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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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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타로 사토 신지
3대 <rowcolor=#D7003A> 차남 (아베가) 삼남 (기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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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아키에 기시 치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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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6대
마쓰노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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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huugiin_logo.png 일본 중의원 ( (구) 야마구치 1구)
제39대
아베 신타로
오가와 마코토
하야시 요시로
가와무라 다케오
제40대
아베 신조

하야시 요시로
가와무라 다케오
고가 다카아키
선거제도 개편
파일:shuugiin_logo.png 일본 중의원 ( 야마구치 4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9대
아베 신조
제49대
요시다 신지

}}} ||
일본국 제90·96-98대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
安倍晋三 | Abe Shinzō
파일:아베 신조.png
<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출생 1954년 9월 21일
도쿄도 신주쿠구
사망 2022년 7월 8일 (향년 67세)
나라현 가시하라시 나라현립의과대학 부속병원
재임기간 제90대 내각총리대신
2006년 9월 26일 ~ 2007년 9월 26일
제96대 내각총리대신
2012년 12월 26일 ~ 2014년 12월 23일
제97대 내각총리대신
2014년 12월 24일 ~ 2017년 10월 31일
제98대 내각총리대신
2017년 11월 1일 ~ 2020년 9월 16일
서명
파일:아베 신조 서명.pn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Restart_7.8.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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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본적 야마구치현 나가토시[1]
부모 아버지 아베 신타로, 어머니 아베 요코
형제자매 아베 히로노부[2]
남동생 기시 노부오[3]
배우자 아베 아키에[4]
친인척 진외고조부 오시마 요시마사[5]
친할아버지 아베 간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외숙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조카 아베 히로토, 아베 마리코, 기시 노부치요, 기시 토모히로[6]
학력 세이케이 소학교 (졸업)
세이케이 중학교 (졸업)
세이케이 고등학교 (졸업)
세이케이대학 법학부 (정치학 / 학사)[7]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정치학 / 중퇴)[8]
신체 175cm, 70kg, B형
최종 당적

지역구 (구) 야마구치 1구 야마구치 4구
의원 선수 10 (중)
의원 대수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9]
약력 고베제강 직원
중의원 의원 아베 신타로 비서
중의원 의원 (제40대 / 舊 야마구치현 제1구)
중의원 의원 (제41-49대 / 야마구치현 제4구)
자유민주당 청년국장 (제31대)
내각관방 부장관 (정무담당)
자유민주당 간사장 (제38대)
내각관방장관 (제72대)
자유민주당 총재 (제21·25대)
내각총리대신 (제90·96-98대)
}}}}}}}}} ||

1. 개요2. 생애3. 정책 방향
3.1.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3.2. 외교 정책: 강한 친미- 친서방 성향3.3. 군사 정책: 대규모 군비 증강 평화헌법 무력화3.4. 외국인 노동자 수용 정책
4. 개인적 면모
4.1. 다혈질4.2. 前 지한파4.3. 총리 공관 입주 거부4.4. 영어 실력4.5. 활발한 SNS 활용4.6. 영화4.7. 피아노 실력
5. 평가6. 비판과 논란7. 정치적 성향8. 소속 정당9. 선거 이력10. 저서11. 가족관계12. 여담
12.1. 한국계 도래인 후손설12.2. 역대 최장기 집권과 6연속 선거 압승
1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일본 정치인. 제90, 96~98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베 신조/생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뒤를 이어 처음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그러나 지나치게 빨랐던[10][11] 정치적 성공 탓인지 여러 문제점들을 노출하며 권위가 실추된 데다 건강상의 문제가 겹쳐, 단 1년 만에 총리직을 사퇴하면서 단명 총리로 남았다.[12] 하지만 이후 자민당 출신의 후임 총리들[13]도 1년 이하의 임기로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었고, 민주당 총리들[14] 역시 단명 내각을 이끌며 3년 만에 지지율이 급전직하하였다. 결국 2012년 12월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의 승리로 정권 교체에 성공, 총리직에 복귀하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2년 뒤인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3년 뒤인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압도적 다수 의석을 그대로 유지하여 정권을 연장했다.( 제3, 4차 아베 신조 내각)

정치적 측면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임기 종료 이후 약 7년간 회전문 총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정했던 일본의 내각제를 자신의 탄탄한 지지율을 기반으로 안정시켰다.[15][16] 경제적 측면에서는 이러한 안정된 권력 기반을 바탕으로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의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하여, 일본의 경제를 상당 수준 활성화하는 데 성공[17]했다.

외교적 측면에선 미국 서방 진영에게,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위시한 반 서방 세력 견제의 매우 중요한 조력자[18]로 인식되었다. 아베노믹스 아베독트린이 국제 사회에서 별 잡음없이 통과된 데에는 이같은 배경이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 반면, 한국과 중국에서는 아베 신조의 그릇된 역사관을 이유로 들어 대일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2013년에는 과거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여 미국 유럽연합 등 서방 진영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다.[19] 이후에도 계속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며 주변국의 반발을 불렀다.[20][21] 참고로 아베는 일본 최대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의 회원이었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일본의 재무장 및 군비 증강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신냉전 구도의 당사자인 중국은 당연히 이를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악화시키는 행동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를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이 부활하려는 전조 증상이라며 비판에 가세하는 중이다. G7 서방국가들의 ‘요구’와 일본 내 우익 세력의 '요구'에 응하여[22] 진행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의 경기가 나아져 매년 늘어난 GDP와 세수액 및 예산을 비교해 본다면 비록 매년 증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1%대 군사비를 지출하는 일본은 오히려 한국(GDP 대비 2.6%)이나 중국(GDP 대비 2.0%)과 비교하였을 때 양호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볼 수 있다.

2020년 8월, 1차 사임 당시와 같은 이유인 지병 문제[23]로 8년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으나, 여전히 당내 최대 파벌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영수이자 당내 실세로서 힘을 발휘했고 후임 총리인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를 옹립하는 데에도 깊이 관여했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이후 기존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회장 호소다 히로유키를 중의원 의장으로 보내고 자신이 직접 회장에 취임하여 정계 영향력을 과시했으나, 2022년 7월 8일 아베 신조 피살 사건으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

2.1. 한국계 특정 종교와의 유착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일본 정계와의 관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정책 방향

3.1.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베노믹스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아베노믹스의 성과는 영국 마거릿 대처, 미국 로널드 레이건이 일군 성취와 비견될 만하다.”
조너선 가너, 모건 스탠리의 아시아 전략분석가 출처
무제한적 양적완화와 정부지출, 구조개혁이라는 소위 3개의 화살을 정책기조로 삼고 있다. 아베의 취임과 동시에 G7 국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실시하기 시작해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비관론도 만만치 않게 거세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양적완화와 정부지출의 목표는 기업들의 낙수효과와 소비심리 회복이다. 구조개혁이란 '1억총활약사회'[24]라는 기치 아래 여성과 노인의 노동을 장려하고, 기간산업 민영화와 고용시장의 유연화를 촉진시키고, 기업규제를 개혁해서 일본을 더 활기차게 만들고, 이민 완화를 통해 1990년대부터 일본의 골칫거리인 저출산과 고령화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
파일:닛케이 225.png
아베 신조 총리 재임 기간 동안의 닛케이 지수

일본 닛케이 225 지수는 아베 신조가 본격적으로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이자 하루에 3~4%가 넘는 급상승세를 펼쳐 5년 4개월만에 15,000선을 돌파했다. 2015년 이후로는 거의 18000선 부근에서 안정을 찾았고, 2016 후반기부터 2017년 중반기에는 19000대 후반에서 20000사이를 오르내리는 중으로 경기가 많이 호전되었으며 엔/달러 환율 역시 111엔대로 상당히 안정적이다. 2021년 2월 14일, 버블 붕괴 이후 30년 만에 30000선을 돌파했다.

참고로 통화 정책은 그 연구를 가장 활발히 하던 1980년대에도 국가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정책으로서는 연구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미국에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경기 부양책으로 대대적인 세금 감면과 기술 개발의 정부 보조 등을 약속하는 와중에 이러한 조세 정책만으로는 자본이 제대로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비판을 받자(Timing Problem), 보다 단기적인 대책으로 통화 정책이 부상한 것이다.

또한 경제와 친서방 행보를 동시에 잡는 정책의 일환으로 당초 일본은 미국이 권유하는 TPP(다자간 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가 여부를 놓고 저울질했다. 그러나 당시 내각이 민주당인 데다가 농가의 타격을 우려한 만큼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자민당의 반대가 많아 소극적이었으나 아베는 높은 인기를 기반으로 TPP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2013년 4월 TPP 참가국들의 참가 협상 승인을 받았고 # 미국은 자국 의회에 정식으로 일본의 TPP 협상 참여를 통보하였다. # 이것으로 한국의 FTA 행보(특히 한미 FTA)에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일본이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TPP가 성사되면 일본의 국내 총생산은 0.66%(3조 2,000억엔)이 증가할 것이고, TPP 참여국 가운데 미일만으로 90%의 경제 규모를 차지하는 만큼 환태평양 경제권의 리더로 재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 하지만 이 수치조차 보수적인 예측으로 피터 페트리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니혼 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TPPA 참여는 일본 경제 생산성을 높여줄 것"이라며 GDP를 10조 엔(약 98조 원) 정도 늘리는 효과가 있으리라 추산했는데 이것은 일본 정부의 예측치 3조 2천억 엔의 3배를 넘는 수치다. # 또한 일본의 갈라파고스화가 된 시장과 규제를 TPP 참여로 단숨에 글로벌 규격에 맞추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TPP에서 미국을 빼낸 도널드 트럼프 당선 전까지의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트럼프는 다자무역협정은 물론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가 협상한 모든 대외협정에 대해 부정적인데, TPP는 여기에 모두 해당되었으니 불가피한 결과였다. 아베는 트럼프의 당선소식을 듣자마자 뉴욕 트럼프타워로 황금 골프채를 들고 달려가는 정성을 보이면서까지 TPP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으나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는데 실패했다. 어쨌건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고 해외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 시장개방까지 해가면서 TPP-11로 밀어붙였지만 참여국 중 일본이 가장 큰 시장이 되어버렸다. 즉, 일본은 미국과의 FTA 효과도 못누리고 졸지에 다른 10개국으로부터는 무역적자만 볼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버린 것. 혹여 미국이 향후 다시 TPP에 복귀한다하더라도 위와 같은 희망섞인 전망을 재현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아베노믹스가 좋게 끝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존재한다. 왜냐면 이런 식의 무제한적인 양적완화는 언젠가는 장기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특히 현재의 일본 경제는 구조적으로 국채 금리 상승에 취약한 상황이다. 이미 국채 자체가 GDP의 2배를 훌쩍 넘어간 지 오래이기 때문에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이 영영 마이너스 금리를 못 빠져나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비록 아베 임기 동안 소비세를 인상하는 법안이 민주당 정권 시절의 여당 의원들에 의해 통과되긴 했지만, 아베 내각 들어서 소비세를 증세하는 것도 논란이 많은데, 양적완화와 정부지출이 하는 것과 정 반대의 디플레이션, 소비침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아베 2차 내각에서도 소비세를 8%로 증세를 하면서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상쇄하는 부작용이 일어나 두 차례 추가 인상일정을 연기하고 말았다. 2013년, 2%의 성장률을 이뤄내며 기분좋은 출발을 하던 아베 노믹스는 8%로 소비세 인상을 강행하면서 상당히 동력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2013년 당시만해도 일본이 곧 3% 성장도 가능하다는 꿈 같은 관측도 나왔었지만 소비세 인상 이후 성장률이 다시 하회하면서 말그대로 꿈으로 끝나버린 것.

사실 이런 문제점이 있는데도 소비세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본의 높은 재정지출과 함께 국가 신용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국채 금리가 상승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더 급박한 이유는 심각한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막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한 일본 시민사회의 반응은 소비세를 증세하는 것과 빚을 갚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대부분인데, 일본이 빚갚는답시고 소비세를 1990년대부터 당시 3%에서 현재 8%로 5%포인트 올렸으나 부채는 GDP대비 50%대에서 200%로 증가해 무려 4배가 됐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가 경기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승부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양적완화가 핵심정책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새로운 기조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일본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아베 2기 내각의 정책의 성공여부가 일본의 명운을 가를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25]

일단 2019년 연말에 현행 소비세 8%에서 10%로 증세하기로 거듭 확정한 상황이다. 또한 2019년 4월부터 외국인 노동자 수용을 시작했다.

3.2. 외교 정책: 강한 친미- 친서방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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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강한 친미 성향 반중[26], 반북 정책. 이는 일본 자민당의 전통적인 외교 노선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우파인 자민당은 친미 성향이며, 좌파인 야당들은 일반적으로 친중, 친한 노선을 띠고 있기 때문. 따라서 아베와 자민당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 왔다. 특히 과거 핵실험으로 촉발된 인도에 대한 국제적 원자력 제재를 종식시키고 인도를 서방 측으로 포섭하여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지향하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소위 Quad로 통칭되는 반중국 연합체의 산파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이 국제정치학적 용어를 최초로 제안한 정치인이 바로 아베이기도 하다.

3.2.1.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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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내각 시절 대한민국 일본의 관계는 양국의 현대관계사에 비추어 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27]
3.2.1.1. 관련 문서

3.3. 군사 정책: 대규모 군비 증강 평화헌법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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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강력한 지지 하에서, 전후 일본이 미국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지해왔던 노선을 폐기하고, 중국, 러시아, 북한 등 반 서방 세계 국가들에 대한 억지력과 공격력을 키우는 대규모 군비 증강 정책이 아베 내각 기간 내내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히 동아시아의 과거 일본 제국에 의한 전쟁 피해국이었던 한국, 북한, 중국 등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G7을 포함한 서방 국가의 지지를 확보한 일본은 이러한 저항을 가볍게 쌩까고 해군력과 공군력을 급속도로 키우고 있는 중이다.[32]

일본의 국방 예산은 아베의 취임 시기인 2012년 4조 7억 에서, 2019년 5조 3천억 으로 증가했으며,[33] 2018년엔 다른 국가들의 해병대에 해당되는 수륙기동단을 창설했다.[34] 거기다 사실상의 항공모함에 해당하는 이즈모급 함선을 2척 건조했고 F-35를 100대 이상, 구축함급인 30FFM도 20여 척 이상 추가 주문해놓은 상태다.

또한 평화헌법에서 집단적 자위권 부분을 개정하는데 성공했으며 순수 공격용 무기인 JASSM JSM 공대지 순항미사일 도입에 사실상 지대지 탄도미사일에 해당되는 도서 방위용 고속 활공탄까지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래에는 자체적으로 초음속 대지 순항미사일까지 개발하여 배치할 계획으로 이미 예산 증편을 완료했으니 평화헌법이 사실상 무력화된게 아니냐는 여론이 많다.

3.4. 외국인 노동자 수용 정책

아베 정권 하에서 일본 내의 외국인 노동자[35]는 2018년 기준 138만명으로, 그가 집권하기 이전에 비해 2배가 되었다. 2018년 10월, 2025년까지 5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법안을 승인했으며,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2019년 4월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법안에 따르면 이제 일본은 저임금 단순노동직도 5년간 노동자 자격으로 일할 수 있으며, 기술직 노동자의 경우 가족 동반이 가능하고 사실상 무제한으로 비자를 연장할 수 있는데다 영주권도 취득 가능하다. 또한 일본어 능력시험 요건도 대폭 완화한다. 아베는 이것이 '이민정책'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였으나 동시에 "일본의 문화를 외국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공존의 방법을 모색해야한다"고 하며 다문화 이민정책을 추진함을 시인하였다.

물론 자민당 주요 지지층인 보수계에서 격렬한 반대가 터져나오고 있으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반의 일본국민들이 이민개방을 용납한다는 결과가 나오는 등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중에서도 일본제일당만이 극렬 반대할 뿐, 나머지 일본 유신회 등 우익성향 정당들은 모두 찬성이며, 입헌민주당 등 리버럴 계열 야당은 내국인의 임금감소 등 다소 우려는 있으나, 만약 유럽식 이민제도를 확립하고 외국인에게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한다면 그것은 환영할 만할 변화라는 입장이다.

이로써 아베는 일본에 첫 대규모 외국인 이민을 결단한 총리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일본 인구의 28%가 노인이고 젊은이들은 힘든 직종은 기피하고 있어 농어촌이나 지방 중소기업들은 이미 일할 사람이 없어 폐업이 잇따르고, 저출산 노령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 이민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국내외의 회의론자들은 아베가 한 일은 체류자격을 세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기능실습생이라는 이름 하에 오랫동안 들어온 사실상의 노동자들을 이제서야 노동자라고 인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의 거류외국인 비율도 예전부터 참 말이 많은데, 의도적으로 불법체류자 숫자를 축소해서 발표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다.

4. 개인적 면모

4.1. 다혈질

일반적으로 일본 총리들은 야당의 공격을 받으면 두리뭉술하게 답변하며, 유도리 있게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결코 방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맞받아치며 대응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굉장히 모욕적인 야유를 하기로 유명하다. 발언하는 야당에게 '에~?'라면서 비웃는 표정으로 비꼬거나 영상 입헌민주당 의원에게 "공산당!"하고 소리친다던가, 공문서를 들고 나와 질의하는 의원에게 "니가 만든 것 아니냐"라고 하던가, 쓰지모토 기요미 의원의 질의에 " 의미없는 질문이야" 영상라고 발언한 것 등이 있다. 영상

이러한 괴팍한 성격은 측근인 세코 히로시게가 지적할 정도로 일본 정계에서도 유명한 걸로 보인다. 영상

4.2. 지한파

나라가 다르면 역사나 문화도 다르다. 양국 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서 그것들을 전부 일일이 연관 짓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서로 다름은 다름으로 해서 존중하는 것도 필요한 것은 아닌가. 일본과 중국은 서로의 문제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수뇌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과도 마찬가지이다. 일한 양국은 지금 하루 1만 명 이상이 왕래하는 중요한 관계이다. 일본은 오랜 기간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흡수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에서 한류 붐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나는 일한 관계에 관해서 낙관적이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적인 인권과 법의 지배라고 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로 일한관계의 기초가 아닌가. 우리들은 과거에 대해서 겸허하고 예의바르고 미래지향으로 마주보는 한 반드시 양국의 관계는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국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EPA(경제협력협정)의 체결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国へ) p. 157, 2006년 7월 - # #
2006년에 쓴 책을 보면 알듯이 예전에는 정치 성향과 다르게 한일협력을 중시하였다.

4.3. 총리 공관 입주 거부

일본 총리의 집무실인 일본 총리 관저 옆에는 총리 공관이 있지만[36], 아베는 시부야에 있는 사택에서 총리 관저로 매일 출퇴근을 했다. 아베 신조가 비교적 젊었던 시절인 제1차 아베 내각 때에는 총리 공관에 입주했었다. 이로 인해 민주당 등 야당에서 "안보 위기 의식이 없다"고 태클을 걸었지만, 아베는 "총리 생활과 사생활을 구분하고 싶다"고 대답했다.[37]

총리 취임 뒤로 총리 공관에 들어가질 않아서 공관 내 귀신 때문에 못 들어가냐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구 일본 총리 관저에서 1932년 5.15 사건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비롯해 여러 명이 피살된 이후로 이곳에서 전직 총리들이 귀신을 봤다는 소문이 있었다고.[38] 일본 국회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자 아베 총리는 "귀신 때문에 관저에 안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소문은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편으로 6월 1일 요미우리 테레비 방송에서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관저에서 귀신의 다리를 봤다"는 이야기를 해서 "귀신 때문에 못 들어가냐"는 소문은 식을 기미가 없다. 아베 신조 1기 내각 때 총리 공관에 입주했다가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참패하고 불명예 퇴진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2기 이후로 아베가 공관 대신 사택에서 출퇴근한다는 설이 있다.[39]

4.4. 영어 실력


영어를 잘한다. 물론 일본식 억양, 발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영어 구사력이 좋은 편. 사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공부한 적이 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첫번째 총리 역임 당시에는 외국 관광객에게 환영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당시 일본 관광청의 "요코소 재팬(Yokoso Japan)"의 일환이다. 요코소 재팬, 2014년 다보스 연설

4.5. 활발한 SNS 활용

페이스북을 비롯해 인스타그램, 트위터 SNS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으로 하루 평균 1.8개의 페북 소식을 올린다고. '인터넷 재상'이라고 불릴 만큼 독보적 인기를 누리는데 늘 휴대하는 태블릿 PC로 전직 관료, 현직 야당 의원, 한국 그 자체 등을 심하게 까내리면서 호평과 혹평을 함께 받는다. # 참 문제 많은 행태지만 일본의 보수와 젊은 세대들은 열광한다고. 특히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아베는 "폭거다. 점령하는 쪽이 도발적 행동을 하면 몰상식하다"는 글을 올렸고 반나절 만에 2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좋아요"를 연발했다. 일본에선 대단히 보기 드문 유형인 인터넷 활동이라서 분명 대중적 인기를 끈 총리다.

2010년대 후반엔 페이스북보다는 주로 트위터를 통해 외교 정상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영상, 정책 홍보 글을 올렸다. 2019년 2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한편, 2021년 10월에는 49회 중원선을 앞두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자신의 세이와 연구회 정책 공약이나, 지역구인 야마구치 4구의 선거홍보영상, 지지유세 등을 업로드 했다.

그의 암살범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준 것도 결국 SNS였다. 암살범은 암살 전날 저녁 발표된 그의 나라시 유세 정보를 전일 트위터를 통해 확인했고, 해당 지역 자민당 캠프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의 업로드는 다소 시간차가 있어, 일본 네티즌들의 추모 댓글은 주로 마지막 게시물에서 이루어졌다.

4.6. 영화

소문난 영화광으로 알려져있다. 연평균 50회 이상 영화관에 방문하여 영화를 본다. 거의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영화를 보는데, 공휴일을 이용하거나 공휴일이 없으면 수요일 저녁에 영화를 본다. 일본인들은 영화관에 잘 방문하지 않아 1인당 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1회를 간신히 넘어 1.5회 정도 된다. 한국은 같은 지표에서 4.1회. 아베 신조는 전 세계 국가원수급 정치인 레벨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영화를 많이 본다. 실제로 일반인 수준에서도 연평균 영화관 관람 50회면 이미 영화 관람 상위 0.1% 안에 들어가는 중증 영화광이다. 1년이 약 52주니까 거의 매주 한 편씩 영화를 꾸준히 챙겨보는 셈이다.

2018년 12월 31일은 부인과 이런 야심한 밤에 바나나라니 사랑스러운 실화(こんな夜更けにバナナかよ 愛しき実話)라는 영화를 보고, 2019년 1월 1일 새해 시작을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한 것도 아베의 영화광적인 성격이 드러난 면모이다. 일본의 영화관 표값이 2D 일반 영화도 1,800엔에서 2,000엔 정도 하는 것을 보면 영화에 대한 지출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TOHO 시네마즈 이온시네마 두 군데를 이용 중이며, 둘 다 VIP 등급이 있는 것으로(정확한 등급은 불명) 알려져 있다.

아베의 영화 성향은 저예산 독립영화부터 외국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다양한 편이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잘 안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신조와 사이가 안 좋은 소노 시온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작품도 아베 신조가 보고 나서 가끔 트위터를 통해 의견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아베의 영화광적 면모 때문에 일본 영화계에 대한 여러 지원책을 내놨고, 그 중 하나가 쿨 재팬 사업이었다. 그러나 일본 영화 시장 규모가 20억 달러 선에서 정체되는 등 커지질 못하니[40] 아베 신조 본인도 안타깝다고 2018년 10월 국회 질의에 답변한 바 있다. 이때 아베는 "일본인들이 영화를 더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일본 영화든 외국 영화든 여러 국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 어느 가족에 대해선 입다물고 외면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다루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논란이 되자 아베 신조 총리가 뒤늦게 축전을 보냈으나, 이를 모를 리 없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총리의 축전을 공개적으로 거절했다.

4.7. 피아노 실력


유튜브에 본인이 피아노를 치는 연주를 올려 화제가 되었다. 조회수는 800만회를 돌파했다.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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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비판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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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적 성향

아사히 신문 · 도쿄대 다니구치 연구실 공동 조사
2017년 중의원 선거 후보자 정보 - 아베 신조
<rowcolor=#fff> 이슈 질문 답변
개헌 헌법 개정에 <colcolor=#000> 찬성[41]
소비세 장기적으로 볼 때 소비세율은 10%보다 높아야 한다. 중립
무상교육 유치원·탁아소부터 대학까지의 교육을 무상화해야 한다. 조금 찬성
재정 지출 당장은 재정 재건을 위한 세출의 억제보다는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중립
격차 해소 A: 사회적 격차가 다소 있더라도 경제 경쟁력 향상을 우선해야 한다.
B: 경제 경쟁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격차 시정을 우선해야 한다.
무응답
재정 적자 A: 국채는 안정적으로 소화되고 있어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B: 재정적자는 위기 수준이기 때문에, 국채 발행을 억제해야 한다.
조금 B
부자 증세 소득이나 자산이 많은 사람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중립
치안·인권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정보 보호 및 개인의 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당연하다. 중립
동성혼 동성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무응답
피선거 연령 피선거권을 얻을 수 있는 연령을 인하해야 한다. 조금 찬성
외국인 노동 외국인 노동자의 수용을 추진해야 한다. 중립
야스쿠니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야 한다. 무응답
원전 재가동 원자력 규제위원회의 심사를 통과 한 원자력 발전소는 운전을 재개해야 한다. 찬성
탈원전 A: 지금 바로 원자력 발전을 폐지해야 한다.
B: 앞으로도 원자력 발전을 에너지 원의 하나로 유지해야 한다.
조금 B
부부별성 부부가 원하는 경우, 결혼 후에도 부부가 각각 혼전 성을 유지하는 것을 법률로서 인정해야 한다. 무응답
가족관 A: 부부와 여러 아이들이 갖추어져 있는 형태가 가족의 기본이다.
B: 한부모 가정이나 사실혼 등 가족의 형태는 다양한 것이 좋다.
무응답
핵개발 비핵 3원칙[42]을 견지해야 한다. 찬성
국방 일본의 방위력은 더 강화해야 한다. 찬성
선제 공격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우 선제 공격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무응답
대북관계 북한에 대해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 찬성
'조금'의 답변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どちらかと言えば)'이며 '중립'은 '어느 쪽도 아니다(どちらとも言えない)'이다.

8.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2 - 2022 정계 입문
사망

9.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지역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3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야마구치 1구

97,647 (24.20%) 당선 (1위) 초선[43]
1996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야마구치 4구 93,459 (54.34%) 재선
2000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21,835 (71.71%) 3선
2003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40,347 (79.75%) 4선
2005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37,701 (73.62%) 5선[44]
2009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21,365 (64.25%) 6선
2012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18,696 (78.17%) 7선[45]
2014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0,829 (76.27%) 8선[46]
2017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4,825 (72.57%) 9선[47]
2021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80,448 (69.72%) 10선[48]

10. 저서


3권 모두 2016년 기준 국내에는 번역 출간되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한국에도 아베 신조에 대한 내용을 담은 최신 도서는 많다. 예를 들면 한동안 꽤 화제가 되기도 했던 아베 , 침묵의 가면이란 책이라든가, 참고로 이 책은 아베 신조의 출생부터 지금 일본 정치의 최정점인 총리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인생을 서술한 책이다. 아베 신조라는 인물에 대해 보다 면밀히 알 수 있는 책이지만 작가의 성향이나 시각이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 상당 부분 비판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 또한 책이 완성된 시기에서 보여지는 아베 신조의 행적과 현재의 행적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반영이 누락된 부분은 감안하여야 한다.
파일:아베 회고록 표지.jpg

아베 총리의 생전 인터뷰를 서적화한 것으로, 총리직을 퇴임한 2020년 10월부터 모두 18차례 36시간 동안 응한 인터뷰 내용이 실렸다. 재임 당시 외국 정상들과의 여러 비화들이나,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의 정부 대응 프로세스까지 흥미로운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11.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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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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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한국계 도래인 후손설

12.2. 역대 최장기 집권과 6연속 선거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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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장 집권 기록을 갱신한 아베 신조[63]
2019년 11월 20일을 기준으로 가쓰라 다로의 2,886일 기록을 경신하며 총리 직책이 창설된 메이지 유신 이래 가장 오랜 기간 집권한 총리가 됐다. 아베의 외종조부인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갖고 있었던 연속 재임일 수 기록 2020년 8월 24일을 기준으로 넘어섰다.

2차 내각이 성립된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시작으로,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를 내리 압승하였다. 이는 일본 내각 130년 역사 이래 유례가 없는 놀라운 연승 기록이다. 이는 아베 내각의 경제적 성과와 더불어 정치적(개헌 추진과 군비 증강 정책), 외교적(강력한 친미, 친서방 정책) 스탠스를 국민들이 크게 지지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2000년대 당시 자민당에 실망한 일본 국민들이 제1야당인 민주당을 여당으로 만들어줬으나, 하필 이 시기에 GDP가 중국에게 추월당해 3위로 떨어지고,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으며, 오키나와 후텐마 비행장 이전 논란과 재해 대응 미흡 등 여러 사건사고들을 일으켜 일본 국민들에게 최악보다는 차악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실제 집권 이전만해도 집권은 못해도 세 자리는 넘겼던 민주당의 중의원 의석 수가 정권 재교체 이후 두 자리로 대폭 줄어들었다. 아베가 물러난 이후 그나마 나아졌지만 현재의 입헌민주당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자민당 장기집권의 연장선 덕분이다 라고 치부하기엔 꽤나 어마어마한 결과이다. 당장 아베의 1차 내각 이후 2009년에 압도적인 민주당 정권 교체가 있었고, 그 이전의 자민당 독주 시대에도, 단일 내각이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어떤 내각이 장기간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정치를 지속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사 그렇게 성공적인 정책을 펼쳤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 독주하는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견제 심리로 인해 선거에서 연승을 거두는 것은 상당히 힘들기 때문. 물론 2차 아베 내각 이후의 연승은 민주당 정권 시절의 심각했던 실정을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일본 국민들의 심리에 의한 반대 급부 성격이 짙은 것도 부인하긴 힘들지만.

1차 아베 내각의 직전 내각총리대신이자 아베 신조의 정치적 스승이기도 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역시 선거의 제왕 소리를 들을 정도의 높은 인기를 누렸던 수상이지만, 2018년을 지나는 현 시점에서는 이미 그 수준을 능가했다고 볼 수 있을만큼 많은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고이즈미는 2004년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참패(49석/121석)했다. 아베도 2007년 참의원 선거 참패(37석/121석)해서 가려졌지 고이즈미도 2004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수상직에서 짤릴뻔했다. 2005년 우정 해산( 중의원)이라는 도박이 대박이 터졌기에(중의원 2/3 장악) 2004년 참의원 선거 참패를 덮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베가 2차 내각 들어서는 참의원 선거도 싹쓸이 중이라 더 무서운 것. 그야말로 청출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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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TV에서 발표한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비례대표 연령별 투표 성향. 당 이름은 왼쪽부터 자민당, 공명당, 희망의 당, 일본 유신회, 입헌민주당, 일본공산당이다.

일본에서 아베 수상의 장기집권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계층은 바로 30대 이하의 젊은 층이다. 그 이유는 아베노믹스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위시한 여러 중산층 위주의 경제정책이 크게 성공했고, 이에 대한 최대 수혜자가 10~20대 계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연 150만 명씩 은퇴하는 데 반해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은 70만 명 수준인 상황이라 일자리가 넘쳐나 아베의 장기집권에 득이 되는 상황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베 정권은 연금 수령 연령을 상향하고 노인 복지 규모를 축소하는 등 비록 증세에는 적극적이나 노인층 부양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이고, 당연히 젊은 계층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64]

일본 야당의 상황도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야당들은 현실 정치와 경제 상황과 괴리되어 '반대를 위한 반대' 또는 이상적인 정치 이념을 주장하는 등, 집권당인 자민당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일본의 국제적 위상 회복, 불황 탈출 등 현실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점진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자민당과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아베 총리는 방송 출연, SNS 이용 등을 통해 젊은 층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이런 것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당 안팍의 정치적 경쟁자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즉, 문제가 많긴 하지만, 능력은 좋다는 게 대략적인 평.[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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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0일 교도통신의 여론조사가 나왔는데, 아베 신조를 적극 지지하는 연령대가 20대, 반대하는 연령대는 60대 이상인 것으로 나왔다. 아베 신조의 경제 정책 자체가 일본의 20대를 타겟으로 하였고 저출산 고령화때문에 20대 일자리가 넘쳐나는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베는 아소 다로 2017년에 고령층을 상대로 한 언제까지 살아있을 셈이냐는 말까지 할 정도로 노인층들한테는 각종 사회보장 혜택을 대거 축소하고 있다. 노인층한테 돌아갈 세금을 20대한테 쏟아붓는 것이 아베 정부의 아베노믹스 재정정책이다.[66] 노인 복지를 늘리고 노인의 단기 일자리에 상당한 일자리 재정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기존 사회의 통념과는 정 반대의 노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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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0일 일본 NHK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여기서도 20대의 아베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대 남성의 아베 지지율은 무려 73%이었고 여성들도 과반인 52%였다.

다만 주의해야 할 사실은, 이 70%는 투표 의사가 있는 유권자만을 상대로 집계한 것으로, 일본인의 50~60%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인 만큼, 정치에 관심이 없는 수많은 일본 20대의 여론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본 국민은 투표 의사가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저연령대로 가면 갈수록 더 투표율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젊은 세대의 압도적 지지에도 막상 선거에서 득표수가 그만큼 나오지는 않는 것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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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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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에도시대 당시 조슈 번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지역. 아베 신조의 정치적 고향이라고 일본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며, 실제로 아베 총리는 휴가나 정치적 구상을 위해 자주 이곳에 방문하곤 한다.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묘소도 이곳에 있으며, 본인의 중의원 지역구인 야마구치 4구의 일부이다. 이렇게 인연이 깊은 곳이라 그런지 2016년 러일정상회담도 이곳에서 열렸다. [2] 1952년생. 1975년 미쓰비시 상사 입사후 2004년 중국지사장, 2007년 집행임원이 되었고, 2012년부터 자회사인 미쓰비시상사패키징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다 2021년 4월 퇴임해 현재는 고문이다. [3] 외가인 기시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서 성을 갈았다. 야마구치 2구의 중의원 의원으로 재직했고, 2023년부턴 그의 아들이자 아베의 조카인 기시 노부치요가 의원직을 세습했다. [4] 슬하의 자녀는 없다. [5] 조슈 번(현 야마구치현) 출신. 아베의 친할머니의 친할아버지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1차 봉기가 발발하자 조선 정부는 이를 진압하고자 했는데 동학군 진압에 실패한 민씨정권이 청나라에 파병 요청하여 청나라 함대가 아산만에 주둔하였다. 한편 일본도 텐진 조약을 근거로 조선에 병력을 파병하여 한성에 주둔하다가 전주 화약 이후 조선 주둔 명분을 잃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겁박하였는데 그 당시에 경복궁을 점령한 혼성여단의 부대장이 바로 오시마 요시마사이다. 그는 또한 어린 시절 요시다 쇼인 학파의 문하생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아베 신조는 요시다 쇼인의 사당을 참배하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밝혔으며, 그의 정치적 유산인 메이지 유신을 재현하겠다고 말했다. [6] 노부치요와 토모히로는 관계상으로는 백부와 조카 관계이지만, 족보상으로는 아베가 기시의 내당숙( 고모할머니의 아들)이다. 동생 노부오가 외가로 입양되면서 족보가 꼬여버렸기 때문. [7] 도쿄대학 및 유명 사립대학 출신이 즐비한 역대 내각총리대신들의 우수한 학력에 비하면 정말 특이한 케이스다.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는지 본인의 3차 내각 이전까지는 각료에 도쿄대학 출신을 거의 기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선거 압승으로 자신감이 붙고, 정치적 안정과 여유를 찾은 후에는 여타 내각처럼 도쿄대학 출신을 대거 입각시켰다. [8] 관련 내용은 목차 중 '집안 배경과 성장기' 참조 요망. [9] 임기 중 사망 [10] 3선 의원이었던 2003년(당시 49세)에 자민당 간사장으로 발탁되었고, 5선 의원이던 2006년에 총리가 되었다. 간사장 직만 해도, 당 대표이자 정부 수반인 총리를 제외하고, 자민당 내 실질적인 최고위 직책이다. 전임 간사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당 내 최고 원로급 의원들 혹은 곧 총리 취임이 유력한 실력자들이 맡았던 자리였다. 총리를 지냈던 기시 노부스케의 딸이자 아베 신조의 모친인 요코 여사가 자신의 아들이 젊은 나이에 간사장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신조는 남편보다 14살이나 젊은 나이에 간사장이 되었다. 출세의 계단을 지나치게 빨리 올라가는 게 걱정이다.”라고 말했을 정도. 관련 기사. 일본 정치 역사상 보기 드문 초고속 출세 사례. [11] 이렇게 초고속으로 간사장과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납북 일본인 문제에서의 활약상이었다. 아베 신조는 1990년대부터 대북 강경론을 주도해 왔고, 2002년 9월의 북일정상회담 당시 일본인 납치 피해자 5명이 북한에서 일시 귀국 형태로 일본에 돌아갔을 때 대북 유화론자들의 납치 피해자 반환 주장을 저지하고, 북한과의 약속을 파기해 납치 피해자들의 영구 귀국을 관철해내는 일련의 정치적 활약상을 통해 일본 국민들로부터 일거에 폭발적인 정치적 인기를 얻었다. 아베 신조와 납북자 문제에 관한 스토리 스토리 2 그 인기를 감안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3선 의원에 불과한 그를 자민당 간사장에 중용했고, 약 3년 뒤인 5선 의원 시절 총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12] 2017년 아내 아베 아키에가 한국 동아일보와 나눈 인터뷰에 의하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로 이 무렵을 지목했다. 당시에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괴로웠다고. [13]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14]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15] 여담으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일본 언론들은 대통령제의 단점에 주목하는 기사를 많이 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전문 총리 시기에는 내각제의 단점을 까며 일본도 실권자인 총리에게 강력한 권력을 부여해야 국정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며 대통령제를 도입해야 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기도 했다. [16] 일반적으로 자민당 내 거물 정치인들이 자기 파벌을 하나씩 쥐고 있는 반면, 아베는 파벌의 회장이 아니다. 아소 다로 지공회, 기시다 후미오 굉지회, 니카이 도시히로 지수회의 영수이지만, 아베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사실상 본인이 회장이나 다름없는 실세임에도 바지사장들을 내세우고 있었다. 본래 마치무라 노부타카가 회장이던 마치무라 파였으나, 본인의 총리 취임과 함께 마치무라를 파벌을 이탈해야 하는 중의원 의장으로 보내고 대신 바지사장 호소다 히로유키를 앉혀 호소다 파로 개창했으나, 여전히 실세는 아베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베는 명목적으로는 자신의 파벌을 운영하지 않는 행태를 보이며 주변의 견제를 완화시켰다. 결국 아베는 2022년엔 호소다를 중의원 의장으로 보내고 자신이 직접 세이와 정책연구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17]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전 세계 주요국들이 양적완화를 통해 통화를 팽창시키며 금융 위기에 대응했던 것과 달리,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이에 거의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엔화의 가치가 폭등하고 기업의 실적이 극도로 악화되는 등 전후 최악의 경제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아베와 자민당 내각은 '윤전기를 풀가동하여 엔화를 무제한으로 찍어내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전 세계 정치권과 금융권에 주면서,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의 주가 지수 닛케이 225는 민주당 정권 시절이던 취임 초와 비교했을 때 무려 2.1배 이상 상승했다. 잃어버린 n년이 시작된 1991년 이래 가장 높은 기록인 24,0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실업률, 전세대의 유효 구인 배율, GDP 수치 등 대부분의 경제 지표들은 아베 내각 기간 동안 줄줄이 신기록을 경신했다. 관련 기사 [18] 역대 일본 총리들 중 나카소네 야스히로,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더불어 가장 친미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이후는 미국과 서방 세력의 패권이 과거와 달리 중국, 러시아 등 반서방 진영에게 위협 받았던 시점이므로, 아베 신조가 서구 세계 입장에선 나카소네와 고이즈미보다 훨씬 더 고마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당장 아베 2차 내각 직전 일본의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미국 대신, 중국과 아시아 중심의 친중 스탠스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입장에선 상당한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다. [19]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재호, 프레시안, 2013-12-26. [20] 아베 "야스쿠니 못 가서 미안하다"… 4년째 대리참배·시주, 김수혜, 조선일보, 2017-08-16 [21] 아베,야스쿠니신사에 총리명의 공물 봉납, 박석원, 한국일보, 2017-10-17 [22] 이전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일본이 군대를 가질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들에게 안보를 의존하는 짠돌이 행태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불만은 21세기 들어 경제적으로 급격히 성장하여 군사적 팽창을 시도하는 중국과 미국의 연이은 파병 실패로 인한 군축을 계기로 폭발했다. [23] 궤양성 대장염. 대장에서 지속적으로 염증과 출혈이 발생하는 병으로, 신약을 쓰는 데도 잘 듣지 않았다고 하며,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강력한 권고를 받았다. [24] 이 발언은 ' 1억 총옥쇄'라는 말과 어감이 상당히 비슷하여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전시 체제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25] 물론 그리스처럼 문자 그대로 파산할 가능성은 낮다. 일단 일본의 엄청난 해외자산이 있다. 일본은 90년대부터 해외자산보유액 세계 1위를 놓쳐본 적이 없으며 2017년 기준으로 이 해외자산 팔아서 외채를 다 갚아도 2.6조 달러가량이 남는다. 국가 파산의 주원인인 외채만 따지면 초우량 순채권국인 셈이다. 세계에서 이게 가능한 나라가 없는데, 그 이유는 해외자산 보유고와 내국인 국채비율이 많기 때문이지만 더 큰 이유는 낮은 금리다. 빚이 원금에서 더 늘지는 않는 것이다. 즉, 일본은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부채 위기가 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며, 그때가서 그걸 막아보려다가는 화폐가치가 대폭락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오게 될 가능성이 있다. [26] 경제적으로는 미중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어느 정도 중국과 협력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정치적으론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진출을 막기 위해 # 대중국 포위망을 설정하는 국가들( 미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 호주 등)과 철저하게 협력하는 중이다. [27] 일각에서는 아베 내각 때의 한일관계가 한반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래 정치적으로 가장 험악한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확실히 틀린 표현이다. 해방 이후 한일관계가 가장 나빴던 시대는 이승만이 대통령이었던 1950년대 중후반이다. [28] 이승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동해상에 이승만 라인을 공포하고 이 라인을 넘어와 조업하던 일본 어부 4천여명을 불법 구금하였으며(이 중 44명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한국 입국을 불허하였고, 일본과의 국교 수립 자체에 대한 무성의와 무관심을 보인데다가, 일본 영토 내 민간시설에 대한 테러 시도까지 공작하는 등 21세기 기준으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반일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자연히 이 시대는 한일관계가 해방 이후 역대 최악이던 시대였다. 식민통치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시각 또한 이후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대적이었음은 물론이다. [29] 수교 자체를 반대하는 한국 국민들의 시위, 김대중 납치 사건,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등 역시 민주화 이후 시대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일관계가 악화되었던 시기가 많았다.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을 때에는 한국 시위대가 주한일본대사관에 게양되어 있던 일장기를 끌어내려 찢어 버리기까지 했다. [30] 아베 신조 총리는 취임 이래 한국을 동등한 주권을 가진 우방국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자국보다 하위에 속하는 믿기 어려운 국가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문재인 대통령 또한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는 등 일본에 대한 강대강 포지션을 집권기 내내 취했다. [31] 독도 문제나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짐짓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양국관계를 이면조율함. [32] 참고로 일본은 전 추축국으로서, 유엔의 '적국조항'에 따라 전쟁 준비 등 불온한 움직임이 보일 경우 연합국이나 기타 국가가 선전포고 없이 바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국제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33] 한국은 동시기 2012년에 34조 원, 2019년에 47조 원으로 크게 뒤처진다. [34] 이게 심각한 포인트인 이유는 해병대라는 조직의 속성을 안다면 이해할 수 있는데, 어떤 국가든지 간에 해병대는 상륙과 점령을 주 목적으로 하는 공격적인 속성의 군사 조직으로, 애초에 전수 방위 및 군사 전력 보유를 금지한 일본의 평화헌법에 전면으로 위배되는 형태의 조직이기 때문. 더 위험한 부분은 이 수륙기동대의 창설이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35] 일본의 '외국인노동자'는 고급기술직이 대부분이었으며 저임금 단순노동직의 경우 주로 '기능실습생'이라는 제도로 후진국에서 많이 들어왔는데, 명목상으로는 일본에서 선진기술을 5년 동안 배워서 모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나 사실상의 노동자로, 저임금 혹사논란과 이들의 불법체류, 범죄문제가 심각하다. [36] 현재 일본 총리의 집무공간인 '수상관저'는 2002년 새로 지은 건물이다. 원래 집무 공간인 구 수상관저가 총리 공관으로 개조되어 '수상공저'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상공저는 수상관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37] 백악관 항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집무실과 주거공간이 결합된 곳에서 몇 년간 살아야 한다는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당히 고된 일임을 알 수 있다. [38] 하타 쓰토무 전 총리는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귀신을 직접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39] 다음 총리인 스가 요시히데 또한 공관 입주를 거부하고 의원 시절부터 거주한 의원 기숙사에서 출퇴근했다. 그 다음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는 공관에 입주했다. 그는 첫 출근날 귀신을 보았냐는 기자들 질문에 '그런 것 없었다'며 웃어넘겼다. [40] 한국 영화 시장에서 한국인들은 1인당 연평균 4.1회 정도를 본다. 한국 수준으로 봐서 1인당 연평균 4회 정도 본다고 하면 일본 영화 시장 규모는 단숨에 60억 달러 선으로 급등하여 미국+캐나다인 북미 영화 시장, 중국 영화 시장에 이어서 압도적인 세계 3위가 된다. [41] 어떤 부분을 개정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응답하지 않았다. [42]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아베 신조의 외종조부인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내세운 원칙이다. [43]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 [44] 1차 내각 (2006-2007) [45] 2차 내각 (2012-2014) [46] 3차 내각 (2014-2017) [47] 4차 내각 (2017-2020) [48] 2022.7.8 임기 중 사망 [49] 2006년 9월, 1차 내각총리대신 취임 당시 모든 총리들로 범위를 넓힌다면 3위인데,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가 최연소 총리이다. 2번째 최연소 총리는 고노에 후미마로. [50] 1868년 메이지 유신과 함께 일본의 입헌군주정이 시작되었고, 1885년 의원내각제가 시행되면서 내각총리대신 직책도 창설되었다. 통산 3,188일(8년 7개월) 간을 재임하며 역대 최장수 집권 총리역대 최장 연속 재임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역대 최장수 집권 총리 기록은 약 110여 년 만에 경신된 것이다. 기존 최고 기록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가쓰라 다로 전 총리의 2,822일(7년 7개월). [51] 오랫동안 아베를 괴롭혀온 지병으로, 2번의 총리 사임 이유도 모두 이 병 때문이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독 악화되는 질병으로, 각종 논란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사임의 그럴듯한 명분으로 적절하다. [52] 박근혜가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직전에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했고, 박근혜가 당선인이 된 이후 취임했다. 다만 공식적으론 이명박의 임기 시절이므로 이명박과도 동시기의 임기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53] 2001년 4월 ~ 2007년 9월, 2012년 12월 ~ 2020년 [54] 물론 진지하게 정색하면서 얘기한 건 아니고 농담조로. [55] 의자의 종류는 같은데, 의자의 높낮이를 다르게 배치했던 적이 있다. 물론 아베의 의자가 좀 더 높도록. [56] 방일한 한국 정치계 인사가 일본 총리와 같은 의자에 앉은 것 자체는 처음이 아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방일 당시 정 의장에게도 낮은 민무늬 의자를 내놓았지만 정 의장의 항의를 받고 자신의 의자를 똑같이 낮은 의자로 바꾸었던 적이 있다. [57] 다만 박정희는 현직, 아베는 전직인 상태에서 갔다는게 차이점이다. [58] # [59] 파칭코 업계는 재일교포가 꽉 잡고 있다. [60]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가 반전파 친한파였던 반면에 기시 노부스케는 도조 히데키를 지지했던 주전파이자 전범 용의로 구속수사 받았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바 있다. 아베 신조는 어릴 적 외가에서 길러져 친가보다는 외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고 아버지인 신타로와는 사이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기시 외조부를 존경한다고 밝힌 바 있다. [61] 둘다 친형제로서 성은 사토였으나 아버지의 혼전성을 노부스케가 물려받으면서 성이 달라진 것. [62]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도공 심당길의 14대 손인 도자기 장인 집안이다. [63] 아베 신조 아래부터 차례로 가쓰라 다로, 사토 에이사쿠, 이토 히로부미, 요시다 시게루 [64] 여담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극우파들의 20대 지지율이 높은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를 축적만 할 뿐 소비를 하지 않으며, 노인 복지비로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는 노인층에 대한 적대심리가 대단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65] 사실 민주당 집권시절에 대한 일본의 평은 최악이다. (엔고방치 및 대침체 대처 부실로 인한 경제추락,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서 중국에게 당하기만 하면서 미국에게는 버림받는 외교) 입헌민주당이 창당되자마자 치른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66] 게다가 현 20대가 일본이 본격적으로 우경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무렵에 태어난 세대라는 점 때문에 이들의 아베를 향한 지지는 상당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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