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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12:06:41

딕 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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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ecec,#fff><colcolor=#0d1635>
미합중국 제46대 부통령
리처드 브루스 체니
Richard Bruce Cheney
파일:Dick_Cheney.jpg
출생 1941년 1월 30일 ([age(1941-01-30)]세)
네브래스카 주 링컨
재임기간 제46대 부통령
2001년 1월 20일 ~ 2009년 1월 20일
서명 파일:딕 체니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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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ecec,#fff><colcolor=#0d1635> 부모 아버지 리처드 허버트 체니
어머니 마저리 로레인 디키
배우자 린 체니
자녀 장녀 리즈 체니
차녀 메리 체니
학력 나트로나 카운티 고등학교 (졸업)
예일 대학교 (퇴학)
캐스터 대학교
와이오밍 대학교 (정치학 / B.A.)
와이오밍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M.A.)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 대학원 (중퇴)
종교 개신교 ( 감리회)
신체 175cm
소속 정당

의원 선수 6 (하원)
의원 대수 96, 97, 98, 99, 100, 101 (하원) }}}}}}}}}

1. 개요2. 약력3. 생애
3.1. 초년기3.2. 정치인3.3. 미국 부통령3.4. 부통령 퇴임 이후
4. 선거 이력5. 기타6. 미디어 매체에서의 딕 체니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제46대 부통령.

조지 W. 부시 행정부실질적 권력자로 불렸으며[1] 풀네임은 리처드 브루스 체니(Richard Bruce Cheney)인데 통상적으로 애칭인 딕 체니로 많이 불린다.[2] 참고로 영어권에서는 Cheney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 '체이니'에 가까운 발음으로 부르며 본인 스스로는 '치니'에 가까운 발음으로 불렀으나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용례집에는 리처드 체니로 표기가 규정되어 있다.[3]

2. 약력

3. 생애

3.1. 초년기

1941년 네브라스카 주의 링컨에서 토양 계량 중계인이었던 리처드 허버트 체니와 전직 소프트볼 선수였던 마저리 로레인 디키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학생 시절 예일 대학교에서 학업부진 및 품행불량으로 퇴학당하고 술고래에다가 공사장 노가다나 뛰는 신세였다. 그러나 딕 체니의 부인인 린 체니[5]강력하게 교정하여 딕 체니를 갱생시켰다. 참고로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으로 인한 징병제 시행 중이었음에도 생계사유로 징집을 보류받았다.[6] 아내 린은 중산층 가정이었지만 딕 체니는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결정적으로 가정의 생계를 딕 체니 혼자서 책임지고 있었다.

린 체니가 적극적으로 행동한 덕분에 딕 체니는 정신을 차렸고, 이미 퇴학당한 예일대가 아닌 와이오밍 대학교에 다시 입학해서 정치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 위치한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지만 1966년 당시 위스콘신 주지사였던 공화당 워런 놀스(Warren Knowles)의 스태프로 일하기 위해 중퇴했다. 이어 1968년 미국 정치학 협회(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에서 주는 의회 장학금을 받고 워싱턴으로 이주했다. 이듬해인 1969년 공화당 위스콘신 하원의원 윌리엄 스타이거(William A. Steiger) 밑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 그러나 곧 경제기획원 (the Office of Economic Opportunity: 1964-1981 존속. 지금은 폐지된 기관) 원장으로 일하던 도널드 럼즈펠드 밑에서 일하게 된다. (참고로 럼즈펠드는 그당시 의원 신분이 아니었다. 일리노이 하원의원으로 1963년 1월-1969년 3월까지 일했으며, 경제기획원 원장이 된 것은 1969년 5월).

3.2. 정치인

그렇게 딕 체니의 정치 경력이 시작되었고, 럼즈펠드가 딕 체니를 열심히 키웠다. 그리고 체니는 먼 훗날인 2004년, 조지 W. 부시 이라크 침공 뒷수습 실패로 인한 책임을 지고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 경질할 때 럼즈펠드를 전혀 지켜주지 않음으로써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럼즈펠드는 영화 바이스에도 묘사되듯 국방장관 경질 이후 "내가 호랑이를 키웠다"며 딕 체니를 비난했다. 다만 럼즈펠드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자업자득이다.

1978년 중간선거에서 딕 체니는 처음으로 와이오밍 주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와이오밍 주에 출마했던 이유는 부인인 린 체니가 와이오밍 출신이었기 때문.

딕 체니는 1978년 중간선거에서 무능한 모습만 보이다가 심근경색으로 입원 하였고, 마지막 선거 한 달은 린 체니가 선거 운동을 홀로 해서 겨우겨우 당선됐다. 이후로 딕 체니는 1988년까지 무려 6선에 성공하지만, 결국 본인은 선거 운동을 전혀 안 하고, 린 체니가 선거 운동을 진행 했다.

1989년 딕 체니는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로 선출된다. 그해 새로 출범한 조지 H. W. 부시 행정부는 존 타워 전 상원의원을 국방장관으로 지명하였으나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은 그의 인준을 거부한다. 대신해서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것이 딕 체니였고 이번에는 민주당도 반대하지 않아 딕 체니는 국방장관이 된다.[7]

그의 국방장관 재임 시절 걸프 전쟁이 벌어졌고, 체니도 승전의 주역이라는 공로를 얻기도 했다. 이는 그가 훗날 아들 부시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내며 위세를 휘두르는 데 중요한 배경으로도 작용하였다.

부인인 린 체니는 1982년 레이건 행정부에서 보건사회복지부 차관을 했고, 1988년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서 문화재청장까지 오른다. 남편의 정치 자금을 모으는 역할도 그녀가 도맡았다. 1990년에는 린 체니가 백악관 환경위원장으로 임용되어서 부부 동반으로 장관급 각료라는, 미국 정치권에서 유례없는 출세 테크트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당선되자 딕과 린은 동반 사표를 제출하고, 둘 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딕은 석유시추기업 및 군납기업 '핼리버튼'에 취업해 CEO로서 일했고, 린은 정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했다.

3.3. 미국 부통령

1999년 조지 W. 부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자 부시는 러닝메이트 추천을 맡고있던 체니에게 오히려 부통령 직을 제의했다. 딕은 처음부터 부통령 후보 자리를 거절했다. 아내 린 체니도 "부통령은 그냥 얼굴마담 뒷방 늙은이나 하는 것"이라며 결사 반대했고, 결정적으로 딕 체니는 이미 1998년부터 협심증으로 인한 심장마비가 자주 오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 W. 부시가 무려 14번이나 접촉한 끝에 "외교와 국방 분야에 관한 권한을 부통령한테 위임한다고 약속한다"는 조건 하에 러닝메이트직을 수락했으며[8] 그리고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와의 피 말리는 초접전 끝에 조지 W. 부시가 당선됨에 따라 체니도 부통령이 됐다.

그런데, 사실 체니가 위임해 달라고 했던 권한들은 미국 대통령 권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 대한민국 같은 국가에 비하면 대통령의 내치 권한이 의외로 약하다. 물론 주요 부처의 장차관이나 대법원 판사 등 굵직한 인사권, 거부권, 행정명령, 입법 권고 등 굉장히 강력한 권한을 지녔지만, 각 주가 독립적인 3권을 갖고 있는 나라라 내정 관련된 부분에서 연방정부의 역할은 크지 않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미국 헌법에 따라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군 총지휘권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가 전체의 수장으로서 주지사들은 가질 수 없는 외교권을 갖고 있다. 고로 세계 최강국이라는 위상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지 W. 부시는 이 두 가지 힘을 둘 다 체니한테 넘겼다. 이는 1) 아버지 부시 시절 국방장관으로서 걸프전 승리에 공헌했던 체니의 명성, 그리고 2) 정치 경력이 텍사스 주지사를 비롯한 국내 선출직에 국한되어 외교/안보에 익숙치 못한 상태로 대통령이 된 아들 부시의 미숙함 등이 작용한 결과였다.

미국의 외교권과 국방 분야 권한을 손에 쥔 사람이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미국의 실세다. 물론 당연히 진짜 체니가 군 통수권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명목상 부시가 사령관이라도 그 정책이 다 체니한테서 나온 것이니 운전 핸들은 부시가 잡았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향은 체니가 정했던 것이다.

체니는 도널드 럼즈펠드처럼 아버지 부시 시절에도 일했으며 걸프 전쟁 당시 국방장관이었다. 그 경력 덕분인지 43대 아들 부시 대에서는 부통령까지 지내게 됐다. 이 사람은 1941년 1월 30일[9][10], 아들 부시는 1946년생으로 나이 차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11]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선 네오콘 최종보스로 군림했다. 아들 부시나 럼즈펠드는 이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대단한 인물이었다. 아들 부시 대통령 밑에서 사실상 부시 행정부 내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며, 그가 내놓은 이야기들은 전부 부시가 정책화시켰기 때문에 사실상 체니의 말이 곧 법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인 아들 부시는 얼굴마담이고 진짜 대통령이 딕 체니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례가 없는 권력을 가진 부통령이었다.

그가 이렇게 강한 발언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역시 군 관련 경력[12]이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으며, 부시 일가와 친했고 아들 부시가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하튼 이렇게 권력을 쥐자 미국 행정부에 자기와 코드가 맞는 네오콘들을 주요 공직에 앉혔다. 그 때문에 아버지 부시와 그들의 보좌진들은 체니를 싫어하게 되었다고.[13]

그리고 아들 부시 시절 북한, 이란, 이라크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압박적인 정책을 취하게 되고 다른 아랍권에 대한 강경 정책이 펼쳐지게 된 것도 이 양반의 공로. 다만 럼즈펠드와 부시의 대활약으로 인해 그 위험성이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이 양반도 이라크전이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벌려놓고 정작 전쟁 진행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하나도 몰랐다. 게다가 군납기업인 핼리버튼 사장 출신이라는 점[14]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전쟁들이 다 거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게 만들었다. 이 당시 체니와 커넥션이 있다는 기업들은 이득을 좀 많이 봤다. 본인은 이 일에 전혀 관련이 없다는 드립을 쳐댔고 거짓임이 탄로나고도 본인은 꾸준히 부인하고 있다. 출처 덕분에 이라크전을 벌이고 있던 부시 행정부의 이미지는 더더욱 악화되었다.

당시 이라크 침공을 위한 계획을 진행하던 도중 일화로는 부시 대통령과 고위 참모진들 및 군 수뇌부들이 모여서 작전 계획 및 상황 등을 보고 받던 상황이었는데 럼즈펠드는 못 알아듣고는 계속 보고자에게 큰 소리로 말하라고 하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은 페퍼민트맛 사탕을 짭짭대며, 웃긴 건 옆에 있던 참모진들에게도 그거 먹을 거냐고 물어본 뒤 가져갔으며 딕 체니는 졸았다. 참으로 잘 돌아갔던 부시 행정부의 일상의 단면이다(...)

리크 게이트에 그가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영향력이 약해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이지 다른 네오콘들이 권력을 잃거나 사임할 때도 이 양반은 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행정부 내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의 전황 막장화와 재임 초부터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경하게 막 나가는 행보 등으로 그나마 아직까지는 최소한의 정신줄을 잡고 있던 부시(...)[15]도 도저히 체니의 삽질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게 되자 체니의 네오콘 친구들을 고위직에서 대거 몰아내고 상식적이었던 인물들을 앉히면서 체니의 장밋빛 시절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덕분에 부시 행정부 2기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바뀌어갔다.

결국 부시 임기 말기 데니스 쿠시니치 탄핵안까지 내놓는 등 엄청나게 비난받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욕 먹은 부통령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조차 지지를 받지 못하고 찬성 162 : 반대 251로 부결되었는데, 공화당은 1시간이나 반대 토론을 제안하면서(물론 민주당을 까려는 의도가 있었다지만) 체니의 이미지를 더욱 실추시키는 촌극을 벌였다.

이 덕분에 대선 당시 부시 대통령과 함께 공화당 기피대상 1호였다. 흑인 최초 합참의장이자 부시 1기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이 체니와 네오콘들에게 하도 시달려서 공화당 출신이면서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 정도였다.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에 러시아 전쟁을 일으키자고 주장한 바 있다. 이때는 부시 행정부가 중동에서 일으킨 전쟁의 후유증 때문에 아주 전쟁이라면 진절머리를 내던 시절이니, 미국 전체가 그에게 욕했다. 관련기사 당연히 다른 사람은 물론 조지 W. 부시까지도 말렸다. 핵심 동맹국도 아니고, 게다가 미국에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부통령 시절 임시 대통령을 맡은 적이 있는데, 부시가 프레첼을 먹다가 목에 걸려 내시경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한 번 더 맡은 적이 있다.

3.4. 부통령 퇴임 이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자 조 바이든에게 부통령 직위를 물려주고 백악관을 나갈 때에는 휠체어에 앉아서 온갖 힘들고 아픈 척은 다 하길래 이제 딕 체니도 얼마 안 남았구나 싶었던 사람들이 꽤 있었으나, 퇴임하기 무섭게 멀쩡한 얼굴로 온갖 방송에 나와서 오바마 행정부가 너무 적들에게 유약하다며 정권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퇴임 후 뉴스 등지에서 종종 체니가 심장에 무리가 오면서 입원을 했다는 뉴스들이 몇주나 몇 달에 한 번 나오는 걸 보면 몸 자체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인 듯 하다.

그런데 공화당의 대선 주자인 밋 롬니가 체니를 두고 '지혜롭고 양식있는 사람'이라고 찬양하며, 그와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며 '러닝메이트'로 삼을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있었다. # 능력과 별개로 정치 판세 파악은 대단한 인물이긴한듯. 애초에 정치 감각과 파워게임을 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거다. 다만 자리에 앉고나서 무능해지는게 문제지...

전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CIA의 용의자 고문 사건에 본인은 고문이 결코 잘못된 짓이 아니며 다시 할 생각이 있다는 의견을 내 구설에 올랐다. 2014년 12월 CNN 인터뷰 중 누명을 쓰고 장시간 고문당하다 얼어 죽은 무고한 시민에 관해 질문하자 그건 고문이 아니고 무고한 사람 몇 명 죽는 게 테러리스트 한 명을 살리는 것보다 낫다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하기도 했다.

미국 의회 폭동 직전에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여러분은 앞으로 1년간 리즈 체니 같은 나약한 의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발언을 생중계로 듣자마자 극심히 놀라 딸에게 전화를 걸어 위협에 대해 경고하였다. 그 덕에 딸 리즈가 안전한 장소로 피신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트럼프를 맹비난하였다. "미국 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보다 나라에 더 큰 위협이 된 인물은 없었다" "그는 유권자들이 그를 거부했음에도, 폭력과 거짓말을 이용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선거를 훔치려 했다" "그는 겁쟁이" "진정한 남자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는 선거에서 졌고, 크게 잃었다"라고 하였다. # #. 하지만 2008년 압도적 정권 교체의 원흉이며, 부시 정권 실패의 원흉이자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 돌풍을 끌게 된 제일 큰 원흉이 바로 본인이기에 적어도 넌 가만히 있으라는 평이 미국 내에서 주 여론이다.

2023년에는 국회의사당에서 흉상이 공개되었다. #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당선 여부 비고
1978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와이오밍 광역구

78,855 (58.63%) 당선 (1위) 초선
1980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116,361 (68.57%) 재선
1982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113,236 (71.09%) 3선
1984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138,234 (73.57%) 4선
1986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110,007 (69.28%) 5선
1988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118,350 (66.62%) 6선
2000 미국 부통령 선거[A] 미합중국 50,456,002 (47.87%, 271명)[17] 초선
2004 미국 부통령 선거[A] 62,040,610 (50.73%, 286명) 재선

5. 기타

* 둘째 딸인 메리 체니(Mary Cheney)는 1969년생으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돕기도 했다. 본인은 보수적인 정치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레즈비언이며, 본인 및 주변인들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동성애자들의 인권 신장에 노력하고 있다. 아이를 두명 입양했으며 2012년 동성결혼을 했다.

6. 미디어 매체에서의 딕 체니



[1] 통념과 달리 미국 부통령은 거의 하는 일이 없는 자리이다. 뛰어난 정치력으로 유명한 린든 B. 존슨 조차도 존 F. 케네디 행정부의 부통령 시절에는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보다도 못한 제한된 권력을 휘둘렀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체니의 영향력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평가받는다. [2] Richard라는 이름의 닉네임이 Dick이다. William이라는 이름의 닉네임이 Bill인 것과 같다. [3] 다만 전직 부통령인 9대 리처드 멘터 존슨과 36대 리처드 닉슨(이후 37대 대통령)은 딕이라는 닉네임을 쓰지 않았다. [4] 장녀인 리즈 체니가 지역구를 물려받아 와이오밍에서 하원의원으로 재직하였다가, 2022년 공화당 경선에서 낙천하였다. [5] 1962년에 이미 사실혼 관계였고 1965년 정식으로 결혼했다 [6] 처음에는 대학 재학중이라 면제, 중퇴후엔 기혼자라 면제, 기혼자도 징집 대상이 되었을 때는 이미 자녀가 있어서 면제됨 [7] 이때 공석이 된 공화당 원내총무 자리를 채운 것이 뉴트 깅리치.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장관 후보를 한 명 낙마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의도치 않게 1990년대와 2000년대 민주당의 골머리를 앓게 할 숙적을 탄생시킨 셈. [8] 부시의 러닝메이트 후보군으로는 존 댄포스 前 미주리 연방상원의원, 톰 리지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조지 퍼타키 뉴욕 주지사, 프레드 톰슨 테네시 연방상원의원 등이 있었다. [9] 이명박 전 대통령과 나이가 같다. 다만 이명박은 12월생이라 거의 1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10]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과는 생일이 같다. [11] 참고로 아버지 부시는 1924년생. [12] 하지만 아버지 부시 정권에서 국방장관이 되기 전까지의 군 관련 경력은 아예 없다. 제복군인으로써의 경력 없이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 중 하나였다. 월남전 당시 미국에서 징병제를 시행했었고 당시 체니는 징병 연령이었다. 그는 대학 재학과 결혼을 이유로 징병을 연기하다가 징병제가 폐지되어서 군 입대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병역 기피 의혹을 받았고 이런 상태에서 강경 정책을 펼친 것이 있어서 치킨 호크 중 하나라는 소리도 나왔다. [13] 솔직히 체니와 네오콘들은 아버지 부시나 그를 보좌한 인물들에 비하면 상당히 무능하다. 당장 아버지 부시도 CIA 국장 시절 CIA의 위상을 지금처럼 무섭게 만들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14] 민간군사기업중 군납기업으로, 문제의 만행은 항목 참조. [15] 믿기 힘들겠지만, 부시는 이들 중에선 상식적인 인물이었으며 행정부 내에서 자신이 최고 권력자임을 분명히 했다. 부시 행정부 초기의 막나가는 강경책은 네오콘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밀어붙인 것을 부시가 그나마 순화시켜서 정책을 편 것이다. [A] 대통령 후보는 조지 W. 부시 [17] 득표율 2위,선거인단 1위 [A] [19] 여담으로 아메리칸 대드라는 미 애니에서 주연 외계인 중 하나가 다른 외계인을 저격하려 할 때 조준하면서 "자, 나는 딕 체니고 저 놈은 내 변호사 친구야"라고 말한다. [20] 영화 바이스에서는 리즈가 동성혼에 부정적인 보수 표밭인 자기 지역구(와이오밍 주)의 표심을 감안하여 공화당 하원의원에 당선되기 위해 입장을 전향한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이 일로 리즈와 메리는 서로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21] 영화 바이스에선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묘사된다. 경선과정에서 무자비한 네거티브 공세로 메리가 입방아에 올라 큰 상처를 입을 것이기에. 아들 부시의 부통령 제의를 받아들일 때에도 자신은 동성애 반대의견만은 절대 동참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22] 미국내 보수주의자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보수주의적 태도보다 가정적인 이미지를 더 중시한다. 딸의 (꼴보수들이 보기엔) 잘못을 알고도 보호해주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되어 타격을 크게 입지 않은 것. 그러나 언니 리즈 체니는 이런 이미지의 혜택을 받지 못했기에 공개적으로 동성애 반대 선언을 하며 선을 그었고, 사실상 의절하게 된다. 메리가 언니를 공개적으로 비난한지 2년 뒤인 2015년에 기자가 "언니와 화해했냐"고 했을때 "그런 질문엔 답할 필요없다"고 잘라 얘기했으며 이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선 별다른 말이 없다. [23] 그러나 당만 같다뿐이지 이래저래 악연인 럼즈펠드랑은 달리 체니와 부시는 친분이 있는 편이었다. 당장 체니를 요직중의 요직인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이 바로 아버지 부시. 위 기사를 읽어봐도 대놓고 거만하다, 형편없다고 까이는 럼즈펠드와 달리 체니에 대한 비판은 "내가 함께 일하면서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강경론자로 변해 있었다" 등 점잖게 비판하는 편. [24] I know that you got a job, Ms. Cheney But your husband's heart problem's complicating! [25] 뮤비 영상을 보면 에미넴이 저 말을 하면서 주먹으로 심장박동을 연상시키듯 가슴을 쿵쿵 친다. 거기다 저 장면 직후 가슴에 전극들이 연결된 채로 체니가 부동자세로 서 있고 에미넴은 '그러니 방송관리위(FCC)가 날 가만히 냅두지 않고 내가 내가 되지 못하게 하는지 한 번 볼까'라며 전극에 전기를 흘려버린다. 당연히 체니는 전기지짐이가 되버리고 쓰러져 뮤비 끝까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나온다. [26] 사실 에머리히 감독 자체가 대놓고 정치를 풍자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재난영화에 은근슬쩍 현실 인물과 굉장히 비슷해보이는 정치인 캐릭터를 추가해서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인디팬던스 데이의 빌 클린턴, 2012와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버락 오바마, 2012의 아놀드 슈워제네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