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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8:46:45

조지 루카스

조지 루커스에서 넘어옴
조지 루카스의 주요 수상 및 수훈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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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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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잉마르 베리만 없음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우디 앨런 잔느 모로 없음 카트린 드뇌브 없음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제인 폰다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클린트 이스트우드 없음 장폴 벨몽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없음 아녜스 바르다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장피에르 레오 제프리 카첸버그 없음 알랭 들롱 없음
2021년 2022년 2023년
마르코 벨로키오 조디 포스터 톰 크루즈 포레스트 휘태커 마이클 더글러스
2023년 2024년 2025년
해리슨 포드 조지 루카스 스튜디오 지브리 메릴 스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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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 예술 훈장 수훈자
20세기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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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85년 <colbgcolor=#FFFFFF,#1F2023>엘리엇 카터, 랄프 엘리슨, 호세 페레, 마사 그레이엄, 루이스 네벨슨, 조지아 오키프, 레온타인 프라이스
1986년 매리언 앤더슨, 프랭크 카프라, 에런 코플런드, 빌럼 데 쿠닝, 아그네스 드 밀, 에바 르 갈리엔, 앨런 로맥스, 루이스 멈퍼드, 유도라 웰티
1987년 로메어 비어든, 엘라 피츠제럴드, 하워드 네메롭, 알윈 니콜라이, 이사무 노구치, 윌리엄 슈먼, 로버트 펜 워런
1988년 솔 벨로, 헬렌 헤이스, 고던 파크스, 이오밍 페이, 제롬 로빈스, 루돌프 제르킨, 버질 톰슨, 시드니 프리드버그, 로저 L. 스티븐스
1989년 레오폴드 아들러, 캐서린 던햄,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마틴 프리드먼, 디지 길레스피, 워커 핸콕,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체스와프 미워시, 로버트 마더웰, 존 업다이크
1990년 조지 애보트, 험 크로닌, 제시카 탠디, 메세 커닝햄, 재스퍼 존스, 제이콥 로렌스, 비비 킹, 이안 맥하그, 비벌리 실즈
1991년 모리스 아브라바넬, 로이 에이커프, 피에트로 벨루스치, J. 카터 브라운, 찰스 콜스, 존 O. 크로스비, 리처드 디벤콘, 키티 칼리슬, 펄 프리머스, 아이작 스턴
1992년 마릴린 혼, 제임스 얼 존스, 알란 하우저, 미니 펄, 로버트 소득, 얼 스크럭스, 로버트 쇼, 빌리 테일러, 로버트 벤츄리 & 데니스 스콧 브라운, 로버트 와이즈
1993년 캡 캘러웨이, 레이 찰스, 베스 로막스 하웨스, 스탠리 쿠니츠 , 로버트 메릴, 아서 밀러,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이드 리차드, 윌리엄 스타이런, 폴 테일러, 빌리 와일더
1994년 해리 벨라폰테, 데이브 브루벡, 셀리아 크루즈, 도로시 딜레이, 줄리 해리스, 에릭 호킨스, 진 켈리, 피트 시거 , 웨인 티보, 리차드 윌버
1995년 리차 알바네세, 그웬돌린 브룩스, 오시 데이비스 & 루비 디, 데이빗 다이아몬드, 제임스 잉고 프리드, 밥 호프, 로이 리히텐슈타인, 아서 미첼, 빌 먼로
1996년 에드워드 올비, 사라 콜드웰, 해리 칼라한, 젤다 피챈들러, 랄로 게레로, 라이어널 햄프턴, 벨라 루이츠키, 로버트 레드포드, 모리스 센댁, 스티븐 손드하임
1997년 루이즈 부르주아, 베티 카터, 댄 킬리, 안젤라 랜스버리, 제임스 리바인, 티토 푸엔테, 제이슨 로바즈, 에드워드 빌렐라, 독 왓슨
1998년 자크 드엠보, 패츠 도미노, 잭 엘리엇, 프랭크 게리, 아그네스 마틴, 그레고리 펙, 로베르타 피터스, 필립 로스, 그웬 버든
1999년 아레사 프랭클린, 마이클 그레이브스, 오데타, 노만 레어, 로제타 르누아르, 하비 리히텐스타인, 리디아 멘도자, 조지 시걸, 마리아 톨치프
2000년 마야 안젤루, 에디 아놀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베니 카터, 척 클로즈, 호톤 푸트, 클래스 올덴버그, 이작 펄만, 해롤드 프린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21세기 수훈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01년 <colbgcolor=#FFFFFF,#1F2023>루톨포 아나야, 조니 캐시, 커크 더글러스, 헬렌 프랑켄탈러, 주디스 제이미슨, 요요마, 마이크 니콜스
2002년 플로렌스 놀, 트리샤 브라운, 필립 드 몬테벨로, 우타 하겐, 로렌스 핼프린, 알 허쉬펠드, 조지 존스, 밍 조 리, 스모키 로빈슨
2003년 비버리 클리어리, 라프 에스퀴스, 수잔 파렐, 버디 가이, 론 하워드, 레너드 슬래트킨, 조지 스트레이트, 토미 튠
2004년 레이 브래드버리, 칼리슬 플로이드, 프레데릭 하트, 안소니 헥트, 존 루스번, 빈센트 스컬리, 트와일라 사프
2005년 루이스 오킨클로스, 제임스 데프라이스트, 파키토 드 리베라, 로버트 듀발, 올리 존스톤, 윈튼 마살리스, 티나 라미레즈, 돌리 파튼
2006년 윌리엄 볼컴, 시드 챠리시, 로이 데카라바, 에릭 쿤젤, 그레고리 라바사, 빅토르 슈레켄고스트, 랄프 스탠리
2007년 모르텐 로리젠, 스콧 모마데이, 크레이그 노엘, 레스 폴, 조지 투커, 앤드루 와이어스
2008년 스탠 리, 리처드 M. 셔먼, 로버트 B. 셔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행크 존스, 헤수스 모르폴스
2009년 밥 딜런, 클린트 이스트우드, 밀튼 글레이저, 마야 린, 리타 모레노, 제시 노먼, 프랭크 스텔라, 마이클 틸슨 토머스, 존 윌리엄스
2010년 로버트 브러스타인, 밴 클라이번, 마크 디 수베로, 도날드 홀, 퀸시 존스, 하퍼 리, 소니 롤린스, 메릴 스트립, 제임스 테일러
2011년 윌 바넷, 리타 도브, 알 파치노, 마틴 퍼이어, 멜 틸리스, 안드레 왓츠
2012년 허브 앨퍼트, 조안 마이어스 브라운, 르네 플레밍, 어니스트 J. 게인즈, 엘스워스 켈리, 토니 쿠슈너, 조지 루카스, 일레인 메이, 로리 올린 , 알렌 투생
2013년 줄리아 알바레즈, 빌 T. 존스, 존 캔더, 제프리 카첸버그, 맥신 홍 킹스턴, 앨버트 메이즐스, 린다 론스태드, 빌리 첸 & 토드 윌리엄스, 제임스 터렐
2014년 존 발데사리, 핑 총, 미리암 콜론, 샐리 필드, 앤 해밀턴, 스티븐 킹, 메레디스 몽크, 조지 셜리, 토비아스 울프
2015년 멜 브룩스, 산드라 시스네로스, 모건 프리먼, 필립 글래스, 베리 골디, 산티아고 지메네즈, 랄프 레몬, 오드라 맥도널드, 루이스 발데스, 잭 위튼
2016년 없음
2017년 없음
2018년 없음
2019년 앨리슨 크라우스, 샤론 퍼시 록펠러, 미군 군악대, 존 보이트
2020년 토비 키스, 리키 스캑스, 메리 코스타, 닉 우트, 얼 A. 파웰 3세
2021년 브루스 스프링스틴, 글래디스 나이트, 민디 케일링, 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 호세 펠리시아노, 베라 왕, 조안 시게카와, 주디 바카, 프레드 아이커너, 안토니오 마르토렐, 빌리 홀리데이 극장, 국제흑인댄스협회
출처: National Medal of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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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I 평생 공로상
파일:미국영화연구소 로고.svg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973년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존 포드 제임스 캐그니 오슨 웰스 윌리엄 와일러 베티 데이비스
1978년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헨리 폰다 앨프리드 히치콕 제임스 스튜어트 프레드 아스테어 프랭크 카프라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존 휴스턴 릴리안 기시 진 켈리 빌리 와일더 바버라 스탠윅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잭 레먼 그레고리 펙 데이비드 린 커크 더글러스 시드니 푸아티에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잭 니콜슨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틴 스코세이지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로버트 와이즈 더스틴 호프먼 해리슨 포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톰 행크스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조지 루카스 숀 코너리 알 파치노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워렌 비티 마이클 더글러스 마이크 니콜스 모건 프리먼 셜리 맥클레인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멜 브룩스 제인 폰다 스티브 마틴 존 윌리엄스 다이앤 키튼
2018년 2019년 2022년[1] 2023년
조지 클루니 덴젤 워싱턴 줄리 앤드류스 니콜 키드먼
[1] 2020년 시상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인해 시상식 개최가 2년 연기되었다. }}}}}}}}}}}}

파일:Kennedy Center honors.jpg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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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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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000000> 1978년 <colbgcolor=#fff,#1f2023>매리언 앤더슨, 프레드 아스테어, 조지 발란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리처드 로저스
1979년 에런 코플런드, 엘라 피츠제럴드, 헨리 폰다, 마사 그레이엄, 테네시 윌리엄스
1980년 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캐그니, 애그니스 데밀, 린 폰탠, 리언타인 프라이스
1981년 카운트 베이시, 케리 그랜트, 제롬 로빈스, 헬렌 헤이스, 루돌프 세르킨
1982년 조지 애벗, 릴리안 기시, 베니 굿맨, 진 켈리, 유진 오르만디
1983년 캐서린 던햄, 엘리아 카잔, 프랭크 시나트라, 제임스 스튜어트, 버질 톰슨
1984년 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1985년 머스 커닝햄, 밥 호프, 아이린 던, 앨런 제이 러너, 프레더릭 로, 베벌리 실즈
1986년 루실 볼, 레이 찰스, 제시카 텐디, 험 크로닌, 예후디 메뉴힌, 앤서니 튜더
1987년 페리 코모,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베티 데이비스, 네이선 밀스타인, 알윈 니콜라이
1988년 앨빈 에일리, 조지 번즈, 마이어나 로이, 알렉산더 슈나이더, 로저 L. 스티븐스
1989년 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1990년 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1991년 베티 콤덴, 로이 에이커프, 아돌프 그린, 헤럴드 니콜라스, 로버트 쇼, 그레고리 펙
1992년 라이어널 햄프턴,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진저 로저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폴 타일러
1993년 자니 카슨, 아서 미첼, 게오르그 솔티, 스티븐 손드하임, 매리언 윌리엄스
1994년 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1995년 자크 당부아즈, 메릴린 혼, 비비 킹, 시드니 푸아티에, 닐 사이먼
1996년 에드워드 올비, 베니 카터, 조니 캐쉬, 잭 레먼, 마리아 톨치프
1997년 로렌 바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1998년 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넬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1999년 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2000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척 베리, 플라시도 도밍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안젤라 랜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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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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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000000> 2001년 <colbgcolor=#fff,#1f2023> 줄리 앤드류스, 밴 클라이번, 퀸시 존스, 잭 니콜슨,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2년 제임스 얼 존스, 제임스 리바인, 치타 리베라, 폴 사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2003년 제임스 브라운, 캐롤 버넷, 마이크 니콜스, 로레타 린, 이작 펄만
2004년 워렌 비티, 오시 데이비스 & 루비 리, 엘튼 존, 조앤 서덜랜드, 존 윌리엄스
2005년 토니 베넷, 수잔 파렐, 줄리 해리스, 로버트 레드포드, 티나 터너
2006년 주빈 메타, 돌리 파튼, 스모키 로빈슨, 스티븐 스필버그, 앤드루 로이드 웨버
2007년 레온 플라이셔, 스티브 마틴, 다이애나 로스, 마틴 스코세이지, 브라이언 윌슨
2008년 모건 프리먼, 조지 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트와일라 사프, 더 후
2009년 멜 브룩스, 데이브 브루벡, 그레이스 범브리, 로버트 드 니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2010년 멀 해거드, 제리 허먼, 빌 존스, 폴 매카트니, 오프라 윈프리
2011년 바바라 쿡, 닐 다이아몬드, 요요마, 소니 롤린스, 메릴 스트립
2012년 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레드 제플린, 나탈리아 마라코바
2013년 마티나 아로요, 허비 행콕, 빌리 조엘, 셜리 맥클레인, 카를로스 산타나
2014년 알 그린, 톰 행크스, 퍼트리샤 맥브라이드, 스팅, 릴리 톰린
2015년 캐롤 킹, 조지 루카스, 리타 모레노, 오자와 세이지, 시실리 타이슨
2016년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글스, 알 파치노, 마비스 스태플스, 제임스 테일러
2017년 카르멘 드 라발라데, 노먼 리어, 글로리아 에스테판, LL 쿨 J, 라이오넬 리치
2018년 셰어, 필립 글래스, 레바 매킨타이어, 웨인 쇼터, 해밀턴 팀 ( 린 마누엘 미란다, 토마스 카일, 알렉스 라카뫄르, 앤디 블렝큰불러)
2019년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세서미 스트리트, 샐리 필드, 린다 론스태드, 마이클 틸슨 토머스
2020년 데비 엘렌, 조안 바에즈, 가스 브룩스, 미도리, 딕 반 다이크
2021년 저스티노 디아즈, 베리 골디, 론 마이클스, 베트 미들러, 조니 미첼
2022년 조지 클루니, 에이미 그랜트, 글래디스 나이트, 타니아 레온, U2 ( 보노, 디 에지, 애덤 클레이튼, 래리 뮬렌 주니어)
2023년 퀸 라티파, 르네 플레밍, 빌리 크리스탈, 디안 워윅, 배리 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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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새턴 시상식
파일:saturn-award.png
영화 감독상
제4회
( 1976년)
제5회
( 1977년)
제6회
( 1978년)
댄 커터스
(마리안의 욕망)
스티븐 스필버그
( 미지와의 조우)
조지 루카스
( 스타워즈)
필립 카우프만
( 우주의 침입자)

<rowcolor=#fff> 시애틀 대중문화박물관(MoPOP) 선정
SF & 판타지 명예의 전당
<colcolor=#000,#f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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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0><colcolor=#fff> 1996년 A. E. 밴보트 · 잭 윌리엄슨 · 존 W. 캠벨 · 휴고 건즈백
1997년 안드레 노튼 · 아서 C. 클라크 · 아이작 아시모프 · 허버트 조지 웰스
1998년 프레데릭 폴 · 할 클레멘트 · 로버트 A. 하인라인 · C. L. 무어
1999년 레이 브래드버리 · 로버트 실버버그 · A. 메리트 · 쥘 베른
2000년 고든 R. 딕슨 · 폴 앤더슨 · 시어도어 스터전 · 에릭 프랭크 러셀
2001년 잭 밴스 · 어슐러 K. 르 귄 · 프리츠 라이버 · 알프리드 베스터
2002년 마이클 무어콕 · 새뮤얼 딜레이니 · 도널드 월하임 · 제임스 블리시
2003년 케이트 윌헬름 · 윌슨 터커 ·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 데이먼 나이트
2004년 해리 해리슨 · 브라이언 W. 올디스 · 에드워드 E. 스미스 · 메리 셸리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 레이 해리하우젠 · 필립 K. 딕 · 체슬리 본스텔
2006년 조지 루카스 · 앤 맥카프리 · 프랭크 켈리 프리스 · 프랭크 허버트
2007년 진 울프 · 리들리 스콧 · 진 로덴베리 · 에드 엠슈윌러
2008년 윌리엄 깁슨 · 이안 밸런타인 & 베티 밸런타인 · 리처드 파워스 · 로드 설링
2009년 프랭크 R. 폴 · 에드워드 L. 퍼먼 · 마이클 웰란 · 코니 윌리스
2010년 더글라스 트럼불 · 옥타비아 E. 버틀러 · 리처드 매드슨 · 로저 젤라즈니
2011년 할란 엘리슨 · 가드너 도조와 · 빈센트 디 페이트 · 장 앙리 가스통 지로
2012년 조 홀드먼 · 버질 핀레이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 제임스 카메론
2013년 H. R. 기거 · J. R. R. 톨킨 · 주디스 메릴 · 조애나 러스 · 데이비드 보위
2014년 프랭크 프라제타 · 올라프 스태플든 · 미야자키 하야오 · 리 브래킷 · 스탠리 큐브릭
2015년 커트 보니것 · 조르주 멜리에스 · 잭 고한 · 제임스 E. 건 · 존 쇤헤르
2016년 테리 프래쳇 · 더글러스 애덤스 · 스타트렉 · 블레이드 러너
20주년 기념 마거릿 애트우드 · 키스 데이비드 · 기예르모 델 토로 · 테리 길리엄 · 짐 헨슨 · 잭 커비 · 매들렌 렝글 · C. S. 루이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레너드 니모이 · 조지 오웰 · 타카하시 루미코 · 존 윌리엄스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던전 앤 드래곤 · 매트릭스 · 미스트 · 프린세스 브라이드 · 원더우먼 · 엑스파일
2017년 J. K. 롤링 · 스탠 리 · 젤다의 전설 ·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2018년 닐 게이먼 · 본다 N. 매킨타이어 · 닥터후 · 매직 더 개더링
2019년 테드 창 · D. C. 폰타나 · 스타워즈 · 왓치맨
2021년 니셸 니콜스 · 시고니 위버 · 고지라 · 달 세계 여행
2023년 존 카펜터 · N. K. 제미신 · · 록키 호러 픽쳐 쇼
2024년 은네디 오코라포르 · 니컬라 그리피스 · 블랙 팬서 · 드래곤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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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조지 루카스
George Lucas
파일:Lucas_Headshot_Color_web.jpg
본명 조지 월턴 루카스 주니어
George Walton Lucas Jr.
출생 1944년 5월 14일 ([age(1944-05-14)]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모데스토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68cm
부모 아버지 조지 월턴 루카스
어머니 도로시 엘리노어 루카스
배우자 마시아 루카스(1969년–1983년, 1녀)
멜로디 홉슨(2013년–현재, 1녀)
자녀 딸 아만다 루카스( 1981년생)[1]
딸 케이트 루카스( 1988년생)[A]
아들 제트 루카스( 1993년 2월 7일생)[A][4]
딸 에베레스트 홉슨 루카스( 2013년 8월 12일생)
학력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예술학 / 학사)
종교 무종교( 유신론)
직업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 제작자, 사업가
활동 1965년 ~ 현재
재산 55억 달러(한화 7조 6,700억원)[5] (2024년 4월 / 포브스)

1. 개요2. 커리어3. 스타워즈 외길 인생4. 자질 및 능력
4.1. 감독, 기술4.2. 각본4.3. 사업가
5. 유명한 발언
5.1.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 제작 이전5.2.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 제작 중5.3. 루카스필름을 디즈니에게 판매한 이후
6. 성격7. 팬덤과의 관계
7.1. 재평가7.2. 관련 문서
8. 그 외9. 필모그래피

[clearfix]

1. 개요


미국 영화감독, 프로듀서, 각본가, 前 기업인. 대표 시리즈는 스타워즈[6]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이다.

2. 커리어

파일:lucas1970s.jpg 파일:조지 루카스.jpg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Star+Wars+Force+Awakens+European+Film+Premiere+FImExHAbYnNx.jpg
<rowcolor=#ffffff> 1970년대의 모습 1990년대의 모습[7] 2015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시사회
소싯적에는 카 레이싱과 B급 SF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 당시만 해도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장래희망은 막연하게 카 레이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교통사고 이후 꿈을 접고 뜬금없이 USC 영화학과(School of Cinematic Arts,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입학했다. 당시 동기들이 그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다.[8] 이 외에도 기타 감독들과 친구로 지냈다. #1 #2

훗날의 이미지로 봐서는 다소 의외이지만, 학교 시절에 차기 유망주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이들 중 조지 루카스였다. 단편 "전자미궁: THX 1138 4EB(Electronic Labyrinth: THX 1138 4EB)"이 많은 상을 받고 워너 브라더스로부터 장학금까지 받았던 것이다.

대학을 나온 이후에는 절친한 친구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아메리칸 조에트로프(American Zoetrope)이란 영화 회사를 설립하고, 대학 시절 좋은 평가를 받았던 습작 《 THX1138》을 극장판으로 다시 제작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처절하게 망해버리며 젊은 영화인들의 야심찬 회사였던 아메리칸 조에트로프를 좌절시키는데 일조한다. 이후 아메리칸 조에트로프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개인 제작사 정도로 축소된다. 때문에 비평가들 사이에서 THX1138의 실패와 스타워즈의 성공은 미국 영화계의 상업적인 변질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메리칸 조에트로프를 나와서 만든 차기작 《 청춘낙서》는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197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포함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참고로 그 해 작품상은 《 스팅》, 감독상은 스팅의 조지 로이 힐. 1973년 북미 흥행 3위이다. 1, 2위는 엑소시스트 스팅. 4위는 빠삐용(영화)인데 청춘낙서가 무려 더블스코어의 흥행을 거뒀다. 장편 데뷔작의 실패로 회사도 말아먹고 잊혀질 뻔했던 조지 루카스는 기사회생에 성공한다. 코폴라와 헤어져 자신의 회사인 루카스필름을 차린 것도 이 때이다.

이 무렵부터 루카스는 자신이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있던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청춘낙서》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모두 쏟아부어 특수효과 팀인 ILM을 만들었고 ILM은 현재까지 영화 특수효과계의 최고봉으로 남아 있다. 루카스는 이제 스타워즈를 만들기 위한 구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스타워즈의 제작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조지프 캠벨의 저서 <영웅의 여정>에 올라온 일화에 따르면 어린이 영화 대본 집필에 착수하면서 이걸 현대의 동화로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을 했다는데 정작 주변의 반응은 '너 뭐하는거냐? 이런거 말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해라.'는 식으로 냉랭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루카스는 진행 중이던 《 지옥의 묵시록》 작업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넘기고 자신은 스타워즈 제작에 착수했지만 한동안 표류 상태로 영화 각본을 몇 번이고 뜯어고치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접한 뒤, 그 책에 자신이 쓰고 싶었던 내용이 있음을 깨닫고 조지프 캠벨의 다른 책들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초점을 잡고 집필에 착수했다. 그래서 스타워즈는 조지프 캠벨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신화나 고전설화, 혹은 역사적 사실로부터 모티브를 따왔다. 게다가 그것들을 잘 연계시켜서 만들어낸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스토리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비화는 조지프 캠벨과 빌 모이어스의 대담집 《신화의 힘》에서 캠벨이 직접 인증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오이디푸스적 관계는 원래 전세계 여기저기에 있는 신화에서 다양하게 나온다면서 스타워즈의 예를 든다.

그러나 완성된 결과물인 시놉시스는 유치하기 짝이 없고 대본은 상당히 읽기 어렵게 써서 당시 모든 영화사에서 퇴짜를 맞았다. 디즈니도 그중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1973년의 인터뷰에서 만약 월트 디즈니가 살아 있었다면 흔쾌히 제작을 수락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9][10] 아닌 게 아니라 루카스 본인이 오랜 디즈니의 팬이었던 것도 있고, 스타워즈의 제작 의도 역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며 스타워즈는 일종의 디즈니 영화와 같다고 설명하기도 했다.[11] # # #

청춘낙서를 배급해 흥행에 성공한 유니버설 픽처스조차도 '이게 뭐야?' 하면서 거절했다. 헌데 아이러니한 건, 스타워즈 대박 이후 방영한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 오리지널 시리즈가 유니버설 배급이라는 것. 이 드라마는 60년대부터 기획되었기에 스타워즈 짝퉁으로 보긴 억울하지만 방영 당시 스타워즈 짝퉁이란 욕은 다 먹고 시청률 감소에 에피소드 4 배급사이자 판권사 20세기 폭스에서 표절 소송을 벌여 길게 방영하지 못했다. 게다가 1980년대에 한국에서 속 별들의 전쟁이라고 스타워즈 속편인 것처럼 더빙 방영되었다.

영화사들 중 오직 20세기 폭스에서 빽을 통해 겨우겨우 쥐꼬리만한 돈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마저도 당시 폭스 간부이던 앨런 래드 주니어[12]가 그나마 지지해줘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스타워즈란 영화는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돈이 드는 프로젝트였고, 20세기 폭스에게 조금만 더 돈을 꿔달라고 조를 때마다 루카스 얼굴에 주름이 늘어갔다. 당시 제작진들 말에 의하면, 루카스는 너무나도 수척하고 무기력해져 있어서 몇 주 동안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본인 말로는 이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실어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3. 스타워즈 외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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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희망 제작 도중 촬영된 사진으로, 왼쪽이 루카스이고 오른쪽은 루크 스카이워커 역의 마크 해밀이다. 배경으로 랜드 스피더 도 보인다.

촬영을 끝낸 뒤 내부 시사회를 열었는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라이언 드 팔마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화 업계 종사자들은 필름을 보고 비웃었다. 그럴만한게 이 시사회에서 공개된 영화는 재편집이 이루어지기 전, 특수효과도 음악도 들어가지 않은 조지 루카스의 엉성한 편집본이었다. 이 편집본은 조지 루카스 본인이 봐도 매우 끔찍했다고 다큐멘터리에서 직접 이야기했을 정도여서 이후 전문 편집자들을 불러 새로 편집해야 했다. 이 새 편집본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새로운 희망이다.

그런데 내부 시사회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만은 엄청난 대박이 될 거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당시 미지와의 조우의 음악 담당이던 그 유명한 작곡가 존 윌리엄스를 소개시켜주기까지 했다. 자기가 소개시켜 준 윌리엄스가 작곡한 그 유명한 스타워즈 메인 테마를 듣게 된 스필버그는 곡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내가 이 곡을 받았어야 했는데!!!"라면서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겨우겨우 완성한 스타워즈의 개봉 당일에 루카스 본인은 이 영화가 실패할까 두려워 흥행성적을 체크할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가 부인의 설득으로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극장 앞에 장사진을 친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서 '도대체 무슨 영화를 사람들이 이 난리를 피우지?' 하고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니 스타워즈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스타워즈는 공전의 대히트를 쳤고, 루카스는 돈방석에 앉았다. 이때 루카스는 장사 수완을 발휘하여 자신의 감독 봉급을 깎는 대신 영화 프랜차이즈의 판권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후 영화 프랜차이즈 산업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당시 20세기 폭스의 이사진들이 망할게 뻔한 이런 프로젝트에 손댄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라며 스타워즈 제작을 허락한 사장을 가루가 되도록 깠고, 어차피 망할 영화니 투입되는 돈이나 줄여보자고 판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20세기 폭스는 스타워즈 관련 상품의 판권을 단돈 2만 달러에 팔아버렸다. 결과적으로 조지 루카스에게 수십억 달러를 거저 준 셈. 지금도 스타워즈의 판권 비즈니스가 알아서 그에게 벌어다주는 돈은 실로 엄청나다. #

스타워즈의 후속작인 《 제국의 역습》에선 감독으로서의 일이 너무나 힘든 것임을 느꼈다며 감독직을 선배 감독 어빈 커슈너에게 맡기고 프로듀서로서 참여했다. 하지만 스타워즈 월드의 크리에이터로서 루카스의 영향력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라, 사실상 감독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스타워즈 하면 그의 이름이 단번에 떠올라서인지 《제국의 역습》을 감독한 어빈 커슈너가 기자회견을 가질 때, 루카스는 아예 자리에 불참했다. 기자들이 죄다 루카스에게 질문할 게 뻔하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커슈너에게 불참 사실을 미리 이야기하며 '난 그 자리에 절대 안 간다. 하지만 감독은 바로 당신이니까, 당신에게 발언권이 있는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예상대로 기자들이 루카스를 찾자 커슈너는 감독에게 인터뷰할 일이지, 제작자에게 인터뷰하면 어쩌자는 거냐며 기자들을 데꿀멍시켰다. 클래식 트릴로지가 완결된 뒤엔 작가들을 고용해서 스타워즈 세계관이 소설과 만화책 등 다양한 매체로 세계관을 계속 이어가게 했다.

1990년대에 CG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프리퀄 트릴로지를 만드는데 적합한 시기가 왔다고 느껴서 프리퀄 제작에 착수했다. 프리퀄 제작에 앞서서 1997년엔 순 아날로그 작품인 에피소드 4, 5, 6의 버전 업에 착수해 디지털 효과를 다듬어 스타워즈 스페셜 에디션을 개봉시켰다. 프리퀄 시리즈에서 첫 편인 보이지 않는 위험은 에피5와 6처럼 자기는 제작자로 나서고 감독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했다. 그래서 론 하워드에게 감독직을 제안했지만, 하워드는 스타워즈는 조지 루카스가 다뤄야 한다며 거절했다. 찾아간 다른 감독들도 거절해서 루카스가 프리퀄 삼부작을 전부 감독하게 됐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창작자로서 자기가 창조한 시리즈에 애착을 갖고 있는데, 클래식 트릴로지 뿐만 아니라 프리퀄 트릴로지도 DVD와 블루레이를 출시할 때마다 디지털 효과로 다듬었다. 이에 대해 골수팬들은 경이로운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금자탑인 구작들을 CG로 다듬고 심지어는 몇몇 장면[13]을 갈아치우는 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는 07년 즈음 전혀 손대지 않은 순수 필름 상태의 에피소드 4, 5, 6이 DVD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디즈니에게 스타워즈를 매각하기 전엔 스타워즈 세계관의 최정점에 서 있으며, 끝없이 다양한 영역에서 스타워즈 관련 작품 & 상품들을 만들어냈다. 이쯤 되면 스타워즈 외길 인생이라 불릴 만하다.

스타워즈 말고도 그의 커리어에서 대작이라 불리는 영화 시리즈가 있는데, 바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합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감독은 스필버그가, 프로듀서는 루카스가 맡았다. 사실 인디아나 존스의 아이디어와 스토리는 루카스가 혼자 만들었다고 한다. 하와이의 모래사장에서 스필버그와 함께 모래성을 만들면서 놀고 있는 중 루카스가 인디아나 존스 이야기를 꺼냈는데, 스필버그가 단숨에 인디아나 존스를 영화로 제작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2012년에 간만에 제작한 영화인 《 레드 테일스》는 엄청난 제작비를 쓰고도 지루한 내용전개와 항공동호인 및 2차 세계대전 참전자들만 관심있어 할 만한 내용을 다루는 바람에 흥행과 작품성 평가가 바닥을 달렸다.

이 영화를 제작한 이후에 영화제작에 흥미를 잃었는지[14] ILM과 루카스아츠 등 계열사 일체를 포함한 자신의 제작사 루카스필름과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인디아나 존스 프랜차이즈를 염가 4조 원에 디즈니에 팔았다. 대신, 루카스는 회사를 팔아서 얻은 4조 원을 모조리 사회 기부했다. 판권을 매각한 가장 큰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한때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판권을 물려줄까 고민했지만, 자녀들이 거부했다고. 또 영화 세 편을 만드는 동안 10년이 걸렸고, 나이도 이미 노년에 이르렀기에 남은 여생을 가족들과 보내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

스타워즈 팬덤이 우려했던대로 디즈니는 확장 세계관 전체를 흑역사로 만들었고, 루카스는 실망한 스타워즈 팬덤에게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다. 이후 ' 스트레인지 매직'이라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지만 혹평을 받고 흥행에 실패했다.

깨어난 포스가 제작에 들어갈 무렵 자신의 아이디어를 디즈니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루카스는 회사 인수의 암묵적 조건으로 자신의 각본이 차기작에 사용되는 것을 내걸었지만 디즈니 입장에서 그러해야할 법적인 의무 자체는 없었기 때문에 밥 아이거, 캐슬린 케네디 등 임원진들의 논의 끝에 루카스의 각본은 폐기되었다. 각본을 퇴짜놓았을 뿐만 아니라 루카스의 참여를 거부해서 루카스는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배신감과 실망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 #. 루카스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의 스타워즈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으나 디즈니가 팬들을 위한 추억팔이로 방향을 잡았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하였다.

저작권 양도 이후에는 '창작 컨설턴트' 정도의 애매한 보직을 얻었고, 깨어난 포스 뿐만 아니라 뒤이어 나온 나머지 시퀄 영화들에 대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깨어난 포스에 대해서는 개봉 초반과 그 이후에 대해 상반되는 의견을 밝혔는데, 루카스필름의 수장 캐서린 케네디는 개봉 초반에 "조지 루카스가 영화를 좋아했다"고 밝혔으나, 이후 루카스 본인이 찰리 로즈 쇼에 출현해 "자신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제작진은 레트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며 실망감을 표시했으며 #, 라스트 제다이에 대해서는 아름답게 만들어졌다고 평했으며, 감상 이후 라이언 존슨 감독과 대담을 나누며 그를 칭찬했다고 한다. #

만들어지지 않은 루카스 버전의 7편에서, 루카스는 레아를 포스 유저로 만들 예정이었다고 마크 해밀이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

하지만 시퀄 시리즈가 망하자 다시 제작자로 나선다는 루머가 있다. # [15]

4. 자질 및 능력

영화의 연출과 감독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미흡하지만 영화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능력과 영화를 프랜차이즈화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며, 세계적인 시각효과 회사인 ILM을 설립해 할리우드의 특수효과와 CG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16]

비록 여러 명작들에 감독, 각본가로 참여했음에도 여러 사람들이 그의 능력에 의심을 품는 경우가 많다.

4.1. 감독, 기술

대학교 재학 시절엔 유망주로 통했고, 단편영화 전자 미로 THX 1138 4EB가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단편영화를 장편영화로 만든 THX1138로 이른 나이에 데뷔를 했으며, 청춘낙서는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루카스는 청춘낙서의 감독, 공동 각본가, 그리고 제작사인 루카스필름의 대표로 영화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청춘낙서는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기를 대표하는 청춘영화로서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을 정도이다.

즉 스타워즈 이전까지는 적은 예산 안에서 감독, 각본, 제작, 심지어는 촬영적인 면에도 큰 영향을 끼치며[17] 뛰어난 시각적 연출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괜찮은 영화를 만들어내던 독립영화인이었고, 작가주의적 영화의 유망주로 통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보다 분업화되고 체계적인 시스템, 독립영화와는 비교가 안되는 큰 규모의 예산과 인력, 구성이 탄탄한 서사와 연출이 요구되며 그것을 안정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는 메이저 영화에선 단점이 많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는 감독으로서 입봉한지 한참된 시점인 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에 가서도 개선되지 못했다. 스타워즈 다큐에서는 배우들로부터 어색한 대사와 불친절한 연기 디렉팅에 대해서 비판을 받았을 정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대표주자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영화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저예산 독립영화 시절에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던 셈이다.

루카스가 편집한 새로운 희망이 첫 상영회에서 안 좋은 평을 받았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루카스가 편집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루카스가 고용한 존 짐슨이 러프 컷 (rough cut)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출처 그 이후 루카스가 자신의 아내 마시아을 포함해 세 명의 편집자를 고용해 만든 현재의 스타워즈가 나온 것이다.

5·6편은 다른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다가, 90년대에 들어와 스타워즈 1·2·3편을 만들며 다시 감독으로 복귀했는데, 블록버스터의 거장이라는 칭호에 비해 연출이나 예술적 영역으로의 영화를 만드는 능력이 굉장히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블록버스터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예술적 영역에서 마틴 스콜세지와 비교될 정도로 인정받는다. 딜버트 만화(원작)에서는 독버트가 미국이 벌이는 음모론을 특수효과로 만드는 걸 조지 루카스가 담당하고 있다며 찾아가 인터뷰하기도 한다. 즉 루카스는 감독 일보다 다른 분야를 더 잘한다고 은근슬쩍 비꼰 것.

루카스의 시리즈들이 하나같이 대박이 난 점을 보면 알겠지만 최고 경영자, 영화 기획자, 특수 효과와 음향 기술자로서의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다. 또한 첨단 기술에 대한 선구안도 놀라워서 스타워즈의 특수효과를 담당하라고 만든 회사인 ILM은 이후 전세계 최고의 CG 회사로 성장했고 1982년 루카스아츠를 설립하여 당시 블루오션이었던 게임 산업에도 진출하였다. 또한 90년대 들어서 루카스는 디지털 상영관 극장과 가정에서 영화를 디지털 다운로드 형식으로 본다는 아이디어를 최초로 현실화하였다. 즉 영화 산업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긴 장본인이다.

클론의 습격》은 소니의 HD 디지털 카메라와 파나비전 렌즈를 이용한 100% 디지털 촬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로만 작업한 첫 블록버스터다. 다른 영화라면 엄두도 못낼 시도를, 루카스는 스타워즈 시리즈라는 이름값을 걸고 과감하게 시도한다. 스타워즈라는 대형 블록버스터의 과감한 시도와 성공으로, 이후 디지털 영화제작 시스템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현대에는 케이블 TV로 영화를 다운받아서 볼 수 있지만 1990년대에도 이 아이디어가 SF 영화에나 등장하는 것이었기에 혁신적이다.

또한 루카스는 화질-음질에 대한 성향도 까다로워서 스카이워커 사운드를 설립하여 극장에서 더욱 현실감있게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스테레오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춘 극장에 THX라는 인증마크를 주는 THX 시스템을 만들었다. 참고로 THX 시스템이 적용된 첫 영화가 바로 제다이의 귀환이다. THX 시스템은 1999년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위한 돌비 디지털-서라운드 EX라 불리는 새로운 디지털 사운드 시스템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 이 시스템은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개봉하는 모든 극장에 반강제적으로 설치됐다. 이 기술은 홈씨어터 기기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DVD가 등장한지 얼마 안됐을 때인 1999년 DVD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한 루카스는 스타워즈는 DVD 다음 세대의 매체로나 낼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DVD가 시장을 점령하고 이에 좌절한 북미 팬들의 아우성에 놀라서 발언을 철회하고 전 시리즈를 DVD로 내놓았다. HD DVD 블루레이의 싸움이 한창일 때에도 루카스는 불 건너 구경만 하며 인터넷 유료 다운로드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가 결국 블루레이 개정판을 내놓았다.

여담으로 픽사 스튜디오도 원래는 루카스필름 내의 컴퓨터그래픽 팀이었다. 영 셜록 홈즈 영화의 스테인그래스 기사가 살아움직이는 최초의 CG 특수효과 등을 제작하였으나 픽사 팀은 실사영화의 시각효과보다 CG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이 더 컸고, 마침 이혼으로 인해 자산처분이 필요했던 루카스의 권유로 스티브 잡스가 인수하여 여러해 동안 CG 단편 영화를 만들다 토이 스토리로 대박을 치게 된다.

또한 디지털 비선형영상편집의 대명사인 아비드도 루카스필름이 개발한 최초의 디지털편집 시스템인 에딧드로이드에서 시작되었으며, 아비드 출신 엔지니어들이 어도비 프리미어나 애플 파이널컷 프로 등의 개발에도 관여했다는 점에서 디지털 편집의 출발이 루카스필름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필름 촬영과 (필름을 잘라 붙이는) 필름 편집을 고집하는 절친 스티븐 스필버그와 달리 그 옛날에도 선형식 아날로그 편집의 느리고 성가신 과정을 싫어했던 루카스의 게으름(?)이 이제는 영상업계의 표준이 된 비선형 영상편집시스템(NLE)을 태동시킨 원동력이 된 셈이다.

헐리우드 유명 배경세트 디자이너인 댄 비숍은 조지 루카스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같이 일하기 싫은 부류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세트장으로 만들어서 찍을 수 있는 장면조차 CG로 처리하자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도한 그린 스크린을 사용하면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배우들조차 제대로 몰입을 하기 힘들고 전체적인 영상을 한번에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18] 그와 작업했던 배우들도 싫다고 대놓고 말하진 않더라도 인터뷰 등에서 한 발언을 보면 그의 연출방식을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2. 각본

다스 몰은 대사가 적습니다. 이 말은 조지 루카스가 쓴 대사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고, 캐릭터에게 엄청난 이점입니다.
- 크리스 스턱만
각본 면에서는 자주 까인다.

루카스는 원안 (story), 각본 (screenplay)을 둘 다 담당해 본 적이 있다. 루카스는 자신이 감독한 모든 영화들의 각본을 (공동)으로 담당했다. 루카스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의 각본을 리 브랙킷에게 맡겼지만, 이후 그녀의 각본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매우 다르게 나오자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원안을 기반으로 각본을 작성한다. 이후 로렌스 카스단과 공동으로 각본을 맡았으나 엔딩 크레딧에는 루카스가 원안, 리 브랙킷과 로렌스 카스단이 각본을 맡은 것으로 표기되었다. 이는 비록 브랙킷이 실제 영화에 한 기여는 적었지만 루카스가 그녀의 이름을 올려준 것이었다. 루카스는 이후 제다이의 귀환의 각본을 맡았다. 청춘낙서,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은 비록 시작은 루카스고 각본에도 참여했지만 공동 각본으로 루카스만의 능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새로운 희망도 마찬가지로, 루카스의 친구들과 같은 사람들이 다시 작성해주기도 했다.

사실 프리퀄 시리즈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그토록 욕을 먹은 것은 배우 본인의 연기력 문제도 있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한 대사 때문이기도 하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그렇다고 쳐도 무려 새뮤얼 L. 잭슨, 나탈리 포트먼, 이완 맥그리거 등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루카스 대사의 희생양이 되어 빛이 바랬다. 특히 절정은 아나킨과 파드메의 로맨스로 분명히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인데도 불구하고 오그라드는 대사와 연출력[19] 때문에 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아카데미 수상자 포트먼조차 연기로 까이게 하는 발연출의 위엄. 헤이든은 이전에 아카데미상 노미네이트 경력이 있을 정도로 발연기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뛰어난 경력이 있는 것이기에 배우들보다는 루카스의 각본에 더 문제가 있다 보는 시각이 많다.

팰퍼틴의 대사들은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프리퀄의 대사들은 밈으로서 선풍적인 인기를 타며 오히려 인기를 얻는 일이 생긴다.

스타워즈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기획한 것에서 보여지듯이 루카스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스토리와 설정을 만드는데는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 그러나 이를 각본으로 구체화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

그래서인지 오더 66장면, 포드 레이스, 3편 마지막 장면, 거의 모든 라이트세이버 전투들 등 루카스가 각본을 전담한 프리퀄들에서 가장 좋은 평가받는 장면들은 캐릭터들이 아무 말 없이 닥치고 있는 장면들이다. 그나마 짧은 시간에 캐릭터의 성격을 각인시키는건 잘하는 편이다. 일례로 새로운 희망에서 C3PO R2D2의 캐릭터성과 관계를 성립하는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을 들이는 것도 아니며, R2의 경우는 대사도 없다.

루카스는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정서, 동기, 감정 상태 등을 세밀하게 조율하며 만들어나가는 연기 연출에 큰 관심이 없고 '각본에 써 준대로 하면 될 것'이라는 식의 단순한 접근방식에 가까워 연기에 진지한 배우들에겐 끔찍한 경험이었을듯. 과도한 그린 스크린에 대해서도 "보이지 않는 것도 상상하며 실감있게 표현하는게 배우가 해야할 일"이라는 주의이다.

4.3. 사업가

조지 루카스가 영화 감독이 되지 않았다면 사업으로 대성했을 거란 말이 있다. 그만큼 그의 선구안은 뛰어났다.

1977년에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을 만들 당시 루카스가 20세기 폭스에 요구한 권리는 딱 둘이었다. 폭스사는 속으로 ”참 욕심이 없는 사람이네“라 생각하며 이 권리를 루카스에게 흔쾌히 넘겨주고, 그 대가로 그의 봉급을 15만 달러로 한정시켰다. 지금 시각으로는 폭스사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당시 영화 관련 상품은 OST 음반이나 소설판 정도였으며 영화의 속편을 제작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었다. 21세기에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관련 상품 전개는 큰 돈이 되는 사업이며 히트를 친 블록버스터의 속편 제작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는 사실상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시작한 사업 모델이다.[20]

새로운 희망이 공전절후의 히트를 친 후 루카스는 미국 완구사인 케너(Kenner)에 스타워즈 완구 사업권 라이선스를 주는 등 스타워즈 관련 상품 사업을 활발히 전개했다. 또한 그는 이로부터 나오는 수입으로 영화 제작과 관련된 기술 기업들을 여럿 설립했다. 특수효과 전문 기업인 ILM, 컴퓨터 그래픽 전문 회사인 픽사, 극장용 영상/음향 솔루션 전문 기업인 THX,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루카스아츠 등이 그 예다. 이 회사들은 모두 해당 분야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구자적인 기업들이며, 여기에도 루카스의 선견이 큰 역할을 했다.

5. 유명한 발언

5.1.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 제작 이전

"Special effects are just a tool, a means of telling a story Special effect without a story is a pretty boring thing.''
"특수효과는 그저 스토리를 전달해주는 도구입니다. 스토리가 없는 특수효과는 꽤 지루한 것이죠."
- < 제다이의 귀환> 제작 과정 인터뷰 #
"난 대기업이 영화산업을 장악하는게 싫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니 내가 기업의 수장이 됐네요. 모순이 아닐 수 없죠. 난 내가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존재가 됐습니다."
- 스타워즈 제작 영상중
"People who alter or destroy works of art and our cultural heritage for profit or as an exercise of power are barbarians."
"권력으로 이득을 위해 예술과 문화를 개조하거나 훼손하는 사람들은 야만인들입니다."'''
- 1988년, 흑백 영화를 컬러화 시키는 것을 반대하는 루카스의 발언 #

5.2.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 제작 중

"With the new digital technology and everything, pretty everything I imagine I can do..."
"새로운 디지털 기술들이 생겨났으니 제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죠..."
- < 클론의 습격> 제작 과정 중에 한 발언
"Jar Jar is the key to all of this. He is the funniest character we had in one of these movies..."
" 자자가 이 모든 것의 열쇠야. 그는 이 영화들에서 가장 웃긴 캐릭터이니..."
- 《 보이지 않는 위험》 제작 중에 한 발언 #
"Again it's like poetry, so that they rhyme. Every stanza kind of rhymes with the other one. (shrugs) Hopefully it will work..."
"마치 시 같은 것이니, 운율인 거야. 모든 연들이 다음 연과 운율로 이어지는 거지. (으쓱하고서는) 잘 되면 좋을텐데..."
- 《 보이지 않는 위험》 제작 중에 한 또 하나의 발언. #
"I may have gone too far in a few places."
"좀 몇몇 부분에서 막나간 거 같긴 하네."
- <보이지 않는 위험> 러프컷을 처음으로 감상 후

5.3. 루카스필름을 디즈니에게 판매한 이후

"I sold them to white slavers."
"스타워즈를 백인 노예상에게 팔아버렸어요." #[21]

6. 성격

인품 자체는 굉장히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소카 타노의 성우인 애슐리 엑스타인은 스타워즈 유튜버 Star Wars Theory와의 인터뷰에서 루카스가 클론 전쟁 방영 당시 행사를 할 때 행사들을 기부나 자선 등 좋은 곳에 연결해 놓았다며 좋은 사람이라 말했다. 커리어 내내 인품에 문제가 제기된 적은 없다시피하다.

자칭 팬이라는 인간이 싸인을 받은 뒤 해당 싸인을 비싸게 되팔려는 의도로 접근하자 절대 사인을 해줄 의사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등 의사 표현도 뚜렷하게 하고 자기 주관도 확실한 편이다. 이런 성향이 고집불통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팬덤과의 관계 악화에 일조를 했다. 책 Star Wars Archives: 1999 ~ 2005라는 서적에 루카스의 인터뷰가 대거 수록되어 있어서 그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루카스는 자신이 만든 영화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7. 팬덤과의 관계


RedLetterMedia 제작 동영상.

파일:external/cdn.collider.com/the-people-vs-george-lucas-dvd-cover.jpg

어떤 아마추어 영화 프로듀서가 제작한 <조지 루카스: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라는 꽤 유명한 코믹 다큐. 제목에 의하면 조지 루카스를 무진정 까는 것 같을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고 팬들의 조지 루카스에 대한 사랑과 불만을 탐구한다. 영문 위키백과 페이지

팬덤과의 관계가 영 좋지 못 했던걸로 유명하다. 팬들에게 "스타워즈를 만든 위대한 자"이자 "스타워즈를 망치는 원흉" 따로 있었다으로 평가받았다. 팬들에겐 애증이 교차하는 존재. 조지 루카스는 항상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팬들의 몰이해로 돌리는 고집불통의 태도를 늘 보여왔다.

조지 루카스는 감상에 방해되는 추가된 CGI, Han Shot First같은 캐릭터 붕괴, 제다이의 귀환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청년 시절 배우 얼굴을 삽입하는 등 스타워즈 팬들이 매우 사랑하는 오리지널 트릴로지 영화들을 마구 마개조해서 팬들에게 대차게 까인다. 그냥 원본 영화들을 찾아서 보면 안되냐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루카스가 가장 최근에 개정된 버전이 자신의 원래 의도가 담긴 "오리지널"이라 고집하면서 원본 영화 필름은 여전히 보존하고 있으면서 절대 홈비디오로 발매하지 않는다.

개봉 당시의 판본에 가장 가까운 정식 판본들은 1997년 스페셜 에디션 이전에 발매된 VHS 레이저디스크 판본[22], 그리고 2006년에 나온 DVD 세트 뿐이다. 이 DVD 세트는 2004년에 나온 DVD 세트에 수정을 가하지 않은 원본을 보너스 디스크로 추가한 것인데, Original unaltered trilogy라는 스페셜 에디션 제작용으로 쓰인 고화질의 디지털 스캔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해상도의 레이저디스크 버전을 그대로 집어 넣은 물건이라 팬들의 분노를 샀다. 디즈니 루카스필름 인수 이후로 팬들은 개봉 당시의 판본이 블루레이로 발매되기를 기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거 없다. 루카스의 저작권 문제 때문에 디즈니가 내고 싶어도 못 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스타워즈 첫 3부작의 영화사적인 원본에 가장 가까운 물건은 영화 상영 당시의 영화관용 복제 네거티브를 디지털화한 4k77(80, 83) 판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16mm 해적판 같은 비공식 필름(의 디지털 스캔) 뿐이다.

고화질의 오리지널 버전을 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은 "Harmy's Despecialized Edition"라는 팬메이드 영상들 밖에 없다. "Harmy"라는 커뮤니티 유저가 팀과 함께 몇천 시간을 애프터 이펙트 등으로 공들여서 오리지널을 최대한 고화질로 뽑아냈다. 이 영상들은 합법적으로 사거나 팔 수 없으며, 비트토렌트 등으로만 구할 수 있다. 이 영상들이 합법적인 편집인지 아니면 저작권 침해 및 문화 훼손인지 여러 논쟁이 일어졌는데, 2015년 11월 루카스아츠가 공식적으로 불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조지 루카스 본인이 전편을 감독한 프리퀄들은 오리지널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다. 오리지널 트릴로지 중에서 유일하게 직접 메가폰을 잡은 새로운 희망도 제작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리고 설정구멍과 캐릭터의 빈약한 심리 묘사를 확장 세계관 작가들이 메우는 일들도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새로운 희망에서 오비완 케노비 은하 공화국이 "수 천 세대 (over a thousand generation)" 동안 존재했다고 했는데 난데없이 클론의 습격에서 팰퍼틴이 "천 년 넘게 (over a thousand years)"라는 대사를 해서 루산 개혁이라는 땜방 설정이 생겼다.


Does anybody remember when George Lucas was an actual filmmaker? Stop! Stop re-releasing these movies! Stop this 3D nonsense!
혹시 조지 루카스가 진짜 영화 제작자이던 시절이 기억나시는 분 있나요? 그만해! 그만 좀 이 영화들을 재발매해! 3D 허튼수작은 고만해!
- 앵그리 죠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조지 루카스는 사업가의 자질은 워낙 출중해서 프랜차이즈를 우려먹는 경향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지금은 디즈니에 의해 무산되었지만 모든 스타워즈 영화들의 3D 재개봉.
파일:external/vignette1.wikia.nocookie.net/Kelly_and_George.jpg

게다가 본인이 Han Shot First 티쳐츠를 입는 등 팬덤에게 어그로를 끄는 모습도 자주 있다. 심지어 자신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제국의 역습을 최악의 스타워즈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참고로 제국의 역습은 루카스가 유일하게 스크린 라이터로 참여하지 않은 영화이다.

한 인터뷰에서 " 백인 노예상에게 스타워즈를 팔아버린 것 같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급사과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재평가받는다. @

7.1. 재평가

깨어난 포스가 개봉하자 루카스가 재평가되었다. 과거의 요소들을 그대로 가져온 2시간 30분짜리 오마쥬 영상이었던 깨어난 포스는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했고 이는 감독인 J.J. 에이브람스의 특징이다. 하지만 조지 루카스가 1~6편을 만들 때 항상 넓은 상상력으로 세계관을 확장시키려 했고 이것이 스타워즈의 매력인데 깨어난 포스는 그게 없었다는 것. 루카스 본인도 같은 얘기를 했다.

실제로 1~6편 사이에서는 인물들과 메카닉들이 훨씬 많이 나오고 타임라인이 진행되는만큼 발전되었는데 비해서 7편은 극중 수십년전인 6편때랑 변한 게 거의 없이 그대로다. 심지어 관객들의 리얼타임으로도 30여년후. 극중 시간이 지났으면 그만큼 메카나 행성에도 변화가 있어야 개연성이 있고 실제로 1~6은 그랬는데 7편은 수십년동안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개봉하자 이번엔 라이언 존슨과 비교되며 재평가를 받았다. 이후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개봉 이후에는 팬들은 하나같이 뒤늦게 루카스를 비판했던 것을 후회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23]

참고로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시퀄 트릴로지에 배신당했다고 느꼈으며 화를 냈었다'고 한다. 이는 디즈니 CEO 밥 아이거가 밝힌 것으로, 디즈니는 조지 루카스의 각본을 샀지만 그 아이디어를 전혀 쓰지 않았다고 한다. 계약 당시 디즈니는 그의 각본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조건이었고, 루카스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며, 루카스의 반발에도 케네디와 에이브람스는 스타워즈가 다른 길로 가야하는데 동의했다고 한다. 해당 기사에는 루카스의 각본 토대 또한 기술되어 있다. #

조지 루카스를 엄청나게 까내리는 the people vs George Lucas라는 2010년 다큐멘터리가 2022년에 다시 올라왔을 이 영상에 나온 팬들에 대한 다른 팬들의 여론은 험악하기 그지없다. '배우나 루카스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싸이코패스 집단이다'나 '니들이 이따위 짓을 하니까 조지가 스타워즈를 팔았지' 등등. 10년 남짓한 사이에 여론이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 체감이 가능한 대목.

7.2. 관련 문서

8. 그 외

심지어는 걸작인 《 카게무샤》가 자금 사정으로 제작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을 때 루카스가 나서서 돈을 대줘 우여곡절로 완성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한국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뤘다. 사실 파드메 아미달라의 이름 유래나 포스의 모티브가 동양의 기 개념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일본 뿐 아니라 전반적인 동양 문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파일:external/static1.wikia.nocookie.net/Lucasindiana.jpg

9. 필모그래피


조지 루카스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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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링크 열기

<rowcolor=#ffffff> 연도 제목 역할 비고
제작 연출 각본 기타
1971 THX1138 O O (월터 머치와 공동)
줄거리
원작, 편집
1973 청춘낙서 O O (글로리아 카츠, 윌러드 하이크와 공동)
1977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O O
1979 More American Graffiti O X X 원작
1980 카게무샤 O X X X 해외판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 O 원안, 줄거리 원작
1981 레이더스 O X 줄거리
1983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 O X O (로런스 캐즈던와 공동)
줄거리
1983 Twice Upon a Time O ( 총괄 프로듀서) X X X
1984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 O O
1986 하워드 덕 O
1988 윌로우 O O
1989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O O
1992 영 인디아나 존스 O O
1999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 O O O
2002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 O O O
2003 스타워즈: 클론 전쟁(2003) O
2005 스타워즈: 시스의 복수 O O O
2008 인디아나 존스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O O
스타워즈: 클론 전쟁(2008) O O
2012 레드 테일스 O
2015 스트레인지 매직 O O


[1] 입양. MMA 선수다. [A] 첫째 부인 마시아 루카스와 이혼 후 싱글일 때 입양했다. [A] [4] 시스의 복수에서 제트 주카사 역으로 등장하였다. [5]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영화 감독이다. 2012년 밥 아이거가 이끄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게 루카스필름을 41억 달러로 매각하며 억만장자가 되었다. [6] 스타워즈 에피소드 1~4만 직접 감독했다. [7] 여담으로 정말 젊은 시절을 제외하면 수염이 없는 사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8] 스필버그는 USC와 UCLA 영화학과에 지원했었으나 둘 다 떨어지고 CSULB에 들어갔다. 그러나 학교는 제대로 다니지도 않고 영화판에서 일하다 결국 중퇴했고, 훗날 제대로 유명해진 뒤에 그는 USC로부터 명예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리고 조지 루카스와 함께 영화학과 건물을 기부했다. 코폴라 감독의 경우 학부는 동부에 있는 호프스트라 대학 출신이나 석사 학위를 UCLA 영화학과에서 받았다. 즉 위 설명에서 동기란 의미는 영화판에 뛰어들어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가 비슷한 동기라는 의미인 셈이다. [9]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월트 디즈니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월트 디즈니는 후속작, 속편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생전에 그 어떤 장편 영화의 속편도 만들지 않았을 정도였는데, 반면에 조지 루카스는 다수의 속편 제작을 통해 거대한 세계관을 만드는 데 재능이 특화되었기 때문에 그가 만든 스타워즈는 할리우드의 본격적인 시리즈물, 프랜차이즈 시대를 열어젖힌 작품이 되었다. [10] 재밌는 사실은, 스타워즈가 공전의 히트를 친 후인 1980년대 초에 디즈니 측에서 당시 망해가고 있던 디즈니의 영화 제작 부문을 부활시키기 위해 조지 루카스를 영입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루카스는 자기 일로도 충분히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디즈니의 제안을 거절하였는데, 대신 루카스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통해 본인과 친분이 있던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사장 마이클 아이스너를 디즈니의 새 CEO가 될 적임자라면서 소개시켜주었고, 아이스너는 이후 디즈니의 CEO로 취임해 디즈니의 제2 전성기인 디즈니 르네상스를 지휘하게 되었다. 루카스의 선구안이 디즈니 부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셈. # [11] 제다이의 귀환 제작 당시에 마크 해밀이 조지 루카스에게 각본이 너무 뻔하고 별로인 거 같다고 불평을 하자 루카스는 "잊지마, 스타워즈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야" 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 [12] 1937~2022. 영화 셰인에서 주인공인 셰인으로 유명한 배우 앨런 래드 아들이다 [13] 에피소드4에서의 Han Shot First, 에피소드 6의 엔딩에서 포스의 영이 된 아나킨이 DVD판 이후 헤이든의 얼굴로 바뀐 점 등이 있다. [14] 물론 그 이전에도 심심하면 언론에 은퇴 드립을 흘리기는 했다. [15] 하지만 시퀄 삼부작이 얼마나 세계관을 왜곡해 놓았는지를 감안하면 천하의 루카스라도 아예 삼부작을 흑역사화해버릴 만큼의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프랜차이즈를 살리는 건 무리다. 특히 시퀄 삼부작의 후속작 소식이 들리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16]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의 감독인 피터 잭슨은 개인적으로 스타워즈 시리즈의 열성적인 팬은 아니지만, 루카스가 이룩한 기술 발전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상상을 영화로 완전히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무한한 존경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루카스를 영화 업계의 토머스 에디슨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 [17] 독립영화는 시스템적인 특성상 감독 혼자서 다른 파트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탓에 독립영화 출신 감독들이 분업화가 철저한 메이저 시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다. 독립영화식 제작 방식에 익숙해있던 조지 루카스 역시 이 점 때문에 스타워즈 촬영 당시 영국 스튜디오의 촬영 기사와 갈등을 겪었다고 스타워즈 다큐에서 언급된바 있을 정도. 연출 뿐만 아니라 음악 작업까지 혼자 도맡으며 수많은 저예산 공포영화를 만들어온 존 카펜터 역시 비슷한 이유로 메이저 시장에선 적응을 하지 못했다. [18] 이 문제 때문에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촬영과 동시에 러프하게 구현된 CG 캐릭터를 화면에 띄워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촬영장을 세팅했고 배우들에게 대호평을 받았다. [19] 나부에서 나눈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러면 사랑 때문에 눈이 멀었단 말이야?" 문답은 양덕들도 진저리를 치는 유치뽕짝 신으로 꼽힌다. [20] 사실 스티븐 스필버그보다는 루카스가 이런 속편+리메이크/리마스터 열풍의 선구자다. 스필버그는 자기 영화의 속편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죠스 2는 등떠밀려 만든 속편이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도 루카스의 영향이 컸다. 반면 루카스는 스타 워즈를 처음 만들 때부터 자기 작품들을 지적 재산 프랜차이즈로 생각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TV 스페셜, 캐릭터 사업 등 미디어믹스 사업을 활발히 전개했다. 21세기 영화계의 관행이 된 리마스터/리메이크 열풍 역시 시발점은 루카스로, 20세기 말에 스타워즈 오리지널 트릴로지를 리마스터 개봉해 큰 성공을 거두자 다른 영화계 사람들이 이에 주목하며 답습하게 된 것이다. [21] 디즈니가 인수한 스타워즈가 여러 문제로 부진을 면치못하면서 재평가 받고 있다. [22] 그러나 레이저디스크는 기록 가능 시간이 양면 120분으로 한정되어 있어 대략 3%정도의 시간압축이 있다고 한다. [23] 정작 루카스 본인은 라스트 제다이는 호평했다. [24] 처음엔 정부의 의도에 따라 유도된 미국의 스프롤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스프롤화된 교외 지역에 사는 부유층의 일종의 님비 카르텔을 탄생시켰는데, 이들은 자기들이 사는 지역에는 자기 집에 필요한 것들인 전기와 수도, 도로를 제외한 어떤 시설이나 인프라의 건립에도 무조건적으로 반대한다. 미국 많은 지역에 들어서야 할 시설과 인프라가 이런 사람들 때문에 들어서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데, 여기에 그나마 루카스가 한방 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