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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07:00:14

치킨 호크



1. 개요2. 유래3. 사회적 의미4. 관련 어록5. 정반대 사례

1. 개요

Chicken hawk

전쟁을 경험하지도 않았고, 군에 복무한 적도 없으면서 전쟁 혹은 그에 준하는 급진적인 군사활동을 적극 찬성하는 호전적인 정치인, 관료, 평론가 등을 뜻하는 정치적 속어다. 주로 미국에서 쓰인다.

직역하면 를 흉내내는 이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겁쟁이를 닭, 즉, '치킨(Chicken)'이라는 속어로 부른다.[1] 또한 정치인들 및 정책 결정자들 중 대외 정책 및 특정 사안에서 강경한 의견을 내비치는 이들을 매파(Hawk)라는 속어로 부른다.[2] 치킨 호크는 이 두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한국어로는 '겁쟁이 매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유의어로 암체어 제너럴(Armchair General)이라는 표현도 있다. 군사 경험도 없으면서 의자에 걸터앉아 군사를 논하는 방구석 클라우제비츠라는 뜻. 다만 이 용어는 치킨 호크를 가리킬 때에도 있지만, 후방 지휘소에서 대전략만을 짜거나 보급선을 유지하는 등의 직접적인 전선에 나가지 않는 장성진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다. 예컨대 체스터 니미츠 등. 이런 경우에는 치킨 호크와 같이 비하하는 의미는 담기지 않는다.

치킨 호크라는 표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기나 했냐며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3]는 뜻이자 풍자이다. 게다가 지들은 어차피 남들이 죽든 말든 자신의 안위는 유지할 것이라는 한심함에서 나오는 조롱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참전용사의 증언에 따르면 폭탄이 터졌더니 동료의 창자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분명 '용맹함' '전투' '전략' 같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즉 군대는 본질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예방과 방어를 하기 위한 조직이며, 다른 누군가를 공격해서 죽이고 정복하는 조직은 아니다. 치킨 호크들은 군대의 공격적인 부분에 몰입하는 경향을 가진다.

위력과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낭만'을 가지는 것은 군인이든, 경찰관이든, 격투가들이든 마찬가지다. 오히려 타고난 투쟁심으로 상대를 힘으로 제압해 쓰러뜨리는 것이 군대가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군대는 본질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지 상대를 죽이려고 창설된 조직이 아니며, 치킨 호크들은 이런 군대의 본질적 가치를 무시하고 남을 쓰러뜨려 기세등등하려는 점에 집중하려 한다.

2. 유래

본격적으로 이 용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전 시절이었다. 베트남전을 시작한 정부는 민주당 정부였지만 공화당은 강력한 반공주의를 내세워 안보 의제를 독점하고, 상대적으로 온건한 외교정책을 주장하는 민주당을 비애국자라고 공격하고 있었다.[4]

여기에 열 받은(?) 판사 출신 인디애나주 연방하원의원 앤드루 제이콥스 주니어(Andrew Jacobs Jr.)[5]는 공화당의 비애국자몰이에 대항하기 위해 의원들의 병역에 관한 자료를 모아서 발표했는데, 이때 공화당,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주전파의 대부분이 병역을 기피하거나 면제받은 사실이 밝혀졌다.[6] 반면 상대적으로 평화적인 대외정책 등을 주장한 온건파 민주당, 공화당 의원들은 대다수가 참전용사들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이는 대의명분이나 승패를 떠나 전쟁은 실제로 일어나선 안 되는 짓거리라는 것을 온건파들이 직접 체험으로 깨달았다는 의미였다. 불이 나기를 원하는 소방관은 없고, 범죄자가 시민을 살해하길 원하는 경찰도 없고, 환자가 앓아눕길 원하는 의사도 없는데, 그럼에도 치킨 호크들은 미친 것인지 인간 혐오 때문인지 지나치게 무지한 것인지 소시오패스인지는 몰라도 저들의 원치 않는 상황을 갑자기 무기한 총 동원할 수밖에 없는 군인의 전쟁을 원하는 것이다.

결국 공화당과 주전파 민주당원들은 "니들은 전쟁에 참여해보지 않았으니까 전쟁이 어떤 건지 모르지!" 하는 역풍을 맞고 유권자들의 반감을 샀다. 평범한 의원 중 한 명이었던 앤드루 제이콥스 주니어는 사이다 이것으로 꽤나 명성을 얻었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실제로 공화당에서 비애국자몰이를 자제하고 온건파로 행동했던 정치인들 중에는 참전한 경력이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3. 사회적 의미

이 사례는 단순히 입만 산 사람들에 대한 디스가 아니다. 여기에 내포된 진짜 의미는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이 반드시 겁쟁이 혹은 매국노이거나 안보관에 소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전쟁 불사를 주장하는 강경한 사람이 꼭 투철한 안보관을 가지고 성실한 병역 이행을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있다. 오히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야말로 전쟁의 참담함에 질려버리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잦아, 전역 후에 반전운동가로 변신하거나 정치 입문 후에 전쟁에 관한 신중한 입장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존 매케인인데, 매케인도 베트남전 참전 도중 포로 생활을 해본 경험 때문인지 다른 것들은 보수주의자들과 뜻을 함께 하지만 전쟁 관련 부분에선 개입을 주장하는 다른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개입을 반대하거나 말을 아낀다. 그와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전장에 1미터도 가까이 안 가본 사람답게 고작 포로로 잡힌 주제에 무슨 참전용사냐고 거침없이 폭언을 퍼부은 적이 있다. 이후 매케인은 트럼프에 대한 불편한 관계를 숨기지 않았으며 이후 투병 중에 자신의 장례식에 트럼프를 초대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던 와중 2018년 5월 켈리 새들러 백악관 커뮤니케이션 담당 특별보좌관이 백악관 내 비공식 회의에서 매케인에 대해 곧 죽을 사람이라고 발언하여 미국 정계를 뒤집어 놓았다. 공화당, 민주당 모두 비판하고 있다. 매케인의 병세가 위중하여 매케인 측에서도 매케인의 곧 사망할 것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타인이 이에 대해 곧 죽을 사람이라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굉장히 큰 논란이 된다. 게다가 켈리 새들러 보좌관이 저 발언을 한 것은 물고문 지휘 논란에 휘말린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내정자의 인준에 매케인이 반대한 것에 대해 반대자가 곧 죽을 테니 문제없다는 식의 발언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7]

군사학 자체에서도 '전쟁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행동이므로 최대한 피하며 가장 마지막에 선택해야 한다', '전쟁을 잘 하려면 먼저 전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야 한다'라며 전쟁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군사학을 제대로 배운 군인들은 함부로 전쟁을 찬양하거나 주전론을 펼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로 주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전선의 최후방(국가 핵심 지휘부의 지하 벙커)에 삼엄한 경비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부분.[8][9] 이 점에서는 '전쟁은 늙은이가 일으키고 피는 젊은이가 흘린다'는 격언과 상통한다.[10]

이에 더해서 한국에서는 실제 전쟁, 특히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나이가 많아지다 보니, 실제 참전용사들은 '그래도 우리가 겪었던 일이 또 일어나면 안 된다'라며 온건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 그 아래 세대인 6~70대 정도의 젊은(?) 노인들이 오히려 더 강경한 주전론을 펼치는 사례도 생긴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사례가 그것. 물론 이 사람들도 한국전쟁 이후 일상 속 하나하나에 세세하게 스며든 북진멸공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세대다. 살아온 환경을 생각하면 이해를 못할 것은 아니지만 자기들이 전쟁에 나갈 것도 아니면서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

실제 군 출신에 참전 경력이 있는 공화당 인사들은 적어도 그 점에서는 개념이 잡혀있어서 걸프전에 참전했던 공화당의 온건파인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11] 조지 부시가 이라크전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확대하였을 때 반대할 정도이다. 공화당에서 진보적인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도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였다가 대통령 취임 후 군비 축소 정책을 시행하였는데[12] 강경파 군부가 반발하자 '니들이 전쟁에 대해 나보다 잘 알어?'라고 군부를 디스할 정도이다.[13] 아버지 부시 대통령도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죽을 고생을 하였다. 저 죽을 고생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게, 조금만 운이 없었다면 부시도 치치지마 식인 사건 희생자 목록에 이름을 올릴 뻔 했다. 그래서 전쟁에 섣불리 나서지 않고 외교전과 명분과 실리와 이해관계에 따라 처리한다.[14] 아들 부시와 달리 네오콘을 옆에 두고 밑도 끝도 없이 확전을 벌일 정도로 호전적이거나 강경한 성향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용어가 만들어진 그 때와 지금이나 다수의 공화당 치킨호크들 #처럼 실제 매도 호전적인 동물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전장에서 군용으로 쓰인 적은 없다. 반면 참전 경력이 있는 민주당 비둘기파와 마찬가지로 평화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비둘기는 고대부터 2차 대전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전령으로서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을 누비고 다니며 통신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 바 있어 이러한 점은 용어와 잘 맞아떨어진다. 물론 매 역시 능력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무모하게 싸움을 거는 동물이 아니라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필요할 때만 공격을 시도하기 때문에 완전히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다.

4. 관련 어록

그런데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그는 연설할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는 것이었다. 매우 수치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진지를 버리고 무기까지 내동댕이치며 도망쳤다. 그의 방패에는 금으로 '무운장구(무인으로서의 운수가 길고도 오래감)'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데모스테네스 편.[15]
중국의 일의 형세가 참으로 급급하기만 하다. 이런 때에 안으로 스스로를 강화하면서 밖으로 견제하는 계책을 써서 한결같이 고려에서 했던 것과 같이 한다면 거의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나라의 인심을 살펴보면 안으로 일을 힘쓰지 않고 밖으로 큰소리 치는 것만 일삼고 있다. 조정의 신하들이 의견을 모은 것을 가지고 보건대, 무장들이 올린 의견은 모두 강에 나가서 결전을 벌이자는 의견이었으니 매우 가상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지금 무사들은 어찌하여 서쪽 변경은 죽을 곳이라도 되는 듯이 두려워하는 것인가? 고려에서 했던 것에는 너무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부질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강홍립 등의 편지를 받아 보는 것이 무엇이 구애가 되겠는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끝내는 반드시 큰소리 때문에 나랏일을 망칠 것이다.
광해군일기 정초본 166권, 광해 13년 6일 병자 3번째 기사 1621년 명 천계(天啓) 10년
It is only those who have neither fired a shot nor heard the shrieks and groans of the wounded who cry aloud for blood, more vengeance, more desolation. War is hell.
전쟁의 영광이란 건 완전히 헛소리다. 오직 총 한 번 쏴본 적 없거나 부상병의 비명과 신음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들만이 큰 소리로 더 많은 피와 복수, 파괴를 외친다. 전쟁은 지옥이다.
- 남북전쟁 당시 북군 측 장교였던 윌리엄 테쿰세 셔먼
겪어보지 못한 자에게 전쟁이란 달콤한 것이다.
- 에라스뮈스
늙은이들이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싸워야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 허버트 후버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병사의 멍한 눈빛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깊이 생각해 볼 것이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I would like to see the kind of bloody fool who is genuinely not afraid of war.
나는 진정으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성바보를 보고싶다.
- 니키타 흐루쇼프[16]
Война - дело молодых, лекарство против морщин.
전쟁은 젊은이들의 몫, 늙은이들 주름에 있어 둘도 없는 특효약.
빅토르 초이
인류 역사상 전쟁을 선동한 사람이 최전선에서 전사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 다나카 요시키

5. 정반대 사례

그러나 실제 전투를 경험했다고 전부 반전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실제 전장에서 구르며 죽을 고비를 넘겨놓고도 주전론자가 된 경우도 꽤 있다. 오히려 이런 경우는 '나도 전쟁을 겪여봤는데 그거 별 거 아니다'라는 논리를 들먹이기도 한다. 커티스 르메이의 경우처럼 워낙에 천성이 호전적이라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이 전장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이 무의미한 전쟁 때문이었다고 인정할 수 없어서 일종의 PTSD 방어기제로 전쟁 자체를 긍정하게 되는 사례도 있다.

[1] 그 유명한 치킨 게임에서의 '치킨'도 이 '겁쟁이'라는 뜻을 잘 활용한 명칭이다. [2] 반대로 유화적인 의견을 내비치는 이들은 비둘기파(Dove)라고 부른다. [3] 대한민국 남성의 상당수는 '군대가 얼마나 좆같은 곳인지' 경험 상 안다. 그것도 훈련 상황이라서 망정이지, 실전 상황에 들어간다면.... 하지만 그렇기에, 군인이 되어봤기에 얼마나 필요한 곳인지조차 안다. 극단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그래서 아예 자국의 군대를 해체하자는 주장을 펼치거나 아니면 타국을 맹공하자거나 하는데, 겉만 보고 군대의 진정한 가치(자국 방어)과 현실(타국의 침략)은 모르는 그 사람들이 가장 위험한 작자들이다. [4]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전쟁불사를 주장한 의원들도 많았고 공화당 내에서도 온건한 외교정책을 주장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5] 중간에 재선을 관두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는 진짜 참전용사다. [6] 물론 전쟁불사를 주장하던 국회의원들 중에도 2차대전 참전자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였고, 그들 역시 병역 면제를 받았는데도 강경한 정책을 내세우는 의원들을 비웃었다. [7] 결국 2020 미국 대선에서 매케인의 부인 신디 메케인이 민주당 전당대회서 당시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찬조 연설을 하였고, 메케인 생전 상원의원을 지냈던 애리조나 주에서 24년 만에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상원의원 선거에서 애리조나주 2석 모두 민주당이 가져간 건 덤. [8] 주전론을 주장하는 기성 정치인의 경우 나이가 중장년 이상이라서 이미 군 복무 시기가 한참 지난 경우가 태반이다. 때문에 본인들은 자원해서 최전선에 나서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어지간한 막장 국가가 아닌 이상 입대 신청을 받아주지도 않는다. 물론 이들 대부분도 이를 잘 알고 있기도 하고. 마지못해 자원을 받아줘 봤자 당연히 국가에선 이들을 최전선에 보낼 리가... 안전한 후방에서 보급, 행정 등의 분야에 종사하게 한다. [9] 단 전쟁에서 패배했을 시에는 전범이란 명목으로 대거 사형을 당하기도 하므로 후방에 있다고 해서 100%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10]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반전시위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현재 러시아에선 실제 전쟁에 나가야 하는 20-30대와 전쟁에 나갈 일 없는 50-60대 간의 세대 갈등이 일고 있는데, 바로 이것 때문이다. Война — дело молодых, Лекарство против морщин(전쟁은 젊은이들의 몫, 주름살에 둘도 없는 약). 원래는 키노의 노래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의 가사. [11] 걸프전을 지휘해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12] 대선 공약부터 당시 미국의 골칫거리였던 장기화된 한국전쟁의 종결이었다. [13] 단순 디스가 아니라 아이젠하워의 권위를 이길 사람이 없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에게 "당신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14] 실제로 걸프 전쟁 당시 목표로 하였던 쿠웨이트 해방이 끝나자 뒤도 안돌아보고 바로 이라크에서 빠져나왔다. [15]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의 대 마케도니아 정책에 있어 초강경 매파를 상징하는 웅변가였다. 그는 마케도니아와의 결전을 이끌어내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카이로네이아 전투에 참여하나, 막상 살벌한 전투 현장을 접하고는 제일 먼저 도망쳤다. 마케도니아를 몸소 전쟁에서 격파했으나 비둘기파로서 휴전을 주장했던 포키온과 대비되는 부분. [16] 흐루쇼프는 2차세계대전 당시 정치장교로서 일선 야전에서 근무했다. 특히 치열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군인들의 발목을 잡지 않고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권한 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독소전에서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들을 잃기도 했다. [17] 단례로 영국은 그 환경에서 Mk 시리즈에 몇 미터는 되는 전파탑을 올리는 기행도 저질렀다. [18] 이 사람은 오히려 한국 군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테크를 제대로 탔다. 전쟁 전에도 이탈리아는 징병제라 이 사람은 망명까지 했지만 끝내 징병을 피하지 못하고 20대 중반이란 나이에 입대하여 굴러야 했다. 이때는 평화로웠기 때문에 그냥 구르기만 하다가 만기전역. 그런데 전역하고 약 10여년 후인 30대 중반에 전쟁이 나서 다시 끌려갔다! 보통 한국의 군필자들이 슬슬 예비군도 끝나가고 군대의 망령에서 벗어난다 싶은 나이대에 전쟁이란 이유로 다시 군대에 끌려간 것이다! [19] 당시 처칠이 맡던 해군 부서의 별명이 처칠의 우당탕탕 실험실(...)이었으니 말 다했다. [20] 하지만 처칠이 생각했던 전차란 사실상 육상전함 수준의 물건이었다고 한다. [21] 처칠은 기병으로 입대했는데, 복무 중 전투로 인한 어깨부상으로 오른쪽 어깨에 습관성 탈구가 있었다. [22] 물론 런던에 남아있으면서 대피소를 마련해두기는 했었다. 다만 그 대피소 바로 위에 정부청사 건물이 올려져 있어서 500파운드급 폭탄 한방만 직격당하면 건물과 대피소가 통째로 무너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대피소따윈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 수준이었다. [23] 중,대령 시절에는 본인이 직접 폭격기를, 그것도 피격 및 격추확률이 가장 높았던 선두 기체를 몰고 나갔으며 (대공포에 직접 피격당한 적도 있다) 당시 생소했던 PTSD에 시달리는 병사들에게도 따뜻하게 대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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