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독일 연방군의 공군에 대한 내용은 독일 공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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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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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 |
<colbgcolor=#c99a53><colcolor=#fff> 라운델 | |
양쪽 날개 밑면 양쪽 동체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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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날개 윗면 | |
휘장 (핀 플래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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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꼬리날개[1][2] | |
표식 | |
창설 | 1933년 |
해체 | 1945년 |
소속 | 독일 국방군 |
군종 | 공군 |
병력 | 3,400,000명 |
항공기 | 119,871기 |
최고사령관 |
헤르만 괴링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 |
참전 |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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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치 독일, 독일 국방군의 공군이다.2. 역사
2.1. 전간기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제1차 세계 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군은 약화되었고, 공군은 특히 심각해서 공중 전력 보유가 금지되고 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는 아예 해체되었다. 그러나 전후의 회복을 위해서 비행클럽 등을 조직하여 조종사의 자질을 가진 청소년 층을 키워놓았던 독일군은 이후 재무장 기간에 급격히 세를 불릴 수 있었다. 사실 제1차 세계 대전 뵐케의 금언을 만든 최초의 에이스 오스발트 뵐케, 1차대전 톱 에이스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그의 동생인 로타 폰 리히트호펜, 1:7의 전설 베르너 포스, 당시에는 모르핀 중독이 아니던 헤르만 괴링 등 공중전 역사 초창기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된 군사조직이었기에 이 루프트바페 창설의 기반을 놓을 수 있었다.다만 개전 직전에 새로 창설할 때는 군 경험이 있는 인원이 부족해 육군과 해군에서 인력을 일부 끌어왔다. 공수부대 장군으로 유명한 헤르만 람케가 해군 출신인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서 실전 경험을 쌓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초반에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독일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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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111 | Ju 87 | }}} |
격추 수를 보면 세계 1위(격추수 352기) 에리히 하르트만, 세계 2위(격추수 301기)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세계 3위(격추수 275기) 귄터 랄 등 전 세계 격추수 100여기 이상 명단은 전부 독일군 격추수 순위 명단이다. 공군 에이스 목록을 보면 공인 100기 이상 격추 명단에는 전부 독일 공군밖에 없다.[5] 숫자는 대략 100여명에 이르며 그 아래로도 거의 50대 격추 기록까지는 대부분 독일 공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의 전술기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비싸지고 대수도 적어졌으며 대규모 분쟁도 없으니 깨질 가망이 없다.[6]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독일 공군이 이런 대기록이 가능했던 것은 독일이 1920년대부터 공군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을 한 것과 더불어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거나 좌천으로 인한 군부 인력 쇠퇴로 '독일군에 비해 질적으로 떨어지는 대규모 병력의 독소전쟁 초기 소련 공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공군이 격추시킨 67,000대중 46,000대가 소련 공군을 상대로 올린 전과인 반면 전체 손실 43,000 ~ 49,000대 중 소련 공군의 전과는 최대로 잡아도 1만대임을 고려하면 영미군에 의한 손실이 3만대를 넘긴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소련 공군이 없었다면 독일 공군의 이런 대기록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당장 독일군 최고 에이스인 하르트만의 격추기록 352대중 350대가 소련 공군을 상대로 세운 기록이고 2위인 바르크호른은 301대 전부가 소련 공군을 상대로 세운 기록이며 3위인 귄터 랄의 275대중 272대가 소련 공군을 상대로 세운 기록이다.[7] 반면 소련 공군보다 질적으로 뛰어난 영국 공군과 미국 육군 항공대를 상대로는 약 2만 여대를 격추시키고 3만여대를 손실하여 전과 자체는 제법 올렸지만 소련 공군을 상대하는 것에 비해서 손실비가 훨씬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전과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출격 횟수와 상대했던 적군의 실력, 그리고 상대했던 적의 규모는 조종사의 생환률과 직결되므로 소련 공군의 실력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100대 이상 격추의 폭발적 전과 기록이 엄청난 수의 무능한 소련 공군을 잡아서 얻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독일 공군의 이러한 폭발적 전과는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한 전쟁 초중반기 독일 공군의 숙련도와 기체 성능, 독일 공군의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의 효율성과 형편없던 상대 소련 공군이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독일 공군이 아주 순탄치만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루프트바페는 수장인 헤르만 괴링 장군을 포함한 구성원 상당수가 구 제국 육군 항공대 출신들이었는데 포병 출신인 알베르트 케셀링 장군 등 비 항공병과에서 전군한 이들이 유달리 많아 공군의 역할이 지상군의 지원에만 집중하는 전술공군으로 고착화되어버렸다.[8] 이는 전선에서는 독일 육군에게 든든한 지원군으로 작용했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독일 공군이 적절한 호위기와 폭격기 합동전술의 부재에 따라 혼란에 빠지게 되어 신나는 뇌조 사냥을 당하게 되는 악재로 거듭나게 되고 중후반기 동부 전선에서도 전술 폭격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소련 공군에 비해서 폭격 성과가 밀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게다가 괴링은 특유의 권력욕으로 수송기를 사용하는 공수부대를 넘어서[9] 공군기갑사단, 공군 야전사단 같은 지상군 부대를 대규모로 만드는, 병력을 낭비하는 일도 했다. 물론 공군 기갑사단은 굉장히 잘 싸워서 육군의 불만을 피할 수 있었지만 공군 야전사단은 그렇지 못해 육군에게 소련군에게 최신 무기를 배달하는 셔틀이라고 비아냥만 들었다. 해군 출신은 그 수가 적은 편으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13대의 격추 기록을 보유한 해군 항공대의 격추 기록 4위인 에이스 출신의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센(Friedrich Christiansen, 1879~1972) 장군[10], 해군 육전대 출신인 헤르만 람케 장군 정도가 유명하다.
전쟁 후반에는 특히 훌륭한 전투기 조종사 양성프로그램을 통해 조종사를 양성하고 하루에만 1000소티의 폭격기와 700소티의 호위기를 이륙시켰던 미군과 영국 본토 항공전을 거치며 성장한 영국 공군의 조종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반면에 동부전선에서는 소련 공군은 숫자 만큼 그 질이 좋진 못했고[11] 이는 일부 부대를 제외하면 44년까지도 달라지지 않았다.[12] 아돌프 갈란트는 45년에는 항공작전이 제대로 되는곳이 없지만 동부전선은 예외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정도. 독일 공군의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은 39년 개전 이래로 쭈욱 인력난에 시달렸다. 태평양 전쟁기 미 해병 항공대가 엄청난 수의 전투기 조종사들을 생산해 낸 것을 보면 전투기 조종사 양성이 쉬워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공중전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해 내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의 훈련이 요구된다. 단순히 전투기를 띄우는 것 외 편대 전술, 붐 엔 줌, 에너지 파이팅등 다양하고 복잡한 전술을 연마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된 공중전에 전사한 조종사들을 대체할 조종사들을 양성하는 속도는 느렸고 43년 후반 부터는 대충 어느정도 비행기를 날 줄 아는 히틀러 청년단원들을 선발하여 땜빵하였으나 통할 리가 없었고 이들은 공중전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격추되어 버리고 숙련된 고참 조종사들은 이러한 악조건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면서 조금씩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공군 역사상 전무후무할 전설적인 슈퍼 에이스 부대인 JV-44가 있었다. 이들은 최신 전투기인 Me 262를 지급받았으며 부대원들 대부분이 격추수 100, 아니 하다못해 80 정도는 가뿐히 넘어가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전황이 겉잡을 수 없이 나빠져 전황을 바꾸지는 못했는데,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조차 JV-44에서 1대도 격추하지 못 하였다. 그러나 미군의 호위기만 1200대, 폭격기는 그보다 더 많이 출격한 상황에서 12대의 Me 262로 여러 대를 성공적으로 격추하고 빠지는 등 최선을 다하였다.[13]
2.2.1. 편제
관련 문서: 편대비행대전 전간기, Bf 109 기준 |
- 로테(Rotte, -n) - 2대: 선제공격을 담당하는 '장기(Leader. '선도기'라고도 부른다.)'와 장기의 엄호·장기가 놓친 적기의 추적 및 마무리를 담당하는 '요기(Wingman, Wingmate)'로 구성된다. 지금의 비행 분대와 같다.
- 케테(Kette) - 3대
- 슈밤(Schwarm, Schwärme) - 4대: 2개의 로테로 구성, 지금의 비행 편대와 같다.[14]
- 슈타펠(Staffel, -n) - 12대: 3개의 슈밤으로 구성, 연합군 전투비행대대(squadron)의 절반정도 규모를 가지고있다. 미군(25~28기),영국(20기) 대위가 지휘.
- 그루페(Gruppe, -n) - 36대 ~ 50대: 3~4개의 슈타펠로 구성되며 영국군 전투비행단(Wing 40~60기)에 비해 규모는 작거나 비슷하며 지휘하는 계급이 중령으로 비슷하다. 지휘관부족으로 대위나 소령이 지휘하는 경우는 매우 흔했다. 1개 그루페 산하의 슈타펠들은 같은 비행장과 기지를 사용한다. 기지에는 승무원, 정비병, 행정병, 헌병등 다양한 인력이 배치된다. 독일공군에서 전투비행대와 지원부대가 통합되어 독자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한 가장 소규모 제대이다.
- 게슈바더(Geschwader) - 100대 ~ 150대: 항공단. 3~4개의 그루페로 구성된다. 미국의 전투비행단(Group 75~100기)에 대응한다. 기체수는 미군의 비행단이 많아야 약 100대 정도이기 때문에 규모에서는 게슈바더가 많이 앞서나 지휘하는 계급이 비슷하다. 게슈바더 지휘부는 휘하의 그루페 기지 중 하나에 설치된다. 원래는 대령 보직이지만 전쟁초반에는 지휘관 부족으로 능력 있는 대위가 맡은 경우도 있었으며 전쟁이 격화되면서 소령이나 중령이 지휘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게슈바더라는 용어 자체는 원래 해군 용어로 동종의 군함으로 편성되는 전대를 지칭했다. 대게 루프트바페에는 여러 종류의 게슈바더가 존재했다. ( 슈투카게슈바더(Stukageschwader; 급강하 폭격기), 캄프게슈바더(Kampfgeschwader; 폭격기), 야크트게슈바더(Jagdgeschwader; 단발 전투기), 체어슈퇴러게슈바더(Zerstörergeschwader; 쌍발 전투기))
-
JG: 전투항공단 (Jagdgeschwader)
말 그대로 전투기만을 운용하는 항공단. Bf 109나 Fw 190 등의 단발 전투기나 Me 262 같은 제공 전투기들을 운용하는 항공단들이 여기에 속한다.[15] -
KG: 폭격항공단 (Kampfgeschwader)
He 111, Ju 88, Do 217 같은 중형 폭격기들부터 He 177 같은 중폭격기들을 운용한 항공단들이 여기에 속한다. -
StG: 급강하폭격항공단 (Sturzkampfgeschwader)
급강하폭격기들을 주로 운용하며 지상군을 지원하는 항공단. 절대다수가 Hs 123과 Ju 87로 이루어져 있었다. -
ZG: 구축항공단 (Zerstörergeschwader)
Bf 110을 위시한 중전투기들을 운용하는 항공단들이 속하는 부류. 전쟁 말기에는 Me 410를 주로 지급받고 요격전에 투입되었다. -
SG: 지상공격항공단 (Schlachtgeschwader)
지상공격기들을 운용하는 항공단. StG 와 비슷해보일수도 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StG 급강하폭격항공단이라 급강하폭격이 가능했던 기체들(Hs 123, Ju 87 등)만을 사용했고 SG는 지상공격항공단이라 Hs 129 같이 공격기들을 전부 운용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다만 실제로도 둘 사이에 큰 차이는 없던 건 사실이라 전쟁 후반에는 많은 StG들이 SG로 통합되었다. -
TG: 수송항공단 (Transportgeschwader)
수송기들을 운용하는 항공단들은 다 이 부류에 속한다. 대부분 Ju 52를 운용했고 He 111이나 소수의 Fw 200 또는 Ju 290을 운용하기도 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6군의 보급을 시도한 항공단들 역시 수송항공단의 부류에 속한다. -
NJG: 야간전투항공단 (Nachtjagdgeschwader)
특수개조된 야간전투기들을 운용하는항공단. 야간전투에서는 레이더나 대구경 기관포를 탑재할 수 있던 중전투기들이 선호되었던지라(사실 이는 일반 요격전에서도 마찬기지긴 하다) Bf 109 같은 단발전투기들보다는 Bf 110이나 Ju 88의 야간전투기 버전, Me 410을 주로 운용했다. 대부분의 경우 요격전에 투입되었다. He 219 같은 야간전투기들도 이 쪽으로 배치되었다. -
LG: 시범항공단 (Lehrgeschwader)
조종사들의 훈련을 담당한 항공단. 하지만 말이 훈련이지 대부분의 경우 (특히 전쟁 후반에는) 기갑교도사단처럼 일반 전투부대 취급받고 실전에서 굴렀다. 훈련을 담당하는 항공단이었던 만큼 기종을 Bf 109를 위시한 전투기들부터 Ju 87 같은 급강하폭격기나 Ju 88, He 111 같은 폭격기까지 가리지 않고 운용했다. -
LLG: 공정항공단(Luftlandegeschwader)
공수부대 팔시름예거의 투하를 담당한 비행단. 단순히 Ju 52 같은 수송기들부터 DFS 228, DFS 230 같은 글라이더나 Hs 126 같은 글라이더 견인기들까지 공수부대의 관련된 기체들은 다 이들이 운용했다. 역할이 역할이었던 만큼 전쟁 말기에는 대부분 해산되고[16] 소속 병력들은 지상군 소속으로 전투에 투입되었으며 보유 항공기들은 수송항공단 쪽으로 넘어갔다. - 플리거코어(Fliegerkorps) - 450대 ~ 500대: 항공군단. 3개 이상의 게슈바더로 구성된다. 미국의 Fighter command 나 Bomber corps, 영국공군의 전술공군에 대응한다.
- 루프트플로테(Luftflotte, -n) - 1000 ~ 1500대: 항공군 내지는 항공함대. 가장 큰 단위로 2개 이상의 플리거코어로 구성된다. 보통 대장-상급대장이 항공군 사령관이다. 1945년 종전 당시를 기준으로 독일은 총 8개의 항공함대를 운용했다.
2.2.2. 운용
역사상 가장 많은 항공기를 격추시킨 군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독일 공군의 총 격추수는 약 67,700대로 집계되며 이중 46,000대가 소련 공군을 상대로 거둔 전과다. 반대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격추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2차 대전 중 독일 공군은 약 43,000 ~ 49,000대의 항공기를 전투손실했는데 독일 공군의 격추셔틀인 소련 공군이 2차 대전 중 격추된 항공기가 45,000대라 더 적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소련 공군의 전투손실대비 비전투손실이 너무 높아서 전투손실의 일부가 비전투손실로 처리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어 실제로는 소련 공군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프랑스 침공 당시 지헬슈니트 작전에서 연합군은 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 생각하여 공군력의 일부만을 전선에 배치해두었지만 독일군은 공격 하나에 자신의 국가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였고 만일 실패했다간 거의 모든 기갑 부대를 소모하고 역공격 기회를 주었을 것이므로 가용 공군력의 대부분을 배치했다. 이는 연합군 공군에게 마치 독일군이 압도적인 공군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느끼도록 할 수 있었다. 독일 공군은 전 공군력의 2/3인 2,589대를 투입한 반면, 프랑스군은 1/3 수준인 879대만 투입했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는 넓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본토 밖에 전개된 기체가 많았다는 반론은 가능하나, 이런 식으로 본토 밖의 기체는 제외하고서라도 나머지 1,528대의 전투기와 690대의 폭격기는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다.[17]
여기에 스페인 내전에서 얻었던 경험들도 한몫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소련, 독일, 이탈리아를 제외한 강대국들은 의용군을 조금 보내거나 소련의 해양 수송을 조금 눈감아주는 등의 지원밖에 하지 않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는 달랐다. 이들은 그야말로 전폭적인 지원을 하여 스페인 내전을 신기술과 전술의 시험장으로 만들어버렸고 독일의 콘돌 군단이 내전종료 후 귀국할 때 들고온 엄청난 양의 실전 데이터는 독일 공군에게 전술 교정의 기회를 주어 양/질적 수준에서 열세라도 전술의 우세함으로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게 해준 것이다. 특히, 이 중 가장 큰 수익은 바로 모든 전투기에 무전기를 설치하여 편대간의 대화를 원활히 하는 것이 매우 효율적인 공중전을 가능하게 한다[18] 는 것을 독일 공군에게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공중전에서는 (똑같은 훈련 시간을 가졌다고 가정한) 공중전을 한 번 경험한 전투기 조종사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투기 조종사간의 실제 실력차가 엄청나다는 것을 보면 분명 스페인 내전에서의 귀중한 실전 경험들이 독일 공군의 조종사들을 매우 강화시켜줬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반면 소련은 내전 당시부터 공화파의 금고 보유량을 비롯한 받을건 다 받아 갔으면서도 막상 지원은 생색내며 도와줬으며, 그나마 T-26이나 I-16등을 운용하면서 얻은 전차전이나 항공전 경험은 단점을 교정하기보다는 잘한 점만을 부풀리는 식으로 이용해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날렸다. 물론 이후 벌어진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도 한 몫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 조종사의 훈련 시간은 루프트바페의 규모를 아득히 뛰어넘는 방대한 전선에 병력들은 우겨넣으면서 점점 짧아졌는데 미군 육군 항공대 조종사는 적절한 경험을 쌓은 에이스들이 배출되는 동시 이 에이스들을 계속 전선에 투입하는게 아니라 후방으로 돌려서 에이스들의 노하우를 전수하도록 하는 등 조종사 훈련이 잘 이루어졌다. 대전 후반이 될수록 연합군의 물량 공세(물량이라고 하지만 에이스들을 제외한 일반 파일럿, 특히 신참 조종사의 평균 실력은 미군 조종사가 압도하는 상황이 되어갔다. 질적으로도 우수해졌는데 양까지 압도하는 상황이니 버틸 수가 없다.)에 100기 격추수가 넘는 슈퍼 에이스들은 점차 하나둘씩 전사하고 신참 조종사만이 남아서, 상대하는 미국 육군 항공대에선 1일 에이스도 여럿 나올 정도로 굴욕을 당해야 했다. 2년 전만 해도 유럽 동부 전선에서 처참한 수준의 소련군을 상대로 학살을 하며 1일 에이스를 양산하던 독일 공군의 몰락이라 참으로 비참한 지경, 이젠 본토로 밀고들어오는 연합군의 4발 중폭격기와 호위기들을 상대해야했으며, 1944년 초 연합군과의 대주간에서도 피해를 입었다. 이후 아르덴 대공세 당시 프랑스 침공 때와 마찬가지로 가용 공군력을 투자한 보덴플라테 공세를 감행했다가 괴멸당했고 이후 로켓 전투기 Me 163, 제트 전투기 Me262 등을 비롯한 신무기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에 허덕이다 종전에 이르게 된다.
한편 공군의 지상 지원 임무라는 측면에서는 여타 연합군에 비해 비교적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전쟁 내내 Ju 87, 일명 " 슈투카"로 대표되는 루프트바페의 지상 지원 임무는 전투 곳곳에서 엄청난 충격을 주며 독일 육군의 기갑 부대가 진격하기 용이하게 해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당시 참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슈투카의 물리적인 피해는 예상외로 적었다고 한다.[19][20] 그러나 이렇게 슈투카의 물리적인 피해가 크지 않음에도 엄청난 전과를 세울 수 있었던 데에는 심리적인 효과가 컸다. 슈투카는 낙하시 특유의 굉음을 냈는데 이 소리만 들어도 보병 부대가 전의를 상실했다고 한다. 전쟁 초중반에는 이 점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공압 사이렌[21]을 일부러 달아서 더더욱 악랄하게 연합군을 괴롭혔다. 그러나 대전 후반기에 가선 연합군이 사이렌 소리에 익숙해져 되려 셀프 공습경보로 전락해버린 관계로 D형부터는 제거해 버렸다.
2.2.3. 조종사
전쟁 중반기인 1942년 여름부터 독일 공군은 지중해 방면, 영국 방면, 소련 방면, 즉 3면의 제공권을 지켜내야 한다는 어마무시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차차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특히 서부전선을 보면 독일 공군 파일럿들은 그야말로 혹사당했고 연합군보다 1인당 평균 출격 횟수가 무려 5배에서 10배까지 많았다. 서부 전선이 이정도이니 정말 격렬했던 동부전선의 독일 공군의 출격량이 얼마나 살인적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100기 이상 격추 수를 기록한 에이스 조종사가 많다고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독일 공군이 얼마나 몰려있었는지 보여주는 자료기도 하다. 다 대 다 식의 세력구도에서 그랬다면 괜찮다. 그러나 독일 공군은 압도적으로 수가 밀리고 있던 상황이었다.[22][23]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잘 훈련받은 공군 조종사들을 양성해야 했는데 공군 조종사들을 절때 뚝딱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독일의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은 공군 자원병과 징병 인원 그리고 신체 조건을 충족하는 히틀러 소년단원들에게 공군 학교에서 조종사 교육을 받게 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쟁 중반부터는 엄청난 출격량에 독일 공군의 꾸준한 출혈은 계속되었고[24] 양성된 조종사 숫자보다 잃은 조종사 숫자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독일 본토 항공전이 벌어지고 소련공군도 만만치 않아진 1943년 후반부터는 비행기 조종 교육을 받고 있는 히틀러 소년단원들을 정확하게 말하면 전투기를 띄울 줄 만 알면 바로 차출해서 전선에 투입하였다.
물론 독일 공군도 바보는 아니라서 연합군 비슷하게 일정 이상의 기간동안 싸운 파일럿은 뒤로 돌리려고 했었고 상황이 악화될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연합군 항공기는 훨씬 많았고 독일군은 가용자원에 비해 훨씬 큰 전투 영역과 물량, 질을 가진 상대와 싸워야 했으며 가면 갈수록 공격의 주도권을 넘겨줘버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상황에 처함으로서 혹사에 가까운 출격으로 가까스로 패망을 늦추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으며 가혹한 전장은 신참 파일럿들이 살아서 귀환하거나 휴가나 재배치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기간 동안 싸우기에는 너무나 힘든 곳이었다.
특히 전쟁 중반 비행기만 띄울 줄 안다고 바로 전선에 투입된 히틀러 유겐트 소년단원들은 공중전에서는 그저 연합군의 먹잇감이 되었고 경험이 있는 파일럿들은 결국 아무 지원도 못 받는 상태에서 전투를 치러야 하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이는 연합군이 P-51 머스탱을 호위기로 넣고 펼친 1944년 2월 논쟁 작전에서 참전 독일군 파일럿의 17%를 갈아버리고 그 뒤 4월부터는 40~50%에 가까운 손실을 안겨주며 서부전선의 그나마 괜찮은 파일럿들마저 꾸준히 갈리게 된다. 그 결과 전쟁 말기 보덴플라테 공세를 끝으로 서부 전선의 독일 공군은 사실상 소멸해 버렸고 상황이 그나마 좀 나았던 동부전선 조종사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독일 본토를 기지로 저항하다 전부 연합군에 투항하였다.
2.2.4. 보유 항공기 목록
2.2.5. 지상전
루프트바페는 전쟁 기간동안 공수부대(팔시름예거)를 휘하에 두었는데 이들의 전쟁 초반 활약은 대단했다. 베저위붕작전당시 팔시름예거는 노르웨이 한가운데 공수하여 당당히 퍼레이드하여 저항의지를 꺾었고 프랑스 침공때에는 제일 선두로 벨기에 에반 에말 요새로 강하하여 벨기에의 방어선을 무력화 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로인해 독일은 팔시름예거 부대를 증편했었으나 공수작전시 권총만 휴대하고 나머지 기본화기는 별도로 공수하는 식의 운영 상의 잠재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문제점은 롬멜의 북아프리카전선을 지원하는 크레타 섬 전투에서 폭발하는데, 안그래도 주간 낙하로 인해 영국군의 대공망에 노출되어가며 가까스로 착륙한 병사들은, 따로 투하된 개인화기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전투에서는 승리했으나, 팔시름예거는 큰 피해를 입었다. 히틀러는 크레타 섬 전투에서의 이런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공수 작전을 완전히 금지해버린다. 이후 팔시름예거는 정예부대 성격의 육전 부대로 운용되었다.공수 작전이 금지된 이후에도 지옥같은 크레타에서 살아남은 소수 베테랑들이 신병들을 강하게 훈련시켰던 관계로 전쟁 후기까지 필시름예거는 강력한 전투력을 유지했는데 1943년부터는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하여 헤르만 괴링 기갑사단과 함께 연합군을 상대로 엄청난 전투력을 보인다. 그중 백미가 바로 저 유명한 몬테카시노 수도원 전투이다. 이탈리아 전선 외에도 팔쉬름예거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후 서부전선에서도 맹활약을 하며 선전했지만 연합군의 팔레즈 포위망에서 다수의 병력과 장비를 상실하며 서부전선의 팔쉬름예거들은 사실상 궤멸되어버린다. 팔레즈 포위망을 탈출한 일부 팔쉬름예거들과 급히 충원된 보충병들로 1944년 아르덴 대공세 당시 다시 공수작전에 동원되지만, 그때는 공수 작전을 벌일 수송기나 연료도 없었고, 크레타와 노르망디 전역에서 활약한 베태랑들은 팔레즈 포위망에서 대부분 전사하고 나머지 부대는 이탈리아 전선에 묶여 있어, 큰 전과는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헤르만 괴링의 욕심으로 공군 내에 기갑 사단뿐 아니라 일종의 보병 사단도 두었다.
자세한 내용은 제1강하기갑사단 헤르만 괴링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공군 야전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3. 부대일람
개별 문서가 작성된 부대 기준3.1. 전투항공단
- JG 1
- JG 104
- JG 106
- JG 11
- JG 134
- JG 2
- JG 20
- JG 21
- JG 26
- JG 27
- JG 3
- JG 4
- JG 5
- JG 50
- JG 51
- JG 52
- JG 53
- JG 54
- JG 6
- JG 7
- JG 77
- JG z.b.V.
- JV-44
3.2. 폭격항공단
3.3. 지상공격항공단
4. 출신 인물
독일 연방군의 공군에서도 복무한 인물: ◇ |
-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 귄터 랄◇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25]
- 마르틴 드레베스
- 발터 노보트니
- 발터 외자우
- 발터 크루핀스키◇
- 베르너 묄더스
- 베른트 폰 브라우히치
-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 브루노 브로이어
- 빌리 파울 헤롤트
- 빌헬름 바츠◇
- 아돌프 갈란트
- 알베르트 케셀링
- 에곤 마이어
- 에두아르트 샬모저
- 에리히 루도르퍼
- 에리히 하르트만◇[26]
- 오토 키텔
- 오토 푀네콜트
- 요하네스 슈타인호프◇
- 쿠르트 슈투덴트
- 쿠르트 탄처◇
- 프란츠 슈티글러
- 프란츠 폰 베라
- 하랄트 크반트
- 하인리히 프린츠 추 자인 비트겐슈타인
- 하인츠 볼프강 슈나우퍼
- 한스 울리히 루델
-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
- 헤르만 그라프
- 헤르만 괴링
- 헬무트 슈미트
- 호르스트 리페르트
- 후고 브로흐
5. 역대 최고사령관
나치 독일 공군 최고사령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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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괴링 |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 | }}}}}}}}} |
6. 매체에서
6.1. 영화
대체적으로 전쟁 초중반을 묘사한 작품에는 현실에서의 대전 초기의 모습처럼 강력한 적이자, 두렵기 그지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전쟁 말기를 그리는 작품에는 현실에서의 대전 말기처럼 고전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다운폴 - 독일 공군의 수장인 헤르만 괴링이 히틀러 눈 밖에 나는 모습과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이 그의 뒤를 이어 루프트바페의 이름 뿐인 수장이 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28]
- 덩케르크 - 독일 공군 소속 Ju 87 급강하폭격기 편대가 영국군, 프랑스군 지상 병력들을 폭격하는데 지상 병력들은 엎드리거나 기총 세례를 재주껏 피해보면서 저 악마의 사이렌 소리가 멀리 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누워서 자신이 가진 총으로 대공 사격을 시도하는 병사도 보이지만 맞추지 못하고 폭격을 당할 뿐이다. Bf 109[a]도 스핏파이어 포티스 편대와 교전하는 모습으로 나오며, 포티스 편대장과 콜린스를 격추시킨다. 그 외에 He 111 폭격기도 함선을 폭격하는 모습으로 최종 보스급의 위용을 보인다. 전쟁 초반 당시 독일 공군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잘 보여준다.
- 퓨리 - 전쟁 후반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하늘을 뒤덮어 가는 엄청난 숫자의 연합군 공군 병력에 고작 제트기 몇 대로 맞서려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왓 이프...?[31] - 어느 날과 같이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왠 날아다니는 강철 거인과 그 위에 올라탄 방패 든 아가씨한테 끔살당한다.
-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 독일 공군 소속의 전투기가 두 대 등장.[32] 한 대는 터널에서 어처구니 없게 리타이어하고, 한 대는 헨리 존스의 기상천외한 전법으로 추락해버린다.[33]
- 지상 최대의 작전 -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프릴러와 워다르시크가 모는 단 두 대의 전투기로[34][35] 최대한 연합군을 공격해 보나, 이내 안 되겠는지 뒤로 빠지면서 "위대한 독일 공군이여!"라는 이전의 전적에 대한 찬양과 앞으로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한탄이 섞인 대사를 한다.
6.2. 게임
- IL-2 Sturmovik 시리즈
- Luftwaffe Commander - 루프트바페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1999년작 게임으로, 연합국 공군과 교전을 하거나 도시, 비행장 등의 시설을 폭격할 수 있다.
- 워 썬더 - 워 썬더/항공 병기/독일 트리
- 월드 오브 워플레인 - 월드 오브 워플레인/독일 테크 트리
- 울펜슈타인 시리즈 - 현실과 달리 압도적인 기술력과 물량으로 연합군 공군을 궤멸하고 온 세상의 하늘을 지배하는데 성공한다. Ho 229가 제식 전투기로 운용되고 있으며 그 외 최신형 스텔스 수송 헬기와 비행선도 운용하고 있다.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는 초대형 공중전함 ' 아우스메르처(Ausmerzer, 절멸자)'를 운영하는 것도 밝혀지는데, 이 공중전함은 핵 폭격을 견딘다. 추가로 우주로 이동이 가능한 하우네부-V까지 있다.
7. 여담
피에르 클로스테르망은 당시 독일 공군 에이스들의 격추 기록을 보고는 조작이 있었을 것이라 의심하며 "정말 그런 에이스가 있다면 한번 붙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1]
전쟁 말기에는 흰색 테두리 없이 새겼다.
[2]
이쪽은 실전에서 일부 반나치 성향 조종사들이 일부러 가리거나 지우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3]
두 사진 다 엔진에 벌지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G-5 이후로 보이는데 일단 원출처에서는 두 사진 다 G-6로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종석 유리에 신형 캐노피였던 에를라 하우베(Erla Haube)가 적용된 모습이다.
[4]
대표적으로 이곳에서 처음 생긴
슈밤 대형은 연합군에서 그대로 모방했고, 현대의 공군 전술의 표준이 되었다.
[5]
겨울전쟁과
계속전쟁 당시의
핀란드의
에이노 일마리 유틸라이넨이 소련(러시아)과 나치 독일 94기 격추를 기록하여 비독일군 중 최고 기록이다.
[6]
당시에는 레이더도 야간 중전투기에나 겨우 달리고 제트엔진도 대전 후기에 와서야 등장했고 각종 항공전자장비도 없거나 매우 빈약하다 보니까 비행기의 가격이 현대에 비해 매우 저렴했다. 우편도 대부분 비행기편으로 할 정도였고 대공황이 오기 전까진 경비행기를 가지고 있는 가정도 훨씬 많았다. 이는 각국의 군대에서도 마찬가지. 물론 독일의
Ta 152나 일본의
M6A 세이란같은 최근 기준으로 환산해도 굉장히 비싼 예외 사례도 있었다.
[7]
소련 공군은 질적인 발전이 정체되어 있어서 전쟁 중반부터는 소련 공군이 독일 공군의 20배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을 들이밀었기에 이전에 비하면 조금 더 힘들어지기는 했지만 질적으로 덜떨어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영미가 전투기로는 못쓸 물건이라고 악평한 P-39가 소련 공군이 운용한 가장 고성능 기체의 하나라는 점만 보더라도 그 질적인 수준에 대해서 더 설명이 필요없다. 동부전선에서 독일 공군이 숫적 열세에 시달린 건 영미의 공습을 저지하기 위함으로 전투기의 75% 이상이 서유럽의 방공전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길게 갈 것 없이 서부전선에서는 영국 본토 항공전을 끝으로 제공권을 상실하면서 사실상 은퇴한 He 111이나 Ju 87같은 폭격기들이 전쟁 말기까지 제공권이 소련 공군에 완전히 잡히지 않았던 동부전선에서는 1945년까지도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했다. 서부전선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8]
이것은 나치 정권이 군의 재무장을 급속도로 추진하면서 당장 급한 전투기와 급강하 폭격기에 우선 순위를 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빠른 시간에 몸집을 불리다 보니 개발이 오래 걸리는 장거리 폭격기는 후 순위로 밀린 것이다. 거기에 열정적으로 4발 중폭격기(일명 우랄 폭격기) 사업을 추진하던 베버 장군이 사망하고 곧바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당장 급해 보이지 않던 전략폭격기 개발은 취소된다.
[9]
항공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강하한다는 이유로 공수부대가 공군 소속인 국가들도 여럿 있었다. 전 세계에서 공수부대를 가장 대규모로 운영하는 소련/러시아도 초창기에는 공군 소속이었다.
[10]
최종 계급은 공군 비행대장(General der Flieger), 해군에선 대령까지 진급 후 공군으로 전군했다.
[11]
단 그렇다고 소련 공군의 질이 아주 형편없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이쪽 공군의 실력도 누적이 되고, 신형기들의 등장과 서방과 독일에 비해서 열악하지만 개전초기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양성체계 등등의 이유로 동부전선의 루프트바페 조종사들도 꾸준히 격추 당하고 있었다.
[12]
하지만 육상의 전차 교환비와 마찬가지로 역전은 못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점점 격차를 줄이는게 문제였는데 1941년에는 3.68이였지만 1944년도에는 3.33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독일이 그래도 3대는 잡는다라고 하지만 1941-44년 까지의 평균적으로 독일이 3.5 소련이 1이 였는데 문제는 독일은 1을 보충하기가 힘든 반면 소련은 3.5의 보충이 가능했다.
[13]
애초에 JV-44가 창설된 배경부터 슬슬
나치 독일이 붕괴되기 시작하고
아돌프 갈란트가 전투기 총감에서 해임되어 만든 것이니 활약할 수 없는 구조였다.
[14]
이 네 기 편대 전술은 지금까지도 표준 전술로 이어져오고 있다.
편대비행 문서의 슈밤 대형 문단 참조.
[15]
사실 Me 262는 쌍발전투기지만 운용교리상
Bf 110,
Me 410 같은 중전투기보다는 Bf 109등에 가까운 단발전투기에 가깝게 굴렸기에 대다수가 구축항공단이 아닌 전투항공단에 배치되었다. 물론 예외도 있는 법이라서 야간전투기 Me 262 같은 경우는 야간전투항공단에 배치되었다.
[16]
독일 공수부대 자체가 1941년 벌어진
크레타 전투이후 4년 뒤인
벌지 전투까지 3년 동안 단 한번도 공수투하되지 않았기에 그 사이에 공정항공단의 역할이 사실상 많이 무의미해지기는 했다.
[17]
출처
전격전의 전설 p-96
[18]
반대로, 지구 반대편의 동맹국 일본(특히 일본 해군 항공대)은 끝까지 이걸 안 해서 망했다. 일부 기체에 무전기가 설치되기는 했으나 장식 수준이어서 대다수의 경우에는 제거하고 운용되었고, 정비 병력들의 무전기 관련 이해도도 높지 않았다. 이러한 무전기의 부재는 그나마 태평양 전쟁 초반에는 무전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감으로 공중전을 수행하는 베테랑 조종사들의 존재 덕에 어느 정도 상쇄되었으나, 대전이 계속되면서 이러한 베테랑 조종사들이 대부분 사망하면서 무전기의 부재는 일본군 조종사들에게 매우 큰 손실을 강요했다.
[19]
이는
오토 카리우스의 자서전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다. 다만 오토 카리우스가 슈투카의 전과를 서술한 부분은 1943년 말에서 1944년인 대전 후기이기에, 전체적으로 독일 공군 조종사들의 기량이 하락하였다는 점은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20]
사실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것이다. 슈투카는 어디까지나 단발 엔진 급강하폭격기였기에 폭장량이 많아야 1톤 500kg(D-3 기준) 정도였고, 당연히 대전 말 미군이나 영국군의 2발/4발 중폭격기처럼 높은 폭장량을 앞세워서 폭격으로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급강하폭격의 명중률이 수평 폭격에 비해 높았다고는 하지만 백발 백중은 아니었을 테니 실질적인 피해는 생각보다는 꽤 적었을 것이다.
[21]
나팔 2개를 이어놓은 것처럼 생긴 사이렌인데 전방에서 들어오는 공기를 압축하여 후방으로 뿜을 때 소리가 나도록 만든 사이렌이다.
[22]
조종사가 매 출격시마다 적기를 5대씩 격추한다고 해도 최소 20번을 연속으로 격추해야 격추수 100기를 채울 수 있고 매 전투마다 5대씩 격추하는 에이스니 전투중 격추되는 확률을 20%로 봐도 격추수 100기를 채울때까지 생존율이 1x(0.8^20)x100 = 1.152921504%가 나온다.
[23]
독일 공군이 행한 전투는 대부분 자군이 확보한 지역에서 벌어진 방어 전투였기 때문에 격추되어도 낙하산으로 탈출한 경우 다시 전투에 투입 가능한 반면에 연합군은 독일 영내를 지속적으로 공습했기에 낙하산으로 탈출해도 대부분 포로로 잡히는 차이가 있다. 물론 대부분 격추수는 독일 밖인 소련에서 그로기 상태인 붉은 공군을 대상으로 얻은거지만 격추된 독일기의 대부분은 영국 공군과 미국 육군 항공대의 전과다.
[24]
영국 본토 항공전과
독일 본토 항공전은 다수의 전투기 파일럿이 전사했다면 동부전선에서는 무리한 육군 지원 작전으로 소련군의 방공망에 수많은 폭격기가 갈려나갔다.
[25]
루프트바페의 소령계급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련 전선에서 대공포에 맞아 추락하기 전까지 100여번의 전투 임무를 수행했었다고 한다.
[26]
2차대전 최고의 전투기 에이스다.
[a]
실제 Bf 109는 아니고
Ha-1112가 대역으로 나왔다.
[28]
이때 로베르트가 "자넨 수백대의 제트 전투기를 지휘하게 될 걸세."라는 히틀러의 말에 "아직도 그런 게 남았습니까⋯."라며 웃으면서 넘긴다.
[a]
[a]
[31]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애니메이션이다.
[32]
그런데 기종은 가상의 기종인지 현실의 Bf 109랑 모습이 많이 다르다.
[33]
해변가에서 모여 있는 갈메기 때에게 우산으로 겁을 줘서
버드 스트라이크를 유도. 새 떼와 거하게 부딪힌 전투기는
프로펠러가 망가져서 산에 꼬라박는다.
[34]
슬슬 독일 공군의 전력이 한계에 다다를 시점인 데다가, 그 한계에 다다른 전력도 당장 급한 동부 전선으로 향했기 때문에 이게 최대였다.
[35]
영화상으론 비무장 연락기인
Bf 108이 나오지만 실제로 이들이 탔던 것은
Fw 190이다. 아마 당시 촬영 기술의 한계와 실제 190 기체를 구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