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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냉전기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중심으로 일어난 서구권과 동구권 사이의 위기를 일컫는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동서구권간 나뉘어지게 되었기에 미국과 소련 영향력의 경계에 위치한 베를린은 자연스레 위기의 중심지가 되었다.냉전기 베를린 위기로 일컫는 사건은 두가지가 있다.
2. 1차 베를린 위기
1948년과 1949년간 소련이 미국의 서베를린으로부터의 철수를 요구하며 도시를 봉쇄, 이에 따라 서방의 베를린 공수와 소련의 봉쇄 해제 까지의 사건들과 대립을 일컫는다.자세한 내용은 베를린 봉쇄 문서 참조.
3. 2차 베를린 위기
1961년 동독이 이어지는 탈동독 현상과 두뇌 유출로 시름하자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가 서방이 동독과의 협상을 맺어 서베를린의 점령을 끝낼 것을 다시금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내면서 일어난 위기. 결과적으로는 미국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의 최후통첩을 생까고 서독을 지원하는 결의안을 발표, 베를린 장벽의 건설로 이어지게 되었다.자세한 내용은 베를린 장벽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