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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6:36:04

리오 퍼디난드


리오 퍼디난드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존 테리
(2006~2010)
리오 퍼디난드
(2010~2011)
스티븐 제라드
(2011~2014)

리즈 유나이티드 FC 주장
루카스 라데베
(1998~2001)
리오 퍼디난드
(2001~2002)
도미닉 마테오
(2002~2004)
}}} ||
리오 퍼디난드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리즈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베스트팀
파일:PFA_UK_logo.png
2001-02 · 2004-05 · 2006-07 · 2007-08 · 2008-09 · 2012-13
파일:attachment/FIFPro_logo.png
파일:ESM.png
}}} ||
리오 퍼디난드의 기타 정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1년
지네딘 지단
(7750만 €)
2002년
리오 퍼디난드
(4,600만 €)
2003년
데이비드 베컴
(3750만 €)

파일:EPL_명예의전당.pn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a08d6f> 순서 연도 이름 포지션 구단 비고
<colbgcolor=#fff,#191919> 1 <colbgcolor=#fff,#191919> 2021 <colbgcolor=#fff,#191919> 앨런 시어러
(Alan Shearer)
<colbgcolor=#fff,#191919> 공격수 <colbgcolor=#fff,#191919> 블랙번 로버스
뉴캐슬 유나이티드
<colbgcolor=#fff,#191919> PL 통산 최다 득점(260골)
2 티에리 앙리
(Thierry Henry)
공격수 아스날 PL 역대 최다 득점왕(4회)
3 에릭 칸토나
(Eric Cantona)
공격수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 로이 킨
(Roy Keane)
미드필더 노팅엄 포레스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 프랭크 램파드
(Frank Lampard)
미드필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첼시
맨체스터 시티
PL 미드필더 통산 최다 득점(177골)
6 데니스 베르캄프
(Dennis Bergkamp)
공격수 아스날
7 스티븐 제라드
(Steven Gerrard)
미드필더 리버풀 PL 역대 최다 PFA 올해의 팀 선정(8회)
8 데이비드 베컴
(David Beckham)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9 2022 웨인 루니
(Wayne Rooney)
공격수 에버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0 파트리크 비에라
(Patrick Vieira)
미드필더 아스날
맨체스터 시티
11 세르히오 아구에로
(Sergio Agüero)
공격수 맨체스터 시티 PL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183골), PL 통산 최다 해트트릭(12회), PL 이달의 선수 역대 최다 수상(7회)
12 디디에 드록바
(Didier Drogba)
공격수 첼시
13 뱅상 콩파니
(Vincent Kompany)
수비수 맨체스터 시티 수비수 최초 헌액
14 페테르 슈마이켈
(Peter Schmeichel)
골키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톤 빌라
맨체스터 시티
골키퍼 최초 헌액
15 폴 스콜스
(Paul Scholes)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6 이안 라이트
(Ian Wright)
공격수 아스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7 2023 알렉스 퍼거슨
(Alex Ferguson)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최초 헌액
18 아르센 벵거
(Arsene Wenger)
감독 아스날
19 리오 퍼디난드
(Rio Ferdinand)
수비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 페트르 체흐
(Petr Čech)
골키퍼 첼시
아스날
PL 통산 최다 클린시트(202경기)
21 토니 아담스
(Tony Adams)
수비수 아스날
22 2024 애슐리 콜
(Ashley Cole)
수비수 아스날
첼시
}}}}}}}}}}}}}}} ||

}}} ||
<colbgcolor=#000000> 영국방송공사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파일:리오페르디난드.jpg
이름 리오 퍼디난드
Rio Ferdinand
본명 리오 개빈 퍼디낸드
Rio Gavin Ferdinand
출생 1978년 11월 7일 ([age(1978-11-07)]세)
잉글랜드 런던 서더크 캠벌웰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조건 192cm[1]
직업 축구 선수 (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해설자
경력 <colbgcolor=#000000> 선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92~1995 / 유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95~2000)
AFC 본머스 (1996~1997 / 임대)
리즈 유나이티드 FC (2000~20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2~2014)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4~2015)
방송인 영국방송공사
국가대표 81경기 3골 ( 잉글랜드 / 1997~2011)
가족 동생 안톤 퍼디난드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2.1.2. 리즈 유나이티드 FC2.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1.3.1. 입단 초기2.1.3.2. 2005/06 시즌2.1.3.3. 2006/07 시즌2.1.3.4. 2007/08 시즌2.1.3.5. 2008/09 시즌2.1.3.6. 2009/10 시즌2.1.3.7. 2010/11 시즌2.1.3.8. 2011/12 시즌2.1.3.9. 2012/13 시즌2.1.3.10. 2013/14 시즌
2.1.4.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이후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수훈
6. 퍼디난드에 대한 말, 말, 말7. 사건 사고
7.1. 도핑 테스트 불참7.2. 관중슛7.3. 존 테리 안톤 퍼디난드를 향한 인종차별 논란7.4. 불륜 사건
8. 여담

[clearfix]

1. 개요


리오 퍼디난드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은퇴 후 TNT 스포츠의 패널로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절정의 활약을 보여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세계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이후 단번에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찼고, 2006년 초 영입된 네마냐 비디치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며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PFA 올해의 팀에 6번이나 선정되었고 2008년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는 등 수많은 개인 수상 이력도 보유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런던의 페컴에서 태어난 퍼디난드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였다. 그는 처음에 스트라이커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센터백 포지션으로 옮겨갔다. 1992년, 웨스트햄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같은 시기에 웨스트햄 유스였던 선수들 중에는 프랭크 램파드 조 콜 등이 있다. 당시 퍼디난드의 재능을 발견한 건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이다.[2]

1996년 5월 5일, 퍼디낸드는 셰필드 웬즈데이와 1:1로 비긴 홈경기에서 교체 출전함으로써 성인 클럽에 데뷔하였다. 퍼디난드는 빠른 속도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리그에서 돋보이는 센터백으로 성장했고, 97-98 시즌에는 19세의 나이로 웨스트햄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여담으로 99-00 시즌엔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와의 경기에서 센터백으로 출전했는데, 웨스트햄은 일방적으로 맨유에게 뚜들겨 맞았고 결국 1:7로 대패했다.

2.1.2. 리즈 유나이티드 FC

2001-02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퍼디난드는 그 당시 수비수로서는 최고 몸값이었던 1,800만 파운드에 리즈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진짜 리즈시절이던 리즈의 핵심 일원으로 자리잡았다.[3] 2001년 8월에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주장이 되었다. 그러나 리즈가 과도한 지출로 인해 재정난에 허덕이게 되자,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퍼디난드는 그해 이적 시장 최다 이적료인 2,900만 파운드에 하필이면 숙적인 맨유로 팔리게 되었다.[4]

2.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퍼디난드가 잉글랜드의 당대 월클 수비수로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잘 해왔고 많은 우승을 준 것은 사실이나 이 거래는 비싸게 주고 데리고 왔다는 의견도 많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의 "잉글랜드 프리미엄"(자국 선수의 몸값 뻥튀기)이 적용됐을 것이다. 명성과 현금박치기가 상대적으로 딸리는 당시의 맨유는 네스타 영입은 꿈도 꿀 수 없었다.[5]

다만 맨유와 리즈가 리버풀 못지 않은 앙숙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라이벌팀의 핵심 선수를 빼내오는 것이기에 좀 더 많은 이적료를 지불해야 했던 점도 있다. 실제로 아스날에서 로빈 반 페르시를 영입할 때도 벵거는 맨유가 상대라면 원래 책정해놓았던 20M 파운드보다 더 받아야겠다고 버텨서 옵션포함 24M 파운드의 금액으로 팔았다. 1M 달러로 리즈에서 맨유로 이동한 에릭 칸토나의 경우도 있지만 칸토나는 실력과 별개로 그 성깔 때문에 리즈측에서 감당하기 힘들어하던 찰나에 맨유가 지른 거라 적은 이적료로 거래가 성사된 것.
2.1.3.1. 입단 초기
나중에 수비진 파트너가 될 네마냐 비디치처럼, 맨유 시절 초반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호나우두가 맨유를 관광 보냈을 때 중앙수비수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해보자. 그래도 이적한 첫 시즌에 팀이 리그 우승과 2002-03 시즌 프리미어 리그 최소 실점에 크게 기여했다.

2003년 후반기, 퍼디난드는 의무적 약물 검사에 불참하여 징계를 받게 되었다. 퍼디난드는 이사하느라 까먹었다고 말했고,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퍼디난드에게 8개월 출장 정지를 받게 됐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건 사고 문단 참조. 덕분에 맨유는 단단했던 수비가 흔들리며 후반기 리그 3위로 추락했으며, 유로 2004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퍼디난드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6]
2.1.3.2. 2005/06 시즌
퍼디난드는 05-06 시즌부터 더욱 안정감을 찾아갔고, 출전 수도 자연스럽게 더욱 많아지고 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나이도 전성기일 나이인지라 더욱 팀의 중요한 선수가 되고 있다. 하지만 팀은 챔스 조별리그 4등으로 광탈하고 리그또한 첼시에 밀려 2위에 머물고 있으며 FA컵또한 탈락하고 만다. 그래도 시즌 후반기에 자신의 영원한 파트너인 네마냐 비디치가 영입되며 둘이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늘었다. 파트리스 에브라도 영입되어 에인세와 경쟁에 들어갔다. 또한 시즌 시작전에는 에드윈 반 데 사르, 박지성등이 영입되기도 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팀이 전성기를 달릴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팀은 끝내 리그 우승 판도를 뒤집지 못 해 준우승에 그치고 아쉽게 리그컵 우승에 그쳤다.

2005/06 시즌: 52경기 3골 2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7 37 0 3 0
챔피언스 리그 6 6 0 0 0
FA컵 2 1 1 0 1
EFL컵 5 4 1 0 1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0 0
합계 52 50 2 3 2
2.1.3.3. 2006/07 시즌
06-07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네마냐 비디치가 실베스트르를 밀어내고 프리미어리그에 적응을 하면서, "' 퍼디치"' 조합과 뒤에 받쳐주는 경험 많고 거대한 골키퍼 에드윈 반 데 사르는 수많은 팀들의 공격진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팀이 수비적으로 안정되고 높이도 높아졌다. 또한 이 시즌부터 반니가 없었지만 호날두가 포텐이 터지고 마이클 캐릭이 영입되는 등 많은 보강이 이루어져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하고 있다. 리그에서 첼시,리버풀,아스날과 경쟁 중이며 간만의 우승이 보이고 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1차전에는 2:1로 패했으나 2차전에서 무려 팀이 7골을 뽑아내며 7:1로 승리하여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 1차전 3:2 승리했으나 2차전에서 3:0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래도 그의 활약과 많은 선수들에 힘입어 정말 간만의 리그우승을 거두었고 FA컵도 우승은 실패했으나 결승에 진출했었다. 퍼디난드는 본인의 전성기가 팀의 전성기와 겹쳤다.

2006/07 시즌: 49경기 1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3 33 0 1 0
챔피언스 리그 9 8 1 0 0
FA컵 7 7 0 0 1
합계 49 48 1 1 1
2.1.3.4. 2007/08 시즌
네빌의 장기부상으로 주장 완장을 다는 날이 많아졌고 그의 활약또한 여전히 일취월장하다. 팀은 역대급 페이스를 달리고 있고 본인또한 정말 많이 출전하고 있다. 비디치 또한 지난 시즌보다도 더욱 좋은 경기력을 펼치며 철벽의 센터백 듀오를 유지 중이다. 테베스와 호날두 그리고 루니가 주전 공격수로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는 미드필더진, 그리고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브라운의 포백에 반 데 사르가 수문장으로 활약하니 당연히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시즌 중반 리버풀과의 리그 경기에서는 비디치와 함께 철벽같은 경기력으로 무실점에 큰 기여를 했고 3:0 대승했다.

챔피언스리그는 8강에서 또 다시 로마를 상대로 쉽게 이기며 4강에 진출하여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차전 0:0 무승부, 2차전은 스콜스의 골로 바르샤를 꺾으며 1999년 이후 첫 결승전에 진출했다. 사실 퍼디치의 이날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엄청났고 어쨌든 퍼디난드 개인 첫 챔스 결승. 리그 최종경기까지 가는 끝에 리그 우승이 확정되는데 최종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첼시를 따돌리며 2시즌 연속 우승을 거둔다.

첼시 FC를 꺾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맨유의 주장을 맡은 건 퍼디난드였고 2008년 월드 베스트11에 들기도 했다. 팀은 리그,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다.[7]

2007/08 시즌: 51경기 3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5 35 0 2 1
챔피언스 리그 11 11 0 1 0
FA컵 4 4 0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51 51 0 3 1
2.1.3.5. 2008/09 시즌
08-09 시즌 또한 비디치와 함께 주전으로 활약하게 되는데 잔부상으로 결장 수가 조금 늘었으나 중요 경기에는 빠지지 않고 출전 중이다. 비디치의 뚝배기 또한 강력해졌다. FIFA 클럽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나왔으며 결승에서 5:3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펼쳐진 첼시와의 경기에서 비디치, 루니, 베르바토프의 골로 3:0 승리했다.

이후 리그컵을 우승하며 트로피를 한 번 더 들어올렸고 리그에서 리버풀이 끝까지 쫓아오며 맨유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어린 선수들의 활약으로 극장골 등 꾸역승을 거두며 선두자리를 계속해서 지킨다.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는 아스날을 만나 홈에서 승리를 거두고 2차전에서도 박지성의 선제골과 호날두의 멋진 2골로 3:1승리하며 2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리그도 끝내 우승을 거두며 3연속 리그 우승을 성공했다. 특히 비디치와 함께 공중볼 싸움에서 정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로마에서 펼쳐진 챔스 결승에 선발 출전했으나 팀은 에투의 골과 메시헤딩골로 바르셀로나에 2:0으로 패배해 준우승에 그쳤다.

2008/09 시즌: 43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4 24 0 0 0
챔피언스 리그 11 11 0 0 0
FA컵 3 3 0 0 0
EFL컵 1 1 0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클럽 월드컵 2 2 0 0 0
슈퍼컵 1 1 0 0 0
합계 43 43 0 0 0
2.1.3.6. 2009/10 시즌
09-10 시즌부터 잔부상(특히 등부상)으로 인해 퍼디난드는 자주 결장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간간히 맡던 주장직도 내놓고 말았다. 원래 주장은 게리 네빌, 부주장은 라이언 긱스지만, 이 둘이 부상과 나이 때문에 꾸준히 출장을 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퍼디난드가 주장 완장을 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맨유에서 정식으로 주장으로 임명된 적은 없고, 네빌 이후 정식으로 맨유의 주장이 된 것도 파트너인 네마냐 비디치였는데 이는 과거 첼시 이적 문제로 시끄러웠던 때에 퍼거슨의 신임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이 때부터 가끔씩 정신 놓은 플레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특히 리그 경기 중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진 맨체스터 더비에서의 패스미스로 인해 엄청난 욕을 먹었다.[8] 출전 수가 리그에서 20경기가 채 안될만큼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잦았으며 퍼디난드가 없는 맨유 수비진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 시즌에 팀은 리그컵을 우승하나 챔스 8강, 리그 2위에 그친다.

2009/10 시즌: 21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3 12 1 0 0
챔피언스 리그 6 6 0 0 0
EFL컵 1 1 0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21 20 1 0 0
2.1.3.7. 2010/11 시즌
2010년 여름에 당한 무릎 부상 때문에 10-11 시즌 초반에 나오지 못했다. 확실히 퍼디난드가 다시 출전하기 시작한 후로는 수비진이 안정된 모습이 보인다.

시즌 중후반기에는 다시 퍼디난드가 중용되면서 비디치의 부담도 줄어들었고 다시 탄탄해진 수비를 유지중이다. 리그는 경쟁팀들의 부진으로 승점 단 80점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챔스에서도 라울 곤잘레스가 있는 샬케 04를 만나 4강 1차전 2:0, 2차전 4:1로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챔스 결승에 진출했고 바르셀로나와 다시 한 번 붙게 되었으나 3:1로 패배하여 리그 우승에 만족해야했다. 이제 퍼디난드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앞으로 고질적으로 겪게 될 등 부상을 어떻게 최소화시켜 나갈지가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2010/11 시즌: 29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9 19 0 0 0
챔피언스 리그 7 7 0 0 0
FA컵 2 2 0 0 0
EFL컵 1 1 0 0 0
합계 29 29 0 0 0
2.1.3.8. 2011/12 시즌
11/12시즌 시작 전 커뮤니티 실드에서 3대1로 승리하며 기분좋게 시작하나 리그 개막전부터 파트너인 비디치가 큰 부상을 당하며 나가리되었다. 결국 새로 온 필 존스가 중용되며 같이 활약하였다.

그러나 06/07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봤을 때 가장 팀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아스날을 상대로 8대2로 승리하기도 하였으나 맨시티 를 상대로 6대1로 패하기도 하는 등 약간 행보가 퐁당퐁당의 면모를 보이며 전반적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챔스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여 유로파리그로 내려간데다 거기서마저 16강에서 탈락하는 등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FA컵은 32강에서 리버풀을 만나 박지성이 득점을 기록했지만 1:2로 패하여 탈락, 리그컵 또한 탈락하며 리그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리그도 맨시티의 가세로 우승을 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주전의 노쇠화와 새로 입단한 선수들의 부진이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특히 수비진의 문제가 심각했는데 비디치가 리그에서만 10경기를 소화하지 못 했고 오른쪽 풀백도 확고한 주전 선수가 없었다.

리그에서 5경기가 남았을 때 맨시티를 8점차까지 따돌리며 우승에 가까워지는 듯 했으나 이후 4경기에서 1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다시 2등으로 추락하였고 최종전에서 골득실 차이로 결국 준우승을 하고 만다. 하지만 퍼디난드 본인은 리그에서 30경기에 출전하는 등 부상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며 다시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1/12 시즌: 38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0 29 1 0 0
챔피언스 리그 4 4 0 0 0
유로파 리그 2 2 0 0 0
FA컵 1 1 0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38 37 1 0 0
2.1.3.9. 2012/13 시즌
퍼거슨의 마지막 시즌이며 본인도 나이가 이제 많은지라 점차 맨유에서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주전으로 나와 활약 중이며 비디치도 부상에서 회복해 다시 주전으로 나오고 있다. 로빈 반 페르시가 영입되는 등 여러 영입이 이루어졌고 특유의 꾸역승으로 리그 선두 유지 중이다. 챔스는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합산점수 2:3으로 탈락한다. 호날두와의 간만의 만남이었다.
파일:img_20130513082716_0db7a58f.gif
이후 리그에만 집중하게 되자 팀은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고 퍼거슨의 마지막 올드 트래포드 경기에서는 1:1 상황에서 세트피스 골을 기록하며 2:1 승을 이끌었다. 시즌 최종성적은 리그 28경기 1골로 12-13시즌 EPL 베스트 11에 뽑혔다.

2012/13 시즌: 34경기 1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8 26 2 1 1
챔피언스 리그 4 3 1 0 0
FA컵 2 2 0 0 0
합계 34 31 3 1 1
2.1.3.10. 2013/14 시즌
그러나 13/14 시즌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다시 부상으로 시름시름 앓고 경기에 출전하는 횟수가 적어져 점차 주전에서 밀리는 중이다. 팀은 역대급 망 페이스다.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 중 파트리스 에브라만 꾸준히 나오고 있다. 또한 퍼디난드의 경기력도 급격히 떨어지면서 나올 때마다 불안불안하다. 결국 맨유는 퍼디난드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음을 내비쳤고, 2014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이 만료되었다. 7월 4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와 협상이 완료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 월드컵 중계차 브라질에 가 있는 퍼디난드가 복귀하면 바로 입단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2013/14 시즌: 23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4 12 2 0 0
챔피언스 리그 7 7 0 0 0
FA컵 1 1 0 0 0
EFL컵 1 1 0 0 0
합계 23 21 2 0 0

2.1.4.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4년 7월 18월 자유 계약으로 입단했다. 계약 기간은 1년. 수비가 좋지 않은 QPR에서 노련한 수비 지휘로 팀의 중심축을 잡아 주길 기대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영국 언론으로부터 최악의 영입 3위에 선정되어 불명예를 안았다. 노쇠화로 기량이 저하되고 있던 시기였지만, 부인이었던 레베카가 유방암에 걸렸었고, 당시 부부 사이가 극진했던 퍼디난드가 멘탈적으로 크게 흔들렸었다. 결국 투병생활을 하던 레베카와 2015년 5월 사별하게 됐다.

그리고 결국 2015년 5월 30일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4/15 시즌: 12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1 11 0 0 0
FA컵 1 1 0 0 0
합계 12 12 0 0 0

2.2. 국가대표 경력

19세 하고도 8일째, 퍼디낸드는 1997년 11월 15일 카메룬과의 친선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면서 첫 번째 국대 출전기록을 세웠다. 당시 잉글랜드 국대에서 가장 어린 수비수가 되었는데 이 기록은 2006년 마이카 리차즈에 의해 깨어졌다. 20세때 그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에 백업 수비수로 뽑혔지만, 본선에서는 벤치만 지켰다.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참가했다. 국내 방송사에선 "페르디난드"로 표기.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도 얼굴을 비췄으며, 두 대회를 통틀어서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 잉글랜드의 2연속 8강에 공헌했다. 퍼디낸드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10번의 월드컵 경기를 치렀는데, 잉글랜드 대표팀은 그 중 7번의 클린시트를 기록했으며 그가 피치 위에 있는 동안 겨우 4골만을 허용했다.[9] 2008년 3월 25일에는 퍼디낸드가 2008년 5월 26일에 있을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잉글랜드의 주장으로 뽑히기도 했다.
퍼디낸드는 잉글랜드 대표팀으로서 도합 3골을 넣었는데, 첫 번째 골은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넣은 것으로, 경기 시작 5분만에 골이 뙇 들어가 덴마크의 참패에 일조했다. 두 번째 골은 UEFA 유로 2008 예선 중 웸블리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한 2007년 9월 12일에 나왔다. 세 번째 골은 2008년 10월 12일 카자흐스탄과의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이다.

2008년 3월 25일,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새로히 부임한 두 번째 국대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찰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FA의 발표에 따르면 리오가 주장으로 호명된 것은 월드컵에서 정식 주장을 결정하기까지 돌려가며 주장을 시켜보겠다는 카펠로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잉글랜드 주장은 존 테리로 결정되었고, 퍼디낸드는 부주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존 테리가 사생활 문제로 인해 주장직을 박탈당한 후 국가대표팀의 주장은 퍼디낸드로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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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문제만 아니면 우승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본인이 부상 트러블을 일으킨 잉글랜드의 캡틴(...)

2010년 여름에 무릎 부상을 당해, 잉글랜드의 주장으로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불참했다.

이후 2011년, 동생의 인종차별 논란 사건으로 인해 존 테리와는 사이가 멀어지면서 이를 고려한 로이 호지슨 감독은 UEFA 유로 2012 최종 명단에 퍼디난드를 탈락시켰다. 당시 맨유에서도 잔부상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괜찮은 폼을 보여주었는데, 이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10]

2013년 3월, 한동안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던 퍼디난드를 호지슨 감독이 다시 발탁한다는 소식이 나왔으나 A매치 주간에 퍼디난드의 개인 일정으로 인해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잉글랜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유연함과 좋은 피지컬과 발재간으로 발로 공을 다루는 데에 능한, "부드러운" 수비를 하는 만능 센터백.[11] 퍼디난드의 장점은 속도, 힘, 피지컬, 테크닉, 위치선정, 볼 컨트롤 능력 전부를 갖춘 컴플리트 디펜더라는 점에 있다. 피지컬과 운동능력도 뛰어나지만, 퍼디난드를 대표하는 요소들은 부드러움, 유연함, 위치선정, 공을 다루는 능력, 중원과의 연계력 등이다. 즉, 만능 센터백이긴 하지만 볼-플레잉 디펜더에 더 가까운 셈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위치선정 능력도 좋고, 보는 대로 상당한 장신이니만큼 고공 플레이에 능하긴 하지만 코너킥 상황에서의 득점력은 떨어진다.[12] 당장 축구팬들이 생각나는 헤딩골도 최근이 아닌 2002 한일 월드컵에서 16강 vs 덴마크 전에서 넣은 선제골이다. 앞서 언급한 코너킥 상황과 같은 세트피스 기회에서는 헤더 득점보다도 발재간으로 넣은 골이 더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06-07시즌 리그 9 라운드 리버풀전에서 성공시킨 골은 환상과 침착함 그 자체. 또, 과거 EPL 경기에서 후반전 후반 공격수 자원 부족으로 선수교체 이후 포메이션이 꼬이자 아주 잠깐 공격수 룰을 맡기도 했다.

전성기 때는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훌륭한 공간 커버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뒷공간 침투를 주무기로 삼는 공격수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06-07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 AC 밀란을 상대로는 퍼디난드가 결장하면서 스피드를 주 무기로 삼는 카카에게 탈탈 털려서 세 골을 넣고도 다섯 골을 내줘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07-08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FC 바르셀로나전에서는 똑같이 스피드를 주무기로 삼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사무엘 에투를 퍼디난드가 나와서 꽁꽁 묶었고, 결승에 진출하는데는 한 골이면 충분했다. 퍼거슨이 2009년 3월 기준 인터뷰에서 자기가 지도해 본 선수들 중 가장 빠른 선수들 중 한명으로 꼽기도 했다. [13]

다만, 정신줄을 간간히 놓는 게 문제였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05-06 시즌 포츠머스 FC 원정 경기를 들 수 있다. 당시 퍼디난드는 맨유에 이적하고 첫 시즌을 맞은 골키퍼 에드윈 반 데 사르와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는데, 이 경기에서도 골키퍼에게 패스하기 위해 시도한 백패스가 자책골로 이어져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09-10 시즌 맨체스터 더비에서도 괜히 로빙 패스를 하려다 벨라미한테 공을 뺏겨 90분대에 동점골을 허용하는 경악스러운 장면을 보여준 바 있다. 키노게이트 사건 당시 로이 킨에게 비판받기도 했다.[14]

그리고 굉장히 롱런한 선수 중 한 명이다. 이미 1990년대 후반기부터 EPL 내에서는 정상급 활약을 펼쳤고, 그 활약을 바탕으로 2000년 리즈와 200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때 세계 수비수 이적료 신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그 뒤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11, 넉넉히 잡으면 12/13 시즌까지는 유럽 정상급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거의 15년동안 단 한 시즌도 빠지지 않고 기량면에서 정상급 선수였고, 활약면에서는 약물파동으로 빠진 단 한시즌을 제외하고 언제나 팀의 수비라인에서 핵심이자 리더로서 활약했다.

4. 은퇴 이후

선수 은퇴 이후에는 BBC와 BT 스포츠에서 해설 및 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폴 스콜스와 함께 맨유 경기 분석가/전문가로 같이 초빙 되는 경우가 많다.

파일:Boxer Rio.jpg
2017년 09월 19일, 인터뷰에서 프로복서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아내 잃은 슬픔을 복싱을 통해 달랬다고 한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수훈

6. 퍼디난드에 대한 말, 말, 말

리오같은 선수는 어떤 공격의 압박에도 어떻게 대처할지 아는 수비수들입니다. 그는 환상적인 수비수죠
알렉스 퍼거슨
날 가장 힘들게 했던 수비수? 네마냐 비디치, 리오 퍼디난드 그리고 푸욜 피케.
디디에 드록바
처음에는 프랑스 지네딘 지단, 브라질 호나우지뉴를 좋아했다. 하지만 수비수로 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리오 퍼디난드를 사랑하게 됐다. 퍼디난드는 완벽한 수비수였고, 남다른 존재감을 지닌 선수였다.
슈코드란 무스타피
퍼디난드는 훌륭한 리더고 훌륭한 수비수다. 나는 그를 많이 좋아한다. 나는 전에 그와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는 매우 빠르고 매우 강했다.
다비드 비야
나는 비록 유나이티드에서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세계 최고의 센터백인 리오와 비디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과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제라르 피케
나는 더 어릴 때는 로이 킨의 팬이었고, 더 커서는 비디치와 리오 퍼디난드의 팬이 되었습니다.
에릭 다이어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전 최고의 수비수는 아마 바비 무어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본 수비수 중 최고는 앨런 한센이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의 시대에서는 리오 퍼디난드가 최고다. 그는 우아함을 가지면서 강한 수비력을 보여주는 선수에 가장 근접했다.
롭 드레이퍼
그처럼 플레이하는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며 그와 같이 플레이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에릭 바이
날렵하고, 공중에서 강하며, 경기를 읽을 줄 아는 선수다. 누군가 그를 자극하고 싶어해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앨런 시어러

7. 사건 사고

7.1. 도핑 테스트 불참

2003년 9월 23일, 영국의 도핑을 담당하는 UK SPORTS 소속의 반도핑 연구소(Anti-Doping Agency)에서 맨유 캐링턴 연습구장을 불시에 방문해 구단측에 리오 퍼디난드와 니키 버트 등 일부 선수들의 도핑 테스트 참가와 샘플을 요구했다. 훈련 중에 이 이야기를 접한 리오 퍼디난드는 훈련 종료 후 샤워실로 갔고 샤워를 마친 후 도핑 테스트를 받으러 가지 않고 그대로 맨체스터 시내로 나가버렸다. 한편 시간이 지나도록 리오 퍼디난드가 도핑을 받으러 오지 않자 팀닥터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고 2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후 반도핑 연구소에서는 에이전트 1명만을 남기고 모두 철수했고 리오 퍼디난드는 사건 발발 3시간이 지나서야 "테스트 받을께요!"라고 연락을 했다. 물론 반도핑연구소에서는 씹었다. 이 사건 이후 며칠 후 재 도핑을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았고 그대로 사건이 종료되나 싶었는데 2004년 10월 11일 유로 2004 플레이오프전을 앞두고 리오가 엔트리에서 빠졌는데 그 사유가 도핑 테스트를 불참해서 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의 반응은 대폭발해버렸다. 거기다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이 뜬금없이 난입해 " 약쟁이들은 무조건 조져야 한다!"라며 난리를 쳐댔고 맨유는 FA에 압박 주지말라며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FA에서는 FIFA와[15] 맨유의 눈치를 보며 사건을 질질 끌었고, 2003년 12월 19일 8개월 출장정지와 벌금 5만 파운드를 부과했다.[16][17]

여담으로 리오의 해명은 "그날 새로 이사할 집에 필요한 집기를 사다가 잊어버렸다"였다.

7.2. 관중슛

0607 시즌 블랙번과의 리그 홈경기에서 0-1로 지고 있던 상황, 호날두가 당한 반칙 상황에서 퍼디난드가 공을 이어받았으나 그대로 공격자 어드벤티지가 인정되지 않고 파울이 선언되었다. 이에 열받은 퍼디난드는 곧바로 냅다 홈관중을 상대로 관중슛을 갈겼으며 하필 또 맞은 관중분이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 분이셨다. 슛을 날리고 본인도 실수를 인지하고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런데 0708 시즌 첼시 원정 경기에서 판정에 불만을 품은 퍼디난드가 또다시 냅다 관중슛을 날렸다. 게다가 하필 또 공을 찬곳이 맨유 원정팬쪽이었으며 다행이 관중이 자신한테 온 공을 두 손으로 막은 덕분에 큰 타격은 없었으나, 퍼디난드는 곧바로 첼시 선수들과 신경전을 펼치느라 미안하다는 제스쳐도 날리지 않았다. 이것으로 퍼디난드는 자신의 홈팬들에게 2번이나 관중슛을 날린 선수가 되었다.

7.3. 존 테리 안톤 퍼디난드를 향한 인종차별 논란

2011년 첼시와 QPR과의 경기 도중 존 테리가 리오의 동생인 안톤 퍼디난드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하여 출전 정지 징계를 받고 조사를 받았으나 최종적으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형인 리오는 테리와의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애슐리 콜도 법정에서 같은 팀 동료인 테리의 변호를 서게 되면서 역시 콜과도 사이가 멀어졌다.[18] 이후 유로 2012 명단에도 퍼디난드와 테리와의 부정적인 관계를 우려해 팀 매니지먼트에 해가 될까봐 로이 호지슨 감독이 리오를 선발하지 않으면서 이를 뒷받침했다.

훗날 퍼디난드는 자서전에서 존 테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최악의 멍청이라면서 부정적으로 묘사했고, 그가 만약 내 동생에게 말한 발언이 인종차별하려고 한 게 아닌 실수로 했다고 인정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고, 애슐리 콜 역시도 어린 시절부터 나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는 테리의 편을 들어줬다면서, 설사 법정에서 존 테리를 위해 증언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본인에게 사과라도 제대로 했다면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애슐리 콜은 그러지 않았다면서, 그 때부터 우리 사이는 끝났다고 서술했다. #

7.4. 불륜 사건

2011년 7월 긱스의 불륜 충격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퍼디난드가 결혼 이후 10명의 여성들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퍼디난드는 이 사실을 폭로한 기자와 신문사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영국의 스포츠 찌라시 '더 선'에서는 아주 신이 난 듯. 퍼디난드의 애인으로 구성된 축구 포메이션을 공개하며 대차게 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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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가 골키퍼인 게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8. 여담


[1] 실제키는 191~192(6ft3)이지만 퀸즈 파크에서 유소년 시절 키인 189로 업데이트되었다. [2] 이러한 이유로 퍼디난드는 램파드 가족과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 램파드와도 건강한 라이벌 관계를 가진 매우 좋은 우정이었지만 이후 램파드는 첼시, 퍼디난드는 맨유로 이적하면서 둘의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3] 이때 리즈는 챔스 4강까지 갔던, 말그대로 돌풍의 팀이었다. 리즈시절이 지금은 비아냥거리는 투로 쓰이지만, 한때 리즈는 잘나가던 팀이었던 건 사실이다. [4] 이는 당시 릴리앙 튀랑이 지니고 있던 역대 수비수 최다 이적료를 재차 경신한 금액이었다. [5] 2002년경 세계축구의 추세는 이탈리아 세리에 A였으며 자연스럽게 상위권 팀인 AC 밀란, 유벤투스 등이 세계 최고의 구단으로 꼽혔다. 당시 유벤투스는 수비진에 릴리앙 튀랑, 치로 페라라 등이 버티고 있어서 네스타나 스탐을 굳이 비싼돈 주고 영입할 필요가 없었다. 인테르의 경우엔 3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언제든지 우승 가능한 저력이 있던 팀이였다. [6]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최고의 센터백으로 꼽히던 퍼디난드는 2004년 출장정지 징계와 2008년 잉글랜드의 유로 예선 조기 탈락과 같은 악재가 겹쳐 단 한번도 유로 본선 대회에서 뛰어본 적이 없다. [7] 여담으로 첼시와의 챔스 결승전 당시 승부차기에서 첼시의 7번째 키커였던 아넬카의 실축으로 맨유의 우승이 확정되었는데, 만약 아넬카가 성공했으면 그 다음 맨유의 8번째 키커는 자신이었다고 밝혔었다. [8] 이 때 마이클 오언의 극장골로 4:3 승리. [9] 2006년 월드컵에서 스웨덴의 헨릭 라르손이 골을 기록하기 전에 교체되었다. [10] 이후 주장 완장은 남아공 월드컵 당시 주장 대행이었던 스티븐 제라드에게 넘어갔다. [11] 어렸을때 발레를 하였다. 영국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플레이의 비결에 대해 이 같이 대답했다. [12] 대신 파트너 비디치가 굉장히 능하기 때문에 맨유 입장에선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13] 맨유에서 지도했던 선수 중 가장 빨랐던 선수는 누구인가요? ( 우사인 볼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이 팀에는 빠른 선수들이 많았죠. 특정한 거리라면 게리 팰리스터를 꼽을 수 있겠네요. 전력질주 속도가 대단했고 100m 달리기 기록이 단연 최고였거든요. 하지만, 축구에서의 빠르기란 그라운드 위에서 곧장 100m를 질주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안드레이 칸첼스키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 앤디 콜, 폴 파커(정말 빨랐죠), 안데르송, 리오 퍼디난드, 리 샤프 정도를 꼽아야 하겠죠. 샤프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죠. 폴 인스도 빨랐고요. 앞서 언급한 선수들을 모두 빠른 선수라고 분류할 수 있겠지만, 100m 종목이라면 팰리스터가 1등일 걸요. 축구적인 의미로는 긱스, 특히 젊은 시절의 긱스와 칸첼스키스라고 해야겠네요. -
<인사이드 맨유 2009년 03월호 200호 특집 인터뷰>
[14] "주급 12만 파운드를 받고 토트넘 홋스퍼 전에서 20분 동안 잘했다고 지가 슈퍼스타인 줄 아나 본데..."가 그 내용이다. [15] 정확히는 제프 블레터의 눈치 [16] 원래는 4개월 출장정지였으나, 맨유가 항소한 것에 대한 괘씸죄로 4개월이 추가되었다. [17] 다만 이때 과도한 징계 아니냐는 반응들도 있었다. 실제로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을 보였던 빌리 터리(디비전 2에서 뛰던 골키퍼)는 FA로부터 어떤 징계도 안받고 '경고'로 그쳤으며,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었던 크리스티앙 니가와이는 퍼디난드처럼 도핑 테스트를 하지 않았지만 FA는 그에게 벌금형만을 내렸기 때문이다. [18] 당시 트위터에 콜을 초코 아이스(흰 아이스크림에 검은 초콜릿 옷을 입혔다는 뜻으로 백인 같은 흑인을 조롱하는 속어)라고 비하 흰 아이스크림에 검은 초콜릿 옷을 입혔다는 뜻으로 백인 같은 흑인을 조롱하는 속어로 쓰인다.하여 FA의 징계를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기도 했다. [19] 1998년에는 경기를 뛰지는 않았고, 2010년에는 부상으로 빠졌지만. [20] 맨유와 선더랜드 AFC와의 경기에서 선더랜드가 2-1로 앞서나가다가 안톤의 자책골로 비기자 벤치에서 경기를 보던 리오는 애매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21] 알렉스 퍼거슨의 아들인 대런 퍼거슨이 감독을 했었던 팀이다. [22] 팬들과 꾸준히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본인도 어렸을 적에 선수들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고 한다. [23] 박지성에게 한국에도 위계질서가 있나고 물어봤는데 한국은 선배들이 밥을 안먹었으면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모두 도열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말 마음에 든다 그런 문화. 우리나라(잉글랜드)는 어찌되려는건지 엉망이다."라고 썼다. [24] 여담으로 맨유에도 똥군기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라이언 긱스는 팀 선배였던 칸토나에게 정말 자주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긱스는 자신이 고참 선수가 되자 라커룸 내의 똥군기 문화를 없애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