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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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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лекса́ндр Солжени́цын | Alexander Solzhenits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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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
Alexander Isaevich Solzhenitsyn
국적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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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명칭
러시아 SF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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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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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1]

출생 1918년 12월 11일
테레크주 키슬로보츠크
(現 북캅카스 연방관구 스타브로폴 지방 키슬로보츠크)
사망 2008년 8월 3일 (향년 89세)
중앙 연방관구 모스크바
묘소 돈스코이 수도원
서명
파일: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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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이사키 세묘노비치 솔제니친(1891~1918)
어머니 타이시야 자하로브나 셰르바크(1894~1944)
배우자 나탈리야 레셰톱스카야(1940~1956, 1957~1972)
나탈리야 스베틀로바(1973년 결혼)
자녀 3명
학력 로스토프나도누 주립대학교[2] (물리학·수학 / 준석사)
종교 무신론 →  러시아 정교회
활동 기간 1962년 ~ 2008년
사조 리얼리즘, 르포르타주
주요 수상 노벨문학상 (1970)
템플턴상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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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기2.2. 중기2.3. 후기
3. 작품4. 관련 어록5. 수상6. 여담7. 외부 링크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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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_solzhenitsin.jpg

러시아의 작가이자 수필가, 역사학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중 한 명이며 20세기 문학사 냉전 시대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초기

파일:external/bookmix.ru/authors_1265469354.jpg
1918년 러시아 SFSR 테레크주 키슬로보츠크(Кисловодск, Kislovodsk)(현재 러시아 북캅카스 연방관구 스타브로폴 지방)에서 유복자로 출생했다. 그의 어머니의 가문은 제정 시절 쿠반 지역에 큰 영지를 가진 지주 가문이었고,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어머니와 이모가 그를 길렀는데 소련 건설 이후 집단농장화가 진행되자 소유하고 있던 땅이 몰수되어 집단농장으로 전환되고 가졍의 경제 사정은 크게 악화된. 어린 시절 동안 아버지가 제국군 장교였다는 사실과 어머니가 지주였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솔제니친을 정교회 신앙에 충실한 보수적 교육을 받게 해주었다.

이후 5살에 로스토프로 이주했다. 어머니의 건강과 가정의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인해 모스크바 유학을 포기하고 1936년 로스토프 대학교 물리수학과에 입학해 1941년 6월 졸업하였고 통신대학에서 문학 관련 과정을 이수하였다.

대학 졸업 직후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소련 육군에 자원 입대했다고도 하고 서류상 문제로 입대가 지연되어 9월에 로스토프 부근의 중등학교에서 잠시 천문 물리학 교사로 근무했다가 10월 8일에 입대했다고도 한다. 입대 후 수송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다가 1942년 11월 포병장교 학교에 입학했고 중대장으로 임관하여 여러 전투에 참전했으며 1944년 7월 8일 적성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가 이 즈음 쓴 미완성 소설 <혁명을 사랑하라>에는 전쟁 당시의 경험을 그려내고 있는데, 동시에 소련 정부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동프로이센 점령 이후 자행된 대규모 강간과 살인의 물결에 대해 풍자하고 전쟁이 '독일인에 대한 복수'로 전락해버린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프로이센의 밤>이라는 시를 쓴다.

2.2. 중기

그러나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이오시프 스탈린의 판단력을 의심하는 내용과 조롱하는 표현[3], 그리고 소련 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이 문제가 되어 1945년 2월 스메르쉬에 의해 동프로이센에서 체포되어 심문을 위해 루뱐카로 보내졌는데 이 곳에서 승리의 날을 맞았다.

7월 7일, NKVD에 의해 8년형을 선고받고 카자흐스탄의 예키바스투즈(Екібастұз)( 파블로다르 인근에 있는 소도시) 굴라크로 보내졌다. 굴라크에서 일반 죄수들처럼 지내던 중 수학을 잘하는 것이 발견되어 연구원 전용 수용소에서 지낼 수 있게되었다. 이런 수용소를 샤라시카(Шарашка)라고 부른다. 당시 소련의 과학, 기술 분야에서 한가락 했던 코롤료프, 투폴레프 등이 바로 이런 곳에서 지냈다. 샤라시카의 분위기는 훨씬 느슨한 편이어서 일반 죄수들처럼 중노동에 동원되지 않았고 가끔씩 면회가 허용되었다.

모종의 이유로 수용소 당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굴라크로 복귀한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제 1원에서(В круге первом)이다. 그리고 석방될 때까지 다시 카자흐스탄의 수용소 탄광에서 중노동을 해야 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역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군도를 썼다.

수감 생활이 끝난 후 1953년 3월 2일 카자흐스탄 남부 비를리크 마을로 추방되어 나흘 뒤 스탈린이 죽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 수용소 시절부터 앓던 종양이 도져 이듬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옮겨 치료를 받는데 이 때의 경험으로 쓴 소설이 '암병동'이다. 그리고 유형지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으나 다행히 니키타 흐루쇼프의 반 스탈린주의로 1956년에 사면되었고 물리학, 수학 교사로 활동했다. 1960년에 노비 미르(Новый мир)지의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Александр Твардовский)를 만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초안을 작성했다.

1962년 이후 소련 관료제를 비판한 <유익한 사업을 위하여>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제 1원에서> 같은 수용소 생활을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소련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하는 동시에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다..그 충격이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수용소에서 철 지난 잡지를 통해 솔제니친의 작품을 접한 죄수들이 국가가 무슨 이유로 이런 작품이 나오도록 방조했나라고 했을 정도다. 흐루쇼프의 실각과 함께 소련작가동맹에서는 그의 작품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반소 작가라고 비난할 정도였다. 심지어 굴라크에서의 노동을 통한 개화를 주장하는 어용 작품과 그가 사실 죄수가 아니었다는 흑색선전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국 반동으로 찍혀 1969년 11월에는 소련작가동맹에서 쫓겨났다.

1968년 9월 그의 <암병동>과 <연옥 1번지>가 사미즈다트 형태로 유통되었고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는데 소련 정부와 소련작가동맹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으며 그의 노벨문학상을 인정하지 않고 노벨상 포기와 공개 전향, 추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했다. 솔제니친은 노벨상 포기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련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서 수상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소련 당국은 당연히 거부했다.

하지만 솔제니친은 한 번 스웨덴으로 출국하면 다시는 소련에 돌아가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의 우려대로 이때 소련 공산당 정치국은 솔제니친을 처리하기 위한 회의를 소집했다. 유리 안드로포프는 그를 스웨덴에 보내서 노벨상을 받게 하는 대신 소련 국적을 박탈해서 다신 돌아오지 못하게 하자는 방법을 제안했다..스탈린 이후 소련은 심각할 정도로 체제를 위협한 게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기를 쓰고 죽이려 하지는 않았으며 자국 내 반체제 인사의 이주 허가를 내주거나 미국에서 잡힌 스파이와 맞바꾸는 식으로 내보내 평생 소련 땅을 못 밟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과정은 2015년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스파이 브릿지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내무장관 니콜라이 셸로코프가 추방에 반대하였다. 참고로 지금까지 러시아 국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4명의 작가( 부닌, 파스테르나크, 숄로호프, 솔제니친) 중에 소련 당국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밀어준 작가는 숄로호프 뿐이다. 부닌은 러시아 내전 때 공산당이 싫어 조국을 등지고 프랑스로 떠난 망명자였고 파스테르나크와 솔제니친은 소련 체제를 비판적으로 서술했다는 이유로 모진 탄압을 받았다.

한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호응을 얻기 전인 1958년부터 굴라크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과 수용소 당국의 현실, 재소자 227명의 사연과 증언들을 정리해 소련 수용소 시스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저술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쓴 원고를 지키기 위해 매우 조심했지만 1969년부터 소문을 들은 KGB의 주목을 받았고 1973년 8월 결국 KGB에 의해 원고가 발각되자 남은 원고들을 서방으로 밀반출시켰는데 이 원고가 1973년 12월에 프랑스에서 처음 발표된 < 수용소 군도> 제1부였다.

1972년 9월, 닉슨-브레즈네프 정상회담 개최 직전 소련 정치국은 다시 솔제니친 문제를 논의했고 안드로포프와 알렉세이 코시긴이 솔제니친 추방을 주장했으나 결국 정치국은 그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소련 지도부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리고 러시아 정교회 신앙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라는 서한을 보냈는데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솔제니친은 러시아의 전통을 중시하는 러시아식 보수주의자였다. 솔제니친은 그렇게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고 <수용소 군도>의 존재는 기어이 1974년에 서방에까지 알려졌다.

발칵 뒤집힌 소련 정치국은 일단 1974년 2월 13일 그를 일단 투옥시키고 어떻게 처리할지 논쟁을 벌였는데 안드로포프는 다시 그를 추방하자고 제안했으나 브레즈네프는 끝까지 이를 거절했다. 정치국은 폭발했고 안드로포프와 그로미코가 그를 추방하자고 제안한 것에 대해서 소련 지도부는 너무 물러터진 조치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니콜라이 포드고로니는 마오쩌둥은 공개총살도 불사하는데 언제부터 소련이 이렇게 물러진 거냐고 솔제니친을 체포하라고 요구했고 코시긴은 솔제니친을 조리돌린 후 시베리아 광산에 보내서 썩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서방 기자놈들은 추운 시베리아까지 가서 취재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드로포프는 솔제니친을 더 이상 내버려 뒀다간 국제관계가 아니라 국내가 끝장날 판이라고 브레즈네프에게 경고했고 재빨리 빌리 브란트로부터 그를 받아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마침내 브레즈네프는 그의 추방에 동의해 서독으로 추방했다. 그는 소련에서 쫓겨나 서독을 거쳐 스위스 취리히에 체류하다가 마침내 1976년 10월 미국 버몬트에서 은거 생활을 시작했다.

2.3. 후기

1974년 이후 무국적이었던 그는 1990년 소련 국적을 회복했다. 냉전 시개가 종결되고 소련이 붕괴된 후인 1994년에 귀국하였는데 미국 체류 중에도 미국의 천민자본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일로 반공 단체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표국가 양쪽에 모두 밉보였다

이후 그는 그동안 정리한 수용소 군도를 4부로 출간하였다. 굴라크의 생활과 고문을 그린 1~2부 이후는 대부분 혁명 이후의 소련 사회와 소련 보수작가들의 고인드립이 많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 이 작품 자체가 거대한 연작의 일부로 구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생의 꿈인 러시아 혁명사를 집필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끝내 미완되었으나 붉은 수레바퀴라는 이름으로 3부작이 출간되었다.

그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격변기에 러시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으로 기대하며 옐친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렇지만 1992년부터 1993년 즈음 러시아 정부에서 무리하게 추진한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이 실패해 소련시절보다 경제상황이 안좋아진다. [4] 결국 이에 대항해 일어난 시위를 유혈 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옐친에게 실망하며 반 옐친파로 돌아섰다.

귀국한 뒤에는 러시아 채널1의 TV토크쇼를 진행하고 <아르구멘티 이 팍티(Аргументы и факты)>라는 신문[5]에 글을 기고하면서 옐친을 비판했고 결국 정부 비판적인 성향으로 인해 옐친에게 밉보이면서 아예 프로그램 자체가 날아갔다. 1998년에 옐친 정부가 수여하는 러시아 최고 훈장인 사도 성 안드레이 훈장의 수훈도 거부해 버렸다. 수훈을 거부한 사유를 밝힐 때 대놓고 나라를 파멸로 몰아간 지도자가 주는 훈장은 받을 수 없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푸틴이 집권한 후 러시아의 물질주의 세태 비판과 전통적인 애국주의에 대한 회귀를 주장했으며 푸틴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의 러시아 민족주의적인 성향은 옐친 이후 민족주의 성향을 강화하던 푸틴의 입맛에 딱 맞았다. 실제로 솔제니친은 푸틴의 지원을 많이 받아 장례식도 국가장으로 치를 정도였다.

2008년에 그가 사망하자 러시아 언론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심 중 1명이었으며, 조국 러시아를 향한 긴 발걸음이 이제 멈추게 됐다."고 애도했다. 2008년 모스크바의 "대공산주의자 거리(Большая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улица)"가 그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거리(Улица Александра Солженицына)"로 바뀌었다. 소공산주의자 거리는 2005년에 스타니슬라프 거리(Улица Станиславского)로 바뀌었다.

그는 친소적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에게 대체로 "조국의 어두운 점을 서방에 폭로한 자"라고 미움받고 러시아의 좌파들에게는 소련의 부정적인 점(수용소 희생자 수)를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훗날 또 다른 권위주의 독재 정권을 지지한 위선자라고 미움받는다. 그의 정치적 노선과 행보를 떠나 적어도 그의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소련 시절의 굴라크와 이로 대표되는 죄수들의 현실에 관한 묘사에 대해서는 러시아에서도 인정하는 권위자다. 무엇보다도 솔제니친 본인이 비록 서방에 망명했을지라도 본인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굴라크에서 생활하고 목격한 기록을 남겼던 만큼 작가로서 결코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수용소군도나 붉은 수레바퀴 등의 작품은 아무래도 논픽션 쪽에 가깝다 보니 문학적 묘사가 빈약한 건 사실이지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만 보더라도 솔제니친이 문학 작가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006년 러시아 1 채널에서 그의 작품 중 '제 1원에서(В круге первом)'를 드라마로 제작,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가 해설 역할로 직접 참여했으며 예브게니 미로노프 등이 출연했다.

3. 작품

4. 관련 어록

제국을 멸망시킨 작가.
뉴욕 타임스[6]

솔제니친은 모범적인 고귀함과 극도의 용맹을 지닌 사람이다. 강력한 소설가이자 없어서는 안 될 역사가인 그는 동포들의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고 소련인과 러시아 역사의 이름으로 기괴한 제도를 장엄하게 기소한 예술가, 도덕주의자다.
― 아서 M. 슐레진저 주니어 (미국 역사학자)[7]

솔제니친의 비범한 정치와 지적인 위업은 포로수용소의 지옥에서 나와 현대사에서 도덕적, 기록적 힘이 비할 바 없는 책들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8] (페루, 스페인 소설가)[9]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이반 투르게네프, 레프 톨스토이, 막심 고리키와 같은 재능을 가진 문학적 천재다.
― 해리슨 솔즈베리 (미국 비평가)[10]

그는 우리의 유일한 살아있는 고전이다.
예브게니 옙투셴코[11]


솔제니친은 러시아 문학의 위대한 도덕적 전통이 끝나는 마지막 러시아 작가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전세계 문학의 관련이 있을 것이고, 그 후에도 적어도 100년 이상은 지속될 것이다.
― 독일의 소리[13]

5. 수상

6. 여담

7. 외부 링크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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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4년 ~ 1990년 [2] 지금의 남부연방대학교. [3] 수용소군도에 의하면 스탈린을 '파한(пахан)'이라는 단어로 지칭했다고 한다. 이 단어는 아버지, 두목, 대빵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비속어이다. [4] 사실 2024년 현재까지도 러시아는 소련 당시 G2 수준의 경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5] 러시아에서 발행되는 신문 중 하나로, 일반적인 뉴스보도 방식과는 달리 의견을 두고 의견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발행된다. [6] 출처 [7] 출처 [8]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 [9] 출처 [10] 출처 [11] 출처 [12] 출처 [13] 출처 [14] 세르비아 정교회 최고 훈장 [15] 인도주의 활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은 공로 [16] 문명의 도덕적, 윤리적 원칙을 수호하는 창의성의 시민에게 주는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