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드래프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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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0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2. 1차 지명
1999년 10월 13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팀 | 1차 지명자 | 계약금 |
조규수 (북일고, 투수) | 2.8억 원 | |
강민영 (경남고, 투수) | 2.6억 원 | |
문상호 (충암고, 투수) | 2.4억 원 | |
배영수 (경북고, 투수) | 2.5억 원 | |
이상현 (춘천고, 투수) | 2.2억 원 | |
최경환 ( 캘리포니아- 보스턴, 외야수) | 2억 원 | |
김성호 (광주상고, 포수) | 0.8억 원 | |
이승호(군산상고, 투수) | 1.6억 원 |
3. 2차 지명
1999년 11월 2일 서울특별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되었다.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606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1]
3.1.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12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각 팀은 최대 12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9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된 선수들은 지명권이 SK 와이번스로 인계)@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colbgcolor=#f5f5f5,#050505> RD | ||||||||
쌍방울 | 해태 | LG | 현대 | 삼성 | 두산 | 롯데 | 한화 | |
1 |
마일영 (대전고, 투수)[2] |
전하성 (선린정보고, 투수) ※ |
장준관 (대구상고, 투수) |
이동학 (마산고, 투수) |
김주찬 (충암고, 내야수) |
구자민 (경동고, 투수) |
정진수 (공주고, 투수) |
이범호 (대구고, 내야수) |
2 |
엄정욱 (중앙고, 투수) |
강영식 (대구상고, 투수) |
김광수 (인천고, 투수) |
오윤 (북일고, 포수) |
이명호 ( 배명고, 내야수) |
방승재 (충암고, 내야수) |
박기혁 (대구상고, 내야수) |
전난수 (전주고, 투수) ※@ |
3 |
배홍철 (경남상고, 투수) |
김현률 (마산상고, 투수) ※ |
김태완 (경남고, 내야수) |
유한준 (유신고, 내야수) |
박수환 (분당중앙고, 투수) |
성민국 (부산고, 포수) ※ |
서정호 (경남고, 외야수) |
권영근 (덕수정보고, 내야수) |
4 |
김교욱 (청원정보고, 투수) |
이영수 (대구상고, 내야수) |
김진욱 (경남고, 포수) ※ |
한동희 (군산상고, 외야수) |
정승찬 (대구고, 투수) |
장원영 (경남상고-제주관광대, 투수) |
황이갑 (춘천고, 내야수) |
고동진 (대전고, 외야수) |
5 |
손석만 (강릉고, 포수) |
최희영 (경동고, 투수) ※ |
송현우 (인천고, 투수) |
백영운 (한서고, 투수) ※ |
백주한 (마산상고, 투수) ※@ |
정재훈 ( 배명고, 내야수) ※[3] |
박진환 (경남고, 내야수) |
조문기 (중앙고, 포수) |
6 |
맹민호 (선린정보고, 투수) ※@ |
김상현 (군산상고, 내야수) |
박기남 (배재고, 내야수) |
김성태 (장충고, 투수) |
진종길 (부산고, 내야수) |
홍마태 (중앙고, 투수) |
이기선 (부산고, 투수) ※ |
조영민 (광주일고, 투수) |
7 |
이성재 ( 배명고, 내야수) ※ |
전준호 (동산고, 외야수) ※ |
민경수 (충암고, 투수) |
김기식 (동산고, 투수) |
박민석 (경기고, 투수) ※ |
정진용 (한서고-홍익대, 투수) |
강관식 (공주고, 투수) ※ |
허진석 (덕수정보고, 투수) |
8 |
안용휘 (신일고, 내야수) |
서남원 (경동고, 투수) ※ |
허용 (선린정보고, 외야수) |
김지성 ( 경북고, 내야수) |
김종훈 (장충고, 투수) ※ |
홍석균 (경동고, 내야수) |
조정우 (경남고, 투수) ※@ |
김상엽 (부산고, 외야수) ※@ |
9 |
박정권 (전주고, 투수[4]) |
박정현 (서울고, 내야수) ※@ |
박종관 (경동고, 포수) ※ |
김동성 (영흥고, 포수) |
정경주 (휘문고, 내야수) ※@ |
맹진영 (부천고, 투수) ※ |
최승순 (춘천고, 내야수) ※ |
이창훈 (북일고, 내야수) |
10 |
김성범 (강릉고-영남대-상무, 포수) ※ |
주창훈 (광주상고, 내야수) |
손기현 (경주고, 투수) |
신철인 (경동고-제주관광대, 투수) |
이지민 (제물포고, 외야수) ※ |
패스 |
전영삼 (마산상고-동아대-상무, 투수) |
방진호 (동산고-경남대, 내야수) |
11 |
김명완 (전주고, 투수) |
김낙원 (경남고, 내야수) ※ |
심수창 ( 배명고, 외야수)[5] |
장요상 (한서고, 투수) |
박주동 (대구상고, 외야수) ※ |
패스 |
최금주 (부산상고, 내야수) ※@ |
조윤채 (광주일고-동국대, 외야수) |
12 |
김형규 (청주기공, 외야수) |
김원일 (군산상고, 투수) |
이준 (선린상고-건국대, 투수) ※ |
장호철 (인천고, 외야수) ※ |
하기옹 (신정고, 내야수) ※ |
패스 | 패스 |
이상현 (휘문고-중앙대, 외야수) |
4. 드래프트 평가
4.1. 선수별 총평
4.1.1. 쌍방울 레이더스
쌍방울 레이더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이승호 (군산상고 / 투수) |
지명권을 승계한 SK에서 2000년 데뷔 첫해부터 선발 로테이션에서 구르면서 신인왕을 수상하고, 신인왕 수상 이후에서 SK 암흑기 3년 동안 무려 503이닝을 던지면서 성공적으로 로테이션을 돌다가 부상으로 인해 잠시 팀에서 이탈하였다. 복귀 후 불펜으로 전향해 불펜의 핵심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FA를 통해서 롯데로 이적했다. 롯데에선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한 시즌 만에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NC로 이적했으며, NC에서 그리 좋지 않은 활약을 하다가 2016년 SK로 돌아와서 은퇴했다. |
|
(대전고 / 투수) |
재정난으로 인하여 현대와의 지명권 트레이드로 인해 지명되자마자 현대가 마일영의 지명권을 가져갔다. 입단 초창기에는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정작 현대가 우승했던 시즌인 2003, 2004년엔 부진에 빠졌고 이 시기 병풍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복무 후 현대가 해체되었고, 해체된 현대 선수단을 인계받은 히어로즈의 첫 시즌인 2008년엔 너클볼을 앞세워 투수진의 한 축을 지탱했지만 다음 해에 다시 부진에 빠졌다. 결국 2010년 시범 경기 도중 마정길과 트레이드되어 한화로 이적했지만 더 이상 반등하지 못하고 2015년 은퇴했다. |
2차 2RD 1번 |
엄정욱 (중앙고 / 투수) |
와일드씽이라는 별명을 가질정도로 매우 빠른 구속[6]을 가졌으나 엄롤코라는 별명이 생길정도로 중구난방으로 빠지는 제구력이 문제였던 투수로 신인 시절 나름 기대를 보였지만, 부진에 빠지면서 헤매다가 SK 왕조 시절에 불펜으로 활약하며 팬들의 기억에 남았다. |
2차 3RD 1번 |
배홍철 (경남상고 / 투수) |
지명 후, SK 선수단 인계 |
2차 4RD 1번 |
김교욱 (청원정보고 / 투수) |
|
2차 5RD 1번 |
손석만 (강릉고 / 포수) |
|
2차 6RD 1번 |
맹민호 (선린정보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7RD 1번 |
이성재 (배명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8RD 1번 |
안용휘 (신일고 / 내야수) |
|
2차 9RD 1번 |
박정권 (전주고 / 투수) |
동국대 진학 후 2004년 지명권을 승계한 SK에 입단해 16년간 원클럽맨으로 뛰었고, 특히 포스트시즌에 강한 모습으로 SK 왕조에 공헌하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
2차 10RD 1번 |
김성범 (강릉고-영남대-상무 / 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1RD 1번 |
김명완 (전주고 / 투수) |
하위 픽에서 터진 보기드문 경우로, 2004년 이전까지는 그저그런 활약을 하다가 2004년부터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2005년 사이드암 에이스로 각성해 김원형과 원투펀치를 이루며 12승,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커리어하이 시즌과 함께 팀을 준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2006년에도 선발로 활약했으나, 그 해 팔꿈치 부상을 입어 재활과 군복무로 시간을 보내다가 2011년 1군이 복귀했으나 다 이상의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2013년 KIA로 트레이드되었다. |
2차 12RD 1번 |
김형규 (청주기계공고 / 외야수) |
4.1.2. 해태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김성호 (광주상고 / 포수) |
|
2차 1RD 2번 |
전하성 (선린정보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2RD 2번 |
강영식 (대구상고 / 투수) |
공 빠른 왼손잡이 좋아하는 김응용이 총애했고, 김응용이 삼성 감독으로 가자 신동주와의 트레이드로 삼성으로 같이 갔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활약 없이 팀 내 경쟁자였던 권혁에게 밀린 신세였다. 그리고 2006년 시즌 종료 후 신명철을 상대로 롯데로 다시 트레이드되었고, 롯데에서 포텐이 터져 10년 동안 롯데 좌완 불펜의 한 축을 맡다가 2017년 은퇴했다. |
2차 3RD 2번 |
김현률 (마산상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4RD 2번 |
이영수 (대구상고 / 내야수) |
|
2차 5RD 2번 |
최희영 (경동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6RD 2번 |
김상현 (군산상고 / 내야수) |
|
2차 7RD 2번 |
전준호 (동산고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8RD 2번 |
서남원 (경동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9RD 2번 |
박정현 (서울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0RD 2번 |
주창훈 (광주상고 / 내야수) |
|
2차 11RD 2번 |
김낙원 (경남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2RD 2번 |
김원일 (군산상고 / 투수) |
4.1.3. LG 트윈스
LG 트윈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최경환 (성남고-경희대-CAL-BOS / 외야수) |
|
2차 1RD 3번 |
장준관 (대구상고 / 투수) |
|
2차 2RD 3번 |
김광수 (인천고 / 투수) |
|
2차 3RD 3번 |
김태완 (중앙고 / 내야수) |
지명 후, 중앙대 진학, 2004년 입단 |
2차 4RD 3번 |
김진욱 (경남고 / 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5RD 3번 |
송현우 (인천고 / 투수) |
|
2차 6RD 3번 |
박기남 (배재고 / 내야수) |
|
2차 7RD 3번 |
민경수 (충암고 / 투수) |
지명 후, 경성대 진학, 2004년 입단 |
2차 8RD 3번 |
허용 (선린정보고 / 외야수) |
지명 후, 경희대 진학, 2004년 입단 |
2차 9RD 3번 |
박종관 (경동고 / 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0RD 3번 |
손기현 (경주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1RD 3번 |
심수창 (배명고 / 투수) |
지명 후, 한양대 체육학과 진학, 2004년 입단 |
2차 12RD 3번 |
이준 (선린상고-건국대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4.1.4.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이상현 (춘천고 / 투수) |
강원 지역 최초 1차 지명 선수 |
2차 1RD 4번 |
이동학 (마산고 / 투수) |
뛰어난 활약을 보이진 못했으나 다른 경쟁자들의 부진으로 2003년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부상을 겪고, 그 이후로도 고작 2승을 거두는 채 그치며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2010년 넥센에서 방출되었고 이후 한화, LG를 거쳤으나 1군 등판은 하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접었다. |
2차 2RD 4번 |
오윤 (북일고 / 포수) |
입단 이후 외야수로 전향했으나 부진한 모습만 보이며 대타로 활용되다가 구단에 방출을 요구하여 한화로 이적했다. 한화에서도 특별한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
2차 3RD 4번 |
유한준 (유신고 / 내야수) |
동국대 진학 후 입단한 다음 외야수로 전향했다. 상무 전역 이후 히어로즈에서는 팔꿈치 부상으로 부진했던 2012년을 제외하면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kt로 FA 이적, 2021년까지 롱런했다. |
2차 4RD 4번 |
한동희 (군산상고 / 외야수) |
|
2차 5RD 4번 |
백영운 (한서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6RD 4번 |
김성태 (장충고 / 투수) |
|
2차 7RD 4번 |
김기식 (동산고 / 투수) |
|
2차 8RD 4번 |
김지성 (경북고 / 내야수) |
|
2차 9RD 4번 |
김동성 (영흥고 / 포수) |
|
2차 10RD 4번 |
신철인 (경동고-제주관광대 / 투수) |
4년제 정규대학이 아닌 3년제 대학 졸업 후, 입단 첫 해 데뷔 시즌에 좋은 활약을 선보였고 불펜으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으나 팔꿈치 부상 또한 많이 당하며 2010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
2차 11RD 4번 |
장요상 (전주고 / 투수) |
지명 후, 원광대 진학, 2004년 입학 |
2차 12RD 4번 |
장호철 (인천고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4.1.5.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배영수 (경북고 / 투수) |
푸른 피의 에이스. 부상이 있었지만 향후 10여년 간 삼성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2014년까지 선발 투수로 뛴 후, 2015년 한화로 이적 후 2019년 다시 두산으로 이적해 은퇴했다. |
2차 1RD 5번 |
김주찬 (충암고 / 내야수) |
초중고는 충암 출신이며, 5툴 유격수 자원을 기대하고 지명했지만 1년만에 트레이드로 롯데로 이적한 뒤, 잠재력이 터지질 않으며 전형적인 안 터지는 툴가이의 모습을 보였다. 병풍 사건으로 인해 공익근무를 마치고 2007년 복귀한 뒤에는 준수한 리드오프 외야수로 활약했고, 2012년 시즌 종료 후 FA로 KIA로 이적했다. 그리고 프로 입단 당시 기대했던 타격 포텐셜이 KIA 이적 후 폭발해 중장거리 타자로 변했다. 그리고 2017년 팀의 11번째 우승에 기여한 뒤 3년 더 선수생활을 이어나갔고, 2020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
2차 2RD 5번 |
이명호 (배명고 / 내야수) |
|
2차 3RD 5번 |
박수환 (분당중앙고 / 투수) |
|
2차 4RD 5번 |
정승찬 (대구고 / 투수) |
|
2차 5RD 5번 |
백주한 (마산상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6RD 5번 |
진종길 (부산고[7] / 내야수) |
지명 후 동의대 진학, 2004년 입단 |
2차 7RD 5번 |
박민석 (경기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8RD 5번 |
김종훈 (장충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9RD 5번 |
정경주 (휘문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0RD 5번 |
이지민 (제물포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1RD 5번 |
박주동 (대구상고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2RD 5번 |
하기옹 (신정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4.1.6.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문상호 (충암고 / 투수) |
|
2차 1RD 6번 |
구자민 (경동고 / 투수) |
지명 후 , 경희대 진학, 2004년 입단 |
2차 2RD 6번 |
방승재 (충암고 / 내야수) |
|
2차 3RD 6번 |
성민국 (부산고 / 포수) |
지명 후, 중앙대 진학하여 미 입단 4년 후 롯데 신고선수 입단 |
2차 4RD 6번 |
장원영 (경남상고-제주관광대 / 투수) |
|
2차 5RD 6번 |
정재훈 (배명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6RD 6번 |
홍마태 (중앙고 / 투수) |
지명 후, 고려대 진학, 2004년 입단 |
2차 7RD 6번 |
정진용 (한서고-홍익대 / 투수) |
|
2차 8RD 6번 |
홍석균 (경동고 / 내야수) |
|
2차 9RD 6번 |
맹진영 (부천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0RD 6번 | 패스 | |
2차 11RD 6번 | 패스 | |
2차 12RD 6번 | 패스 |
4.1.7.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츠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강민영 (경남고 / 투수) |
|
2차 1RD 7번 |
정진수 (공주고 / 투수) |
|
2차 2RD 7번 |
박기혁 (대구상고 / 내야수) |
|
2차 3RD 7번 |
서정호 (경남고 / 외야수) |
|
2차 4RD 7번 |
황이갑 (춘천고 / 내야수) |
|
2차 5RD 7번 |
박진환 (경남고 / 내야수) |
|
2차 6RD 7번 |
이기선 (부산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7RD 7번 |
강관식 (공주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8RD 7번 |
조정우 (경남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9RD 7번 |
최승순 (춘천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0RD 7번 |
전영삼 (마산상고-동아대-상무 / 투수) |
|
2차 11RD 7번 |
최금주 (부산상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12RD 7번 | 패스 |
4.1.8. 한화 이글스
한화 이글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조규수 (북일고 / 투수) |
정민철의 등번호 55번을 받으며 제2의 정민철을 기대했던 투수였다. |
2차 1RD 8번 |
이범호 (대구고 / 내야수) |
2011년 시즌부터는 KIA로 이적해 통산 최다 만루홈런을 쳤고, 2019년 은퇴 후 2024년부터 KIA의 감독이 되었다. |
2차 2RD 8번 |
전난수 (전주고 / 투수) |
지명 후, 동의대 진학 후 중퇴, 미 입단 |
2차 3RD 8번 |
권영근 (덕수정보고 / 내야수) |
지명 후, 대학 진학. 이후 입단하였으나 2006시즌 후 방출되었다. |
2차 4RD 8번 |
고동진 (대전고 / 외야수) |
지명 후, 성균관대 진학 |
2차 5RD 8번 |
조문기 (중앙고 / 포수) |
전체 40번 지명 후, 고려대 진학. 이후 2004년 입단하였으나 2005시즌 후 방출되었다. |
2차 6RD 8번 |
조영민 (광주일고 / 투수) |
지명 후, 연세대 진학 |
2차 7RD 8번 |
허진석 (덕수정보고 / 투수) |
|
2차 8RD 8번 |
김상엽 (부산고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9RD 8번 |
이창훈 (북일고 / 내야수) |
전체 72번 지명 후, 연세대 진학, 2004년 입단 |
2차 10RD 8번 |
방진호 (동산고-경남대 / 내야수) |
|
2차 11RD 8번 |
조윤채 (광주일고-동국대 / 외야수) |
입단은 내야수였다. 2006시즌 후 방출되었다. |
2차 12RD 8번 |
이상현 (휘문고-중앙대 / 외야수) |
4.2. 팀별 총평
- 고졸우선지명이 폐지되었으며, 지명된 92명의 선수 중 대졸 이상인 선수가 8명에 불과해, 고졸 선수 선호가 높았던 신인지명 중 하나로 꼽힌다.
-
쌍방울 레이더스 →
SK 와이번스: 쌍방울의 지명권이 신생구단
SK 와이번스로 넘어갔기에 이 당시 지명된 선수들 중 실제 프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모두 쌍방울 유니폼이 아닌 SK 유니폼을 입었다. 모기업의 부도로 인한 팀 해체 직전이었음에도 예상 외의 대박픽으로 진정한 승자가 되었다. 1차지명으로 SK 암흑기의 외로운 에이스이자 왕조 시절 불펜의 기둥이었던
이승호를 획득. 이후 라운드에서는 와일드씽
엄정욱, KBO 가을야구의 역사를 바꾼 가을여포
박정권(지명 후
동국대학교 진학)을 픽하며 알짜배기 픽을 완성했다.
현대로 팔아먹은
마일영만 있었으면 화룡점정이었겠으나 지금 와서는 결국
야만없. 한편 11라운드에서 아무 생각 없이 픽해서 계약금 없이 입단시킨 무명의 사이드암 투수 김명완은 2003년 양친의 이혼 후, 어머니의 성을 따르며
개명했고 2005년부터 각성하게 된다.
하지만 호세의 참교육을 거부하며 내리막길을 걷는데...
- 해태 타이거즈: 전체적으로 드래프트도, 모기업도 제대로 망했다. 강영식은 롯데에서나 터졌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자취를 감췄다. 특히 2차 1지명이었던 전하성은 지명을 거부하고 고려대에 진학했다가 중퇴, 병역을 해결한 후 해태 구단을 인수한 기아에 2004년 입단했지만 이미 거듭된 혹사로 망가져 1군에 데뷔조차 못한 채 방출되었고, 결국 전과 34범의 사기범으로 전락하며 인생을 완전히 망치고 만다. 하지만 입단 후 몇 년 안돼 LG로 트레이드되었다 친정으로 돌아왔던 김상현이 트레이드 첫 해부터 리그 MVP&홈런왕을 따내며 12년만의 통합 우승의 일등공신이 된 것이 유일한 수확. 2차 3라운드로 지명된 김현률도 전하성과 마찬가지로 지명을 거부하고 고려대로 진학했다가 부상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고 현재 중학교 체육 교사로 있다. 학교 스포츠클럽 연식 야구부 담당을 하며 야구와의 인연은 이어가고 있는 중.
- LG 트윈스: 얼핏 보면 썩 훌륭하진 않아 보이나, 2000년에 인재가 많이 모자랐기 때문에 저 정도면 중박(...). 특히 서울 쪽 유망주가 궤멸 수준이여서, 29세였던 마이너리거 최경환을 픽하는 초강수를 두었으나 말아먹었고[8], 계약금 올려받을 목적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주장해서 삼성이 거른 경상권 넘버원 투수 유망주였던 대구상고의 장준관을 2차 1라운드에 픽하여 2억 8천을 안겨주며 입단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그 이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9] 2차 2픽 김광수는 병역비리로 구속수감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4년을 날려먹고 복귀, 고작 LG 말기 딱 2년 팀에 도움이 되었다. 정작 만개한 곳은 한화에서 불펜으로 반짝하다가 기아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나마 여성팬 증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심수창을 담합 통수로 얻었고, 소소하게나마 김태완, 박기남(둘다 대학 진학 후 2004년 입단) 두 명의 내야 백업을 얻었다. 한편 경남고 재학 당시 6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세웠던 2차 4라운드픽 포수 김진욱은 한양대학교 진학을 택했는데, 이후 몰락하면서 끝내 입단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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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나름대로 성공픽. 1차픽은 망하고 2차 1라운드픽은
역대 최악의 신인왕이 되었지만, 쏠쏠한 대타 자원
오윤과 십여년 뒤 대활약을 펼친 소리없는 강자
유한준(
동국대학교 진학 후 입단)과 투수
김성태, 그리고 거의 말번에 로또픽으로 현대 왕조의 든든한 필승계투
신철인까지 얻는 행운을 누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그건 밑에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 삼성 라이온즈: 2라운드 픽 유망주들이 남김없이 폭망하며 전체적으로 재미는 못 봤으나, 1차픽에서 대구상고 투수 장준관을 거르고 향후 삼성의 황금기를 책임질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를 뽑으며 역대급 1차지명 흉년의 승리자가 되었다. 한편 1년 후, 감독의 눈 밖에 나 롯데로 트레이드시킨 모 선수는 후에 협상왕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 두산 베어스: 두산 역사상 희대의 망픽. 다른 데엔 타 팀에서 터진 선수들이라도 있었지, 두산엔 그런 선수조차 없었다. 1차지명 문상호는 망했고 가장 오래 뛴 선수가 5년 뛴 2차 2픽 방승재. 현재 문상호는 강남구에서 문상호 야구아카데미를 경영중이다. 그나마 이 해에 픽한 선수 중 가장 이름있는 선수가 투수 전향 후 대학과 상무를 거쳐 6년 뒤 신고선수로 입단한 작은 정재훈인데, 이 정재훈조차 고작 2년 뛰었을 뿐이다. 하지만 충공깽하게도 당시 삼성 1차지명 배영수가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으면서 두산에 우승반지를 선물해줬다(...), 그리고 이 해 라이벌 옆집구단의 1차지명 선수인 최경환(야구)이 2002년부터 두산으로 이적하여 2006년 롯데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그럭저럭 활약 해 주었다
- 롯데 자이언츠: 만만찮은 망픽. 뼈밖에 없는 한때 국대 유격수가 유일한 소득. 1차픽인 강민영은 단 1승도 못 올리고 은퇴하였으며, 7라운드 지명자인 강관식은 성균관대학교 4학년 때 노히트노런을 달성했으나 입단에 실패하며 1년 쉬고 왼손 투수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두산에 입단했으나 단 1경기만 1군에 모습을 보인 채 방출되었다.
- 한화 이글스: 삼성과 비슷하게 재미는 못 봤으나, 주요선수를 얻은 케이스. 정민철의 번호를 물려주면서까지 기대했던 1차 지명자인 조규수는 결국 무너지고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며 쓰라린 기억으로 남았지만, 노쇠한 강석천과 바톤터치하며 한화의 핫코너를 맡아준 국대 3루수와 고동진을 얻었다.
5. 이모저모
- 지명된 선수 고졸선수 84명 중 55명이 대학행을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지명된 팀에 입단한 선수는 그 절반가량인 27명뿐.
- 쌍방울에 1라운드 지명된 마일영은 지명되자마자 현금 3억 원에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인한 궁여지책이었으나 논란이 일었고 결국 2019년까지 19년간 신인지명권 트레이드가 금지되는 계기가 됐다.
- 현대에 7라운드 지명된 사이드암 투수 김기식은 영남대로 진학했다. 고 3이었던 1999년 이미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수투수상을 수상했었던 그는 대학에 간 후 포텐이 폭발하여 2학년이었던 2001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 감투상, 4학년이었던 2003년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과 제일화재 아마추어부문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현대가 뽑아놓고 대학보내서 터진 투수중 한 명이며 똑같은 케이스인 1년 후배 손승락[10], 2년 후배 장원삼, 이현승[11]과 함께 현대팬들이 기대를 많이 하던 선수였으나 대학 졸업을 앞두고 배아종(뇌종양의 일종) 진단을 받으며 수술을 받고 6개월간 투병생활을 했다. 당연히 그의 건강을 미심쩍게 생각한 현대는 입단을 미뤘으나 본인이 야구에 대한 의지를 엄청나게 보여준 결과 2006년에 마침내 현대에 입단하게 되었다. 뇌종양 자체와 투병생활의 여파로[12] 불과 2년만에 은퇴했지만 병마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것은 박수 받을 만하다. 은퇴 후 사회인 야구와 유소년 야구 지도자로 활동했다.
- 삼성과 한화에 1라운드 지명된 김주찬과 이범호는 각각 2011, 2013 시즌을 앞두고 KIA 타이거즈로 FA 이적했고, 만 36세 시즌에 맞이한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KIA의 통산 11번째 우승의 주역이 됨과 동시에 자신들의 프로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반지를 손에 얻었다.
- LG에 11라운드 지명된 심수창은 당시 부상을 빌미로 경기 출장을 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했기 때문에 스카우트들끼리 지명하지 않기로 담합했다. 그러나 지명식 당일 LG가 담합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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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 12라운드 지명된 이준은
이해창의 아들. 이준은 이전 1996 신인지명 때 삼성에 지명된 바가 있었으나 대학 진학을 선택했었다. 이준은 미국 진출을 하겠다며 LG 입단을 거부하고 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무에 입대했고, 제대 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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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2차 2라운드 지명자인
김광수는 후에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의 스타트를 끊게 된다(...).
- 쌍방울의 2차 11라운드 지명자인 전주고의 무명 장신 옆구리 투수 김명완은 2003시즌 이후 양친의 이혼으로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되면서 개명을 하게 되는데, 개명한 이름이 바로 신승현.
- 2000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해태의 지명을 받았던 전하성이 전과 34범이 되었다고 한다. 고교시절 혹사로 선수생활이 끝장난 후 안 좋은 길로 빠진 것으로 보인다. 도덕을 저버린 개인의 잘못이 가장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당시 해결이 미흡했던 아마야구 혹사 문제와 아마선수들의 인성 교육 문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기도 하다. #
- 해태의 2차 3라운드 지명자인 김현률은 고려대로 진학했으나 대학에서 부상으로 부진하면서 입단이 좌절되었고, 이후 LG트윈스의 신고선수로 마무리 훈련까지 따라갔었지만, 포기하고 이후 임용고시에 통과하여 선생님이 되었다. #
- 이 해에 지명받은 선수 중 가장 마지막까지 프로 생활을 한 선수는 현대 2차 3라운드 지명자 유한준이며, 2021년 시즌을 마치고 kt 위즈에서 은퇴했다.
[1]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
[2]
지명권 양도계약으로 인해 쌍방울 지명 이후 바로 현대에게 지명권이 넘어갔다.
[3]
상무 전역 후 신고선수로 입단
[4]
대학 진학 후 내야수로 SK 입단. 다만 지명 당시에도 박정권의 주 포지션이 투수가 아니었음에도 쌍방울에서 투수로 지목했다고 한다.
[5]
대학 진학 후 투수로 LG 입단
[6]
비공식이지만 2군 경기에서 163km찍기도 하였다.
[7]
동래고에서 전학
[8]
98년 드래프트 때 두산에
유재웅의 고졸우선지명권을 양도하는 대신 귀국썰이 돌고 있던 최경환의 우선지명권을 양도받았는데, 그걸 사용하였다.
[9]
삼성이 장준관 대신 뽑은 배영수는 삼성에서 장준관의 약 22배의 이닝을 책임졌으며, 장준관의 약 41배(...)의 승리를 팀에 안겨주었다.
[10]
김기식이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11]
역시나 김기식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12]
운동능력이 확 떨어져 포구를 제대로 못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