NBA 최정점을 달리던 선수였던 조던이 농구를 떠난 과거의 베테랑 포지션이었다면 오닐은 그를 대체할 최고의 슈퍼스타였고, 두 선수를 스폰하던 나이키와 리복이 유일하게 맞다이가 가능하던, 심지어는 오닐의 리복이 더 잘나가던 시기였다.[15]
2. 생애
1972년생으로 조셉 토니와 어머니 루실 오닐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셉 토니는 지튼 홀 대학에서 농구 장학금 제안을 받았을 정도로 농구에는 재능이 있는 인간이었지만, 다른 게 막장이었다. 약물 복용에 전과까지 있었고, 오닐이 신생아였던 1973년에 마약 소지죄로 감옥에 갔다. 그 사이 어머니인 루실 오닐은 군인인 필립 해리슨과 재혼했고, 조셉 토니는 출소 후 오닐에 대한 친권을 포기한다. 이후 오닐은 조셉 토니와의 어떠한 만남과 대화도 거부하며, 흥미조차 가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오닐의 농구재능 하나만큼은 한때 대학으로부터 농구 장학금 제안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선수였던 토니에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오닐의 양부가 된 해리슨은 성심성의껏 오닐을 아들로써 양육한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각보다 마초 문화가 강하고, 거기에 해리슨은 미국에서도 마초적인 문화가 가장 강한 집단인 군인이었기에 그의 양육은 가끔 아동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엄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애정이 없는 학대에 불과했다면 그 오닐이 나중에 해리슨을 "내 아버지인 위대한 (great) 필 해리슨"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표하거나 자신의 랩 노래에서 '내 아버지는 필이야' 라고 강조할 리가 없다.[16]
실질적 아버지인 필립 해리슨이 독일에서 근무한 덕에 유년시절을 독일에서 보낸 적이 있다. 일화로 군인들과 같이 농구를 하는데 당시 이미 2m에 가까운 신장을 가졌던 오닐이 너무 잘하자 한 군인이 "너 계급이 뭐냐?" 물었더니 "중학생이에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2.1. 선수 경력
자세한 내용은 샤킬 오닐/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NBA 챔피언 4회 (2000-2002, 2006) NBA 파이널 MVP 3회 (2000-2002) NBA 정규시즌 MVP (2000) 올-NBA 퍼스트 팀 8회 (1998, 2000-2006) 올-NBA 세컨드 팀 2회 (1995, 1999) 올-NBA 서드 팀 4회 (1994, 1996-1997, 2009) NBA 올스타 15회 (1993-1998, 2000-2007, 2009) NBA 올스타전 MVP 3회 (2000, 2004, 2009)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3회 (2000-2001, 2003) NBA 올해의 신인상 (1993) NBA 올-루키 퍼스트 팀 (1993) NBA 득점왕 2회 (1995, 2000) 1994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캐나다 금메달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MVP (1994)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6) |
4. 플레이 스타일
자세한 내용은 샤킬 오닐/플레이 스타일 문서 참고하십시오.5. 예능감
진지한 외모와 우락부락한 덩치와는 달리 예능에 재능이 있다. 르브론 제임스, 드와이트 하워드에게 댄스 비법을 전수해 주는 영상이 있다. < 무서운 영화> 시리즈에도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으며, 음반을 내기도 하는 등 유쾌하다. 본인은 스스로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거인 아리스토텔레스(The Big Aristotle)"라고 불러달라고 한 적이 있다. NBA에서 가장 엔터테이너적 마인드와 상품성이 풍부한 스타. 프로스포츠가 시작한 이래, 리그를 지배할 정도의 파괴력을 갖춘 스타 선수는 그 실력 자체가 상품성이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관리와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상품성을 갖추는 것이 보통이고 그를 통해 지금까지도 프로스포츠 역사에 남을 상품성의 사나이 마이클 조던이 NBA에 있었기 때문에 리그의 the one은 어느정도 진중하고 미디어와 적절한 긴장구도를 유지하고, 마케팅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샤킬 오닐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드문 케이스다.본인 별명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별명도 멋있게 잘 지어준다. 대표적으로 마이애미 시절 팀 동료였던 드웨인 웨이드의 별명 'The Flash'. 폴 피어스의 별명인 'The Truth'나 팀 던컨의 'The Big Fundamental'[17] 등의 별명도 오닐이 지어 주었다.[18] 코비 브라이언트에게도 'Showboat'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썩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어서 그런지 잘 쓰이지 않았다.
올스타전 같은 축제에도 가장 필요한 스타라고 평가받는다. 2008 올스타전에서는 그것을 온몸으로 보여줬는데, 한 번 포인트 가드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오닐을 마크하는 선수는 드와이트 하워드. 그만큼 관중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플로리다 주에서는 명예경찰이다. 실제로 용의자를 쫓아가서 잡아본 적도 있다고. 또 훈훈한 미담도 있는데 친어머니에 의해 5살이라는 나이에 인신매매단에게 팔리고 성매매를 하게 된 샤니아라는 소녀의 장례식 비용도 다 부담해줬다. 이외에도 경찰 채용 광고에 나오기도 하고, 경찰 살인범 추적을 위한 현상금을 기부하고, 경찰 장례식에 사적으로 유감을 표하는 등 미국 경찰에 대한 활발한 관심과 활동을 하였다. 그래서 미국 경찰관들 사이에서 오닐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요새는 트위터에 빠져있는 것 같다. 글이 자주 올라온다.
2010년 12월 보스턴으로 이적 후 보스턴 오케스트라에서 명예 지휘자로 활약했다. 역대 지휘자 중 최장신으로 기록되었지만 타코 폴이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엔터테이너 기질 때문에 그의 커리어가 더 위대해지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다. 상술한대로 저런 경박한 개그캐가 세계관 최강자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분위기가 있기도 했었고, 그때문에 여러 팀을 옮겨다닌 결과를 낳기도 했으니까. 미국의 스포츠 블로그이자 팟캐스트인 그랜트랜드를 공동진행하는 잘렌 로즈의 경우 "만약 오닐이 코비와 같은 멘탈을 가지고 있었다면 리그는 멸망했을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실제로 두 선수가 레이커스에서 틀어지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농구라는 게임을 대하는 시각의 차이가 작용했는데, 코비는 오닐의 '외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레이커스 시절 감독이었던 필 잭슨 또한 '오닐은 10년 연속 MVP를 거머쥘 능력이 있는 선수였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어야 했다.'라며 아쉬운 평을 남겼을 정도이다.
오닐이 이러한 엔터테이너 기질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신의 능력에 자신만만했던 오닐은, 마케팅 수업에서 교수에게 마이클 조던같은 선수들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과제로 제출했지만, "네가 노력파고 당돌한건 이해 하지만, NBA에서 거인은 성공하지 못한다." 라는 평과 함께 낙제점을 받게 되었다.[19] 이후 그런 혹평을 이겨내기 위해 수많은 광고들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중, 슈퍼볼 XXI의 버드라이트 광고에 출연한 이후, 1980년대 후반의 해당 브랜드의 마스코트로써 인기를 얻은 불테리어 스퍼즈 맥켄지 (Spuds MacKenzie)를 보고, "이 개가 아무것도 안 하지만 익살스러운 캐릭터로 스타덤에 올랐는데, 나도 재미있는 성격을 충분히 살리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다짐을 한 후, 자신의 유머러스하고 활기찬 캐릭터를 대중에게 열심히 어필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선수 시절에나 은퇴 이후에나 이어졌고, 수많은 영상매체들과 광고들에 출연하면서 크게 성공하는 결실로 이어졌다. 대본이 있으면 그 내용에다 자신의 캐릭터를 적절히 버무려 큰 성공으로 이끌기에, 여러 광고주들과 마케팅 업체들에게 호평을 받고있다. 홍보하는 제품들도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제품들만 선택하는데, 예를 들어 스마트 홈 업체인 ring은 창업자와 함께 광고를 찍었고, 크리스피 크림은 100여개의 매장들을 보유하면서 홍보 이벤트에 나서기도 한다. 아예 애틀랜타에서 여러 기업들의 대표들과 향후의 홍보 어젠다를 정하는 샤크 서밋을 매년 열기도 한다.
6. 미디어믹스?
데뷔 초기의 인터뷰에서, "나의 꿈은 NBA 챔피언, 아카데미상, 에미상"이라고 할 정도로, 농구 뿐 아니라 영화,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그의 레이커스 이적에 대해,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적하여 연예활동을 좀 더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었다.총 다섯 장의 랩 음반을 내기도 하였는데, NBA에 데뷔하기도 전인 1993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Shaq Diesel'은 두 곡을 빌보드 싱글차트 50위에 안에 올렸고, 한때 빌보드 앨범판매 순위 25위까지 오르며 100만장을 넘게 팔만큼 성공했다. 이후 우탱 클랜의 멤버들과 교류가 두드러지는 2집 'Shaq Fu-Da Return'(1994), 'You can`t STOP the REIGN'(1996)등을 발표하지만, 데뷔 앨범만큼의 성공은 없었고, 2000년대 초반 이후엔 두드러지는 음악활동은 없다. 1994년 발표된 명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앨범 'Jook Joint'의 수록곡 'Stomp', 1995년 발표된 마이클 잭슨의 앨범 'HIStory'의 수록곡 '2 Bad'에서도 구수한 랩을 들려준다. 가장 유명한 힙합 작업물을 꼽으라면 역시 그의 별명을 차용한 단체곡 Men of Steel.[20]
영화에 여럿 나왔지만 그다지 평가는 좋지 않다.[21] 1995년 국내에 비디오로 발매될 때에는 '샤킬 오닐의 NBA 챔프'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블루칩스에 출연하였다. 대학농구 리쿠르트(신입생 발탁)의 추악한 이면을 들춘 영화에서 그는 유망주 농구 선수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는 이후 올랜도 시절 동료가 되는 앤퍼니 하더웨이가 출연하기도 하며, 실제로 이 영화 촬영 과정에서 두 사람은 많이 가까워져, 이후 1993 드래프트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닉 놀테의 연기도 좋다. 더불어 이 영화 감독은 다름아닌 윌리엄 프리드킨이다! 3500만 달러로 제작했으나 북미 흥행은 2300만 달러에 그치며 실패했다.
1996년에 주연으로 나온 '카잠'은 자타공인 최악영화로 악명을 떨쳤던 바 있다. 평단의 평은 '자기 자유투 실력만큼이나 형편없는 연기력을 보여줬다'라고 했다. 그래서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서 만든 '최악의 조합'으로 '샤킬 오닐의 부업'을 꼽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개봉 무렵 올랜도에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이적했는데, 친정팀인 올랜도 원정경기 도중 올랜도의 팬 두 사람이 '올랜도에서 네 녀석 영화를 본건 우리 둘 뿐이다ㅋㅋㅋ'라는 피켓을 들고 골려먹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Nostalgia Critic이 다룬 적도 있다. 그나마 2천만 달러로 만들어서 북미에서 1890만 달러를 벌며 망해도 너무 쫄딱 망하진 않았다.(흥행에서)
1997년 DC 코믹스의 영웅 캐릭터인 스틸의 실사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적이 있다.[22]
이후 무서운 영화 4에서 카메오로 나온다든지[23][24] 조역으로 종종 나오고 있다. 최신작은 애덤 샌들러의 2013년작으로 7월 12일 개봉한 Grown Ups 2에서 조연으로 나온다. 또한 2014년 개봉한 레고 무비에 피규어 및 목소리로 출연하였다.
샤킬 오닐 필모그래피 (영화 한정) | ||
샤킬 오닐의 NBA 챔프 | 1994 | Neon 역 |
카잠 | 1996 | 카잠 역 |
스틸 | 1997 | 존 헨리 아이언스/스틸 역 |
Good Burger | 1997 | 본인 역(카메오) |
Freddy Got Fingered | 2001 | 본인 역(카메오) |
The Wash | 2001 | 노만 역 |
무서운 영화 4 | 2006 | 본인 역(카메오) |
로마에서 생긴 일 | 2009 | 본인 역(카메오) |
잭 앤 질 | 2011 | 본인 역(카메오) |
Thunderstruk | 2012 | 본인 역(카메오) |
레고 무비 | 2014 | 본인 역(목소리) |
블렌디드 | 2014 | Doug 역 |
엉클 드류 | 2018 | 빅 펠라 역 |
격투기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격투기 수련도 꽤나 오래 했었다. UFC가 지금만큼의 인기를 끌지못하던 암흑기에도 꼬박꼬박 대회장을 찾아 관람하였고, 심지어 UFC 경기장에서 멀리 떨어진 마이애미 연고의 팀으로 이적했을 때는 UFC 경기장이 너무 멀어 찾아가기 힘들다며 마이애미에서도 UFC 대회를 열어줄 것을 주최측에 요구하기도 하였다.[25] 이런 모습 덕분에 게임 UFC 언디스퓨티드 2010에 게스트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WWE RAW 관람 중 쇼 후반부에 빅 쇼와 대립하는 장면을 만들기도 했고[26] 선수 말년에 종종 최홍만에게 도발을 한다든지[27] UFC에서 브록 레스너와 붙고 싶다든지 하는 얘기를 해왔다. 그리고 WWE는 은퇴 후 자유의 몸이 된 오닐을 놓치지 않고 빅 쇼와의 경기를 추진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에서 몇년간 소식이 없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레슬매니아 32 앙드레 더 자이언트 추모 배틀로얄 경기에서 깜짝 등장하였다.
오닐의 인기가 전성기에 달했을 때 그 인기에 편승한 게임도 나왔는데, ' 샥 푸'라는 게임 이다. 16비트 게임기로 나온 대전 격투 게임이지만, 세계 역사상 최악의 대전액션게임이라는 평가도 종종 받는 희대의 쓰레기 게임. AVGN도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리뷰한 바가 있다. 오닐이 멋지게 쿵푸 포즈를 잡고 있는 표지가 인상적인 이 게임은 섀크의 인기를 믿고 안일하게 만들어 너무 많이 찍어낸 나머지 영미권 인터넷에서는 후일의 영화 엄복동 같은 느낌으로 못 만든 게임을 조롱하는 일종의 밈이 되었는데, 이 밈이 또 인기가 있어서 밈의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까지 제작되었다. 섀크로서는 그렇게까지 나쁜 추억은 아니었는지, 후속작에도 흔쾌히 초상권을 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모션캡쳐와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물론 후속작도 2018 최악의 게임 중 하나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망했다.
스타급 선수들이 대개 그렇듯이 특정 선수를 주제로 한 NBA 홈 비디오 시리즈가 오닐 버전으로도 몇개 출시되었는데, 이 중 맨 처음으로 나온 <샤크 어택 - 인 유어 페이스>라는 비디오테잎은 1994년 월간 루키 창간호 특별부록으로 한글 자막판이 증정된 적이 있었다. 문제는 원래 이 비디오가 나온 시기가 오닐이 막 NBA에 입성한 1992년인 탓에 수록 내용이 NBA에서 활약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시피하고[28] 대학시절 활약을 찔끔 보여주는 수준이며, 대부분의 내용은 오닐의 일상과 주변인들의 인터뷰, 그리고 오닐의 랩 배우기 등으로 채워져있다. 그런데 정작 루키 부록으로 현지화된 버전은 비디오 제목 자체가 <NBA 슈퍼스타즈 비디오 샤킬 오닐>인데다 케이스에도 올랜도 유니폼을 입고 멋진 덩크를 꽂는 오닐의 모습이 나와있었기에, 오닐이 NBA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비디오를 재생했다가 낚인 걸 알고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오닐 팬들마저도 이 비디오만큼은 드럽게 재미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궁금한 사람은 직접 보자.
1993년에 펩시 광고에 출연했는데, 길거리 농구를 하던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다가 펩시를 찾는데 아이스박스가 텅 비어 실망한 상태에 펩시 병을 들고 있는 아이에게 얻어 마시려고 하니까 꼬마아이가 '꿈도 꾸지 마요' 하며 거부하자 오닐의 멋쩍은 표정이 일품인 내용이다. 이 광고는 국내에도 방영되었는데 오닐과 아이의 목소리는 더빙이 되었다.
2018년에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연례 편성 중 하나인 "Shark Week"의 30주년 특집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름하야 "Shaq Does Shark Week"
방영 전 광고
(Shaq Week인 줄 알고 승락했는데, 알고보니 Shark Week였다'고 드립을 친다.)
한편 본편 촬영 중에는, 상어 케이지에 들어간 채 잠수한 오닐의 주변에 몰려들었던 상어들 중, 약간 몸집이 작은 상어 한 마리가 케이지의 창살 틈새로 난입하는 돌발 사태를 겪기도 했다.
2021년 3월에는 올 엘리트 레슬링 AEW 다이너마이트 더 크로스로즈 특집에 출연해 제이드 카길과 팀을 이뤄 코디 로즈 & 레드 벨벳을 상대로 2:2 혼성 태그팀 경기에 참가했다. 제이드 카길이란 신인 선수를 소개하는 역할로 출발해 상대 팀 코디 로즈의 아내 브랜디 로즈에게 물을 맞고, 경기 당일엔 2020년에 타계한 브로디 리의 오마주를 비롯해 파워 밤과 테이블 2개를 박살내는 장면까지 선보였다.
7. 밈
이 탈취제 광고에서 귀엽게 몸을 흔드는 게 밈이 되었다.
이후 샤크 혼자 나오는 것보다 고양이와 함께 나오도록 편집된 버전이 인기를 끌었다. #
7.1. Shaq face
유튜브의 유명한 요리 예능 프로그램 First We Feast에 나와 핫 윙을 먹고 웃긴 표정을 지었는데 너무 웃기는 바람에 밈이 되어버렸다..
7.2. Sleepling shaq
보통 두 칸으로 나눠져 상단의 'I sleep'과 하단의 'Real shit'으로 알려져 있는 밈이다. 상단에는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을, 하단에는 절대로 무시하거나 그냥 넘길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한다. 더해서 세세하게 나누고 싶다면 세 번째 칸에 Ascended와 네 번째 칸에 WOKE를 추가하기도 한다.[29] 예시들.8. 농구화
아마츄어 시절부터 엄청난 유망주로 당대 농구화 시장에서 주가가 높던 리복과 계약, 루키 시즌부터 시그니처 시리즈로 그 유명한 샤크어택 시리즈가 발매됐다. 아무래도 투박하고 묵직한 빅맨 시그니처 농구화는 상품성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리복 샤크어택 시리즈는 빅맨 시그니처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인기가 많고 잘 팔리던 농구화였다. 서두에도 언급했듯, 전성기 시절 에어조던 시리즈와도 맞다이가 가능했던 시그니처. 에어조던의 상징이 점프맨 로고라면, 샤크어택의 상징은 덩크맨 로고.시리즈의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빅맨 시그니처답게 발목을 완전히 감싸는 높은 하이탑 디자인, 그리고 리복이 자랑하는 인스타 펌프로 인한 사용자의 발에 맞춘 완벽한 핏팅감. 그리고 그 거구의 샤킬 오닐을 받쳐준 절대적인 쿠셔닝 (다만 헥사라이트 쿠셔닝 특성상 푹신하지는 않고 단단한 하드 쿠셔닝이다).
유명한 시리즈로는 샤크어택1, 샤크어택4, 샤크노시스가 있다.
샤크어택1은 시리즈 최초인데도 불구하고 이후 발매되는 2,3보다 완성도가 높고 인지도도 압도적이다. 인스타 펌프, 카본 플레이트. 쿠셔닝 테크놀로지는 따로 없다.
샤크어택4는 상어이빨을 형상화한 듯한 디자인과, 총과 비슷한 디자인의 펌프 주입기가 따로 있어서 센세이션했던 신발. 펌프 주입기가 따로 있었지만 여러번 누를 필요없이 한번에 펌프가 채워져서 편리했다. 다만 최근 레트로 모델은 권총모양의 주입기가 없어지고 단순한 모양의 펌프 주입기로 변경되어 많은 원성을 자아냈다. 네오프렌 안감과 발목 스트랩, 펌프로 인해 핏팅감은 시리즈 최고 수준. 인스타 펌프, 헥사라이트 쿠셔닝.
특히 한국에서는 같은 시즌 발매됐던 에어조던8과 함께 90년대 고가 농구화의 상징적인 신발.
샤크노시스는 시리즈 최고의 작품이자 샤킬 오닐 본인도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 당시 리복이 밀던 뫼비우스 디자인 중의 하나로서 독특한 디자인이 매우 인상적이다. 카본 플레이트와 인스타 펌프, 헥사라이트까지 스펙도 시리즈 최고 수준. 다만 최근 레트로 모델에서는 인스타 펌프를 아예 빼버리고(!) 발목높이도 확 깎아버려서 아예 다른 신발로 만들어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덕분에 샤크노시스 원판의 중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중.
샤크노시스 이후로는 리복의 농구화가 너무 고가라고 생각하여 4000만 달러(468억원 상당)을 포기하고 리복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로고를 붙여서 자체 브랜드로 시그니처 농구화를 제작, 20달러 미만의 착한 가격으로 가난한 어린이들과 학생들도 시그니처 농구화를 신을 수 있도록 했다. 하킴 올라주원이나 스테판 마베리와 같은 마인드. 한 어머니가 농구화가 비싸다고 샤킬 오닐에게 항의하자 그날 당장 계약을 해지하고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감동적인 일화가 있다.
비록 리복 시절에 비해 기능은 아쉽고 (그래도 샤킬 오닐이 직접 신던 신발인만큼 쿠셔닝만큼은 절대적이었다) 디자인도 어디선가 본듯한 카피캣 디자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샤킬 오닐 자신의 상품성 덕분에 큰 돈을 벌었다고.
은퇴 이후에는 리복과 다시 비즈니스 관계가 회복되었는지, 2020년대부터는 리복의 농구화 부문 사장을 맡고있다. 참고로 부사장은 앨런 아이버슨.
9. 여담
- 은퇴 후에는 SHAQ 샤킬 오닐 최고의 대결 - 스타들에게 도전장을 던지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ex. 알버트 푸홀스, 마이클 펠프스)과 대결을 펼치고 있다.[30]
- NBA Open Court라는 시즌제 예능 겸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출연 중이다. 그런데 썩 좋은 패널은 아닌 것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조건 끼어든다. 실제로 그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 오닐은 애널리스트로는 좋은 목소리가 아니다. 과거 패널에 있었던 크리스 웨버나 같이 진행하는 케니 스미스와 달리 상당한 중저음이기 때문에 비판론자들은 "곰이 웅얼거리는 것 같다"고 까기도 한다. 또 상당히 논리적으로 얘기하는 둘과 달리 아직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내공이 부족하고 진지하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물론 이러한 점은 차차 개선되는 중. 더 심각한 문제는 현대 농구에 대한 공부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까는 팀들이 있는데 사실 그 팀의 경기를 거의 안 보는 것 같다는 지적이 많으며, 똑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도 많이 한다.[31][32]
- 위에 언급된 샥틴 어 풀의 한 에피소드에서 그가 현 NBA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드러났는데, 원래 이 프로는 작가들이 영상과 대사는 전부 준비하고 오닐은 이 대본을 맛깔스럽게 읽기만 하는 구조이다. 그런데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작가진이 엉뚱한 대본을 전달하는 바람에 오닐이 즉석에서 멘트를 준비해야 했는데, 해당 영상에 나오는 선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보면서 "아 저 선수가 이런 바보짓하고 있네요"라고 해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그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웃으며 넘어갔지만 현역 해설가이자 분석가가 스타급 선수들을 제외한 선수들의 이름을 전혀 모른다는 건 은근히 심각한 문제다. 그래도 최근에 개선된 것 같으며 그의 특유의 목소리는 대체 불가라 몇벛 오닐이 빠졌을 때 '오닐이 없으니 확실히 다르다' 하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많았다. 특히 특유의 "저베일 맥기" 의 외침을 대체 불가수준.
- 방송인 측면에서 보면 하나 문제는 자기가 무시당하는 꼴은 절대 못 본다는 점이다. 찰스 바클리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자신이 놀림감이 되더라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닐은 장난식으로라도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꼴을 못 본다. 남들은, 특히 까마득한 선배인 패트릭 유잉이나 데이빗 로빈슨에게도 바베큐 치킨 드립을 치면서 자기 힘이나 실력을 무시하면 정색하고 부정한다. NBA슈퍼스타들이 자존심이 센 편이긴 하지만, 바클리나 다른 선수들은 진지할 때는 진지하고 웃을 때는 그냥 웃는데 오닐은 웃다가도 자기를 무시한다 싶으면 정색하며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적이 여러 번 있다. 바클리와 아웅다웅할 때 바클리가 당하는 기믹이 대부분인 것도, 바클리는 이런 식의 까임을 웃으면서 넘길 수 있지만 오닐은 절대 못 넘긴다는 것이다. 오닐이 자진해서 웃음거리가 되는 건 본인이 사전에 짜놓은 꽁트를 할 때 뿐이다.
- 사실 패널로서 여러 문제점도 있지만, 인간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웃기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크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기가 무시당하면 정색하면서 남들을 놀릴 때는 상대 반응이 어떻든 무시하고 계속 자기 할말을 한다. 샥틴 어 풀 항목에서 나오듯이 샥틴 어 풀에 나오는 것에 대해 맥기 본인이 싫다며 그만 좀 내보내라고 사정을 했는데도 무시하고 계속 내보내면서 비웃었다. 그래놓고 맥기가 비난을 하자 오히려 맥기를 무시하면서 자기 때문에 맥기가 유명해졌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는데, 농구선수가 전국적으로 바보 취급당하며 조리돌림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인터넷에서 인기 좀 많다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저베일 맥기 항목에도 나왔듯이 이런 점은 맥기의 선수 가치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이다.
- 그래도 찰스 바클리와 주제에 대한 의견충돌로 아웅다웅하면서 개그로 방송분량을 확보중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해서 코비 브라이언트의 발언으로 드림팀에 대한 떡밥이 나왔을 때 드림팀1의 레전드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정도는 바비큐 치킨이나 머스터드 바른 치킨너겟으로 만들어 얼마든지 해치워버릴 수 있다고 한다. 이 날의 주제는 원조 드림팀과 2012년 드림팀 중 어디가 더 강한지였는데, 오닐은 뜬금없이 자신이 소속됐던 1994년 드림팀이 제일 강하다고 주장했으며 1996년 드림팀이 1992년 드림팀을 이긴다는 등 자신의 드림팀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33] 또 오닐이 자주 까는 사람은 자신을 제치고 백투백 MVP를 따낸 스티브 내시. 내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자신을 제치고 상을 가져갔다며 항상 까댄다.[34]
- 사실 오닐이 유잉을 정말 얕보는 건 아니고, 그는 데뷔 이전부터 유잉을 존경했으며 은퇴 후에는 종종 유잉에 대해 "my idol"라고 지칭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대학시절까지 33번를 택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35] 오닐은 젊은 시절 유잉에게 끊임없이 도발한 것에 대해 "그가 최고라는 걸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외에도 하킴 올라주원의 경우 오닐 본인이 올랜도 시절 파이널에서 4:0으로 털린 경험이 있어서 까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자신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4:1로 무너뜨린 마이클 조던에게도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오닐은 하킴이나 조던처럼 본인을 직접 꺾은 선수라던지, 야오밍처럼 본인이 맞수로 인정하는 선수에게는 존중있는 태도를 보이는 편이다.[36]
- 내시 관련해서 뒷 얘기가 있는데, 이 항목에도 언급된 "Shaq vs"의 아이디어는 원래 내시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닐이 2008년 2월에 이를 듣고 내시와의 상의 없이 자기의 리얼리티 쇼로 만들었다고 한다.[37] 그러나 오닐 본인은 2008년 8월에 올림픽을 보던 도중에 아이디어가 생각났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내시는 오닐이 동료들에게 "Shaq vs"의 아이디어를 알려주자 "네가 나한테서 훔쳐간 아이디어 얘기하는 거야?"라고 받아쳤다고. 결국 내시는 법적 대응을 하려고 했으나,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에게 쇼의 executive producer 직함과 보상이 주어졌다고 한다. 다만 내시 본인은 이런 보도 내용을 부인했지만, 오닐이 방송에 나와 항상 내시에 대해 안 좋은 얘기만을 하는 걸 보면 둘의 사이가 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 TNT 방송 도중 방정을 떨다 나뒹굴어 합성짤이 많이 돌았다. 케니 스미스가 언제나하는 코너의 장난이었는데 이 날 갑자기 뭐에 발이 걸렸는지... 사실 오닐은 대체적으로 몸개그에 특화되어 있다. 찰스 바클리와 3점 슛 내기를 하고 이기자 브레이크 댄스를 춘다든가 바클리와 케니 스미스의 장난에 나무를 맞고 쓰러진다든다. 실제 입담보다는 몸개그가 더 반응이 좋다. 지금은 입담도 많이 나아졌다.
- 현재는 NBA 주관 방송사 TNT의 포스트게임쇼인 Inside the NBA에 패널로 고정출연하며 어이없거나 웃긴 플레이를 한 선수들을 보여주는 Shaqtin' A Fool 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2015년 7월 20일,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역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시카고 불스 선수 각각 5명[38]을 선정한 다음 "우리 팀이 시카고 불스 팀을 50차로 이길 듯. 님들 생각은 어떠함?"이라며 어그로를 끌었다. 참고로 팬들은 압둘자바-오닐이라는 더블포스트의 위력 덕분에 레이커스 팀이 유리하다는 것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 피펜은 이에 "님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시절에 우승한 횟수보다 우리 시카고 불스가 우승한 횟수가 2배 더 많은건 팩트인듯?" 이라는 식으로 발끈했는데, 오닐은 "내가 님이 파이널 경기 뛰는 걸 대부분 봤는데 잘하긴 함. 근데 사실 조던이 대부분 다 하지 않았나? 심지어
스티브 커나
론 하퍼가 님보다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봄. 난 1인자였고 님은 2인자ㅋ"라며 다시 답장을 날렸다.
조던의 경우 얼마 뒤 본인의 농구캠프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냥 큰 의미 없이 한 말 같습니다. 토론거리입니다. 결코 그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요. 제 생각엔 우리가 그들을 박살 냈을 것 같습니다. 오닐은 그들이 우리를 박살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여러분이 결정하세요. 그냥 토론거리일 뿐입니다.[39]"라고 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천하의 조던이 직접 한 말이라 그런지 오닐은 이후 별다른 코멘트를 달지 않았지만 뜬금없이 얼마 후에 홍콩에서 "역대 최고의 선수는 (마이클 조던이 아니라) 줄리어스 어빙"이라고 인터뷰를 했다.. 사실 저 인터뷰도 기자가 르브론 제임스와 마이클 조던을 비교하는 질문을 던진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고(당연히 조던 손을 들어줬다), 전체적인 맥락상 조던을 저격한 것이라기 보다는 어빙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발언에 더 가깝다.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시절 앙숙이었던 새크라멘토 킹스의 소액 주주가 되며 경영진에 합류하기도 했다.[40]
- 의외로 몸이 유연해서 (선수 시절에도 큰 덩치에 비하면 유연했다) 춤을 잘 춘다. 실제 올스타전에서 르브론 제임스, 드와이트 하워드와 댄스 배틀까지 한 적이 있다. 댄스 자체는 셋 다 비슷했는데 가장 재미있게 춘 건 역시 오닐이었다.
- 그의 모습을 본뜬 레고 미니피겨가 레고 스포츠 시리즈 3561 제품으로 출시된 적이 있었다.
- 2012년 배리 대학교에서 교육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로스쿨에 재학중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운동선수로서 최정점을 누리고 은퇴 후 학업에서도 큰 성취를 이뤄낸 점은 정말 존경할 만하다.
- 발이 엄청나게 크다. 선수시절에는 385mm를 신었고 현재는 410mm를 신고 있다고 한다. 원래 일반인보다 키가 큰 농구선수들은 발도 크기 마련이지만 오닐의 발은 비슷한 키의 다른 선수들보다도 더 크다.[41]
- 2016 덩크 콘테스트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였다. 여기서 그는 또다시 예능감을 주체하지 못하는데... 예선 2차시도에서 애런 고든과 잭 라빈이 고난이도 덩크를 성공시켰으나, 두 명 모두에게 9점을 선사하여 콘테스트를 지켜보던 모두를 어이상실로 이끌었다...[42][43]
- 2018년 영화 엉클 드류(Uncle Drew)에 주연 중 하나로 출연하였다. 오래 전 엉클 드류에게 여자친구를 NTR당했던 주인공으로 등장했는데, 선수 시절을 연상시키는 깨알같은 개그들이 몇 있다. 1) 오닐에게 얻어맞은 엉클 드류가 "자네가 처음 넣은 자유투(free throw)구먼" 하는 장면. 2) 동네 여고생 팀과 게임하면서 동료들과 리듬이 잘 안 맞자 "패스 좀 하라고, 코비"라고 일갈하는 장면.
- 하킴 올라주원처럼 자신의 시그니처 신발을 어린아이들이 부담없이 신을 수 있도록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게 했다. # 그의 상업성과 스타성, 실력을 고려해봤을 때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라바 볼이 론조 볼의 시그니처 신발을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런칭했을 때 이에 대해 비판했던 적이 있다.
- 2016년엔 베어 그릴스와 함께 Running wild with bear grylls에 나와 야생을 체험했다. 가면서 나무를 모조리 부수고 가는 게 압권.
- 야니스 아데토쿤보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는 듯 하다. 자신의 별명인 '슈퍼맨'을 아데토쿤보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한 적도 있고, 같은 나이 대 본인보다 더 뛰어나고 했을 정도.
- 1986년부터 DJ로써 활동했으며 현재도 'DJ DIESEL' 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다. 덥스텝을 주로 틀며 Tomorrowland 2019 메인스테이지에도 등장하였다.
- 명센터이자 오닐이 고등학교를 나온 샌안토니오 지역의 영웅 데이비드 로빈슨과의 악연이 있다. 이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오닐의 두 번째 올스타전인 1994 올스타전 당시 서부 빅맨들로부터 집중수비를 당해 처참한 활약을 했는데, 이때 그는 후반기에 샌안토니오와 붙은 경기에서 (복수하겠다는 호언장담과 달리) 로빈슨에게 판정패한 오닐과 샌안토니오 선수들 사이에서 약간 신경전이 있었다. 바른 생활 사나이였던 로빈슨은 오닐을 그리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고, 당시 인기가 대단했던 어린 오닐에 대해서만 묻는 기자들에게 약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오닐은 인터뷰 도중 로빈슨에게 인유어페이스를 먹이는 사진이 담긴 자기 농구카드를 내보이거나, 로빈슨을 깔아뭉개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오닐은 그 이유에 대해 "로빈슨이 샌안토니오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때 내가 어렸을 때 사인을 해달라는 요구에 무례하게 대했다"고 여러차례 밝히고 자서전에도 썼는데, 두 선수가 모두 은퇴한 이후 오닐이 밝힌 바에 의하면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로빈슨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던 그가 만들어내 퍼뜨린 거짓이었던 것이다.[44][45] 사실 둘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드림팀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이 주장에 대해 로빈슨이 물었을 때 오닐이 "미안... 거짓말이야"라고 인정했는데 몇년 뒤 펴낸 자서전에 쓴 것이다. 로빈슨은 대인배스럽게 몇년간 계속되는 오닐의 거짓말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고, 오닐이 거짓임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한 이후 이에 대해 묻자 "그 친구는 원래 엔터테이너 아니냐"며 웃어넘겼다. 여기에 더불어 후에 오닐은 로빈슨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실제 고등학교때 로빈슨을 만난적이 있으며 그가 플레이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며 자신이 굉장히 농구를 잘한다고 자부했는데 데이비드 로빈슨을 보고 "저 선수 진짜 잘한다" 라고 느꼈으며 절치부심하게 해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0fMceXhH4 항상 오닐은 자존심이 굉장히 쎈 선수라 예능에서 많이 과장하는 편이기도 하며 방어의식이 강한 사람이라 저리 나온 것뿐 실제 로빈슨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46] 2023년 자 모란트의 두번째 총기류와 관련된 논란이 일어날때 NBA 슈퍼스타들은 누군가의 롤 모델이라면서 로빈슨이 자신의 롤 모델중 하나였다는걸 다시 한번 언급한다.
- 영화계에 케빈 베이컨 지수가 있듯이 NBA에는 샤킬 오닐 지수라는 것이 있다. 이게 무엇인가 하면 파이널에 올라간 팀원들 중 누군가 한 사람은[47] 오닐의 커리어 중 어느 시점에서 그와 함께 한솥밥을 먹은 팀원이었다는 것. 이 기록의 시작은 오닐이 데뷔하기도 전인 그렉 카이트부터 시작해서[48] 2020 파이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49]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팀원들이 꼭 유명했다는건 아니고 오닐이 데뷔하던 시점에 벤치에서 은퇴하기 직전이거나 오닐이 은퇴하는 시점에 같은 팀 메이트였던 동료들을 포함한다. 이것이 가능한게 나름 오닐이 꽤나 오랫동안 NBA에서 뛰었다는 점과 동시에 말년에 오닐이 저니맨으로 이팀 저팀을 왔다갔다 한 경력이 있어서 그렇다. 그리고 밀워키 벅스와 피닉스 선즈가 2021 파이널에 진출함으로 드디어 이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50] 아무래도 오닐이 은퇴한지도 꽤 지났고 그와 같이 뛴 동료들도 대부분은 은퇴했기에 더 기록이 이어지기 힘들것 같아보였는데 뜬금없이 2022-23에 덴버와 마이애미가 파이널이 진출함으로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51]
- 과거 야오밍에게 인종차별적 농담을 했다가 사과한 적이 있다. 한 방송사와 인터뷰 중 야오밍에 관한 인터뷰를 받자 "야오밍에게 ' 칭총양와아소'라고 전해달라"는 말을 했다. 이후 오닐이 인종차별자라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자 오닐은 "내 발언으로 분노를 느낀 분들에게 사과한다. 그러나 내가 동양계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 나는 늘 농담을 즐기고, 때론 나쁜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로인해 감정을 상한 분들에게 정중히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에 대해 야오밍은 "오닐이 농담한 것으로 믿는다. 중국어는 어려워서 나도 어릴 적에 배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만 많은 아시아인이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대응했다. 현재는 서로 사석에서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로 알려진다.[52]
- 마이클 조던의 시대부터 활약하였고 이후 코비 브라이언트와도 한 시대에 활약한 동시에 같은 팀 동료이기도 하였으며, 팀 던컨과는 서부 컨퍼런스에서 플레이오프 진출과 파이널 진출을 위해 경쟁하였고, 르브론 제임스가 등장한 이후에도 활동했으니 NBA를 대표하는 아이콘들과 나란히 한 시대에 뛴 몇 안되는 선수이다. 그 외에도 앨런 아이버슨과도 같이 정규시즌과 2001 파이널에서 상대팀으로 상대를 했고, 드웨인 웨이드와도 마이애미 시절 팀 동료였고, 스티브 내시와도 피닉스 시절 팀 동료로 같이 활동했고, 말년에 간 보스턴 셀틱스의 BIG 3로 잘 알려진 폴 피어스, 케빈 가넷, 레이 앨런과도 보스턴 시절 한솥밥을 먹었다. 심지어 케빈 듀란트가 데뷔한 이후에도 4년 정도 더 뛰었고, 스테판 커리가 데뷔한 이후에도 2년 정도 더뛰었다.[53]
-
Top War: Battle Game과 콜라보를 하면서 탑워의 영웅으로 등장한다.
- 유명 보디빌더 크리스 범스테드와 친분이 있다.
- 마이애미에서 피닉스로 이적했을 때, 텅 빈 아파트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서 월마트에 쇼핑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TV 4~5대, 랩탑, 프린터, 겉옷과 속옷을 포함한 온갖 생활용품을 다 질렀더니 7만 달러가 나왔다고. 그런데 신용카드가 결제가 안 돼서 아니 나 돈 있는데 하고 어버버거리고 있으려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고객센터에서 "고객님의 카드가 도난당한 것 같습니다!"라면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고. 본인이라고 해명하니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아니, 왜 월마트에서 7만 달러나 쓰시는 거예요!"라는 고함이 돌아왔다고 한다 결국에는 카드 회사가 제한을 풀어줘서 쇼핑을 마치고 귀가했다고.
- 'NBA 역사상 위대한 선수 50인'의 멤버이기도 한데 여기에 오닐이 들어가도 되느냐는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 이유가 이 리스트가 만들어진 때는 NBA 50주년인 1996년, 즉 오닐이 고작 4년 차밖에 되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 당시에도 오닐은 올스타 4회, All-NBA팀 3회(세컨드 1회, 써드 2회), 득점왕 1회를 기록하는 등 NBA를 주름잡았던 스타이긴 했지만 이 리스트에 들어가기엔 경력이 너무나도 짧았던데다 MVP나 우승같은 결정적인 경력 등이 없었다. 반면 밥 맥아두는 MVP 경력이 있는 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제외되는 등 이해하기 힘든 결정들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워낙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이후에 오닐이 쌓아올린 업적은 50인은 물론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도 될 정도로 인정받고 있어 이 논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10. 한국 예능 출연
2015년 8월 12일에 예능프로그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 예정 기사가 떴다. 그리고 서인천고등학교 편에서 진짜 출연했다. 기사 교복까지 특수제작해서 출연했는데, 몸집과 존재감이 정말 거대하다.[55] 농구게임에서 농구 골대를 부술 뻔한 피지컬을 보여줬다.
샤킬 오닐 본인이 미디어에 노출되어 스타로 주목받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구가 유럽 및 아메리카, 필리핀이나 중국 등 전 세계적인 스포츠고 농구계에서 전 세계적인 인지도로 따졌을 때 이런 전설적인 농구 선수가 종편 예능에 나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학교 PD가 샤킬 오닐을 섭외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기사 원본 그리고 2년 뒤 스테판 커리가 무한도전 3점 커리에 나왔다.
오닐은 레이커스 이적 후인 1997년에도 리복주간으로 잠실 롯데월드에 내한했던 적이 있고 당시 3천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다만 이때는 대단히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었다.
11. 관련 문서
[1]
FIBA 세계선수권 MVP
[2]
실제로 마이애미에 있는 Barry University에서 인적자원 개발전문 분야 교육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3]
General Studies
[4]
부전공은 정치학 (Political Science)
[5]
현역시절 공식 신장. 맨발 키는 샤크 본인이 6' 11.75"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6]
드래프트 당시 133kg, 전성기 시절 154kg, 말년 약 160kg.
[7]
이혼하긴 했으나 여전히 사이가 좋고 자녀도 공동양육중이다.
[8]
2022년 NBA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되었으나 LA 레이커스와 투웨이 계약을 맺었다.
[9]
2021년 기준 유니온 그로브 하이 스쿨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10]
6명의 자녀외에 사생아가 있다는 루머가 있어 TNT 패널로 함께 출연하는 찰스 바클리가 이를 농담소재로 써먹곤 한다. 어디까지나 웃자고 하는 소리로 샤크 본인은 6명외에 다른 자녀는 없다고 직접 밝혔다.
[11]
조 펄크스,
조지 마이칸,
카림 압둘자바,
마이클 조던, 그리고 샤킬 오닐이다.
[12]
사실 '빅 펠라'는 말 그대로 덩치 좋은 선수란 뜻으로, 오닐 뿐 아니라 웬만한 빅맨들은 해설자들로부터 이렇게 불려본 적이 있다.
야오밍도 초창기 오닐을 상대할 때 딸리는 웨이트와 파워를 만회하기 위해 속공 시 죽어라 달렸는데 이를 두고 휴스턴 해설자들이 "The big fella running the floor!"하고 감탄했다.
[13]
원래는 1984 드래프트 1순위
하킴 올라주원, 1985 드래프트 1순위
패트릭 유잉, 1987 드래프트 1순위
데이비드 로빈슨과 더불어 1986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된
브래드 도허티가 4대 센터였다. 그러나 도허티가 부상으로 8시즌만에 은퇴를 하고, 1992 드래프트 1순위 오닐이 리그에 충격과 공포를 몰고 등장하면서 새로운 4대 센터가 된 것이다. 올라주원, 유잉과는 나이 차이가 10년이나 난다. 그만큼 오닐의 데뷔가 엄청났다는 뜻이다. 다만 4대 센터란 용어는 한국에서만 쓰는 용어이다. 당연하지만 2000년대를 주름잡은
슈팅 가드들을 일컫는
6성 슈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MVP를 수상하거나 수상에 근접해본 적이 있는 오닐, 올라주원, 유잉, 로빈슨과는 달리 도허티는 훌륭한 선수긴 했지만 올-NBA 서드 팀에 딱 한 번(쉽게 말하면 해당 시즌의 센터들 중 세 번째로 좋은 활약을 했다는 뜻이다) 오른 게 다여서 다른 선수들과는 수준차이가 많이 난다. 그것도 오닐이 데뷔하기 직전인 91-92시즌이라 올라주원의 로키츠가 감독이 교체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42승으로 삐끗한 틈을 타 한 시즌 간신히 선정된 것이다.
[14]
사실 매직은 에이즈(정확히는 HIV) 감염으로 인해 한국에서 더 유명해진 감도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에이즈는 암보다 더 무서운 - 걸리면 그냥 죽는 병으로 인식되었고, 미국의 유명한 운동선수가 그 무서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크게 이슈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정말 극히 드문 병이었고 그 감염 과정에 대한 편견(특히나 유교 그 자체였던 한국분위기에선 더더욱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의학수준의 한계로 그 오해와 공포도 컸던 시절이었다.
[15]
결정적으로 당시 유행하던 3:3 길거리 농구 문화를 스폰하던 브랜드가 바로 리복이었다. 리복은 후에 크로스핏이 부흥할 때 크로스핏 스폰 브랜드로도 이름을 떨쳤다. 90년대 농구판에서 샤크를 등에 업고 전통의 강호 아디다스와 나이키를 꺾은 신흥강자 리복의 이미지였지만 실제 브랜드의 역사는 130년(1895년 설립으로 무려 19세기부터 시작된 브랜드다!)이 다 된 오래된 브랜드로 아디다스(1949)와 나이키(1964)한테는 현재는 2배, 30년 전으로 치면 3배의 역사를 가진 할아버지뻘 쯤 되는 브랜드다.
[16]
그의 고정 프로인 Inside the NBA나 Open Court에 보면 패트릭 유잉과 해리슨에 대한 존경심이 종종 튀어나오며, 특히 해리슨을 지칭할 때는 꼭 내 아버지, 위대한을 붙여서 지칭한다. 여담이지만 야오밍의 다큐멘터리인 A Year of Yao를 보면 해리슨이 야오와 오닐이 붙는 첫 경기를 보러 자동차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해왔다면서 "진짜 센터 둘(Two REAL centers)이 붙는 걸 보러 왔다"고 한다. 두 선수는 경기 후 상대방의 아버지 (야오는 어머니도)와 포옹을 나눈다.
[17]
나중에 이 별명은 미디어 등을 거치면서 'Mr. Fundamental'로 살짝 바뀌었다.
[18]
오닐이 수비수를 스핀무브로 제칠 때 브라이언 쇼가 띄어준 랍 패스를 앨리웁으로 연결하는 콤비 플레이를
Shaw-Shaq Redemption이라고 불렀는데 이런 일화들을 보면 오닐의 어휘구사력 감각이 상당히 탁월했음을 엿볼 수 있다.
[19]
당시 마이클 조던, 래리 버드, 매직 존슨 등의 선수들이 여러 광고들에 출연하며 하늘을 치솟는 인기를 찍고있었던 반면, 윌트 체임벌린 같이 체급이나 키가 상위권을 찍는 거인들은, 공격적인 이미지에 의해 그만큼의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체임벌린도 "누구도 골리앗을 응원하지 않는다" 라는 발언을 한것처럼, 당시 대다수의 거인 스타들은 신체적 특징 외에는 개성이 부족하여 호감도를 올리기가 어려웠다.
[20]
피쳐링부터
아이스 큐브에
B-리얼에 피터 건즈에 KRS-One이다.
[21]
사실 영화에 나온 농구선수들 중에서 평이 좋은 경우는 정말 드물다. 농구를 다룬 영화를 제외하고, 배역을 꽤 충실히 수행했다는 평을 받은 것은
레이 앨런,
사망유희의
카림 압둘자바나
나쁜 녀석들의
존 샐리 정도이고,
장 클로드 반담과 함께
더블팀의 주연을 맡은
데니스 로드맨이나
스페이스 잼의
마이클 조던 그리고 본문의 샤킬 오닐 등은 재앙이 따로 없었다.
[22]
여기서 자유투가 몇 번 나오는데 대부분 실패하지만, 마지막에 수류탄을 자유투로 성공시킨다.
[23]
포스터에도 나오지만, 초반에 잠깐 나오는 역할이다. 돌로 자유투를 던지는데, 상당히 낮은 성공률을 보여준다.
[24]
쏘우 1을 패러디하여 본인과 의사라는 사람이 둘이 함께 납치당해서 깨어나서는 발이 쇠사슬로 묶인 것을 보고 상당히 당황하다가 살인마의 목소리를 듣고는 "코비?" 라고 대뜸 물어보는 게 둘 사이를 아는 사람이 보면 상당히 웃긴 장면.
[25]
이 때문인지 훗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촬영 때
추성훈을 알아보았다. 추성훈이 자신을 UFC 선수라 소개하자 깜짝 놀라며 다시 한 번 이름을 물었고, 추성훈이 자신의 일본 이름과 별명 '섹시야마'를 말해주자 그제서야 알아보며 포옹한다.
[26]
빅쇼와 샤크가 경기 전 나란히 서서 기싸움(stare down)을 하는데 샤크가 장신으로 유명한 빅쇼를 내려다보고 빅쇼가 육중한 체격으로 유명한 샤크를 늘씬하게 보이는 장관이 펼쳐졌다. 빅쇼가 샤크에게 '말라깽이(slim)"이라고 도발하자 샤크는 "뚱땡이(fat boy)"라고 응수하는 것도 포인트. 여담으로 당시 빅쇼의 프로필 신장은 7피트2인치로 샤크보다 1인치 컸는데, 영상으로 보면 샤크가 약간이지만 명백히 더 크고 해설자도 폭소하며 "샤크는 엄청나게 크네요!(Shaq is huge!)"라고 멘트를 한다. 빅쇼는 훗날 자신의 키가 7피트 정도라고 했는데, 샤크의 7피트1인치 키가 착화신장이란 걸 감안하면 빅쇼 역시 착화신장으로 보인다.
[27]
한국에 오면 가장 만나보고 싶은 인물로 최홍만을 꼽았고 그와 격투기 경기를 해보고 싶어했다. 최홍만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자신에게 영상편지로 도발한 오닐에게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역시 영상편지로 컴온, 농구만 했던 놈, 단숨에 때려눕혀 버린다며 답장했으나 자금 문제로 협의가 잘 되지 않아 실제로 경기가 성사되지는 않았다.
[28]
비디오가 끝날 무렵 올랜도 웜업재킷을 입고 경기전 몸풀기 레이업을 하는 장면을 한 컷 보여준게 전부이다.
[29]
보통은 Ascended 이상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30]
일부 에피소드는 "샤킬 오닐의 무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엠스플에서도 방송했었다.
[31]
포스트업 빅맨 칭송, 요새 농구는 픽앤롤 농구야, 드와잇 하워드는 나처럼 28-15을 해야 돼 등...
[32]
사실 모든 패널이 전문적인 분석을 할 필요는 없으며, 전직 NBA선수들을 이런 쇼에 섭외하는 이유도 이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게 주된 것이기 때문에 현대 농구에 대한 지식 부재가 일반적으로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같은 패널인 바클리만 해도 현대 농구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까지 큰 편은 아니다. 오닐의 문제는 현역 시절부터 지속된 자신감의 연장선으로, 자신과 스타일이 다른 현역 빅맨들에 대한 폄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오닐은 현대 빅맨에 대해 존중하다가도 별 이유 없이 폄훼하는 경우가 많은데, 3번째 MVP를 수상한
니콜라 요키치의 면전에서 "네가 리그 최고의 선수지만
셰이 길저스알렉산더가 수상했어야 했다"고 하며 갑분싸를 만든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이에 대해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할 정도로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겠다"고 해 또 반감을 샀다. 이처럼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할 뿐 아니라 대한 비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역시 패널로서 그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게 되는 요소인데, 아래 언급된 맥기 케이스처럼 자신을 비판하면 인신공격에 가깝게 대응하는 경우도 잦다.
[33]
같이 1996년 드림팀에서 뛴
레지 밀러를 대동하는 건 덤. 정작 둘 다 뛴 바클리는 1992년 드림팀 쪽에 손을 들어줬는데, 그런 바클리가 어지간히 못마땅한 반응을 보였다.
[34]
절반은 농담조이긴 하지만 매번 나오니까 패널들도 '아 좀 그만'을 외친다. 내시 그리고 오닐과 한솥밥을 먹었던
그랜트 힐이 오죽하면 '이러니까 우리가 피닉스에서 우승을 못했지. 너가 그렇게 자기팀 포인트 가드를 싫어하니까.'라고 한탄하는 게 포인트.(셋이 한팀에 뛰었다)
[35]
매직 입단시 이걸 포기한 이유가 당시 33번을 달고 있건 선수가 돈을 요구해서라고 한다.
[36]
기본적으로 오닐은 자존심이 센데다 누군가 자신을 건드리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 상대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한다. 후배 선수들 중 야오밍은 굉장히 겸손하고 항상 샤크를 리스펙했기에 상호존중하는 관계였으나, 자신이 장난삼아 한 비판에 반감을 보인 맥기나
드와이트 하워드에게는 폄훼와 비난을 퍼부었다. 자신의 프로의식을 비난한 코비 브라이언트의 경우 대외적인 인터뷰를 통해 서로를 커리어 내내 공개저격하다 은퇴 후 화해했다. 데이빗 로빈슨과의 악연은 아래에 언급된 것처럼 오닐의 루키 시즌 로빈슨이 한 악의없는 인터뷰가 원인이 되어 거짓말까지 지어내며 수년간 폄훼했다. 다만 유잉의 경우 오닐에 대해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유독 의식해 여러번 저격한 경우. 또한 선배 빅맨들 중
빌 월튼의 경우에도 별 악연이 없는데도 폄훼를 한 경우이다.
[37]
https://www.webcitation.org/5uImWLTL2
[38]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팀에는
매직 존슨,
코비 브라이언트,
엘진 베일러,
카림 압둘자바 그리고 본인을 꼽았고, 시카고 불스 팀에는
데릭 로즈,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
호레이스 그랜트를 꼽았다. 여담으로 1970~1980년대 NBA에 해박한 팬들 중에서 "시카고에 아티스 길모어라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있는데 왜 그랜트를 넣었냐"고 지적한 이들도 있었다.
[39]
I just felt like he was just talking. It’s a debate. The thing is that we would never know. I think we would have killed them. He thinks they would have killed us. You guys decide. It’s just a debate.
[40]
오닐은 새크라멘토 킹스를 새크라멘토 퀸즈라며 대차게 디스했던 적이 있다. Open Court에서
크리스 웨버가 나와있는데 대놓고 깠다. 물론 이때의 말투는 농담조였다.
[41]
오닐이 사이즈 23을 신는다. 그보다 큰
야오밍, 그보다 약간 작은
디안드레 조던이 사이즈 18을 신는다. 손도 발도 엄청나게 커서, 그 손 크기로 유명한
카와이 레너드보다 약간 더 크다. 물론 이건 201cm밖에 안되면서 오닐같은 덩치랑 거의 비슷한 카와이가 더 놀라운 거지만...
하승진이 오닐은 430mm를 신는다 라고 언급한 걸로 봐선 40cm가 넘는건 확실한듯.
[42]
미식축구 선수인
오델 베컴 주니어는 트위터로 "저건 10점이라고!"를 외쳤고, 농구광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도 어이가 없어 손사래를 치는 장면이 잡혔다. 함께 심사를 했던
매직 존슨,
조지 거빈,
디켐베 무톰보,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는 오닐의 점수를 보자마자 바로 폭소를 터트렸다.
[43]
그래도 뒷말은 별로 없던 것이, 오닐이 9점을 준 이유가 두 명 모두 덩크를 한 번에 성공시키지 못했기 때문. 덩크 콘테스트에선 어떤 덩크를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는 기대감이 더 크기 때문에, 한 번에 성공시키는 것이 반응이 좋다. 편파를 한 것도 아니고 두 명에게 똑같은 기준으로 심사했다. 엄격한 기준에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른 고든과 라빈은 이후 파이널에서 단 한 차례도 실수하지 않았고, 오닐은 10점으로 화답했다. 그 덕에 2016 덩크 콘테스트는 현재까지도 역대 최고의 덩크 콘테스트로 기억되고 있다.
[44]
애초에 무리가 있던 주장인 것이, 로빈슨은 1987 드래프티이지만 군 복무 탓에 1989년이 되어서야 샌안토니오에 합류했고 그가 루키 시즌을 보내던 1989, 1990년에 오닐은 루이지애나 주립대에서 1학년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대학생이 된 오닐이 로빈슨과 만났을 순 있겠지만 당시 그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톱급 아마추어라 '사인 요청하는 어린 팬'이 절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오닐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고등학생 때, 그 전에는 13살 때 이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는데 전자라면 로빈슨은 군 복무 중이거나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었고 후자라면(1985년 아니면 1986년 초) 당연히 대학 시절이다.
[45]
사실 당시에도 로빈슨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의 주장이긴 했다. 로빈슨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바른 생활 사나이로, 선수생활 내내 스캔들 하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인품을 지닌 선수였다. 당연히 팬서비스에도 인색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린 팬의 사인 요구에 무례하게 대응했다는 게 너무 로빈슨답지 않았기 때문.
[46]
오닐의 또 다른 롤모델인 유잉에 대해서도 선수생활 내내 디스를 했는데, 사실 좋은 모습은 아니며 해당 선수들의 팬들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그나마 유잉에 대해선 이빨만 털었지, 로빈슨에게는 몇년 동안이나 '어린 팬을 무시했다'는 오명을 씌운 것이다. 로빈슨이 대인배라 웃으며 넘어간 것이지...
[47]
본인 자신도 포함
[48]
1984 파이널 보스턴 셀틱스
[49]
르브론 제임스, 대니 그린, 라존 론도, 유도니스 하슬렘
[50]
양팀에서 파이널에 진출해본 선수는 두 팀 통틀어
제이 크라우더가 유일하다.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크리스 폴을 포함해서 양팀 선수들은 크라우더를 제외하고는 파이널 경험이 전무하다.
[51]
제프 그린은 오닐의 마지막 해에 같이 보스턴에서 뛰었고,
유도니스 하슬렘은 마이애미에서 함께 뛰었다.
[52]
사실 오닐의 성격 자체가 주목받길 좋아하는데다가 굉장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크기 때문에 개그를 위해 이런저런 무리수를 던지곤 하는데, 만약에 자신이 존중하지 않는 상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면 본인이 기분 나빠하는 성향이 있다.
저베일 맥기에 대해서도
샥틴 어 풀에 여러차례 출연시키며 놀려댄 것에 대해 맥기가 하지 말라고 부탁했음에도 계속 놀려먹었는데, 이에 대해 맥기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자 오닐이 사과는 커녕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적이 있다. 야오밍은 워낙 겸손한 성격이라 오닐의 놀리는 것에 대해 관대하게 받아들였고, 오닐에 대한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데다가 야오밍 자체가 오닐이 인정하는 실력자이기 때문에 무난하게 친한 관계가 된 것. 사실 이건 그냥 야오밍이 대인배인 것이다. 실제로 야오밍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 나쁜 얘기 자체가 없다시피 하다.
[53]
듀란트는 2007년 드래프트, 커리는 2009년 드래프트고 오닐은 2010-11년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54]
https://www.tiktok.com/@ddanguri_no1/video/7256384437959576833
[55]
61회는 아예 샤킬 오닐 특집이 되었다. 뉴저지에서 학교를 다닌
한승연, 체육계 대선배를 맞이한
신수지가 팬심을 숨기지 못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