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 | 소련 |
[clearfix]
1. 개요
나치 독일과 소련의 관계에 대한 문서.양측은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과 독소전쟁 발발 사이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서로 경쟁하고 적대하는 관계였다. 양국간의 외교관계는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 붕괴 후에도 나치 독일이 계승했으나 독소전쟁 발발을 계기로 전격 단교했으며 나치 독일이 망하는 날까지 복교되는 일은 없었다.
2. 역사적 관계
2.1. 초반
1930년대 중반 이후 나치 독일이 출범하자 소련은 나치 독일을 극력 경계하면서 독일의 확장 행보에 제동을 걸려고 했지만 영국과 프랑스와 원활한 협조에 실패하여 체코슬로바키아까지 내주고 말았으며 1939년 소련은 독일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이때 맺은 조약으로 소련은 방대한 원자재와 군사훈련을 위한 토지를, 독일은 각종 기계설비와 기술을 서로 교환하였다. 소련은 조약대로 원자재의 수량, 기한을 완벽하게 지켰지만 나치 독일은 매우 불성실하게 임했는데 수량과 기한을 어기기 일쑤였다. 당시 서유럽 및 미국에서는 이러한 행보를 통해 독일이 혹시나도 소련과 손을 잡을까봐 엄청나게 우려하였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폴란드 분할에도 합의했다. 1939년에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일으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됐고 소련도 폴란드를 침공한 후 폴란드를 양분했다. 자세한 내용은 독소 폴란드 점령 문서 참조.1940년 말에는 소련의 추축국 가맹을 주제로 양측간 외교적 회담이 시행되기도 했다. # 그러나 스탈린은 불가리아 그리고 이라크, 이란에 대한 자국 영향력 존중 등의 강력한 요구를 내밀었고 히틀러는 스탈린을 두고 냉혹한 자라고 비난하면서 이에 응답하지 않아 협상은 결렬되었다.
2.2. 중반
자세한 내용은 독소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면서 영국이 통제하는 바닷길을 통해 식민지를 확장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해보였고, 히틀러는 제국을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은 동유럽에만 있다고 보았다. "해외에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유럽에서 새로운 영토를 얻기 위해 군사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라고 그는
나의 투쟁에서 주장했다.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세르히 플로히 지음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세르히 플로히 지음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을 사실상 정복한 히틀러가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하면서 동부전선이 개전되었다. 초기에는 독일군이 빠른 속도로 승승장구하며 소련은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까지 밀리게 되어 몇 달 내에 항복할 것처럼 보였으나 독일군의 되도 않는 낙관으로 만들어진 허술한 작계,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소련군의 저항, 적재적소로 이루어진 미국의 지원, 점령지에서 벌인 학살[1]로 저항군 활동이 심해진 점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전세는 역전되었고 나치 독일은 결국 자기네들 수도까지 밀리고 밀려 패망했다.
전쟁 기간에 스탈린은 볼가 강이나 크림반도 등의 독일계 러시아인들을 의심하여 이들 대다수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