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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에릭 로메르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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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국제 영화제 명예 황금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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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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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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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에릭 로메르
( 녹색 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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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회
( 1998년)
제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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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클리닝)
에릭 로메르
( 가을 이야기)
수상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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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7DADE><colcolor=#964B00> 에릭 로메르
Éric Rohmer
파일:에릭_로메르.jpg
본명 장-마리 모리스 셰레
Jean-Marie Maurice Schérer
출생 1920년 3월 21일
프랑스 튈
사망 2010년 1월 11일 (향년 89세)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직업 영화감독, 교사, 비평가
배우자 테레즈 바벳 (1957년 결혼)
가족 남동생 르네 셰레[2] (1922~2023)
종교 가톨릭

1. 개요2. 소개3. 생애4. 언사5. 기타6. 연출작 일람7. 외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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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누벨바그 감독 중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은 자크 리베트였고, 가장 영화를 사랑한 사람은 프랑수아 트뤼포였다. 하지만 가장 교양이 있는 사람은 에릭 로메르였다. "[출처]
장 뤽 고다르

프랑스 영화감독, 영화 평론가, 작가, 교사

누벨바그 핵심인물 중 한 사람이며, 평생동안 소시민 일상 연애에 관한 영화들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 특징 때문에 '연애박사 로메르'와 같은 별명이 붙곤 하지만, 연애 이외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도 숱한 명작을 남긴 거장이다.

2. 소개

누벨바그 거장 중 한 사람이자, 누벨바그와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길을 나아간 감독.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은 직·간접적으로나마 실험정신이 있었고, 그에 따라 작품간의 편차가 심했던 반면, 로메르는 실험정신을 거부하고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데뷔작부터 유작까지 모두 일관된 주제와 톤을 자랑한다.[4]

일생동안 일상과 연애에 대해, 특히 삼각관계로 전개되는 사랑 싸움을 자주 묘사하였고, 그 안에서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사유하였다. 또한 문학 희곡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 액션과 비주얼에 집중한 다른 감독들보다 인물 간의 대사 대화를 더 중시했으며, 한 가지 테마로 여러 영화를 만드는 '연작' 기획을 자주 시도했다.

'영화는 언제나 관객을 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지니고 활동했기에, 작품이 난해하지 않다는 것 또한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대신 경우에 따라 잠이 솔솔 오기도 한다
"모두가 하는 말이지만,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난해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그의 누벨바그 세대의 다른 감독들, 말하자면 장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와 다른 것이다."[출처]
정성일

3. 생애

1920년 3월 21일, 프랑스 중남부 튈(Tulle)에서 태어났다.[6] 본명은 '장-마리 모리스 셰레(Jean-Marie Maurice Schérer)'. 어린 시절 그는 문학·철학·예술에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었다고 하는데, 가족 내력인지 그의 남동생 '르네 셰레(René Schérer)'는 향후 유명 철학자가 되어 파리 제8대학교 명예교수까지 역임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듬해 몇 달 간 후방에서 병역을 수행했으며, 병역을 마치곤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으나 실패했다. 대신 그는 교직 과정을 이수해 1940년대 문학 교사로 활동했으며,[7] 가명으로 소설을 출간하거나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1950년대부터 영화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누벨바그 맴버인 장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를 만나게 되었다. 이때 창작의 꿈을 지니고서 여러 단편 습작을 연출했으며, 1957년부터 1963년까지 《 카예 뒤 시네마》의 편집장을 맡기도 하였다. 결혼도 이때 했다.[8]

1962년, 첫 장편영화 〈사자자리〉의 개봉을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이때 나이가 42세로, 누벨바그 감독 중 가장 늦게 데뷔한 나이였다. 어차피 데뷔년도 안 따져도 누벨바그 감독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이후 감독 생활을 이어가며 영화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쳤는데, 우수한 학생을 제작진으로 고용하며 영화 실습과 제작을 겸했다. 이 때문에 로메르 경력 중반부터는 그가 가르친 학생들이 주로 제작진을 맡았다.

2010년,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사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묘비엔 본명(…Schérer)과 예명(…Rohmer) 둘 다 새겨졌다.

4. 언사

" 일반 대중은 TV, 버라이어티, 모험을 재미있어합니다. 그게 맞죠. 그들이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려고 하는 것은 바보짓이에요. 내 영화들은 어느 정도 영화적·문학적 배경이 있는 이들에게 어필합니다. "
……
" 내 영화의 유일한 음악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내는 음악입니다. "
1971년, 《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 中[9]
" 돈을 적게 들여서 영화를 만들 줄 아는 것이 좋아요. 한 영화에 들어간 돈이 그 영화의 품질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많은 돈을 쏟은 영화들이 보잘것없어 보이고 그 역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낭비는 피해야만 해요. "
1982년, 《와이드 앵글》과의 인터뷰 中[10]
" 나는 날씨 변화에 맞추면서 촬영해요. 내 영화들은 날씨의 노예입니다. 나는 날씨를 속이지 않는 데다 거기에서 영감마저 받으며, 나 스스로 날씨의 남자가 되어야만 하죠. 내가 끌리는 것은 완벽한 예술품이자 자연의 경이로서의 우주입니다. "
1986년, 《포지티브》와의 인터뷰 中[11]

5. 기타

6. 연출작 일람

공식적인 작품수는 23편이며, 단편 및 미완성작까지 더하면 40편이 넘는다.
연도 제목 분류 수상
1962 사자자리 사실상 데뷔작[16]
1962 몽소 빵집의 소녀 〈여섯 개의 도덕〉 1편 (단편)
1963 수잔의 경력 〈여섯 개의 도덕〉 2편 (단편)
1967 수집가[17] 〈여섯 개의 도덕〉 4편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1969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여섯 개의 도덕〉 3편[18] 전미비평가협회 각본상 수상,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
1970 클레르의 무릎 〈여섯 개의 도덕〉 5편 전미비평가협회 작품상 수상
1972 오후의 연정 〈여섯 개의 도덕〉 6편
1976 O 후작 부인 시대극 ( 나폴레옹 전쟁)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1978 갈루아인 페르스발 시대극 ( 아서 왕 전설)
1981 비행사의 아내 〈희극과 격언〉 1편
1982 아름다운 결혼 〈희극과 격언〉 2편
1983 해변의 폴린 〈희극과 격언〉 3편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
1984 만월의 밤 〈희극과 격언〉 4편
1986 녹색 광선 〈희극과 격언〉 5편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1987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에피소드식 구성
1987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희극과 격언〉 6편
1990 봄 이야기 〈사계절 이야기〉 1편
1992 겨울 이야기 〈사계절 이야기〉 2편 베를린 영화제 국제 비평가 연맹상 수상
1993 나무, 시장, 미디어테크 이색작
1995 파리의 랑데부 단편 모음집
1996 여름 이야기 〈사계절 이야기〉 3편
1998 가을 이야기 〈사계절 이야기〉 4편 베니스 영화제 각본상 수상[19]
2001 영국 여인과 공작 시대극 ( 프랑스 혁명)
2004 삼중 스파이 시대극 ( 전간기)
2007 로맨스 유작 / 시대극 ( 5세기)

7. 외부 자료



[1] 해당 상은 1967년부터 1988년까지 심사위원특별그랑프리 (Grand Prix Spécial du Jury)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현재의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 [2] 프랑스의 철학가다. [출처] # [4] 비슷한 생각을 지닌 트뤼포도 편차가 심한 실험영화보단 매끈한 극영화를 자주 찍었다. [출처] [6] 일부 자료는 ' 4월 4일, 낭시(Nancy) 출생' 이라 밝히고 있다. [7] 고전 독일어를 가르쳤는데, 이후 독일어 영화 〈 O 후작 부인〉을 만들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8] 테레즈 바벳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9] 《에리크 로메르》 이수원 역, 2017, 마음산책, p44·51 [10] 《에리크 로메르》 이수원 역, 2017, 마음산책, p111-112 [11] 《에리크 로메르》 이수원 역, 2017, 마음산책, p157 [12] 이 영화에서 프랑스 혁명은 통제불능 난장판으로 묘사되고 반대로 주인공이 소속된 왕당파는 품위있게 다뤄진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 내에서는 공개 당시 비난을 받았다. [13] 비행사의 아내〉, 〈 녹색 광선〉, 〈 가을 이야기〉 주연 배우 [14] 다른 감독들도 종교적 테마엔 관심있었지만, 개인적 종교심이 깊진 않았다. [15] 한국 시네마테크 계열에서 인기가 좋은 감독으로는 에드워드 양, 아녜스 바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페드로 알모도바르, 아키 카우리스마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정도가 꼽힌다. [16] 이전작들은 모두 미완성작이거나 단편 뿐이다. [17] 로메르의 첫 컬러영화 [18] 순서로는 〈수집가〉보다 먼저지만, 여러 사정으로 개봉이 늦어졌다. [19] 영화제 기간 동안에 극찬을 받아서 생애 두 번째로 황금사자상을 받을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불발됐다. 이에 대해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감독 에토레 스콜라가 좌익 성향이라 우익 감독인 로메르를 배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