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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

마이클 케인의 주요 수상 및 수훈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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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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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자|Academy Award for Best Supporting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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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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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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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먼
( 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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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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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제56회
( 1999년)
제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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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
(작은 목소리)
짐 캐리
( 맨 온 더 문)
남우주연상 - 미니시리즈
제45회
( 1988년)
제46회
( 1989년)
제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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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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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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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듀발
(시빌 액션)
마이클 케인
( 사이더 하우스)
앨버트 피니
( 에린 브로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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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73535><colcolor=#ffffff> 마이클 케인 경
Sir Michael Caine
파일:external/www.biosstars-mx.com/Michael-Caine-1.jpg
이름 마이클 케인
Michael Caine[1]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33년 3월 14일 ([age(1933-03-14)]세)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런던 서더크 로더히스
신체 188cm[2]
가족 부: 모리스 조셉 미클화이트(1899년 출생~1956년 사망)
모: 엘렌 마리아 버첼(1900년 출생~1989년 사망)
이부형: 데이빗 버첼(1925년 출생~1992년 사망)
남동생: 스탠리 케인(1936년 출생~2013년 사망)
전 배우자: 퍼트리샤 헤인스(1932년 출생~1977년 사망, 1955년 결혼~1962년 이혼)
배우자: 샤키라 바크시(1947년 출생, 1973년 결혼~현재)[3]
딸: 도미니크(1956년 출생)
딸: 나타샤(1973년 출생)
병역 1952년 1954년[4]
직업 배우, 군인
종교 개신교( 성공회)[5]
배우 활동 1946년 2023년
데뷔 1946년 '모닝 디파처(Morning Departure)'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
2.1. 전성기2.2. 노년
3. 필모그래피
3.1. 영화
4. 여담

[clearfix]

1. 개요

영국의 저명한 원로 배우이자 프로듀서. 젊을 때부터 188cm의 큰 키와 개성적이고 섹시한 외모, 패션 센스로 유명했다. 테렌스 스탬프, 제인 버킨, 트위기, 제인 애셔 등과 함께 60년대 영국의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 문화의 한 축이기도 했다. 실제로 젊은 시절 대표작인 알피는 스윙잉 런던 시절 영국을 보여주는 영화로 꼽힌다.

다작배우이기도 하여 현재까지 할리우드 영화를 포함해서 115편이 넘는 영화에 주연 및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기사 작위도 받았다.

2. 생애

워킹 클래스 출신으로, 런던 서민층 특유의 코크니 억양이 있다. 배우 본인이 직접 시연하는 마이클 케인 억양[6] 오만한 영국 장교역으로 나온 줄루(1964)나 상류계급으로 출연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를 보면 귀족적인 발음도 잘 한다. 하지만 후자의 마지막 등장 장면에서는 고상했던 말투를 벗어던지고 코크니 억양으로 You dirty little fucking prick!이라는 사자후를 발함으로써 올드팬들을 감동시켰다.

어시장 짐꾼과 청소부의 아들로 태어난 노동 계급(Working Class) 출신이며, 부계 쪽으로는 아일랜드 혈통을 이어받았다. 마이클 케인 특유의 반쯤 감긴 눈은 어릴 적 눈병을 앓아 얻은 것인데, 오히려 이 점이 무표정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평.[7] 영국에서 1944년 교육법으로 제정된 초등학교 졸업생 대상의 중등학교 입학 및 영재발굴의 일환으로 만들어지는 11플러스의 첫 대상자이기도 하며 이 시험에 통과하였다.

우리나라에겐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사의 사환 등으로 일하다가 6.25 전쟁 알보병으로 참전한 이력이 있다. 1951년 영국 육군에 징집되여 서독 이절론에 주둔하던 중, 파병부대에 지원하면 빨리 제대시켜주겠다는 제안에 혹해서 1952년부터 주한영연방군 로열 퓨질리어 연대 소속 사병으로 6.25 전쟁에 참가했다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인터뷰에 의하면 남양주시 근처의 골짜기로 정찰을 나섰다가 얼어붙은 논 위에서 중공군에 포위당한 적도 있다. 당시 4명의 분대원 모두가 전사하거나 포로가 될 위기에 처했는데, 퇴로를 미리 차단하려고 하던 중공군의 허를 찔러 일부러 적진을 향해 전력질주한 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고.
이 경험은 훗날 강렬한 트라우마로 남아 그의 인생 전체를 규정하다시피했고, 그런 인연 때문인지 영국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6.25 전쟁 관련 영화인 <한국의 언덕(A Hill in Korea)>(1956)에 출연하면서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주의에 호의적이었으나 6.25 전쟁 참전을 계기로 생각[8]이 바뀌었다고 한다.[9]

군 복무가 끝난 이후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극단에서 무대감독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원래 쓰려고 했던 예명은 '마이클 스코트'였는데, TV 시리즈에 캐스팅 제안을 받고 영국 배우노동조합에 가입하려고 보니 이미 마이클 스코트란 배우가 등록되어 있었다.[10] 그래서 케인의 에이전트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30분 안에 예명을 생각해내라고 했다. 당시 그는 런던의 시네마 메카 레스터 광장에 있었는데, 거기서 케인이 아주 좋아하는 배우였던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바로 태평양 전쟁 미 해군 소해정을 배경으로 한 영화 "케인 함의 반란(1954)"이었는데, 거기서 힌트를 얻어 '마이클 케인'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11]

2.1. 전성기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역사/전쟁 영화인 줄루(1964)와 세태 코미디 영화인 알피(1966)를 통해서였다. 다만 줄루 시절만 해도 19세기의 영국군 장교역을 했는데 거만하게 오른손이나 뒷짐지고 다니는, 손도 못 쓰는 연기자라는 평을 들었다.[12] 이후 국제 첩보국[13]에서 인기를 얻었고, 이탈리안 잡(1969)에서는 코크니 출신의 젊은 범죄자 찰리 크로커, 겟 카터(1971)에서는 런던의 갱스터 잭 카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시기에는 공군 대전략(1969)을 위시한 2차대전 영화에도 위관급 장교역으로 종종 출연했고, 이것은 70년대 들어서는 독수리는 내리다(1976)와 머나먼 다리(1977) 등에서의 강인한 영관급 야전 지휘관 역할로 이어졌다.

서술된 《줄루》, 《알피》, 《국제 첩보국》, 《이탈리안 잡》, 《겟 카터》는 영국 영화 협회 BFI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영국 영화 100편에도 선정되는 등, 60~70년대 자국내 활동만으로 한 획을 그었다.

80년대 들어서는 미국에서도 크게 활약한다. 1980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드 투 킬에서 예상을 깬 반전의 역할로 주목받았고, 1983년에는 드라마 <리타 길들이기>로 골든글러브 최우수 남자배우상과 전미배우조합상을 둘 다 수상했다. 마침내 1987년, 한나와 그 자매들로 첫번째 오스카상을 받더니 2000년에는 사이더 하우스로 그의 두번째 오스카상을 쥐게 된다.

2.2. 노년

그 후로는, 오스틴 파워의 아버지 역, 크리스토퍼 놀란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 브루스 웨인의 집사 알프레드 페니워스 역 등의 조연으로 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마이클 케인은 크리스토퍼 놀란과 인연이 깊어서, 배트맨 비긴즈(2005) 이래 프레스티지(2006),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테넷(2020)을 위시한 거의 모든 놀란 영화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다.[14] 놀란은 인터뷰에서 명배우인 케인을 존경할뿐더러 영화의 성공을 불러오는 '행운의 부적'으로 간주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1987,2000) 2회 수상,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2회,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전미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 전미 배우조합 남우조연상 수상같이 수상 경력도 굵직하여 2000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Knight Bachelor)도 받았다. 다만 1987년에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한나와 그 자매들에 나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처음 받을 때 졸작 죠스: 더 리벤지에 나오느라고 시상식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찍은 영화가 흥행과 평에서 쫄딱 망한 탓에 사람들은 되려 케인을 안타깝게 여겼고,[15] 2000년에는 라세 할스트롬 감독 영화인 사이더 하우스 룰스로 13년 만에 아카데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당연히 시상식에 나가 상을 받았다.

나우 유 씨 미 2 촬영 이후인 2015년 12월 이후 은퇴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연기에 임할 때마다 '오스카 상을 수상하거나' 혹은 '돈을 벌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 오스카상도 이미 2개나 수상했고 돈도 충분히 벌었기에 더 이상 연기에 욕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비밀 프로젝트에는 자신도 참여할 것이라 밝힌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았는데... 덩케르크(2017)의 초반에 무전기에서 들리는 영국 공군 포티스 편대장의 목소리로 카메오 출연했고, 이것은 영국 본토 항공전을 다룬 걸작 공군 대전략(1969)에서 케인이 맡았던 역할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2021년 은퇴를 선언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마이클 케인 본인이 직접 트위터로 은퇴한 적 없다고 밝혔다. #

2023년 9월, 걷기도 힘든 상태임을 밝히며 결국 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개봉한 글렌다 잭슨과 함께 출연한 더 그레이트 이스케이퍼가 은퇴작이 되었다.[16]

3. 필모그래피

영국 영화 협회 BFI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영국 영화 100편에 포함된 마이클 케인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영국 더 가디언에서 2019년에 선정한 마이클 케인 최고의 영화 10편은 다음과 같다. 원문[17]

주로 미국 헐리우드 진출작보다는 60~70년대, 잉글랜드 남성의 거친 모습을 담아낸 젊은 시절 영국 영화 출연작에서의 평가가 더 좋다.

3.1. 영화

<rowcolor=#fff>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50 모닝 디파처
Morning Departure
티보이[18]
1969 공군 대전략
Battle of Britain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조종사
1969 이탈리안 잡
The Italian Job
찰리 크로커
1971 겟 카터
Get Carter
잭 카터
1977 머나먼 다리
A BRIDGE TOO FAR
조 밴델러 중령
1978 스웜
The Swarm
브래드퍼드 "브래드" 크레인 박사
1980 드레스드 투 킬
Dressed to Kill
로버트 엘리엇 의사
아일랜드
The Island
블레어 메이너드
1999 사이더 하우스
The Cider House Rules
윌버 라치 박사
2005 배트맨 비긴즈
Batman Begins
알프레드 페니워스
그녀는 요술쟁이
Bewitched
존 포스터
웨더 맨
The Weather Man
로버트 스프리첼
2006 프레스티지
The Prestige
존 커터
2008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알프레드 페니워스
이즈 애니바디 데어?
Is Anybody There?
클라렌스
추적
Sleuth
앤드류 와이크
2009 해리 브라운
Harry Brown
해리 브라운
2010 인셉션
Inception
스테픈 마일즈 교수
2011 카 2
Cars 2
핀 맥미사일
2012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신비의 섬
Journey 2: The Mysterious Island
할아버지 알렉산더 앤더슨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알프레드 페니워스
2013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
Now You See Me
아서 트레슬러
미스터 모건스 라스트 러브
Mr. Morgan's Last Love
매튜 모건
2014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브랜드 교수
2015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Kingsman: The Secret Service
체스터 킹 / 아서
2016 나우 유 씨 미 2
Now You See Me 2
아서 트레슬러
2017 고잉 인 스타일
Going in Style
조 하딩
덩케르크
Dunkirk
경음(硬音) 리더 목소리 카메오
마이 제너레이션
My Generation
본인 다큐멘터리 영화
2020 컴어웨이
Come Away
찰리
포 키즈 앤드 잇
Four Kids and It[19]
사미아드 목소리
테넷
Tenet
마이클 크로스비 경
2021 크리미널 트위스트
Twist
페이긴
베스트셀러
Best Sellers
해리스 쇼
2022 미디벌
Medieval
보레쉬 경
2023 더 그레이트 이스케이프
The Great Escaper
버나드 조던 은퇴작

4. 여담



캡션
1984년 제6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드리 헵번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마이클 케인이 겨우 4살밖에 어리지 않다!


[1] 2016년 7월에 그의 예명을 진짜 이름으로 아는 공항 보안요원들 때문에 겪던 일들을 견디다 못해 결국 본명을 마이클 케인으로 바꿨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모리스 조셉 미클화이트 주니어 (Maurice Joseph Micklewhite Jr.). [2] 모건 프리먼과 키가 같다. [3] 인도계 가이아나인으로 1967년도 미스 월드 가이아나 출신 배우. [4] 6.25 전쟁 참전용사. [5] 참조. 참고로 현 부인은 무슬림이다. [6] 본인이 지금도 그런 억양을 쓴다는 게 아니라 코미디 프로에서 자신의 억양을 따라하는 개그맨들을 묘사한 것이다. 예시 김영철 하춘화 모사개그를 하춘화 본인이 패러디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 [7] 처진 눈 등의 외모와 표정에서 풍기는 묘한 분위기가 미국의 선배 명배우 로버트 미첨과도 많이 닮았다. [8] 영국에서 드문 보수당을 지지하는 배우이다. 동년배인 크리스토퍼 리가 상류층이고 케인이 서민층인 것을 감안하면 정치 지형 상 드문 케이스. [9] 당시 시대 영화는 한국군의 역할을 잘 부각안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주한영연방군 파견 한국군(지금은 폐지된 KATCOM, KATUSA와 같은 목적이다)이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10] 이렇게 배우 조합에 동명이인이 있어 예명을 만드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국내서도 선배 배우와 이름이 겹치면 다른 예명을 선택한다. [11] 동생이자 같이 배우 생활을 잠깐 같이 했던 스텐리 케인(Stanley Caine)도 형을 따라 성을 바꾸었다. 동생은 2013년에 백혈병으로 사망. 생전에 형과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12] 나중에 마이클 케인의 회고에 의하면 찰스 황태자의 거만 떠는 모습을 참조했다고 한다. [13] 1965년 작. 원작명 The Ipcress File. 007 시리즈가 점점 판타지로 직행하는 것에 실망한 초기 제작진들이 뭉쳐서 만들었다. 사실적이면서도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가져서 007을 능가하는 60년대 최고 첩보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마이클 케인은 주인공 해리 파머를 3편까지 맡았다. 두꺼운 안경을 쓴 범생이같으면서도 은근히 불량함이 넘치는 첩보 요원 역할. [14] 심지어 덩케르크에서는 직접적인 등장 없이 목소리로만 출연했다. [15] 그러나 정작 케인 본인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보여줬다. 한 인터뷰에서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들리는 말로는 끔찍하다더군요. 하지만 (출연료로) 그 영화가 지어준 집은 아주 멋졌어요."라는 명언을 남겼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일단 위대한 역할들을 찾는다. 위대한 역이 오지 않으면 적당한 역할을 구한다. 적당한 역이 오지 않으면, 집세를 낼 수 있는 역을 구한다”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밝힌 바 있다. [16] 공교롭게도 글렌다 잭슨도 이 영화를 찍고 나서 타계해, 두 명배우의 은퇴작이 되었다. 둘은 1975년 〈행복한 방황〉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 [17] 원문에는 50위까지 선정되어 있음 [18] 사무실, 공장, 병원 또는 직장에서 커피, 음료를 제공하는 아이 [19] 영국 소설 모래요정과 다섯 아이들(Five Children and It)의 리메이크. [20] 2004년 주드 로 주연의 〈나를 책임져, 알피〉로 리메이크 되었다. [21] 2000년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겟 카터〉로 리메이크 되고, 마이클 케인 본인도 악역으로 출연했다. 원작에선 돈 많은 사업가가 주인공의 동생을 죽인 범인인데 리메이크작에선 오랜 동업자가 흑막으로 이 모든 일을 꾸민 메인 빌런이란 각색이 추가로 들어갔다. 분량은 카메오 수준이었지만 메인 빌런이므로 스토리상 당연히 중요한 역이었다. 단, 1971년 원작은 처절한 복수전 끝에 잭 카터 자신도 끝내 사망하지만 리메이크작은 멀쩡히 살아남거나, 이런 원작 주인공 배우를 메인 빌런으로 밀기 위한 뜬금포 전개로 망했다.. [22] 사실 나이가 든 지금도 어느 정도 이런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젊은 깡패들을 쏴죽이고 다니는 퇴역 군인 할아버지로 나오는 〈해리 브라운〉(2009)이 대표적이다. [23] 영국 영화/연극계는 값비싼 사립 연기 학교 중심으로 흘러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24] 로저 무어와 셋이 함께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부문 시상자로 나와 콩트를 하기도 했다. 영상 이때 깨알같이 〈 한나와 그 자매들〉 당시 오스카 시상식 불참으로 못했던 수상소감을 하겠다고 능청을 떨기도(...). [25] My Cocaine을 제대로 읽으면 마이클 케인의 억양으로 "마이클 케인"이라고 읽는 것과 발음이 같다. 바로 위에 마이클 케인 억양 영상에서도 본인이 마이 코케인이라 발음한다. 참고로 미국식 발음은 "클"부분이 "ㄲ"에 가깝고 l 발음 부분이 뒤의 케인부분과 구별이 가기 하기 때문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26] 숀 코너리는 2020년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