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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5-19 01:03:31

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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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추존 황제
太祖 惠武帝 | 태조 혜무제
<colbgcolor=#483D8B> 묘호 태조(太祖)
시호 혜무황제(惠武皇帝)
연호 없음
성씨 부(苻)
홍(洪)
광세(廣世)
부친 포회귀(蒲懷歸)
생몰 285년 ~ 350년
재위 전진 세력 초대 국왕
350년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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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전진(前秦)의 기반을 닦은 사실상의 초대 황제.

원래의 성은 (蒲)였으나 '초'(草)와 '부'(付)를 합쳐 성씨를 (苻)로 바꾸었다.[1] 사후 전진이 건국된 후 아들 부건에 의해 '태조(太祖) 혜무제(惠武帝)'로 추존되었다.

2. 생애

부홍의 아버지는 저족의 소수(小帥)였던 포회귀(蒲懷歸, ? ~ ?)였다. 부홍은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나 저족의 맹주로 추대되었다.

한동안 약양공(略陽公)을 자칭하며, 할거했다가 319년 전조 유요가 장안으로 천도한 뒤엔 전조에 복속해 솔의후(率義侯)에 봉해졌다. 그리고 328년에 유요가 후조 석륵에게 붙잡히고 곧이어 전조가 멸망하자 후조에 투항하여 관군장군(冠軍將軍)과 감육이군사(監六夷軍事)라는 새로운 직책에 임명되었다.

333년 석륵이 붕어하고, 유약한 석홍이 즉위하자 승상이었던 석호가 조정의 실권을 장악해 전횡을 일삼았다. 이렇게 후조 황실에 혼란이 발생하자 부홍은 한족 정권인 전량에 투항했지만 석호가 황제로 즉위하고 토벌군을 보내자 부홍은 다시 후조로 돌아갔다. 돌아온 부홍에게 석호는 유민들, 그리고 저족 강족 등을 동쪽으로 이주시킬 것을 명령했고 도독에 임명했다.

부홍은 도독이 된 이후 여러 공을 세웠다. 중간에 한족 장수인 염민이 석호에게 부홍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그를 제거하라고 했으나 다행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에도 역대 황제들에 의해 여러 관직에 임명되다가 350년 염민 석감을 죽이고 염위를 건국하자 부홍도 칭왕하여 전진의 초대 군주로 즉위했다. 그리고 동진에게 군신관계를 청했고, 부홍은 저왕(氐王)에 봉해졌다.

하지만 마추(麻秋)[2]와 함께 관중 지역을 차지한 후 중원을 점령하는 계획을 세우고 진출 준비를 하던 중 마추에게 독살당했다. 부홍의 아들 부건은 마추를 죽이고 부홍의 뜻을 이어받아 장안을 점령한 후 351년 천왕이 되어 전진을 세운 뒤에 아버지 부홍을 태조로 추존했다.

3.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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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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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의 역대 황제
전진 건국 초대 태조 무혜제 부홍 1대 고조 경명제 부건


[1] 당시 유행하던 예언인 초부가 마땅히 왕이 되어야 한다(草付應王)에 따라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2] 후조의 장군. 석호가 보낸 토벌군을 지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