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21:35:25

왕기춘

<colbgcolor=#131230><colcolor=#fff> 왕기춘
王機春 | Wang Kichun
파일:20160624151928512371.jpg
출생 1988년 9월 13일 ([age(1988-09-13)]세)
전라북도 정주시 수성동[1]
(現 전라북도 정읍시 수성동)[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개성 왕씨[3]
가족 아버지 왕태연(王泰然), 어머니 박남희
누나 왕정희(王晶熙), 왕정아(王晶鈳)[4]
신체 혈액형 AB형[5]
신장 173cm
체중 85kg
체급 -73kg
종교 개신교( 장로회)
학력 서울계상초등학교 (졸업)
하계중학교 (졸업)
서울체육고등학교 (졸업)
용인대학교 (유도학 / 학사)
용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 석사[6])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수상 기록5. 논란 및 사건 사고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유도인.

대표 업적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것을 비롯해 다수의 실적이 있으나, 영구제명 승단 기록이 몽땅 지워지는 불명예를 안았다.

2. 선수 경력

2.1. 데뷔 전

1988년 9월 13일,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8살 때 서울특별시 노원구로 가족과 함께 이주해서 그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만 해도 상당한 약골이었고, 그러다 보니 불량배들이나 동네 또래들한테 맞거나 돈을 뺏기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부모님은 안 되겠다 싶어서 유치원 때부터 태권도를 시켰지만 태권도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대신 초등학교 2학년 때이던 1996년, 부친의 권유로 유도를 하게 됐는데, 유도에는 빠르게 적응했다. 이후 계속해서 유도를 배우다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00년에 2000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는데, 왕기춘은 당시 60kg급에서 정부경이 은메달을 딴 경기[7]를 지켜봤고, 그때부터 왕기춘은 올림픽 무대에 기어코 서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계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유도부에 정식으로 입단했고, 서울체고 재학 시절부터는 73㎏급의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같은 급인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와 훈련 파트너로 함께 하며 기량을 연마하기도 하였고, 고3 때인 2006년 직지컵 대회 우승에 이어 KRA컵 은메달,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동메달로 될성부른 나무로 주목받았다.

2.2. 2007년

선배 이원희를 꺾고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데뷔 무대를 장식했다.

2.3. 2008년

많은 기대를 받고 출전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결승까지 무난하게 갔지만[8], 결승전에서 엘누르 맘마들리[9]에게 경기 시작 13초 만에 한판 패를 당하며 은메달을 땄다. 예선에서 입은 늑골 부상으로 결승전에서 힘을 한번도 못 써보고 상대에게 큰 기술을 허용하여 정규시간 종료 전에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다는 점이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김인섭과 너무나 비슷하다. 메달 수여 이후 '간지춘오빠'라는 멋진 별명을 얻게 되었다.[10]

2.4. 2009년

2009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2.5. 2012년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올랐으나 4강전에서 패배했으며 4강전에서 팔 조르기를 당한 후유증으로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했다.

3. 은퇴 이후

2016년에 은퇴하였으며,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구광역시에 체육관을 차린 것과 더불어서 아프리카TV BJ 활동도 겸하기 시작했으며, 또한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강호동처럼 방송계로 나가고 싶었으나 기회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정작 진짜 롤모델은 고영욱이었다.

2018년 전국체육대회 -90kg급 남자 일반부 출전을 위해 훈련에 들어갔다. 첫판에서 하필이면 이 체급에서 우승한 이재용을 만나 떨어졌다.

2020년 2월, 용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은메달 2008 베이징 -73k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7 리우데자네이루 -73kg
금메달 2009 로테르담 -73kg
동메달 2010 도쿄 -73kg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10 광저우 -73kg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11 아부다비 -73kg
금메달 2012 타슈켄트 -73kg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9 베오그라드 단체전
금메달 2009 베오그라드 -73kg
금메달 2013 카잔 -73kg
은메달 2013 카잔 단체전
은메달 2015 광주 단체전
은메달 2015 광주 -81kg

5. 논란 및 사건 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왕기춘/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여담



[1] 개성 왕씨 집성촌이다. [2] 정읍에서 태어나 전라북도 출신이 서울에서 가장 많이 거주하는 노원구 상계5동에서 성장하였다. 실제로 상계5동은 상계3/4동과 더불어 정읍시 출신이 가장 많다. [3] 동양군파-병마사공파 34세손. 족보명 왕기춘(王棋春).( 족보) [4] 누나들은 쌍둥이다. [5] 네이버 프로필 기준 [6] 석사 학위 논문은 국가대표 유도선수들의 최상수행 경험 분석이다. [7] 정부경은 이 경기에서 경기 시작 13초 만에 일본의 노무라 다다히로에게 통한의 한판패를 당했다.[12] 그리고 8년 후 왕기춘이 이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8] 무난하게 갔다고는 하지만 8강에서 이 체급 동메달을 딴 브라질의 길레이로를 맞아 힘겨운 승부를 펼쳤고 이 과정에서 늑골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4강전도 예상 외로 고전했다. [9] 2007 세계선수권 이 체급 결승전에서 왕기춘에게 패해 은메달을 차지한 선수다. 이 올림픽에서 맘마들리가 왕기춘을 이기고 딴 이 금메달이 이 대회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유일한 금메달이었다. [10] 훗날 본인이 차린 유도관 이름을 '간지유도관'이라고 지은 이유도 정황상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1] 증조부 왕정채{王廷采, 초명 왕일차(王一次)}, 고조부 왕경석(王瓊錫), 5대조 왕재극{王在極, 초명 왕재헌(王在憲)} 등 직계 선조들의 묘소가 모두 정읍시 용계동 구암마을에 있다. 더군다나 중국 출신 귀화인의 경우 원하는 본관이 있더라도 그 본관 종친회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함부로 그 본관으로 호적에 등재할 수 없다. 조선족 또한 귀화하더라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본관을 호적에 맘대로 등재할 수 없고, 새로운 본관으로 등재해야 한다.


[12] 우리동네 예체능 유도편에 출연해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였는데 자신있게 파고들어 기술이 들어간 순간 발가락이 유도 바지에 걸려 몸의 중심이 무너지는 바람에 한판패를 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