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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9 21:42:57

마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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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소속 선수
<rowcolor=#FFFFFF> 포지션 이름 역할 등번호
- 김인식 감독 -
- 김윤겸 수석코치 -
- 유지훤 타격&수비코치 -
- 송진우 투수코치 -
- 김구라 단장 겸 해설 -
- 성승헌 캐스터 -
- 이찬원 캐스터 -
외야수 양준혁 선수 10
외야수 윤현민 선수 11
내야수 윤석민(타자) 선수 13
내야수 안경현 선수 16
내야수 채태인 선수 17
투수 이동현 선수 18
포수, 외야수 홍성흔
C
주장/선수 22
투수 윤석민(투수) 선수 24
포수, 내야수 최준석 선수 25
포수 현재윤 선수 27
투수 김환 중계/선수 29
내야수 박종호 선수 31
투수 송창식 선수 38
투수 니퍼트 선수 40
내야수 마해영 선수 49
투수 봉중근 선수 51
내야수 김태균 선수 52
외야수 이대형 선수 53
투수 유원상 선수 55
투수 이한진 선수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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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영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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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2.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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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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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1984 1985 1986
신설 전 양세종
OB 베어스
김용희
롯데 자이언츠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1987 1988 1989 1990 1991
유승안
빙그레 이글스
김용철
롯데 자이언츠
박철우
해태 타이거즈
박승호
삼성 라이온즈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1992 1993 1994 1995 1996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김형석
OB 베어스
박재용
해태 타이거즈
1997 1998 1999 2000 2001
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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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로마이어
한화 이글스
우즈
두산 베어스
양준혁
LG 트윈스
2002 2003 2004 2005 2006
마해영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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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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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양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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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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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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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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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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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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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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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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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1995 1996 1997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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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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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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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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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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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1984 1985 1986
김유동
OB 베어스 / 외야수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유두열
롯데 자이언츠 / 외야수
-[1] 김정수
해태 타이거즈 / 투수
1987 1988 1989 1990 1991
김준환
해태 타이거즈 / 외야수
문희수
해태 타이거즈 / 투수
박철우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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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채근
해태 타이거즈 / 포수
1992 1993 1994 1995 1996
박동희
롯데 자이언츠 / 투수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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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OB 베어스 / 내야수
이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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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1998 1999 2000 2001
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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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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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2003 2004 2005 2006
마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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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 내야수
양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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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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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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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 내야수

[1]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인한 한국시리즈 미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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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KBO 리그 타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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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KBO 리그 최다 안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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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자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9번
서정용
(1988~1993)
마해영
(1995~2000)
이대호
(2001~200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9번
정성열
(1999~2000)
마해영
(2001~2003)
서홍준
(2004~2005)
KIA 타이거즈 등번호 49번
신용운
(2002~2003)
마해영
(2004~2005)
주창훈
(2006)
LG 트윈스 등번호 49번
홍성용
(2005)
마해영
(2006~2007)
노진용
(2008~201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9번
배장호
(2007)
마해영
(2008)
홍성흔
(2009~2012)
}}} ||
}}} ||
파일:마해영(馬海泳).jpg
마해영
馬海泳 | Ma Hae-Young
출생 1970년 8월 14일 ([age(1970-08-14)]세)
(정부 직할) 부산시 부산진구
(現 부산광역시 남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부산대연초등학교 ( 졸업)
부산중학교 ( 졸업)
부산고등학교 (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 체육교육학 89[1]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2] / 석사[3])
단국대학교 대학원 ( 체육학 / 박사[4])
신체 192cm, 100kg, AB형
포지션 1루수[5], 지명타자[6]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3년 2차 1라운드 (전체 10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5~2000)
삼성 라이온즈 (2001~2003)
KIA 타이거즈 (2004~2005)
LG 트윈스 (2006~2007)
롯데 자이언츠 (2008)
지도자 성남 블루팬더스 감독 (2017~2019)
프런트 연천 미라클 자문위원 (2015)
해설위원 Xports 야구 해설위원 (2009)
KNN 야구 해설위원 (2010~2011)[7]
XTM 야구 해설위원 (2012~2014)
경력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19)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1993~1994)
응원가 LG 시절 Baha Men - Best Years Of Our Lives [8][9][10]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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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ddd> 본관 장흥 마씨
가족 배우자 방시라
장남 마낙준(1997년생)
차남 마낙현(1999년생)
}}}}}}}}} ||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해설위원 경력
4.1. 편파해설 논란4.2. 그 이후
5. 기자 경력6. 플레이 스타일7. 평가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자서전 논란8.2. 빵 사건
9. 여담
9.1. 별명9.2. 마스트라다무스
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로, 선수 시절 포지션은 1루수.

KBO 통산 260홈런과 1003타점을 기록한 거포형 1루수로 이름이 높았다.

2. 선수 경력

마해영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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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마해영/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롯데 1기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LG 시절 롯데 2기
}}}}}}}}} ||

3. 지도자 경력

과거 대표적인 홈런타자였지만, 프로야구 지도자가 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자서전에서의 롯데구단 비판과 LG 시절 연봉소송, 선수협 창립구성원 경력 등 여러 구단 프런트와 척을 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에서 영입제안은 없고, 독립리그인 ISG 미라클에서 그를 타격코치로 영입했다.

실제로는 본업이 기자인지라 자문위원 정도라고 한다. 경기감독관이 본업인 김재박도 같은 경우이다. 최근 들어서는 기록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가 운영하는 야구학교의 타격코치일을 잠시 하게 되었고 그 산하 독립야구단인 성남 블루팬더스의 1대 감독을 맡게 되는 등 아마나 독립리그 지도자로만 돌고 있다. 구단에 밉보인 마해영이 프로 지도자를 하려면 아마야구 지도자로서 눈에 띄는 실적을 내는 길밖에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키워낸 선수는 뚜렷이 없는 상황.[11]

4. 해설위원 경력

은퇴 후 엑스포츠의 해설위원을 맡으면서 해설자 생활을 시작했다. 엑스포츠가 SBS에 인수된 이후 2010년 3월부터 대경대학교 스포츠건강과학과의 겸임교수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KNN 등에서 해설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2 시즌부터는 XTM의 해설위원을 맡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선수로 뛰었고, 여러 팀을 전전한 탓에 상당수 선수들의 사생활이나 신체조건 등에 대한 정보가 빠삭하다. 대표적으로 " 정근우는 벗으면 격투기 선수급 몸매를 가졌다" 등이 있다.

다만 이 시절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는데, 자신이 애정을 가지는 삼성과 롯데를 빼면 무슨 허구연 한일전 해설하듯이 편파적으로 해설했기 때문.

심지어 롯데와 삼성 경기중계에서는 오승환이 안타를 맞자, 아! 안돼요! 라는 발언을 하여, 롯데팬들도 마레기라고 깠다. 다만 실제로는 아! 안타에요 인데 잘못 들은 듯 하다.

여러 가지로 보면 서울 연고팀을 싫어하는 것 같다. 대충 허구연이,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경기 해설하는 거랑 수준은 비슷하다.

결국 2014시즌에도 또 편파해설을 하다가, 기아팬들이 방송국에 거세게 항의해 전화가 마비될 정도까지 가자 마해영 위원을 해임하면서 대충 일을 수습했다.

그런데 또 다른 해설위원인 진필중이 LG, 두산 편파해설을 계속하자 삼성팬들은 왜 마해영은 자르고 진필중은 안 자르냐는 반응이다.

4.1. 편파해설 논란

해설을 시작하자마자 지나친 편파 해설과 잘못된 정보를 들먹이는 일이 많아진 탓에 폭풍같이 까였다. 대표적으로 박찬호의 KBO 첫 선발 경기인 4월 12일 청주 한화:두산전. 거기에 이 날 마해영은 경기 초반부터 편파중계하겠다고 대놓고 이야기했다. 불암콩콩코믹스 당시 상황 풍자

특히 그의 편파 해설에 많이 당한 LG 트윈스 팬들, 두산 베어스 팬들과 넥센 히어로즈 팬들은 그를 마가놈, 마레기라 부르며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특히 넥센 히어로즈를 엄청나게 싫어하는데 2013년도에는 두산과 넥센 경기에서 두산편을 들어주는 충격과 공포의 편파 해설을 보여주어서 넥센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사기도 했다. 허구연의 삼성 경기 해설과 마해영의 넥센 경기 해설...

주로 선호하는 팀은 영남권 팀들인 롯데, NC, 삼성[12] 그 중에서 삼성 라이온즈 경기에서 가장 우호적으로 편파해설한다. 가끔씩은 대구아재가 해설한다 싶을 정도가 들 때도 있다. 이로 인하여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마가놈이라고 까였다. 이 팀들과 해당 서울 팀들간의 경기가 있을 땐 거의 한일전 수준의 편파중계가 나온다. 또한 2013년 두산과 엘지전에서는 엘지에 대한 저주해설로 엘지 팬들에게 마해영 경기는 뮤트가 답이란 소리도 들었다. LG 트윈스 팬들도 먹튀질도 지긋지긋한데 해설마저 마레기라며 이를 가는 걸로 봐선 그냥 서울 팀들을 마해영이 싫어하는 듯하다. 엠엘비파크에서 가장 싫어하는 해설 중 1위에 뽑히기도 했다. 물론 이 글 자체도 정식 설문글도 아니고 엠엘비파크 자체의 성향이나 팬 분포도를 생각할 때 고작 이 글 하나만으로 모든 야구팬이 싫어한다고 단정짓는 건 무리가 있다. 다만 매우 평가가 나쁜 해설위원이다의 참고자료 수준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급기야 2014년 3월 30일에 열린 KIA 타이거즈 vs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기어이 고름이 터져 버렸다. 경기 내내 삼성 편을 드는 해설 덕분에 KIA 팬들이 집단으로 들고 일어난 것. 차라리 편파해설이면 그나마 나은데 아예 아는 게 없이 캐스터 말이나 끊었다. 캐스터가 KIA 얘기를 하면 되받아쳐 삼성 얘기를 하는 등, 말 끊기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삼성 용병 마누라는 아는데 반해 KIA 2014년 1차 신인 강한울이 누군지 모르는 지경이었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와 엠엘비파크에는 XTM 사무실에 전화했다는 글이 3월 31일 오후에만 수십 개가 올라왔으며, 급기야 XTM 측에서 KIA 타이거즈 경기에는 해설을 맡기지 않기로 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KIA 경기에서 빠지는 만큼 다른 팀 경기의 해설을 배당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마해영의 해설 완전 퇴출을 원하는 목소리도 높은 터라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마해영 중계 누리꾼 와글와글 "삼성 이야기만 하더라"vs"기아 경기가 엉망" 결국 4월 1일 베이스볼 워너B 방송을 통해 사과를 하긴 했으나 고의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투로 변명을 하는 데에 급급해 진정한 의미의 사과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팬들의 계속된 항의가 통했는지 이후로는 더 이상 현장 해설은 나가지 못하고 베이스볼 워너B에만 출연하다가 끝내는 XTM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그래도 워너B 오프닝 때마다 등장하긴 한다. 사실 그 이후에도 지역민영방송 공동제작 프로그램 토크콘서트 화통에서도 편파해설 이야기가 나오자 해명을 했는데, 자신이 거쳐간 팀의 사정을 잘 알다보니 그 팀 위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거쳐간 팀의 사정을 잘 안다면서 삼성에 대한 이야기만 주저리주저리 했지만, 정작 마해영이 그 삼성에서 FA시즌으로 간 팀이 기아였다.

4.2. 그 이후

프로야구 해설을 그만 둔 뒤에는 IB스포츠에서 고교야구 해설을 맡았다. 전반적으로 프로야구 해설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으며 고교야구와 신인 지명 제도에 대해 다소 무지한 듯한 인상을 보이고 있다.[13]

2021년 3월 23일, 키움 히어로즈 삼성 라이온즈의 시범경기 중계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5. 기자 경력

현재 일간스포츠 베이스볼긱에서 같은 XTM 출신인 정순주 등과 함께 야구기자로 활동하면서 칼럼을 쓰고 있는데 혹평받은 해설과는 달리 마해영의 칼럼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은 편이다. 마해영 본인도 해설자보다는 최종 목표가 야구 기자라고 했고, 특히 2014 시즌 초에 류중일 감독을 마해영이 인터뷰한 기사의 평가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6. 플레이 스타일

파일:마포타격폼.gif
현역 시절 타격폼

프로 데뷔 직후에 잠깐 3루수로 뛰었지만 주 포지션은 1루수였으며,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 후에는 잠깐 좌익수로 뛰다가 헬게이트급의 수비[14]를 보여 주며 결국 지명타자로 활약했다.[15]

전성기 때도 극단적인 오픈스탠스 타격의 반동으로 몸쪽 공에 취약했던 문제점이 노쇠화로 인한 배트 스피드 저하로 극명히 드러났지만 본인의 고집으로 이 점을 개선하지 않았던 점이 급격한 몰락의 이유[16]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마해영이 우산효과를 받지 않았다면 이런 성적을 낼 리 없다고 하지만 원래 우산효과야 서로서로 주고받는 것이니. 결정적으로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

7. 평가

한 시대를 풍미한 오른손 빅뱃 타자 중 한 명으로 엘롯기 세 팀에서 모두 뛰어 봤고 11시즌 동안 3할 이상을 3시즌, OPS 9할 이상을 4시즌, KBO 리그 토종 우타자 최초로 3년 연속 30홈런을 기록했다. 선수로서의 최전성기는 1999 ~ 2003년 시즌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시즌만큼은 이승엽, 양준혁, 심정수 등의 타자 본좌들과 비교해도 그다지 꿀리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성적이었다. 그러나 30대 초중반의 비교적 이른 나이[17]에 급격히 하락세에 접어들게 된다.

선수 생활 후반기에 뛰었던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팬들에게는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강하다. 친정 롯데 자이언츠 팬도 1990년대의 활약으로 인해 대놓고 심하게 까지는 않지만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선수다. 만년에 LG에서 먹튀 하고 오갈데 없던 그를 로이스터 감독이 거두어들였는데, 그렇게 팀으로 돌아오고 난 후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로이스터 감독이 자신이 출장시켜주지 않았다면서 갈등을 일으켰고, 은퇴 후에도 로이스터나 구단을 여러 차례 까면서 다수의 롯데팬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반면, 길지는 않지만 전성기 때 활동했던 팀인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게는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고군분투 끝에 삼진 아웃을,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기적같은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2년 연속 팀의 한국시리즈 마지막을 장식한 타자, 2003년 이마양 트리오 등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마해영 자체도 삼성 라이온즈 시절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때문인지 친정팀 롯데보다 삼성을 더 편애하며 심지어 삼성과 롯데가 경기를 하면 삼성에게 유리한 편파 해설을 할 때가 있다. 그 때문에 친정인 롯데 팬보다 오히려 삼성 팬들에게 더 사랑받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8]

말년에 노쇠화로 추락하긴 했지만 통산 스탯에서 알 수 있듯이 역대 타자들 가운데서도 10손가락 안에 드는 안타, 타점, 홈런 기록을 보유한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특히 홈런의 경우 당시 국내에서 잠실 야구장 다음으로 홈런을 치기 힘든 사직 야구장[19]을 홈으로 쓰면서 상당한 커리어를 쌓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역대 롯데 선수 중에서 시즌 30홈런 이상을 친 적이 있는 선수는 마해영(1999), 펠릭스 호세(1999, 2001), 카림 가르시아(2008), 이대호(2010, 2017, 2018), 강민호(2015), 최준석(2015), 전준우(2018) 단 7명뿐이다. 게다가 펠릭스 호세, 카림 가르시아가 외국인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롯데 자이언츠 최초의 한국인 거포 타자였다. 이 계보는 마해영 → 이대호 → 강민호 → 전준우로 이어진다.

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자서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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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자서전 <마해영의 야구본색>을 내놨는데 여기에 실려있는 내용의 일부가 약물의혹이라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대강 요약하자면, 선수 시절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를 상습 복용하는 선수들을 제법 목격했는데, 대부분 외국인 선수였지만 국내 선수들도 제법 많았다는 내용이다.

마해영은 몇몇 선수들이 호기심에 한 두 번 해본 게 전부라며 해명했다. 어쨌든 마해영이 약물 선수를 직접 지목하지는 않고 덮어둔 덕에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그리 큰 파장은 일지 않고 묻혔다.

여담으로 자신은 금지약물에 손대지 않았다면서, 바로 다음 문장에 카페인 커피30배나 들어있는 약을 한 번 먹은 적이 있다고 했다.[20] 고농축 카페인 제재가 금지약물인 것을 몰랐는지 의도치 않게 자수를 한 셈이다.[21] 이는 그 후 2013년 이숭용이 고농축 카페인 복용에 대해 실토하면서 더 이상 그냥 듣고 넘길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숭용은 약물 의혹 내용에 대해 "다른 선수가 약물 복용하는 것을 본인이 봤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나. 증거없이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마해영을 비판한 적이 있다.(...) 다만 저 그리니로 불리는 암페타민이 금지약물로 지정된지는 꽤 나중 일이다. 마리오 엔카르나시온이 매일 이것으로 추정되던 것을 복용하다 약물 중독으로 30세의 나이에 사망한 것은 유명한 일. 틸슨 브리또도 그리니를 커피와 같이 복용했다던 말이 있으나 이 시기 금지약물이 아닌 데다 사실확인도 되지 않아 별 말이 없었다.

여기에 약물 스캔들에 묻혔지만 사인거래 논란에 대한 이야기도 이게 비판인지 아니면 그냥 에피소드인지 애매할 정도로 슬쩍 지나가서 한 쪽에서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왔다.
여기에 실명만 거론하지 않았지 누구나 알 만하게 적은 감독에 대한 평가 등도 논란거리가 아닐 수 없다. 단적으로 스타 선수는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느냐를 다룬 부분에서 빠른 속도와 최고의 타자라는 평을 받았지만 감독으로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익명의 인물이나, 한국 최고로 인정받았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은 또 다른 인물에 대한 비판이 등장한다. 이들에 대해서 명문 팀의 감독으로 성적도 나왔지만,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부족하고 후배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못 한다는 식의 글이 등장한다.

추가로 대학 동문들인 이상훈, 진갑용, 손민한, 박동희, 임수혁, 조성민에 대해서도 한 마디씩 했다. 그리고 자기 평가도. 이상훈과 자신의 경우 자질은 떨어졌지만 노력으로 일어선 케이스로 평가했고, 진갑용과 손민한은 자질에 비해서는 만개하지 못 했다고 평가했다. 박동희에 대해서도 대충 대충 놀며 하는 형은 아니지만 피나는 노력을 하는 노력파가 아니라고 언급했으며, 조성민의 경우 자기관리에 소홀했던 점을 꼬집었다. 또한 그 밖에도 프런트의 병크, 특히 롯데 자이언츠, 한국야구위원회의 병크를 샅샅이 파헤쳤다. 2000년대 초반 신인 계약에 번번히 실패한 것을 푼돈 아끼려다 대어 여럿 놓친 롯데라고 대놓고 깠다. 이제 롯데로 지도자 가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 되어버렸다. 장호연도 그랬지 않나.

하지만 야구 산업의 발전을 위한 진지한 조언을 빼놓지 않았고, 어린 야구 꿈나무들에게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면 우선 공부하라!"고 조언을 했다[22]. 더불어 프로 야구 선수들에게 "선수는 공인이다. 그 어떠한 욕설을 듣더라도 끝까지 참고,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또한 공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요소다."라고 충고했다. 거기에 추가로 "열 배, 백 배 더 힘이 든다고 할 지라도 공인은 사회로부터 그 만큼의 대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보상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들을 많이 갖춘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고, 그 감사하는 마음을 팬들에게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팬 서비스에 대한 내용도 언급했는데 자신의 집에 음식을 배달하러 온 배달원이 자신을 알아보고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때까지 자신은 아무리 피곤해도 팬들의 사인 요청을 거절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팬들에게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리해 보면, 자서전 자체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평이 엇갈린다. 전직 선수가 야구계의 수많은 문제점과 나아갈 바를 지적한 본격적인 야구전문서적인 양서라는 호평과 사인거래[23]와 약물 스캔들, 현역인 인물들에 대한 평가 등 민감한 내용을 스쳐지나가는 에피소드처럼 무책임하게[24] 언급했다는 점을 비판하는 입장이 동시에 존재한다. 여기에 뭔 놈의 야구선수 출신 사람 책에 야구가 없어질 수도 있네 없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동시에 골프 찬양은 왜 이렇게 기냐는 이야기도 있다. 깊이 파고들수록 떡밥이 한 무더기인 책.

8.2. 빵 사건

빵 사건이 이슈화된 직후에는 이종범 박재홍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이후 KBS의 옐로우카드 51회에서 이재국 야구전문기자가 빵 사건의 전모에 대해 밝혔다. 해당 범인선수는 FA로 기아에 온 선수로 당시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어있었고, 팀 분위기를 저해시키고 융화되지 못한 선수. 2009년부터 ' 어디선가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FA로 기아에 들어왔으나 팀에 융화되지 못하고 결국 타 팀으로 트레이드됐으며 이후 2008년 은퇴하여 2009년부터 해설가로 새 삶을 살고 있던, 용의점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마해영이 빵 사건의 새로운 용의자로 주목받게 됐다.

당시 옐로우카드에서 확실히 진범을 알고 있다는 투로 말을 했던 점과 평소 남들이 언급하기 꺼리는 부분에도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려대던 그의 야구전문기자로서의 신용도가 이재국 기자의 발언을 사실상 확정적인 증거로 만들었다.

문제는 마해영이 혐의를 부인했다고 오해를 받은 것. 일단 마해영 본인은 사건 자체를 잘 기억하지 못 했다. 인터뷰 본문을 읽어보면 마해영에게 간 질문은 '박재홍이 빵을 먹었는지'에 대한 답변이었고, 마해영은 이에 대해(박재홍이 빵을 먹었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대답. 그러나 인터뷰 중 아래 문장만 퍼져서 '본인이 먹지 않았다'는 식으로 와전되어 이야기가 퍼졌다.
(전략) 특히 먼저 한 여성 독자는 야구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가지 질문을 준비해오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박재홍 선수와 빵에 대한 사건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마해영 해설위원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답했다. (후략) 본문출처

한참 뒤인 2012년, 두드림에 출연했던 이종범이 빵 사건의 범인이 아직 현역임을 언급하면서, "어디선가 잘 살고 있다."라는 말이 은퇴를 직접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현역이면서 동시에 이재국 기자가 언급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새로운 용의자 최향남이 등장함과 동시에 마해영의 혐의 또한 풀리는 줄 알았는데, 2014년 1월 29일에 빵 사건의 최초 발설자인 정철우 기자가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면서 사건의 진범은 2014년 기준으로 박재홍 방송 해설위원과 같은 직업이라고 밝혀, 최종적으로 마해영이 빵 사건의 진범임이 확정되었다. 물론 마해영 본인은 '박재홍의 빵 섭취 여부'에 대한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지 '본인의 빵 섭취 여부'에 대해 답한 건 아니므로, 해당 사건에서 빵 먹은 게 죄라면 죄일지 언정 마해영의 발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애당초 틀린 문제를 냈는데, 답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기 때문.

다만 이게 단순히 질문을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게, 애초에 마해영 본인이 이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상에서 본인은 기억에 없고 마치 다른 선수인 것처럼 얘기하는데[25], 이로 미루어볼 때 제대로 질문했다고 해도 답이 나왔을 가능성은 없다. 애초에 너무나 사소한 일이라 당사자도 기억을 제대로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실 마해영보다 현역 운운하면서 애꿎은 최향남이 범인이라 생각하게 만든 이종범 쪽이 더 까이고 있다. 빵 사건 문서 참고.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박재홍이 "빵은 네가 먹었잖..."이라며 마해영과 싸운다.

최향남이 인터뷰에서 간접적으로 언급.

9. 여담

9.1. 별명

대표적인 별명은 마포(馬砲). 하지만 먹튀가 된 뒤엔 마공갈[30]로 전락(…)했고, 부진이 지속되자 마해영은 머해영?이라는 말도 생겼다. 또한 어이없는 공에 스탠딩 삼진을 당하거나 택도 아닌 변화구에 등을 돌리는 등의 활약에 의해 마수아비, 마네킹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생기기도.
파일:attachment/마해영/마몰레드.jpg
또다른 별명으로는 마몰레드. 뷔페에서 음식 가져가려고 줄 서있는 사진인데, 그 때 입은 마해영의 옷 색조합이 워낙에 튀는 색조합이라... 2017년 2월 9일 SBS ' 자기야 백년손님'에 출연한 아내의 말에 의하면 상의/하의 모두 자기가 사줬으나 저걸 동시에 입고 가라고 한 적은 없다고 한다.

아마시절에는 좌준혁 우해영으로 유명했었다. 또 안경잡이 빅뱃+성이 마씨라서 마동탁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빵 사건 때문에 빵해영이라고도 불린다.

각 팀마다 별명이 다른데 롯데 자이언츠 팬에게는 올드팬은 마포, 2008년 이후 팬들은 제리 로이스터를 비판했던 탓에 마가놈이라고 까인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과 이마양으로 대표되는 강타선의 좋은 기억이 었어서 삼해영이라고 불린다.

나머지 구단은 도가 지나친 편파 해설 때문에 들과,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팬들한테는 마레기라고 불린다.

9.2. 마스트라다무스

2014 시즌 전 프야매 구단주의 밤 행사에 참가했을 당시, 4명의 해설자에게 순위을 묻는 코너에서 마해영이 삼성의 4연패, 넥센의 성장 가능성, NC의 용병 4명 어드밴티지를 언급하며 이 세 팀을 상위권으로 예측했고, 이 세팀이 1, 2, 3위를 차지하며 당시의 발언이 재조명받기도 했다. 특히나 삼성과 넥센은 한국시리즈에서 만났다.

10. 관련 문서


[1] # [2] 체육교육 전공 [3] 석사 학위 논문 : 프로 야구 선수와 대학 야구 선수 간 체격과 체력 및 등속성 근력 비교 분석(2009). [4] 박사 학위 논문 : 프로야구 선수가 지각한 자율성지지와 운동 수행 만족의 관계에서 코치-선수관계와 집단 효능감의 매개효과(2014. 12). [5]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한 롯데 자이언츠 시절 입단 첫해 3루수로 데뷔하였으나, 한달 여 만에 1루수로 포지션을 옮겼고, 대부분의 경기를 1루수로 출전하며 6시즌 간 주전 1루수로 활약했다. 선수 전체 커리어에서도 1루수로 887경기에 출전하며 가장 많이 출전한 포지션이다. [6] 삼성 라이온즈 이적 후에는 2004년(1루수)을 제외하면 거의 지명타자로만 나왔다. 600경기 가까이 출전하며 1루수 다음으로 많이 출전한 포지션이다. [7] TV해설만 담당. [8] 홈!런!(안!타!) 마!해!영! 와우! x? [9] 응원단장이 무한으로 반복하거나 그때그때 다르게 끊었다 한마디로 랜덤으로 끊었다 [10] 후에 김정민이 물려받았고 2012~2014년에는 롯데 용병투수 쉐인 유먼의 응원가로 사용 되었다 [11] 냉정히 말해서 독립리그에서 실적을 내기는 쉽지 않다. 이미 모종의 이유로 지명이 안 되거나 방출된 선수들이 주축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선수들의 기량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 [12] 롯데는 자신의 연고/데뷔 팀이니 설명 생략. 삼성 라이온즈는 자신의 전성기를 보냈던 팀이고, 자기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우승을 맛봤던 2002년 한국시리즈와의 큰 인연 때문인 듯. [13] 2019년 8월 14일 봉황대기 강릉고:세광고 경기를 중계하면서 강릉고 2학년 투수 김진욱에 대해 언급하면서 "삼성이 1차 지명을 놓고 고민하겠네요"라고 말했는데 강릉고가 삼성의 1차지명 연고 학교는 맞지만 김진욱은 수원북중을 졸업하고 타 지역인 강릉고에 진학했기 때문에 1차지명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롯데 자이언츠 2차 전체 1라운드 지명이 유력한 상황. 현재는 진짜 롯진욱이다... [14] 당시 삼성은 포지션 상관 없이 강타자다 싶으면 선수를 데려와서 일단 출장만 시키던 시절이었다. 당시 삼성에는 김기태, 이승엽이라는 1루수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한 명은 외야로 이동해야 했다. 결국 2001년에는 짬에서 밀린 마해영이 외야수를 뛰게 된다. 그러나 마해영이 좌익수에 적응하지 못 하고 김기태가 부진으로 2군에 머무르는 기간이 많아지자 결국 01시즌 삼성의 주전 지명타자는 마해영이 되었다. 그리고 삼성은 01시즌 후 김기태를 SK로 트레이드 한다. [15] 다만 상술했듯 03시즌을 앞두고 2루수 전향도 시도한 적은 있다. [16] 사실 본인의 나이로 인해 신체능력에 변화가 생긴 걸 선수 자체가 쉽게 인정하지 못 했던 케이스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데뷔 초부터 전성기까지 그리고 조짐이 있었다고는 해도 FA가 되던 2003년지만 해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장타자로서의 뛰어난 시즌을 가능하게 했던 타격폼을 수정하는 거 자체가 본인에게 굉장히 큰 모험이다. 사실 에이징커브 이후의 낙폭 자체는 컸지만 그 에이징커브가 급속도로 드러난 나이 자체가 한국 나이로는 35세 만으로는 33세에 시작되는 시즌이라 아주 빠른 에이징커브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특별한 부상이 없었던 선수였던지라 납득이 안될 정도로 낙폭이 너무 급격했을 뿐이다. [17] 사실 아주 놀라운 나이는 아니다. 이승엽, 양준혁처럼 롱런한 경우가 특이한 케이스일 뿐 마해영의 슬래쉬라인이 급격히 내려간 2004년 시즌 마해영의 나이는 한국식 세는 나이는 35세, 만으로도 33세가 이미 지난 상태였다. 2023년 기준으로는 1989년-1990년생으로 본격적으로 노쇠화가 시작되는 세대이다. 다만 내구성이 좋아 부상을 당하지 않았던 선수 특성 자체가 선수 본인의 슬래쉬라인에서의 낙폭을 더 충격적으로 부각시킨 면도 있다. 그리고 망하기 직전 시즌에 38홈런을 치는 대활약을 했기에 더욱 임팩트가 크다. 요즘으로 치면 장원준과 가장 비슷한 사례. [18] 삼성팬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딱히 특이하지도 않은 현상이다. 삼성은 프로원년부터 줄곧 명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1985년 통합우승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 한 차례도 우승은 거둔 적이 없었기에 그 어느 팀보다도 우승에 대한 갈증이 강했다. 우승을 위해 라이벌팀의 수장이었던 김응용을 영입하고 IMF로 휘청이던 쌍방울에서 핵심 계투진과 중심타자를 데려오는 등 상당히 공을 들이다 마침내 2002년에 이르러서야 이마양 트리오를 앞세워 숙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비록 타팀 출신이긴 하나, 막힌 혈을 뚫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터라 팬들 입장에선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19] 사직 야구장은 구장의 크기는 큰 편이 아니지만 5미터 높이에 달하는 크고 아름다운 펜스를 갖고 있어서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는 거의 다 걸린다고 보면 된다. [20] 그리니로 불리는 고농축 카페인 암페타민으로 추정된다. [21] 정작 본인은 카페인에 예민한 체질이라 그 날 병살타 포함 4타수 무안타의 화려한 기록을 거두고 다음날까지 뜬눈으로 지샜다고 한다. [22] 이게 어디서 나오냐면 자기가 미국 진출 생각하고 영어 공부한 부분이다. 아래도 언급되지만, 마해영은 미국은 커녕 해외진출 근처에도 못 가봤지만 지금의 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마해영이 말하는 공부는 야구 관련 지식이라기 보다는 진짜 공부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23] 예를 들어 가까운 선후배간에 2군행을 놓고 간청하는 경우. [24] 이건 언급한 것 자체가 무책임했다는 것이 아니라, 언급한 방식이 무책임했다는 것이다. 야구 시스템과 그 감시체제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개선 필요를 주장했다면 몰라도, 실제로는 과거 일화 정도로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간다. 분명히 내용은 폭발력이 있는데, 책 내의 비중이나 저자가 기울이는 관심은 정말로 가볍다. 책 판매용 노이즈 마케팅 소재로 끼워넣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25] 이것도 본인이 실제로 이 사건을 기억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영상 컨텐츠가 미리 특정 인물의 이름 및 그 인물과 연관된 어떤 소재를 미리 적어주고 그에 대해 마해영이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적혀있던 박재홍과 빵 사건에 대해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 [26] 2017년 2월 9일 백년손님에 방영된 바에 의하면 부인은 당시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고 마해영은 영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다짜고짜 마해영이 부인을 쫓아오더니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는 것. 그 후 그가 했던 말은 "저 모르세요? 저 롯데 4번타자 마해영인데요?"였다고 한다. 그러자 부인이 "이 사람 뭐야?"하고 상당히 당황을 했다. 부인이 그 당시만 해도 야구를 전혀 모르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황했다고 한다. 얼마나 야구를 몰랐냐면... 지인에게 "왜 4번이야? 잘하는 사람이 1번타자 아니야?"라고 질문했을 정도. 여튼 이차저차 잘 만나서 결혼을 하긴 했는데 부부싸움 과정이 매우 유아틱하다고 한다. [27] 이와 매우 유사한 사례가 바로 2008, 2009 한국시리즈의 채병용. 2008년엔 끝내기 병살을 유도해 헹가레 투수가 되고 2009년엔 다들 아시다시피... [28] 당연히 이 당시는 한국국적이었으니 안현수였다. [29] 재밌게도 이대호는 데뷔 초 마해영이 선수 시절 사용했던 49번을 달고 뛰었다. [30] 마공갈은 다른의미로 사기적인 파워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