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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던 두 정치인 |
왼쪽부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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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던 두 경제학자 |
왼쪽부터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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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자유주의( 新 自 由 主 義, Neo-Liberalism[1])는 20세기 후반 대두된 정치, 경제, 사상적 조류를 뜻하는 단어다. 본래 몇몇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경제학계에서 거의 쓰지 않고 오히려 사회학, 정치학 등 경제학 외 사회과학계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경제적으로 보자면 신자유주의란 경제적 자유주의의 분파로,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일컫는 용어이며, 정치적으로 더 나아가면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로 이어진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정치적으론 (우파적) 자유지상주의와 유사한 점도 있으나[2], 신자유주의를 말하는 사람들도 각각 보수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다르며 사용하는 사람들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3]
1929년 대공황 이후 20세기 중반을 풍미했던 케인스주의가 1970년대 들어서 오일쇼크와 영국병, 스태그플레이션 등을 겪으며 한계가 나타나자[4], 그 경제적 대안으로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가렛 대처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부상한 사상이다. '역사적 배경' 문단도 참조. 그로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신자유주의는 약 30여년에 걸쳐 선진국의 경제적 재흥을 이끌어내[5] 끝내 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를 몰락시키고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 흐름을 주입시키는 효과를 이끌어내었다.
국내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의 극복 수단으로서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들여오기 시작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양극화 문제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론 IMF 극복과 이후 한국 GDP의 급성장에 기여했다는[6] 평을 받기도 한다.[7]
허나 신자유주의는 2008년을 전후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대침체가 터지면서 그 한계가 드러나기도 하였다.[8] 이후 책임론이 대두하며 신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각종 비판과 반대의 소리도 나왔고, 한동안은 신자유주의의 신자도 꺼내기 힘든 글로벌 분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실제 2020년대 들어서도 신자유주의가 예전의 위세를 회복하질 못한게, 2020년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침체에 버금가는 경제적 대봉쇄가 일어나자 각국 정부가 취한 정책도 적극적인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이었고 실제 성과를 보고 있다.[9]
다만 케인스주의가 90년대에 새 케인스학파 등의 이름으로 등장했듯 신자유주의도 끊임없는 논쟁과 수정 과정을 거치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로 묶이는 경제적 학파 내지 이론의 범위도 넓은데, 새고전학파를 비롯해서 합리적 기대이론, 실물경기변동이론, 새케인스주의, 공급측면 경제학 등등 수많은 이론이 포함될 수 있다.
의외로 신자유주의가 가장 많이 작용한 건 행정학의 신공공관리론이다. 행정학에선 너무나 중요한 핵심이론이기도 하다. 시카고학파의 제임스 뷰캐넌 교수의 공공선택론(public choice theory)이 막대한 영향을 주었고 이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다.
2. 주요 정책 및 세계관
경제적 자유 없이 정치적 자유를 얻기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경제를 통제하는 것은 치명적 자만이며, 오히려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약 인위적인 경제 통제를 감행한다면 시장의 왜곡을 초래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1]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경제를 통제하는 것은 치명적 자만이며, 오히려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약 인위적인 경제 통제를 감행한다면 시장의 왜곡을 초래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1]
하이에크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정부의 강력한 개입, 더 정확히는 관료들의 가격통제와 생산량 결정 등은 절대로 이상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 정치적인 영향력에 휘둘리는 건 차치하더라도, 무수한 변수와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시장을 통제한다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 반면 자유시장(Free Market)은 가격 기제(Price Mechanism)를 매개로 사람들의 정보와 지식이 교호작용하는 자생적 질서의 장이다.[12] 아담 스미스의 시장의 자유가 국가의 번영을 가져온다는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과 결합해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로 이어진다는 논리와 자유시장의 가장 큰 강점은 당사자들이 직접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가지게 된다고 설파한다.[13]
- 기본적으로 제한된 정부
-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른 점이 몇가지 있는데, 우선 기존의 야경국가론이 아닌 정부의 어느 정도의 역할은 인정한다. 하이에크 "고전적 자유주의로 돌아가자는 주장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프리드먼 "나는 아나키스트가 아니다, 우리는 정부가 필요하긴 하다."[14] 그러나 제임스 뷰캐넌(1919) 교수는 중앙 권력화된 정부의 위험성을 얘기하며 권력의 분립과 견제 그리고 지방분권을 이야기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사실 21세기 신지방분권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탄생했다(행정학 참조)[15] 또, 정부도 결국 인간들이 움직이는 조직에 불과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정치적인 영향력과 사적 동기를 취할 수 있으며 복잡하고 불안정한 정치 행위 때문에 정부실패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다만 작은정부=신자유주의 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특징 중 하나가 작은 정부인 것이지 작은 정부라 해서 신자유주의라는 보장이 없다.
- 교육 시스템
-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은 매우 획기적이고 파격적인데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16]라는 책에 잘 설명되어있다. 60~70년대에 교육비가 증가했는데 알아보니 학생들의 효용과는 상관없이 장학관만 늘어나고 교육부와 교사 노조만 이득을 챙기는 걸 발견한다. 따라서 교육도 관료 중심, 공급자 중심을 넘어서 소비자인 학부모, 학생이 직접 선택권을 주어서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이것은 매우 충격적이였고 지금도 논쟁을 하고 있다. Caroline Hoxby 스탠포드 교수는 이것의 긍정효과를 논문으로 밝혀냈다.[17] 놀랍게도 OECD[18]와 세계은행[19]도 이런것이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효용이 좋다는 보고서도 만들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 당시 교육부 장관 벳시 디보스는 학교 선택권을 강하게 추진한 바 있다.
- 복지 제도
- 많은 이들이 오해하거나 놀라는 것들 중에 하나가 이건데 신자유주의는 복지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베버리지 보고서 이후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일컫는 20세기 중반 서구사회의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는 마르고 닳도록 비판했지만 다른 대안을 얘기한다. 그들은 그것이 정부에 의존하게 만들고 근로 의욕을 저하시켜 빈곤을 영속화한다고 보았고 이에 '부의 소득세'로 저소득층이 노동시장에서 참여했을 때 정부가 세금 대신에 보조금을 지급해주거나 아예, 다른 복지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최저생계선 보장이나 기본소득을 이야기한다. 또한 복지도 여러 민간이 위탁해서 하는 것도 제안했다. 그리고 위에 교육제도에 더해 저소득층 교육 쿠폰(바우처: Voucher)을 제공해 학원 고르듯 선택의 기회를 돕자고 제안한다.
- 세금 제도
- 소득에 왜곡을 일으키는 누진세에 부정적이고, 지속적인 혁신과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 자본에 대한 세금을 폐지하거나 줄여야 한다고 본다. 또, 법인세의 개편과 인하를 주장하며 세금 제도가 복잡할수록 로비, 회계사, 로펌에 접근이 쉬운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역설적으로 유리하기에 차라리 일률적으로 간편하게 해서 위에 저러한 시도로 발생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자고 한다.
- 각종 혜택과 보조금 축소
- 면허 제도 완화
- 신자유주의는 전문직에 부여하는 면허권도 공급을 위축시키고 그들만의 리그로 만드는 경쟁제한 행위라고 판단한다. 가령, 의사협회들은 의대정원 축소를 목적으로 로비 활동을 하고 국내 대형 로펌은 외국계 대형 로펌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사실, 일찌기 이것을 프리드먼이 50년대에 주장해서 당시 뜨거운 감자였는데 지금 우버와 택시를 생각하면 상당히 앞선 발상이다. 면허권을 완화해서 그런 시장도 진입과 퇴출을 자유롭게 해서 결국 소비자들이 혜택을 보게 하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최근 시카고대에서 나온 논문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노동시장에 면허권 등의 진입장벽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존재한다고 밝혔다.[22]
- 통화정책
- 원론적으로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쓰는 것을 반대한다. 단, 통화주의 학파는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조절을 긍정하는 측면도 있다.
- 규제 개혁
- 신규 투자자/기업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줄여야 한다고 본다. 시카고학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러의 논문에도 나오는데 규제 포획을 얘기한다.[23] 규제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정부와 기업이 밀착하는 포획현상이 일어나고 관료와 접근이 쉬운 대기업은 역설적으로 이득을 보고 그러지 못하는 신규 기업, 창업자, 중소 업체들에겐 진입장벽처럼 존재하는 현상이 발생해 버린다. 따라서, 규제 개혁을 주장한다.
- 재산권 보호
-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중시하며, 특히 지적 재산권에 대해서 더 강한 보호제도를 운영할 것을 요구한다.
- 외환시장 개입 금지
- 정부가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서 환율을 조정하면 수출이나 수입 양쪽 중 한쪽은 피해를 입으므로 수요와 공급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단, 급격한 환율 변동을 막는 개입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개입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본다.
- 자유무역과 국제관계
- 시장의 완전 개방, 자본 이동의 자율화와 관세 철폐를 이상으로 여긴다. 한편, 국제사회에서는 국내와 같이 합의된 일관적인 제도나 이를 강제할 기관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국제적인 투자와 진출을 보장하는 각종 조약과 무역협정, 그리고 이를 관할하는 기구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3. 다른 사상/이론과의 관계
'신(新)'자가 붙어 있어 일반적인 자유주의와 유사하지만 다르다.[24]단, 국가권력(그리고 그 권력을 독점한 집단)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면 안된다는 입장은 고전적인 자유주의 비슷한 점이 있으며, 그리고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그 중심원리로 삼는 점에선 경제적 자유주의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경향에 불과할 뿐 신자유주의를 칭하는 지식인들이 모여서 서로 연구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다만 후술할 시카고학파나 오스트리아학파들이 경제학 연구를 하거나 자유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보수성향 지식인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뭐라뭐라 하는 걸 신자유주의로 묶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경제이론으로는 오스트리아학파(빈 학파)와 시카고학파의 거시경제학 중 새고전주의 경제학과 연관이 깊다. 보통 신자유주의의 기반이 되는 근거를 새고전주의 경제학이 많이 제공하는 편이고, 신자유주의에 연관된 경제학자들이 보통 새고전주의에 속할 때가 많지만, 신자유주의는 국가정책에 관한 이념이고, 새고전주의는 거시경제이론이므로 둘은 엄밀히 다르다. 정치 사상과 경제 이론의 차이이다.
한편 자주 언급되는 밀턴 프리드먼은 새고전주의가 아니라 그 이전 세대에 해당하는 통화주의(monetarism) 경제학자다. 하지만 한국에선 보통 둘을 같은 의미로 자주 쓴다. 그래서인지 사실 이 학자가 정부의 경제적 개입뿐만 아니라 정치적 개입도 부정적으로 봤던 건 왠지 무시되는 듯. 또한 오스트리아학파와 새고전주의 학파는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변동에 대한 대응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프리드먼은 죽기 전 일본의 디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책으로 '일본은행이 계속해서 채권을 사들여서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높여서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며 양적완화 개념의 선구자가 되었다. 물론 이는 미국통화사에서 대공황시 연준의 소극적 통화정책으로 통화량 (M2) 감소와 디플레이션을 비판한 이래[25], 평생동안 연방은행 폐지론자 였지만 말이다.
이 외에도 신자유주의는 평등보다 자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의 짙은 영향을 받았다. 명심하자,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와 다르다. 한국은 이런 철학적 기반이 약해서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고 세계화에 긍정적인 우파진영 전반을 싸잡아서 신자유주의라 칭하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주의는 권위와 계층 등을 중시하지만 자유주의는 그런 인위적인 것들에 염증을 느끼고 개개인이 자유롭게 교호작용하는 사회를 선호한다. 신자유주의도 단연 고전적 자유주의인 아담 스미스의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와 존 로크의 사회계약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프리드먼과 하이에크도 사회의 계층화를 아주 부정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이다.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에서는 그 누구도 오랫동안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생각했고(정경유착등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면) 실제로 갈수록 기업들의 선호도와 순위 그리고 수명은 짧아지고 있다. 참고. 예측할수 없는 환경과 제한된 합리성으로 판단 불가능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4. 오해와 반론
가장 많은 오해는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교조주의적 사상이라는 거지만, 신자유주의는 정부실패가 시장실패보다 훨씬 위험하고 나쁘며 사실 왜곡 가능성도 크다고 주장한다.신자유주의에 대한 평가는 스펙트럼에 따라 상당히 갈리며, 그 장점과 비판 역시 뚜렷하므로,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일방적으로 매도하기 굉장히 애매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우파 내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으며, 좌파중에서도 이 노선을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더불어 90년대 좌파진영에서 대두된 제3의 길 역시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을 짙게 받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평가가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좌파정당인 노동당 당수이자, 영국 총리로 10년간 집권한 토니 블레어 역시 '내가 한 것은 마거릿 대처의 정책을 조금 수정한 것 밖에 없다'라고 할 정도로 신자유주의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하기 어려우며, 그의 정책은 ' 인간의 얼굴을 한 대처리즘'이라는 비아냥 섞인 평가도 들었다.
또한, 애초에 신자유주의가 대두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인 영국병 및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생산수단 국유화로 대표되는 적극적인 사민주의적 노선 역시 엄청난 경기 침체와 비효율, 적자를 불러 오는 등 영국 등 상당수의 나라에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쿠바, 소련, 중국 같은 스탈린주의 국가들 역시 노동자들이 직접 사회 운영에 참가하지 못하고 관료집단이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운영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다 보니, 인센티브를 충분히 주고 있는데도 갈수록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독일의 사민당도 2002년에 슈뢰더 총리가 '하르츠 개혁'을 추진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한 적이 있고 꽤나 성공적이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 입장은 신자유주의를 어느 정도 긍정하는 중도우파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이런 반론에 대해서도 '결국 일종의 일부 이단 식 꼬리자르기가 아니냐'라는 재반론을 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아래 문단을 참조할 것.
5. 신자유주의 등장의 역사적 배경
의외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1980년대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이 용어는 1938년 독일 학자 알렉산더 뤼스토프(Alexander Rüstow 1885~1963)가 어느 회의에서 말하면서 처음 나타났다. 그는 애덤 스미스식 자유방임주의가 실패했다고 하면서 강력한 국가개입을 옹호하는 자신의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라 지칭했는데 그의 기준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원조 '신자유주의'의 논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학파하고 뤼스토프는 그 회의에서도 그렇고 평소에도 많이 논쟁을 벌였다.
두번째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와 엮인 집단은 서독의 질서자유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경제정책 측면에서 자유방임을 추구하여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을 시도한 반면 사회복지에 관해서도 그럭저럭 신경을 쓴 자유주의의 일파에 속했다. 초기 질서자유주의자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자라고 지칭하기도 했으나 정작 발터 오위켄(Walter Eucken 1891~1950) 등의 거물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을 거부했고 이것은 오늘날 주류 질서자유주의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세번째로 시카고학파나 오스트리아학파, 혹은 마거릿 대처나 로널드 레이건 등과 엮인 신자유주의가 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자유주의다. 여기서는 세번째 케이스를 일반적으로 다룬다.
5.1. 냉전 초기(~1970년대)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배경은 소위 ' 빈 학파'라고 하는 1920년대 독일- 오스트리아계 학자들이 정리했다. 그러나 1929년에 발생한 대공황과 뒤이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이들의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묻히게 된다. 대공황의 해법으로 각광받은 것은 소위 케인스주의로 불리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일시적인) 통제와 개입을 정당화하는 접근법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차대전에서 각국은 제1차 세계 대전을 능가하는 총력전에 돌입하게 되었고, 국가의 통제가 당연시 될 수밖에 없는 전시경제의 특징은 전후인 1950년대와 1960년대 세계경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이 시기의 세계 경제에 문제가 많았다면 국가 개입을 죄악시하는 이들의 주장이 먹힐 구석이 있었겠지만, 50~60년대는 세계가 나름대로 전후 성장과 호황을 맞이한 시기였고, 세계의 경찰로서의 미국의 지위 역시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특히 미국 가계의 수입이 크게 늘면서, 지금까지도 미국적인 것하면 연상되는 것들이 이 시기에 정립되었다. 하얗게 칠한 교외의 2층 주택, 바비큐 그릴과 잔디깎기, 스프링클러가 갖춰진 아담한 정원, 포드 머스탱,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과 같은 중산층의 신화가 바로 이 50~60년대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바이오쇼크나 폴아웃 시리즈에서 패러디되고 있는 바로 그것. 국가가 개입해서 잘 돌아가고 있는데, 굳이 다른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이것이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때 프리드먼 옹이 신자유주의로 전환해보자고 바람을 넣었지만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경제가 그렇게 호황이었던 것만도 아니다. 당장 60년대 초 재임한 존 케네디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깠던 논리가 엄청난 실업률, 경제침체였고 이러한 도발적인 공세가 국민 지지를 얻음으로써 대통령 당선까지 됐다. 게다가 케네디는 당선 후 "공약 전에 아이젠하워를 너무 심하게 까서 미안했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생각보다도 심각하더라."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거대한 정부', 즉 국가주의 구조 하에서 경제가 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단 경제정책 뿐 아니라 일단 냉전과 전후복구라는 특수성, 그리고 특히 주요 산유국인 중동 세계가 아직 단결하지 못하고 서방 세계에 기댈 만큼 사정이 혼란해 있던 덕이 컸다. 서유럽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공산주의 진영에 대적하는 최전선으로서 미국의 가장 직접적인 쇼미더머니 대상이었고 이는 동아시아의 보루인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한 전쟁 특수도 누렸고, 무엇보다 중동에서 값싸게 매각하는 오일이야말로 미국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호기적인 상황은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일제히 무너지고 만다.
5.2. 신자유주의의 부상(1970년대 말 ~ 1980년대)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역설적이게도 세계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세계 경제에는 혼돈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독일과 일본의 공업 생산이 빠르게 회복되고, 이들 나라 공산품에 대한 미국의 수입이 급증하면서 금 1온스 당 35달러로 고정되어 있던 미화 가치가 액면가 이하로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속전속결로 점쳐졌던 베트남 전쟁이 예상을 뒤엎고 지지부진해져가면서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고, 미국은 결국 1973년 달러화의 금 태환을 전면적으로 중지하는 닉슨 쇼크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때마침 수차례에 걸쳐 일어난 중동전쟁의 산물로 오일 쇼크가 일어나면서 세계 경제는 빠르게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한편 오스트리아학파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50년대를 시작으로 고전학파의 이론을 정리해서 케인즈에 맞섰으며,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지언 해법, 즉 불황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정부가 대규모 재정정책을 사용하고 금리를 인하하여 경제활성화를 추구하는 방식이 비효율을 발생시키며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쨌거나 현대의 신자유주의의 시초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에게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신자유주의가 그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이에크는 유대계 인물로 나치 전체주의의 감각을 온몸으로 경험한 점도 있다. 그는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공교육에 대해 반대하는 정도였다. 이들의 사상은 정부가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개입해서 리스크를 초래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정부와 중앙은행이 모두 나서서 대기업을 밀어주는 체제는 아니었다.[26] 즉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폭주하게 된 것은 후대에 의한 것이지, 그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지울 수 없다.
이런 경제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정부의 규제 철폐와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정책이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 걸쳐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의 공화당 행정부가,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 내각이 채용하면서 신자유주의는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 신자유주의의 기수들은 영국병을 치유하겠다는 논리로 20여년에 걸친 평화가 끝났음에도 단꿈에서 깨지 못하고 있던 노동에 전면적인 공격을 가한다. 파업은 무력을 앞세운 정부의 강경 진압에 끝장났다. 실제로 대처는 석탄 광부들의 파업에 군대를 동원했다. 당시 영국의 광부 노조도 거의 게릴라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공격적이었으니, 서로 주고받으며 험악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화 《 빌리 엘리어트》가 이 시기 영국을 다뤘다.
어쨌든 공공부문이 대거 민간에 매각되고 막대한 실업자가 발생했으며 기존의 사회보장제도가 대거 철폐되어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이 급전직하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가장 강경하게 대응해야 했을 노동계급은 의외로 이에 맞서 싸울 힘을 잃은지 오래였다. 20여년의 평화에 찌든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필사의 각오로 덤벼드는 국가와 자본의 공세에 맞설 힘을 잃었고, 68운동으로 노동조합 및 공산당/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보수성을 똑똑히 목도한 지식인과 학생들은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거부하면서 왕따 신세가 된다.
5.3.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개막(1990년대~2000년대)
이와 동시에,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 정부는 세계적인 산업구조의 재편에 돌입한다. 미국과 유럽에 집중되어 있던 중화학공업 공장들이 대거 아시아 신진 공업국으로 이전하였고, 기존 선진국들의 산업은 제조업 대신 본격적인 금융업 중심으로 재편성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상품자본주의는 완전히 종말을 맞이하게 되고, 그 대신 대공황 이후 파탄났던 본격적인 금융자본주의의 시대가 다시 개막하게 된다.[27][28]그 외에도 MBA가 본격 유망 코스로 자리잡게 된 것도 이 때부터이고, 공부 좀 한다 싶은 사람들이 전부 통계학을 기반으로 한 금융공학에 올인하며 월 스트리트로 진출하는 것도 이 때부터의 일이다. 국가 경제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한 것이다.
또 다른 신자유주의적 변환의 중요한 요소는 바로 금융시장의 세계화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에서 일어났던 외국 자본에 국내 기업이 대거 인수합병 되는 현상이 세계구 차원에서는 1980년대부터 일어나고 있었다는 말이다. 쿠데타(칠레, 1973) 때부터[29]로 정권을 잡았고 경제 브레인을 필요로 했던 피노체트와 그 피노체트 밑에서 완성된 이론을 실험할 기회를 찾은 시카고 소년들 등의 합작품에서 시작됐다.[30] 이게 나름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면서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 남미 전체로, 그리고 전세계로 확산됐다.
이 현상의 대략의 테크는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공공부문이 매각되며, 은행의 기업 평가 기준이 엄격해진다 →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는 기업이 늘어난다 → 외국계 자본이 이 기업[31]을 헐값에 인수한다 → 인수 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건비를 줄이고 1인당 매출액 값을 부풀린다 → 인수한 기업체를 다시 높은 가격에 매각한다.
이러한 추세에 영합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각종 헤지펀드이고, 그 중심에는 그 유명한 조지 소로스가 있다. 90년대에 그가 행한 전설적인 활약은 일본과 영국을 뒤흔들고 90년대 말 신흥 공업국의 경제 혼란 와중에 많은 수익을 올려 일본에서 '요괴 소로스'라고 불릴 만큼 단기투자의 횡행에 크게 공헌했다.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합의 아래, 이들은 세계구급 경제기구인 IMF와 세계은행을 앞세워 이런 정책을 개발도상국에 강요하였다.
이런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력한 것은 1970년대를 정점으로 실물 부문의 생산력이 떨어지면서, 이 손실을 대체하려고 금융에서 자본의 대이탈이 일어났고 수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세계 정치/경제/사회를 재편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이론과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5.4. 2010년대 이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지면서 결국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신뢰도가 극한까지 떨어지게 된다. 집값이 계속 상승하지 않고 잠시 멈춰버리자 원래 터져야했을 풍선이 터져버렸다. 레이건 시대부터 쌓아놓은 신자유주의적 기반들은 금융가에서 벌어진 범죄라고 불러도 무방할 수준의 행위들에 악용되었고, 실제로 벌어진 범죄 사례로, 가령 서브프라임 사태에 직접 책임이 있는 자들은 정작 죽은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서 돈을 빌리려고 해도 조사도 똑바로 안 하고 대충 빌려주는 등 삽질을 알아서 한 주제에 신자유주의 원리대로라면 파산하고도 남았어야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연명했다. 그리고 그 지원금을 기업 살리는데만 제대로 써도 봐줄까 말까인데, 그 지원금으로 보너스 파티를 벌이는 추태까지 보여주었다.결국 열받은 미국인들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으면서 친월가. 즉 친금융 정부는 싫다고 대놓고 선언하게 된다. 이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나 조 바이든도 친금융 성향은 아니다. 트럼프는 금수저 출신이긴 해도 사업 잘해서 더 크게 성공한 인물인 만큼 친기업일지언정 친금융은 아니었고, 도리어 신자유주의학파에서는 반대하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중국의 급진적인 성장을 막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바이든은 잘 알려진 대로 오바마 라인이었고, 정책 면에서는 말 그대로 오바마 2라고 봐도 무방한 인물이다. #
물론 이렇게 터진 이후에도, 신자유주의는 여러가지 방법론을 찾아가며, 정치적인 권위만 없어졌을 뿐, 다시 여러 국가들의 경제 전략에 중심이 되었을 거란 낙관적인 시선은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계속되었다. 타격을 받았을지언정, 정부들은 곧 여러 자유주의적 경제 조치를 취할 것이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경제의 형태를 바꿀 것이며, 잠시 큰 타격을 받았을 뿐이지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정부실패'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세계의 모든 방법론을 파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2022년 9월 말 10월 초,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집하다가 영국의 경제를 말 그대로 날려(blow)버릴 뻔한 대실수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보수당 내 불신임이 눈덩이처럼 커져 최단기 낙마하고 마는 굴욕을 맛보며 신자유주의에 '죽음의 키스'를 날린 셈이 되었다.[32] 물론 트러스 총리는 감세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시점에서 멍청하게 감세를 고집했다는 점이 있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의 대표적인 경제 부양책으로 여겨지는 감세가 오히려 경제에 빠르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선례는, 신자유주의 사상에 치명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 #
6. 분파
크게 보면 신보수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 그리고 좀 더 파고 들어가면 자유지상주의자 내에서도 경제학적 이데올로기로 따지면 시카고의 새고전학파 등과 오스트리아학파 등으로 제각기 다르다. 이들 주장의 차이도 살피고 들어가면 굉장히 크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보수당 계열(주로 00년대 초반 한나라당) 시장친화와 기업친화를 혼용하고 그걸 정치적으로 남용했기에 저런 비판이 통하겠지만 미국은 시장친화와 기업친화라는 구호가 명백히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 신자유주의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신보수주의나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접근을 지나치게 한국의 관점에서 접근한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는 보통 신자유주의라고 지칭되는 여러 이론과 이데올로기, 주요 인물을 나열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진단을 보고 노동시장을 위주로 시장자유도 개선과 사회안전망 정비 병행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국내외에 적지 않은데, 개중에는 이른바 시카고학파 계열에 소속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가령 게리 베커나 프레스콧 등도 그러한 소리를 했다. 한국이 아닌 해외 경제에 관해서 라구람 라잔같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공공 유아 어린이집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경제학 이론: 다만, 경제학 이론(정확히는 신고전파를 위시한 주류 이론)은 그 자체로만 두고본다면 그냥 과학 이론일 뿐,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관련성이 있을지언정 아래 열거한 경제학자들이 무조건 신자유주의를 따른다는 것은 아니다.
- (구) 시카고학파 중 거시경제학자들 혹은 좀 더 넓게 지칭하자면 이른바 담수파 거시경제학자들[33] - 통화론자[34], 실물경기변동이론[35],
- 공공선택이론[36][37]
- 기타 - 공급측면 경제학파[38][39][40]
- 참고: 애덤 스미스를 위시한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41]은 상관이 없다. 이들을 엮어버리면 경제학 전체가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오류가 발생한다.
- 행정학 내 이데올로기 - 신공공관리, 약칭 NPM[42]
- 기타 이데올로기
- 신보수주의 - 레이건, 대처 등[43], 흔히 말하는 네오콘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 오스트리아학파 - 문서 참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44]
- 자유지상주의 - 문서 참고, 신보수주의와 자유지상주의는 엄밀히 말해 다르다. 참고로 자유지상주의는 좌파( 놈 촘스키 등)부터 공화당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다만, 보통 자유지상주의자라고 한다면 미국 제3의 정당인 자유당이나 공화당[45]을 떠올리는 게 많긴 하다. 다만, 자유지상주의는 공화당에서 컬트적인 소수일 뿐이다. 근래 세를 불리긴 했다.
-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사람들
- 그레고리 맨큐: 케인즈학파에 가깝지만 신자유주의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은 적이 있다. 다만, 맨큐는 부시 밑에서 보좌관으로 일했고 더 나아가 시장중심주의를 늘 강조하는 입장에 있다. 단지 통화정책에 있어 정책의 유효성을 강조했을 뿐이다. 다만 학문적으로는 케인즈학파지만 정치적으로는 극우 까지는 아니여도 상당히 강경한 우파 포지션이고, 그렇기에 신자유주의자로 오해받는 일이 많다.
- 이명박: 신자유주의자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살펴보면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정책보다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띄지 않은 정책이 오히려 더 많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당시 실행된 정책 중 신자유주의와 일맥상통 하는 것을 보면 법인세 및 종부세의 감세와 FTA를 추진한 정도밖에 없고, 그마저도 한미 FTA는 취임 전부터 협상이 진행되던 것이다. 몇 차례의 이루어지지 못한 민영화 시도[46]나 비즈니스 프렌들리 구호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고환율 정책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아니고 주요 정책으로 내세운 4대강 정비 사업은 아예 케인즈주의적인 정책이었다. 이외에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셧다운제[47],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 규제, 국가장학금 설립, (사립대를 포함한) 대학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 같은 것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 취임 기간중에 도입된 정책들이다. 이 정책들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아니고,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없는 정책들이다. 무엇보다, 서울시장 재임 중 도입했던 환승할인과 시내버스 준공영제만 보아도 신자유주의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볼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70년대 박정희 시절의 국가 주도의 토건 사업과 이를 통한 경제 개발을 강하게 긍정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국가 경제의 대 정부 의존도와 공공 영역의 비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부합하는 정책을 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사실 다른 분야의 정책 만큼이나 전형적인 보수주의 우파의 면모가 강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위의 법인세와 종부세의 감세 또한 이런 시각으로 보면 들어맞는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 또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케인즈적 관리주의 정책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 도널드 트럼프: 아주 특이한 성향을 보이는데, 국내 경제정책 분야에서는 감세와 복지 축소, 규제 완화, 기업 친화등 작은 정부론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 성향을 드러낸다. 그러나 대외정책에서는 신고립주의적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정책이 자유무역론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주 이례적이다.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수용하면서 국내경제는 케인스주의를 펼칠 때[48]는 세계적으로 종종 있어도 트럼프와 같이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7. 비판
대략 레이건 정부시절부터 대학은 이윤을 지향하는 일종의 회사로 변모되었다. 마케팅 전문가를 채용하고, 학교직원의 직함을 기업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직함으로 바꾸고, 특허권을 구매하고, 기업의
앞잡이가 되는 것이 공익을 위한 연구인 것처럼 포장하고 ‘배움’과 멀어지고,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사람에게 비정상적으로 높은 봉급을 지급하고, 백만달러짜리 운동지도자를 영입하고, 교육을 상품화하고, 학생을 소비자로 모시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위한 기금을 축소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일을 전반적으로 경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중략) 학생들은 쉽게 가르치는 교사들의 수업이나 경영학, 신문방송학 같은 쉬운 전공으로 몰려들었고 학교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교수직 떠나 마주한 신자유주의의 일그러진 초상
교수직 떠나 마주한 신자유주의의 일그러진 초상
7.1. 신자유주의 내부의 모순과 윤리적 문제
2004년 여름, 멕시코 만에서 세력을 일으킨 허리케인 찰리가 플로리다를 휩쓸고 대서양으로 빠져나갔다. 그 결과 스물두 명이 목숨을 잃고 11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했다. 뒤이어 가격폭리 논쟁이 불붙었다.
올랜도에 있는 어느 주유소는 평소 2달러에 팔던 얼음주머니를 10달러에 팔았다. 전력 부족으로 8월 한여름에 냉장고나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하던 많은 사람이 울며 겨자 먹기로 그 값을 고스란히 지 불했다. 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전기톱과 지붕 수리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건설업자들은 지붕을 덮친 나무 두 그루를 치우는 데 무려 2만 3000달러를 요구했다. 가정용 소형 발전기를 취급하는 상점에서 는 평소 250달러 하던 발전기를 2000달러에 팔았다. 일흔일곱의 할머니는 나이 든 남편과 장애가 있는 딸을 데리고 허리케인을 피해 모텔에서 묵었다가 하루 방값으로 160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평소 요금은 40달러였다.
플로리다 주민들은 바가지요금에 분통을 터뜨렸다. <USA 투데이> 는 '폭풍 뒤에 찾아온 약탈자' 라는 머리기사를 실었다. 한 주민은 지붕 위로 쓰러진 나무 한 그루를 치우려면 1만 500달러가 들 것이라며 "남의 고통과 불행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주 법무장관 찰리 크리스트도 같은 생각이다. "기가 막힐 일이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에 남의 고통을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의 탐욕이 도를 넘었다."
플로리다에는 가격폭리처벌법이 있어서,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법무장관 사무실에 2,000건이 넘는 피해사례가 접수되었다. 이중에는 소송에서 승리한 경우도 있다. 웨스트팜비치에 있는 숙박업소 '데이스 인' 은 벌금 7만 달러를 내고 추가로 받은 숙박료를 투숙객에게 돌려줘야 했다.
그러나 크리스트가 '가격폭리 처벌법'을 집행하려 하자 일부 경제학자들은 해당 법에, 그리고 주민들의 분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중세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전통이나 물건 본래의 가치로 결정되는 '공정 가격'에 따라 물물교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지켜본 결과, 시장 사회로 진입하면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었을 뿐 '공정 가격'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유시장 경제학자인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은 가격폭리를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학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표현" 이라고 말하면서, "경제학자 대다수가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너무 복잡해서 구태여 신경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웰은 <탬파 트리뷴> 에 기고한 글에서, "'가격폭리'가 어떻게 플로리다 주민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그는 "가격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수준보다 현저히 높을 때" 가격폭리라는 혐의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쩌다 익숙해진 가격 수준" 은 도덕적으로 대단히 신성한 것이 아니다. 그 가격은 허리케인 습격을 비롯해 다양한 시장 상황에 따라 형성되는 다른 가격보다 "더 특별하거나 '공정한' 가격" 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소웰의 주장에 따르면 얼음, 생수, 지붕 수리, 발전기, 모텔 방의 가격이 높아지면 수요자는 소비를 억제하고 공급자는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먼 곳까지도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려는 욕구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뜨거운 8월에 플로리다가 정전되었을 때 얼음주머니 가격이 10달러라면, 제조업자는 얼음을 더 많이 생산해 나르려 할 것이다. 소웰은 비싼 값이 전혀 부당하지 않다면서, 그것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 교환할 물건에 부여하기로 한 가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친시장 논평가 제프 제이커비(Jeff Jacoby)는 <보스턴 글로브> 기고문에서 비슷한 논리로 가격폭리처벌법에 반대했다. "시장이 견딜 만한 값을 요구하는 행위는 폭리가 아니다. 탐욕도 뻔뻔스러움도 아니다. 그것은 자유 사회에서 재화와 용역이 분배되는 방식이다." 그는 "가격 급등은 강력한 폭풍으로 삶이 수렁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특히 화가 나는 일" 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화가 난다고 해서 자유시장을 방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언뜻 터무니없어 보이는 가격이지만, 필요한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공급업자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사실은 "실보다 득이 훨씬 많다". 제이커비의 결론은 이렇다. "장사꾼을 악마로 만든다고 해서 플로리다의 복구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다. 장사를 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오히려 낫다."[49]
주 법무장관 크리스트(공화당원으로, 나중에 플로리다 주지사가 되었다)는 <탬파 트리뷴> 특별기고난에 가격폭리처벌법을 옹호하는 글을 실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비상사태를 맞아,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대피하고 가족을 위해 기본 생필품을 구하러 다니는 동안 업자들이 비양심적인 가격으로 이득을 보는 상황을 정부가 팔짱을 끼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는 "비양심적인" 가격이 진정한 자유 교환을 반영한다는 의견을 반박했다.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마이클 샌델
올랜도에 있는 어느 주유소는 평소 2달러에 팔던 얼음주머니를 10달러에 팔았다. 전력 부족으로 8월 한여름에 냉장고나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하던 많은 사람이 울며 겨자 먹기로 그 값을 고스란히 지 불했다. 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전기톱과 지붕 수리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건설업자들은 지붕을 덮친 나무 두 그루를 치우는 데 무려 2만 3000달러를 요구했다. 가정용 소형 발전기를 취급하는 상점에서 는 평소 250달러 하던 발전기를 2000달러에 팔았다. 일흔일곱의 할머니는 나이 든 남편과 장애가 있는 딸을 데리고 허리케인을 피해 모텔에서 묵었다가 하루 방값으로 160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평소 요금은 40달러였다.
플로리다 주민들은 바가지요금에 분통을 터뜨렸다. <USA 투데이> 는 '폭풍 뒤에 찾아온 약탈자' 라는 머리기사를 실었다. 한 주민은 지붕 위로 쓰러진 나무 한 그루를 치우려면 1만 500달러가 들 것이라며 "남의 고통과 불행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주 법무장관 찰리 크리스트도 같은 생각이다. "기가 막힐 일이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에 남의 고통을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의 탐욕이 도를 넘었다."
플로리다에는 가격폭리처벌법이 있어서,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법무장관 사무실에 2,000건이 넘는 피해사례가 접수되었다. 이중에는 소송에서 승리한 경우도 있다. 웨스트팜비치에 있는 숙박업소 '데이스 인' 은 벌금 7만 달러를 내고 추가로 받은 숙박료를 투숙객에게 돌려줘야 했다.
그러나 크리스트가 '가격폭리 처벌법'을 집행하려 하자 일부 경제학자들은 해당 법에, 그리고 주민들의 분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중세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전통이나 물건 본래의 가치로 결정되는 '공정 가격'에 따라 물물교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지켜본 결과, 시장 사회로 진입하면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었을 뿐 '공정 가격'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유시장 경제학자인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은 가격폭리를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학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표현" 이라고 말하면서, "경제학자 대다수가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너무 복잡해서 구태여 신경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웰은 <탬파 트리뷴> 에 기고한 글에서, "'가격폭리'가 어떻게 플로리다 주민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그는 "가격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수준보다 현저히 높을 때" 가격폭리라는 혐의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쩌다 익숙해진 가격 수준" 은 도덕적으로 대단히 신성한 것이 아니다. 그 가격은 허리케인 습격을 비롯해 다양한 시장 상황에 따라 형성되는 다른 가격보다 "더 특별하거나 '공정한' 가격" 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소웰의 주장에 따르면 얼음, 생수, 지붕 수리, 발전기, 모텔 방의 가격이 높아지면 수요자는 소비를 억제하고 공급자는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먼 곳까지도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려는 욕구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뜨거운 8월에 플로리다가 정전되었을 때 얼음주머니 가격이 10달러라면, 제조업자는 얼음을 더 많이 생산해 나르려 할 것이다. 소웰은 비싼 값이 전혀 부당하지 않다면서, 그것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 교환할 물건에 부여하기로 한 가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친시장 논평가 제프 제이커비(Jeff Jacoby)는 <보스턴 글로브> 기고문에서 비슷한 논리로 가격폭리처벌법에 반대했다. "시장이 견딜 만한 값을 요구하는 행위는 폭리가 아니다. 탐욕도 뻔뻔스러움도 아니다. 그것은 자유 사회에서 재화와 용역이 분배되는 방식이다." 그는 "가격 급등은 강력한 폭풍으로 삶이 수렁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특히 화가 나는 일" 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화가 난다고 해서 자유시장을 방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언뜻 터무니없어 보이는 가격이지만, 필요한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공급업자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사실은 "실보다 득이 훨씬 많다". 제이커비의 결론은 이렇다. "장사꾼을 악마로 만든다고 해서 플로리다의 복구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다. 장사를 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오히려 낫다."[49]
주 법무장관 크리스트(공화당원으로, 나중에 플로리다 주지사가 되었다)는 <탬파 트리뷴> 특별기고난에 가격폭리처벌법을 옹호하는 글을 실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비상사태를 맞아,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대피하고 가족을 위해 기본 생필품을 구하러 다니는 동안 업자들이 비양심적인 가격으로 이득을 보는 상황을 정부가 팔짱을 끼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는 "비양심적인" 가격이 진정한 자유 교환을 반영한다는 의견을 반박했다.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마이클 샌델
신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자유의 영역이 너무도 불분명하고 결국 이 "자유"가 정부의 통제가 적으나마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모순적인 문제가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를 "제한된 자유"라고 비판하거나 "근본적으로 리버럴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가?" 라는 비판을 하게 된다.
또한 신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공정한 경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남기기도 한다. 예를 들면 "거의 제한을 받지 않고 성장해온 선진국들의 산업과 개발도상국의 산업이 같은 규제(환경이나 저작권)를 받으며 경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들 수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다만 현실 경제에서 개도국 기업과 선진국 기업은 무조건 경쟁만 하는 것은 아니며 협업이나 분업을 하는 케이스도 많다. 개도국 기업이나 선진국 기업이 처한 환경도 굉장히 다르다. 가령 인건비 부담의 측면에서는 개도국이 유리한 반면, 시장 접근성은 선진국이 유리하다. 케바케인 셈. 거기에 결정적으로 개도국 기업들이 "선진국의 질 좋은 기업들과 어떻게 경쟁해요?"라며 징징거리는 동안 선진국 기업들은 "싼 값에 인력써서 물량공세 하는 개도국 기업들과 어떻게 경쟁해요?"라며 징징거리고 있다. 이건 기업 뿐만 아니라 인력도 마찬가지다.
한편 평소에는 자유경쟁을 내세우며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건 그들의 의지 탓이지 경제제도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정부가 도울 필요 없다고 했던 사람들이, 정작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에는 구제금융을 구걸했던 이중적인 태도도 비판거리다. 이 이기적인 행태는 일부의 문제라 볼 수도 있다. 구제금융 자체도 시장개입이니까 공화당 의원들이나 신자유주의를 주장한다고 하는 학계에서는 구제금융을 반대했으니. 실제로도 구제금융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보단 천민자본주의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업이 벌이는 비도덕적인 운영방식과 임금체불,하청쥐어짜기,탈세,횡령,투기를 정당화하는 등 많은 논란을 만들었다.
주로 사기업들이나 보수 성향 언론에서 호가호위하는 식으로 빌붙어 신자유주의의 브랜드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데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 덕분에 자유지상주의 성향 학자들, 그 중에서 밀턴 프리드먼은 이걸 두고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사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위험한 존재들이며 사기업들이 자유에는 찬성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 개입을 원한다.
밀턴 프리드먼
밀턴 프리드먼
특히 위의 예시로 언급된 토머스 소웰이나 제프 제이커비 같은 정신나간 인간들이, 재난 상황에서 폭리를 취하며 국민들이 죽어나가건 말건 오히려 그런 부당한 폭리를 어떻게든 쉴드치지 못해서 안달나 있는 모습을 보면 사실상 이들의 주장은 "뭣도 모르는 우매한 개돼지들이 돈 없으면 그냥 죽을 것이지 어디서 감히 신성한 시장의 자유를 침해하려 드느냐" 라는 폭언에 가깝기에, 일반 서민들 입장에선 신자유주의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돈에 미친 악마, 혹은 '기업한테 받아먹을 뒷돈에 미쳐서는 돈 없는 사람 죽던 말던 사람 목숨보다 시장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우기며 부도덕한 기업 편이나 드는 소시오패스들로 취급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
물론 소웰이나 제이커비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부가 가격정책에 자꾸만 비이성적으로 개입하면 판매자의 공급 동기가 사라지고, 비일관적인 정책으로 인해 수요예측을 할 수 없게 되어 공급을 포기하면서 결국에는 평균적인 가격상승이라는 막대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생필품이 절박한 상태에서 가격 상승으로 국민들이 큰 피해를 보고 고통을 받는데 정부가 모른 척만 하고 있다면 고통은 분노가 될 것이고, 그 분노가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게 될 것[50]이라는 반론도 있다.
7.2. 책임 회피, ' 일부 이단'식 꼬리 자르기
더불어 신자유주의자들은 본인들이 촉발시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을 두고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데 당장 본문에서만 봐도 자꾸 2008이란 숫자만 거론되면 "이건 학자, 사상적 문제가 아니라 정책화 과정에서 발생한 천민자본주의적 소행이다" 라는 식으로 일관적인 꼬리 자르기를 시전하는 것 부터 눈여겨 볼만 하다. 천민자본주의적 후안무치함이 경쟁 만능주의- 사회 다윈주의식 인간, 사회관에서 변질한 부분인지,아니면 본질인지는 넘어가더라도, 2008년 당시 구제 금융을 반대했다던 경제학자들이 그렇다고 해서 시민 사회에서 주목할만한 구제 반대 캠페인을 조직하거나 의식적으로 세력화된 반대 행보를 보였던 것도 아니다. 경쟁 만능주의에 기반한 금융권의 무절제한 확대와 이에 따른 시민 사회, 정부 기관의 견제 능력이 탈탈 털리고 있던 90년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담론에 대한 아무런 거부감도 보이지 않다가 대공황 이후 미증유의 전세계적 경제 위기가 터지며 반발여론이 확산되자 "애초에 신자유주의란 개념 자체가 허수아비였다"라고 하며 상술한 근 40년간의 세계적인 경제 정책적 추세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위의 오해와 반론 문단에서 말했듯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자유기업원 수준의 극단적인 사례만 드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나, 결국 신자유주의의 자칭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주류에서 정책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분파는 자유기업원 수준의 레이건, 대처의 분파이다. 이런 자칭 분파들이 신자유주의의 주류로 활용되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그것이 신자유주의 비판의 핵심 원인인 것을 무시한 채 신자유주의 일부 분파가 저지른 짓으로 무마하려 한다. 이는 엄연한 꼬리 자르기식 변명이다.
7.3. 중산층의 붕괴와 빈부격차 심화에 따른 사회 불안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으로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다. 부의 절대값은 늘어났는데, 서민이나 빈민에게 돌아가는 파이는 점점 줄어들고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52] 또한 신자유주의가 강조하는 공정함과는 반대로 대기업과 자본가(그리고 서구권에서는 백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을 폈다는 주장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53]또한 글로벌리즘이 선진국 내 빈부격차를 악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의 빈부격차는 커진 반면 그렇지 않은 국가의 소득 격차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빈부격차의 원인으로 IT혁명과 성장 둔화, 2008년 이후의 금리 인하를 꼽기도 한다. 게다가 미국에서 신자유주의로 말미암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조차 보장받지 못할만큼 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박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주로 흑인들)이 강력범죄를 더많이 저지르게 되어 인구대비 수감자 비율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멕시코도 미국의 권고에 따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하여 정부조직을 축소하고 시장통제를 금지하는 등 경제를 발전시키기는 하였으나 이는 멕시코 치안을 약화시키고 경제불평등을 심화시켜 멕시코 빈민들이 범죄조직을 결성하는 등 수많은 범죄를 일으켜 멕시코의 국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식량기업의 공세에 자영농이 대부분인 멕시코 농업은 붕괴되었으며 그나마 있던 제조업기반도 붕괴되어 미국기업의 하청으로 전락하였으며 그로 인해 생긴 실업자들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갱과 마약 카르텔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 등 막장이 된다. 이들이 생산하는 마약들은 미국으로 수입되어 미국 마약범죄를 중폭시키는 등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작은 정부는 이후에도 의도치 않게 더더욱 작아지며 하부계층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빈부격차의 심화로 세수에서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는 중산층이 붕괴했고 세수가 줄어들다 보니 정부가 더더욱 긴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의 혜택을 입어 더더욱 돈을 많이 버는 대기업과 자본가에게 세금을 더 거두기엔 자기모순이며, 결국 간접세나 빈민층을 위한 복지를 취소하는 등으로 빈민을 더 쥐어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대의 발전으로 기업들이나 자본가들이 회사나 직원들에게 투자하여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보다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여 이익을 보는 편을 선호하게 되면서 중산층 양성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나 복지에 소홀히 해지는 경향이 커지기 시작했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어려워졌다. 물론 금융이나 주식쪽에서도 일자리를 창출하기는 하나 소수이고 인공지능 발전으로 오히려 금융계 일자리가 3D일자리보다 대폭 줄어들어 양극화를 늘리고 있다.
이런 사회불안의 재점화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진정한 적은 노동계가 아니라 고전적 보수주의였다. 계급 타협이 정착된 상황에서 노동 계급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불안 일으킴으로써 오래된 계급 투쟁의 망령을 다시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거릿 대처를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노동당이 아니라 보수당 중진들이었다.
7.4. 민주주의 훼손과 큰 정부의 역설 논란
신자유주의 체제 실시를 위해서는 민영화와 같은 대대적인 정책을 실시해야만 하는데, 민주주의 제도상에서 엄연히 보장되어 있는 파업이나 시위 등 다수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책을 감행하려면 강력하고 억압적인 정부가 필요한 것이다. 공황같은 사태에서 국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경제 통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신자유주의가 성립하려면 압도적인 자본을 소유한 주체인 재벌 혹은 대기업 등을 위해서 존재하는 괴뢰 정부가 필요하다는 비판이다.그래서 대체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는 그 순간에는 국민 여론보다 정부의 단호함이 더 중요시된다. 적절한 타이밍으로는 해일, 폭풍과 같은 재해를 입을 때나, 갑작스런 정부 교체나 전쟁 등으로 정책을 받아들였을 때의 예상 피해계층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수 없는 상황인 때가 많다. 그게 안될 때에는 그런 상황을 만드려고 노력한다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금융/기업인들이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의 적자를 부풀리는 식으로 홍보하며 무디스에 자국의 신용등급을 깎아달라는 요청을 한 적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대처는 계급 의식을 허물기 위한 수단으로 재산 민주주의라 하여 주식 시장을 개인 투자자들에게 개방(매물은 민영화된 기업)하고 공공 주택을 국민에게 분배(이것도 민영화다)한 바 있다. 물론 그 결과 고질적인 영국병이 완화되고 시장이 활력을 띄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근본적 해결인지는 미지수이며[54] 사회 계서제에 대한 복종이나 노조의 제한을 주창하는 행동은 현대 민주주의적 가치와 상당히 상충되는, 위험한 방향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
위기상황에서도 큰 정부를 원한다는 것도 문제다. 평소에는 그렇게 작은 정부를 원하다가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자 큰 정부에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에 민중들은 정부, 금융기업/금융인들에 큰 충격과 배신감을 얻었다. 신자유주의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 정확한 이유이다.
현실에선 신자유주의의 토대인 야경국가주의와 정반대에 있는 경찰국가주의국가, 쉽게 말해 준 독재국가들이 오히려 신자유주의에 기대는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좋은 예로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가 있다.[55] 그렇기에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할 여지가 큰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오히려 부정적일 때도 많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애초에 보다 규제를 없애고 자유로워지자고 하는 슬로건 자체가 필연적으로 정부의 제한이 있지 않으면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것을 '제한된 자유'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밖에 중국, 러시아가 신자유주의적인 행태를 띄기도 한다. 이 나라들은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지향하거나 지향했던 나라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최저임금, 사회보험, 공공부조, 물가 안정같은 사회 안전망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경제 성장에 치중하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가 자리잡지 않은 독재국가, 부패한 국가는 민영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빌미로 국가기관을 사유화하여 파벌끼리 나눠먹고, 노동자를 극심하게 탄압하는 등의 문제를 보인다.
그런 결과,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국가에서는 정치가 실종되고 만다. 빈부격차나 사회안전망, 인종차별 같은 전통적인 정치문제부터, 성소수자 등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인정이나 이민자로 인한 문화충돌 같은 새로운 정치문제 조차 중앙정부가 손을 대지 않으려 하고, 새로운 정치문제가 생길때 마다 정권의 위협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담론을 용납하지 않으며, 오로지 구성원들간의 무한경쟁에만 맡겨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에서는 정권이 바뀔때마다 제로섬, 혹은 환국에 가까운 대격변이 일어나고, 정치의 양극화가 발생하며 혼란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일부 국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 심각해지면서 헝가리나 몰도바처럼 구 공산당이 재집권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비록 공산당이 재집권하지는 않았으나 가장 막장화된 나라의 예를 들자면 보리스 옐친 시기의 러시아를 들 수 있겠는데 빈약한 러시아의 경제기반을 생각하지 않고 워싱턴 컨센서스에 기반한 IMF의 조언만 믿고 무리하게 민영화를 시행했다가 되려 폭등하는 물가, 빈부격차 극심화, 독점재벌 등장과 각종 부정부패[56], 늘어나는 사회범죄와 출산율 저하와 평균수명 단축으로 인구 감소 등의 부작용을 겪었으며 극우정당과 극좌정당이 약진해 정치혼란도 꽤 심했다. 이런 상황은 푸틴 정부 때 세계유가가 폭등해 고유가가 되고 나서야 석유팔이로 겨우 해소되었다. 물론 원자재에 과도하게 의존된 경제 구조가 으레 그렇듯 2010년대 석유값이 폭락하고 서방 제재가 이어지자 다시 불경기를 맞고 있지만.
러시아는 소련 붕괴 직후나 지금이나,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잘 갖춰졌는지에 대해 측정하는 세계의 여러 민간기구 및 연구소의 지표에서 최하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서방 국가에 비하면 여전히 형편없는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애초에 시장경제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계획경제체제의 산물, 관치가 횡행하는 나라이니 말 다했다.
러시아는 국가수반과 그 측근이 GDP의 10%를 짬짜미하고 있는 나라이기에 이를 두고 신자유주의 운운하는 건 엉터리라고 하는데, 사회 안전망에 대한 태도에 한해서는 러시아는 완벽한 신자유주의 국가 그 자체다. 러시아를 두고 신자유주의 국가라고 일컫는 것은 부족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비판적 성격이 가미되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러시아가 말로는 자유시장경제를 외쳤어도 실제 적용은 개판으로 했다는 의미인데 의외로 개발도상국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다른 사례로 아르헨티나는 시카고 보이즈를 동원해 경제를 운용했는데 실제 경제 자유도 개선은 말레이시아만도 못했다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 소위 개방정책이 일견 성공을 거둠으로써 러시아와 대조적으로 긍정적인 경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된다. 물론 중국 역시 관치가 여전해 전통 신자유주의 이론과는 많이 다르긴 하고, 이것조차도 2020년대 미중 패권 갈등과 인권 문제로 서방 제재에 직면하면서 갈림길에 서있는 형국이다.[57]
사회 안전망에 대한 국민의 강한 열망은 언제나 존재했고 신자유주의학파의 주류 이론은 이를 큰 정부에 대한 선호라 비판해왔기에,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자들도 덩달아서 "어떻게든 가진 자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벌게 해주려고 사회 안전망까지 모조리 다 팔아먹어서 돈 없고 능력 없는 서민들은 그냥 나가 죽으라고 등 떠밀지 못해 안달난 기업 앞잡이 인간 말종들" 이라고 까이는 측면이 크다.
7.5. 국방력 약화와 안보위기
많이 간과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는 결국 안보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다.[58] 대표적으로 도널드 럼즈펠드는 미군의 신자유주의화를 추구했고 그 결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점령 지역 유지에 실패하고 말았다. 점령 지역 안정시키려면 대규모 병력이 주둔해야하는데 럼즈펠드는 군에 관련 예산이 더 크게 들어가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고 소규모 전투 병력으로만 전쟁을 치렀다. 그 결과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간전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조선업은 1980년대 당시 미 정부의 방임 정책 때문에 붕괴돼서 당장 군함을 건조하거나 수리할 조선소가 부족한 상황이다. #마거릿 대처도 왕립 엔필드 조병창을 민영화한 결과 영국군이 큰 곤란을 겪어야만 했다. 당시의 대표적인 결과물로 민영화 이후 원가 절감을 하려고 얇은 강판을 프레스 가공하여 만든 SA80(L85A1)이 희대의 쓰레기 총으로 유명하다. 이 총이 사람을 몇이나 잡아먹을 뻔 했는지는 해당 문서 참조.
게다가 사회안전망 예산삭감은 범죄 증가를 가져왔고 이는 경찰 및 CCTV 확충같은 치안예산만 증가만 불러와 정부의 재정적자만 늘렸다.[59] 멕시코와 같이 치안이 불안정한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경찰조직을 대폭 축소하였더니 해고된 경찰들이 마약카르텔이 되어 멕시코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이런 안보위기는 세계화 시대와 더불어 국가간 뿐만이 아니라 생물의 공격에 의해서도 벌어졌다. 2003년에 있었던 SARS가 그 전조였고, 16년만에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고, 이로 일어난 대봉쇄라는 경제위기는 대공황과 동급, 혹은 이상의 경제적 악영향을 끼쳤다.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유럽, 북미에서 확진자수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자 작은 정부를 지향하다가는 이 전염병의 확산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많은 국가들이 정당의 정치적 스팩트럼과 관계없이 신자유주의를 뒤로 하고, 봉쇄에 가까운 보건정책과 셧다운 기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복지정책 등 큰 정부로 확산을 막아보려 노력했고 일부는 성공적이었지만, 신자유주의를 끝까지 고수하던 브라질과 미국 남부 사회는 코로나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자발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경제가 마비되는 것이 싫어서 봉쇄조치를 하지 않았더니, 사람들이 죄다 전염병에 걸려 나자빠지거나 죽는 바람에 '비자발적 거리두기'가 되고 말아 실물경제가 붕괴했다. 사회안전망이 두텁고 얇고에 따라 누구는 두번째 재기의 기회를 얻었지만, 누구는 목숨을 포함한 모든 걸 잃고 자기 재산은 그대로 더 부유한 계층으로 빨려들어가 양극화만 공고해진 끝에 사회불안정은 더욱 심해졌고, 상당한 규모의 시장과 경제, 그리고 기업이 공중분해 되었다.
7.5.1. 범유행전염병과 작은 정부의 한계
2020년대 들어 심각해진 감염병의 창궐과 극도로 불안정해진 세계 정세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또 한 차례 위기를 맞이한다. 범유행전염병 자체만으로도 작은 정부가 감당할 것이 아니었는데 거기에 드는 경제적 비용이나 사회적 비용 또한 큰 정부가 없이는 경제적 파산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기본인 개인의 자유마저도 그로 인해 코로나19가 사회 공동체에 퍼지자, 개인의 자유마저도 어디까지 허용되어야하는지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오고 있는 상태가 되었고, 이미 리먼 사태로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진즉에 신뢰도를 잃어가던 국가들 대다수는 곧 큰 정부가 되어 강제로 시장을 주물러 자본 이동을 강제적으로 활성화해야만 했다.
물론 자이르 보우소나루 휘하 브라질처럼 끝까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국가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사실상 코로나19라는 외부효과를 방치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공동체 구성원들의 초대규모 감염이나 장애인이나 불치병 환자 및 노약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이 몰살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환경 내에서 원론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란 국가가 솔선수범해서 태업을 하거나 고위층의 자유를 위해 빈부격차를 극단적으로 확대하며 시장과 경제를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정부실패, 시장실패 할 것 없는 총체적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으며, 대공황에 버금가는 유례없는 마이너스 성장과 전세계적 경제위기를 가져왔다.
신자유주의는 판데믹 회복기에도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1, 2차 제조생산업종은 소비감소와 대면활동 감소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 인원감축 및 생산량을 줄였는데, 회복기에 들어서면서 코로나19로 억눌려있던 소비심리가 폭발하면서 인원감축과 생산설비 감소로 생산성이 떨어져있던 제조생산업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수요가 나오면서 공급난이 이어지고, 이는 곧 엄청난 수치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제롬 파월이 경기회복의 브레이크를 밟으면서까지 금리를 대폭 인상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8. 한국의 신자유주의
자유주의나 세계화 등, 2020년대 기준으로 신자유주의를 이루는 요소라 할 만한 정책들은 1997년 외환 위기 이전부터 있어왔지만[60], 본격적인 정책적 이념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도입되었다.
97년 외환 위기 이전의 경제 정책들은 단일한 사상을 기조로 한다기 보다는, 여러 경제 이념을 짜깁기하여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면이 강했으나[61], 국민의 정부부터는 확고하게 신자유주의라고 일컬을 만한 토대 위에서 경제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되었다.[62]
문민정부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면서 규제완화, 민영화, 시장개방을 강화하는 경제정책으로 선회했다.[63]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고, OECD 가입을 위해 금융, 외환시장을 개방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의 변화속에서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 # #
이처럼 국민의 정부에서 신자유주의가 정책에 적극 도입된 것은 어느 정도 반강제적 측면도 있었는데, 외환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 아래에 해고를 비롯한 구조조성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간섭은 어느 세력이 집권했든지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참고로 이때 국제 사회로부터 돈 좀 빌렸다고, 한 국가가 거의 망할 정도로 강한 압력을 넣어도 되냐는 식의 비난을 받은 IMF는 이후로 태도가 조금 유순해지기는 했다. 너무 쪼이면 IMF에 돈 빌리는거 보다 그냥 디폴트 선언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가 다극화되어 한 국가의 경제위기가 전세계적 경제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한국보다도 경제규모가 작은 그리스가 2010년대 유로존을 탈퇴한다고 한참 떠들던 시절 국제경기가 출렁거렸던 일을 떠올리면 된다. 무엇보다 더 이상 IMF도 과거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신자유주의의 선봉주자였던 미국마저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대규모의 재정을 투입하는 케인즈주의 정책을 펴는 등 사실상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즉, 전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 바람이 퇴조한 상황에서 IMF 혼자 신자유주의를 외쳐본들 큰 의미가 없는 것.
장하준 교수 등도 한국에 신자유주의가 정책 기조로 자리잡기 시작한 시점을 국민의 정부로 진단하고 있다. 다만, 국민의 정부의 각종 정책을 신케인즈학파의 경제론[64]을 바탕으로 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65]
첨언하자면, 한국은 여전히 시장 자유도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높지 않다. 다른 영역은 선진국들 평균 혹은 그 이상이지만 정부의 부패나 각종 규제,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평균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 2014년 5월 3일 작고한 노동경제학의 대부인 게리 베커도 노동시장이 한국 경제의 능률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한 바 있다. #
한편, 참여정부 역시 국민의 정부의 신자유주의 기조를 이어받았다. 2000년대 초중반 민주당 정부가 주도해 도입한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한국의 산업 구조를 개편하여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민주당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양극화로 대변되는 비정규직 양산과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의 여러 부작용도 낳았다. 특히 양극화 유발이라는 점에서 진보진영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거센 반발이 있었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한미 FTA를 보수진영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진수로 높이 평가하는 반면에, 진보진영으로부터는 비난 받는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여담으로 한국의 FTA 전략은 꽤나 대국적(?)이었다. 1차로 칠레( 한칠레 FTA)나 싱가포르 같은 소국과 FTA를 추진해서 숙련도를 높이고, 2차로 EU, 미국, 중국, 아세안, 인도와 같은 대규모 경제권과 FTA를 추진해서 본격적인 경제 구조조정을 실시하였으며, 3차로 구소련 지역 중앙아시아 국가들 같은 몇몇 개도국과 체결해서 안정적인 자원 수급을 하는 전략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한나라당 정권은 FTA 추진과 민영화에 역점을 두었다. 집권 초 이명박 대통령이 천명한 '작은 정부'와 '신자유주의' 기조에 따른 것이었다.[66]그 결과 인천국제공항과 KTX의 민영화, 감세 문제를 두고 여야의 대립이 심화되기도 했다.
2011년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이후, 2012년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교체하고 정강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대폭 들어냈다. 2012년 대선 정국의 최대 키워드가 경제민주화였음은 신자유주의의 퇴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새누리당이 당시 내세운 공약에 '무상'이라는 용어가 빈번해질 정도였을 만큼, 당시 유력후보들의 복지공약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67] 물론, 새누리당이 재집권 한 이후로 경제민주화 정책을 주도했던 김종인 등의 인사들이 큰 힘을 발취하지 못 했다. 2013년 상반기 남양유업 대리점 사건을 기점으로 경제민주화가 재차 정국의 화두에 오르긴 했지만, 곧 흐지부지 되었다. 어느 순간 경제민주화를 대체한 것이 경제활성화와
문재인 정부는 앞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를 드러내지 않은 편이다. 애초에 신자유주의의 위상이 2008년 경제 위기 이후로 전세계적으로 추락한데다가 문재인 본인의 정책성향도 케인스주의 성향이기에 예견된 결과였다. 집권 초기 소득주도성장(소주성), 혁신성장, 공정경제 3축으로 정책들이 운영되다가, 집권 후기인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이른바 한국형 뉴딜 사업과 같은 적극적인 재정 확대 정책으로 임기내내 케인스주의 노선에 따른 경제정책을 일관되게 펼쳤다고 평가된다.
2022년 윤석열 20대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작은정부론을 제시하였으며 #, 민간 중심의 자유로운 시장경제 #를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청와대 대통령실(종전 대통령비서실)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여성가족부, 통일부, 교육부 등의 정부 부처를 폐지 또는 통합 조정하는 구상을 하였고, 게임물관리위원회를 민간에게 이양[68], 한국전력공사 독점이었던 전력 사업을 민간에게 허용하는 등 철저한 신자유주의 기조의 정책을 펴고 있다. 물론 반도체 산업을 밀어주는 기조 또한 공존하기에 온전한 신자유주의적인 정부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69]
다만 일부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탈세, 불법고용, 횡령, 투기, 사기, 임금체불 등 시장과 사회질서를 망치는 범죄까지도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데, 당연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그 누구도 위에 언급된 것을 범죄로 보고 엄격한 처벌을 주장했지 옹호한 사람은 없다. 위에 나왔듯이, 이런 식의 정당화는 신자유주의 자체의 정당성까지 의심받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며 어느 정도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되었듯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레이건과 대처 행정부의 겉으로 보이는 실적만 철석같이 믿고 신자유주의가 제격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자기들 딴에는 경제 위기를 도와준답시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작살내놓고 민영화로 기업들 배만 불려준 미셸 캉드쉬 체제 하의 IMF가 바로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이였다 보니, 특히나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해 "돈에 미쳐서 시장과 사회질서를 망치는 범죄나 저지르는 기업인들과 정치인들 범죄 정당화하고 기업 앞잡이 노릇이나 하며 한 나라의 재산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까지 통째로 팔아먹고[70] 끝내 대한민국을 사이버펑크 창작물에나 나올 법한 디스토피아 기업국가로 만들려는 쓰레기 같은 사상" 이라는 극도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21년에 게임스탑 주가 폭등 사건 당시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자 정부에서 공매도 금지 조치를 취하자 IMF가 난데없이 끼어들어 "개인 투자자 보호는 물론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균등한 장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공매도에 대한 전면적 금지를 통해 균등의 장을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날카롭지 않은 도구로서 대응하는 것" 이라고 조언했을 때도, IMF의 전과 때문에 내정간섭이라는 욕은 물론 심한 경우에는 "저 신자유주의에 미친 기업 앞잡이 IMF 놈들이 게임스탑 주가 폭등 때문에 월가 공매도 작전세력들이 손해 보니까 만만해 보이는 한국 삥뜯으려고 월가 작전세력 놈들이랑 뒤에서 짰으니까 저따위 소리 하는 거 아니냐" 라는 음모론적인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 IMF "한국, 공매도 재개 가능" 개미들 "내정 간섭하냐")
9. 관련 인물
제3의 길에 가까운 중도좌파계열 인물은 ◇ 표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 나카소네 야스히로
- 로널드 레이건
- 루트비히 폰 미제스
- 마거릿 대처
- 밀턴 프리드먼
- 빌 클린턴◇
- 빌헬름 뢰프케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 알렉산더 뤼스토 -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경제학자. 그러나 그의 사상은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보다는 사회자유주의에 더 가깝다.[71]
- 알베르토 후지모리
- 앨런 그린스펀
- 윤석열
- 이명박
- 카를로스 메넴
- 칼 포퍼
- 키어 스타머◇
- 토니 블레어◇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10. 관련 문서
- 워싱턴 합의
- 대침체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오스트리아 학파
- 로널드 레이건
- 마거릿 대처
- 브리타니아 언체인드
- 신고전학파
- 신공공관리론
- 신보수주의
- 보수주의
- 자유주의
- 자본주의
- 자유지상주의
- 자유방임주의
- 통화주의
- 민영화
- 진보주의 - 진보주의가 좌파적 자유주의의 일종이라면 신자유주의는 우파적 자유주의의 일종이다.[72]
11. 둘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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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ew' liberalism은
새자유주의로 번역된다.
[2]
옳고 그름을 떠나, 소유권은 자연권의 일부라는 개념이 합쳐지며 경제적 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의 접점이 생긴다.
[3]
자유주의란 틀 안에서도 제법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칸트는 자유 의지가 선 의지가 될때 어떤 행위는 옳은 것이라고 봤는데, 여기서 선 의지란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받는 것을 뜻한다. 고로 이런 관점에선 일부 자유지상주의자들이 개인의 자유를 위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매매는 인간을 목적이 아닌 성적 욕망의 수단으로 보기에 잘못된 것이라 주장할 수 있다.
[4]
물론 이건 지금도 논쟁 중인 사안이긴 하다. 줄여서 쓰자면 당시 정부가 개입한게 잘못이 아니라, 오일쇼크란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개입 방식을 잘못 짠게 문제였다는 것.
[5]
다만 이시기에도 불황이 없었다는건 아니다. 당장 레이건 정부만 해도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무역적자),
검은 월요일로 인한 주가 폭락 등
레이거노믹스의 약빨이 떨어지며 집권 2기를 상당히 우울하게 보냈고, 이를 이어받은
아버지 부시대도 결국 경기침체를 극복하지 못해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를 내세운 빌 클린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게 된다. 아이러니한건 90년대 호황을 이뤄낸
빌 클린턴 행정부가 신자유주의스런 정책도 이전 공화당 정부보다 더 잘 썼다는거지만.
[6]
실제 구글에서 GDP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한국 GDP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기간은 1980년대 후반~IMF 직전인 1990년대 중반과 IMF 이후 1990년대 후반~2천년대 후반 2차례이다.
[7]
아이러니한건 (물론 신자유주의를 대놓고 도입한다고 말한건 아니지만) 이런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수용하고 키워간 것이 당시 보수 진영이 아니라 민주당계 진영(
김대중,
노무현 정부)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대표적인 경제관료가
이헌재,
김진표 이런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좌파 지지층을 껴안고 신자유주의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도입할 수 있었지만 역으로 좌깜빡이 넣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반면, 재미있게도 이명박 정부는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정권이었지만 정작 정책적으론 케인즈주의적 색채도 상당했다.
4대강 사업만 봐도 신자유주의보단 관치경제적 성격이 짙은 사업이었고,
이명박 정부 총리를 지낸
정운찬 총리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케인즈주의 경제학자였다. 이외에도 대중교통 환승할인, 국가장학금 신설과 사립대 등록금 동결조치 역시 신자유주의와는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이명박 정권의 주요 정책이었다.
[8]
금융위기는 복합적 문제라 '시장실패'가 원인의 전부는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끝없는 논쟁
[9]
논외긴 하지만 이런
전염병 사태에서 정부는 가만히 있고 시장에만 맡기라는 논리는 대중들에게 있어서는 정부가 국민을 외면하고 기업과 부자의 배만 불려주겠다는 개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마스크 사태만 봐도 정부가 공산주의 소리 들으면서까지 수량과 가격 통제 안했으면 더한 난리가 났을 것이다.
[10]
실제 작은 정부론자들은 정부의 권한을 줄여야지만 독재자의 탄생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재벌이나 범법 세력 등 다른 사회 지배 세력의 감시를 할 권력기관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작은 정부론은 약점을 노출하기도 한다.
[11]
그런데 하이에크는 비록 시카고학파에 우호적이었으나, 이런 견해는 주류 경제학의 일부인 시카고학파와는 근본을 달리 한다.
[12]
Hayek, Friedrich August.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35.4 (1945): 519-530.
[13]
Friedman, Milton, and Rose Friedman. Free to choose: A personal statement. Houghton Mifflin Harcourt, 1990.
[14]
다만 온건파
아나키스트들은 권위주의적 정부에 짙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을 뿐 정부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15]
Buchanan, James M. "Federalism and fiscal equity."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40.4 (1950): 583-599.
[16]
Friedman, Milton. Capitalism and freedom.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9.
[17]
Hoxby, Caroline M. "Does competition among public schools benefit students and taxpayers?." American Economic Review 90.5 (2000): 1209-1238.
[18]
OECD. "School Choice and School Vouchers: An OECD Perspective." (2017).
[19]
Ferreyra, Maria Marta, and Grigory Kosenok. "Charter school entry and school choice: the case of Washington, DC." (2015).
[20]
여기서 다른 자유주의와 의견이 갈리는데, 경쟁이라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역차별/개입이므로 보호를 없애야 한다고 본다. 사실 그보다는 많은 경제학자들은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면 인종적/사회적/문화적 차별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Gary Becker의 차별 이론이 바로 그것. 예를 들어서, 어떤 사회에서 특정한 계층(흑인이라든지 여자라든지)이 능력(생산성)과는 무관하게 차별을 받아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당연히 임금도 내려가게 되는데, 고용주들은 당연히 똑같은 숙련도를 가진 인력을 더 싼값에 고용하려는 강한 유인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들을 고용하게 되고, 결국 임금이 올라가며 차별은 철폐된다.
[21]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대규모 시위나 파업은 물리력이나 정치력을 동원해 기존의 규칙을 어기거나 파괴하는 것으로 본다. 다수의 요구가 언제나 올바른 요구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며, 규칙을 지키면서 합당한 대가를 얻은 사람에게는 피해를 준다고 여긴다. 오직 협상이나 시장을 통한 거래만이 옳다고 본다.
[22]
Blair, Peter Q., and Bobby W. Chung. "How Much of Barrier to Entry is Occupational Licensing?." (2018).
[23]
Stigler, George J. "The theory of economic regulation." The Bell journal of economics and management science (1971): 3-21.
[24]
new liberalism, neo liberalism가 다른 사상이듯이 neo와 new는 新이라고 번역되지만 의미차이는 분명하다.
[25]
Friedman, Milton, and Anna Jacobson Schwartz. 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867-1960.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26]
오히려 프리드먼은 사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위험한 존재들이며 사기업들이 자유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때마다 정부 개입을 원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27]
덕분에 지금까지도 서구권에서 신자유주의가 까이는 이유기도 하다. 당장 제조업에 비해 금융업은 일자리가 적게 나온다. 게다가 실물경제를 포기하면서 세계금융위기 때 서구권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다만 굳이 쉴드를 치자면, 미국의 산업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좀 과장되긴 한게, 산업별로 GDP 비중(2010년)을 보면 금융(8%), 부동산(12%), 제조업(12%), 사업체(12%), 의료(9%) 정도다. 즉, 제조업이 완전 쇠퇴했다고 해석하는건 옳지 않다는 것. 제조업 비중만 놓고 보면, 1980년대(20%대)보단 낮아졌지만 실제론 계속해서 성장했으므로, 부동산과 금융에 대한 제한이 풀린 이후 급격히 성장한 금융/부동산 영역, 그리고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인 IT부문에 비해 성장 속도가 더뎠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제조업 비중이 오히려 커진 주요 국가는 중국 정도밖에 없다. 만약 제조업 비중이 낮아진 것만 가지고 제조업이 몰락했다고 한다면
1980년대에 GDP의 30%를 차지하던 제조업이 현재 15%로 떨어진 일본은 제조업 붕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가리키는 상품자본주의의 상품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상품(commodity)이 아니라 재화(good)에 가깝다.
[28]
여러 선진국 중에 금융산업 비중이 미국만큼 높은 나라는 얼마 없다. 유럽이라고 했는데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의 금융산업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룩셈부르크 같은 예외를 빼면 유별나게 금융업이 발달한(비중이 높은) 나라는 미국을 필두로 한 영미권 국가들(영국, 미국, 아일랜드, 호주, 캐나다)과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 정도 뿐.
[29]
엄밀히 말하면 CIA는 쿠데타를 방관했지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30]
대기업이 시장 친화로 큰 게 아니라, 시장 친화체제에서 순응한 애들이 오늘날의 대기업이 된 거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시장 친화나 구조조정이 확실하게 이루어진 곳에서는 롤스로이스 등이 매각되거나 대우가 박살나는 등의 경향이 있었으며, 구조조정을 한 칠레는 오늘날 남미 최부국이 되었지만, 구조조정을 못한 아르헨티나는 망했다.
[31]
혹은 매각되는 공공부문
[32]
여기서 죽음의 키스란 원수나 배신자의 오른쪽 뺨에 키스를 해서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시칠리아인들의 관습에서 유래하였으며,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던 마피아가 이탈리아 본토와 미국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침에 따라 죽음의 키스도 마피아에서 배신자나 원수를 처단할 때 시전하는 일종의 문화로 받아들여졌다. 대중들에게는 영화
대부 2에서 콜레오네 패밀리의 2대 보스로 나오는
마이클 콜레오네가 자신을 죽이려던
하이먼 로스와 결탁한 둘째 형
프레도 콜레오네의 배신을 알고 시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죽음의 키스를 당한 프레도 콜레오네는 대부 2의 줄거리가 끝나기 전에 마이클 콜레오네로부터 명령을 받은 히트맨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현실에서도 이걸 당한 당사자는 결국 죽어버린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끝날 것이란 말과 같은 셈.
[33]
시카고, 미네소타, 로체스터 등 미 중부 5대호 등지에서 활동하는 학파다. 반대로 케인지언이 지배적인 하버드, 프린스턴 등 동부쪽은 해수파라 한다.
[34]
밀튼 프리드먼 등
[35]
에드워드 프레스콧
[36]
제임스 뷰캐넌 등
[37]
정치 환경 속에서 관료, 정치인, 유권자들의 이기성을 상정한 학파다. 뷰캐넌은 유권자들의 이기심, 관료나 정치인들의 사익 추구 등으로 예산이 과잉팽창되어 정부 실패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38]
사실 위에서 언급한 부류에 비하면 학파로서의 조건을 가장 갖추지 못한 동네다. 대체로 컨셉이 '학파?' '유파?' 그거 뭔가요 하는 컨셉이라.
[39]
래퍼, 마틴 펠드스타인 등,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따르면 펠드스타인 등의 일부 학자들이나 대다수의 신예 경제학자들은 통화론자나 케인지언 여부 따위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40]
일부
오스트리아학파를 제외하면 현대에 주류로 존재하는 경제 학파들은 대체로 케인지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시카고학파 조차도!
[41]
그들의 자유방임이론이 신자유주의의 뿌리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고전파 경제학자의 대표주자 스미스는 (토건, 국방, 치안 등) 중요한 분야에 있어 정부의 적절한 개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영화와 시장화를 주장하는 현대의 신자유주의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또한 정경유착 및 악덕 상인을 비판하고 부의 집중을 경계했던 스미스의 성향을 볼때 이들을 신자유주의로 보기는 어렵다.
[42]
행정학에서 민영화, 균형예산, 성과관리, 경쟁 등을 강조하는 사조다.
[43]
레이건은 어디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듣고서는 그게 뭔데? 그냥 신보수주의라고 하면 안 돼? 라는 식의 주장을 한바 있다.
[44]
하지만 정작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아 학계의 주류와도 다른 주장을 많이 펼쳤다. 오히려 활동한 것만 놓고 본다면 시카고 대학 교수로 활동한 게 더 크다. 하이에크는 시카고학파이기도 하다. 다만, 하이에크는 스스로를 경제학자보다는 사회학자로 여기다시피 한 바 있고, 그의 연구 방법론은 여전히 시카고를 위시한 주류 경제학과는 다르다.
[45]
오스트리아학파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재야대통령 소리까지 듣는 론 폴,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대표적이다.
[46]
인천공항 등 민영화시도를 했으나 실패, 그러나 청주공항, 인천공항 부분은 민영화. 물론 몇 차례의 민영화 시도가 실패한 건 국민의 반대도 컸기 때문이다.
[47]
다만, 셧다운제의 도입 목적은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셧다운제 도입은 반시장적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48]
영국의 블레어 총리,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독일의 슈뢰더 총리 등.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도 어느정도 해당한다.
[49]
요약하자면 사람들의 삶이 수렁에 빠져서 목숨까지 잃어버리던 말던 그딴 것보다 자유시장이 더 중요하다 라는, 그야말로 '
사람이 측은함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망언. 나중에 주민,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한다면 폭동으로 번져
소탐대실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50]
예를 들면 폭동과 폭동으로 인한 약탈, 심지어는 내전까지 이어질 수 있는 폭력사태
[51]
다만 나오미 클라인이나 장하준 교수의 저서에 대해서는 사실이나 방법론적 측면에서 무수한 오류가 발견된다.
[52]
비슷한 사례로
중상주의가 있다.
[53]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오즈의 반대에도 군부 독재세력이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대기업 구조조정을 거부했다.
[54]
예를 들면 차브족 같이 적극적인 생산활동을 포기하는 세대가 등장하며, 영국병이 치유는 커녕 만성이 되어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55]
다만 칠레의 사례는 피노체트 정권 수립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의 국가 실험 수준으로 진행시킨 것으로, 신자유주의자, 반신자유주의자 사이에서 그 해석이 분분한 점은 있다. 하여튼 칠레는 초기에는 정책 설계를 잘못한데다 남미 외채위기로 경제가 파탄에 빠졌지만, 차후 정책을 수정한 끝에 그 유용성을 훗날의 민주 정권에게도 인정받아 오늘날 남미에선 부국이 되었다.
[56]
부정부패 문제는 舊 소련 시절에도
스탈린 시기에 잠깐 주춤했을 뿐 이미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 특유의 극도로 강력한 사회 안전망 체계 덕분에 소련 시민들의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으나, 소련 붕괴와 함께 사회 안전망이 붕괴하고 KGB와 소련군, GRU를 비롯한 여러 군사 및 정보 기관들이 붕괴 혹은 축소되자 실직한 요원과 인사들이 범죄 조직들에 개입,
실로비키,
올리가르히 등의 사회와 삶을 붕괴시키는 수준으로 가시화되었다.
[57]
반면
박노자는 러시아, 중국의 젊은이들이 푸틴, 시진핑 같은 권위주의 독재자에 열광하는 이유가 이들의 권위주의가 신자유주의의 대기업 횡포를 막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보기에 신자유주의의 민주주의 국가는 대기업이라는 마피아의 '고민 해결 사무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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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애초 '작은 정부'를 지향하므로 국방예산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59]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총리의 개혁 후 미국과 영국은 범죄가 증가하였고 이는 되려 경제지표 상승과 상관없이 치안예산만 잔뜩 올렸다.
[60]
심지어 구한말 시기부터 있어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당대의 것들은 세계통합주의에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61]
문민정부 당시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외국인 주식시장 규제 완화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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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케인스주의적인 정책도 같이 병용되곤 하였다 DJ가 주창한
대중경제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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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경제 규제는 부패와 연결돼 있다'며 규제완화를 진두지휘했고 청와대는 정부부처에 모든 규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을 정도로
김영삼 정부는 규제완화를 적극 추진했다.
# 또한 대통령은
공기업의 과감한 경영혁신과 민영화 방안을 지시하면서, 공기업 민영화 등 경영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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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경기사정이 좋지 않을 때 정부가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또 적극적인 시장개입은 안 되며, 결국 일정 부분 구조조정을 병행하며 적당한 시장 개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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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생산적 복지정책이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 또한 여전히 논쟁거리다.
[66]
그러나, 이준구 교수는 4대강 정비 사업을 사례로 들며
이명박 정부 역시 관치우호적인 경향이 있었다고 평했다. 그리고, 정부 실패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공기업의 방만 경영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여전했다. 다만,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의 비용을 일부 떠맡은 것이다.
[67]
나아가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보수'라는 단어까지도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때문에 일부 보수 인사들로부터 보수의 색깔을 버리려 한다는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68]
2009년부터 점차 민간 이양되었고 윤석열 정부가 게임 심의를 민간으로 완전히 넘기는 것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69]
2020년대 와서 신자유주의는 퇴조했기 때문에,
밀턴 프리드먼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사상을 중세하는 윤석열조차 온전하게 2000년대 방식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만' 일관하기 어려운 시대상의 차이도 있다.
[70]
특히
QAnon같은 부류가 태동하여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에 도움을 주는 미국 내부의 암덩어리가 된 원인 중 하나로 미국 공교육의 붕괴로 인한
반지성주의의 확산이 지적되고 있는데, 미국 공교육에 치명타를 날린 것이 바로 민주당의 '위기에 처한 국가' 보고서도 씹어 버리고는 오히려 연방정부의 공교육 예산 삭감 + 교사의 성과에 따른 성과급 지급 추진 + 공교육의 품질을 유지하던 연방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주정부에 짬처리해버린 레이건의 만행이었음을 생각하면 신자유주의는 정말로 돈에 미쳐서 나라의 재산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팔아먹는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71]
지금과 달리 당시는 소련 영향으로 사회주의와 계획경제가 엄청나게 세계적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72]
Muzammil Quraishi, ed. (2020).
Towards a Malaysian Criminology: Conflict, Censure and Compromise. Springer Nature. p. 83. ISBN 9781137491015. "The urgent need for a meaningful theoretical perspective and research agenda is driven by an observation that both left liberalism (progressivism) and right liberalism (neoliberalism) have neutralised traditional conservative social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