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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메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10px 10px; background: #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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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May Disc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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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

1993

199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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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메이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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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1974

1974

1975

1976

1977

1978

1980

1980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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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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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ve Albu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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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Killers
1979
Live Magic
1986
At the Beeb
1995
Live at Wembley '86
1992
Queen on Fire – Live at the Bowl
2004
Queen Rock Montreal
2007
Hungarian Rhapsody: Queen Live in Budapest
2012
Live at the Rainbow '74
2014
A Night at the Odeon
2015
[ Compilations ]
||<tablebgcolor=white,#191919><table color=#373a3c,#ddd><tablewidth=100%><width=20%><rowbgcolor=#ffffff,#191919> ||<width=20%> ||<width=20%> ||<width=20%> ||<width=20%> ||
Greatest Hits
1981
Greatest Hits II
1991
Classic Queen (미국 한정)
1992
The 12" Collection
1992
Queen Rocks
1997
Greatest Hits III
1999
Stone Cold Classics
2006
The A-Z of Queen, Volume 1
2007
Absolute Greatest
2009
Deep Cuts, Volume 1 (1973-1976)
2011
Deep Cuts, Volume 2 (1977-1982)
2011
Deep Cuts, Volume 3 (1984-1995)
2011
Icon (미국/캐나다 한정)
2013
Queen Forever
2014
Greatest Hits in Japan (일본 한정)
2020
[ Box Sets ]
||<tablebgcolor=white,#191919><table color=#373a3c,#ddd><tablewidth=100%><width=20%><rowbgcolor=#ffffff,#191919> ||<width=20%> ||<width=20%> ||<width=20%> ||<width=20%> ||
The Complete Works
1985
Queen CD Single Box
1991
The Crown Jewels
1998
The Platinum Collection
2000
The Singles Collection Volume 1
2008
The Singles Collection Volume 2
2009
The Singles Collection Volume 3
2010
The Singles Collection Volume 4
2010
On Air
2016
The Miracle Collector's Edition
2022
{{{#!folding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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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ongwriters-hall-of-fame-logo_770_441_90_s.jpg 작곡가 명예의 전당 헌액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름 브라이언 메이
Sir BRIAN MAY
입성 연도 2003년 출처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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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척 베리 지미 페이지 에디 밴 헤일런 제프 벡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시스터 로제타 사프 나일 로저스 비비 킹 조니 미첼 듀언 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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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산타나 지미 노렌 토니 아이오미 프린스 키스 리처즈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로버트 존슨 메이벨 카터 톰 모렐로 프레디 킹 스티비 레이 본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랜디 로즈 앨버트 킹 커크 해밋 & 제임스 헷필드 제임스 버튼 존 프루시안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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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 버디 가이 데이비드 길모어 에디 헤이즐 닐 영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지 해리슨 잭 화이트 브라이언 메이 제리 가르시아 에릭 클랩튼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엘리자베스 코튼 피트 타운젠드 앵거스 영 & 말콤 영 쳇 앳킨스 존 페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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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디들리 버논 레이드 조니 그린우드 & 에드 오브라이언 조니 라몬 스티브 크루퍼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프랭크 자파 디 에지 커티스 메이필드 PJ 하비 엘모어 제임스
51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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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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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15년 10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키스 리처즈 제프 벡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비비 킹 척 베리 에디 밴 헤일런 듀언 올맨 피트 타운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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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스티비 레이 본 앨버트 킹 데이비드 길모어 프레디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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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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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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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기사 서임자 (여성)
GBE 파일:Grand Cross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_.jpg
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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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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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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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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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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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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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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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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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메이
Brian May
파일:브라이언 메이 4.jpg
<colcolor=#fff><colbgcolor=#AF1E09> 본명 브라이언 해럴드 메이
Brian Harold May
출생 1947년 7월 19일 ([age(1947-07-19)]세)
영국 잉글랜드 미들섹스 햄프턴 힐[1]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싱어송라이터, 음악, 영화 프로듀서, 천체물리학자, 작가
소속 1984 (1966 - 1968)
스마일 (1968 - 1970)
(1970 - )
서명
파일:브라이언 메이 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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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color=#fff><colbgcolor=#AF1E09> 부모 아버지: 해럴드 메이
어머니: 루스 메이
배우자 크리시 멀런 (1974 - 1988, 이혼)
아니타 돕슨 (2000 - )
자녀 제임스 "지미" 메이 (1978년생)
루이사 메이 (1981년생)
에밀리 메이 (1987년생)
학력 햄프턴 그래머 스쿨 (졸업)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 천체물리학 / B.Sc)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 천체물리학 / Ph.D.)[2]
종교 무종교 ( 불가지론)
신체 188cm[3], 67kg
활동 기간 1964년 -
장르
악기 기타, 보컬, 키보드
레이블 팔로폰, 할리웃
약력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 총장 (2008 - 2013)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4]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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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rockmusic.org/brian%20may%2017%20-%201984.jpg|width=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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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Brian+May+Olivier+Awards+2012+Arrivals+MDkwF9hLvlMl.jpg|width=100%]]
1984년 ' The Works'
활동 당시 (37세) 모습
2012년 (65세) 모습
1. 개요2. 음악성
2.1. 음악적 특징2.2. 사용 장비
3. 생애
3.1. 방한3.2. 건강악화3.3. 근황
4. 음반 목록5. 그 외
5.1. 여담5.2. 그에 대한 말

[clearfix]

1. 개요

영국 록 밴드 기타리스트이자 천체물리학자.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 총장 역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5]에 진학하여 천체물리학자[6]를 꿈꾸던 그는 의 전신인 스마일에 합류한 시점에서 이미 박사 과정을 밟던 중이었다. 그러나 밴드가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면서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밴드활동에 전념하게 된다.[7]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프레디 머큐리가 불세출의 보컬 능력과 무대 장악력을 지녔기에 가려지긴 했지만, 그의 기타 연주 실력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이다. 2005년 영국 라디오 방송국인 '플래닛 락'이 실시한 투표에서 역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Greatest Guitarist of All Time) 7위에 올랐고,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100 Greatest Guitarist of All Time) 중에서는 26위에 올랐다.

트레이드 마크는 젊은 시절 때부터 유지하고 있는 장발의 곱슬머리와, 그만의 전용 시그니처 기타라 할 만한 레드 스페셜이다.[8] 키가 크고 매우 말랐다. 평상시에 통이 큰 옷을 입는 것도 이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9]

2. 음악성

2.1. 음악적 특징

브라이언 메이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리치 블랙모어, 조지 해리슨, 데이비드 길모어 등 괴물같은 기타리스트들과, 키스 리처즈, 피트 타운젠드같은 역사상 족적이 큰 리듬 기타리스트들이 활동했었다. 또한 같은 밴드 보컬리스트가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기에, 상술한 요인들 때문에 브라이언 메이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본다면 하드 록 역사에서 상당히 큰 족적을 남긴 기타리스트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다. 롤링 스톤 선정 위대한 기타리스트 26위에도 랭크 되었는데, 롤링 스톤과 퀸의 사이가 매우 나쁨에도 불구하고 제법 높은 30위권 안에 들었다는것부터 그의 높은 기타 실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기타를 살 돈이 마땅치 않아서 전자기사인 아버지와 함께 제작한 수제 기타 " 레드 스페셜"을 가지고 있으며, 50년이 지난 지금도 녹음과 연주할 시에 메인 악기로 사용하고 있다.[10] 때문에 그의 기타 톤은 완전한 브라이언 메이의 수제이며, 평범한 기성 기타로는 그 독특한 톤을 카피하기 어렵다.[11][12] 연주할 때는 피크 대신 6펜스 동전[13]을 사용하는데, 동전이 딱딱하기 때문에 컨트롤하며 연주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14] 브라이언 메이의 테크니션인 피트 맬런드론(Pete Malandrone)의 말에 인터뷰를 보면 동전으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에는 늘 금속 가루가 묻어있고, 픽업은 깎여나간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자주 관리를 해줘야한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동전으로 피킹한 것 때문에 기타 넥의 제일 하단 부분 역시 깎여 나갔고, 픽업 또한 눌리거나 휜 부분이 보인다.

의 대표곡 가운데 " '39", " We Will Rock You", " I Want It All", " The Show Must Go On",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등 퀸의 하드락 넘버 상당수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발라드 등 여러 장르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실상 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Made in Heaven에서 그가 작곡한 "Too Much Love Will Kill You"는 1세대 SM3 CF에 삽입되어 다시 한 번 곡을 알렸다.

파일:external/www.guitarontheedge.co.uk/brian_may_5.jpg

속주가 특기는 아니다.[15] 하지만 그의 연주는 상당히 치밀한 두뇌 플레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라이브에서 그의 솔로파트다. 3집 " Sheer Heart Attack"의 첫 번째 트랙 "Brighton Rock"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자신이 연주한 멜로디가 몇 초 뒤 스피커에서 다시 나오는 딜레이 이펙터라는 장치를 가지고, 자신의 멜로디와 화음을 맞추는 새로운 멜로디를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서 기타로 돌림노래를 하는 셈.[16] 언뜻 보기에도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막상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난해하기 그지 없다. 화성학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연주.


직접 확인해보자.

특유의 기타 오케스트레이션도 유명하다. 단순한 단음 기타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타 음을 쌓아 올려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화려한 트랙을 만드는 것이 브라이언의 또 다른 음악적 장기. Jazz(음반)의 수록곡 <Dreamer's Ball> 인트로가 대표적이다.

또한 초기 퀸 사운드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데, 7집 " Jazz" 앨범 전까지 밴드가 신디사이저 없이 특수한 사운드를 낸 것은 그의 기타가 큰 역할을 했다. 4집 " A Night at the Opera"의 그 기묘하고 놀라운 효과음에 신디음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 그의 다양한 연구와 전자공학도였던 존 디콘의 기계장치들이 초창기 퀸 사운드를 만든 것이다.

아이리쉬 기타리스트 로리 갤러거의 팬이라 한다. 같이 찍힌 사진도 있으며[17] 본인 말로는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여담으로 두 분 다 복스 앰프 마니아시다.[18] 또한 로리 갤러거가 스트라토캐스터 → Dallas Rangemaster 트레블 부스터 → VOX AC30의 조합으로 내던 소리에 매료되어 트레블 부스터를 쓰기 시작했다.

블루스와 블루스 록에 큰 영향을 받은 세대의 기타리스트이긴 하지만, 크게 놓고 보았을 땐 블루스보다는 멜로디컬한 연주에 집중하는 기타리스트에 가깝다. 또한 오케스트레이션 등을 통해 클래식 음악에도 많이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속주, 블루스 플레이, 오케스트레이션, 재즈 등 브라이언 메이가 할 수 있는 연주는 많지만 그 중 하나에만 치우치지 않고 그 장기들을 적극적으로 혼합 활용하여 하나의 큰 스타일을 구축한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로저 테일러와 함께 퀸의 백킹 보컬을 맡았고, 8집 The Game 앨범까지는 직접 리드싱어로 맡기도 했다. 사실 로저 테일러가 주로 서브 보컬을 맡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브라이언 메이는 꽤나 출중한 보컬리스트였다. 메이는 프레디 머큐리보다 먼저 솔로 앨범을 냈었다. 프레디 머큐리 사후 브라이언 메이 본인이 때때로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한다. 이는 로저 테일러도 마찬가지.

브라이언 메이가 직접 부른 곡 중에 유명한 곡 중 하나가 Too Much Love Will Kill You인데, 프레디 머큐리의 버전이 더 유명하긴 하지만 브라이언 메이 버전도 상당히 괜찮다. 브라이언 메이는 라이브 공연에서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이 곡을 듀엣으로 부른 적도 있는데, 다른 유명 가수들이 파바로티와 같이 불렀다가 압살당하는 굴욕을 맛보곤 했지만 브라이언 메이는 원곡자의 감성을 살려 오히려 파바로티보다 더 존재감 있는 가창을 들려줬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브라이언 메이,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리고 의외로 가성이 상당히 높다. 그의 솔로곡 'Hot Patootie'라는 곡에서 낸 C#6(4옥타브 도#)이 그의 최고음으로 알려져 있다.

피아노 연주 실력도 꽤나 좋다. 원래 프레디 머큐리가 들어오기 전인 스마일 시절에는 브라이언 메이가 건반을 담당했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들어오고 나서 Queen이 결성되자 머큐리가 메인 키보드를 담당하게 되지만, 여전히 서브 키보드로 활약한다. 라이브 공연에서 Save me, Teo Torriatte 등에서는 메이가 피아노를 치곤 했다.

Save Me


결론은 작사작곡, 악기연주, 보컬능력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뮤지션.

2.2. 사용 장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브라이언 메이/사용 장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생애

3.1. 방한

3.2. 건강악화

아담 램버트와 함께 꾸준한 월드 투어 활동을 해왔으나, 2016년 10월 21일 브라이언 메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건강 악화에 대한 글을 남긴다. 참고 2014년경에 암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2016년 다시 재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암이라는 단어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글 중에 'persistent illness which is destroying my energy and my will.'의 문장으로 보아 암이 재발하여 다시 암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은 2016년 Queen + 아담 램버트 아시아 투어까지는 자신이 어떻게든 컨디션 조절을 하여 무사히 마쳤으나, 계속되는 체력저하와 건강악화로 인해 여태까지 꾸준히 듀오로 활동했던 켈리 엘리스와의 2016년 4분기 일정을 모두 취소하게 된다. 브라이언은 앞으로의 모든 SNS 활동과 기자 접촉을 자제하고 조용히 건강 회복에 전념하겠다는 말을 남겼고, 팬들에게 깊은 사과의 글을 남겼다. 브라이언 메이의 트위터 활동은 2016년 10월 22일에 올린 글을 마지막으로 활동이 정지된 상태였으나, 2016년 11월 10일 기준으로 건강이 회복된 것인지 다시 트위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건강이 많이 회복된 상태라고 하며, 이후 다시 왕성한 SNS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 2021년 심장 수술 및 안구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오기도 했다. 다행히 수술은 별 탈 없이 끝났다고 한다.

2021년 12월 18일,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SNS에 알렸다. 양성 판정이 나온 지는 일주일 정도 된 듯 하며, 다행히 차도가 보인다는 소식 역시 알렸다. 본인은 이번 소식에 대해 "두려워 하지 말되, 조심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3.3.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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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과 브라이언 본인 역을 맡은 배우 귈림 리

4. 음반 목록


이외에도 프로듀서로써의 음반, 솔로 싱글 역시 굉장히 많다. 자세한 목록은 위키피디아 문서 참조

5. 그 외

5.1. 여담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107ae7af35b1eedd30227c8af565d347.jpg * 가브리엘 르벨(Gabriel Revel)의 ' 천문학자의 초상'이라는 작품. 이미지 속 인물의 모습이 브라이언 메이와 비슷함과 동시에 마침 브라이언 메이의 또다른 직업이 천문학자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진 속 천문학자의 이름은 르네 데카르트라고 표기되어있다.
파일:페이지옹과 메이옹.jpg * 레드 제플린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와 매우 절친한 사이인데,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본인 또한 지미 페이지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며[28], 이 둘은 현재 에릭 클랩튼과 함께 영국 뮤지션 중 기사 작위 수여자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흑마법사와 과학자 이후 2023년 메이가 먼저 서임되었다.
파일:브라이언 메이 기사 서임.webp
찰스 3세 국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서임받는 브라이언 메이

5.2. 그에 대한 말

나의 기타 영웅
데이브 그롤
그는 지배자입니다. 최고의 팝 지향적 기타리스트이죠.
제프 벡
그는 대단하고 매우 매력적인 기타리스트입니다
리치 블랙모어
나에게 있어 기타는 매우 감성적인 것이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뛰어난 사람이고, 그의 연주에서 그것이 잘 드러납니다. 저는 어떤 기타 연주자의 소리든 듣고 따라할 수 있지만, 브라이언 메이의 소리는 따라할 수 없겠더군요. 그는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연주를 합니다.[원문]
스티브 바이


[1] 그레이터 런던 리치먼드어폰템스 햄프턴 힐. 마거릿 대처 시기 대처 내각과 반대되는 진보적인 정책을 폈던 노동당 지방 정부를 탄압하기 위해 보수적인 근교 지역을 그레이터 런던에 편입시킬때 함께 런던 지역에 편입되었다. [2]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도중에 퀸을 결성하면서 장기간 휴학했다가, 2008년 <A survey of radial velocities in the zodiacal dust cloud>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3] 퀸 멤버들 중에서 독보적인 최장신이다. 퀸 멤버들의 인생을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본인 역 배우로 출연한 귈림 리와 같다. [4] 근황기사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SNS활동이 정말 활발하다. 개인사뿐 아니라 퀸의 일정이나 천문학 관련 글도 많이 올린다. 글의 끝에 Bri를 붙이는 습관이 있다. [5] 영국의 명문 대학으로 특히 공과대학 쪽은 영국 최고의 명문이며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6] 천체물리학은 "Astrophysics", 천문학은 "Astronomy"이다. 실제로 브라이언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물리학자라고 불렀다. 다만 현대 천문학에서 이 두 용어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천문학에서 천체물리학이 나왔으며, 현대에 들어서 물리학 기반 없는 천문학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천체물리학과 천문학이 같다고 봐도 된다. [7] 사실 이 정도 학벌에다가 천체물리학에 대한 열정까지 있었던지라 브라이언 메이는 굳이 음악을 안 해도 충분히 성공했을 법한 음악가로 꼽히기도 한다. 추후에 박사 학위까지 따고 연구를 진행하기에 음악가이기 이전에 실제 천체물리학자이다. [8] 어려서는 자신의 곱슬을 싫어했음과 더불어 두발 단속으로 인해 저 머리를 일일이 펴서 다녔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고등학생 시절 밴드 '1984' 소속 당시 사진.(맨 오른쪽이 브라이언) [9] 최근 인스타그램에 새로 맞춘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수트핏이 상당하다. [10] "핑거보드는 러스틴 플라스틱 코팅(러스틴 플라스틱 코팅은 대부분 악기보다는 식탁 같은 규모가 조금 큰 제품에 광택을 내는 데 쓰이는 듯하다.)으로 칠했고요. 트레몰로는 자전거 안장에 다는 주머니로 만들었는데, 끝부분의 놉은 뜨개질용 바늘로, 스프링은 낡은 오토바이의 밸브 스프링으로 만들었답니다." - Queen In Their Own Words 中 - [11] 바디에 쓰인 목재부터 자기집의 벽난로를 지탱하고 있던 100년 묵은 마호가니 나무다. 그 이외의 모든 부품들은 여타 기타에 쓰이는 정규 부품이 아닌 잡동사니로 만든 부품이라 소리를 흉내내기 힘들다. 만약 브라이언 메이가 정규 부품으로 제작을 했다면 어느 정도 흉내낼 수 있었을 것이다. [12] 레드 스페셜에 쓰일 픽업 부품도 처음에는 본인이 제작했지만, 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Burns사의 Tri-Sonic 픽업을 구매해 달았고, 현재의 그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13] 파운드 스털링 화폐개혁 이후에 2.5펜스로 유통되다가 1980년부로 통용 정지되었다. 물론 따라해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6펜스를 구해서 피크로 쓰고 싶다면 호주의 5센트 동전을 대용으로 써도 된다. 6펜스 동전과 호주 5센트 동전의 스펙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14] 비슷한 경우로 ZZ TOP의 빌리 기븐스도 멕시코의 페소 동전을 피크로 쓴다. [15] 그렇다고 해서 못 하는 건 아니다. Gimme the Prize의 인트로 부분도 상당한 속도의 속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The Invisible Man의 기타 솔로 구간이나 90년대에 솔로로 활동할 때의 곡인 'Resurrection' 등에서도 가공할 속도의 속주가 등장한다. 다만 필요할 때만 쓰다 보니 눈에 띄지 않았던 듯하다. [16] 더욱 놀랍게도 아래 영상처럼 이것을 라이브에서 그대로 재현한다. [17] 이 사진에는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도 있다. [18] 다만 로리 갤러거는 이후에 펜더나 마샬 앰프도 자주 썼다. [19] 이에 대해 댓글 중 하나는 "우와! 록티머스 프라임이잖아! :D(Hey, it's Rocktimus Prime! :D)"라고 재치있게 말했다. [20] 네이쳐의 자매지로, 과학에 관한 모든 분야를 다룬다. [21] 2000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Furia>의 사운드트랙. [22] 정확히는 브라이언 메이 본인의 명의로 진행한 것이지만 타 유명 아티스트가 많이 참여하였으므로 콜라보레이션 음반에 기재 [23] 영국의 기타리스트/가수 크리스 톰슨(Chris Thompson)과의 작품 [24] 독일의 일렉트로닉 악단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과의 작품 [A] 영국의 뮤지컬 배우/가수 케리 엘리스(Kerry Ellis)와의 작품 [A] [27] 참고로 앨범 제목은 1987년 브라이언이 작곡과 제작을 맡은 혼다 미나코의 동명의 곡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 앨범에는 해당 곡의 커버 버전이 수록되었다. [28] 실제로 퀸 멤버들은 전원이 레드 제플린의 광팬이었다. [29] 리치 블랙모어는 오랜 세월동안 메탈만 하다가 3번째 아내와 결혼하면서 바로크 풍의 포크 음악으로 전향했는데 이런 파격적인 음악적 행보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 [30] 지금까지 공식 보존된 자료로는 2번 연주되었는데, 우연일지는 몰라도 솔로 활동 때는 리치 레인보우 시절을 함께 한 드러머 코지 파웰이, 2012년 Sunflower Jam에 출연하였을 때는 리치 딥 퍼플 시절을 함께한 이안 페이스가 드럼으로 참여했다. [31] 이 곡은 레인보우 로니 제임스 디오 탈퇴 이후 팝적인 음악을 하던 때 나온 곡이라 다소 글램 록적인 면이 있어서(즉, 퀸(밴드)의 음악과 비슷한 풍이라서) 꽤나 잘 어울리게 커버를 했다. [32] "브라이언은 이 계통에서 가장 성격 좋은 사람 중 하나(One of the nicest guy in the business)일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심지어는 농담도 던졌다.("그 친구 키가 좀 너무 크긴 합니다만, 그건 뭐 어쩔 수 없겠죠.") 참고로 두 사람은 모두 록 에이드 아르메니아의 수록곡 < Smoke on the Water>의 기타 연주를 담당하였다. [33] 메이가 합류 시 다니고 있던 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이다. [34] 영국 대학총장은 명예직이며, 실권은 부총장이 행사한다. [35] 지미 페이지, 닐 머레이, 코지 파웰 같은 거물급 아티스트들이 참여했고 존 디콘도 우정 참여하였다. 국내에서도 EMI/계몽사를 통해서 동시 발매되었다. [36] A Day at the Races 앨범에도 존 디콘 작곡의 동명의 곡이 존재한다. [37] 푸 파이터스의 데이브 그롤이나, 팝스타 케이티 페리 등이 역시 퀸빠임을 드러내며 열광했다고 한다. [38] 다큐멘터리에서 브라이언은 이 말 뒤에 당시를 생각하며 눈물을 보인다. [39] 다만 프레디의 경우 1979년까진 비흡연자였다. [40] 당시 에이즈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41] 정확히 말하자면 착잡한 심정이라고 한다. [42] 메이와 디콘은 방탕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성장 배경도 그렇거니와 술·담배를 꺼리며 욕설도 잘 하지 않는, 보통 생각하는 락 밴드 멤버의 모습과 다른 건전한 모습이다. [43] 해석하자면 "그 누구도 비틀즈에 근접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오아시스를 포함해서." [44] 여기서 굳이 오아시스를 언급한 이유는, 당연히 오아시스의 위상이 비틀즈에 근접한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당시 오아시스 갤러거 형제를 포함해서 언론에서 오아시스 제 2의 비틀즈라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45] 지미 헨드릭스가 브라이언의 대학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 공연의 기획에 브라이언이 참여했다. 참고로 브라이언은 이때 지미를 굉장히 쿨한 사람으로 회상했다. 대기실에서 나오자마자 특유의 쿨한 말투로 "무대가 어디지, 친구?"(Where's the stage, man?)라고 물어보았고, 이후 공연을 시작했다고. 그리고 연주를 지켜보던 브라이언은 '분명 저건 기타고, 저건 앰프가 분명해. 그런데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또 자신의 기타 실력에 만족하던 상태였지만 그의 Foxy Lady 라이브를 보며 "정말 압도 되었었고, 무섭기까지 했다. (중략) 난 정말 기타를 내려놓고 싶었다." 참고로 지미가 쓰던 대기실은 훗날 브라이언이 로저 테일러와 처음 합주를 하게 되는 재즈 클럽이었다고 한다. 지미의 공연이 끝나고 일종의 헌정의 의미로 자신의 밴드와 Purple Haze 연주를 했는데, 나중에 듣고보니 지미가 그걸 뒤에서 지켜보고 갔다고 한다. 출처 [46] 참고로 밑의 영상에서 브라이언이 바꿔온 기타가 바로 위에서 말했던 John Birch 레플리카이다. [47] 보통 환경운동을 지지하는 중도파 노동당보다는 자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사회주의자인 코빈을 지지했다는 것은 브라이언 메이의 정치관이 늙어서 진보적으로 변했다고 봐야한다. [48] 론 마엘(Ron Mael)과 러셀 마엘(Russell Mael) 형제로 이루어진 팝 그룹 [원문] "He's a class act from head to toe, and it shows in his playing. I can listen to any player and pantomime their sound, but I can't do Brian May. He's just walking on higher g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