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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길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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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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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데이비드 길모어
David Gilmour
파일:낄모아.jpg
<colcolor=#fff><colbgcolor=#000> 본명 데이비드 존 길모어
David Jon Gilmour
출생 1946년 3월 6일 ([age(1946-03-06)]세)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케임브리지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소속 (1968 - 1995)
무소속 (1995 - )
가족 부인 버지니아 해선베인 (1975 - 1990, 이혼)
부인 폴리 샘슨 (1994 - )
자녀 8명
신체 183cm
종교 무종교 ( 무신론)
장르 ,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록, 아트 록, 블루스 록, 소프트 록, 팝 록
사용 악기 보컬, 기타
활동 기간 1963년 ~ 현재
로고 파일:external/fanart.tv/gilmour-david-52b3593bd06c7.png [1]
1. 개요2. 생애
2.1. 데뷔 이전2.2. Jokers Wild 시절2.3. 핑크 플로이드2.4. 솔로 활동
3. 평가
3.1. 연주 스타일3.2. 보컬 스타일3.3. 작곡 능력
4. 사용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
4.1.1. The Black Strat4.1.2. Fender 1984 '57 Reissue Stratocaster4.1.3. The 0001 Strat4.1.4. "The Workmate" Esquire4.1.5. Bill Lewis Custom4.1.6. 그 외
4.2. 어쿠스틱 기타
4.2.1. Martin 1969 D-354.2.2. 그 외
4.3. 기타 앰프4.4. 이펙터
5.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assets.rollingstone.com/092313-weekend-rock-intro-623-1379960839.jpg
파일:external/assets.rollingstone.com/1035x685-david-gilmour1800-1400609502.jpg
<rowcolor=white> 1970년대 초, 전성기 시절의 사진 1987년, 『 A Momentary Lapse of Reason』 투어 당시의 사진
파일:길모어옹.jpg
<rowcolor=white> 2016년, 『Live at Pompeii』 시기의 사진

영국 음악가.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솔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2. 생애

2.1. 데뷔 이전

데이비드 길모어는 1946년 3월 6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더글라스 길모어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동물학의 부교수 겸 강사를 맡았으며,[2] 어머니 실비아는 당시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후에 BBC의 영상 에디터로 일하게 된다. 데이비드 길모어의 출생 후 케임브리지셔 주의 트럼핑턴에 거주했지만, 몇 번의 이주 후 1956년에 그랜체스터로 이주하게 된다.[3]

길모어는 1954년에 자신의 첫 음반인 빌 헤일리의 싱글 Rock Around the Clock을 구매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의는 다음 해에 구매한 엘비스 프레슬리 Heartbreak Hotel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에벌리 브라더스 Bye Bye Love를 듣고 기타에 대한 흥미를 키우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길모어의 부모는 그의 흥미인 음악을 하도록 장려했으며,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된 데이비드 길모어는 이웃에게 기타를 하나 빌려 피트 시거의 레코드와 교본을 이용해 기타 연주를 연습했다.[4] 한편, 데이비드 길모어는 11살부터 캠브릿지의 힐즈 로드에 위치한 'The Perse School'에 다녔는데, 그곳에 다니는 동안 'Cambridgeshire High School for Boys'를 다니고 있던 시드 바렛 로저 워터스를 만나게 된다.

1962년, 데이비드 길모어는 'Cambridge Technical College'에서 현대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비록 교과과정은 끝내지 못했지만 이수했던 언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시드 바렛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둘은 같이 기타를 연습하며 점심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2. Jokers Wild 시절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bbc9378179270ed61ccd0f10fd07d8bd.jpg
Jokers Wild 시절의 사진
1962년 말, 길모어는 자신의 첫 밴드인 'The Ramblers'에 참여하게 되며, 1964년에는 블루스 밴드 'Jokers Wild'에 참여했다. 밴드의 활동은 약 1년 간 활발히 진행되었다. 1965년 8월, 데이비드 길모어는 프랑스 서부 지역을 시드 바렛을 포함한 몇몇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비틀즈의 노래를 길거리에서 연주했는데, 여행을 하는 기간 동안 체포당하는 등의 수난이 있었다.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와 시드 바렛은 파리에 방문해 도시 외곽에서 일주일 간 캠프를 했다고 한다.[5]

1965년 말, 'Jokers Wild'는 싱글의 일부를 런던의 리젠트 소울즈 스튜디오에서 녹음했고, 싱글 당 50장의 카피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1966년 1월에 출시된 'Sam and Dave'의 싱글 〈You Don't Know Like I Know〉가 대히트를 치게 되었고, 싱글은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밴드는 점점 하향세를 겪게 되었으며, 몇 번의 멤버 교체 후 밴드는 사실상 해체된다. 밴드가 해체된 후, 데이비드 길모어는 런던으로 떠나게 되고, Jokers Wild의 전 멤버인 릭 윌스와 데이비드 아틀람과 함께 'Flowers'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그러나 결성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인 1966년 말에 데이비드 아틀람은 밴드를 떠나게 된다.

데이비드 아틀람이 떠난 후, 데이비드 길모어는 남아있는 밴드 멤버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데이비드 길모어는 세션 멤버로서 브리지트 바르도가 출현하는 영화 'Two Weeks in September'의 OST 보컬을 맡았으며, 밴드는 프랑스의 빌보켓 클럽에 정규 멤버로 발탁되며 정착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로는 입에 풀칠만 하는 수준의 생활만이 가능했으며, 후에 데이비드 길모어는 영양부족으로 병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빈곤한 생활을 지속하다 결국 1967년 초에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칼레로 향하고 있었는데, 차에 기름을 넣을 돈이 없었죠. 우린 건축 부지에서 디젤을 몰래 훔쳐선 낡은 밴에 넣었습니다. (...) 그리고 도버 해협 부근에서 차가 다시 멎어버렸고, 우리는 카페리가 있는 곳까지 차를 밀어야 했습니다. 그 때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데이비드 길모어

1967년 5월, 런던에서 시드 바렛과 만났는데, 시드 바렛이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6] 같은 해 6월에는 케임브리지에서 Jokers Wild라는 이름 하에 마지막 공연을 하게 되었고, 해체한다. [7]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는 핑크 플로이드에 대체 기타리스트로서 참여하게 되는 1968년까지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당시 길모어는 건강이 나빴다고 알려져 있는데, 해체 전후로 회복에 전념했던 것으로 보인다.

2.3. 핑크 플로이드

1967년 말, 핑크 플로이드의 드러머 닉 메이슨은 데이비드 길모어에게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로 합류해달라고 부탁하였고, 데이비드 길모어는 이를 수락, 1967년 12월에 핑크 플로이드의 다섯 번째 멤버가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핑크 플로이드/역사 항목 참조.

2.4. 솔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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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Gil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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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 About Face 투어 당시)
2015년
( BBC Two 공연 당시)
데이비드 길모어의 솔로 활동은 Animals를 기점으로 시작된, 로저 워터스의 밴드 내 영향력 독점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데이비드 길모어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Animals 이후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1978년에 첫 솔로 앨범 David Gilmour를 출시한다. 솔로 앨범 제작 도중 남은 곡은 로저 워터스에 의해 The Wall에서 활용되는데, Comfortably Numb이 대표적이다. 1984년에는 두 번째 솔로 앨범인 About Face를 출시한다. 앨범은 존 레논의 사망, 현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 간의 갈등과 같은 여러 사건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고 있었다. 두 앨범의 성적은 각각 빌보드 200 29위, 32위로, 당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의 성적과 데이비드 길모어의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시원찮은 성적이다.

2006년에 출시된 On an Island는 빌보드 6위에 올랐으며, 전체적인 평 또한 호평이었다. 이후 2010년 오브와 함께 Metallic Spheres를 발표 했고, 2015년엔 네 번째 솔로 앨범인 Rattle That Lock을 출시해 빌보드 5위의 성적을 거둔다. 여담으로 (Metallic Spheres를 제외한) 21세기에 발표한 두 앨범은 모두 '더 이상의 핑크 플로이드는 없다.'[8]라는 발언 후 약 1년 가량의 기간을 가지고 출시되었는데, 이러한 발언이 판매량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3. 평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장르를 규정한 기타리스트로 평가된다.

3.1. 연주 스타일

Echoes의 기타 솔로[9]
( 1974년 이탈리아 폼페이 라이브, 5분 34초부터)
Time
( 1988년 미국 뉴욕 라이브)
Wish You Were Here[10]
( 2005년 영국 런던 라이브)
Comfortably Numb[11]
( 2016년 이탈리아 폼페이 라이브)
그의 연주는 속주나 환상적인 기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슴을 후벼파는 특유의 격정적인 톤으로 이루어져 있으며[12][13], 이러한 고평가를 증명하듯 롤링 스톤지 선정 최고의 기타리스트 톱 100에서 14위를 차지했다.[14] 속주보다는 뉘앙스와 톤을 중시하는 연주 스타일 덕에 같은 영국 출신 기타리스트인 제프 벡과 비슷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15]

곡이나 앨범의 컨셉과 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연주 스타일과 톤을 보여주었는데, 가령 Meddle, The Dark Side of the Moon같은 앨범들에서는 퍼즈 이펙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매우 거칠고 굵은 질감의 솔로 연주를 보여주었고, Animals의 수록곡 Dogs의 솔로에서는 동일한 솔로를 유니즌으로 녹음한 독특한 솔로를 들려주었으며, The Wall의 수록곡 Another Brick in the Wall Run Like Hell 등에서는 딜레이 이펙터를 활용한 공간감 있는 리프를 보여주었다.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이 가장 유명하지만 어쿠스틱 기타 또한 자주 연주하였는데, 각종 앨범들에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한 곡들이 최소 하나씩은 들어있다. Wish You Were Here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한 솔로 연주 또한 보여주었다. 또한 그가 직접 작곡하고 기타를 녹음한 High Hopes에서는 하와이안 기타(랩 스틸 기타)를 사용한 솔로 연주 또한 들어볼 수 있다. #

3.2. 보컬 스타일

Echoes 스튜디오 녹음 현장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질도 뛰어난 편이다. 커리어 초기에는 Green Is the Colour처럼 감미롭고 섬세한 미성 보컬을 들려주었으나, 커리어를 지속하며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Time에서와 같은 러프한 질감의 보컬을 맡기도 했으며, 후기에 들어서며 Not Now John와 같이 꽤나 거칠고 털털한 느낌으로 음색이 정착되었다.

록 보컬리스트를 하면 으레 떠올리는, 거친 그로울링이나 초고음을 미친듯이 질러대는 스타일로 하여금 음악 전반을 리드하는 보컬은 아니었으며[16], 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핑크 플로이드와, 이후의 그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에 딱 들어맞는 보컬을 구사한다.[17]

일단 근본적으로는 보컬리스트보단 보컬을 병행하는 기타리스트에 가까우며, 그 연주력이 매우 특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데이비드 길모어가 참여한 여러 음악을 감상해본다면, 그가 보컬과 기타 솔로로 하여금 한 음악에서 두가지 목소리를 구사한다고 평가받는 대목이 이해가 될 것이다.[18]

3.3. 작곡 능력

핑크 플로이드 그조차도 압도할 정도로 위대한 송라이터가 한 명 더 있었기에 그의 작곡 능력은 비교적 묻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기준에서의 작곡 능력 또한 대단하다고 평가받는다.[19] 특히 핑크 플로이드 최대의 명곡 중 하나인 Comfortably Numb이나 Wish You Were Here, Echoes, Shine on You Crazy Diamond의 작곡에 관여했으며, 그 외 그가 작곡 했거나 공동 작곡한 Run Like Hell, Wot's... Uh the Deal?, Fat Old Sun, A Pillow of Winds, Sorrow, High Hopes 모두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로저 워터스 체제의 핑크 플로이드에서도 워터스에게 가려져 작곡 능력이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로저 워터스의 탈퇴 이후 그의 체제 하에서 나온 핑크 플로이드 앨범들은 로저 워터스가 대부분의 곡들의 작곡을 담당하던 시기에 나온 앨범들에 비해 평가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결론적으로 보면 분명 훌륭한 작곡 능력을 타고난 것은 맞지만 전임자의 너무 큰 그림자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케이스라 봐야 할 듯.

4. 사용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

가장 대표적인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일렉트릭 기타의 사용자로 손꼽히는데, 펜더에서 출시된 시그니처, 트리뷰트 모델들도 전부 스트라토캐스터이다. 하지만 아래 내용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의외로 스트랫 외에도 다양한 일렉트릭 기타를 두루 사용해왔다.

4.1.1. The Black Strat

파일:David_Gilmour_wth_BS.jpg
파일:Fender_CS_David_Gilmour_Signature_Stratocaster.png
[20]
1969년에 생산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로, 거의 대부분의 커리어 동안 사용했던, 데이비드 길모어를 상징하는 악기 그 자체이다. 1970년에 기존에 그가 사용하던 동일한 연식의 로즈우드 지판 스트라토캐스터를 포함한 악기 일부를 불운히도 도난당하면서 미국 뉴욕에 위치한 매니스 뮤직이라는 악기상에서 구입한 것이다. 처음에는 선버스트 피니쉬에 60년대 후반 ~ 70년대 스타일 라지헤드가 적용된 메이플 지판 스트라토캐스터였으나, 바디는 검은색으로 리피니쉬되었고, 픽가드도 검은색으로 교체되었으며, 나중에는 넥도 1950년대에 생산된 스몰헤드 메이플 지판 넥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바디가 완전히 검은색인 스트라토캐스터가 완성되었다. 블랙 스트랫이라는 별칭 또한 이 새까만 바디 색상에서 온 것. 해당 기타는 그 후로도 전성기 시절 핑크 플로이드 레코딩에 절찬리로 사용되었다.

바디는 앨더 바디이며, 넥은 본래 메이플[21] 사양의 1969년식 라지헤드 넥이었으나[22], 상술했듯 나중에 1950년대 생산 스트라토캐스터의 넥으로 교체되었다. 픽업은 당연히 본래는 펜더 기본 싱글 코일 픽업이 달려있었으나, 1970년대 초에 잠깐 브릿지 픽업이 깁슨 PAF 험버커 픽업으로 교체되었다가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디마지오의 싱글 코일 픽업으로 교체되었고[23], 나중에는 또 다시 시모어 던컨제 싱글 코일 픽업으로 교체된다. 간혹 해당 모델에 EMG社의 액티브 싱글 코일 픽업이 장착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아래에 나올 캔디 애플 레드 피니쉬 스트라토캐스터와 혼동하여 그렇게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가 본인의 메인 기타를 EMG社의 액티브 싱글 코일 픽업 세 개가 장착된 캔디 애플 레드 색상 스트라토캐스터로 교체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는데, 본인이 쭉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있는 하드 록 카페에 해당 기타를 전시했다. 문제는 이 기타를 유리 칸막이같은 보호장치조차 마련해놓지 않고 그대로 전시했던지라 단 몇 년 뒤인 1990년대에 데이비드 길모어에게 다시 반환되었을 때 많은 부품들이 도난당한(!) 상태였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안 그래도 수많은 개조를 거친데다, 결정적으로 이 때 여러 부품들을 도난당한 탓에 블랙 스트랫에 장착된 부품들 중 펜더 공장 출고 당시부터 현재까지 살아남은 부품은 바디, 픽업 셀렉터와 브릿지 플레이트가 전부일 정도라고 한다. 테세우스의 배

1990년대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에게 반환된 이 기타는 그 이후로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여 많은 라이브들을 거치다가 2019년 크리스티스 자선 경매에 출품된다. 해당 악기가 거쳐온 행보가 워낙 역사적인 수준이라 만에 하나 경매라도 나온다면 엄청난 고가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 예상은 실제로 블랙 스트랫이 무려 3,975,000달러(한화 약 48억 5천만 원)라는 초거액에 낙찰되고 역대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기타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현실이 되었다.[24]

4.1.2. Fender 1984 '57 Reissue Stratoc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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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 1984년 사이에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캔디 애플 레드 색상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25], 1957년식 메이플 지판 스트라토캐스터를 복각한, 아메리칸 빈티지 리이슈 시리즈의 모델이다. 데이비드 길모어는 1984년에 진행된 About Face 투어 직전의 인터뷰에서 오래된 기타를 사용하고싶지 않다고 언급하였고, 실제로 투어 전반에 블랙 스트랫과 당시 구입한 리이슈 스트랫들[26]을 혼용하였다.[27] 캔디 애플 레드 스트라토캐스터는 1985년 록시 뮤직 브라이언 페리와 함께 공연한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서 데뷔하였고, 이후 투어나 라이브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된다.

특이하게도 기존에 장착되어 있던 펜더 싱글 코일 픽업을 탈거하고 EMG의 SA 액티브 싱글 코일 픽업 제품을 장착하였는데, 현재 EMG가 절대적 영향력을 꽤차고 있는 장르가 어떤 장르인지를 생각해보면 저 장르와는 하등 인연이 없는 길모어가 EMG의 픽업을 선택한 것은 꽤 아이러니한 일이다.[28]

2019년에 열린 크리스티스 자선 경매에 위의 블랙 스트랫과 함께 출품되었고, 650,000달러(한화 약 8억 5,000만 원)에 판매되어 현재는 길모어가 가지고 있지 않다. 이곳에서 현재 해당 기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인터넷에 업로드한 접사 사진들을 볼 수 있다.

4.1.3. The 0001 St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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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29]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30]되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로, 후면 넥 플레이트[31]에 0001이라는 시리얼 넘버가 각인되어 있다. 이 부분만 본다면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스트라토캐스터라 볼 수도 있겠지만, 해당 기타가 걸어온 역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이렇게 이른 시기에 제작된 악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32]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은 펜더 커스텀 샵 같은 커스텀 오더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기에 블론드 피니쉬/골드 하드웨어같은 특수한 사양들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아마 마케팅이나 전시 목적으로 생산된 악기라는 점이며, 추후 나온 시모어 W. 던컨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해당 악기는 여러 스트라토캐스터들의 부품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만든 파츠캐스터였다고 한다. 아마 0001 시리얼 넘버를 가진 어떠한 펜더 악기에서 탈거한 넥 플레이트가 우연히 이 파츠캐스터로 흘러오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아무튼 해당 악기는 제작된 경위로나 역대 소유자들로나 꽤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해당 악기를 소유했던 인물들의 회상들을 종합해보면 가장 처음에는 펜더사의 설립자 레오 펜더가 소유하고 있는 악기였으나. 이게 어떠한 경위로 시모어 던컨사의 설립자인 시모어 W. 던컨에게 가게 되었고, 이것이 또다시 데이비드 길모어의 전담 테크니션이었던 필 타일러(Phil Tylor)에게 오게 된다. 데이비드 길모어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필은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고 있던 중이었고, 이를 유심히 보던 길모어가 필에게 집을 살 돈을 내어줄테니 이 기타를 본인에게 팔라는 제안을 하면서 마침내 데이비드 길모어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길모어는 해당 악기를 손에 넣은 뒤 The Wall의 수록곡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의 리듬 기타 섹션을 포함한 다양한 부분에서 0001 스트랫을 사용했다.

공식적으로 해당 악기가 마지막으로 길모어에 의해 라이브에서 연주된 것은 2004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50주년 행사에서였으며 #, 현재는 미국 테네시 주의 조지 그룬이라는 빈티지 악기 수집가가 소유하고 있다.[33]

4.1.4. "The Workmate" Esqu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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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만들어진 펜더 에스콰이어[34]로, 본래 시모어 던컨사의 설립자 시모어 W. 던컨이 소유 있던 악기였다. 던컨은 이 악기에 넥 픽업을 추가로 장착하여 마치 텔레캐스터처럼 만들었으며, 1975년에서 76년 사이에 이 악기를 데이비드 길모어에게 양도했다. 악기를 양도받은 길모어는 The Wall의 수록곡 Run Like Hell의 레코딩에 해당 기타를 사용했다.[35]

워크메이트(The Workmate)라는 이름은 이 악기가 길모어 전 소유자였던 던컨 이전의 또 다른 누군가가 이 기타를 음악 일에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누군가의 일 친구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 것. 길모어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인 About Face의 앨범 후면 커버에서는 이 악기를 든 아직은 풍성함이 남아있던데이비드 길모어의 모습을 볼 수 있다.[사진]

4.1.5. Bill Lewis Cus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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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ill_Lewis_Custom_Guitar.png
캐나다의 기타 루시어인 빌 루이스(Bill Lewis)[37] 1969년에서 1971년 사이에 제작한 수제 일렉트릭 기타로, 1972년도에 발매된 폼페이 라이브 영상에 추가적으로 삽입된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레코딩 당시 찍힌 영상에서 데이비드 길모어가 연주하고 있는 모습[38]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기타로 연주한 테이크들은 앨범의 수록곡 Money Brain Damage에 삽입되었다.

더블 컷 마호가니 바디, 12인치에서 완전 평평한 수준으로 곡률이 점진적으로 변경되는 24프렛 컴파운드 레디우스 지판, 두 개의 커스텀 와운드 험버커 픽업 등 독창적인 외관 및 스펙을 자랑하는데, 관련 사이트에 따르면 해당 기타와 비슷한 사양을 가지는 빌 루이스의 수제 악기들은 단 서른 대 가량만이 제작되었으며, 매우 희귀한 편이다.

4.1.6. 그 외

파일:David_Gilmour_with_Gibson_1955_Les_Paul.png }}} ||
1955년에 생산된 레스폴 골드탑으로, Anoter Brick in the Wall (Part 2)의 레코딩에 사용되었으며, 마찬가지로 당시 라이브에서 해당 파트를 연주할 때 사용되었던 악기이다.
파일:David_Gilmour_with_Gibson_1953_Les_Paul_Bigsby.jpg }}} ||
2006년도 투어 당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1953년 레스폴 골드탑으로, 브릿지가 빅스비 비브라토 테일피스로 교체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담으로 GHS에서 발매된 데이비드 길모어 시그니처 스트링의 포장지에도 해당 악기를 든 그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다. #

4.2. 어쿠스틱 기타

4.2.1. Martin 1969 D-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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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틴 D-35 모델로, 추후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매니스 기타라는 악기 가게 앞에서 기타를 판매하고 있던 어떤 사람으로부터 기억이 안나는 이유로 구매했다고 한다. 이후 Obscured by Clouds의 몇몇 곡들을 녹음할 때 사용했으며,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곡들을 작곡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39] 그 외에는 그 유명한 Wish You Were Here의 어쿠스틱 기타 솔로를 녹음할 때 해당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0]

2021년경에 길모어와 마틴 기타와의 협업으로 시그니처 모델이 발매되었다. 두 번째 사진이 바로 해당 제품의 모습이며, 12현 기타를 간혹 사용하던 것에 착안하여 12현 사양을 지닌 모델 또한 함께 발매되었다.

4.2.2. 그 외

파일:David_Gilmour_with_Gibson_Country_Western_Acoustic_Pompeii_2016.png }}} ||
2006년도부터 사용하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로,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사운드홀 장착형 마그네틱 픽업을 부착하여 사용한다. 2016년도 폼페이 라이브에서 Wish You Were Here를 연주할 때 사용하였다.

4.3. 기타 앰프

4.4. 이펙터

빈슨 에코렉, 빅 머프, 다이나 컴프레서, 챈들러 튜브 드라이브 등을 사용했다. 지금도 쓰는지는 불명.

5. 여담

파일:잘생긴 길모어.gif
70년대 전성기 시절
파일:Astoria.jpg
파일:레젶콘 폴맥길모어.jpg
레드 제플린 콘서트에서 찍힌 사진


[1] 세 번째 솔로 앨범 On an Island 이후로 사용 중이다. [2] 시드 바렛의 아버지는 병리학자였으며, 릭 라이트의 아버지도 생화학자였고 로저 워터스의 부모님도 둘 다 고등학교 교사로 유독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의 부모님들은 대부분이 지식인 계층 출신이 많았다. [3] 앨범 Ummagumma의 수록곡 Grantchester Meadows제목이 바로 이곳에서 영향을 받았다. [4] 여담으로, 이때 빌렸던 기타는 영영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이 기타는 이제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는 것이죠. [5] 이 기간 동안 데이비드 길모어는 다양한 장소들에서 일했는데, 패션 디자이너 오시 클락의 운전자 겸 보조원으로 일한 경력도 존재한다. [6] 이때 시드 바렛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시드 바렛이 데이비드 길모어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7] 윌리 윌슨과 릭키 윌스는 다른 밴드 세션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나머지 멤버는 음악을 그만두고 그래픽 디자이너와 회계사로 전직했다고 한다. [8] 전자는 2005년 Live 8 공연 후, 후자는 2014년에 출시된 핑크 플로이드의 마지막 정규 앨범 The Endless River 출시 후에 언급했다. [9] 1974년 이탈리아 폼페이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에서 이루어진 무관중 라이브이다. 원곡 Echoes와는 차별화되는 매우 거친 사운드와 믹싱을 보여준다. [10] 2005년에 열린 Live 8에서의 라이브로, 데이비드 길모어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볼 수 있다. 여담으로 해당 라이브는 핑크 플로이드의 전성기 멤버 전원(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 릭 라이트, 닉 메이슨)이 모여 진행된 마지막 라이브로, 이후 해당 라이브에서도 키보드를 담당했던 릭 라이트가 사망하고, 다시금 길모어-워터스 관계가 악화되면서 더는 볼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11] 2016년 이탈리아 폼페이의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이루어진 라이브로, 위의 1974년 폼페이 무관중 라이브가 진행되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42년만에 이루어진 라이브이다. 특히 해당 라이브의 마지막을 장식한 Comfortably Numb의 후반부 기타 솔로는 데이비드 길모어의 역대급 라이브로 평가받는다. [12] 대표적으로 Shine on You Crazy Diamond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Bb-F-G-E의 네 음은 인류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단 네 개의 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 [13] 이러한 면은 안정적이고 차분한 연주를 추구하는 밴드 동료인 릭 라이트하고 맞아 떨어진다. 특히 라이트 생전에 둘은 절친이었고, 2006년 On an Island 솔로 활동때도 키보디스트로 고용할 정도였다. [14] 이 순위가 충분히 높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는데, 이 위로는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등 하나같이 기타의 주법을 정립하고 음악 장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데이비드 길모어는 기타 연주력과 특유의 스타일만으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는 뜻. [15]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로 제프 벡을 말할 만큼 영향을 받은 듯하다. # [16] 시간이 지나며 거칠어졌다는 목소리도 타 보컬리스트에 비할 바는 아니며, 활동 초기에 비한 평가일 뿐이다. [17] 핑크 플로이드의 전성기 동안, 밴드 내의 보컬로써 마찬가지로 많은 비중을 담당했던 로저 워터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유니크한 음색을 지녀 서로의 보컬을 상호 보완하는 관계이기도 했다. [18] 80년대 전성기의 마크 노플러도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19] 몇몇 사람들은 로저 워터스보다 길모어와 라이트가 작곡가적으로 떨어진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워터스는 상징적인 가사를 써내는 작사 능력이나 곡에 스토리텔링을 짜는 능력이 압도적이여서 그렇지, 메세지 적인 면이 아닌 음악 자체를 써내는 작곡적인 면은 세 명 모두 록 음악 역사상 명실상부한 최고로 평가 받는다. [20] 펜더 커스텀 샵에서 발매된 레플리카 모델이다. [21] 1959년 이후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포함한 자사의 일렉트릭 기타들 대부분에 로즈우드 지판을 기본 사양으로 적용하였는데, 이 때 여전히 메이플 지판을 희망하는 소비자들의 니즈 충족을 위해 메이플 넥에 로즈우드 지판을 접합하는 공정에서 그대로 지판 목재만 로즈우드에서 메이플로 바꾼 악기들 또한 소량이나마 출고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펜더 악기들을 넥 후면에 기다란 홈을 파고 트러스로드를 집어넣어 제작하던 1950년대 방식 메이플 넥과 다른, 메이플 지판을 넥에 '씌운' 구조라는 의미에서 현재는 '메이플 캡(Maple Cap)'이라고 불린다. [22] 이 때 당시의 모습은 위의 1974년도 폼페이 무관중 라이브 영상에서 볼 수 있다. [23] 픽가드가 검정색으로 바뀐 것도 이 때 험버커 픽업 장착을 위해 원래 장착되어 있던 흰색 픽가드를 픽업 크기에 맞춰 잘라냈었기 때문이다. [24] 현재 해당 기록은 깨진 상태이다. 2023년 기준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일렉트릭 기타 너바나의 프론트맨 커트 코베인 Smells Like Teen Spirit 뮤직비디오에 들고 나온 펜더 머스탱으로, 450만 달러(한화 약 59억 원)에 낙찰되었고,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어쿠스틱 기타는 마찬가지로 커트 코베인 MTV Unplugged in New York에서 연주했던 마틴의 D-18E로, 600만 달러(한화 약 78억 7,000만 원)에 거래되었다. [25] 대부분의 경우 1984년 생산으로 자주 언급되나, 해당 기타는 1984년 1월 영국으로 배송되었다. 따라서 실제 생산은 1983년 하반기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26] 사진에 나오는 캔디 애플 레드 색상 모델 말고도 빈티지 화이트 색상과 2톤 선버스트 색상 모델들도 함께 구입하였는데, 저들 중 가장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악기가 바로 캔디 애플 레드 스트라토캐스터인 것. [27] About Face 투어 당시에는 주로 빈티지 화이트/2톤 선버스트 리이슈 스트랫들이 많이 사용되었고, 해당 문단에서 언급한 캔디 애플 레드 스트랫은 의외로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28] 물론 EMG의 픽업들은 특유의 깔끔한 톤과 적은 노이즈 덕에 메탈에서 많이 사용되기는 하나, 메탈'에서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스티브 루카서같은 세션맨들도 스튜디오 레코딩 때 깔끔한 톤을 얻기 위해 많이 사용한다. [29] 펜더 스트라토캐스터가 생산되기 시작한 첫 해이다. [30] 추정이라고 서술한 이유는 하술한다. [31] 기타의 넥과 바디를 연결하는 볼트를 지지하는 얇은 금속 판이다. [32] 최초로 정식 출고되어 소비자에게 판매된 스트라토캐스터가 가지고 있던 시리얼 넘버는 0100이었다. [33] 다양한 빈티지 악기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 사람의 콜렉션 중에는 앞서 언급된 세계 최초로 시리얼 넘버를 부여받은 0100 스트라토캐스터도 있다. # [34] 텔레캐스터의 전신 모델로, 브릿지 포지션에 단 하나의 픽업밖에 없다는 특징이 있다. [35] 레코딩 뿐만 아니라 라이브에서 동일한 곡을 연주할 때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2016년 폼페이 라이브를 보면 Run Like Hell을 연주할 때 이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사진] 파일:About Face(뒷면 커버).jpg [37] 캐나다의 기타 연주자 겸 루시어로, 한 때 클래식 기타계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안드레스 세고비아에게 기타를 배운 경력이 있다. [38] 해당 문단 최상위에 있는 사진이 이 때 찍힌 영상의 한 장면이다. [39] 다만 The Dark Side of the Moon에는 어쿠스틱 기타가 사용된 트랙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해당 악기는 어디까지나 작곡 단계에서만 사용되었지, 실제 트랙을 녹음하는 데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40] 초반에 코러스 걸린 듯한 몽환적인 기타 리프는 같은 회사에서 나온 마틴 D12-28 12현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하여 녹음되었다. [41] 로저 워터스가 3살 형이지만 나이 대비 상당히 젊어 보이는 편이다. 라이브 8에서 길모어와 워터스를 비교해보면 워터스는 실제로는 6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40대 중후반대로밖에 안보여서 데이비드 길모어와 상당한 나이 차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42] 이를 반영하듯 2020년 5월 로저 워터스가 5분동안이나 데이비드 길모어에게 쌍욕하는 영상을 뜬금 없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로저 워터스 왈 "난 데이비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핑크 플로이드 멤버다" 라고. [43] 비슷한 시기의 작사/작곡 콤비와 비교해보자면 현재까지 친한 친구 관계인 재거-리처즈, 로저 달트리- 피트 타운젠드, 그리고 다소 껄끄러운 플랜트-페이지 등에 비해서 굉장히 나쁜 편이다. 음악사적으로도 1970년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관계, 그리고 현재의 리암-노엘 갤러거 형제를 빼면 거의 비교 상대를 찾기 힘들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사례. 그나마 재거-리처즈는 80년대 내내 서로 헐뜯고 싸웠지만 유치원때부터 이어진 부랄친구답게 바로 화해했고(...) 심지어 법정 소송은 안했다. 플랜트-페이지 같은 경우는 아예 전성기 시절 절친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고, 최근에 와서 의견이 조금 틀어진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44] 로저 워터스는 추가로 "그는 The Final Cut의 아이디어도 별로 탐탁치 않아했고 심지어 대처 총리를 까는것도 싫어하는 눈치였다" 며 대놓고 길모어를 마거릿 대처의 지지자로 우파몰이한다. 사실 길모어도 워터스와 똑같이 극좌에 가까운 사회주의적 성향이지만, 워터스는 그것을 자신의 노래에 표현하고자 했던 반면 길모어는 철저한 정치-예술 분리주의자였던지라 대처를 앨범에서 까는 것을 싫어했을 수도 있다. [45] 그래서인지 지니 뮤직의 핑크 플로이드 아티스트 소개란에도 "로저 워터스는 철저한 개혁주의자였던 반면 길모어는 다소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었다"라는 잘못된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46] 재미있게도 강경한 좌파 성향이었던 존 레논도 중도진보 성향인 폴 매카트니를 보고 보수주의자라고 비난한 비슷한 일도 있었다. 이 외에도 고소 고발전으로 엮인것이라는 점도 레논-매카트니와 묘하게 겹친다. 자고로 폴 매카트니는 신좌파 성향에 가까우며, 길모어도 아주 진보적인 코빈을 지지한 것을 보아 중도좌파와는 거리가 있다. 코빈을 지지한 다른 인물들은 로저 워터스, 두아 리파 등 영국 음악계에서도 손에 꼽게 진보적인 인사들이며 노엘 갤러거, 조앤 롤링 등 중도진보 성향 인사들은 코빈을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잦다. 예외로 브라이언 메이는 보수에서 전향한 중도진보 성향이지만, 스스로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추구하는지라 코빈을 지지하였다. [47] 전통적으로 지식인 계층은 노동계급 수준으로 매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48] 정치에는 경제적 분야 말고도 역사적 분야, 외교적 분야 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경제적으로는 핑크 플로이드 전원이 급진적 사회주의를 지지할지라도 역사적/외교적 분야에서 다른 의견을 충분히 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49] 참고로 이 스트랫은 그냥 동네 샵에서 산 평범한 스트랫이라고 한다. 그것도 원래 메인 기타였던 텔레캐스터가 분실되어서 급히 산 것이라고 한다. 역시 거장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50] 비슷하게 평생의 동료이자 숙적인 로저 워터스 에릭 클랩튼과 아주 친하다. 그런데 정작 에릭 클랩튼과 폴 매카트니는 서로 꽤 친한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