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우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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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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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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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1988 | 1989 | 1991 | 1993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
|
2015 |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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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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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신설 전 |
양세종 OB 베어스 |
김용희 롯데 자이언츠 |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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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유승안 빙그레 이글스 |
김용철 롯데 자이언츠 |
박철우 해태 타이거즈 |
박승호 삼성 라이온즈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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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김형석 OB 베어스 |
박재용 해태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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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박재용 해태 타이거즈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로마이어 한화 이글스 |
우즈 두산 베어스 |
양준혁 LG 트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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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마해영 삼성 라이온즈 |
김동주 두산 베어스 |
김기태 SK 와이번스 |
김재현 SK 와이번스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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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홍성흔 두산 베어스 |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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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이병규 LG 트윈스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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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박용택 LG 트윈스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
최형우 KIA 타이거즈 |
양의지 NC 다이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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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22 | 2023 |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손아섭 NC 다이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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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2군 역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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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정유복 (1988~1991) |
방수원 (1992~1994) |
김성근 (1995) |
신용균 (1996~1998) |
김봉연 (1999~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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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6대 | 7대 | 8대 | 9대 | 10대 | |
서정환 (2001) |
서정환 (2003) |
김종윤 (2003) |
유남호 (2004) |
서정환 (2004~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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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1대 | 12대 | 13대 | 14대 | 15대 [1] | |
장채근 (2005) |
차영화 (2006~2007) |
박승호 (2007) |
차영화 (2008~2009) |
김대진 (2010~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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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6대 [1] | 17대 [1] | 18대 [1] | 19대 | 20대 | |
박철우 (2012) |
한대화 (2013) |
김용달 (2014) |
정회열 (2015~2017) |
박흥식 (2018~2019) |
|
<rowcolor=#fff> 21대 [1] | 22대 | 23대 [1] | 24대 | 25대 | |
장태수 (2019) |
박흥식 (2020) |
이범호 (2021) |
정명원 (2022) |
손승락 (2023~2024) |
|
<rowcolor=#fff> 26대 | |||||
진갑용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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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괄 코치'라는 명칭을 사용한 경우 ※ 2002년은 공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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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2군 역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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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2대 | 3대 | 4대 | ||
강대중
(1983~1984) |
배수찬
(1985) |
이충순
(1986) |
이선덕
(1987) |
감독 대행 이광환 (1987) |
|
5대 | 6대 | 7대 | 8대 | ||
이광환
(1988) |
감독 대행 이선덕 (1989~1990) |
윤동균
(1990~1991) |
정연회
(1991~1994) |
손상대
(1995~1996) |
|
9대 | 10대 | 11대 | 12대 | 13대 | |
김윤겸
(1997) |
손상대
(1998) |
강태정
(1998) |
손상대
(1999~2003) |
송재박
(2004~2006) |
|
14대 | 15대 | 16대 | 17대 | ||
박종훈
(2007~2009) |
김광림
(2010) |
박승호
(2011) |
송재박
(2012) |
감독 대행 김우열 (2012) |
|
18대 | 19대 | 20대 | 21대 | 22대 | |
송일수
(2013) |
황병일
(2014) |
송재박
(2015) |
공필성
(2016~2017) |
이강철
(2017) |
|
23대 | 24대 | 25대 | 26대 | ||
강석천
(2018~2019) |
박철우
(2019~2021) |
이복근
(2022) |
이정훈
(2023~ ) |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24번 | ||||
김경호 (1986) |
→ |
<colbgcolor=#000> 박철우 (1987~1993) |
→ |
최희창 (1994~1995) |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번 | ||||
김기태 (1991~1993) |
→ |
박철우 (1994~1998) |
→ |
이민호 (1999) |
SK 와이번스 등번호 80번 | ||||
팀 창단 | → |
박철우 (2000) |
→ |
양승관 (2001~2002) |
해태/
KIA 타이거즈 등번호 87번
|
||||
김봉연 (1998~2000) |
→ |
박철우 (2001~2005) |
→ |
김종모 (2006~2007) |
KIA 타이거즈 등번호 88번 | ||||
황병일 (2008~2011) |
→ |
<colcolor=#ffffff> 박철우 (2012~2013) |
→ |
박재용 (2014~2018) |
두산 베어스 등번호 87번 | ||||
고다 (2013~2014) |
→ |
박철우 (2015~2022) |
→ |
이광우 (2023~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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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우 朴哲祐 | Park Cheol-Woo |
|
출생 | 1964년 4월 12일 ([age(1964-04-12)]세) |
전라남도
광주시
월산동 (現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광주월산초 - 전남중 - 광주제일고 - 동국대 |
신체 | 181cm, 91kg, AB형 |
포지션 | 1루수, 외야수, 지명타자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87년 1차 지명 ( 해태)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 (1987~1993) 쌍방울 레이더스 (1994~1998) |
지도자 |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0) 해태-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01~2003)[1]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3~2004)[2]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04)[3]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5) 광주진흥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06) 서울 해치 감독 (2010~2011)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2012)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13)[4] KIA 타이거즈 3군 타격코치 (2013)[5] 고양 원더스 타격코치 (2014)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15~2017)[6] 두산 베어스 잔류군 타격코치 (2017)[7] 두산 베어스 1군 벤치코치 (2018~2019)[8]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9~2021)[9] 두산 베어스 재활군 타격코치 (2022)[10] 두산 베어스 1군 벤치코치 (2022)[11] |
가족 | 배우자 장은미, 아들 박세혁 |
[clearfix]
1. 개요
|
아들 박세혁과 함께. |
前 해태 타이거즈,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의 지명타자. 前 두산 베어스 코치.
2. 선수 경력
KBO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1989) |
광주제일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입단 동기인 백인호와는 동국대학교 시절부터 동기였으며, 해태 타이거즈 입단 - 쌍방울 레이더스에서도 같이 생활했다.
좌타자가 대대로 부족했던 해태 타이거즈에 굉장한 청량감을 주던 선수였다.[12] 왼손잡이 덕후였던 김응용 감독의 지지를 얻어 많은 기회를 얻었으며, 별명이 작은 코끼리였을 정도. 큰 덩치와 아주 느린 발에 비해[13], 거포라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중장거리 타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타이거즈의 우타자 일색[14]인 타선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선수였다. 그 덕에 우승반지도 5개나 꼈고. 그리고 그 때 그 시절 해태 선수들 대개가 그랬듯 술을 아주 좋아했던 것 같다. 이병훈이 이야기하는 일화 그래도 이병훈의 썰에 의하면 김성한, 이순철을 비롯 무서운 고참 선수들이 즐비했던 해태 선수들 가운데서 성격도 둥글둥글해서 사람은 좋았던 듯 싶다.
특히 1989년에는 팀내 유일한 3할 타자로서 빙그레 이글스의 고원부, 삼성 라이온즈의 강기웅과 함께 시즌 막판까지 타격왕 경쟁을 벌였고, 같은 해 빙그레 이글스와의 198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8타수 7안타(타율 3할 7푼 7리)의 기록으로 팀의 4연패에 기여하며 1989년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
1993 시즌이 끝나고 송인호를 댓가로 윤재호와 함께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다.[15] 여기서도 주로 지명타자, 1루수로 활동했다. 특히 95년도 중반까지는 타격 10걸에 들 정도로 타격감 하나는 좋았는데, 체력이 받쳐주지 못한 케이스.
그리고 쌍방울의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던 현대 유니콘스와의 1996년 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에서 9회말에 대타로 나와 끝내기 결승 홈런을 치기도 했지만, 팀의 리버스 스윕 탈락으로 빛이 바랬다.
1998 시즌 후에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1999년 시즌 후 현역 마지막 팀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타격코치로 선임되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1월 쌍방울이 해체되었고, 이후 쌍방울 선수단을 기반으로 창단한 신생팀 SK 와이번스에 고용승계 형태로 합류했다. SK 창단 첫 해인 2000년 한 시즌 동안 이건열과 함께 타격코치를 맡다가, 시즌 종료 후 SK 구단이 쌍방울 출신 코칭스태프들을 대거 해고해버리면서 쌍방울의 마지막 감독이기도 한 김준환 수석코치, 박상열 투수코치, 함학수 수비코치 등과 함께 1년만에 SK에서 해임됐다.하지만 바로 김성한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1년부터 친정 팀 해태 타이거즈의 타격코치로 합류했다.[16] 이후 팀명이 KIA 타이거즈로 바뀐 뒤에도 1군과 2군을 오가면서 5년간 코치직을 유지해 오다가 2005년 시즌 후 팀이 최하위를 하면서 재계약에 실패했다.[17]
KIA에서 나온 뒤 2006년 한 해 동안 광주진흥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았으나 얼마 못 가서 물러났고[18], 휴식기를 거쳐 2010년부터 2년간 일본 간사이 독립리그 구단인 서울 해치(코리안 해치)[19]의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재정난으로 팀이 해체되면서 야인이 되었다.
3.1. KIA 타이거즈 2기
조범현 전 감독의 라인이었던 김대진 2군 감독이 같이 물러나고 선동열 감독이 취임하면서 KIA 타이거즈에 영입되었다.2012 시즌에는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를 담당하면서 전년도 2군 꼴찌였던 팀을 NC 다이노스에 이어 남부리그 2위에 안착시키면서 당시 2군 타격코치였던 홍세완과 함께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시즌 종료 후 코칭스태프 개편에 따라 한대화 前 한화 이글스 감독이 2군 총괄코치로 부임했고, 동시에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선임된 이건열을 대신하여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동되었다.
3.2. 고양 원더스
2013 시즌이 끝난 후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스카우트 팀으로 전보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 원더스의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겼다.3.3. 두산 베어스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를 따라 타격코치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때 두산 베어스의 새 사령탑이 된 김태형 감독 또한 1군 타격코치로 박철우 코치를 필요로 했고, 김성근 감독이 인스트럭터 시절에 제자였던 김태형 감독을 위해 흔쾌히 동의하면서 박철우 코치의 두산 베어스 합류가 확정되었다. 한편 아들 박세혁이 2013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군 복무 중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부자가 코치-선수로 한 팀에서 함께 뛸 가능성도 생겼다. 결국 16시즌 박세혁이 1군에 등록되면서 부자가 덕아웃에서 같이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같은 팀에 아들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인 듯하다. 박세혁이 홈런을 치고 들어오면 활짝 웃지 못하고 하이파이브만 한다.베어스포티비에서는 박세혁의 노안에 대한 장난으로 박세혁과 박철우 코치를 동일인물로 헷갈려 만들게 한다.
2022 시즌이 끝나고 감독 교체의 여파로 인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 때 아들인 박세혁도 같이 NC 다이노스로 떠나면서 부자가 동시에 두산 베어스를 떠나게 된 셈이다.
4. 논란
4.1. 정영일 혹사 논란
광주진흥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재임 시절 3학년생이던 정영일을 혹사시킨 감독이였다. 2006년 4월 대통령배 1회전에서 경기고등학교 야구부를 상대로 13⅔이닝 242구를 던지게 했다. 혹사가 최고조에 올랐을 때는 청룡기인데, 9일 동안 50⅔이닝[20] 741구를 던지는 말도 안되는 투구수를 기록했다. 동료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광주 무등기에서도 많은 공을 던지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정영일은 미국에 가서도 팔꿈치 부상 탓에 제대로 못 던지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2014년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에 겨우 지명되어 상무에서 군 복무 후 SK 소속으로 2021년까지 뛰고 은퇴했다. 이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있는 팬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늘 까이고 있다. 극단적으로 까는 사람들은 아들 박세혁이 투수였어도 그렇게 백정처럼 보냈을 거냐며 까기도 한다. 정영일은 은퇴 후 스톡킹에 출연하여 정용검과 심수창이 고3 당시의 투구수에 대해 이야기하자 '본인이 원해서 던진 것이며 던지기 싫은 투수에게 투구를 강요하는 것이 혹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정영일이 두산 타선을 5경기 6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막아내고 MVP급 활약으로 SK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면서 소소하게나마 복수를 하게 됐다.
4.2. 경기 중 욕설 파문
2015년 5월 9일 한화전에 정근우에게 욕설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임수민 코치에게 했다는 설도 있다.5. 여담
- 현역 시절 발이 매우 느린 선수였다. 역대 KBO 리그 TOP 5 안에 드는 수준이다. 반대로 아들인 박세혁은 리그에서 가장 발 빠른 포수로 꼽힌다는 점은 아이러니.
- 1루수 포지션을 놓고 김성한, 이건열과 경쟁하였다. 김성한이 훗날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술회하기를 본인이 주로 출전하여 두 후배들은 얼마나 갑갑했을지 미안하다고 한다.[21][22]
- 1루수 수비 도중 LG 트윈스의 이병훈이 출루했는데 박철우한테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해태 선수들 중에 주당이 많았는데 LG 트윈스의 1루수 김상훈이 수비할 당시에는 '1루 출루하는 해태 놈들마다 전부 다 술냄새가 나냐'고 푸념했을 정도였다.[23] 공교롭게도 이 둘은 1994 시즌에 한대화와의 반대급부로 해태 유니폼을 입게 되었지만 해태 특유의 팀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 현역 시절 박건배 회장에게 "너는 호남형 얼굴이다"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신은 '好男(호남)형'이란 뜻으로 알고 있다가 나중에 '湖南(호남)형', 즉 전라도형 얼굴이란 뜻이란 것을 알고 멋쩍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87 | 해태 | 29 | 47 | .234 | 11 | 1 | 0 | 1 | 4 | 3 | 0 | 4 | 9 | .294 | .319 | .613 |
1988 | 36 | 69 | .188 | 13 | 4 | 0 | 0 | 7 | 7 | 1 | 2 | 10 | .208 | .246 | .455 | |
1989 | 112 | 340 |
.318 (3위) |
108 | 15 | 1 |
13 (5위) |
59 | 47 | 0 | 35 | 41 | .381 | .482 | .864 | |
1990 | 114 | 363 | .284 | 103 |
21 (5위) |
1 | 10 | 45 | 40 | 0 | 53 | 46 | .373 | .430 | .803 | |
1991 | 125 | 422 | .282 | 119 | 24 | 2 | 14 |
80 (5위) |
41 | 0 | 60 | 55 | .371 | .448 | .819 | |
1992 | 116 | 362 | .271 | 98 | 21 | 0 | 9 | 66 | 39 | 1 | 43 | 44 | .346 | .403 | .749 | |
1993 | 81 | 197 | .264 | 52 | 6 | 0 | 2 | 17 | 19 | 0 | 28 | 28 | .356 | .325 | .680 | |
<rowcolor=#000>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94 | 쌍방울 | 89 | 179 | .291 | 52 | 9 | 0 | 2 | 25 | 11 | 0 | 17 | 34 | .350 | .374 | .725 |
1995 | 95 | 287 | .265 | 76 | 12 | 1 | 5 | 35 | 21 | 3 | 28 | 42 | .330 | .366 | .696 | |
1996 | 28 | 32 | .188 | 6 | 0 | 0 | 1 | 2 | 1 | 0 | 11 | 7 | .395 | .281 | .677 | |
1997 | 77 | 103 | .340 | 35 | 6 | 0 | 1 | 18 | 9 | 2 | 18 | 14 | .438 | .427 | .865 | |
1998 | 59 | 118 | .237 | 28 | 2 | 0 | 1 | 14 | 9 | 0 | 18 | 26 | .336 | .280 | .615 | |
KBO 통산 (12시즌) |
961 | 2519 | .278 | 701 | 121 | 5 | 59 | 372 | 247 | 7 | 317 | 356 | .358 | .401 | .758 |
7. 관련 문서
[1]
~5월 18일
[2]
2003년 5월 19일~2004년 6월 20일
[3]
6월 21일~
[4]
~8월 16일
[5]
8월 27일~
[6]
~4월 17일
[7]
4월 18일~
[8]
~7월 18일
[9]
7월 19일~
[10]
~6월 24일
[11]
6월 25일~
[12]
해태는 원년 시즌에는 좌타자가 1명도 없었고,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좌타라자고는
김일환과
송일섭 둘 뿐이었다.
[13]
같은 팀의
장채근과 더불어 프로야구 최하위권 주력이었다. 덕분에 둘이 주자로 같이 나갔을 경우 아주 갑갑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아들인
두산 베어스의
박세혁은 포수임에도 프로야구 상위권의 주력을 가지고 있어 대주자로도 활용될 정도
[14]
그도 그럴 것이 박철우가 입단하던 무렵은 50년대생 선수들에서 60년대생 선수들로 세대가 바뀌던 시기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두 세대 모두 좌타자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후에 김성규를 비롯하여 좌타자가 여럿 입단하지만 박철우 이후로 성공한 좌타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트레이드로 OB에서 넘어온 박노준, LG에서 넘어온 김상훈 모두 신통치 않은 모습만 보여주다가 각각 트레이드와 은퇴로 끝났다. 그나마 94년에 입단한 박재용이 박철우가 떠난 이후에 제 몫을 해 주었고, 96년에 입단한 장성호가 1년만에 재능이 만개하면서 좌타자 슬롯이 채워지게 된다
[15]
좌타,
지명타자 자리는
박재용이 물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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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해태의 타격코치는
김성한과
김종모가 역임했는데, 시즌 후 김성한이 해태 감독으로 승격했고, 반대로 김종모는
김응용 감독을 따라 삼성 코치로 자리를 옮기면서 타격코치 자리가 공석이었다. 2군 감독 겸 타격코치였던
김봉연 역시 재계약에 실패해서 물러난 상황. 공교롭게도 박철우와 함께 SK에서 잘린
이건열도 같이 해태 코치로 합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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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를 역임하던 이 당시에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방영된 일화에 따르면 감독에서 해임된 뒤 경기감독관으로 재직하던 김성한과 저녁 식사를 해야해서 최고루를 운영중인 최해식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자 최해식은 운남동에서 무등 야구장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을 양장피와 소주는 덤 배달했다고 하며 김성한은 최해식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밝혔다. 서동욱은 신인이던 2003년 외야에서 훈련 도중 마운드 쪽에 우당탕탕 소리가 들려 마운드를 쳐다보니 박철우 코치가 한바탕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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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정영일 혹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 때
나성용 -
나성범 형제가 진흥고에서 뛰고 있었고, 이 외에도
강하승,
고영창,
박상현,
정형식이 진흥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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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의 투수인
신창호와
김진우가 이 구단에서 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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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최동원이 10일동안 40이닝. 단기전 역대급 혹사로 꼽히는 1984년 최동원보다 더 심한 혹사를 당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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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은 김성한 대신 1루수에 이건열과 박철우를 기용하는 식으로 충격요법을 시전하였다. 이건열은 김성한이 계속 주전으로 출전하자 '저 선배는 출근길에 어떻게 교통사고 한 번 안나냐'라고 털어놓았을 정도 였다. 그리고 이건열이 1루수 미트를 들고 수비 연습을 하러가면 '저리 안가!' '아따 너는 저기로 가라잉~'하면서 외야로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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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박철우는 좌타자여서 지명타자나 외야수 등으로 기용이 가능했지만, 이건열은 우타자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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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철우는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하여 나무위키의 박철우(야구) 문서 캡쳐화면을 지인으로부터 받았으며 이병훈이라는 선수를 모르며 전술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