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08:58:48

테오도라(11세기)

테오도라 여제에서 넘어옴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 실반나쿠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프로코피우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 플라비우스 빅토르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발렌티니아누스 3세
비정통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최후의 순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테오도라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4A3800; margin: -5px 0px"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리비아 드루실라 소(小) 안토니아 리비아 오레스틸라 롤리아 파울리나 밀로니아 카이소니아 메살리나 소(小) 아그리피나 클라우디아 옥타비아 포파이아 사비나 클라우디아 아우구스타 스타틸리아 메살리나
네 황제의 해 갈레리아 푼다나
플라비우스 왕조 소 도미틸라 도미티아 롱기나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폼페이아 플로티나 울피아 마르키아나 살로니아 마티디아 비비아 사비나 대(大) 파우스티나 소(小) 파우스티나 루킬라 브루티아 크리스피나
다섯 황제의 해 플라비아 티티아나 만리아 스칸틸라 디디아 클라라
세베루스 왕조 율리아 돔나 풀비아 플라우틸라
마크리누스 노니아 켈사
세베루스 왕조 율리아 코르넬리아 파울라 아퀼리아 세베라 안니아 파우스티나 율리아 마이사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율리아 아비타 마마이아 살루스티아 오르비아나
군인 황제 시대 카이킬리아 파울리나 파비아 오레스틸라 안토니아 고르디아나 트란퀼리나 마르키아 오타킬리아 세베라 헤레니아 에트루킬라 코르넬리아 수페라 에그나티아 마리니아나 코르넬리아 갈로니아 코르넬리아 살로니나 술피키아 드리안틸라 빅토리아 제노비아 울피아 세베리나 마그니아 우르비카
사두정치 아우렐리아 프리스카 에우트로피아 갈레리아 발레리아 발레리아 막시밀리아
콘스탄티누스 왕조 플라비아 막시미아나 테오도라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 미네르비나 플라비아 막시마 파우스타 플라비아 발레리아 콘스탄티나 플라비아 율리아 콘스탄티아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의 딸 플라비아 에우세비아 파우스티나 헬레나
요비아누스 차리토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마리나 세베라 유스티나 알비아 돔니카 플라비아 막시마 콘스탄티아 레타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일리아 플라킬리아 플라비아 갈라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마리아 테르만티아 아일리아 풀케리아 갈라 플라키디아 아일리아 에우도키아 유스타 그라타 호노리아 리키니아 에우독시아
레오 왕조 아일리아 마르키아 에우페미아 플라키디아 율리우스 네포스의 아내 아일리아 베리나 아일리아 아리아드네 아일리아 제노니스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에우페미아 테오도라 아일리아 소피아 아일리아 아나스타시아 콘스탄티나
포카스 레온티아
이라클리오스 왕조 파비아 에우도키아 마르티나 아우구스티나 아나스타시아 그레고리아 파우스타 아나스타시아 에우도키아 하자르의 테오도라
아나스타시오스 2세 이리니
이사브리아 왕조 마리아 안나 하자르의 이리니 마리아 에우도키아 이리니 암니아의 마리아 테오도테
니키포로스 왕조 테오파노 프로코피아
레온 5세 테오도시아
아모리아 왕조 테클라 에우프로시나 테오도라 에우도키아 데카폴리티사 테클라 안나 아나스타시아
마케도니아 왕조 에우도키아 잉게리나 테오파노 마르티나키아 조이 자우치나 에우도키아 베아나 조이 카르보노프시나 테오도라 엘레니 레카피니 소피아 안나 가발라 엘레니 테오파노 마마스 베르타 테오파노 테오도라 엘레니 알리피아 조이 테오도라
콤니노스 왕조 불가리아의 예카테리나
두카스 왕조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 알라니아의 마리아
콤니노스 왕조 안나 달라시니 이리니 두케나 헝가리의 이리니 키예프의 도브로데이아 줄츠바흐의 베르타 안티오키아의 마리아 프랑스의 아녜스
앙겔로스 왕조 헝가리의 머르기트 에우프로시나 두케나 카마테리나 에우도키아 앙겔리나
라스카리스 왕조 안나 앙겔리나 아르메니아의 필리파 마리 드 쿠르트네 이리니 라스카리나 호엔슈타우펜의 안나 불가리아의 엘레나 아세니나
팔레올로고스 왕조 테오도라 팔레올로기나 헝가리의 언너 몬페라토의 이리니 아르메니아의 마리아 브라운슈바이크의 이리니 사보이아의 안나 이리니 아사니나 엘레니 칸타쿠지니 이리니 팔레올로기나 불가리아의 케라차 마리아 엘레니 드라가시 이리니 가틸루시오 안나 바실리예브나 몬페라토의 소피아 트라페준타의 마리아 }}}}}}}}}}}}
로마 제국 제101대 황제
테오도라
Θεοδώρα
파일:1cd0987842862f120485ffce0ca611e1.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테오도라 이 포르피로옌니티
(Θεοδώρα η Πορφυρογέννητη)
출생 980년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사망 1056년 8월 31일 (향년 75-76세)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재위 기간 로마 황제
1042년 4월 21일 ~ 1042년 6월 11일 (2개월)
로마 황제
1055년 1월 11일 ~ 1056년 8월 31일 (1년)
전임자 미하일 5세
후임자 미하일 6세
부모 아버지 : 콘스탄티노스 8세
어머니 : 엘레니 알리피아
종교 기독교
1. 개요2. 생애
2.1. 1차 재위2.2. 2차 재위
3. 평가4. 참고 문헌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의 101대 황제이자 마케도니아 왕조의 마지막 황제.[1] 동명이인들과의 구별을 위해 'Theodora Porphyrogenita(테오도라 포르피로게니타)'로 칭해지기도 한다.

콘스탄티노스 8세 엘레니 알리피아 황후의 세 딸들 중 막내였다.

2. 생애

2.1. 1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8세에게 아들이 없어 후계자 문제가 불거졌을 때 원래 콘스탄티노스 8세는 막내딸 테오도라와 로마노스 3세를 결혼시키려고 하였으나 서로 친척인데다[2] 이미 아내가 있는 남자임을 이유로 들어 로마노스와의 결혼을 거절했다. 이후 로마노스는 언니 조이와 결혼해 황제가 되었다. 테오도라는 강인하고 근엄한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로마노스 3세가 즉위한 후 칩거 생활을 했는데 조이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음모를 꾸민다는 구실로 수녀원에 감금되었다. 그녀는 직위를 되찾기 위해 1029년 불가리아 프레시안과 결혼하여 황위를 찬탈할 음모를 꾸몄고, 그것이 실패하자 다시 콘스탄티노스 디오예니스와 음모를 꾸몄으나 또 실패했다.

언니 조이가 황후 또는 모후로서 첫번째 남편( 로마노스 3세), 두번째 남편( 미하일 4세), 양아들( 미하일 5세)을 차례대로 황제로 삼았는데, 1042년, 미하일 5세가 조이를 박해하고 추방하여 반발을 사 시민군의 반란으로 퇴위당하자 시민군에 의해 조이와 테오도라는 공동 여황제로 추대되었다. 언니 조이는 테오도라를 매우 싫어했지만 손을 쓸 수 없었다. 테오도라는 2개월 동안 국정에 활발히 참여했으나, 테오도라를 싫어한 조이는 다시 재혼해 새 남편 콘스탄티노스 9세를 황제로 삼았고, 조이와 같이 황제에서 퇴위한 테오도라는 유폐되다시피 정권에서 물러났다.

2.2. 2차 재위

언니 조이 1050년에 죽었고, 1055년 콘스탄티노스 9세가 죽자 환관 관료들은 모이시아의 절도사를 지낸 프로테본(Proteuon)을 옹립하고자 했다. 하지만 정황을 전해들은 테오도라의 지지자들은 곧바로 유폐되어 있던 수녀원에서 그녀를 궁궐로 귀환시키고 제위에 앉혔다. 프로테본 지지자들은 처벌받고 프로테본 자신은 트라키시온 지방으로 쫓겨나 수도자로 은둔하였다.

테오도라는 콘스탄티노스 9세의 내각을 교체하여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8세나 옛 형부인 미하일 4세를 보좌하였던 관료와 환관들을 고위직으로 기용했다. 통치 초기에 그녀는 열성적으로 국무를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벌써 70대 후반이 되어가는 건강 문제 등으로 치세 후반 정부의 주도권은 총리 장관인 레온 파라스폰딜리스(Leon Paraspondyles)가 쥐게 되었다.

테오도라의 치세는 콘스탄티노스 9세의 기조를 그대로 따랐다. 파티마 왕조와의 우호 관계를 지속시키고자 노력했으며 동방 변경을 위협하는 튀르크 유목민을 진압하기 위해 서부의 마케도니아 금군을 동부 국경으로 전진 배치한 조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쿠데타를 시도하는 장군들을 거침없이 제압하거나 여러 사령관들을 질책하는 인사 조치도 흔들림 없이 집행하였다.[3]

1056년 8월 말이 되자 테오도라는 복통을 호소하며 생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레온 파라스폰딜리스 등은 논의 끝에 역시 관료로서 콘스탄티노스 9세 시대의 정부 내각에서 군사국[4] 국장을 지내왔던 미하일 브링가스(Michael Bringas)를 황제 후보로 추천하였다. 테오도라는 이를 좇아 미하일에게 제위를 전달하였다.[5]

그녀를 끝으로 마케도니아 왕조는 단절. 그녀 사후 즉위한 미하일 6세는 불과 1년 뒤 이사키오스 콤니노스를 중심으로 한 군대 내부의 반란에 직면하였다. 결국 미하일 6세는 폐위당하고, 이사키오스가 황제로 즉위, 이사키오스 1세가 되었다.

3. 평가

알렉시오스 1세에게 자신의 연대기를 헌정한 요안니스 스킬리치스는 당연히 콤니노스 가문과 갈등이 있던 정권을 좋게 표현할 수가 없었고 황제가 정무에서 한 발짝 물러난 상황을 칭송하는 것도 어려웠다. 반면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집필한 아탈리아티스는 테오도라, 그리고 특히 레온 파라스폰딜리스를 격찬했다. 그보다도 이른 두카스 시대에 저술한 미하일 프셀로스의 경우는 원로원 정치의 대표자답게 테오도라의 치세를 극찬하며 로마의 영광이 번성하였다고 추켜세운다. 실제로 행적을 보면 상당히 유능한 여제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4. 참고 문헌

Alexander D. Beihammer, Byzantium and the Emergence of Muslim-Turkish Anatolia, ca. 1040-1130, Routledge Press, 2017년.
John Skylitzes, Tr. by John Wortley, A Synopsis of Byzantine History, 811-1057,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년.
Michael Attaleiates, Tr. by Anthony Kaldellis, History, Harvard University Press, 2011년.
Michael Psellos, Tr. by E. R. A. Sewter, Chronographia, Yale University Press, 1952년.

Paul A. Blaum, "Diplomacy Gone to Seed: A History of Byzantine Foreign Relations A.D. 1047-57",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Kurdish Studies, Vol.18, 2004.
Telemachos C. Lounghis, "The Byzantine historians on politics and people from 1042 to 1081", Byzantion Vol.72, No. 2월, 2002년.


[1] 조이와 같이 재위하기도 해서 마케도니아 왕조의 14대 공동 황제이고, 이후 콘스탄티노스 9세 다음에 즉위할 때는 마케도니아 왕조의 16대(마지막) 황제로 단독 재위한다. [2] 로마노스 1세 레카피노스의 딸의 아들의 아들이 콘스탄티노스 8세였고, 또다른 딸이 아르이로스 가로 시집가서 낳은 아들의 아들이 로마노스 3세라 6촌간이다. 즉 로마노스 3세는 조이와 테오도라에게 7촌 아저씨이다. [3] 이 당시 동방군 전체의 고위 사령관을 지내던 이사키오스 콤니노스도 테오도라의 조치에 의해 관직을 삭탈당했는데 스킬리치스 연대기는 그 조카인 알렉시오스 1세에게 헌정하는 저술이었던 만큼 테오도라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4] 군대의 임금을 관리하는 기구, Strategikon [5] 스킬리치스는 이를 비판하면서 관료들이 바지 사장으로 앉혀놨다고 지적하며, 표현의 강도는 다르지만 미하일 아탈리아티스 역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900년 전 쿠데타에 패배한 세력의 진심을 알 수야 없을 테지만 관료들과, 궁극적으로는 이 시기 정치권의 핵인 원로원에서는 군인 황제와 같은 강력한 1인자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