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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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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ism
아나키즘
파일:Tl5XWDj.gif
<colcolor=red><colbgcolor=#000> 아나키즘의 대표적 상징인 Circle-A
한국어 아나키즘 (무정부주의[1])
영어 Anarchism
프랑스어 Anarchisme
독일어 Anarchismus
중국어 无政府主义 (wúzhèngfǔzhǔyì) [2]
스페인어 Anarquismo
아랍어 الأناركية

1. 개요2. 통념
2.1. 딜레마와 사회 혁명
3. 탄생 배경과 영향4. 허무주의와 다른 점5. 리버테리언과의 관계
5.1. 미국의 리버테리언과 아나키즘
5.1.1. 자유시장 무정부주의
6. 역사7. 흑색 테러8. 소련 붕괴의 파장9. 상징
9.1. 서클 A9.2. 검은 깃발9.3. 졸리 로저9.4. Bisected Flag
10. 아나키즘의 분파들11. 대표적인 아나키스트12. 비판과 반론
12.1. 사유체계의 비과학성12.2. 영웅주의적 사고관12.3. 공동체 지향 아나키즘의 모순점
13. '아나키즘 운동'에 있어서의 단결력14. 다른 사상과 관련된 사항15. 창작물16. 외부 링크17. 같이보기1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영어: No gods, no masters[3]
프랑스어: Ni dieu ni maître![4]
신도, 주인도 없다.[5][6]
Imagine there's no countries
국가가 없는 걸 상상해봐요
It isn't hard to do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Nothing to kill or die for
무언가를 위해 죽이거나 죽을 필요 없고
No religion too
종교도 필요하지 않겠죠
Imagine all the people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living life in peace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걸

You may say I'm a dreamer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말하겠지만
but I'm not the only one
난 혼자가 아니에요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요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예요
존 레논[7], - Imagine-
모든 도의적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는 아나키스트이다.
폴 애브리치
아나키즘(Anarchism)은 Anarchy+ism으로 구성된 조어로, 고전 그리스어 ἄναρχος(ánarchos)에서 유래하였다.[8] 어원상으로는 ἀν(án, "없는")과 άρχος(árchos, "지배자")가 합쳐진 단어이다.[9] 즉, 지배자가 없다는 뜻이다.

2. 통념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아나키즘은 그 색이 아주 다양하고 변종도 많아, 견해의 일치를 보이는 둘 이상의 개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나키스트가 앞서 언급된 가치들의 추구를 하나의 뿌리로서 공유한다는 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나키즘에서 가장 최고로 치는 요소들 중 대표는 단연 자유와 평등, 사회의 안녕으로, 계몽주의적, 이상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반면에, 아나키즘이 가장 격렬하게 부정하는 요소들 중 대표로는 국가주의, 권위주의, 민족주의[10] 등이 있다. 특히 이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파시즘과는 완전히 극상성이며, 아나키스트 개인이나 단체가 무력을 통해 파시스트 세력과 싸운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나키즘은 문자 그대로 모든 형태의 정부를 부정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정부 중 하나인 민주정 역시 독재정에 비해 나을 뿐 결국 넘어서야 할 벽인 것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요컨데 노예(민중)가 주인을 스스로 뽑을 수 있음이 그들이 자유로움을 뜻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나키즘은 과장없이 모두까기 성격을 띠는데, 이는 아나키즘이 보편적으로 부적절하며 불량한 사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해의 부재로 인해 아나키즘이 무질서를 추구하는 사상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은데, 전술하였듯 그것과는 정 반대이다.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것은 정부와 지배와 통치가 "필요 없어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지, 덮어놓고 다 때려부순 후 약육강식으로 살자는 무질서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국가, 정부를 질서와 동일시하는[11] 보편적 인식이 이러한 오해를 국내에 확산하는 데 한몫했고, 외국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

'무정부상태'를 뜻하는 아나키(Anarchy)에서 연상해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12] 그러나 아나키즘은 정부의 권력 역시도 부정하는 것이지, 정부의 권력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무정부'는 아나키즘의 목표 중 하나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다.[13] 아나키즘이 부정하는 권위는 정부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자본, 군대, 기타 단체 등 강압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종류의 권위에도 해당될 수 있다. '무정부주의'라는 번역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면 '통치 주체를 부정하는 자유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것 정도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민중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서로 다른 견해와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결코 어떤 질문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모두 일치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민중의 정부”라고 해 봐야, 기껏 다수파의 정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주의안정자이든 그렇지 않든 민주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소수파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점을 추가할 것이다. 그러나 권리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다수파이기 때문에 소수파는 다수파가 원하고 허락하는 권리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수의 의지에 대한 유일한 제한은 소수파가 내세우는 저항일 것이다. 이것은 비록 다수파가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권리가 있지만, 모든 사람의 노력을 그 자신의 목적에 맞추려는 투쟁이 항상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무력을 통하여 법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권리를 의미한다. 경찰력이 없다면 정부 또한 없을 것이다.
정의상 다수파는 후진적이고 보수적이며 새로운 것의 적이자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게으르며, 동시에 충동적이고 절제가 없으며 선동당하기 쉽고 자신의 광신과 비합리적인 공포에 쉽게 사로잡힌다.[14] 한 명 혹은 소수의 개인들에게서 비롯된 아이디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욕구에 의해 대체되어 이미 구식이 되고 진보의 장애물이 된 이후에야 다수파에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수파의 정부를 원해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다수파가 소수를 억압하고 진보를 방해하는 것이 부당하고 해롭듯이 그들이 선한 존재일지라도 소수파가 무력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는 것은 강요라는 그 사실 자체로 인하여 혐오감과 반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더욱 부당하고 해롭다.

여러 종류의 소수파가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기적인 소수파가 있고, 절대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는 광신자가 있으며, 단순한 어리석음 일지라도 구원의 길로 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선한 의도로 타인에게 강요하길 바라는 이들도 있다. 역사를 되돌리고자 하는 반동적 소수파도 있으며 혁명적 소수파 역시 존재한다.

어떤 소수파가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가?

합법적이든 불법적으로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선, 사람은 그의 이데올로기적 짐을 상당 부분 버려야 할 것이며 도덕적 양심을 내던져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잡은 이후의 문제는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국가의 공통된 관심사를 만들어낼 것이며, 정부의 구성원들에게 특권을 부여할 것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를 압살할 것이다. 아마 이것은 국가의 이익을 말할테지만, 언제나 자유의 파괴가 동반될 것이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자신의 원칙과 동지들을 배반한 것을 떠올려보라.

이것이 우리가 다수파도 소수파의 정부도 원하지 않는 이유다. 민주주의도 아니고 독재도 아닌 것이다.

우린 공권력을 제거하길 원한다. 우린 모든 사람의 자유와 자유로운 협약을 바라며, 이것은 아무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고 모두가 바람직한 사회의 운영에 동참할 때 나타날 것이다. 우린 아나키를 바란다.
에리코 말라테스타 - 민주주의자도, 독재자도 아닌: 아나키스트들[출처2]
여기서 말라테스타의 주장은 정부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상당히 부정적인데, 아나키스트들은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실제로는 자신을 지배할 인간("대통령"이든 의회이든 간에)을 뽑는 행위에 불과함에도 그것을 자유와 평등이라고 사기치는 기만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매우 냉소적이다.[출처3] 아나키스트들은 "개인의 주권자는 그 자신"이라는 개념을 조직적 차원까지 확대시키기 때문에, 자유 없는 평등, 노동자 통제[17] 없는 사회주의, 자율권을 억압하는 공의 같은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입장을 좀 더 간결하게 표현한 문구가 바쿠닌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다. "사람들이 몽둥이로 맞고 있을 때, 그 몽둥이가 “민중의 지팡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행복해하진 않을 것이다."[출처4]

아나키즘이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나키즘의 의미를 완전히 포괄하지 않기 때문이지, 아나키즘이 무정부가 아니기 때문은 아니다. 아나키즘은 근본적으로 모든 정부는 그릇되었다는 무정부/ 반국가주의에 기반하는데 이는 아나키즘의 이데올로기적 분석에 의하면 국가는 경제적으로는 기성 기득권 자본가 세력의 특권을 유지하고, 사회·정치적으론 폭력의 합법성을 독점해서 개인의 자율권을 범죄화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본질과 가장 밀접한 도덕성을 천명한다. 이 점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사람은 안정된 사업과 정직한 거래를 수행하며 도덕적 삶을 영위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기꾼, 매춘부, 도둑, 강도와 살인자, 도박꾼, 무일푼의 실업자, 무모한 자는 모두 부덕하다. 선량한 부르주아 시민은 저런 "부도덕한" 이들에 대하여 자신의 가장 깊은 분노를 표현한다. 그들 모두는 안정된 주거와 사업, 안정되고 존경받을 만한 삶, 일정한 수입이 결여된 자들이다. 요컨대, 그들의 존재는 안정된 기반 위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위험한 개인들이나 외로운 유랑자들, 즉 위험한 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다. 이들은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 "개별적인 트러블메이커들"이자 "잃을 것이 없기에"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를테면 가족관계의 형성은 서약서에 사람을 속박하는 행위지만, 매춘부는 그렇지 않다. 도박꾼은 게임에서 모든것을 걸고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지만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시민에게 의심스럽고 적대적이며, 위험해 보이는 자들은 모두 “방랑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수 있다. 모든 방랑자들의 삶의 방식은 부르주아를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들 중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제한된 공간에 기꺼이 만족하기에는 그것을 너무 비좁고 억압적인 것으로 파악하기 시작하는 지적인 방랑자들(Intellectual Vagabonds)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침해할 수 없는 진리로 표명되며 위안과 안도감을 주는 안전한 사고방식과 사상의 경계 안에 머무르는 대신, 이 괴팍한 방랑자들은 모든 전통의 경계를 뛰어 넘고서 무례한 비판과 길들여지지 않는 회의론과 함께 그들의 반역의 정신을 드러낸다. 그들이 유량하고, 격정적이며, 변덕스러운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형성하며,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불안정한 본질의 목소리를 낼 때, 이들은 “통제할 수 없는 자들”이라 불리운다.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빈곤 퇴치를 바란다는 것을 믿는다면 실수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부르주아는 “재화는 지금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으며, 하느님의 현명한 결정에 따라 언제나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라는 비교할 바 없이 불편하지 않는 믿음에 따라 자신을 돕는다. 골목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빈곤은 기껏해야 몇 푼의 구호금을 주거나 “근면하고 쓸만한” 청년에게 일과 식량을 제공하는 한, 참된 부르주아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빈곤층이 더 이상 조용히 행동하지 않고 동요하며 혁신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조용한 즐거움이 방해받게 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방랑자들은 잡아서 가장 어두운 감옥에 가둬라! 저자는 “불만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이 기존의 법률에 반하도록” 하길 원한다. 돌로 쳐라! 돌로 쳐라!

시대가 모순으로 가득찬다면 어떤 이들은 이득을 얻지만 다른 이들은 고통받게 된다. 중세 시대에는 교회가 지상에서 모든 권력과 패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인들 사이의 일반적인 오류였다. 지배계급 역시 평민들 만큼 이 진리를 믿었으며 동일한 오류에 홀려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지배계급은 권력의 이점을 가지고 있었고, 평민들은 복종의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고난이 사람을 현명하게 만든다”는 속담이 있듯이 결국 평민들은 현명하게 성장했고 더 이상 중세의 “진리를” 믿지 않게 되었다. 이와 동일한 관계가 부르주아와 노동계급 사이에 발견된다.
막스 슈티르너[출처5]
여기서 경제적인 면에서 국가주의 비판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아나키즘적인 성향을 보인 이유와 같다. 이건 그냥 비슷한게 아니라 마르크스가 초기에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막스 슈티르너의 자유주의 국가 비판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20] 그래서 아나키스트 입장에서 권위주의의 끝판왕(합법성의 독점[출처6])인 국가는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아나키즘을 책이나 운동으로 배우지 않고, 서브컬처로 배워서 패션 코드로 사용하는 인간들 중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지만[22], 주류인 공산주의적 아나키스트부터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자칭 하는 미국의 자유지상주의자들(아나코 캐피탈리스트)까지 어떤 아나키스트도 아나키즘의 반 국가주의(anti-statism)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게 아나키즘의 핵심 정의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소리가, 아나키즘의 핵심 정의를 버려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한국에서는 내전과 독재정권으로 인해 급진 사상의 씨가 말랐고,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민족주의의 건국서사로 이용당해온 상황이라 이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자칭하면서 정부, 경찰, 합법, 불법[23]의 기준 가르기 좋아(그게 국가주의다)하는 인간들이 널렸는데 아나키스트 입장에서는 이적행위다. 미국의 해커인 목시 말린스파이크(Moxie Marlinspike)라는 인물은 이점에 대해서 다음 처럼 언급(2013년)하기도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CO와 WA주에서의 마리화나 합법화와 더불어 점점 많은 수의 주들이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는 등의 많은 법률적 변화가 미국에서 일어났다.

그 주들의 과반수 이상이 그런 변화를 바랐기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유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적인 승리로서 이것을 인용한다. 이건 물론 사실이고 그런 법안이 통과 됐다.

이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은 그런 법적 승리들은 법을 어길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 했으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네소타의 경우 올해에 동성 결혼이 법제화 되었지만, 소도미 법에따라 2001년 까지 동성애가 범죄였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변화로 인해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CO와 WA에서는 개인적인 용도의 사용도 분명 범죄였다.

법집행이 100% 효율적인 대안적 디스토피아를 상상해 보라, 그곳에서는 모든 잠재적 범죄자들이 즉시 식별되고 체포돼서 감옥에 갇힐 것이다. 미시시피, 코네티컷, 워싱턴 같은 주들이 생겨난 1850년대 이래로 이처럼 완벽히 효율적인 법 집행이 이루어졌다면, 그런 세계에서는 우리가 경험한 최근의 변화를 이루어낼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마리화나는 합법이어야 한다고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동성 섹스를 하거나 보지 않았다면 동성 결혼이 법제화 되어야 한다고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출처7]
목시 말린스파이크 (Moxie Marlinspike)
주류 아나키스트나 미국의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나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주장하는 바가 유사하다. 아나키스트들이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이지 자유를 강조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정치 전략상으로 "좌파 단결", "우파 단결" 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유지상주의자 단결"이라는 개념도 존재한다. 그나마 예외적인 사례라면 자유지상주의적 가능주의(libertarian possibilism)란게 있는데, 미국의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자유당을 중심으로 의회활동을 하는 것 처럼 아나키즘 운동에서도 스페인에서 유사한 개량주의적 의회참여 활동[25]이 존재했고, 물론 비타협적 아나키스트들에게 사이비라고 비판받았다. 하지만 프랑코의 쿠데타 이후 아나키스트들에게 사실상 망한 이론 취급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아나키즘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하승우 박사가 아나키즘은 무정부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아나키즘은 정당활동 의회정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상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자칭하면서 사민주의자[26]이라고 주장하는 중2병들이 대거 양산되는 계기가 된다. 이게 하도 어이가 없었는지 스탈린주의 조직인 노사과연에서 직접 고전 아나키스트들의 글을 인용하며 아나키즘은 '그런 거 아니라고 하박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다른 식으로 예를 들면 리버테리어니즘을 개인주의 번역한다면 많은 리버테리언은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주의라는 번역이 리버테리어니즘을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오역이기 때문이지 리버테리어니즘이 개인주의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나코 캐피탈리즘이나 내셔널 아나키즘 등 무정부주의를 추구하는 우파 사상들은 아나키즘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있다.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때는 집권자들이 자신들에게 하는 '혼돈+주의자+놈들(아나키스트)'이라는 비난에 대한 "그래 우리를 아나키스트라고 불러라.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식의 반항과 도발의 의미로 처음 쓰였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때도 아나키스트라는 말이 '사회 혼란을 유발하는 반혁명주의자들'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아나키즘/samegaesekkidifferentcollar.jpg
[번역1]
Las formas cambian, los sometidos somos siempre los mismos.
형태만 변할 뿐이지, 우리를 핍박하는 건 변치 않는다.


Mismo perro - Distinto collar
목줄은 달라도 는 같다[28]
아나키스트들이 가지는 다른 이데올로기( 파시즘, 자본주의 민주주의, 레닌주의 등)에 대한 역사적, 사상적 인식과 비판을 한방에 깔끔하게 표현한 짤방. 해당 이미지는 전국 노동 연맹(CNT) 소속의 한 스페인 네티즌이 편집한 것이다.[29]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적 억압의 문제는 권위주의적 체제 자체의 문제이지, 입으로 우리 당은 민주주의, 저쪽 당은 공산주의 따위 갑론을박은 지배 계급 내의 무의미한 부차적인 차이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한자 역어인 '무정부주의'라는 단어가 얼핏 보면 무질서를 숭배하며 정부를 없애 세상이 혼돈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상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완벽한 오해다. 아나키즘 소개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들

진정한(주류) 아나키즘은 개인이 권력, 권위, 통제기관으로부터 억압되지 않고 상호부조와 상호이해로 무장하게 되면 대동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도덕, 철학적 관점에 기반하여, 인간 사회의 조직은 수평적인 동료 관계에 기반한 해당 공동체의 직접적인 구성원들의 전적인 자치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사상이다. 일견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이론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체주의, 자본주의, 권위주의, 레닌주의 등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꿈꾸던 인간들을 핍박할 때 그들의 위안이 되고 방패가 되었던 것이 바로 아나키즘이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이 아나키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아나키스트가 된 다수의 사람들은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던 시절,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 후 공산주의를 가장한 전체주의와 그로 인한 반공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냉전 시절에도 여러 곳에서 반핵반전 운동을 지원했다.

그런 점에서 아나키즘은 상당히 '열린' 개념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자신의 사상을 아나키즘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두 부류로 나뉜다.

첫번째 경우가 반조직, 비조직적 아나키스트고, 두번째 경우가 조직주의적 아나키스트라고 볼수 있는데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갈등이다. 조직적 아나키스트들은 변화를 위해선 제대로된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비조직적 아나키스트들은 조직에 대한 강조가 국가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직적 아나키즘의 대표적인 주장은 아나코 생디칼리슴과 정강주의 등이있으며, 비조직적 아나키스트는 반드시 그런건 아니지만 조직적 아나키스트에 비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성향이 강하다. 조직에 대한 문제는 아나코 생디칼리슴(이 사람들도 이데올로기적으론 공산주의자다)과 아나코 코뮤니즘이 굳이 나누어 분류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라테스타는 마흐노가 정강주의를 주장했을 때 중앙에서 제어되는 조직에 대한 강조는 정부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출처8] 조직주의냐, 반조직이냐 하는 문제는 특정한 분파의 아나키즘에만 연관된 문제가 아니며 모든 경향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다.

이념적 지향성과 철학적 기반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체주의, 국가주의 권위주의에서 파생 된 이념과 상극이고, 같은 좌파라고 쉴드 쳐주고 할 것 없이 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이즘 등의 국가주의적 좌파 사상 또한 국가자본주의 체제[31]라고 부르며, 권위주의적인 수직적 권력 구조에 혁명의 기치를 걸었던 것 자체가 인식적 오류라며 비판적이다.

전제군주정, 신권 정치국가, 파시즘 같은 노골적인 반동적 사상들과는 말할 것도 없이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이며, 사민주의 민주사회주의 같은 온건 좌파 노선과도 프롤레타리아의 자발적인 혁명적 역량을 국가란 수직적 권력 체계가 "옛다 먹어라" 하며 던져주는 사탕발림으로 말살하려고 드는 이념이라며 상대적이지만 회의적으로 본다. 좋게 말하면 지금까지 실존해 왔던 주류 정치 이데올로기 전반의 한계를 비판하며 이를 뛰어넘는 차원의 시민-노동 사회 조직을 요구해 왔고, 반대로 아나키스트들에게 까인 진영, 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 현실사회주의 계통에게서는 막상 지들이 역사적 순간에 중요한 일은 거의 안해봤으면서 입만 산 모두까기 인형이란 식으로 질시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사회주의권의 비판은 사실 러시아든, 스페인이든, 쿠바든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서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레닌주의 계통 조직들이 공존했던 곳에서는 크론슈타트 봉기에서든, 마흐노 자유령과 바르셀로나 5월 사태에서의 통수짓이든 레닌주의 진영에서 좌파 내 지분 독점을 위해 뒤통수 치고 오히려 우익 반동들이 눈 앞에 시퍼런데도 제 살 깎아가며 아나키스트들부터 때려잡으려고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좌파 진영에서 할 말은 아니다.

2.1. 딜레마와 사회 혁명

이로서 우리의 작업은 마무리된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선 우리는 이 결의안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건설적 의무에 관한 확정적이고 폐쇄적인 기준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초안위원회가 희망하는 것은 더욱 온건한 것이다. 총회가 이 결의안을 모든 노동계급이 수행해야 하는 즉각적 계획에 대한 일반적 노선에 관한 결의안으로, 인류의 총체적 해방을 위한 출발점으로 바라보아 준다면 고맙겠다.

더욱 지성적이고 용감하며 역량이 넘치는 누군가가 이 작업을 더욱 진척시키도록 하자.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에 관한 총연맹의 입장 1936년 CNT 사라고사 총회의 결의안
아나키즘은 근본적으로 반권위, 반조직을 주장한다. 때문에 이제껏 공동체의 필수요소로 취급되어 온 그러한 요소들을 배재하고서 어떻게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간다. 아나키즘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정부, 군대, 경찰과 같은 기관들의 역할과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아나키스트가 원하는 건 결코 혼란과 무질서가 아니다. 이것은 허무주의자들이 바라는 것.[32] 아나키즘도 조화로운 질서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참된 질서는 소공동체의 자치적 질서이지 국가 권력, 시장이 강요하는 질서는 인간 개개인을 소외시키고 민중을 착취하는 질서이므로 이는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은 소국과민을 주장한 노자의 사상과도 매우 유사하다. 사실 도가 사상 중에서도 장자의 사상은 아나키즘과 흡사한 점이 많다고 평하는 학자도 많다.[33] 여튼 이런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사상은 동서양, 고중근현대를 막론하고 있어온 보편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은 아나키스트들마다 이러한 자치공동체를 만들 기본적인 요소인 사회혁명의 개념이 다르다. 분명 아나키스트들은 그저 머리만 바꾸는 혁명은 또다른 독재를 낳으니 무의미하다고 비판하고 아무 것도 없는 무질서 역시 개판이므로 달성할 목표로 두지 않는다. 특히 소말리아와 같은 곳은 아나키가 아니라 그냥 아노미 상태다. 되려 이러한 무질서는 자본주의에 더 입각해서 돈받고 소년병을 굴리거나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럼 이러한 사회혁명에 대해 아나키스트들은 어떠한 주장을 남겼을까? 사실 사회혁명은 그 개념 자체도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단순히 하나의 행동 즉 폭력 행위와 같은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번역하는 것, 아나키즘을 알리는 것, 학교를 세워 새로운 형식의 교육을 알려주는 것,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그들의 권리 의식을 복돋아주는 것, 나아가서는 1인 시위 폭력적인 테러등도 모두 사회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약간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아래에 후술해보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흔히 에고이즘이라 말하는 이들은 막스 슈티르너의 영향을 받아 관념론적인면을 많이 띤다.
국가, 사회, 정부, 자본주의등은 모두 유령이라는 그의 주장에 맞게 그들은 개인의 해방은 개인의 깨달음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내가 에고이스트인걸 깨닫게 되면 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렇게 된다면 더이상 저런 유령들에게 고통받을 이유는 없다.라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조직적인면을 많이 배제한다. 특히 노동조합과 같은 것들조차도 권위적이라고 하는 이들은 개인의 행동에 더 입각하고 대부분이 테러에 빠지고 심하면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영웅적 테러리즘[34]에 빠지기도 한다.

주류 아나키즘을 차지하는 사회적 아나키즘부류의 사회혁명은 위에서 말한 그 넒은 사회혁명을 대부분을 포함한다.
아나키즘 조직을 만들고 아나키스트들이 노동조합에 직접 침투하고 대중들을 지원해주고 총파업에 같이 투쟁한다던지 좀 더 비권위적이라면 학교를 세우거나 평화시위를 하는 이들[35]도 있으며 누구는 더 많은 조직원들을 몰아서 큰 대규모 시위를 연다거나 등의 행위를 한다. 하지만 행위만 한다면 변화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연대의식이 길러지고 이 것이 사회혁명의 초점이 된다고 말했다. 즉 시위, 투쟁, 파업등에 참가하면서 성별이나 인종등에 대한 차별들을 모두 제처두고 같은 노동자 계급이라는 것에 묶여서 투쟁하고 마침내 그럼으로써 진정으로 성별과 인종등에 사회적인 권위를 철폐하고 마침내 진정으로 사회혁명을 이룬다는 주장이다.[36]그렇기에 아나키스트들은 전위당식의 위에서의 혁명을 매우 싫어한다. 전위당식 이른바 레닌식의 전술은 결국 사회혁명을 만들지 못하고 강제로 위에서의 변화만이 이끌어저 사람들 속에 남아있는 사회적 권위에 의한 의식을 무너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37]

그리고 이러한 사회혁명은 한 번에 성공 끝. 이 아니라 지속해서 계속해서 이루어저야한다고 주장한다. 한 번에 사회혁명이 성공해서 아나키즘 사회가 이루어진다 해도 미래에서는 또다른 그 때에 맞는 권위등이 나올 수 있고 하지만 이러한 혁명이 엎어저 다시 국가체계가 올 수도 있지만 연대의식을 통해서 사회혁명의 초석을 닦은 자유인들은 그러한 권위에 맞서 계속해서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기존에 성공한 혁명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맹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으로써 아나키즘은 나아가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 완전하게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즉 이 과정 자체가 바로 아나키즘이라는 뜻이다.[38]

한편 아나키즘 사회에서 국가에 대한 복속을 요구하는 이들은 어떻게 할 건가? 강압적으로 해결 못 할 텐데?라는 반박도 있는데 아나키즘이 실현된 사회라면 그러한 복속을 요구할 정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국가 체제의 부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니들끼리 따로 국가주의적인 집단을 만들고 살아라'고 내보내버릴 수도 있으며, 만일 이들이 아나키스트 사회를 위협한다면 다시금 그 권위를 무너뜨리면 되는 일이다. 말했듯이 아나키즘은 강압적인 권위를 부정한다. 어떤 사람을 공동체에 묶어두는 것 역시 그러한 부당 권위에 해당한다. 아나키즘에서 말하는 자유는 대단히 광범위한 것으로 표현의 자유는 물론, 탈퇴와 가입의 자유 역시 포함한다.

3. 탄생 배경과 영향

그 탄생 배경상 사회주의, 공산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반민족주의 심지어 자본주의(머리 로스바드, 라이산더 스푸너 등을 필두로 한 북미 오스트리아 학파) 등의 사상 집단과 활동을 함께 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며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4. 허무주의와 다른 점

허무주의자(니힐리스트)는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아무리 존경받는 원칙이라도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정치 운동에서 니힐리즘이란 용어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아버지와 아들》의 주인공인 바자로프가 자신을 니힐리스트라고 규정한 이후, 러시아 급진파들이 그 용어를 택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들 입장에서 당시 러시아의 후진적인 문명은 모든 것이 무가치한 쓰레기로 여겨졌기 때문에 니힐리즘이라는 용어를 택한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에서 아나키즘과 니힐리즘을 구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크로포트킨 또한 니힐리즘 성향의 단체인 차이코프스키단의 일원이었다. 러시아의 니힐리즘은 그지역의 자생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에 발생 계보상으로는 니체 등의 고전 니힐리즘 사상가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바쿠닌의 독일에서의 반동이라는 글에서는 "파괴의 열정은 또한 창조의 열정"이라는 이후 니힐리스트들[39]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것으로 간주되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글은 니체가 태어나기 2년 전(1842)에 작성되었다.

이후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니힐리스트라는 용어는 희망과 무관하게 반란과 투쟁을 강조하는 아나키스트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되는데, 오늘날에는 2008년의 국제적인 경제위기 이후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아나키스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이들은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인 마인드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사회적 아나키스트들과 사이가 좋지는 않다. 여기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Serafinski라는 아나키스트의 Blessed is the flame이라는 글을 참고하라.

굳이 서로 구분하여 정리하려고 시도해보면 러시아 니힐리즘은 하나의 구체적인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라기 보단 '창조를 위한 파괴'란 관념 자체를 철학적 뿐만 아니라 도덕적, 미학적 관점에서도 긍정하고 이를 적극 추구하는 문화적 태도, 사조에 가깝다.

5. 리버테리언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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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단은 영국의 아나키스트 저널 Freedom press의 vol. 69, No. 23-4 부분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이다.

가끔씩 아나키스트들은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 리버테리언 소셜리즘(Libirtarian Socialism)' 또는 '리버테리언 커뮤니즘(Libirtarian Communism)'을 아나키즘의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하며, 아나키즘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아나키즘의 목적이 자유와 권리를 위해 모든 권위적 체계, 사회적 기관, 사회 관계를 끝내는 것인 이상, 이러한 용법이 특이한건 아니다.

현대적 용례와는 다르게 70년대 이전까지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자본주의 지지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었으나, 70년대 이후 미국을 기점으로 의미 변형이 발생하였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머레이 북친은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현대 미국 우익 프로프라이테리언[출처9]이 아니라, 19세기 유럽 아나키스트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었다."[출처10]

최초로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아나키스트 저널은 Le Libertaire, Journal du Mouvement Social[보기1][보기2]이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미국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것은 미국 뉴욕에서 1858년 설립되어 1861년까지 프랑스 아나코-코뮤니스트[44][45] 조셉 데쟉크(Joseph Dejacque)에 의하여 출판되었다. 용어에 대한 다음 기록은 유럽에 나타났다. 프랑스 르 아브르 지역 아나키스트 의회에서 '리버테리언 커뮤니즘'이라는 형태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1880년, 11월 16-22일). 다음해 1월 프랑스어 선언문 "Libertarian or Anarchist Communism"이 발간되었다. 마침내 1895년, 주요한 아나키스트인 세바스티앙 포르(Sebastien Faure)와 루이즈 미셸에 의하여 Le Libertaire가 프랑스에 출판되었다.[출처11]

네틀라우(Nettlau)의 책이 1932년에 쓰여져 1934년에 수정된 것에 유의해야 한다. 조지 우드콕(George Woodcock)은 그의 저서에서 데쟉크와 포르에 관련하여 동일한 사실을 보고했다.[출처12] 중요한 것은, 우드콕의 저술은 1962년이 쓰여졌지만 우익이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더욱 최근에, 로버트 그레이엄(Robert Graham)은 데쟉크의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그는 최초로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를 아나키스트와 동일한 용어로 사용한 인물이였다. 그동안 포르와 미셸은 아나키스트의 동의어로 리버테리언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대중화 했다."[출처13]

무슨 말이냐면, 루이즈 미셸은 아나키스트들이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또다른 용어로 사용하도록 연관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우리의 상징이 되는 검은 깃발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깃발은 루이즈 미셸에 의하여 대중화 됐다. 포르는 이후 1903년 리버테리언 커뮤니즘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미국에서의 용례를 보면 벤자민 터커[49](Benjamin Tucker, 주요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가 1897년 2월에 논의한 토지 사용에 대한 "리버테리언적 해결책[원제1]"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역시 자본주의자(즉 우익 리버테리언)를 공격한다.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토지 독점권"이다. 좀 더 이후로 가면 "토지 보유에 대한 리버테리언적 원칙[원제2]"이 있다. 여기에도 아나키스트의 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생각이 확실하게 적용되어 있다. [출처14]

1920년대 아나코 커뮤니스트 바르톨로메오 반제티의 주장에서도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사회주의자다. 다른 사회주의자들 이를테면 사민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I.W.W가 사회주의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주의자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단한가지 주요한 차이는 그들이 권위주의자인 반면 우리는 리버테리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국가와 정부를 믿지만, 우리는 믿지 않는다.
바르톨로메오 반제티[출처15]

흥미롭게도 루돌프 로커(Rudolf Rocker)가 1949년 LA에서 출간한 책에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스테판 P. 앤드류스(Stephan P. Andrews)가 "가장 대재다능하고 중요한 리버테리언 소셜리즘의 주창자"라고 저술되어 있다.[출처16] 이것은[55] 1909년 영어로 번역된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서에서도 등장한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아나키즘의 원칙... 그것은 기원했다... 위대한 프랑스 혁명의 행위에 안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여 있다. "오늘날의 리버테리언 역시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출처17]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의 가장 유명한 사용,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아나키스트 운동은, 스페인의 아나코-생디칼리스트 CNT에 의한 것이였다. 1919년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에 대한 목적을 선언한 이후, CNT는 1936년 5월 사라고사에서 전국대회를 개최했고, 여기에는 982개의 노동조합과 55만명의 노조원을 대표하는 649명의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여기서 결의된 것중 한가지는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연방에 대한 개념(The Confederal Conception of Libertarian Communism)"이였다. 이것은 Isaac Puente을 중심으로 4년 전에 출판되어, 여러 언어로 널리 번역되고 재간된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에 대한 동명의 팜플릿과 관련된 결의안 이였다. 그 팜플릿이 발간된 해, 즉 1932년 Federacion Iberica de Juventudes Libertarias(Iberian Federation of libertarian Youth, 이베리아 리버테리언 청년 연합)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설립되었는데, 여기서도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찾아 볼 수 있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단지 아나키스트를 자처 하는 사람들 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리베테리언이라고 묘사하는 좌파의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은 아나키즘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안 모리스 브린톤(Maurice Brinton)와 그가 멤버로 소속되어 있던 Solidarity이라는 그룹은,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리버테리언으로 설명했으며, 그들이 주장한 사회주의의 형태인 분산화와 자주관리는 아나키즘과 구별하기 어렵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가 아나키즘보다 더욱 방대한 용례로 사용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사회주의에 초점을 맞춘 좌파들에 의하여 사용되었었다.

잘 알려져 있고 잘 문서화 되어 있는 '리버테리언'이라는 단어의 사용례는 본래 아나키스트들(그리고 좌파에 가까운 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고, 현대와는 달리 기록에 의하면 70년대 이전까지는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이 자신을 가리키는 이명에 가까웠다.

요약하면 우리의 정치적 관점에서 사회와 경제를 볼때 아나키스트들이 150여년이 넘도록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현실 정치, 운동판에서도 스페인이나 그리스 같이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주류 정치권의 관점에서도 아나키스트들이 상당한 세력을 유지 하고 있는 곳에 가면 거리낌 없이 '아나키스트'와 '리버테리언'이란 단어를 번갈아 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쎄네띠스따나[57] 아테네의 엑사르케이아Exarcheia의 아나키스트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친자본주의적 리버테리언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저 미국에서 자본가애들도 리버테리언이라고 부르는 거 어떻게 생각하심?'하고 물어보면 친절하고도 간단하게 "미국 친구들이 먹은 햄버거 중 몇개가 상해서 뇌까지 파고 든거겠지"라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자기들은 저작권법에 지적재산이라고 더럽게 따지면서 지들이 남의 상표 도명해 가는 건 괜찮다는 거지. 자본가들다운 발상이잖아?"라는 식의 대답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이걸 미국측에서 원래 유럽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던 단어를 도용해갔다고 하기도 뭣한게, 현대 거대 자본주의 세계제국의 맹주인 미국을 보면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 20세기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아나키즘 세력이 강성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반 미국 급진 노동운동계를 주도했던 IWW만 하더라도 아나코생디칼리스트 성향 혁명 노동조합이었고, 옘마 골드만, 알렉산드르 베르크만, 루돌프 로커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유수의 아나키스트 지식인, 혁명가들이 미국을 거점으로 두고 활동했으며, 헤이마켓 사건, 사코와 반제티 사건 처럼 미국 노동운동사의 굵직한 노동 쟁의 사건의 중심에도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상당수가 아예 유럽에서 나고 자라다가 망명, 이민의 형태로 미국으로 온 경우였거나,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나키스트들도 저런 이민자 사회의 노동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졌기 때문에 이 당시 아나키즘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조금 나중에 CNT를 통한 커넥션이 생긴후 스페인과 중남미까지 오가며 상당히 유기적인 국제적 발전을 보였다. 다만 이 와중에 미국의 아나키즘 조류 중에는 전통적인 좌파적 관점의 노동 문제보다 윤리 철학적, 사회학적,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아나키즘의 가능성에 집중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벤자민 터커등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긴 했는데, 이들도 딱히 저런 계급, 경제적 의미의 좌파로서 아나키즘을 딱히 배격한 것도 아니다.

리버테리언이란 단어가 원래 반권위주의 좌파진영의 단어에서 영미 자본주의 지식인들이 호칭이 되는 건 60년대~70년대 미국의 우파 경제학, 정치학 지식인들 중 머레이 로스바드를 필두로 한 자유주의적 인사들이 비록 기원은 좌파이긴 하나 굵직한 혁명적 역사를 남긴, 이 시점에서는 이미 2차대전과 냉전의 피바람을 겪은 후 세력이 현격하게 줄어든 한세대 이전의 리버테리언들을 주목하고, 이들의 혁명적 자유주의를 자유시장과 접목하려는 중에서 의미가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나코-자본주의의 대부격인 인물이며 저 리버테리언이란 단어가 변화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머레이 로스바드의 경우 실재로 정치적인 이념과는 별개로 반전, 반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동시대 제3세계 민족 해방 운동과 전세대 혁명가들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며, 체게바라가 죽었을 때도 미하일 바쿠닌 이후 가장 순수했던 혁명가이자 양키 제국주의에 맞선 위대한 영웅이 죽었다며 조문을 표하기도 했다[58]. 현대 미국에서 사용하는 의미로 리버테리언이란 단어가 굳은건 이렇게 경제적으로는 좌우익 스펙트럼 양쪽에 분포하던 급진적, 혁명적 자유주의 전통 중에서 원래 주류였던 좌파가 2차대전, 메카시즘, 냉전, 신자유주의를 연달아 겪으며 대중 정치판에서 싸그리 쓸려 나가면서 애초에 주로 학계나 지식인 사회에서만 활동하던 우익의 버전만이 남아 생긴 현상이다.

게다가 이런 미국에서 '리버테리안'이란 단어가 가지는 특성으로 인해 마치 우파적 리버테리안이 미국판 아나키스트인양 호도되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상술한 IWW도 정규 회원을 만 단위로 굴리던 20세기 초반에 비해서야 형편없이 작아졌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트럼프 시대의 안티파 운동이 보여주듯 그냥 보편적인 의미에서 반권위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인 아나키스트들도 미국에서 충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리버테리안' 용어 논쟁에 관해서도 '그냥 시대 물결 잘만난 힙스터 경제학자들이 도용해간거임'이란 유럽쪽의 인식도 공유하고.

5.1. 미국의 리버테리언과 아나키즘



여기서 론 폴은 1935년생이며, 미 공화당 하원의원 출신으로 공화당내 자유지상주의자들을 대표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세에 밀려 당선되진 못했지만. 랜드 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자유지상주의라는 사상이 아나키즘과 동의어라고 보긴 애매한 점[59]이 있지만, 실제로 흔히 리버테리어니즘(자유지상주의)의 본고장으로서 간주되는 미국의 대다수 리버테리언들도 로버트 노직이나 하이에크 등을 필두로 한 (흔히 우파 성향으로 간주되는) 최소국가주의자이기는 하나, 원론적 혹은 이론적 측면에서 넓게 보면 미국의 리버테리어니즘 또한 이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상술한 벤자민 터커가 있으며, 미국 리버테리어니즘의 아버지인 라이샌더 스푸너 또한 강도국가론을 주장한 전형적인 아나키스트다.

아나코 캐피탈리즘 문서 참고.

5.1.1. 자유시장 무정부주의[60]

Free-market anarchism 자유시장 (free-market)을 지지하지만 반자본주의 입장을 취한다. 국가의 개입없이 자발적인 상호 작용에 기반한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을 옹호하는 무정부주의이다. 개인주의 무정부주의의 한 형태이다. 좌파 자유지상주의에 속해있다.

자유시장 옹호와 반자본주의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이 관점에서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국가와 엘리트, 권위에 의한 국가자본주의로 보며 진정한 자유시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6.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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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흑색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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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련 붕괴의 파장

90년대 전후로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자 혼란에 빠진 권위주의 좌익진영과는 반대로,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사회주의를 근본에서 부정했기 때문에 뒷짐지고 있었지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아나키스트 운동에 '자칭 아나키스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하면서 공산국가와 레닌주의 혁명가들에 대한 변명을 일삼거나, 투표나 선거 및 의회주의를 주장하거나[61] 온갖 사이비 이론을 섞어 제3의 위치 같은 주장을 했기 때문에 전 세대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큰 반발을 이끌어낸다.

특히 아나키즘과 관련된 독립 운동가들의 영화가 개봉될 때 그경우가 심한데, 이 때문에 북미 아나키스트 조직인 'Crimethinc'에서 비평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일제 시대 당시 국외의 상해, 일본, 만주 등에서 독립 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나, 막상 해방 이후에 국내에선 남북한 모두 주요 정치, 여론 형성 집단으로 아나키스트들이 영향을 미쳤던 역사가 없어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식은 미미한 편이다.
"반공주의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아나키스트의 국가 공산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한 명백한 반대는 그들이 일반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는 또한 건국 서사 통합될 표적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일반적으로 국가와 사회에서 존경 받으며, 국가를 위한 영웅이자 순교자로서 교과서와 공공 기념물에 등장했다.

영화 박열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역시 그들 중의 하나다... 아나키스트가 건국 서사를 대표하게 될때, 그들의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에 찬동하며 누그러지며, 이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에 대한 암묵적인 승인을 조장하는데 사용된다...

그럼에도 박열과 후미코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민족주의자들을 분노하게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저작의 일부는 모든 이데올로기와 국가를 부정하면서 니힐리즘을 명백하게 표현했다. 두번째로, 그들은 저항에서 소수파의 일부였다. 동아시아에서 1920년대 중반까지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의 지배적인 흐름이였고, 이후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종류의 권위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고립되고 잊혀지게 되었다. 이런 일은 세계의 여러 곳에서 똑같이 이루어졌다.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공산주의 경향이 더욱 주요 했지만, 박열과 후미코는 소수파인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이자 니힐리스트였다."
'Crimethinc'의 비평글

아나키스트와 다른 좌파의 갈등은 스탈린도 아니고, 레닌도 아니고, 그들이 스승으로 삼는 마르크스의 결정론과 바쿠닌의 자유의지론(Libertarianism)이 충돌 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아무 사회주의 이론을 말하면서 아나키즘이라는 말만 붙이면 아나키즘이 되는 게 아니다. 아나키즘의 사회주의는 특정한 형태의 사회주의를 의미하며(리버테리언 스펙트럼의) 이것은 성평등 같은 다른 문제에 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의지론자는 환경이 아무리 적대적일 지라도 그의 자유의지는 현실이며 중대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의 행동이 깨어있는 우리가 보기에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며 그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주장될 수도 있다. 이 후자의 입장이 바로 레닌주의의 전위당론(Vanguardism)이라고 불리는 것이며 자유의지론과는 전면적으로 대립되는 주장이다.

문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은 결코 모든 권위에 대항하지 않고, 자신이 싫어하는 권위 그리고 거부했을 때 위험하지 않은 권위만 거부하면서 나머지 권위는 찬양하는 것[62]을 합리화 하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권위에 대항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를테면 일반인들에겐 충격적이겠지만 아나키스트 운동에는 감옥폐지론(prison abolition)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인 알프레도 보나노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감옥은 권력의 야만성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며, 다른 권력의 체계와 마찬가지로 파괴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점진적으로 사라질 수 없다. 미래에 이것을 폐지하기 위해서 점진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이는 누구든지 이를 영구히 영속시킬 것이다. 아나키스트의 혁명의 계획은 착취 받는 자들의 투쟁과 함께하며, 그들을 모든 학대와 억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며, 이는 감옥에 맞서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을 행동하게 하는 힘은 경제와 정치의 지배가 파괴된 더 나은 세계와 존엄한 삶에 대한 갈망이다. 그런 세계엔 감옥이 존재할 수 없다."[출처18]
알프레도 보나노
실제로 서구권에서는 아나키스트 단체나 아나키즘 성향이 있는 노동운동 단체들이 감옥의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감옥 노조를 설립하기도 하며, 이들의 감옥 파업(prison strike)을 지지하기도 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환경속에 가둬놓고 강제로 무언가를 시키는 것을 일종의 노예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 의회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나, 자연인 같은 사람들이 아나키스트 코스프레하는 현상은 기초적인 아나키즘 서적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상태에, 미디어에서 가볍에 표현되는 아나키스트의 이미지를 보고 말로만 아나키즘을 외치니까 발생하는 부작용인 것이다. 한국엔 현대 아나키즘은 물론이거니와 고전 아나키즘의 서적들 자체가 번역이 안 돼있고, 자칭 전문가들의 서적들은 해외의 글들을 인용하기 보단 한국에서 연구된 글들을 인용한다.

이런 사건은 여러 반응을 일으켰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2가지 대응 방안이 나타났다.

하나는 아나키스트 이데올로기를 그 근본에서 명확히 하려는 시도였는데 그 결과가 Anarchist FAQ라는 글이다. 이글은 영미권 아나키스트들의 주도로 작성되었고 지금도 조금씩 업데이트 되고 있는 아나키즘에 대한 가장 거대한 설명글이다. 저자들의 블로그 아나키스트 라이브러리의 아나키스 FAQ

또 다른 대응은 포스트 레프트(post-left)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쪽 사람들은 좌파를 미친듯이 까대면서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권위주의 좌익 이데올로기와 리버럴 이데올로기를 밀어 내면서 순수한 아나키즘을 유지하려고 시도했다. 포스트 레프트는 매우 포괄적인 용어로 단일한 입장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머레이 북친은 이들을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로 분류했다. 포스트 레프티즘에 속한 아나키스트들은 다른 아나키스트들이 보기에 뭔가를 하기 보단, 까대는 걸 중시하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불쾌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존재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적지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서구 아나키스트들의 운동을 보면 나타나는 블랙 블록을 비롯한 여러 전술적 입장은 본래 포스트 레프트 계열의 주장이다. 포스트 레프트 운동에서 가장 대중적인 프로파간다로 알려진 조직은 대표적으로 crimethinc가 있다.

9. 상징

9.1. 서클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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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심볼인 서클 A가 언제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 고전 아나키스트 그룹이 사용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20세기에 탄생한 심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확실한 이미지로서 남아있는 기록은 스페인 내전에서 활동한 종군기자 게르다 타로(gerda taro)[64][65]가 남긴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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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다 타로(1910~1937) 기록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서클A[66][67]
이후 1956년 11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결성된 아나키스트 그룹 AOA(Alliance Ouvriere Anarchiste)가 사용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64년 프랑스의 단체 '리버테리언 청년'[원제3]이 문서에 사용한 기록이 있고 1968년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탄생한 펑크문화는 서클A가 전세계로 퍼지는데 기여한다.

A와 O가 결합된 이 심볼은 일반적으로 프루동이 남긴 말에서 비롯됐다고 여겨진다. 그의 저서인 '어느 혁명가의 고백(The Confessions of a Revolutionary)'에 기록된, "Anarchy is Order Without Power"(아나키[69]는 권력없는 질서다.) 혹은 "anarchy is the mother of order"(아나키[70]는 질서의 어머니다.)가 이 심볼의 의미라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유럽언어에서 Anarchy는 A로 시작하는 단어로, Order는 O로 시작되는 단어로 번역된다. 아나키의 A와 오더의 O가 결합된 모노그램인 이 심볼은 아나키스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그것은 아나키즘이 말하는 것은 결코 무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놈 촘스키[71]는 아나키는 결코 무질서한 사회가 아닌 가능한 작은 통치와 제어로 작동되는 잘 조직된 사회에 대한 개념이라고 이야기한바 있다.

9.2. 검은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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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의 깃발은 검은색인가? 이것은 거부라는 그림자의 색이다.[72] 검은 깃발은 모든 깃발에 대한 거부이다. 이것은 인류의 화합을 가로막고 대립 시키는 국민성에 대한 거부이다. 검은색은 국가와 집단에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에 자행되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분노이자 울분이다. 이것은 가식과 위선, 그리고 정부의 비열한 속임수에 은밀하게 모욕되는 인간 지성의 분노이자 울분이다. 검은색은 또한 비탄이다. 검은 깃발은 안정과 위대한 영광을 위해 기꺼이 피를 마신 조국에 대한 거부이며, 국가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전쟁에서 살해된 셀 수 없는 희생자들의 비탄이다. 이것은 노동의 결과가 강탈되어, 또 다른 인간을 도살하고 억압하는데 쓰이게 되는 현실에 대한 비탄이다. 이것은 폭압적인 계층 사회 안에서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마저 병들어 버린 현실에 대한 비탄이며, 세계를 밝힐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꺼져버린 수많은 이성의 눈물이다. 이것은 위로할 길 없는 슬픔의 색이다.
"왜 검은색 깃발인가?", 하워드 알드리치[출처19]

아울러 아나키스트들은 검은색을 자신들의 고유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검은색이 노동을 상징했고 국가들의 국기가 화려한 색들로 채워진 반면 이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검은 깃발은 19세기 후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널리 쓰였다. 그리고 항복에 대한 반대, 깃발 자체에 대한 반대의 의미에서도 검은 깃발은 널리 쓰였다. 실제로 검은 깃발은 과거 산업사회 이전부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조직화된 노동자로서 존재해 왔던 집단은 다름아닌 광산 광부들인데 이들이 종종 검은 깃발을 광산 표식으로 쓰곤 했다.

덧붙여 프랑스 혁명 이후 붉은 깃발이 혁명을 상징했고 붉은 깃발이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상징으로 쓰이게 되자 19세기 중엽부터 사회주의와 확연히 다른 노선을 걷게 된 아나키스트들은 붉은 깃발을 사용하기 좀 뭐한 감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붉은 깃발도 자주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주의 계열과는 다른 상징을 필요로 하게 되자 아나키스트들이 검은 깃발을 사용하는 빈도 또한 늘어났다고 한다. 이때 굳이 혁명의 상징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끝까지 붉은 깃발을 사용한 표트르 크로포트킨 같은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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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깃발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최초로 등장했는지는 불명확하나, 아나키스트들이 어째서 그것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유명한 참가자였던 루이즈 미셸[75][76]이 아나키스트들에게 검은 깃발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다. 1882년 3월 18일 파리 코뮌을 기념하기 위한 공개 회의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붉은 깃발은 더이상 적절하지 않다. 고통의 검은 깃발을 들어 올리자."[출처20] 다음 해 그녀는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아나키스트 역사가 조지 우드콕(George Woodcock)에 따르면 1883년 3월 9일 프랑스 파리 실업자들의 시위에서 그녀는 검은 깃발을 들고 등장했다. 실업자들의 야외 시위는 500여명의 규모였고, 미셸은 검은 깃발을 들고 "빵과 일이 아니면 총알을!"[78]이라고 외치며 생제르망 도로를 시위대의 가장 앞에 서서 행진했다. 그리고 군중은 경찰에게 공격 당하기 전에 3개의 빵집을 공격했다. 그녀는 구속되어 6년의 독방 감금형을 선고 받았으나, 공공의 압력에 의해 곧 사면되었다.[출처21] 같은 해 8월 출판된 리옹 지역 아나키스트 신문 Le Drapeau Noir[80]은 검은 깃발은 아나키스트 그룹 사이에서 유명한 심볼이 되었다고 보고했다.[출처22]

한편 러시아에서는 1905년 Чёрное знамя(Chyornoe znamya)[82] 무브먼트가 등장하기 이전 까지는 검은 깃발이 쓰이지 않은 걸로 보인다. 그 해의 혁명이 좌절된 이후 아나키즘은 또 다시 지하로 숨어들어 가야 했다. 1917년의 혁명 동안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은 재등장하게 되었다. 그 해 2월, 페트로그라드의 차리즘 타도 시위에서 아나키스트들은 검은 깃발에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새기고서 참여했다. "권위와 자본주의를 타도하자!" 활동의 일환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임시정부의 반혁명 시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에 무장 분견대를 결성했고 이들은 '검은 수비대'[83]로 불렸다. 그리고 조금 암울한 기록이 있는데, 1921년 2월에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이 소련에 나타났다. 그 달엔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장례식이 모스크바에서 열렸었다. 2만여명의 참석자들이 그의 명예를 위해 검은 깃발을 들고서 행진 했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소련 아나키즘 최후의 기록들
Where there is authority, there is no freedom.
권위가 있는 곳에 자유는 없다.
크로포트킨의 장례식으로 부터 '고작' 2주만이 지나서 크론슈타트 반란 이 실패로 돌아갔고, 아나키즘은 소련에서 삭제되었다.[출처23]

일제강점기의 한국 아나키스트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검은 깃발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나키스트 단체들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검은색을 자신들의 단체의 이름이나 상징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제하 한국 아나키스트 단체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흑기동맹, 흑색공포단, 흑풍회 등이 되었다.

9.3. 졸리 로저

파일:tzLhNpS.png 파일:DYTzc8u.jpg
우크라이나 혁명반역군의 깃발[85][86][87] 네스토르 마흐노[88], 1888년 10월 26일 ~ 1934년 7월 6일
아나키스트들은 해적을 상징하는 졸리 로저를 자신들의 심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해적기의 바탕이 검은색 이기도 하고, 해적 이라는 용어가 현대 정보화 시대에 벌어지는 특정한 사이버 운동과도 연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89]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커다란 이유는 적백내전 당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활동한 아나키스트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의 영향이 크다.
"승리 혹은 죽음. 이것이 역사의 순간에서 우크라이나 농민이 직면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수는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류애라는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수많은 승리가 결국에는 새로운 주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맞김으로써 끝나게 된 위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부여잡고, 우리 자신의 의지와 우리 자신의 진리에 따라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흐노비스트 선언, 네스트로 마흐노, 1918년[출처24]

1918년 초 새로운 볼셰비키 정부는 동맹국[91]과의 정전을 위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서명한다. 그러나 거기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광활한 영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에 대항하여 각지에서 파르티잔이 결성되었고,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였다. 네스토르 마흐노가 결성한 '우크라이나 혁명적 반란군', 즉 '검은 군대'는 가장 주요한 파르티잔이였다. '검은 군대'는 남부 우크라이나에 권위를 부과하려는 모든 세력과 맞섰다. 즉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92] 내셔널 리스트들, 조약으로 들어온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점령자들, 친독 보수파의 헤트만 국가[93], 포그롬[94] 그리고 러시아 제국 잔존세력의 '하얀 군대'와 볼셰비키의 ' 붉은 군대', 아타만[95]이 이끄는 작은 군벌 세력들까지 모두에 맞섰다. 검은 군대가 다른 모든 세력들과 대립했던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은 1918-1921년 동안 '자유구역'[96]이 만들어졌다.[출처25] 이곳에선 'Nabat'이라는 이름 아래에 최초로 열린 아나키스트 그룹의 회의에서 회자된 5가지 요소가 적용되었다.
1. 모든 정당 중지
2. 모든 독재 거부
3. 모든 국가적 개념 부정
4. 모든 '이행기 개념' 거부.[98]
5. '자유 소비에트'에 의한 노동자 자주관리 #
자유구역의 거주민들은[99] 숙고집회[100]를 열어 국가와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자유 소비에트[101]와, 리버테리언 코뮌[102]을 만들었다. 토지와 공장은 몰수되어 노동자 자주관리가[출처26] 구현되었고, 크로포트킨의 이론에 따라 농촌과 도시간의 자유 교역[104]에 기반을 둔 경제가 형성되었다. #

자유구역은 1920년 까지 제국의 남부 러시아 정부[105] 안톤 데니킨(Anton Denikin)이 이끄는 하얀 군대와 대치 했으나, 1920년 11월 검은 군대와 붉은 군대가 동맹하여 최종적으로 하얀 군대를 격퇴했다.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 정부는 처음에는 자유구역의 독립을 약속으로 동맹을 맺었다. # 그러나 볼셰비키는 성장하는 검은 군대와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확대 되는 것을 우려했다.[출처27] 볼셰비키는 자유구역은 네스토르 마흐노 군벌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거짓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출처28] 볼셰비키 신문은 자유지구의 지도자들은 민주적이 아니라 마흐노의 군벌에 의해 선출되었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소비에트의 철도원과 전신 기사에게 음식 제공을 거부했고, 마흐노 헌법엔 체제를 위한 특별한 부분이 있어 고문과 비밀 처형이 자행 된다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장했다. 마흐노의 군은 보급을 위해 붉은 군대의 호송대를 약탈했고, 브랸스크에서 장갑차를 강탈했다고 선전했다. 또한 Nabat은 잔혹한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 결과적으로 볼셰비키는 협정을 파기하고 1920년 11월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대규모 군사 점령이 감행되었다. 마흐노비스트와 비볼셰비키의 활동은 억제되었고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설 되었다. 마흐노는 1921년 8월 루마니아의 국경을 넘어 파리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목수로 일하다가 1934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자유구역의 형식적인 지도자로 소련에 의해 임명된 레프 아흐마니노프가 1921년 9월 17일 합병 조약에 공식적으로 서명하며 우크라이나 자유구역은 사라졌다.

9.4. Bisected Flag

파일:rC9lmmQ.png [108]

아나키스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깃발들.

아나키즘은 어느 사상보다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기로 유명한데 이 다양한 분파들이 서로 자신들의 사상을 잘 나타내기 위해 아나키즘에는 Bisected Flag라고 불리는 2등분 깃발이 존재한다.

워낙 다양해서 설명하기 복잡한데 간단히 설명하면

10. 아나키즘의 분파들

아나키즘/분파 문서 참조. 사실 아나키즘의 분파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렇다 보니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주의적 사회주의자들로부터 '기회주의자', '모험주의자'라는 평가를 듣곤 한다.[113]

11.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국내의 경우 시기상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와 맞물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아나키즘 노선을 취했다.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의열단이 한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집단으로 꼽히며[114], 한국사에 여러 의미로 큰 영향을 끼친 신채호 역시 민족주의자였다가 말년에 아나키스트로 전향했다.[115]

덴노 폭사 기도사건의 주인공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도 아나키스트였다. 해당 문서 참조.

광복 직전까지는 그래도 아나키즘이 비교적 접하기 쉬운 사상이었는지라 단주 유림 선생도 임시정부 요원이었고 임시정부 요원들이 환국할 때 함께 환국했었다. 이 계통은 한국 자주인 연맹으로 계승된다.

그 외 더 자세한 사례는 아나키스트 문서 참조.

12. 비판과 반론

아나키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아나키스트라고 스스로를 밝히는 개인들 또한 다양한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아나키즘을 하나로 정의하고 비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116] 다만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몇 가지 공통된 비판을 받아왔으며 지금도 받고 있다. 특히 '아나키즘이 사회의 변화를 위한 사상일 수 있느냐'는 점에서 많은 비판이 개진되어왔다.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크게 확장되지 못했던 이유를 단지 '권위주의자'들의 억압으로 칭하기에는 아나키즘 자체에도 몇 가지 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나키즘은 아나키즘들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구체적인 비판은 개개인의 사유체계나 사상적 조류 각각을 통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에 와서 사회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이름만 같은 사상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아나키즘은 매력적일 수 있지만 아직까지 한계가 명확하다고 비판받는 만큼,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이라면 비록 일반적인 비판일지언정 이와 같은 지적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자신이 가진 생각과 사상을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나키스트 진영 내부의 담론의 발전 또한 이러한 비판들과 역사적 경험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진보해왔다.

12.1. 사유체계의 비과학성

아나키즘은 사유체계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상대주의적 사유를 많이 받아들였다는 점에 기인한다. 아나키즘의 역사는 매우 길기에 상대주의로부터 아나키즘이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죽은 이성보다도 살아있는 생명을 강조하는 식의 낭만주의적 사고[117]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현대사회에 들어서며 지적 권위에 대한 부정 역시 권위주의에 대한 부정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왔다. 특히 60년대 이후 '부활'했다고 볼 수 있는 아나키즘 조류들이 아나키즘이라는 이름하에 묶이는 것도 보통 상대주의 가치관에 근거한 사회운동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아나키즘 자체가 상대주의적이라고 해석하면 곤란한 것이, 오히려 상대주의가 아나키즘적 수사구를 채용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유럽 대륙과 남북아메리카에서 아나키스트 단체들이 분명히 인민 대중 중 많은 수의 지지를 받으며 큰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많은 수가 고립된 막가파식 반정부 무장 테러 노선을 고집하다가 집중적으로 때려 잡혀 망한 사례도 이런 성격과 상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와중에서 우크라이나 자유지구의 혁명이나 스페인 내전 당시 CNT 주도 혁명이 국제 아나키즘 역사에서 가장 비중이 큰 굵직한 사례로 자리잡은 것도 저 두 역사적 사례에서는 아나키스트들이 이전의 행동적 작위성을 극복하고 하나의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며 일반 거시정치학적 관점에서도 '권력'이라 부를 만한 영향력을 유지했기 때문에 고평가받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반이성적'이란 서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 사상사적인 측면에서는 당장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윌리엄 고드윈 같은 초창기 아나키스트들부터 공산주의적 아나키즘 전성기의 레클뤼 형제, 표트르 크로포트킨, 에스꾸엘라 모데르나[118] 계열의 교육학자[119], 역사학자들, 현대의 아나키스트 사회학자들 까지 아나키즘이란 기치를 내걸고 각자 해당 분야에서 학계 내부 관점에서도 높게 평가 받는 성과를 이룩한 지식인 전통은 항상 존재해 왔으며, 아나키스트 이념과 지향점은 이들의 연구와 성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사자들은 서로 인정하기 싫은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관점에 따라 2차대전 이후 미국 경제학계 중심으로 이루어진 우파 아나키즘 담론의 형성 또한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반권위주의적 자유조합 사상을 자본주의 시장 경제이론에 접목시킨 결과라 평가할 수도 있다.[120]

이렇듯 아나키스트들은 어떤 방식, 방향으로든 아나키스트 사상과 이념을 '합리적, 이성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며 다른 이데올로기들과 소통하는 과정 자체를 포기한 적은 결코 없다. 다만 그 발전의 방향이 대표적 라이벌 이념 마르크스주의에 비해 개개인 아나키스트 사상가에 따라 다방면으로 튀며 한 이론이나 논쟁에 집중 된 적이 없고, 아나키즘을 직접적으로 표방하는 정치 세력이 국가 단위의 권력을 장기적으로 잡아 본 적이 없으니 국제정세를 비롯한 이데올로기 외적 관점에서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굵직한 담론과도 동떨어진 역사를 가지게 된 점이 큰 차이를 낳은 것이다.

애초에 엄밀히 따져본다면 아나키즘의 기원은 윌리엄 고드윈이라 할 수 있는데, 고드윈은 오히려 계몽주의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며, 미하일 바쿠닌 카를 마르크스에 비해 비교적으로 더 계몽주의적이고 기계론적인 자연관을 드러낸다. 아나키즘 진영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철학적으로 비판받는 지점은 아나키즘이 상대주의적인 점이 아니라 오히려 과도하게 계몽주의적인 점이다. "비과학적"이란 비판은 주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제기되는데,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과학적"이라 함은 "변증법적"이란 뜻이며, 주로 상대의 사유체계가 역사적 맥락이나 변천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계몽주의적인 경향에 대한 비판인데, 마르크스의 주요 표적이 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기계론적인 자연관을 보여주었고, 나아가 현재의 사회구조를 고정불변의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였다. 마르크스가 이들을 비판한 지점이 바로 이 점이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을 끌어와서 사회구조 또한 변화하고 운동한다며 이들을 비판하고, 이러한 맥락에서 아나키즘이 국가가 노동계급에 친화적인 형태로 변화할 수 없다고 간주하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계몽주의적 자연관에 대한 낭만주의의 비판과 일맥상통하며, 낭만주의적 자연관은 셸링 괴테등을 통해 헤겔에게, 그리고 헤겔을 통해 마르크스에게로 이어진다. 마르크스에게 구체적인 인식이란 대상의 일면적인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대상의 운동법칙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마르크스에게는 과학적인 인식인데, 이러한 역사주의적인 성향은 후대에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논거로 많이 왜곡되어 사용되었다. 즉 아나키즘의 사유체계가 비과학적이라 비판받았던 것은 사실이나, 그 이유는 아나키즘이 상대주의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계몽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쿠닌은 「독일에서의 반동」에서 실증주의를 대차게 까고, 러시아 허무주의에 의도치 않은 영향을 미치는 등 낭만주의적인 성격도 혼재되어있다. 이는 헤겔에게 영향받은 당대 사회주의자들이 다 그런 것이,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청년 마르크스와 장년 마르크스의 구분에 관한 논쟁이 이러한 애매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근본적으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는 단순한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계몽주의가 극도로 전개되어 나온 것이 낭만주의라 할 수 있다. 데이비드 흄 임마누엘 칸트는 계몽주의적인 입장에서 계몽주의의 핵심인 이성 자체에 대한 이성적 비판을 전개하였고, 낭만주의자들의 자연철학적 근간이 되는 바뤼흐 스피노자 또한 대륙 합리론과 계몽주의의 전통에 속한다. 그런데 전자들의 주장은 이성 자체가 그리 이성적이지 않다는 결과를, 그리고 후자의 주장은 자연의 능산적 측면을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이후 자연의 능동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운동의 뿌리가 된다. 또한 낭만주의와 상대주의를 마낭 유사한 입장으로 보기가 어려운 것이, 낭만주의는 역동성과 투쟁을 강조하는 반면에, 상대주의는 상이한 의견들이 서로 인정할 것을, 즉 서로 갈등하고 투쟁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낭만주의와 진정으로 반대되는 것은 상대주의라 할 수 있다. 즉 정리하자면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관계는 단순한 대립관계 이상으로 복잡했으며, 아나키즘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그 어떤 교집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파시즘과 낭만주의의 관계도 복잡한 것이, 초기 파시즘은 명실상부하게 낭만주의적이지만, 이후의 그것은 낭만주의라기 보다는 오히려 관료제적이거나 기술독재적인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사상사적으로 낭만주의의 후손으로 뒤틀린 의미에서 이복형제...라 할 수 있는 파시즘과는 확연히 다르다. 상술한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 전통을 낭만주의적 유산의 문맥에서 설명하면 아나키스트들은 인간의 비이성적 자발성을 긍정하되 계몽주의적 담론도 받아 들여 이성의 능동적 측면을 살려 이성들의 갈등 속에서 진보를 이뤄내자는는 관점이라 정리할 수 있다. 반면, 파시즘은 애초에 체계적인 이론이 있었던 운동, 사상이라고 보기도 힘들거니와, 그나마 '파시스트 사상가'를 자처하며 이에 대한 글을 남긴 조반니 젠틸레, 필리포 마리네티, 그리고 어쨋든 파시즘젇인 텍스트로서 당대에 해석되고 영향을 미쳤던, 니체의 조작된 유고인 『권력에의 의지』등의 저술에 따르면 어차피 인간은 그리 비이성적이고 순간을 사는 생물이니 그 순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발휘하는 힘을 통해 다스리고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는 다분히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관점을 표방하고 있고, 역사적 경험의 영역에서 이런 파시스트적 허무주의는 정치적 폭력의 페티쉬화와 사회다윈주의, 우생학적 관점에서 권력과 위계 질서 그 자체의 숭배로 이어졌다. 아나키스트들이 내부적으로도 이론적 합의가 없음에도 끝임없이 다른 사상 체계를 포함한 '객관적, 실체적 세계'와의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파시즘은 사상적으로 설득하기 보단 오히려 지식인, 사상적 소통, 정치적 논의 자체를 경멸하며 독재자와 군대의 주먹이나 믿으면 된다는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면에서 미국의 역사학자, 역사 철학자인 헤이든 화이트 (Hayden White, 1928-2018)는 근대 유럽의 역사학자들의 사관 형성 과정에 있어서 자유주의, 보수주의, 급진주의[121]와 더불어 아나키스트 사관은 존재하나, 파시즘은 본질적으로 인식론적 원(epistemological circle)이 닫혀 있는 사상이기 때문에 파시스트 사관, 지식인 전통이란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고 평하였다.[122]

12.2. 영웅주의적 사고관

아나키즘은 종종 생각보다 더 영웅주의·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옘마 골드만은 "대중은 어리석다", "개인은 대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대중이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독립해 나와야 한다고 보거나 사람이 개인으로서 움직일 때와 군중으로서 행동할 때 확연히 다른 행동패턴을 보이기 때문에 개인이 주체로서 주변의 의사에 휘둘리지 말고 행동하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123][124] 골드만 이전·후의 많은 아나키스트들 또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대중을 아직 깨어나지 못한 계몽의 대상이나 소시민으로서 파악하는데 이는 사회 분석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진보적 변화 과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관점이라 지적할 수 있다.[125]

이러한 측면은 아나키즘이[126] 생산 수단의 공유라는 경제적 측면 못지않게 인습, 체제, 법률 등의 억압적 기구에서 해방된 개인주의적 성향 또한 그만큼 강조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개개인 아나키스트들은 사상적으로 각성된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충돌하는 것이다. 여기다 위에 언급된 낭만주의적 태도까지 겹쳐 이론적으로 아나키즘은 극단적인 대중 기반의 공동체 형성을 추구하면서도 역설적으로는 미하일 바쿠닌, 네스토르 마흐노, 사코와 반제티,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등의 몇몇 서사시적인 영웅적 인물들을 지나치게 우러러 보며 숭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혁명가로써 충실했던 이들도 많으며 나아가서 노동자 그 자체가 아나키즘 입장에서는 충분히 아나키스트다. 당장 CNT에서의 투쟁은 두루티 혼자 이끈 것이 아니며, IWW 또한 유진 데브스 혼자 만든 것이 아닌 노동운동가, 시민단체, 노동조합, 시민운동가들을 모아서 조직되었다. 아나키즘 영웅 한 명을 바라지 않으며 노동자 모두가 영웅적이라고 생각한다. IWW의 원 빅 유니온 문서 마지막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용기없는 자는 노예가 될 것이다. 노동조합의 연대가 그대와 함께하니 두려워하지 말자. 즉 아나키즘이 영웅주의적 사고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민이자 영웅적이라고 생각하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영웅적 사고관에 있는 것은 기업가정신에 투철한 자본주의와 소수 전위대에 몰두한 블랑키주의자나 레닌주의자들 일 것이다.
"는 노동자들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나나 또 다른 이의 뒤를 따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자본주의의 황야에서 여러분을 해방시킬 모세를 찾고 있다면 지금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머리와 손을 사용해 스스로가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야 합니다." - 1906년의 연설 중 #

12.3. 공동체 지향 아나키즘의 모순점

'개인'을 사회 변화의 주체로 삼는 이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공동체를 이상으로 삼는 경우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인류학의 연구성과들이 냉담하게 보여주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27]이 지적하듯이 공동체는 구성원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타자와 끊임없이 경계 지으려 시도한다. 친족 공동체가 여성을 주고 받으며 남성간의 공동체적 연대를 강고히 해왔다는 연구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타자에 대한 배타성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들은 타자들에 대한 공포와 질투가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고통의 전시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또한 한국의 공동체 운동들의 험난한 역사가 말해주듯 공동체는 보통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꺼리는 시장, 국가 등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그 존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작은 배가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버리듯 공동체가 사회 구조의 흐름에 좌초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공동체적 이상이 전사회적 구성요소로 등장하기 이전에 공동체를 강조하는 아나키즘적 사상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자생적이고 자치적인 사회의 모습은 결코 폐쇄적인 공동체가 무슨 짓이든 그 공동체 안에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작은 사회가 아닌데, 아직까지 주요 아나키스트 사상들은 위의 사회학적 연구의 성과들과 묶어서 본다면 작은 사회 아니면 아나키즘이 극도로 혐오하는, 저 멀리 있는 국가든, 교회든 누군가가 나서서 간섭을 하는 사회공학 둘 중 하나의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또한 사상적 기원은 반계몽주의에 두고 있는데, 그 지향점은 계몽주의에 기반한 보편 인권, 직접민주주의 등을 추구하다 보니 생겨나는 모순이다. 관념적으로 주류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바는 계몽주의적 이상향에 기반한 근대적 보편 인권 담론이 뭔가 더 적극적인 플러스 알파이지, 전혀 전근대적인 보편적 인간 존엄성의 담론은 없고, 온갖 억압적 악습, 구폐습을 포함한 그 동네 사회 문화에 따른 상태의 지역적 자치가 아닌데, 이를 추구하는 방법론은 저런 계몽주의통제를 배격하는 전근대적 자치를 지향하다 보니 생기는 내부 충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기에 아나키즘이 누구보다 연대와 사회혁명에 뛰어가는 점일 것이다. 아나키즘은 뒷일 생각없이 국가를 무작정 해체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혁명이라고 애기하지 않는다. 대안 없는 혁명은 아나키즘이 부정하는 무질서와 혼돈이기 때문이다. 무대책 혁명 이후로 찾아오는 것은 전근대적인 퇴폐적 자치일 것이다. 결국 아나키즘은 사회혁명 위에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또한 아나키즘은 공동체를 최종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아나키즘에겐 최종 목표라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만약 공동체보다 더 개인의 자유를 살리면서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나온다면 아나키즘은 단칼에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방식에서는 공동체 방식이 최선일 뿐인 것이다.

13. '아나키즘 운동'에 있어서의 단결력

출처: 20세기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들의 조직적 강령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는 국제주의에 기반한 국제 네트워크 운동을 기반으로 삼는다. 이에 대해서 부정하는 아나키스트는 없지만 그 외에 문제에서 아나키스트들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바로 '그럼 국내에서의 아나키즘 운동은?'이다.

해외에서의 아나키즘 운동에 대해서는 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수많은 방식을 동원해나간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라틴계 특히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등의 나라는 아나키즘 운동이 곧 노동운동의 역사로 여겨질 만큼 국내 노동자 단결에 힘을 썼고 실제로도 이들의 총파업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해군과 육군에 있는 군인들도 동감하여 동참할정도의 파업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게다가 저들은 지금도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독자적으로 파업, 시위를 주관할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조직적 단결을 중요시 여기는 아나키스트들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등을 가리지 않고 노동조합 조직, 시위주도등을 해나가며 대중조직에 침투하며 아나키즘을, 하다 못해 자유의지주의적으로라도 대중조직을 움직이고 추동하고 있다. 특히 아나키즘과 노동운동이 조합된 역사가 깊은 곳에서는 더더욱 이런 모습을 많이 보인다. 특히 이들은 사회를 변혁하길 원하기에 대중조직의 연대아래 사회를 다시금 재구성하길 원했다.[128] 그렇기에 조직적 아나키스트들의 운동은 문화 활동에만 그치지 않으며 적극적인 대중조직과의 연대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아나키스트도 역시 있었다. 톨스토이 혁명을 거부하고 파업등의 폭력적 수단을 거부한 평화주의적 투쟁의 대표명사로 존재하며 비단 그들 말고도 개인주의적 성향이 더 큰 아나키스트들 역시 아나키즘 역사에서 노동조합이나 조직, 단결보단 개인 혹은 소수의 폭탄테러적 모습을 띄웠다. 소위 말하는 원시주의 세력도 이와 비슷하게 폭탄테러를 통한 사회체제의 파괴를 원했다. 즉 사회를 재구성하기 보단 사회 자체를 파괴한 채로 두길 원하는 이들도 존재했다는 말이다.

이 외에도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유림, CNT 내의 개량주의자들과 같이 정부와 협조하여 보다 개량주의적 모습으로 나아가려는 이들도 존재하였다. 이런 개량주의의 추태를 보였던 것이 스페인 내전 당시의 CNT의 지도부들이였다.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개량주의적, 평화주의적 투쟁을 중시하는 아나키스트가 있으며 심지어 테러리즘에 기반한 아나키스트도 여전히 (다수가 아니지만) 있다.

즉, 아나키즘 운동은 국내의 조직적 투쟁에 관하여 많은 의견대립을 보이는 것은 맞으며, 이는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세력이 크지는 못한) 아나키즘에게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아나키스트들은 양보를 통한 일종의 아나키스트 통일전선을 외치는 이들도 있지만, 뭉치기만 하고서 의견대립땜에 아무것도 못할 유령조직이 될 바에는 소수일지라도 대중조직에 침투하여 대중조직을 아나키즘적으로 이끄는 것이 더 나은 행동일 것이다.라는 이름 아래 결연을 선언하며 조직적 투쟁을 이끄는 이들도 있다. 현재에 와서는 후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추세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러시아 혁명 68운동을 되돌아보며 러시아 혁명 당시에도 문화적 전위들은 존재했고 아나키스트들은 많았지만 혁명(대중)의 권위는 이들을 최소한으로 억제했다고 기술한 바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14. 다른 사상과 관련된 사항

역사적으로 보면 사상적, 이념적 폭과 깊이는 넓은데 막상 현실에서는 기원상 사촌이나 배다른 형제격인 공산주의, 특히 레닌주의에게 밀린다.[129] 권위주의의 정점인 국가나 정부, 기타 단체를 부정하기만 하면 다 아나키즘으로 포섭되지만 그 개념의 광범위함 때문에 다양한 세력이 다시 아나키즘의 이름하에서 백가쟁명하다 보니 서로간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130]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가 착근에 성공한 경우는 러시아 혁명 당시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가 이끌던 마흐노우슈치나와 스페인의 아나키스트 노조 전국 노동 연맹[131]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쿠데타를 막으며 역혁명을 일으켜 카탈루냐 지역에 세운 해방지, 아라곤 지역방위위원회 정도 뿐이다. 둘 다 한때 성공하는 듯했지만 공산주의자들에게 뒤통수를 맞아 큰 타격을 입었다.[132] 하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해서 중국 혁명 때도 공산당보다 먼저 들어와 많은 혁명가들을 배출하며 쑨원의 이념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2008년 그리스 반정부 시위가 보여주듯 서구의 사회 운동가들에게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사회생태주의[133], 반전사상, 징집거부 운동, 대안학교 운동, 소비조합 생산조합 운동, 농촌공동체 운동 등으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도 무정부사회를 이상향으로 여겼는데, 마르크스 본인도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가 궁극적으로 완성되면 군대도 국가도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공산주의 중 국가주의적인 레닌주의는 아나키 단계에 이르기 전엔 반혁명세력을 격퇴하고 인민을 이념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여 아나키스트들과 대립하게 된다. 아나키스트들은 레닌주의를 비판하며 한시적이라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결국 권력의 생명연장본능 때문에 영구독재화되고 그로 인해 반대세력을 탄압하며 민중을 말살하는 괴물로 변해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134][135] 그리고 역사는 현실사회주의에서 나타난 모습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 결국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당대의 아나키즘 세력들 역시 레닌이 주장했던 그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결국 단결하지 못했다. 결국 둘 다 옳은 주장을 했지만 궁극적으론 모두 오답이었던 것이다.

프랑스가 현재와 같은 모습(평준화된 대학 등)을 갖게 된 것도 아나키즘의 영향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68운동 혹은 5월 혁명(정식 명칭: Revolution de Mai)을 찾아보기 바란다. , 국내 자료를 찾기보다 영어로 구글링하기를 바란다. 혹은 지식채널e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으니 그쪽을 찾아보길 바란다.

15. 창작물

아나키즘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대체로 피카레스크 또는 안티 히어로물의 특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16. 외부 링크

17. 같이보기

1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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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후술하듯 '무정부'라는 번역으로만으로는 아나키즘의 성질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없다. [2]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의 간체자이다. [3] 국가를 넣는 바리에이션도 많이 쓰인다. 이 경우 국가는 실체화된 권력을 의미한다. No Gods, No Country, No Masters.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 [4] 1880년 프랑스 사회주의자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Louis Auguste Blanqui)의 동명의 저널를 통해 첫 등장. [5] 각각 정신적 해방, 물질적 해방. [6] 바쿠닌이 신과 국가에서 천상에 주인이 있다면 우리는 지상에서 노예가 될 것이라고 했듯이, 종교권력은 역사적으로 국가권력과 결합해서 노동, 민권 운동을 탄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의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관점이다. 무신론(또는 과학만능주의)이 권력 및 이데올로기와 결합하기도 하고, 자본주의가 종교의 위치마저 대체하여 최고 위치에 선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가 꼭 적용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유신론자이거나 종교인인 아나키스트도 많으며, 종교를 기반으로 삼아 현실을 뛰어넘어 한차원 더 나아간 급진성을 추구한다고 하는 아나키스트들도 있다. 아나키즘은 그 본질에 다양성과 자유 존중의 정신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나키즘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견해는 일치하지 않으며 다수파라고 해서 소수파를 억압하거나 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다수 아나키스트 분파가 소수 분파의 사상과 의견을 숫자로 찍어누르는 그 순간 다수 아나키스트 분파는 아나키스트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즉, 의견이 다르면 (보편적 인권 개념을 벗어나지 않는 한) 서로 존중하고 나뉠 순 있어도(현실적으론 무한정 나뉠 순 없으니 안정성을 책임질 큰 단체 아래 여러 소수 집단의 연합론도 나오는 것이다) 찍어누르는 것 자체는 또다른 탄압일 뿐이다. [7] Imagine 노래 자체는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 분위기 고조 속에서 탄생한 곡이다. 즉,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정부가 멋대로 전쟁 일으켜 니들과 니들 가족 다 죽이는데 저딴 정부 필요하냐는 것. 다만 존 자신은 항목에도 있듯 인간성 측면에선 비판도 제법 받는지라 아나키스트의 모범같은 인물까진 아니었다. [8] 접사에 해당하는 -ism 역시 고전 그리스어 접사 -ισμός(ismós)에서 유래한다. [9] 고전 그리스어 동사 ἄρχω(árchō)는 "통치한다"는 뜻을 갖는다. 때문에 군주제는 단독(μόνος, mónos) 통치하는 형태로 'μοναρχία(monarchía)'라고 부른다. [10] 아나키스트인 동시에 민족주의자로 그려지는 역사적 인물들이 꽤 있는데, 이는 그가 반쪽짜리 아나키즘을 추구한 것이거나, 후대의 정부가 그를 우상화하기 위해 입맛대로 민족주의 속성을 부여해 포장한 것이다. [11] 국가와 정부가 없이는 질서의 실현이 불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정부는 곧 질서이며 그에 반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하다. 제대로 기능하는 정부가 있다면 사회 질서가 바로 설 확률이 높은 것이 당장의 현실이지만, 아나키스트는 이렇게 통제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를 차선책, 일단의 필요악으로 보며, 언젠가 넘어서야 하고, 분명히 넘어설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아나키스트의 눈에는 사람들이 법적 처벌을 두려워해 악을 저지르지 않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12] 다만, 영어를 비롯한 유럽언어에서는 정부(government)를 지배(govern)하는 기구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무정부상태(아나키)를 지배기구(government)가 없는(無) 상태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즉, 무정부주의(아나키즘)라는 번역이 잘못 되었다기보다는 동양의 정부(政府)와 서양의 정부(government)의 어원•인식 차이로 인해 번역을 통한 뜻의 전달이 매끄럽게 되지 못한 것이다. [13] 아나키는 지배자가 없는 상태, 아나키즘은 지배(권위) 자체가 없는 상태다. [14] 이 글은 이탈리아에서 세계 최초로 파시즘이 등장한 이후인 1926년에 작성되었다. [출처2] Neither Democrats, nor Dictators: Anarchists # [출처3] From Democracy to Freedom [17] 노동자가 산업과 직장을 제어한다는 의미다. [출처4]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chail-bakunin-statism-and-anarchy [출처5] - The Unique and Its Property, p 129-131 https://libcom.org/library/unique-its-property [20] 슈티르너는 독립적인 정당성을 가진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고 현상의 실체는 그 뒤에서 그들을 지탱하고 있는 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주의 국가 또한 자유, 평등, 박애 같은 관념적 이상향이 아니라 문명 발전에 의한 재산의 축적과 부르주아의 소유욕이 그 실체라고 주장한다. 이에 더하여 부르주아의 체제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노동계급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출처6]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chail-bakunin-the-immorality-of-the-state 바쿠닌은 범죄를 저지른 인간은 국가의 가장 귀중한 특권(합법성의 독점)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유죄가 된다고 말했다. [22] 대체로 펑크 음악 듣고, 서클에이 그려진 티셔츠 입으면 그게 아나키즘이라고 생각하면서 바쿠닌, 국가주의, 개인의 자율권 같은게 뭔지 모르는 인간들 혹은 하는 소리는 적당히 국가주의적인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인데 힙해보이고 싶어서 아나키스트 자칭하는 인간들이다. [23] 가장 정석적인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인 슈티르너의 철학에 따르면 모든 범죄는 기본적으로 사상범죄다. 이런 맥락에 따라 후대의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인 알프레도 보나노는 감옥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이건 모든 아나키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시각)했고, "교화정책 자체도" 인간을 정신의 감옥에 가둬서 반역의 본능을 억누르려는 제도로 보아 부정했으며, 일반인들이 듣기에 미친 소리 같지만 국가와 사회의 통제에 저항하는 그런 범죄적 인간들이 자유를 창조한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스트 조직 중 CrimethInc라는 곳도 범죄 사상을 퍼트리는 세포조직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자처하는 것이다.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alfredo-m-bonanno-locked-up [출처7] https://moxie.org/blog/we-should-all-have-something-to-hide/ [25] SFIO(프랑스 사회당)에 가입한 소수 아나키스트들, syndicalist party. 인민전선에 가입했다. [26] 사회민주주의 국가주의에 속하며, 사회주의 이념상 아나키즘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실제 현실 사회에서 사민주의자들은 대충 주류적 온건좌파 노선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아 서로 비현실적인 급진주의자, 수정주의자라 욕은 해도 직접적으로 충돌할 일은 별로 없지만 이데올로기 자체로보면 어쩌면 최소한 제도 외에서 체제 전복이란 혁명주의는 공유하는 볼셰비키보다 더 양립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를 해체하고 싶어하는 반면, 사민주의자들은 의회 정치와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 그것도 생산수단의 직접적인 사회화도 아니고, 계급간 '타협'과 복지제도를 통해 오히려 그 국가를 더 공고하게 만드는 게 이상향이니 말. [번역1] 파일:아나키즘번역.jpg [28] 직역하면 '같은 개 - 다른 목줄'에 가깝다. [29] CNT의 해석대로라면 왼쪽은 주적인 팔랑헤와 그 후예인 보수정당인 인민당을, 중간은 공산당에게 자신들을 팔아넘긴 PSOE를 비롯한 온건 사회주의자들, 오른쪽은 자신들을 배신한 공산당으로 볼 수 있다. [출처8]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errico-malatesta-and-nestor-makhno-about-the-platform [31] 깔끔하게 말로만 사회주의를 표방했지, 기본적으로 국가 권력이란 구조 자체가 지니는 기득권과 권력자들을 비호할 수 밖에 없는 본능 때문에 당이 인민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 처럼 착취하고, 결국 국가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 하의 사기업처럼 작동한다 현실사회주의권에 대한 비판이다. [32] 주의할 점은 허무주의자들 또한 결코 혼란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본질 혹은 진리가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허무주의이지만, 지향성에 따라 수용적이냐 능동적이냐로 나뉘는데, 수동적 허무주의의 경우 모든 것은 헛된 일이니 어떤 가치를 세우거나 욕구에 지배를 받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 이야기 하지만, 능동적 허무주의의 경우 어떠한 본질 선악도 없으므로 창조자로서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후자의 경우 매우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경우가 많다. [33] 그렇다고 노자의 사상이 아나키즘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장자와 노자를 같은 도가로 묶는데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34] 해방이나 그런 것보다 내가 이런 멋진 일을 하고 있으니 모두가 나를 봐줘라!라는 짓을 한다는 뜻 [35] 아나코 평화주의자들의 주된 전술이다. [36]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적 권위를 부정한다. 가부장제라든지 악습과 같은 것을 모두 거부한다. 아나키스트들이 인종차별, 계급 및 신분제를 혐오하고, 온갖 종류의 소수자에 대한 박해 역시 거부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대등하며, 대등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나키즘은 어떤 우월주의를 지지하지도 않는다. 본인들의 사상인 아나키즘의 우월성 역시 부정한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지 우월주의가 형성되면 그것은 백인 우월주의, 남성 우월주의, 흑인 우월주의 등과 같이 무지성과 권위와 폭력으로 이어질 테니까. [37] 당장 소련에서 동성애가 자본주의 퇴폐문학 취급을 받았던 것을 생각해보자. 물론 길고 길었던 정교회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이 정교회등의 전통적 역할을 전위당이 뿌리까지 못뽑았다는 애기다. [38] 물론 이러한 우리 뒷 세대가 우리가 권위적으로 나온다면, 혹은 미래에 권위가 나타난다면 그들을 무너뜨리겠지. 라는 믿음이 전제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나키즘 사회혁명이 완료된 시점이라면 아마 그런 걱정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애당초 이미 성공했다는 전제니까. [39] 사실 니체등뿐만 아니라 막스 슈티르너등의 에고이스트들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줬던 말이다. [출처9] proprietarian, proprietary + -an [출처10] The Ecology of Freedom, p. 57 [보기1] 살펴볼 수 있는 곳 [보기2] 프랑스어 위키백과 [44] 다른 말로 코뮤니스트-아나키스트,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 리버테리언 코뮤니스트 [45] 아나키스트들은 이 기다란 용어들어 짧게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Libertarian communism은 줄여서 Libcom으로, 마찬가지로 Anarcho-communism은 Ancom으로, Anarcho-capitalism은 Ancap으로 축약된다. [출처11] Max Nettlau, A Short History of Anarchism, pp. 75-6, p. 145 and p. 162 [출처12] Anarchism: A History of libertarian ideas and movements, p. 233 [출처13] Robert Graham (Ed.), Anarchism: A Documentary History of Libertarian Ideas, p. 60 and p. 231 [49] 저 아래에 언급된, 자유시장 아나키즘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원제1] libertarian solutions [원제2] the libertarian principle to the tenure of land [출처14] Liberty[140], no. 350, p. 5 [출처15] Nicola Sacco and Bartolomeo Vanzetti, The Letters of Sacco and Vanzetti, p. 274 [출처16] Pioneers of American Freedom, p. 85 [55] 즉 아나키스트와 리버테리언을 동일시 하는 것. [출처17] The Great French Revolution, vol. 1, p. 204 and p. 206 [57] cenetista, 즉 CNT 소속 노동운동가 [58] 물론 이것도 삐딱하게 보면 무슨 대단한 사상적 접점이 아니라 그냥 68혁명 시절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 전체를 강타했던 신좌파 조류와 운동권 학생 문화의 조류를 타려고 했던 기회주의적 행보일 뿐이라고 냉소짓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이전까진 '우린 경제적 우파라도 기존 보수주의자들과는 다르다'고 어필했던 우파적 리버테리언들이 트럼프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종, 성별, 이민 정책 같은 부분에선 갈수록 그냥 극우, 우파와 접점이 많아지고, 이에 따라 로스바드 뿐만 아니라 이쪽 진영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종종 했던 엘리트 선민사상에 기반한 반유대주의,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발언들이 재발굴 되면서 로스바드 같은 사람들의 아나키즘 '기믹'은 말 그대로 기믹일 뿐이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59] 우파적 자유지상주의는 경제분야에서 아나키즘과 대비되다. 그래서 아나코 캐피탈리즘을 우파 아나키즘이라고 한다. [60] 자세한 내용은 영어 위키백과 참조 [61] 일반적으로 국가주의는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아나키스트들에게 국가주의란 아나키즘의 반대말로서 국가의 존재를 긍정하는 이념 전반을 의미한다. [62] 아나키스트라면서 법에 호소한다든가, 아나키스트라면서 사회민주주의자(국가가 주도하는 제도적 사회주의)라고 자칭한다든가 [출처18] # [64] 최초의 종군 여기자라 여겨지며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했다. [65] 똑같이 종군기자였던 로버트 카파의 연인이었다. [66] 공화파측의 병사다. # 영상의 53분 25초 쯤에서도 나온다. [67] 영상에서 해당 병사의 투구를 자세히 보면 어두운색으로 FAI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Federación Anarquista Ibérica, Iberian Anarchist Federation)의 약자이다. 그 오른쪽에 있는 병사의 모자에는 CNT라고 쓰여진게 보인다. [원제3] Jeunesse Libertaire, Libertarian Youth [69] 아나키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무질서 내지는 무정부지만, 아나키즘을 줄인 표현이기도 하다. [70] 아나키즘적 의미에서 저항 내지는 불복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저항이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것 [71] 다만 촘스키는 자신은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촘스키는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결정적으로 촘스키는 국가체제를 옹호했다는 것이 뽑힌다. [72] 누군가 자랑스럽게 어떤 국가나, 조직의 깃발을 치켜든다면, 찬란한 태양빛을 받아 펄럭이는 깃발 뒤엔, '깃발의 검은 그림자'가 생기며, 그것은 어떤 깃발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출처19] (ed.), Reinventing Anarchy, Again, pp. 31-2 [74] 흑백 원본에 채색한 버전이다. [75] Louise Michel, 가명 클레망스(Clémence) [76] '몽마르뜨의 붉은 처녀'(the red virgin of Montmartre)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출처20] Edith Thomas, Louise Michel, p. 191 [78] Bread, work, or lead [출처21] Anarchism, pp. 251-2 [80] The Black Flag [출처22] "Sur la Symbolique anarchiste", Bulletin du CIRA, no. 62, p. 2 [82] black banner [83] Black Guards [출처23] Paul Avrich, The Russian Anarchists, p. 44, p. 124, p. 183 and p. 227 [85] 엄밀히는 우크라이나 혁명반역군의 깃발은 아니며 자유 카자크 군대의 깃발이다. 실제 우크라이나 혁명반역군이 쓰던 깃발에는 '권력은 기생충을 낳는다. 아나키여 영원하라!' 라고 쓰여있는 깃발을 썼다. [86] Revolutionary Insurrectionary Army of Ukraine, 마흐노비스트(Makhnovists), 마흐노우슈치나(Makhnovshchina), '검은 군대'로 불리기도 한다. [87] 우크라이나어:Смерть всім, хто стоїть на перешкоді здобуття вільності трудовому люду!,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의 자유를 방해하는 모두에게 죽음을! 큰 글씨가 '죽음' 부분이다. [88] 영어: Nestor Ivanovych Makhno, 우크라이나어: Нестор Іванович Махно, 러시아어: Не́стор Ива́нович Махно́ [89] 특히 어나니머스나 핵티비즘과(hacktivism) 관련된 아나키스트들이 쓰는 경우가 많다. [출처24] Manifesto of the Makhnovists, written in 1918 by Nestor Makhno # [91] 1차 대전 당시 독일, 오스만, 오스트리아의 연합을 말함 [92] Ukrainian People's Republic [93] Hetmanate Republic, Ukrainian State [94] pogrom, 선동에 의한 제노사이드, 동유럽에서는 주로 유대인 학살를 의미했다. [95] Ataman, 카자크의 지도자를 말함 [96] Free Territory [출처25] Peter Marshall, Demanding the Impossible, PM Press (2010), p. 473 [98] 아나키즘에서의 이행기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의미한다. [99] 자유구역의 인구는 700만 가량이었다. [100] Deliberative assembly [101] free soviets [102] libertarian communes [출처26] workers' self-management, 참고 [104] free exchange [105] South Russian Government [출처27] Skirda, Alexandre, Nestor Makhno: Anarchy's Cossack. AK Press, 2004, p. 236 [출처28] Skirda, Alexandre, Nestor Makhno: Anarchy's Cossack. AK Press, 2004, p. 238 [108] 대각선이 반대로 그어지기도 한다. [109] 이는 19세기 후반 사회주의 정당이 의회주의와 타협노선을 걷게 되자 노동조합을 혁명의 주체로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상인데 출발부터 아나키즘적 색채가 강했다. 쉽게 말하면 다른 노동운동과 달리 정당의 지도를 거부하고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정치투쟁을 배제한 총파업으로 혁명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어느 사상들보다 더 급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모험주의나 기회주의로 평가된 바도 없지 않아 있고 훗날 파시즘에 의해 중요한 부분은 빼버리고 산업조합/자본가조합/친자본노동조합에 의한 전체주의 국가 건설에 협력하는 조합주의(앞서 말한 생디칼리슴을 조합주의라고 번역하는 사람들은 혼동을 막기 위해 협동주의(corporatism)라고도 부른다)의 모태가 되기도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110] 이런 이유에 의해 스페인의 CNT는 흑적기를 사용한다. 흑적기를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단체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111] 색상은 완전히 같지는 않고 차이점이 있는데 녹색 아나키즘은 연두색에 가깝다면 아나코 원시주의는 진한 녹색에 가깝다. [112] 자유지상주의적 트랜스휴머니즘(Libertarian Transhumanism)과는 다르다. #1 #2 [113] 특히 블라디미르 레닌이 그의 저서에서 좌익 소아병이라며 줄창 깠다. [114] 정작 의열단의 지도자인 김원봉은 학계에서 좌익 민족주의자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문서 참조. [115] 사실 어느정도 짬뽕된 케이스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전통적인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아나키즘과 안어울린다. [116] 아나키스트들 마저도 각자 주장하는 게 하늘과 땅차이이다. [117] 당시에 이미 낭만주의적 사고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었음을 상기해볼 때 낭만주의 합리주의를 배격하는 사상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다만 이 둘을 단순한 대립관계로 놓을 수는 없으며, 낭만주의에는 합리주의의 전개가 절정에 달하여 나타난 사상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 당장 낭만주의 자연관의 모태인 스피노자가 어느 학파에 속하는지를 생각해보자. [118] escuela moderna [119] 프란시스코 페레. [120] 물론 전통적인 좌파 아나키스트적 관점에서는 이는 자유조합주의적 측면이 기존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먹혀 버린 결과라 비판 할 수도 있지만, 어쨋든 사상사의 계보에서 이런 관계성이 존재한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121] 책의 문맥에서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19세기 radicalism, 즉 공화주의, 사회주의 진영을 표방한 급진 세력을 의미한다. [122] 풀어 말하면 다른 사상 체계들은 전부 다 나름 논리적 '설득 체계'라는 것에 기반하여 주장을하고, 여기에 기반해 끊임없이 서로 갑론을박하는 지식인 전통이란게 존재하는데, 애초에 주장 자체가 지식인 따윈 나약한 퇴폐적 부르주아다. 눈 앞에 실존하는 권력만 믿으면 되고 여기 의문 제기하는 자들은 불순분자니깐 억압이 답이다인 파시즘은 저런 사상적 비판, 담론 자체를 배격하는 걸 강령으로 삼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말이 안 통하고, 또 이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체성인 작자들이란 말이다. [123] 이는 여러 사회 실험에서도 나타나며 화이트의 '집단의 도덕성은 집단의 구성원의 도덕성보다 떨어진다'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124] 이런 개인에 대한 집중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군중은 무조건 우매하고 오직 깨우친 개인만이 옳다는 식의 영웅주의적·엘리트주의의 결론으로 치닫기도 한다. [125] 더욱 자세한 논지는 최세진 내가 춤 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중 사이버 공간의 아나키즘 부분 참고. 아나키즘이 지닌 소영웅주의, 엘리트주의는 세계적으로 많은 곳에서 비판받고 있다. [126] 적어도 주류인 좌파 아나키즘에 한하여 [127] 액체근대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의 사회학 고전으로 꼽힌다. [128] 아나키즘이 전위조직 혹은 체계잡힌 조직을 거부하지않냐라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전적인 아나키즘의 대한 몰이해에 가깝다. 미하일 바쿠닌부터 네스토르 마흐노를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 전위조직( 블랑키적 의미와 별개로)를 거부한 적도, 강령이라는 체계잡힌 조직을 거부한 적도 없다. 다만 그 강령과 전위조직은 대중에게 귀속되어야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129] 소련 초기에는 아나키스트들이 많이 활동했으나, 아무런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아나키스트답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하여 축출당했다. [130] 대신 이념적으로 경직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미하일 바쿠닌 같은 핵심적인 아나키스트 이론가가 어떤 주장을 했던간에 교조적으로 이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유연성은 장점. 현대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라 보아도 무방하지만 아나키스트라고 해서 바쿠닌주의자, 크로포트킨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네스트로 마흐노 막스 슈티르너 둘 중 어느 쪽에 더 친화적이냐로 양분되는 경향은 존재한다. [131]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공산당 소속 CCOO, 사회주의 노동자당 소속 UGT에 다음가는 3번째로 큰 노조다. [132] CNT 자체의 군사조직이야 바르셀로나 5월 사건 이후로 점차적으로 공화국 정부군 전체 조직에 통합되어 갔지만 아라곤과 카탈루냐, 그리고 카스티야 라 누에바 지방의 자치 공동체들은 많은 수가 국가군에게 함락 될 때 까지 조직을 유지했으니 뒤통수 맞아서 바로 '망했다'는 건 틀린 표현이다. 아무리 소련이란 물주를 등 뒤에 두고 있어도 스페인 공산당은 자생적 거대 정당으로서 급진 혁명파와 온건 사민주의 계열 모두를 포용했던 사회주의 노동당과 대중적 기반이 굳건했던 CNT를 아예 민간 사회 차원에서 때려 잡을 만큼의 세력이 없었다. 괜히 공산당이 PSOE를 반강제로 잡아 먹으려고 했던게 아니다. CNT가 좌파 진영 내부에서든, 스페인 국가 전체에서든 대중적인 규모의 독자적인 영향력을 상실한건 프랑코 시대의 탄압에서 그 사후 민주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탄압과 내분을 여러 차례 거치며 점차적으로 약해진 것이다. 그리고 CNT의 비중과 규모가 크게 줄어든 건 맞지만 스페인 내에서 아나키즘 전체가 이제 죽어 없는 역사의 유물로 처분 하기에는 2000년대 후반의 경제 위기 이후 다시 스페인 정국을 뒤흔들며 부상하는 좌파 세력 내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영향력도 여전히 상당하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의 어필이 죽었다기 보다는 굳이 CNT 같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서도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보는 게 맞다. [133] 생태계 보존을 위해선 궁극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회체제, 즉 국가의 지배, 시장의 지배를 타파하고 소공동체의 자연친화적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 [134] 조지 오웰 동물농장, 1984의 주제의식이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조지 오웰 또한 국가를 인정하는 민주사회주의자였으며 이 작품들에서 비판한 대상은 소련의 스탈린주의였다. [135] 또한 ML 계열에서는 국가가 사멸한 이후에도 당은 계속해서 대중을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36] 분쟁의 원인인 국경, 더 나아가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핵미사일로 초토화시켜 분쟁 자체를 없애버리겠다는 생각을 가진 조직이다. [137] 작중 등장인물인 스페어 11 타블로이드가 아나키스트인데 에필로그에서 타블로이드가 바랐던 형태의 사회가 난민보호구역에 형성되었다는 에이브릴 미드의 언급이 있다. [138] 소위 말하는 Shitposting [139] 의외지만 아나키즘이 식민지 민족과 만난다면 되려 민족주의적 성향을 띄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단적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아나키즘으로 사상적 지평을 넒힌 단주 유림, 하기락, 신채호 등의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첨언으로 이런 식민 치하 조선의 민족주의적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국제 아나키스트들의 평가는 '식민지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입장' VS '동기야 어쨋든 권력 체계와 이의 근간인 민족주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체 아나키즘의 탈을 썼던 다른 좌파 민족주의의 유형' 두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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