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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24 21:57:59

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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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 추존 군주
秦文王 | 진문왕
<colbgcolor=#CD7F32> 묘호 없음
시호 진문왕(秦文王)
이(李)
류(流)
현휴(玄休)
부왕 농서양왕
생몰 248년 ~ 303년
재위 303년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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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성한의 사실상 2대 군주. 이모(李慕)의 아들이며 이특의 동생이다. 조카 이웅에 의해 시호 진문왕(秦文王)으로 추존되었다.

2. 생애

이특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들 모두 기마술과 궁술에 능하고 용맹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동강교위 하분(何攀)은 이류를 가리켜 춘추전국시대 장사인 맹분, 하육과 비견될 것이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서진 말기 298년, 저족의 우두머리인 제만년(齊萬年)의 반란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졌고, 여기에 흉년까지 닥치자 수많은 유민이 발생했다. 이특, 이류 형제는 그 유민들을 이끌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다.

300년, 조흠(趙廞)이 난을 일으키자 이류의 형인 이상(李庠)[1]은 조흠에게 합류했으나, 사람들이 이상을 더 따르는 것에 위협을 느낀 조흠에게 숙청당했다. 분개한 이특과 이류는 조흠의 군대를 격파하고, 성도로 쳐들어가 조흠을 죽였다.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이류는 서진 조정으로부터 무양후(武陽侯)에 봉해졌다. 하지만 서진에서 새로 파견한 나상이 유민들의 귀환을 명하였고 이를 따르지 않은 이특 세력을 공격했다. 이특은 유민들에게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난을 일으켰고 이류 역시 전투에 참전하였다.

303년, 마침내 이특은 성도의 소성(少成)을 점령해 나상의 세력을 고립시켰고 촉의 백성들은 이특에게 복속했다. 이류는 형에게 그들의 배신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들의 자제들을 인질로 붙잡아야 한다고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해 2월 종대(宗岱), 손부(孫阜)가 수군을 이끌고 나상을 구하러 오자, 성도의 백성들은 이특을 배신하고 나상과 함께 이특을 공격했다. 이특은 패배해 나상에게 사로잡혀 참수되고, 그 시신은 불태워졌다.

이류가 형의 뒤를 이어 대장군, 대도독, 익주목을 자칭하고, 유민 세력의 우두머리 자리를 계승했을 때는 복속했던 촉 땅 사람들 대부분이 다시 진나라편으로 돌아섰다. 이류는 조카 이탕(李蕩), 이웅과 함께 잔존 세력들을 규합해 적조(赤祖)에서 북쪽 군영을 지켰다. 종대와 손부의 서진군이 덕양을 공격해 유민 세력의 장수 건석을 사로잡았고, 덕양태수 임장은 부현(涪縣)으로 도망쳤다.

그해 3월, 나상은 이번 기회에 이류의 유민 세력을 완전히 뿌리뽑기 위해 독호 상심(常深)을 보내 적조를 공격했다. 상심이 아문 황굉(黄訇), 하충(何冲)과 군사를 나누어 3갈래로 이류를 치니, 부현의 백성 약신(藥紳)이 호응해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류는 부현을 구원하기 위해 상심의 영채를 쳤고, 이탕과 이양이 약신을 막았지만 이번엔 이류의 군영 내에서 저족 부성(苻成), 외백(隗伯)이 반란을 일으켰다. 핵심 장수들이 모두 밖에서 진군과 싸우고 있는 참이라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군이 혼란에 빠져있던 와중, 죽은 이특의 아내 나씨(羅氏)가 갑옷을 입고 칼을 들어 직접 군사를 지휘해 반란군을 쳤다. 외백이 뛰쳐나와 칼로 나씨의 한쪽 눈을 찔러 실명시켰으나, 나씨가 이끄는 이류군의 기세는 더욱 높아졌고 반란군은 점차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마침내 약신을 진압한 이탕, 이양(李驤)이 군사를 돌려 황굉과 하충을 격파했고, 이류도 상심의 군대를 궤멸시킨 뒤 이탕, 이양과 합류해 자신의 군영으로 향했다. 반란에 실패한 부성과 외백은 무리를 거느리고 나상에게 투항했다. 애꾸눈이 된 어머니를 본 이탕은 분기충천하여 도망치는 반란군을 쳤으나, 적군의 창에 찔려 심각한 부상을 입고 얼마 뒤 사망했다.

승리한 이류는 기세를 타 성도를 공격했지만 나상이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묵묵히 지켰다. 이특과 이탕이 연달아 전사하고 뒤에선 종대와 손부의 토벌군이 쫓아오는 상황이라, 형세가 매우 불리하다 판단한 이류는 이함(李含)[2]의 투항 권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아들 이세와 이함의 아들 이호(李胡)를 손부에게 인질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양과 이웅이 여러 차례 반대해도 듣지 않고, 인질들을 종부군에 보냈다.

이호의 형인 재동태수 이리(李离)는 동생이 인질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말을 몰아 이류의 군영으로 갔는데, 때는 이미 인질들은 출발한 상태였다. 이리는 하는 수없이 이웅에게로 가 일을 의논한 뒤, 이웅과 함께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손부의 군대를 급습했다. 손부는 대패해 도망쳤고, 마침 종대까지 점강(墊江)에서 급사하니, 진나라의 형주군은 모두 퇴각했다. 이류는 심히 부끄러워하면서 이때부터 이웅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그에게 군사에 관한 모든 업무를 위임했다.

6월, 이웅이 문산태수 진도(陳圖)를 공격해 죽이고 비성(郫城)을 점령했다. 1개월 뒤, 이류도 주력을 거느리고 비성에 주둔하며 성도를 압박하자, 촉의 백성들은 희망이 없다 판단해 토성을 쌓아 험준한 곳으로 들어가거나 영주(寧州)와 형주로 피난갔다. 성읍이 모두 텅텅 비는 바람에 이류의 군대가 노략질할 것도 없어 병사들은 굶주리고 지쳤다. 이때 재동군 부현 백성 1,000여 호만이 남아 청정산(靑城山)의 은사(隱士) 범장생에 의지하며 피난가지 않았다. 부현의 평서참군 서여(徐轝)가 나상과 불화하여 이류에게 투항했는데, 이때 서여는 범장생을 설득해 그를 이류군에 합류시켰다. 이류 휘하에 들어간 범장생이 군량을 공급해준 덕에 이류의 군사들은 다시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9월, 이류가 병에 걸려 위독해졌다. 평소 이웅을 가리켜 "우리 가문을 부활시킬 자는 필시 이 사람이다."라는 말을 항상 달고 살던 이류는 장수들을 불러모아 말했다.
"거기장군 이양은 인덕이 있고 총명하며, 결단력도 좋아 큰 일을 이루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전장군 이웅의 영준함과 용맹함은 마치 하늘의 선택을 받은 것 같으니, 너희는 앞으로 모두 전장군을 받들어 그를 성도왕으로 세우도록 하라."
말을 마친 이류는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향년 56세. 제장들은 이류의 유지를 받들어 만장일치로 이웅을 옹립했고, 이양 또한 이에 수긍해 이웅을 성심성의껏 받들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306년에 성한을 건국한 이웅에 의해 진문왕(秦文王)으로 추존되었다.

3. 둘러보기(계보)

성한의 역대 황제
초대 시조 경황제 이특 2대 진문왕 이류 3대 태종 무황제 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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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특의 동생이기도 하다. [2] 서진의 인물 이함과는 다른 사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