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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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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데이비슨 록펠러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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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
<최초의 비행기 제작자>
말콤 엑스
<인권 운동가>
출처 }}}}}}}}}

<colbgcolor=#000><colcolor=#fff>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
파일:Portrait_of_Milton_Friedman.jpg
출생 1912년 7월 31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사망 2006년 11월 16일 (향년 94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가족 로즈 프리드먼 (배우자)
데이비드 D. 프리드먼 (아들)
학력 라웨이 고등학교 (졸업)
럿거스 대학교 ( 수학 · 경제학 / 1932년 학사)
시카고 대학교 ( 경제학 / 1933년 석사)
컬럼비아 대학교 ( 경제학 / 1946년 박사)
직업 경제학자 ( 시카고학파)
사상 고전적 자유주의[1]
보수주의[2] ( 미국)
자유지상주의 ( 미국)
지도교수 사이먼 쿠즈네츠
지도학생 해리 마코위츠
종교 무종교 ( 불가지론)
정당

서명
파일:Milton_friedman_signature.svg

1. 개요2. 생애3. 연구
3.1. 신자유주의3.2. 자유3.3. 복지 정책
3.3.1. 음의 소득세3.3.2. 교육 바우처
4. 어록5. 여담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미국 경제학자. 화폐 가치의 안정을 경제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통화주의[3](monetarism)를 제창하였고 1970년대 이후 미시경제학과 더불어 주류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로서,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보통 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 프리드먼은 스스로를 자유지상주의자라고 생각해서,[4] 마약 매춘의 합법화를 지지하기도 했고[5] "게이에 대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하기도 했으며,[6] 합법적인 이민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이민조차 경제에 이롭다고 주장하기도 했다.[7][8]

2. 생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유대인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1912년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출생하였다. 15살 때 아버지[9]가 사업에 실패하고 병을 앓다가 숨지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열심히 노력한 끝에 1928년 16세에 장학생으로 인근 뉴저지의 럿거스 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 시절 그는 숱한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아침에는 백화점에서 모자를 파는 점원으로, 점심 무렵에는 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음식을 날랐고, 밤에는 소방서에서 야간근무를 했다.

1932년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를 졸업한 그는 1933년 시카고학파의 본산 시카고 대학교[10]에서 석사 학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11]. 학위를 받은 이후 1935년부터 10년간 미국 재무부[12], 국립자원계획위원회(National Resources Planning Board) 등에서 근무했고 1946년 시카고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약 3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이러한 인생 역전 때문에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제로 이루어낸 학자로도 손꼽힌다.

처음으로 프리드먼을 학계의 유명인사로 변화시킨 것은 같은 시카고학파 출신인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와 1946년에 공동집필 발표한 한 논문 소책자였다. '지붕인가 천장인가? 현재의 주택문제(Roofs or Ceilings? The Current Housing Problem)' #[13]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그는 캘리포니아의 주택 임대료 규제가 궁극적으로 주택 가격을 인상시켜 정치인들이 도우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즉 규제 당국이 주택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어 잠재적 주택건설업자들에게서 더 많은 주택을 지을 수 있는 인센티브(=더 높은 이윤)를 박탈하였고 결국 집값을 떨어뜨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논문 책자에 대한 당시의 반응은 격렬했다. 한 경제학자는 워싱턴포스트지에 기고한 글에서 프리드먼의 책자는 보수반동 이익집단의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출판된 교활한 책자이며 책 속의 말들은 모두 허튼소리라고 비난하였다.[14] 1946년 당시에 워싱턴포스트에 언급되는 경제학자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이 덕분에 그는 대중에 강한 인상을 주었다.

1947년에는 스위스 몽펠르랭에서 열린, 후에 몽펠르랭 소사이어티로 알려지게 될 주요 신자유주의자들의 첫 모임에 루트비히 폰 미제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칼 포퍼 등과 같은 유럽 출신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달리 미국 태생의 젊은 멤버로서 참석했다.[15]

1953년, 실증 경제학의 방법론(The Methodology of Positive Economics)을 출판했다.[16]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시장이야 말로 민주적 표현의 진정한 영역이라 주장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지갑으로 사회가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방식에 대한 선호를 표명하고 기업들은 수익성 있는 것을 제공함으로써 반응한다고 했다. 반면, 정치 체제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시장에서 요구할 수 있는 선호의 종류를 제한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보았다. 민주주의는 자유방임의 자유국가와 국가 사회주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둘 다를 가질수는 없다고 주장했는데, 프리드먼의 말에 따르면, 뉴딜 정책 이후로 미국이 추구해온 정부 스타일은 잘못된 쪽에 서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필요하지 않은 문제에서 벗어나야 하고 국민과 국가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963년, 애나 슈워츠(Anna Schwarts)와 공동저술한 미국 100년간의 통화 역사(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867-1960)를 출판했다.[17] 이 책에서 그는 거의 한 세기 동안의 미국 경제의 전반에 걸친 화폐량 변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특히 대공황 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실패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18]

고전적이며 보수적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옹호자로 1976년에 '소비분석, 통화의 이론과 역사 그리고 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에 관한 논증' 등의 업적으로 노벨경제학상[19]을 수상하였다. 자유시장 내 정부가 맡는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학자로 시장의 장점과 정부 개입의 단점을 강조하였다. 그의 정치철학은 미국의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의 견해에 큰 영향을 끼쳤다.[20] [21]

때문에 그는 '흔들림 없는 자유주의자', '자유경쟁체제의 굳건한 옹호자', '통화주의의 대부', '작은 정부론의 기수', '반(反) 케인스 학파의 창시자' 등 다양한 이름이 따라다닌다. 어찌보면 1970년대 이후 정부실패로 인해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자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대부분의 국가의 경제 전문가들은 그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으나 충실하게 따른 국가는 별로 없다.[22]

예를 들어 프리드먼은 앨런 그린스펀의 통화정책에 비판적이었으며 그린스펀의 통화정책이 꽤 오래 성공적이자 죽기 전에 그린스펀의 통화정책이 옳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알다시피 2008년 금융위기로 그린스펀의 '재량적 통화정책'[23]은 비판을 받는다.

3.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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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먼은 현대 영미경제학에서 통화를 경제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강조하는 통화주의를 창시했다. 통화주의의 아버지로 한때 시카고학파를 이끈 거두이다. 통화주의를 통해 경제분야에의 정부 적극개입을 주장하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 개입주의를 철학사상뿐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분석,비판했다.

기존 케인스의 개입주의를 비판하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미시경제학적 접근을 주로 했던 반면에, 거시경제학자인 프리드먼이 거시경제학인 케인스 경제학을 더 엄밀하고 본격적으로 비판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기존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주로 유럽에서 활동한 탓에 세계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데 반해, 프리드먼은 미국에서 활동한 인물이었기에 미국과 영국의 경제정책 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다.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는 불황이나 인플레처럼 국민경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서 통화량(경제 내에 유통되는 화폐의 수량 혹은 화폐공급량)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다. 기존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불황의 원인은 투자의 부족이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지출의 확대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격심한 인플레나 대공황과 같은 심각한 경제교란은 대부분 통화교란(급격한 통화량의 팽창이나 수축) 때문에 발생한다고 했다.

1930년대 대공황도 주가폭락이 아니라 미국의 통화당국에서 잘못된 통화량 억제정책을 실시해 통화량이 1/3가량 급감한 것에 직접적으로 기인했다고 지적했다. 즉, 정부의 잘못된 통화정책이 통화교란을 낳고 이는 다시 경제의 교란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는 케인스주의자들의 설명과는 정반대의 분석이다.

당장 학부 수준에서 화폐금융론을 배우면 프리드먼 법칙(Friedman rule), 프리드먼의 k-퍼센트 준칙(k-percent rule) 등을 듣게 될 것이다.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말한 프리드먼 법칙과 헷갈리면 안 된다)

프리드먼이 주장한 화폐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일정한 통화증가율을 공시하고 이를 장기에 걸쳐 매년 철저히 준수하는 준칙이다. 특정비율을 정한 간단한 규칙이라는 점에서 k% 준칙이라 불린다. 정부는 이 준칙만 지키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기면 통화량의 급격한 변동(통화교란) 발생으로 인해 경제의 혼란(심한 인플레나 대불황)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축소하여 경제주체들이 계획에 입각한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행할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적정 통화증가율은 평균 실질경제성장률보다 약간 높은 수치로 고시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를 1980년대 초반 시행해본 결과 실제 현실과 맞지 않는 전제들로 인해 잘 작동하지 않았다. 물론, 1993년까지 M2 통화량목표제가 유지되고 있었고, 2000년까지 연준은 통화량지표를 정책의 보조 지표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제 정책에서 준거와 재량의 혼용이 겹쳐지며 중요도는 상당히 하락했다. 현재는 통화량 목표제 대신 이자율 목표제가 일반적이다. 21세기에서 프리드먼의 이론적 함의는 유효하나 정책제안은 유효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정확한 수치를 맞추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고 미리 고시한 일정 증가율을 엄격하게 계속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추후에 케인스경제학자들도 화폐가 중요하고 인플레가 심각한 문제라는 프리드먼의 주장을 인정하고 1960년대부터는 통화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개입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좀 더 세밀한 이론으로 정책배합(policy mix)과 필립스 곡선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인플레기대심리와 자연실업률가설에 의해 오류임이 반증되었다.[24]

또한, 프리드먼이 지적한 것 중 현대 거시경제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개념이 인플레 기대심리(inflation expectation)이다. 이것이 지적된 후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거시경제학 이론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인플레 기대심리란 인플레의 변동을 예상하고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경제행위를 스스로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앞으로 1년간 물가상승률이 현재의 연 5%에서 연 8%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면, 자금의 대출자는 명목이자율을 3% 더 요구하고 자금의 차입자도 이에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노동자도 예상 물가상승률에 맞추어 임금을 더 받길 원하고 기업도 그만큼의 임금 지불을 대비하게 된다. 이러한 인플레 기대심리 때문에 케인스경제학의 저금리정책과 조정개입의 효과가 없음을 프리드먼은 주장했다.

의외로 프리드먼은 통계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는데, 순차적 표본 추출(sequential sampling)에 기여했다.

1999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암호화폐의 출현을 예언하였다.

...so that I think the Internet is going to be one of the major forces for reducing the role of government. The one thing that's missing, but that will soon be developed, is a reliable e-cash. A method whereby on the internet you can transfer funds from A to B, without A knowing B or B knowing A. The way in which I can take a 20 dollar bill and hand it over to you then there's no record of where it came from, and you may get that without knowing who I am. That kind of thing will develop on the Internet and that will make it even easier for people to use the Internet. Of course, it has its negative side. It means that the gangsters, the people who are engaged in that illegal transactions, will also have a easier way to carry on their business. But I think that the tendency to make it harder to collect taxes will be a very important positive effect of the Internet.

...그래서 저는 인터넷이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주요한 원동력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락되었지만 곧 개발될 하나가 신뢰할 수 있는 전자 현금(e-cash)입니다. 인터넷에서 당신이 자금을 A에서 B로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이죠. A가 B를 모르고, B가 A를 모르는 상태로 말이죠. 제가 20달러 지폐를 가져와서 당신에게 건네주는데 그 돈의 출처에 대한 기록도 없고,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건네 받을 수 있는 방법이지요. 그런 종류의 것이 인터넷에서 발전할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을 훨씬 쉽게 해줄 겁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도 있어요. 불법 거래를 하는 갱단원들도 그들의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더 손쉬운 방법을 얻게 됨을 의미하죠. 하지만 세금 징수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이러한 추세는 인터넷의 매우 중요하고 긍정적인 한 가지 효과가 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1999년 3월 1일 National Taxpayers Union 인터뷰 중에서(14분30초쯤부터).

3.1. 신자유주의


인플레이션을 설명하는 프리드먼
인플레이션은 알코올 중독과 같습니다. 술을 마시거나 화폐를 너무 많이 발행할 때 두 경우 모두 좋은 효과가 먼저 나타납니다. 나쁜 효과는 나중에 나타날 뿐이죠. 그것이 두 경우 모두 과도하게 하려는 강한 유혹이 있는 이유입니다.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그리고 너무 많은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죠. 치유는 그 반대입니다. 금주를 하거나 통화 팽창을 멈출 때 악영향이 먼저 오고 좋은 효과는 나중에야 나타납니다. 그것이 치유를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세계 대공황과 케인스를 설명하는 프리드먼

노벨상 수상 이후 아내인 로즈 프리드먼과 함께 대중들을 위한 서적들을 출판했고 TV프로그램 강연에도 출연하였다. 저서와 강연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서 자신의 이론과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한 대한 많은 설명이 들어있다.[25]

대표적인 대중 대상 저서로는 다음이 있다.
한국어 영어
자본주의와 자유[26] Capitalism and Freedom
선택할 자유 Free to choose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 Bright Promises, Dismal Performance: An Economist's Protest

대학 퇴임 직후 미국 공영방송[27]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의 경제, 사회 철학을 소개하는 <선택할 자유 Free to Choose>라는 한 시간짜리 TV시리즈 열편을 3년간 만들어 1980년에 방송했었다. 이 프로젝트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신나는 모험이었다고 본인이 회고하기도 했다. 이 시리즈는 여러 외국에서도 방송되었고 상기에 제시된 책으로 같은 해에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그 후 14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그의 저서를 간략하게 소개 하자면 프리드먼은 현대의 자유주의가 진보주의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비판하고 원래의 고전적 자유주의를 부활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유주의(liberalism)가 현대 영미사회에서 진보주의(progressivism, progressive liberalism)와 원래의 자유주의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자유주의의 원래의 의미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사용되던 것과 같이, 개인자유를 유일한 궁극적인 가치로 인정하고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중시하여 개인의 사회활동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반대하는 주장, 즉 자유지상주의였다. 따라서 복지와 균등배분을 자유주의의 전제조건으로 보고 이를 위한 정부 개입의 부활을 옹호하고 나선 20세기 자유주의(진보적 자유주의, 진보주의)와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혹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 명명하게 됐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사상인데 전통적 자유주의(traditional liberalism), 자유방임적 자유주의(laissez-faire liberalism), 시장자유주의(market liberalism),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전적'이라는 수식어는 더 급진적인 사회적 변화와 경제적 문제에 대해 국가가 개입자로서 더 강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촉구한 20세기의 새로운 자유주의, 혹은 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ism)같은 움직임과 구별하기 위해 나중에 붙은 형용어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부터 쇠퇴했지만 고전적 자유주의를 되살리려고 노력한 인물들이 바로 미제스,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인물들이다. 이러한 부활은 그 반대자들로부터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도 불린다. 역사적으로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리버테리어니즘)는 17-18세기 유럽 계몽주의에서부터 시작된 자유주의(liberalism, 리버럴리즘)가 출현한지 약100년후에 무정부주의에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liberalism)가 왕권에 대한 거부라면,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는 개인을 구속하는 일체의 모든 형태의 국가, 강압체에 대한 거부다. 현대 미국에서,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대부분은 미국 공화당에 의지하는 신자유주의자(neoliberal),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자(laissez-faire liberal)들이다. 이들은 작은 정부, 혹은 무정부, 규제철폐, 사기업들에 대한 낮은 세금 혹은 비과세를 지지한다. 프리드먼은 자신을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라고 칭했다.

이들은 오히려 자유가 적은 나라에서 돈으로 바꿀 수 없는(혹은 바꾸면 안 되는) 가치인 성(性), 공정한 재판, 인신(人身), 교육 기회 등이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보다 돈으로 해결하기 쉽다고 주장한다. 개입이 늘수록 자유는 줄어들고, 개입의 여지가 늘어나면 점점 인간의 자유는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제한들만 준칙으로 정하고 개인 재량에 맡기는 것이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한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자유주의자라 불렀는데 반대자들이 고전적 자유주의자[28]와 구분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반대자들이 신자유주의가 만든 해악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들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전, 정확하겐 역사 이래 항상 있어온 배금주의(拜金主義)다.

경제적으로도 시장 논리에 따른 민영화를 주장하는데 그가 예로 들은 1970년대 미국 철도 회사와 정치권의 결탁으로 인한 복마전을 설명하며[29] 한계기업이 퇴출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낭비를 거론하고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시장 경제에 따라야 함을 주장한다.[30]

프리드먼은 기업의 책임이라는 개념에도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ies)은 그 기업의 이윤을 늘리는 것(to increase its profit)"이라는 그의 1970년 뉴욕타임스 매거진 기고문의 제목처럼 시장이 개인 선택의 장(arena)을 마련해 소비자가 지갑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윤추구는 만족한 고객으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구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윤을 방해하는 모든 활동은 겉으로는 그것이 아무리 고상해보이더라도 소비자인 대중이 기업에게 원하는 바를 해내는 그 기업의 능력을 깎아먹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회적 의식이 있는 기업가들이 사회적 이익을 위해 그 기업의 돈을 쓰는 것은 사실상 그들의 주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사회에 기여하므로써 얻어지는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라면 모를까 기업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주체이자 이익단체일 뿐 정부가 정한 최소한의 룰 안에서 경쟁하기만 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편견과는 반대로 신자유주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달리 사회보장제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일을 할 수 있는 계층에 대해서는 근로 의욕 제고를 주문하지만 고아나 장애인, 노인 같은 노동이 불가능 또는 제한적인 계층에 대해서 다 굶어 죽으라고 한푼도 주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경제적으로도 그와 같은 계층이 고통을 겪는 것은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기초 생활 보장에 대해선 긍정적이다.

사회보장이 필수적인 정도는 아니지만 소득이 적은 계층 즉 차상위 계층에 대해선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주장했는데 가구 수 기준 최소 생계비를 보장하는 제도로 예를 들어 4인 가족 최소생활비는 150만 원인데 월 평균 소득이 100만 원이라면 50만 원을 '(-)세금'[31] 즉 보조금으로 지급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재 프리드먼이 주장한 부의 소득세는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져 2000년대 이후 국세청에서 근로장려세제(EITC) 제도로 시행되고 있다. 또한 정부 재원 충당에는 집값 상승으로 집주인들이 얻은 이윤 만한 게 없으며 그들의 수익은 특권이자 불로소득이라고 주장하는데 심지어 추잡한 부당이윤이라고까지 말한다!

프리드먼이 그냥 추잡한 부당 이윤이라고 표현한 게 아니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아서 같은 이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주택 소유자들이 지가 상승으로 부가 늘어났다고 하면 그 지가 상승분에 해당하는 만큼 신규 주택을 짓는데 그 지가 상승분을 재투자해야 하는데 그들(주택 소유자)은 땅값 상승으로 번 돈을 다른 이를 위해 신규 주택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해서 돈 벌었다"는 식으로 자기의 사치에 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주택 소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해서 그 세원으로 계속 주택 공급을 늘려가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프리드먼은 또한 교육 격차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70년대 미국에서도 현재 한국처럼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 격차를 우려하고 저소득층 가정에 사교육 바우처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 본인이 가난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교육 덕분에 세계적인 석학이 되었으니 교육에 신경 쓸 만도 하다.

다만 실제 신자유주의의 실행 결과는 프리드먼이 주장한 사회 보장조차도 배제되는 사례도 적지 않는 등 프리드먼의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여기엔 밑에서 프리드먼 본인이 지적했듯이 신자유주의자들이 평소에는 자유 경쟁을 내세우다가 자기들이 불리해지면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모순을 보여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건 신자유주의의 책임이 아니라 배금주의, 천민자본주의의 문제'라며 꼬리를 자르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전체에 대한 논쟁이기도 하므로 해당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3.2. 자유

프리드먼은 자유는 문명의 발전을 위해 필요불가결함을 역설했다. 자유로운 개인의 다양한 시도에서 유익한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고 이를 통해 문명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정부는 결코 개인 행동의 각양각색(variety)과 다양성(diversity)을 복제할 수 없다.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 p17.

나아가서 프리드먼은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답게 자유가 중요한 것은 자유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특히 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첫째로, 경제적 자유 또한 넓은 의미의 '자유'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에, 다른 종류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32]

둘째,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위한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볼때에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자본주의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치 치하의 독일, 파시즘 치하의 스페인과 이탈리아, 군국주의 차하의 일본과 같이 자본주의사회에서도 정치적 자유가 박탈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가 아닌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 즉, 자본주의는 정치적 자유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수조건이라고 했다.[33]

자본주의에서만 정치적 자유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프리드먼은 다음과 같은 경제적 시각으로 설명했다. 정치적 자유가 존재하려면 기존의 체제를 바꾸자는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언론과 결사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데, 사회주의 사회와 같이 경제적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는 이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또한, 경제적 자유는 경제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을 분리시킨다.
정치적 자유란 개인이 그 동료들로부터 강요를 당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 p30.

즉, 자유에 대한 근본적 위협은 권력의 집중이다. 시장경제는 경제적인 힘을 수많은 경제주체 사이에 분산시킨다. 이에 비해 정치권력은 기본적으로 분산이 어렵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자본주의는 정치권력과 경제력이 결합되어 권력집중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여 결과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보호한다. 이런 관점에서 프리드먼 역시 예전의 애덤 스미스처럼 경제주체 내부의 독점 과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기업이 경쟁력을 가져서 커지는 것은 장려하고 사업 분야를 확장해도 된다. 하지만 시장의 경쟁 기반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정치권력에서도 특정 집단(과두)으로의 권력 집중이나, 특정 집단에 의한 정책의 과대대표 등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단적 자유지상주의 보다는 결과주의적 자유지상주의를 선호한다고 하였다.
A consequentialist libertarian wants the smallest and least intrusive government consistent with a maximum freedom for each individual to follow his own ways, his own values as long as he doesn't interfere with anybody else's doing the same.

결과주의적 자유지상주의자는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한 각자가 자신들만의 방식과 가치를 추구함에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하는 작은 정부를 원한다.
2006년 인터뷰 중.

3.3. 복지 정책

3.3.1. 음의 소득세

프리드먼은 기본소득 논의의 발안자 중 한 명이다. 기본소득제는 기본원리가 프리드먼이 복지제도로 주장한 negative income tax(음(陰)의 소득세, 부(負)의 소득세)에 기인한다. 프리드먼은 각종 공공복지제도들이 빈곤퇴치라는 본래의 목적을 실현하기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으므로 기존의 공공복지제도를 모두 철폐하고 대신에 음의 소득세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프리드먼이 그의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 '선택할 자유' 등에서 빈곤완화 방안으로서 주장한 이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같은 금액을 주는 기본소득과는 다르다. 이것은 기본소득처럼 모든 이에게 혜택이 주어지지도 않고 미리 통장에 꽂아주는 선불제 개념도 아니다. 소득 기준을 정한 뒤 이 기준에 못미치는 소득을 올린 가구에 대해서는 차액 만큼을 나중에 현금으로 채워주는 제도이다. 단, 어떤 경우에도 일을 해서 소득을 올리는 것이 아무 일을 안하고 보조금만 받는 것보다는 수입이 많도록 설계하였고,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음의 소득세가 양의 소득세로 전환이 되면서 소득이 높을 수록 많은 세금을 내게 되므로 혜택이 일정기준 이하 소득자에게 집중되게 한다.

이 제도는 원래 1940년대 줄리엣 라이스-윌리암스라는 영국의 여성 정치가가 처음 제안했던 것을 프리드먼이 조금 변형시킨 것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정부가 '소득세의 면세 점(point)’과 '보조율'을 적절히 정하고, 그 면세점 이하의 소득에 대해서는 부의 소득세, 즉 보조금을 현금으로 정부가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소득세의 면세점을 4인 가족 기준으로 1년에 2천만 원이라고 해보자.

예를 들어 어떤 4인 가족의 연소득이 500만원이라면 1500만원을 정부가 메꿔서 지급해준다?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그런 식이면 그냥 놀아도 2천만원을 받을 수 있으니 아예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보조율 개념을 가져왔다. 보조율이 60%라고 하자. 이 경우 1500만원을 다 주지 않고 60%인 900만원만 지급한다. 따라서 본인이 번 500만원과 보조금 900만원의 합인 1400만원이 총소득이 된다.

만약 소득이 한 푼도 없는 4인 가구라면 면세점 금액 2천만 원의 보조율 60%에 해당하는 1천 2백만 원의 보조금을 받으므로 총소득은 1천 2백만 원이 된다.

만약 4인 가족이 연소득이 1천만 원이면 면세점 금액 2천만 원과 연소득액 1천만 원의 차액인 1천만 원에 대해 60%의 보조율을 적용해 6백만 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즉, 총소득이 본인이 번 연소득과 보조금을 합한 1천 6백만 원이 되어 아무 일을 안할 때보다 수입이 4백만원이 더 많다.

연소득이 2천만원에 근접할수록[34] 보조금은 줄어들지만 어떤 경우에도 일을 해서 소득을 올리는 것이 일을 안하고 보조만 받는 것보다는 수입이 많다.

이 제도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이 제도는 미국 일부 지방정부 수준에서 시행된 적이 있지만, 프리드먼의 주장 그대로 다른 모든 공공복지 제도를 없애고 이 제도만으로 대체한 국가는 아직 없다. 기존에 시행되고 있던 제도의 역사적 경로의존성 문제도 있지만, 모든 복지를 현금보조로 대체할 경우 알뜰하게 생활비로 쓰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돈을 받는 족족 술, 담배, 마약, 도박, 매춘 등으로 탕진할 사람들도 적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저소득층에 대해 현물보조나 가격보조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사실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게다가 21세기 현재의 기본소득 논의 중 상당수는 프리드먼의 음의 소득세를 따르지도 않는다. 기본소득은 정치적인 논리로 선택된 경우가 많아서 음의 소득세 주장을 끌어다 쓰긴 하지만 프리드먼이 주장한 것처럼 언제나 일을 하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구조로 설계되는데에 관심이 없다. 기본소득 주장의 핵심은 자본의 재분배에 있지 프리드먼처럼 경제적 효과를 위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3.3.2. 교육 바우처

또한 프리드먼은 교육에 대한 지원제도를 제안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일정수준의 교양과 지식을 갖추지 않고는 안정된 민주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가치에 대한 공통된 합의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지 않고는 안정된 민주사회가 달성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지원이 타당하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직접 공립학교만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당사자들에게 교육비를 지원하고 당사자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하여 교육기관 간 경쟁을 촉진하고 교육선택의 폭을 확대시킬 것을 의도했다. 이는 모든 수준의 교육에 동일하게 적용한다.

이것이 교육증서(education voucher) 제도인데,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모두 병존시키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승인된' 학교 교육에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일정액을 부모에게 지원하고, 부모와 학생은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때, 선택한 학교에 정부가 발급이 이 증서로 등록금을 납부하고, 학교는 이 증서를 정부에 제출하여 돈을 받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때문에 정부의 혜택도 받지 못하면서도 공립학교 운영을 위한 세금을 납부하는 부모들의 불만을 해소하면서도 교육에 경쟁과 다양성을 도입하고, 또한 교사들의 획일적인 급여도 개선하는 작용을 꾀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직업교육의 경우엔 그 혜택이 본인 당사자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므로 본인이 온전히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대신에 정부의 특별융자로 학자금 대출을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4. 어록

자유보다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없다. 평등보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있다.
자본주의가 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임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분명히 그것은 충분조건은 아니다.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단,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한다. 사기나 속임수 없이 자유 경쟁에 임하는 것이 그것이다.
모든 세금이 나쁘지만 가장 덜 나쁜 세금은 토지세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남들의 이익을 빙자하여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사람들이다.
사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에 위험한 존재들이며 자유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 개입을 원한다.[35][36]
임시 정부 프로그램만큼 영원한 것은 없다.
연방정부에게 사하라 사막의 관리를 맡겨보라. 5년 안에 모래가 부족해질 것이다.
부패란 정부가 시장효율성에 규제로서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5. 여담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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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리드먼은 실제로 스스로를 리버럴이라 칭한 적이 있으나 그의 사상을 고려하면 현대자유주의보단 고전적 자유주의의 의미로 말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2]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자신의 사상이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였다. 서론에 따르면, "문제의 근본을 캐낸다는 어원학적인 의미에서나, 사회제도의 전면적 변화를 옹호하는 정치적인 의미에서나"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을 보수주의로 지칭하는 것을 거부했다. [3] 통화주의는 화폐 가치 안정을 경제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어디까지나 통화량 팽창이 주원인이라 지적했고,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프리드먼의 주장대로 급속한 통화량 팽창이 원인임이 실증결과로 나왔으며 오랜 시간동안 학계에서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로 다른 의견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급속한 통화량 팽창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이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상관관계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토론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4] 자신은 자유지상주의자인데, 단지 "편리함"을 위해 미국 공화당원이 되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공화당 지지자들보다도 더 오른쪽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왼쪽인 측면도 많다고 봐야 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미국 민주당에 대해서 못지않게 미국 공화당과도 의견차이가 결코 적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공화당은 국방비 확충에 긍정적인 반면[40] 자유의지주의자들은 흔히 세금 자체에 부정적이고 국방비 또한 세금이라 믿기에 국방비 확충에 부정적이다. [5] Friedman also supported libertarian policies such as legalization of drugs and prostitution. ("An open letter". prohibitioncosts.org. Prohibition Cost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October 31, 2012. Retrieved November 9, 2012.) [6] Friedman was also a supporter of gay rights. ("Milton Friedman". ldp.org. Liberal Democratic Party (Australia). 2009.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pril 10, 2013. Retrieved February 19, 2013.) [7] Friedman favored immigration, saying "legal and illegal immigration has a very positive impact on the U.S. economy." (Dalmia, Shikha (July 19, 2018). "The weaponization of Milton Friedman". The Week.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July 19, 2018. Retrieved July 19, 2018.) [8] 심지어 프리드먼은 합법적인 이민보다 불법적인 이민자들이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불법 이민자는 그 나라의 노동자들이 원하지 않는 일자리를 차지하여 고용주에게 그 나라에서 얻을 수 없는 종류의 값싼 노동자를 제공하는데다가, 불법으로 들어온 거라서 그 나라의 복지 세금조차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9] 뉴저지주 로웨이(Rahway)에서 건조물품 가게를 운영했다 [10] 배우자인 로즈 디렉터를 여기서 처음 만났다. 석사 과정 당시 교수가 학생들을 성의 알파벳 순서대로 자리에 앉혔는데, D로 시작하는 로제의 옆에 앉은 사람이 F로 시작하는 프리드먼(Friedman)이었다고 한다. [11] 박사 시절 밀턴 프리드먼이 사사한 사람이 쿠즈네츠 곡선으로 유명한 사이먼 쿠즈네츠 [12]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데 도움이 되는 현대적인 연방정부 차원의 소득세 원천징수 시스템 개발 업무를 도왔다. 훗날, 그는 지금의 원천징수제를 폐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었고, 1999년, 부인과 공저한 회고록에 오늘날의 과다하게 비대해진 정부가 생겨나도록 만든 한 요인이 된 원천징수제 개발 업무에 참여한 것에 대해 부인에게서 꾸지람을 듣는다는 내용이 있다. [13]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듯이 오늘 당장의 가격제한(price ceiling)이 내일의 주택들(roofs)을 파괴할 수 있다는 의미의 제목 [14] 나름대로 일리가 있던 주장이었다. 프리드먼과 스티글러의 이 책자는 경제교육재단(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에서 출판되었는데, 당시 경제교육재단은 2차대전 이후 뉴딜정책을 반대하는 몇몇 소수의 우파 전문집단들 중의 하나였다. [15] 이 모임은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엘리트 살롱으로 시작했지만 젊은 미국인인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시카고 대학교가 이 모임의 전초 기지로 사용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적 기관 중 하나로 성장했다. [16] 실증경제학이란 경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규범경제학(normative economics)은 가치 판단을 포함하는 것이다. 케인스는 실증과학과 규범과학을 혼동하여 해악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경제학에서 실증과학의 중요성을 주장했는데,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인 프리드먼도 실증경제학과 규범경제학을 구분하고 케인스와 마찬가지로 실증경제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7] 1965년에 이 책 내용 중 대수축(The Great Contraction)이란 제목의 챕터 부분만 따로 뽑아 동명의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한국에 대공황 1929-1933이란 제목으로 번역본이 2010년 출간되었다. [18] 1936년에 케인스가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출판한 이후로 케인스의 유효수요(effective demand) 이론은 전세계의 정책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다. 케인스 이론에 따르면 경제에서, 화폐의 양은 소비자의 구매력과 국가의 투자 결정에 비하면 지엽적인 것이다. 케인스의 틀에서 보면, 만약 경제가 침체에 빠져있다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충분히 지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만약 사람들이 해고되고 있다면 그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그 해고되려는 사람이 생산한 것을 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그 정치적 귀결은 정부의 재정정책이다. 즉 사람들이 실직했다면 정부는 고용창출을 위해 적자가 되더라도 돈을 써야한다. 실업 해결을 위해 공공사업 지출에 힘쓰고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돈을 줘야 한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케인스의 처방이 채택됐고 경제는 서서히 공황에서 벗어났지만 프리드먼은 케인스가 틀렸다고 반박했다. 케인스가 적자 재정정책과 공공사업 지출로써 대공황을 치료했다는 당대의 컨센서스는 잘못된 것이며 케인스의 틀이 오류에 기반한 것임을 보이고자 했다. 프리드먼은 자신의 대안적인 거시경제틀을 통화주의라고 불렀다. 프리드먼은 대공황의 문제는 소비자 수요의 붕괴가 아니라 화폐량의 붕괴라고 주장했다. 대공황 발발 당시의 미연방준비위원회가 망쳐버린 결과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미연준이 1929~1933년의 기간에 확장적인 통화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한 이유를 청산주의의 영향으로 보았다. 당시 미국의 재무부장관 앤드루 멜론이 경제가 너무 빠르게 팽창했고, 성장이 지나치게 많이 이루어졌으며, 너무 많은 신용이 풀렸고, 주가가 지나치게 높이 뛴 지나친 호시절이었던 1920년대의 과잉을 짜내야 한다는, 그래서 허약한 은행을 솎아내는 것이 혹독하지만 은행시스템을 회복시키는 전제조건이라는 청산이론(liquidation theory)에 동의해 은행위기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점, 그리고 통화완화정책의 필요성을 말하던 뉴욕 연방은행 총재인 스트롱의 갑작스런 죽음이 디플레이션과 유동성 위기에 대한 미연준의 무대응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미연준이 경제에서 건전한 양의 화폐를 유지했어야 했지만 대공황 초기에 은행들이 연쇄 파산할 때 그 은행들을 구제하는데 실패함으로써 통화 공급이 줄어들도록 손놓고 내버려 둔 결과, 초기에 진압하지 못하고 대공황이라는 장기 재앙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총수요와 고용을 위축시켰다고 진단했다. 대공황의 근본원인은 통화 공급을 3분의 1로 줄인 미연준에 있었으며 만약 미연준이 돈을 충분히 찍어냈다면 대공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프리드먼은 세금과 정부지출이 아니라 통화 공급만이 중요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이 설명을 화폐와 경제에 대한 포괄적인 이론으로 끌어올렸다. 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실업 등 경제에서 중요한 모든 것은 통화 공급의 변화, 또는 통화 공급의 변화에 대한 기대(expectation)의 산물이다. 하지만 출간 직후부터 큰 논쟁을 불렀다. 여전히 케인스 경제학이 절대적 권위로 수용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19] 수상연설에서 '내 주장이 세상에 받아들여졌다면 이 상을 받지 못하고 당신들도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조크를 했다. 노벨경제학상은 다른 분야의 노벨상에 비해 역사가 짧으며 스웨덴 중앙은행을 통해 수여되는데, 프리드먼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중앙은행 역시 없애버리고 매년 일정 비율로 통화를 증가시키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20] 1970년대에 들어 프리드먼의 가설들이 빛을 보게된다. 즉, 기존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의 가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난 것이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이 동시에 지속되어 수요가 정체되는 이 경제적 딜레마는 기존 케인스의 원칙에서는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1946년에 사망한 케인스 자신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한 적이 없다. 1960년대 초, 케인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해설가인 폴 새뮤얼슨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데이터에서 매우 분명한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나타나는 통계적 경향을 확인했다. 즉, 더 많은 인플레이션은 더 낮은 실업률을 의미하고, 높은 실업률은 낮은 인플레이션을 나타냈다. 정책입안자들은 인플레와 실업이라는 두개의 악(惡) 중에서 어느 하나의 악을 원하는 만큼 선택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그 상관관계가 무너졌다. 실업과 물가상승이 함께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스태그플레이션 시대가 열렸고 새뮤얼슨과 그의 케인지언 동료들 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 담당자도 상당히 당혹스럽게 되었다. 1970년대에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함께 치솟은 이유는 오늘날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케인스식의 간섭들이 경제가 자연스러운 통제 범위을 넘어서 부작용을 일으키게하고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경제적 고통을 만든다는 것,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바로 그 개입들이 장기적으로는 결국 그들을 해친다는 것, 인플레이션과 이윤, 자유와 경쟁, 등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에 대한 프리드먼의 간단한 설명은 케인스주의 경제학들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던 세상에서 그 지적 공백을 채워 주었다. [21] 1980년대에 프리드먼의 사상은 미연준과 영란은행을 포함한 세계 중앙은행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1970년대 석유위기와 이를 계기로 촉발된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을 케인스 경제학이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자, 프리드먼의 통화주의가 미국 우파의 정치적 성공과 함께 등장했다. 통화주의자들과 케인스주의자들간의 논쟁을 가라앉힌 사건이 발생했다. 1979년 8월, 새로운 미연준 의장인 폴 볼커는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카터 대통령에 이어 레이건 대통령의 지지를 바탕으로 볼커 미연준의장은 통화 공급을 대폭 줄여 이자율을 두 자릿수로 올렸다. 이어 경기 둔화가 시작됐으나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잦아들며 경기도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미국을 '인플레이션의 숙취'에서 깨어나게 만들었고 전 세계로 퍼질 뻔한 버블을 관리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폴 볼커는 결국 치솟은 실업률과 물가를 통화 조절로 진정시키며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리드먼의 연구에 힘입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통화 공급 조절이 중요한 경제정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2] 이건 프리드먼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고전학파 계통의 이론을 따르는 경우 자체가 흔치 않아서 그렇다고 봐야한다. 왜냐하면 고전학파는 대체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게 주요 논지인데, 이를 그대로 따르면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현재도 대부분의 국가 정부의 재무부나 경제부 수장은 대부분 정부의 시장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스학파 계통의 학자가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23] 정부가 경기 조절 등을 위해 자의적으로 돈을 풀거나 조이는 통화정책을 재량적 통화정책(dicretionary monetary policy)이라 부르며 프리드먼 등의 통화주의 학파들은 재량적 정책의 경우 통화 가치의 불안정을 초래해 경제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준칙적 통화정책(rule based monetary policy)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준칙적 통화정책에서 준칙이란 사전에 정해 놓고 경제 상황이 변화하더라도 고수해야 하는 정책의 운영 방식을 말한다. 프리드먼을 비롯한 통화주의자들은 정책 당국의 무능력과 권력 남용, 정책 시차 등으로 인해 재량적 통화정책이 오히려 경제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재량적 통화 정책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경제 상황에 관계없이 일정한 준칙에 따라 경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준칙에는 통화 공급을 매년 일정한 비율로 늘리는 k%준칙, 목표 인플레이션율과 실제 인플레이션율의 차이 및 잠재 경제성장률과 실제 경제성장률의 차이 등을 이용하여 정책 금리 수준을 정하는 테일러 준칙 등이 있다. 한편 케인스학파는 시장의 자기교정적 메커니즘(self-correcting mechanism)이 매우 느리게 작동하기 때문에 경제충격이 올 경우 통화정책 당국이 적극적이고 재량적인 개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리드먼은 Free to Choose에서 헌법에 ‘통화정책의 준칙’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24] 근거자료? [25] 주간지인 뉴스위크에 1966년부터 1984년까지 고정적으로 주간 컬럼을 통해 중산층 독자에게 그의 생각들이 전해졌다. 이를 통해 정치인과 사업가들 사이에서 점점 더 영향력이 커졌다. [26] 일반인들 대상으로 썼다고 보기엔 꽤 어려운 책이다. [27] P.B.S, U.S. Public Broadcasting System. [28] 18세기부터 19세기 방임경제 시대, 20세기 경제학의 스펙트럼 상으로는 하이에크를 필두로 한 신오스트리아 학파와 유사하다. [29] 미국은 공식 국영기업은 없다. 그러나 방산업체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기업들은 연방정부나 주정부 차원 규제로 인한 진입장벽 덕에 사실상 공기업이나 다름없다. 19세기 이래 철도회사들이 화물수송과 여객수송을 전담하였는데 고속도로와 민간 항공기의 출현으로 여객수송 비율은 현격하게 떨어졌는데 오랫동안 정부와 주정부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은 철도회사들이 로비로 정치인들에게 우리 지역에 철도 노선이 사라진다 하여 보조금을 타먹고(막상 유권자들도 열차는 타지 않으면서 노선이 없어진다 하면 서운(?)했기에 보조금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텅빈 열차는 열차대로 돌고 사람들은 비행기 타고 세금은 세금대로 보조금을 퍼먹는 상황을 고발한다. [30] 비슷한 예로 마거릿 대처 등장 이전 영국에서 채굴비 높은 석탄 광산을 유지하며 고임금 노동자를 고용하고 막상 석탄은 쓸데가 별로 없어서 연료용 석유를 수입했다. [31] 쉽게 말해서 세금의 환급이지만 애초에 원천징수시에 부양가족과 월소득을 고려하면 면세점 이하이기 때문에 환급할 세금이 없다. 그래서 사실상 현금보조에 해당한다. 노동 의욕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노동을 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32] 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p22. [33] 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p24. [34] 만약 연소득이 2천만 원인 4인 가족이 있다면 이들은 소득세를 내지도, 보조금을 받지도 않는다. [35] 프리드먼을 싫어하는 좌파들도 이 어록만큼은 종종 인용한다. 실제로 미국 좌파의 거두인 놈 촘스키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36] 그리고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세계금융위기 당시 기업들의 지원 요구로 실현되었다. [37] 프리드먼이 최초로 한 말은 아니다. 최초로 쓴 사람은 폴 새뮤얼슨. [38] 경선 토론 때 프리드먼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발언하긴 했다. [39] 우선 프리드먼은 스스로를 리버테리안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그의 통화주의적 관점은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고, 주류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따르는 오스트리아 학파와 일부 경제관점이 충돌하는 것 등을 보았을 때 그의 이념이 어느정도 논쟁이 될 수는 있다. 무엇보다 진성 자유의지주의자라면 세금 자체를 신체권, 재산권, 선택권 침해로 여겨 모든 세금과 모든 정부 시스템, 정확힌 자발적 세납으로 충당되는 시스템을 제외한 모든 시스템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다만 미국의 경우 고전적 자유주의자 역시 리버테리안이라고 부르니 이런 관점에서는 그가 자유지상주의자인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