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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3:46:00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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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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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111836><colcolor=#fff> 클럽 경력 파일:교토 상가 FC 로고.svg <colcolor=#9E9E9E> 교토 퍼플 상가
2000 · 2001 · 2002
파일:PSV 에인트호번 로고.svg PSV 에인트호번
2002-03 · 2003-04 · 2004-05 · 2013-14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2010-11 · 2011-12
파일: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로고.svg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2-13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2000~2011)
2000 ( AC00) · 2001 · 2002 ( WC02) · 2003 · 2004 ( AC04) · 2005 · 2006 ( WC06) · 2007 · 2008 · 2009 · 2010 ( WC10) · 2011 ( AC11)
평가 플레이 스타일 · 관련 언사 · 양박쌍용
기록 대회 기록 · 개인 수상 · 수훈 · 통산 기록 ( 클럽 · 국가대표 · 개인 기록)
미디어 활동 내역 ( TV · 라디오 · 콘텐츠 · 광고(CF) · 경력 및 홍보대사 · 도서)
기타 별명 · 악성 팬덤 · 논란 및 사건 사고 · 여담 · 응원가
}}}}}}}}} ||
박지성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박지성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김남일
(2008)
박지성
(2008~2011)
박주영
(2011)

'''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주장
'''
조이 바튼
(2011~2012)
박지성
(2012)
클린트 힐
(2013~2014)
}}} ||
박지성의 우승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우승 대회 모음
클럽 경력
파일:FIFA 클럽 월드컵 트로피.jpg
2008
파일:UCL Trophy.png
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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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ㆍ2004-05
파일:PL 트로피.jpg
2006-07 2007-08 2008-09 2010-11
파일:j2리그.png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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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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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
파일:Carabao Cup_Trophy.png
2005-06ㆍ2008-09ㆍ2009-10
파일:요한 크루이프 스할 트로피.svg
2003
파일:The_FA_Community_Shield_Trophy.png
2010ㆍ2011
}}} ||
박지성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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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svg
파일:2011_아시안컵_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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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의 기타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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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E6002D 30%, #E6002D 70%, #B71D27)"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6002D>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sv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순위 선수 및 현 소속 구단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홍명보 은퇴 <colbgcolor=#eeeeef,#191919> 137회 1990.02.04
(vs 노르웨이)
2002.11.20
(vs 브라질)
2 이운재 은퇴 132회 1994.06.11
(vs 온두라스)
2010.08.11
(vs 나이지리아)
3 손흥민 토트넘 홋스퍼 FC 130회 2010.12.30
(vs 시리아)
2024.11.14
(vs 쿠웨이트)
3 차범근 은퇴 130회 1972.05.07
(vs 이라크)
1986.06.10
(vs 이탈리아)
5 이영표 은퇴 127회 1999.06.12
(vs 멕시코)
2011.01.28
(vs 우즈베키스탄)
6 유상철 은퇴 120회 1994.09.11
(vs 우크라이나)
2005.06.03
(vs 우즈베키스탄)
7 김호곤 은퇴 117회 1971.11.14
(vs 베트남)
1979.03.04
(vs 일본)
8 김영권 울산 HD FC 112회 2010.08.11
(vs 나이지리아)
2024.09.05
(vs 팔레스타인)
9 기성용 FC 서울 110회 2008.09.05
(vs 요르단)
2019.01.07
(vs 필리핀)
10 김태영 은퇴 104회 1992.10.21
(vs UAE)
2004.07.19
(vs 요르단)
이동국 은퇴 104회 1998.05.16
(vs 자메이카)
2017.09.05
(vs 우즈베키스탄)
12 조영증 은퇴 102회 1975.03.19
(vs 베트남)
1986.10.05
(vs 사우디아라비아)
황선홍 은퇴 102회 1988.12.06
(vs 일본)
2002.11.20
(vs 브라질)
14 박성화 은퇴 101회 1975.07.29
(vs 말레이시아)
1984.12.10
(vs 카타르)
15 박지성 은퇴 100회 2000.04.05
(vs 라오스)
2011.01.25
(vs 일본)
FIFA 센추리 클럽 명단 기준 (2024.03.14. 기준)
※ FIFA에서 공인한 기록과 대한축구협회에서 집계한 기록은 차이가 있다. 대한축구협회 선수별 A매치 기록실 참고.
}}}}}}}}} ||


파일:한국갤럽 CI_White.svg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승엽 박찬호 안정환 박세리 홍명보
6위 7위 8위 공동 9위
허재 박지성 차범근 이종범 선동열
2009년
※ 2009년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박지성 김연아 이승엽 박태환 박찬호
6위 공동 7위 10위
김태균 이용대 이종범 박세리 안정환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김연아 박지성 류현진 손연재 박태환
공동 6위 공동 8위 10위
손흥민 이승엽 추신수 박찬호 기성용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wiki style="margin: -16px -11px" 1위 2위 3위 4위 공동 5위
손흥민 류현진 김연아 박지성 추신수 이대호 }}}
7위 공동 8위 공동 10위
박찬호 기성용 차범근 이승엽 이동국
2024년
※ 2024년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손흥민 이강인 류현진 김연아 김연경
{{{#!wiki style="margin: -16px -11px" 6위 공동 7위 9위 공동 10위
김민재 박지성 이정후 박세리 김하성 박찬호 }}}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 ||

파일:시사저널 화이트 로고.svg
201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스포츠계 인물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01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rowcolor=white> 2010 2011 2012 2013 2014
박지성 김연아 박지성 류현진
<rowcolor=white> 2015 2016 2017 2018 2019
김연아 손흥민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종교인 / 국제 인물 / NGO 지도자 / 잠재력 있는 정치인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연도별 보기: 1990년대 / 2000년대 / 2010년대 / 2020년대
}}}}}}}}} ||

파일:한국갤럽 CI_White.svg
올해를 빛낸 스포츠 선수 1위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2007년부터 매년 한국갤럽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올해를 빛낸 스포츠선수'를 선정한다. 그중 1위만 기록한다.
{{{#!wiki style="margin: -16px -11px" <rowcolor=#FFFFFF>
2007
2008
2009
2010
김연아 박태환 }}}
<rowcolor=#FFFFFF> 2011
2012
2013
2014
2015
박지성 손연재 류현진 손연재 손흥민
<rowcolor=#FFFFFF> 2016
2017
2018
2019
2020
손연재 손흥민
<rowcolor=#FFFFFF> 2021
2022
2023
2024
2025
손흥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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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34f36><colcolor=#f9d800> 슈팅스타의 단장
쿠팡 (Coupang)
파일:Jisung.jpg
이름 박지성
朴智星 | Park Ji-sung
출생 1981년 3월 30일 ([age(1981-03-30)]세)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1][2]
본관 밀양 박씨(密城 朴氏)
거주지 서울특별시
제주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영국 런던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3], 72kg[4], O형[5]
학력 신안초등학교[6] (전학)
산남초등학교 (전학)
세류초등학교 (졸업)
안용중학교 (졸업)
수원공업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예체능대학[7] (체육학 99 / 학사)
명지대학교 일반대학원 (체육학 / 석사[8])
드몽포트 대학교 대학원 (스포츠경영학 / 석사 과정)
직업 축구 선수 ( 미드필더[9], 공격수[10] / 은퇴)
홍보 대사
축구 행정가
축구 해설가
소속 <colbgcolor=#034f36><colcolor=#f9d800> 선수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2~2014)
PSV 에인트호번 (2013~2014 / 임대)
코치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U-16 (2021)[11]
행정 대한축구협회 (2017~2018 / 유스전략본부장)
전북 현대 모터스 (2021~2022 / 어드바이저)
전북 현대 모터스 (2022~2024 / 테크니컬 디렉터)
전북 현대 모터스 (2024~2024 / 고문)
해설 SBS ( 2018, 2022, 2023 / 해설 위원)
기타 JS파운데이션 (2011~ / 이사장)
박지성축구클럽 (2011~ / 이사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5~2020 / 앰버서더)
슈팅스타 (2024~ / 단장)
국가대표 100경기 13골 ( 대한민국 / 2000~2011)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034f36><colcolor=#f9d800> 가족 할아버지 박동래
할머니 김매심(1936년~2018년 1월 12일)
아버지 박성종(1958년생)
어머니 장명자(1959년~2018년 1월 12일)[12]
배우자 김민지(2014년 7월 27일 결혼 ~ 현재)
장녀 박연우(2015년 11월 19일생)
장남 박선우(2018년 2월 9일생)
본관 밀양 박씨 (密陽 朴氏)
주발 오른발[13]
등번호 대한민국 대표팀 - 21번[14], 14번, 7번
교토 퍼플 상가 - 12번, 7번
PSV 에인트호번 - 21번, 7번, 33번[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3번
퀸즈 파크 레인저스 - 7번[16]
응원가 Pigbag - Papa's Got A Brand New Pigbag[17]
더 더블리너스 - Lord of the Dance[18]
빌리 레이 사이러스[19] - Achy Breaky Heart[20]
종교 불교[21]
병역 예술체육요원[22]
MBTI ISFJ[23]
서명
파일:박지성서명.svg
}}}}}}}}} ||

1. 개요2. 행적 요약3. 축구인 경력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4.3. 수훈4.4. 통산 기록
4.4.1. 클럽4.4.2. 국가대표4.4.3. 개인 기록
5. 은퇴 이후6. 미디어 활동7. 별명8. 악성 팬덤9. 응원가
9.1. Ji Sung Park (위송빠레)9.2.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9.3. Don't Sell My Park
10. 어록11. 박지성에 대한 언사12. 한국 축구계가 박지성을 외면했다?
12.1. 외면했다는 주장12.2. 반박12.3. 직접 밝힌 J리그행 사유
13. 논란 및 사건 사고
13.1. 개고기 응원가 관련13.2. 백승호 이적 관련 오해13.3. 유상철 조문 관련 여론 몰이 피해13.4. 조규성 이적 관련 여론 몰이 피해
14. 여담
14.1. 열애설14.2. 결혼
15. 관련 문서1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행정가, 해설가. 現 전북 현대 모터스 고문.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 공격수.

2000년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로 데뷔한 이후,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2014년 PSV로 돌아와 1년을 뛰고 무릎 부상 여파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국가대표로서는 2002 월드컵, 2006 월드컵, 2010 월드컵에서 활약했고, 2002 월드컵에서는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었다.

은퇴 이후에는 JS파운데이션 이사장, 맨유 앰버서더 등으로 다년간 활동, 축구 행정가로도 경험을 쌓다 2021년부터는 K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의 어드바이저와 테크니컬 디렉터를 거쳐 현재는 고문 역할로 활동 중이다. 동시에 런던의 QPR에서 U-16 코치도 겸하면서 코치 자격증을 따기 위한 연수도 하고 있다. #[24]

2. 행적 요약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관악구 신림동에 정착한 부모와 살았으나 태어난 지 몇 년 안 돼 아버지의 사정으로 부친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 775번지에서 자랐다. 그러다 초등학교[25] 3학년에 수원 산남초등학교로 전학을 가 축구를 시작했으나 # 축구부 해체로 이후 세류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이후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를 거쳐 1999년 명지대학교에 입학했고 명지대 2학년 재학 중이던 2000년 일본의 교토 퍼플 상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입단 후 프로에 데뷔하게 된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후 한동안 주전과 비주전을 오갔지만 히딩크호의 황금 세대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면서 2002 한일 월드컵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 후반 70분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켜 1:0 승리를 견인하는 등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고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준우승팀 프랑스를 상대로 후반 81분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을 패배 직전에서 구하고 프랑스에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고 토고전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원정 첫 승리라는 기록을 새로 썼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본선이 열리기 직전 한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평생 꿈[26]은 "대한민국의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라며 당찬 포부를 천명했고 이후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하면서 대회 32강 조별 리그 본선 첫 경기 그리스전에서 쐐기골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평생 꿈이라고 밝혔던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이루었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만해도 월드컵 역사상 조별 리그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축구 불모지의 변방의 작은 아시아 국가[27]가 월드컵 4강, 원정 첫 승, 원정 16강이라는 상상만 했던, 아니 어쩌면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기적을 내리 써내려 갔고 이러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 불린 이 시기, 그 역사의 중심에는 단연 "영원한 캡틴" 박지성이 있었다. 박지성이 현역 은퇴를 결정한 2014년 여름 기준으로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거둔 5번의 승전에 모두 출장한 선수가 박지성이었다.

3개의 FIFA 월드컵 본선에서 모두 1골씩 득점하여 3연속 골을 기록한 아시아 최초의 선수이며 FIFA 월드컵 Man of the Match 총 4회로써 월드컵 역대 공동 7위이자 아시아 대륙 역대 최다 수상[28]의 기록을 갖고 있고, 대한민국 역대 FIFA 월드컵 본선 최다 승리[29]와 본선 최다 득점[30]기록 등의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로 아시아와 대한민국 축구를 빛낸 전설적인 축구 선수다. 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박지성을 두고 차범근은 "대한민국 축구사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라고 평가했다.[31]2008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대표팀 주장을 역임했으나 A매치 100번째 경기에 출장한 직후 만 29세의 나이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히딩크호 23인 엔트리에선 차두리와 더불어 2002 월드컵 당시까지 K리그에 소속된 적이 없는 단 두 명뿐인 멤버다. 다만 차두리는 10년 넘게 지난 뒤 FC 서울에 입단하여 2골을 넣었다. 따라서 히딩크호 선수 중 유일하게 K리그 출장 경력이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클럽 경력은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한 이후 일본 1, 2부 리그에서 활약했다. 이후 월드컵을 거치며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게 발탁되어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 네덜란드 시절 초기에는 부진과 리그 부적응이 겹쳐 부상 재활보다도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로[32]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곧 리그에 적응하고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구단의 리그 우승과 챔스 4강 달성에 기여한 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끌던 PL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Three Lungs Park(세 개의 폐), 빅게임 플레이어, 두 개의 심장, 아스날 킬러 등으로 불리며 자신의 축구 인생 전성기의 대부분을 맨유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전성기 중 한 시기에 보태며 구단의 수많은 우승에 일조했고 이후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 에인트호번을 거치며 2014년 5월 14일 공식 은퇴를 선언하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33]이자 프리미어 리그 주장을 역임한 최초의 아시아인[34]이며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이자 최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35]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선발 출전[36],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37] FIFA 클럽 월드컵[38] 우승을 한 선수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39] UEFA 올해의 팀 후보[40]로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후보 50인에도 선정된 축구 선수다.

3. 축구인 경력

3.1. 선수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지성/선수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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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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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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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해설 경력

파일:20191214_215358.jpg
2018 러시아 월드컵 시기에 SBS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던 박지성의 모습.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객원 해설 위원으로서 잠깐이나마 해설 데뷔를 했다. 다만 처음이다 보니 그다지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41]

이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SBS의 정식 해설 위원으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해설 데뷔를 하게 된다. 개막전인 러시아와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처음 선보인 해설자 박지성은 초반엔 좋지 않았지만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엔 "목소리가 너무 하이톤이다", "해설에서 기자회견 때에 말하는 것과 똑같이 뭔가 건성건성으로 말하는 간신같은 말투가 답답하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너무 무난하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발성에 대한 지적이 대다수였다. 박지성에 대한 팬심으로 SBS를 틀었으나 목소리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다른 채널로 돌렸다는 말이 꽤 많이 보였다. 박지성 본인도 아직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어떻게 발성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있다.

이후 피드백을 받으면서 다음 경기에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배성재의 도움이 있었는지 처음에 지나치게 너무 떠버린 목소리가 많이 안정되고 단단한 목소리로 변했다. 특히 축구 선수로서 정점의 커리어에 있던 사람인지라 중간중간 풀어놓는 이야기, 파울 시비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는 다른 해설진과 다르게 단호하게 "맞다, 아니다." 짚어주는 모습이 신선했고 다른 두 방송사 해설 위원이 다소 언행이 차분하지 못했던 면과 비교되어 선수들이 부진했어도 '아쉽다', '한국 축구 전체 책임이다' 정도에서 끝내는 정도로 참았다. 2인 해설의 한계상 장지현 같은 정보력 포지션의 비선출 해설자가 붙어서 시너지를 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하는 의견들도 많지만 다른 경기를 해설해야 하는 장지현의 스케줄상 아무래도 어렵다. 결과적으로 첫 해설 치고는 잘했다는 평이다. "어떤"이라는 단어를 중간중간에 너무 많이 쓴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다음에 해설할 때는 모니터에 포스트잇으로 "어떤"을 써놓고 가위표를 쳐놔서 스스로 피드백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서 화제가 됐다.

어록 항목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경기: 멕시코 vs 독일에서 독일의 이뭐병스러운 경기 능력을 보고 나서는 아무 망설임 없이 "비벼볼 만합니다"라는 발언을 해서 사람들이 '제 아무리 박지성이라지만 추위 먹고 실성한 게 아닌가'라는 평가마저 받았는데 결국 대한민국 vs 독일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정말로 싹싹 비벼버리는 사태가 벌어져 버렸고 그 결과 박지성의 통찰력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대한민국의 조별 리그 세 경기가 끝난 뒤 육아 휴가 차원에서 영국 런던의 자택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후에 준결승전부터는 다시 러시아로 와서 중계를 마무리지었으며 2018년 8월에 있을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해설은 안 한다고 밝혔다.

그 이후 SBS에서 축구를 중계할 때에는 장지현이 계속 하다 보니 앞으로도 SBS 축구 해설 위원으로 있을지는 예측 불가다. 또한 박지성이 SBS를 선택했던 이유도 기존에 친분이 있었던 배성재 아나운서의 권유와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현재는 SBS를 떠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중이라 박지성이 굳이 SBS에서 축구 해설 위원을 할 이유도 없어졌다. 그러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배성재 캐스터와 함께할 해설진에 합류하는 것이 배성재의 텐 방송에서 언급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전반적으로 이전 월드컵 대비 목소리가 굉장히 차분해지고 안정적인 발성으로 변화하며 호평이 많아졌다. 4년 전 대회에서도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나 전문성 측면에서는 선수 출신 해설자 가운데서는 이영표 해설 위원을 제외하면 그래도 가장 좋은 평이 많았는데 기존 약점이던 발성까지 고치고 나오면서 이영표가 해설을 하지 않는 현재 선출 해설자 중에서는 종합적으로는 가장 좋은 평가를 듣고 있다.

2023 여자 월드컵에서도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경력 처음으로 여자 축구 해설을 맡았다.

이후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42] 남자 축구에서도 해설 위원으로 활동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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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수훈

4.4. 통산 기록

4.4.1. 클럽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기타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0 교토 퍼플 상가 J리그 디비전 1 13 1 0 1 0 0 2 0 0 - - - - - - 16 1 0
2001 J리그 디비전 2 38 3 0 1 0 0 1 0 0 - - - - - - 40 3 0
2002 J리그 디비전 1 25 7 0 4 1 0 - - - - - - - - - 29 8 0
3시즌 합계 76 11 0 6 1 0 3 0 0 - - - - - - 85 12 0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61] 기타 [62]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02-03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시 8 0 0 - - - - - - - - - - - - 8 0 0
03-04 28 6 2 1 0 0 - - - 10 0 2 1 0 0 40 6 4
04-05 28 7 5 3 2 0 - - - 13 2 2 - - - 44 11 7
3시즌 합계 64 13 7 4 2 0 - - - 23 2 4 1 0 0 92 17 11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63] 기타 [64]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05-0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프리미어 리그 34 1 8 2 0 0 3 1 0 6 0 0 - - - 45 2 8
06-07 14 5 2 5 0 0 - - - 1 0 0 - - - 20 5 2
07-08 12 1 1 2 0 0 - - - 4 0 1 - - - 18 1 2
08-09 25 2 2 3 1 0 1 0 0 9 1 0 2 0 0 40 4 2
09-10 17 3 1 - - - 2 0 0 6 1 0 1 0 0 26 4 1
10-11 15 5 3 1 0 0 2 2 2 9 1 1 1 0 0 28 8 6
11-12 17 2 1 1 1 0 3 0 3 7 0 0 - - - 28 3 4
7시즌 합계 134 19 18 14 2 0 11 3 5 42 3 2 4 0 0 205 27 25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기타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12-13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프리미어 리그 20 0 3 2 0 1 3 0 0 - - - - - - 25 0 4
1시즌 합계 20 0 3 2 0 1 3 0 0 - - - - - - 25 0 4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65] 기타 총합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13-14 PSV 에인트호번
(임대)
에레디비시 23 2 5 - - - - - - 4 0 0 - - - 27 2 5
1시즌 합계 23 2 5 - - - - - - 4 0 0 - - - 27 2 5
통산 317 45 32 26 5 1 17 3 5 69 5 6 5 0 0 434 58 45

4.4.2. 국가대표

소속 대표팀}}} ||
연령
||
경기
||
득점
||
대한민국 U-17 0 0
U-20 2 0
U-23 23 2
A대표 100 13
통산 125 15
일자}}} ||
장소
||
상대
||
결과
||
대회명
||

4.4.3. 개인 기록

5.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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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디어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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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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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악성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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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응원가

9.1. Ji Sung Park (위송빠레)

Ji Sung Park
원곡: Pigbag - Papa's Got A Brand New Pigbag
Dames en heren
Rechtstreeks uit Korea
Aan de rechterkant van het veld
De Koreaanse doelputmachine
Ji! Sung! Park!

Tu, tu, tu, tu Ji Sung Park (반복)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에서 온
오른쪽 미드필더
한국의 골 머신
지! 성! 박!

투, 투, 투, 투 지성박 (반복)
파일:PSV 에인트호번 로고.svg

9.2.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원곡: The Dubliners - Lord of the Dance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You eat dogs in your country
It could be worse
You could be scouse
Eating rats in your council house!
박, 박, 네가 어디에 있든
너희 나라에서는 개를 먹지
네가 스카우저였다면
더 심해질 수도 있어
공영 주택에서 쥐를 먹을 테니까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9.3. Don't Sell My Park

Don't Sell My Park
원곡: Billy Ray Cyrus - Achy Breaky Heart
Don't sell my Park
My Jisung Park
I just don't think he'd understand
But if you sell my Park
My Jisung Park
You're gonna have a riot on your hands
내 박을 팔지 마
내 박지성을
그가 이해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내 박을 판다면
내 박지성을
네 손에서 폭동을 겪게 될 거야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10. 어록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는다.(19살 시기의 인터뷰)
불가능이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축구를 잘했던 사람’, ‘우리나라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이런 걸 다 떠나서 많은 팬들이 내가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믿음을 느꼈다면 “저 선수는 믿음이 가는 선수였어.”하고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저는 그걸로 제가 원했던 행복한 축구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요.
박지성 마이 스토리
오늘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축구 수준, 지금의 축구 현실이 (지금) 여기까지인 걸로 저는 판단을 내리는 거고요.

우리가 더 잘하기 위해서는, 대표팀에 대한, 선수들에 대해서, 선수들의 능력을 더 키우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한국 축구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보이는 것만 바꿔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어두운 것들[95]을 얼마나 털어내고, 그것을 그 벽을 깨부수고 우리가 (과연)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축구인들이 서로가 힘을 합쳐서 희생을 감내해서라도 뭔가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4년마다 매번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대한민국 vs 멕시코 종료 후에 박지성 SBS 축구 해설 위원이자 대한축구협회 유스 전략 본부장이 평가한 한국 축구의 현실
과연 독일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려고 나온 건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네, 이 정도면 우리나라도 비벼 볼 만하겠는데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독일 vs 멕시코 전반전 종료 후에 박지성 SBS 축구 해설 위원이자 대한축구협회 유스 전략 본부장이 평가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후배들에게 진정한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길 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들에게는 저절로 존경심이 생기는 법이다.
2009년 4월 19일 MBC 스페셜에서 #
그러면 맨유를 갔겠지

11. 박지성에 대한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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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국 축구계가 박지성을 외면했다?

12.1. 외면했다는 주장

박지성이 고교 졸업을 하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고 싶어했으나 안받아줬고, 대학교들도 외면해서 겨우 명지대에 갔으며, K리그에서도 외면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대학생 박지성을 영입해 좋은 결과를 낸 J리그보다 안목이 없다며 대차게 까였다. 박지성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지만 탈락했으며 당시 수원의 스카우트이던 정규풍은[96] 당시 박지성의 피지컬이 타 선수들에 비해 약해서 크게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서 영입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박지성의 피지컬이 같은 세대의 한국 선수들에 비해 밀렸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중에 K리그보다 피지컬, 압박, 미친 일정탓에 체력 소모가 더욱 심한 프리미어 리그 + 유럽 대항전에서도 잘 적응 해낸 것을 보면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는게 주요 내용이다.

12.2. 반박

일종의 관례처럼 대학 졸업 후 K리그로 가는 것이 보통인 시절이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유소년과 프로의 격차가 그만큼 커서 그렇다. 지금 대학 리그가 옛날에 월드컵에까지 대학 선수를 내보내던 시절에 비하면 위상이 많이 줄었음에도 현역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보면 대학에서 2년 정도 뛰고 프로 리그로 올라온 경우도 많다. 특급 유망주를 쓸어담아 국대급 스쿼드를 구축 가능한 정도는 확실히 아닐지라도 프로 리그로 가는 최종 관문 정도의 역할은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후 고교계를 평정했던 윤화평이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구단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직행한 적이 있는데 성장도 못하고 기회를 잡지 못해서 기대 이하의 선수 생활을 이어간 것을 보면 보수적으로 구단들이 접근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물론 정말 심하게 쩔어주면 이조차도 프리패스다. 게다가 이때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고종수, 서정원, 데니스, 샤샤, 박건하, 김진우 등이 포진해 슈퍼컵, 대한화재컵, 아디다스컵에 이어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던 K리그 역대 최강급 스쿼드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당시 박지성의 입지로는 발붙일래야 발붙일 수가 없었다. # MBC 스페셜에도 나왔지만 박지성 또한 원래 프로 입단보다 대학 진학을 우선에 뒀고 고려대학교 축구부가 목표였다고 했다.

박지성/선수 경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초등학생부터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그러나, 박지성의 고교 경력은 늦은 신체 성장으로 인해 중학교 때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선수답지 않게 미싱링크 수준으로 기록이 없다. 실제로 신체 발달이 늦어져서 유망주 때 기대받았으나 성인무대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로로 전락한 이승우의 사례를 봐도 웃어넘기기 힘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박지성이 빛을 낸 건 신체조건이 좋아지고서 부터다.
대학 진학을 알아봐야 할 시기에 프로팀 입단테스트를 보느라 대학들이 이미 선수들을 다 선발한 뒤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학 진학을 노리던 선수들과 상황이 달랐던 것. 박지성이 뛰던 수원공고가 우승한 적도 없었고 대학에서 서로 데려갈만큼의 초고교급 선수도 아니었다.[97] 비슷한 예시로 김영권을 들 수 있다. 김영권도 박지성과 비슷한 상황에서 대학교를 진학하기 힘들었는데 당시 전주대 감독이 받아주다시피 해서 결국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바 있다. 거기에 김영권은 현재 국가대표팀의 어엿한 주전 수비수다. 정말 외면받은 것일까?

당시 박지성의 프로 데뷔 연봉이 무려 5천만 엔(한화 5억 원)이다. 올대에서 활약을 보이니 교토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 듯 보이며 당시 J리그에서도 꽤나 높은 연봉이었을 것이다. 2004년 J리그 연봉 통계 자료 김정우가 2012년 전북과 맺었던 15억의 연봉 계약이 리그 역대 최고액이었고 전설적인 외인 공격수로 평가되는 데얀이 FC 서울에게 받았던 연봉도 10억이 약간 되지 않았다. 이들도 리그 최고의 기량에 리그 최고의 부자 구단에서 뛰었으니까 이 정도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K리그에서도 5억이면 시민 구단은 줄 수도 없고 기업 구단이라도 핵심 멤버들이나 받는 금액이다. 당시 신인들한테 줄 수 있는 최고 연봉이 5천만 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돈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올대 이후에는 영입을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박지성이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뽑혔을 때 인맥으로 뽑았냐고 비아냥거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프로 무대는 어림도 없었던 소리다.
항간에 퍼진 잘못 알려진 사실 중 하나가 "박지성은 대한축구협회에서 천대와 무시를 받다가 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공정한 명장 거스 히딩크가 발굴하여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라는 주장인데, 조금만 사실관계를 고려해봐도 터무니없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히딩크는 2002년 박지성을 중용해 4강에 진출하고, 이후에도 본인 소속팀 PSV에 그를 데려가 무려 챔스 4강에 올리는 등 그가 유럽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게 도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이미 히딩크 재임기가 시작하는 2000년 12월 이전부터 국가대표팀에서 중용받았다.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전에서 A매치 데뷔하여 2000년 아시안컵, AFC U-19 챔피언십, 시드니 올림픽 등 무려 3개의 국제대회에 선발되었다. 심지어 저 대회 중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오히려 박지성을 깜짝발탁한 허정무가 뇌물이니 인맥 축구니 욕을 먹었다.[98] 박지성이 허정무에게 발탁된 계기는 명지대 축구부와 국가대표 친선전이었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과 허정무 감독은 명지대 축구부와 같은 곳에서 훈련하며 친선경기를 치렀고, 허정무는 박지성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비난까지 받아가며 이례적으로 발탁했다. 박지성의 발굴 자체는 허정무의 공이 크다. 여담으로 시드니 올림픽때 적극 중용한 유망주로 박지성말고 송종국도 있는데 이쪽은 초등학교때 반짝하고 잊혀져 가던 박지성과 달리 착실히 엘리트 코스 밟은 전국구 유망주라서 아무도 뭐라고 안했다.

극성 FC코리아 등에게 박지성 홀대 논란으로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 허정무 및 협회 관계자들만 환장할 노릇. 눈 씻고 찾아봐도 이 선수를 국가대표팀에서 천대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할 때 워크퍼밋 발급 조건에 걸려서 입단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워크퍼밋 발급 조건이 2년간 열린 국가대표 경기 중 75% 이상을 뛰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때 축협에서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박지성을 못 불렀던 경기도 있어 64%밖에 못 채웠던지라 3명의 보증인이 필요했고 거스 히딩크, 알렉스 퍼거슨, 요한 크루이프가 보증을 서준 덕분에[99] 워크퍼밋을 발급받고 입단하게 되었다. 축협에서는 박지성을 인정하고 대우해주고 있었다. 상술했듯 히딩크 아래에서 만개했음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을 회고하는 과정에 거짓이 들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기존 인사들이 외면한 재능 레퍼토리에 어울리는 선수는 최진철 김남일이다. 최진철은 전북에 입단한 지 얼마되지 않아 바로 상무 입대(94~96)하고 전역 후에는 김도훈의 이적으로 공격수 전향(98~99)한 탓에 커리어가 애매해져서 대표팀에서 중용되지 못하다 히딩크를 만나 대표팀 핵심 수비수로 자리잡았고 김남일은 소속팀 전남 서포터들조차 거칠고 투박하기만한 선수 왜 뽑냐고 항의하는 걸 중용해 대표팀 핵심 미드필더로 키웠다.

12.3. 직접 밝힌 J리그행 사유

2023년 10월 9일 슛포러브에서 게시한 '근본투어' 영상에는 해당 부분에 대해 박지성이 직접 사실을 밝힌 부분이 나와 있다.
6분 16초~

당시 수원 삼성에서 드래프트에서 한 명만 지명하고 잔여 지명은 포기했기 때문에 결국 박지성은 드래프트에서 역시 뽑히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J리그로 향하게 된 것이다.

K리그에서 드래프트가 있을 당시 연봉 상한선은 5000만원이었다. 수원 삼성의 일부 팬들이 주장하는 연봉 때문에 수원에서 뽑지 않았단 이유는 신빙성이 없는 얘기고 그 외의 이유로 뽑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3.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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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개고기 응원가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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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백승호 이적 관련 오해

2021년 전북 현대에서 박지성의 지원 아래 이루어지던 백승호 영입이, 선수 등록기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다름슈타트 측과 국제이적동의서(ITC) 절차까지 밟은 상태로 알려졌다. 박지성이 영입 과정 전체를 주도했다는 증거는 없으나[100]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니 백승호 영입에 대한 책임성 비판이 어느 정도 나오는 중.

하지만 애초에 박지성의 역할은 어드바이저로 전북 구단에 조언하는 역할이며 박지성이 영입 과정에서 한 역할은 백승호와 수원 간의 합의서가 존재하는 것을 몰랐을 시기에 백승호에 대해 조언해 주고 연락한 것이 전부라고 볼 수 있다.

전북 관계자는 당시 인터뷰에서 박지성의 조언, 연락 역할이 전북의 백승호 영입에 큰 역할일 것이라고 인터뷰하였는데 이때는 백승호-수원 간의 합의서 문제가 불거지기 전이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박지성을 띄우면서 전북을 홍보하기 위해서 한 인터뷰에서조차도 박지성이 연락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기사
전북 관계자는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K리그의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하려는 열정을 보이고 있고 동시에 유럽에서 습득한 경험을 공유해주고 있다"고 만족감을 내비쳤다.

박지성 위원은 전북의 영입전에서도 큰 역할을 도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백승호 협상 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는 "박지성 위원이 백승호 측과 직접 연락을 취하는 등 도와주고 있다. 만약 영입이 성사된다면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후에 백승호-수원 간의 합의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논란이 되고 그럼에도 전북 감독과 단장이 백승호 영입을 결정하면서 논란이 되자 축구 팬들은 '저번에 박지성이 영입에 큰 역할이라고 하지 않았냐'면서 마치 어드바이저인 박지성이 후에 문제된 합의서 내용을 인지하고도 백승호 영입을 주도한 것인 양 집중적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후 김상식 감독과 전북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명하는 인터뷰를 하였다. 박지성은 합의서의 내용을 몰랐을 때 조언하고 연락한 것이 전부이며 박지성은 구단의 유소년 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상황이고 선수 영입 결정에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않으며 영입 결정은 전적으로 감독이 한다는 인터뷰 내용이다. 기사 기사
이에 대해 전북 고위 관계자는 "박지성 어드바이저는 백승호가 수원에 입단한다는 합의서가 있는지는 당연히 몰랐다. 그걸 모르는 상태에서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선수단의 고령화에 대해 지적하며 장래성 있는 젊은 선수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백승호 영입을 추천했다"고 했다.

김상식 전북 감독도 스포츠한국과의 통화에서 "솔직히 말하면 영입을 추진 당시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백승호에 대해 박지성 어드바이저에게 물어봤고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조언을 해줬다. 또한 유럽생활을 많이 한 선배다보니 백승호에게 직접 연락해 안부를 묻고 소속팀에서 상황이 어떤지 정도 묻는 ‘축구 선배’ 역할을 한번 해봐줄 수 있냐고 부탁했고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그렇게 해준게 전부"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백승호 영입 전반에 모두 관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것은 아니다"라며 "박지성 어드바이저는 구단 유소년 정책에 많은 관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직접적인 선수 영입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상황 설명을 하기도 했다.
스포츠한국과 1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 감독은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백승호 영입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에 대해 “선수를 영입하는데 있어서 감독이 원하지 않는 선수를 뽑지 않는다. 선수를 영입하는데 감독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냐. 백승호도 제가 관심이 있어서 영입한거지,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영입하시죠’ 해서 영입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백승호에 대해 박지성 어드바이저에게 물어봤고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조언을 해줬다. 또한 유럽 생활을 많이 한 선배다 보니 백승호에게 직접 연락해 안부를 묻고 소속팀에서 상황이 어떤지 정도 묻는 ‘축구 선배’ 역할을 한번 해봐줄 수 있냐고 부탁했고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그렇게 해준 게 전부다."라고 답했다.

요컨대 박지성은 딱 전형적인 유럽파 선배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을 했을 뿐이고 그 시점에서는 수원과 백승호의 계약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것. 전북 구단에서도 계약을 알고 난 뒤 공식적으로 아는바가 없었다고 밝힌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합당한 결론이다. 애초에 박지성이 아무리 한국 축구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크다한들 이제 막 부임한 어드바이저에게 선수 영입의 전권을 맡긴다는 것부터가 비약적인 추측이다. 아무리 박지성이 한국 축구계에서 대단한 업적을 세웠어도 선배인 김상식 감독의 권한을 침해하면서까지 전북 선수단의 훈련을 주도하고 전술을 짜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사건은  백승호 측과 수원 측의 입장이 엇갈리며 정확한 잘잘못과 팩트가 가려지지 않은 채 원만히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따라서 이 사건으로 박지성이 비난을 받은 것은 더더욱 아이러니하며 박지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억울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백승호 수원 삼성과의 합의서 위반 논란 문서를 참고하자.

13.3. 유상철 조문 관련 여론 몰이 피해

2021년 6월 7일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의 장례식에 박지성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당시 에펨코리아 등 일부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 극성 누리꾼들은 SNS를 하지 않는 박지성 대신 아내 김민지 유튜브 채널에 가서 무분별한 비난 댓글을 달기도 했는데 #, 오죽하면 김민지가 이런 분들은 도대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겁니까? 라며 무지성 비난을 멈추어 달라는 글을 쓸 정도였다. #

당시 박지성은 영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런 팩트 확인조차 제대로 안하고 선동에 휩쓸려 그냥 무지성 비난을 한 것. 이런 뉴스들이 나오자 이를 비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비판받기도 했다. # 사실 조금만 따져봐도 박지성에 대한 이러한 비난에는 어떠한 합리성도 없다. 추모란 고인과의 생전의 관계에 따른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일이지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행할 것인가, 애초에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제 3자가 왈가왈부 할 권리는 없다. 더군다나 신문 기사나 SNS 따위로 세상에 공공연하게 알려서 일자일면식도 없는 대중들에게 "나 이렇게 추모를 했습니다"라고 선전하고 다니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을 받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고인의 가족들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조용히 추모의 뜻을 전하는 방법도 있고 그것은 개인의 내면적인 선택일 뿐이다. 박지성이 영국 자택에 머무르고 있고[101], 개인 SNS가 없으며 화환을 보냈는가 여부 등의 물리적으로 티나는 행동이 가능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는 부수적인 문제고 타인이 참견할 사항이 되지 못한다.

그야말로 현대 인터넷 사회의 프로불편러, 방구석 코난같은 성향의 족속들로 대표되는, 함부로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고 비난을 일삼고 그러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불러일으킨 촌극이나 다름없는 사건이다.

게다가 후에 김병지에게 직접 연락이 왔다고 한다.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뜻을 밝혔으며 조만간 한국을 찾을 때 방문 예정이라고 한다.

6월 17일 보도 자료를 통해 악플러들을 고소하고 선처는 없다고 밝혔다. 박지성의 매니지먼트인 에투알클래식에 따르면 박지성을 대신해 박지성 부친이 대신 조문해 조의를 표했으며 박지성 역시 멀리서나마 연락을 취해 유가족과 슬픔을 나누었다고 한다.

또한 존경하는 선배이자 동료 축구인을 잃은 참담함 속에서 박지성의 조의 표현 여부를 알리는 것이 중요치 않다는 박지성의 의견에 따라 매니지먼트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억측으로 유상철 감독에게까지 누를 끼칠까 우려되어 오해가 없도록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뉴스

7월 25일, 유상철 감독의 49재에 조용히 참석했다고 한다.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박지성이 먼저 유가족 측에 참석 의사를 밝혔고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축구계 관계자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가족 측에서 ‘박지성은 왜 조문하러 오지 않느냐’는 비난 분위기 때문에 박지성 어드바이저를 많이 걱정했다. 오히려 박지성 어드바이저에게 부담이 될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49재에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뉴스

13.4. 조규성 이적 관련 여론 몰이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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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성 이적 관련 박지성 여론 몰이 피해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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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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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열애설

14.2.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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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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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35445> 사무국 직원
<rowcolor=#f9d800> 직책 성명 국적 생년월일
대표이사 정유석 (Chung Yoo-su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5년 9월
단장 이도현 (Lee Do-hyu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4년 3월 26일
고문 박지성 (Park Ji-su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년 3월 30일
테크니컬 디렉터 마이클 김 (Michael Kim) 파일:캐나다 국기.svg 1973년 6월 10일
<rowcolor=#035445>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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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두현 (Kim Do-Heo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년 7월 14일
코치 박원재 (Park Won-jae)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년 5월 28일
조성환 (Cho Sung-hwa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년 9월 10일
신용주 (Shin Yong-ju)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년 9월 3일
골키퍼 코치 최은성 (Choi Eun-su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1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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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담당관 지우반 올리베이라 (Gilvan Oliveira) 파일:브라질 국기.svg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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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지는 서울특별시이고 출신지는 고흥군 점안면이다. 학창 시절은 경기도 남부(주로 수원시)에서 보냈다. 본인은 고흥군과 수원시 양쪽을 고향으로 여기며 때문에 고흥군과 수원시 양쪽에 박지성 이름을 딴 체육 시설이 있다. [2] 박지성이 출생할 당시에는 가족이 서울에 거주해서 박지성 아버지가 고흥에 계신 박지성 할머니께 '박지선'이라는 이름으로 고흥군 면사무소에 대신 출생 신고를 부탁드렸는데, 면사무소 직원이 잘못 알아듣고 '박지성'으로 등록해서 이름이 '박지성'이 됐다고 한다. [3] 프리미어 리그 공식 웹 사이트상 프로필 다만 박지성은 2008년에 자신의 실제 신장이 178cm라고 밝힌 바 있고 월드컵 중계 화면에도 178cm로 나왔다. 관련 기사 그 후 차범근과의 동반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신장이 프로필(178cm)보다는 작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4] 선수 시절 기준으로 현재는 약간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운동선수는 대체로 은퇴 후 운동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체중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박지성은 오히려 체중이 감소한 다소 특이한 경우다. 지금까지도 자기 관리를 매우 성실히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 [6] 1996년 3월 1일 점암초등학교 신안분교로 전환, 2019년 8월 31일 폐교. [7] 現 예술체육대학 [8] 석사 학위 논문: 한국 유소년 축구의 발전을 위한 방향제시 : 문헌조사와 사례분석에 기초하여(2012. 2). [9] 박지성의 주 포지션. 좌우를 가리지 않았으며 교토 퍼플 상가 초창기 시절 중앙 미드필더로 뛰다가 월드컵 이후 윙어(LM)로 뛰었고 PSV 에인트호번 시절에는 주로 윙 포워드로 출전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후에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했지만 주로 4-4-2 윙어(LM)로 뛰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종종 4-3-3 포메이션을 사용할 때면 윙 포워드로 출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주로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10] 중앙 공격수, 즉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제외하고 세컨드 스트라이커 윙 포워드 포지션도 수행했다. [11] B급 라이선스 취득을 위해 잠시 활동했다. [12] 2017년 말 영국 런던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회복 중이었으나 2018년 1월 12일 사망했다. 향년 58세. [13] 중요한 골을 넣을 때에는 왼발을 주로 사용했을 만큼 왼발도 준수하게 사용했다. [14] 2002 한일 월드컵부터 2004 아시안컵까지. [15] QPR에서 PSV로 임대 이적했을 때의 번호. 당시 박지성의 나이도 33세였다. [16] 원래 8번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7번으로 변경. [17] # 소위 '위송빠레'로 불리는 PSV 아인트호벤 시절의 응원가. 가사 내용은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에서 온 오른쪽 미드필더 골 머신, 위! 송! 빠레~ 박지성이 에인트호번으로 돌아옴에 따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노래는 미들즈브러의 앤썸이기도 했으며 현재는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의 골 송으로도 쓰인다. 또한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소속 포뮬러 1 드라이버 막스 베르스타펜의 응원가로도 쓰이는데, 이가 인스타 등지에서 밈이 되었는데 이게 한국에도 전파되어 박지성 응원가 베낀게 아니냐는 농담도 있다. [18] # '개고기송'으로 널리 알려진 맨유 시절 응원가.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대략 '한국에선 개고기를 먹지만 그게 뭐 대수냐, 리버풀 임대 주택가에선 고기를 먹는데'라는 내용이다. 못 살기로 유명한 리버풀을 까는 내용이라지만 한국인이 들으면 다소 불쾌할 만도 하다. 참고로 볼튼 원더러스에 입단했던 이청용의 응원가도 개고기송이었다. [19] 마일리 사이러스의 아버지. [20] # 첫 소절 'Don't Sell My Park'로 유명한 맨유 시절 응원가. [21] 대한불교 조계종. 법명을 5개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진출로 인한 병역 특례. [23] 출처: 아내인 김민지 아나운서. [24] 14분 15초부터. [25] 박지성이 다녔던 신안초등학교는 점암초등학교의 분교장으로 강등되었다가 2019년에 폐교되었다. [26] 관련 기사 [27] 출처 [28] 2002년 포르투갈, 2006년 프랑스, 2010년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선정되었으며 혼다 케이스케와 공동 1위 기록이다. 랭킹 [29] 5승. 02 월드컵 8강 스페인전은 승부차기 승리이기 때문에 전적상으로 무승부다. [30] 3골로 안정환, 손흥민과 타이 기록. [31] 출처 [32] 오죽하면 홈 팬들마저 자기가 출장하면 야유를 보낼 정도라 히딩크 감독이 원정 경기에서만 출전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돌아갈까도 수차례 생각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고 다짐하면서 하나하나 다시 쌓아올렸다고 하며 이후 부진을 극복하자 홈 팬들부터 환영했다고 한다. [33] 1호 박지성(2005, 맨유 이적), 2호 이영표(2005, 토트넘 이적), 3호 설기현(2006, 레딩 승격 이적), 4호 이동국(2007, 미들스보로 이적), 5호 김두현(2009, WBA 승격), 6호 조원희(2009, 위건 이적), 7호 이청용(2009, 볼턴 이적), 8호 지동원(2011, 선더랜드 이적), 9호 박주영(2011, 아스날 이적), 10호 기성용(2012, 스완지 이적), 11호 김보경(2013, 카디프 승격), 12호 윤석영 (2013,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13호 손흥민 (2015, 토트넘 이적), 14호 황희찬 (2021, 울버햄튼 이적). 참고로 설기현이 2004년 오프시즌에 안데를레흐트에서 디비전1 울버햄튼 원더러스 FC로 이적하여 잉글랜드 리그에서 먼저 뛰긴 했으나 승격은 레딩으로 이적하면서 하게 된다. [3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관련 기사 [35] 2006-07, 2007-08, 2008-09, 2010-11 [36] 2008-09, 2010-11 [37] 2007-08 [38] 2007-08 [39] 2004-05 시즌 호나우지뉴, 사무엘 에투, 사무엘 에투, 안드리 셰브첸코, 아드리아누와 함께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 5인에 선정되면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하게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자는 호나우지뉴. # # [40] UEFA 올해의 팀 후보 55인에 든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 중 왼쪽 미드필더 부문 5인에 올랐으며 투표 결과는 수상자 파벨 네드베드 (29.10%)와 아르연 로번 (27.94%)에 이은 3위 (22.61%)였다. 베스트 11으로 팀을 나눌 때 3군에 들어간 셈이다. # # 미국 스포츠식 개념으로 치면 UEFA 서드팀에 들어갈 성적이었던 것. [41] 여담으로 이 경기는 현지 중계였다. [42] 코로나19로 인한 1년 연기 개회 [43] 2011-12 시즌을 앞두고 열린 FA 커뮤니티 실드는 박지성의 프로 경력 마지막 우승이다. [44] 표를 얻는데는 실패했는데 당시 발롱도르 최종 후보는 50명이었고 후보자들에게 투표를 하는 유권자는 '유럽 한정' 기자단 52명이었으므로 이 당시 축구 불모지의 아시아인으로서는 한 표 받기 조차 매우 어려웠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발롱도르 투표 시스템과 비교해 보면 더욱 체감이 되는데 현재는 96명의 "전 세계" 각국의 기자단 유권자가 최종 후보 30인에게 투표를 하고 있다. 유권자가 던질 수 있는 표는 두 배가 되었지만 후보의 수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 당연한 얘기이지만 대한민국 기자단도 2005년 당시 발롱도르 최종 후보에 대한 투표권은 없었다. 나카타 히데토시 3회(98, 99, 01), 설기현 1회(02) 이후 세 번째 아시아인 노미네이트. [45] 호나우지뉴, 안드리 셰브첸코, 아드리아누, 사무엘 에투와 함께 후보 5인에 선정되면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하게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자는 호나우지뉴. [46] UEFA 올해의 팀 후보 55인에 든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 중 왼쪽 미드필더 부문 5인에 올랐으며 투표 결과는 수상자 파벨 네드베드 (29.10%)와 아르연 로번 (27.94%)에 이은 3위 (22.61%)였다. 베스트 11으로 팀을 나눌 때 3군에 들어간 셈이다. [47] 온라인 팬 투표 [48] FIFA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나온 약 2400골 가운데 아름답거나 큰 의미가 있는 '원더풀 골'로 8개를 뽑았는데, 박지성의 2002 월드컵 포르투갈전 골이 그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49] 온라인 투표 [50] 팬투표에서는 4위에 머물렀지만 패널들이 선정한 순위와의 합산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51] 팬투표, 옵타 선정 베스트 XI에 모두 포함되었다. [52] AFC는 2011년 아시안컵에서 베스트 11을 선정하지 않았고 대신 기술위원회가 선정한 우수 선수 4인을 대회 공식 리포트를 통해 발표했다. 선정된 4인은 대회 MVP로 선정된 혼다 케이스케를 비롯해 박지성, 해리 큐얼, 세르베르 제파로프. [53] 팬 투표 [54] 1990년까지 시상하던 대한축구협회 최우수 선수상 이후 최초 수상. [55] 02 월드컵 포르투갈전, 10 월드컵 그리스전 [56] 구단 공식 선정 [57] 구단 공식 선정. 국가별로 1명씩, 각 대륙에서 최소 1명의 선수를 골라야 하는 조건 [58] 구단 공식 선정 [59] 구단 공식 선정 [60] 구단 공식 선정 [61] UEFA컵 + UEFA 챔피언스 리그 [62] 요한 크루이프 스할 [63] UEFA 챔피언스 리그 + UEFA 유로파 리그 [64] UEFA 슈퍼컵 + FIFA 클럽 월드컵 + FA 커뮤니티 실드 [65] UEFA 유로파 리그 + UEFA 챔피언스 리그 [66] 최종 후보 50인 [67] FIFA 월드컵 역대 공동 7위이자 아시아 대륙 역대 최다 수상 랭킹 [68] # [69] 2004-05 시즌 호나우지뉴, 사무엘 에투 안드리 셰브첸코, 아드리아누와 함께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 5인에 선정되면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하게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자는 호나우지뉴. # # [70] LM 3위, UEFA 올해의 팀 후보 55인에 든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 중 왼쪽 미드필더 부문 5인에 올랐으며 투표 결과는 수상자 파벨 네드베드 (29.10%)와 아르연 로번 (27.94%)에 이은 3위 (22.61%)였다. 베스트 11으로 팀을 나눌 때 3군에 들어간 셈이다. # # [71] 2008-09 시즌 [72] 2008-09, 2010-11 시즌 [73] 2010-11 시즌 [74] 2007-08 시즌 [75] 54경기 # [76] 2003-04 시즌부터 2011-12 시즌까지 시즌9시즌 [77] 2013-14시즌 PSV 복귀해에 3차 예선을 출전한 시즌을 포함할 경우 아시아 선수 유일 두 자릿수 10시즌 출장 [78] 2008 클럽 월드컵 [79] 이나모토 준이치도 아스날 시절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했지만 단 한경기도 못나오면서 우승 메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80] 4회 [81] 2006-07시즌, 2007-08시즌, 2008-09시즌 [82] 정규 시즌 공식 경기 풀타임 주장. 2011-2012 UEFA 유로파 리그 32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약스와의 경기 [83] 2011-12 UEFA 유로파 리그 32강 2차전 아약스와의 경기 # [84] # [85] # [86] 구 칼링컵 [87] 2005.12.21 # [88] 2002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 [89] 총 4회로 2002년 포르투갈, 2006년 프랑스, 2010년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선정되었으며, FIFA 월드컵 역대 공동 7위이자 아시아 대륙에선 혼다 케이스케와 공동 1위의 기록이다. 랭킹 [90] 21세 3개월 19일 # [91] 5승 [92] 3골로 안정환, 손흥민과 타이 기록 [93] # [94] 2005.05.05 # [95] 박지성은 이미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한국 축구에 있어서 문제인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저 표현은 박지성이 상당히 에둘러서 말한 것이다. 박지성은 대한축구협회의 중요한 직책인 유스 전략 본부장을 맡고 있고 그런 직위를 가진 상태에서 방송으로 섣불리 자기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탓이라고 말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96] 고종수, 고창현 김호의 아이들 중 상당수를 직접 스카우트한 사람이다. [97]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홍명보의 자서전 내용을 통해 납득할 수 있다. 홍명보가 나온 동북고는 당시나 지금이나 축구 명문으로 명성이 있었다. 그런데 기수 차이가 얼마 안나는 한두학년 위의 선배들이 그 명문 동북고를 졸업하고도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고 서술한다. 이를 들어 홍명보는 "대회 성적이 저조했기 때문에 프로팀은 고사하고 불러주는 대학교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수원공고보다도 훨씬 명문에 속하는 동북고마저 대회 성적이 낮으면 대학교조차 진학하기 힘든데, 그보다 더 지명도가 낮고 심지어 대회 성적마저 저조했던 수원공고에서 좋은 대학을 진학하기 쉬웠을 리가 없다. [98] 명지대 김희태 감독과 허정무 감독이 바둑을 두다 뽑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영상 [99] 히딩크와 퍼거슨은 박지성의 전 소속팀과 현 소속팀 감독이라서 당연했다지만 크루이프는 말 그대로 뜬금없었는데 PSV와 AC밀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서 보여준 박지성의 플레이가 마음에 든다면서 보증인 서명을 해 준 것. [100] 위 기사에서도 박지성이 백승호에게 K리그행을 권유한 조언에 대한 것만 실체적인것으로 언급했고 나머지는 추측의 영역이다. 김상식 감독이 박지성 어드바이저에게 어느정도 권한을 주었을 것이고 협상의 마무리를 맡길 것이다 라는 추측이지 이것이 실제로 백승호 영입에서 박지성이 최종적으로 모든 결정을 내린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수 없다. [101] 코로나-19 상황으로 국내 입국이 힘든 상황이며 설령 입국할지라도 2주정도의 자가 격리 기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위르겐 클롭 감독은 고향인 독일에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독일의 봉쇄 조치로 인해 귀국하지 못해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심지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강인조차 자가 격리 면제 받는 대신 이동 제한이 걸려있어 유상철 감독 장례식에 가질 못했다. [102] 야구부가 3학년 때부터 받아줬다면 야구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까운 야구 인재 하나를 날렸다 [103] 손흥민도 토트넘에서 7년 이상 활약 중이기 때문에 역시 한국에서 헌혈이 평생 불가능하다. [104] 이때 박지성이 위닝 박지성을 보고 "아... 박지성 골을 못 넣네...?"라고 말하는 짤이 유명해지기도 했다. [105] 좋은 놈 = 박지성, 나쁜 놈 = 에브라, 이상한 놈 = 테베즈. [106] 아내가 배우인 카토 로사다. [107]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박지성은 엄마, 아빠가 키웠다"라고 말한다. [108] 다른 불자들에게는 몰라도 청년불자들에게는 출가자 만큼이나 은사스님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삶의 방향을 지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09] 출처는 <프리미어를 보러가다> [110]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론 2005년 맨유로 막 이적했을 당시 구단 동료인 에드빈 판데르사르에게 네덜란드어로 인터넷 설치를 도와달라 했다 한다. [111] 호날두의 맨유 1기시절 대표적인 별명이며, 올드 맨유 현지팬들도 자주 로니라고 부른다. 다른 예시로는 웨인 루니의 Wazza. [112] 똥군기를 옹호하는 왕기춘은 결국 여러 사건사고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더니 결국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을 일으켜 구속, 2021년 7월 29일 대법원에 의해 징역 6년이 확정됐다. 개인적으로도 대한유도회에 의해 삭단 징계를 받았다. [113] 한국 축구 대표팀은 그가 주장일 때를 기점으로 후배들을 괴롭히는 군기 문화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러한 마인드는 이후 주장이었던 기성용- 손흥민에게도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기성용은 특유의 성깔 있는 모습을 보였다가 주장이 되고 나서는 최대한 자제하고 팀이 부진할 경우 자신을 먼저 자책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차후에 이강인이나 이동경 등 U-20 출신 젊은 선수들이 부담없이 성인 대표팀에 쉽게 적응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네딘 지단 같은 레전드급 선수를 생각해보면 공감이 갈 것이다. 지단은 조용한 성격이면서도 팀워크가 오합지졸이었던 프랑스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였다. 지단의 은퇴 이후 2010년 프랑스 대표팀은 카리스마를 가진 지네딘 지단이 없어지자마자 그야말로 사분오열되고 최악의 팀워크를 보여주면서 망했다 [114]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에대해 추측성 보도를 내자 그만하라는 반응이 나오는 중. # [115] SBS 박지성, MBC 안정환, KBS 이영표. [116] 그 디펜스도 78이여서 조직력 아이템을 붙여 보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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