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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00:30:59

KBO 골든글러브

국내 프로야구 주요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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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글러브 어워드 KBO 골든글러브 KBO 시상식 일구상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fff,#1f2023> 파일: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KBO A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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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dimg.donga.com/51173683.2.jpg
골든글러브 트로피. 야구용품 전문 회사인 ZETT에서 제작한다.[1]

1. 개요2. 골든글러브 후보 선수 선정 기준
2.1. 1984년 후보 기준2.2. 1986년 후보 기준2.3. 1987년 후보 기준2.4. 1988년 후보 기준2.5. 1989년 후보 기준2.6. 1992년 후보 기준2.7. 2000년 후보 기준2.8. 2001년 후보 기준2.9. 2003년 후보 기준2.10. 2005년 후보 기준2.11. 2006년 후보 기준2.12. 2007년 후보 기준2.13. 2008년 후보 기준2.14. 2011년 후보 기준2.15. 2013년 후보 기준2.16. 2014년 후보 기준2.17. 2015년 후보 기준2.18. 2016년 후보 기준2.19. 2017년 이후 후보 기준
3. 투표인단4. 역대 수상자5. 특별상 6. 비판 및 논란7. 사건 사고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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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2023 골글 수상자.jpg
2023년 KBO 골든글러브 수상자[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수상자 명단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투수: 페디(NC) · 포수: 양의지(두산) · 지명타자: 손아섭(NC)
1루수: 오스틴(불참)(LG) · 2루수: 김혜성(키움)
3루수: 노시환(한화) · 유격수: 오지환(LG)
외야수: 홍창기(LG) · 구자욱(삼성) · 박건우(NC)
페어플레이상: 김혜성(키움) · 골든포토상: 오지환(LG)
}}}}}}}}} ||

KBO에서 한 시즌 동안 활약했던 선수들 중 각 포지션별로 한 명씩[3] 선정해 매년 12월 둘째주 월요일 또는 화요일[4]에 수여하는 상이다. KBO에서 주관하는 가장 큰 행사이며 타이틀홀더 시상식에는 감독들과 선수들이 참가하지 않아도 상관 없지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는 모두 참가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KBO 리그 원년시즌인 1982년부터 1983년까지는 다른 리그와 비슷하게 타격과 투구기록보다 기록상의 수비율[5]을 따져서 골든글러브를 선정하였고 지금의 골든글러브와 같은 성격으론 베스트 10이라는 상이 있었다.[6] 국내에서는 1984년부터 지명타자 부문도 따로 선정하고, 1986년부터 외야수의 경우 포지션을 나누지 않고 3명을 뽑는다. 시상식 당일 프로 야구 기자단과 방송 관계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MLB, NPB와는 달리 공격상과 수비상이 구분되어있지 않은 KBO 리그에서는 골든글러브 자체가 베스트 텐의 성격이 강하다. 프로야구 원년에는 수비를 기준으로 뽑았으나 이듬해부터 선정기준이 공격력 위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부터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ADT캡스 수비상이 새로이 추가되면서 수비 BEST 9도 따로 뽑게되는데 이투표는 기자단 투표가 아닌 팬투표로 선정된다. 하지만 2020년 시즌부터는 언론기사로도 수상자가 나오지 않고 있고, 또 공식 홈페이지도 접속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시상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21년부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 주최하는 리얼글러브 어워드[7]에서 수비 지표와 선수단 투표를 통해 수상하는 리얼글러브 상이 개최되고 있다.

역대 가장 많은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선수는 7년 연속 골든글러브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승엽(10회)이며[8], 양의지가 9회[9], 한대화[10] 양준혁, 최정이 8회로 공동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번외 시상으로는 1999년부터 시상하기 시작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소외계층에게 선행을 베푼 선수를 선정하는 사랑의 골든글러브 시상식과, 2001년부터 시상한 경기에 임하는 자세, 관중에 대한 매너, 심판 판정/규칙을 가장 잘 준수한 선수를 선정하는 페어플레이상 시상식이 행해진다.

2. 골든글러브 후보 선수 선정 기준

프로 원년이었던 1982년과 1983년까진 골든글러브가 MLB나 NPB 처럼 공격이 아닌 기록상의 수비율로 시상되었고[11][12] 당시 지금의 골든글러브와 같은 성격의 상으론 베스트 10이 있었다. 1984년부터는 이 두부문이 통합되었으며, 대체로 타격 지표을 기준으로 하여 시상한다. 구체적인 기준은 타고투저나 투고타저 등 각 시즌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었다가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 후보 기준을 대폭 완화하였다. 문제점으로 종종 지적이 되는 경우로 성적만 보고 뽑지는 않고 친기자 성향의 선수이거나 인기가 많은 선수, 우승팀 프리미엄, 혹은 KBO와 전혀 상관없이 국가대항전에 더 활약했다는 이유, 심지어 동정심으로[13] 납득이 안되는 수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거의 매번 투표인단의 자격 문제가 제기된다. 그나마 갈수록 나아지지만 이슈가 되었던 사건으로 2016년도에 약물 복용 후 채 10년도 되지 않은 김재환이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게 되면서 투표인단의 자격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지기도 하였다. 자세한 것은 비판 및 논란 문서 참조.

2.1. 1984년 후보 기준

2.2. 1986년 후보 기준

2.3. 1987년 후보 기준

2.4. 1988년 후보 기준

2.5. 1989년 후보 기준

2.6. 1992년 후보 기준

2.7. 2000년 후보 기준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2.8. 2001년 후보 기준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2.9. 2003년 후보 기준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2.10. 2005년 후보 기준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2.11. 2006년 후보 기준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2.12. 2007년 후보 기준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2.13. 2008년 후보 기준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2.14. 2011년 후보 기준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2.15. 2013년 후보 기준

2.16. 2014년 후보 기준

2.17. 2015년 후보 기준

2.18. 2016년 후보 기준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2.19. 2017년 이후 후보 기준

2017년 이후로는 변화 없이 해당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정하고 있다.[14]

* 투수
: 10승 이상 또는 30세이브 이상 또는 30홀드 이상 또는 규정이닝(144이닝) 이상 충족
※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기준에 관계없이 모두 후보

3. 투표인단

야구 관계인들을 대상으로 투표권이 부여된다. 그 규모는 매년 달라진다.

2003년 이전까지는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처럼 각 팀의 감독과 코치들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소속 팀 이외의 선수에게 투표하도록 했으나, 2006년부터는 일선 기자들의 투표로만 선정하고 있다.

2018년도에는 KBO 리그를 담당한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중계방송사 PD, 아나운서, 해설위원 등 총 385명의 미디어 관계자들이 투표하였다. 출처
2018년의 경우 총 투표인단 인원은 385명, 유효 투표수 349명 출처

4. 역대 수상자

5. 특별상

5.1. 사랑의 골든글러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BO 리그 사랑의 골든글러브 역대 수상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2. 페어플레이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BO 페어플레이상 역대 수상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3. 골든포토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BO 골든포토상 역대 수상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비판 및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BO 골든글러브/비판 및 논란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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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7. 사건 사고

8. 기타



[1] 각 포지션별로 트로피가 다르다. 내야수에게는 내야수 글러브, 포수에게는 포수 미트, 1루수에게는 1루 미트 모양의 실제 글러브 트로피를 준다. 코리아볼 닷컴 사사구 2013년 12월 9일자 방송 중 정수근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저 트로피는 실제 가죽으로 만든 글러브에 금도금을 입히는 것인데 이게 쉽지 않은 기술이라고 한다. [2]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노시환, 김혜성, 구자욱, 홍창기, 오지환, 손아섭, 허구연 KBO 총재, 양의지, 박건우 [3] 외야수는 포지션 구분 없이 3명. [4] 원래는 1981년 12월 11일 프로야구 창립 총회가 열린 것을 기념해 매년 12월 11일에 시상식을 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중계방송 편성과 팬 초청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2013년 KBO 이사회에서 일자를 변경했다. 그런데 2020년에는 어찌 된 일인지 12월 11일로 다시 환원됐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시상식이 축소된 영향으로 보인다. [5] 이 때문에 원년의 포수 골든글러브는 이만수가 수상하지 못했으나, 다음해에 수비율로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고, 이후 지금의 골든글러브 개념으로 바뀌자 5년 연속 골든글러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6] 기록에 남은 건 결국 수비율 바탕으로 시상된 동일 명칭의 골든 글러브이지만 당시에는 골든 글러브보다 베스트 10의 의미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7] 전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8] 놀라운 것은 이승엽은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운 직후 8년 동안 일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에만 쭉 있었다면... 골든 글러브가 최소 3개는 더 있었을거고 700홈런 2000타점은 쉽게 했을 거다. WAR역시 100을 넘겼을 것이고 [9] 포수 부문 8회, 지명타자 부문 1회 [10] 6년 연속 골든글러브 기록자로 연속 수상기록도 이승엽에 이어 2위이다. [11] 투수도 마찬가지로 투구는 보지 않고 내야 수비만 봤다. 그래서 1982년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박철순이 아니라 같은 팀의 황태환이었다. [12] 그나마 1983년에는 수비율과 함께 타격 지표도 골든글러브 시상에 반영하도록 변경되었다. [13] 타 선수가 다른 상을 싹슬이함에 대한 동정심 등. [14] 후보 선정 기준을 사실상 각 구단의 주전 선수들로 확대시켰다. 파격적이지만 팬들의 지지를 얻었는데, 이유는 2015년 국내에 세이버 매트릭스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며, 소위 말하는 기존의 투승타타의 선수 가치 평가의 기준이 달라짐을 리그 차원에서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2010년대 중반 극도의 타고투저의 시기를 거치며 후보자들의 선정 기준이 애매해진 이유도 있다. 또한, 시즌마다 다른 타율 기준을 적용하며, 리그 차원에서 타율은 기준에 못미치지만 뛰어난 활약을 한 유력 후보자를 탈락시켜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기에 리그 차원의 후보자 선정 영향력을 축소시키면서 형평성을 높인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15] 특히 박종훈은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본인의 첫 국가대표 등판이 지연중계로 인해 통째로 전파를 타지 못한 데 이어(이 때도 MBC 중계였다), 본인의 첫 공식 수상마저 전파를 타지 못하는 불운을 겪고 말았다. [16] 사실 이 또한 광고시간을 빼면 1시간도 겨우 채울까 말까 한 시간이다. 종목이나 장르 불문하고 시상식의 행사가 한 시간 안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자. [17] 특히 STAYC는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모든 무대를 무조건 라이브로 해서 흔히 '라이브 강자'로 꼽히는 아이돌이었다. 그런 이들이 라이브를 포기했을 정도로 어지간히 나쁜 게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18] 2019년부터 '올해의 수비'로 명칭 변경 [19] 원래는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한다"다. 더불어 우리 속담은 아니고 해외에서 넘어온 격언이다. [20] 심지어 골든글러브 시상식 당일 오전에 NC와 계약했다. 하루만 늦었어도 삼성 소속으로 골든글러브를 받고 팀을 떠날 수 있었다. [21] 이용규가 못 받아야 된다는 얘기도 많지만, 외야수 부문은 기자들이 세 명을 뽑기 때문에 한 자리 정도는 테이블세터+중견수를 찍어준다. 2008년에 이종욱도 그런 이유로 박재홍을 제낀 것이다.물론 올림픽 역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2] 작가는 3할과 우승 프리미엄을 뽑았다. 물론 김재호의 WAR은 충분히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기자들은 그런 걸 언급하는 대신 우승 프리미엄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떤 기자는 FA의 후광을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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