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0-17 15:02:03

콘스탄티노스 두카스(미하일 7세의 아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프로코피우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 플라비우스 빅토르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발렌티니아누스 3세
비정통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최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로마 제국 106-4대 황제
Κωνσταντίνος Δούκας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출생 1074년
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사망 1095년 또는 1097년
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세레스 인근
재위 로마 황제
1074년 ~ 1078년(1차 재위)
1081년 ~ 1094년(2차 재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제호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Κωνσταντίνος Δούκας
콘스탄티노스
Κωνσταντίνος
두카스
ΔΟΎΚΑΣ
가족 미하일 7세(아버지)
알라니아의 마리아(어머니)
아내 안나 콤니니
종교 기독교 ( 동방 정교회)
왕조 두카스 왕조 }}}}}}}}}

1. 개요2. 행적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 두카스 왕조의 황제. 태어난 직후 아버지 미하일 7세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가 1078년 아버지가 폐위된 후 제위에서 물러났다. 1081년 알렉시오스 1세에 의해 공동 황제로 복위했지만 1095년에 요절했다.

2. 행적

1074년 미하일 7세 알라니아의 마리아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태어난 직후 아버지와 공동 황제가 되었으며, 로베르 기스카르의 딸인 헬레나와 약혼했다. 그러나 1078년 1월 니키포로스 3세의 반란에 직면한 아버지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원로원의 압력을 받고 물러났을 때 함께 폐위되어 부모와 함께 수도원에 들어갔다. 얼마 후 어머니가 새 황제 니키포로스 3세와 결혼하면서 후계자로 지명되는 듯했으나, 니키포로스 3세는 콘스탄티노스를 황궁에 데려와서 편히 살게 해주면서도 그가 아닌 조카인 니키포로스 시나디노스(Nikephoros Synadenos)를 후계자로 삼고 보타니아티스 혈통에 기반한 왕조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분개한 마리아는 콤니노스 및 두카스 가문과 연계하여 정권을 뒤엎으려 했다. 1081년 초 알렉시오스 콤니노스가 이끄는 반란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접근하자, 사전에 내통하고 있던 수비대는 성문을 활짝 열었다. 이후 니키포로스를 지지하는 시민군과 반란군 간의 참혹한 시가전이 벌어진 끝에 반란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니키포로스는 제위를 포기하고 페리블렙토스(Peribleptos) 성당 부속 수도원에 은거하여 1081년 말 병사하였다. 이리하여 황위에 오른 알렉시오스 1세는 마리아가 자신을 도와준 것을 잊지 않고 그녀의 아들 콘스탄티노스를 공동 황제로 지명했다.

1083년 12월 안나 콤니니가 태어나자, 알렉시오스는 안나를 콘스탄티노스와 약혼시켰다. 그러던 1087년 9월 13일, 알렉시오스 1세와 이리니 두케나 황후 사이에서 요안니스 2세가 출생했다. 알렉시오스는 콘스탄티노스 두카스의 지위를 당장 거두지 않았지만, 알렉시오스의 친족들은 아들이 아닌 사위가 후계자가 되는 게 말이 되냐며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이로 인해 콘스탄티노스의 입지는 갈수록 불안해졌고, 1092년 요안니스 2세가 공동 황제로 공표되었다. 1094년 콘스탄티노스 두카스가 중병에 걸리자, 알렉시오스는 이를 이유로 콘스탄티노스와 안나의 약혼을 파기하고 콘스탄티노스를 퇴위시킨 뒤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와 안나를 결혼시켰다.

마리아 황후와 두카스 가문은 알렉시오스의 처사에 불만을 품었다. 1094년 6월,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미하일 타로니티스, 카타칼론 케카브메노스와 함께 알렉시오스를 암살하기로 결의하고 황제가 마케도니아의 세레스 지역에 있는 콘스탄티노스 두카스의 집에서 목욕할 때 또다시 암살을 시도했지만 도중에 발각당해 경호원들에게 체포되었다. 니키포로스는 체포 직후 마리아 황후가 이 음모를 잘 알고 있었으며, 알렉시오스를 죽이지 말고 축출하기만 하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렉시오스는 일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마리아 황후의 건은 불문에 붙이고, 음모를 주동한 세 사람을 추방한 뒤 유배지에 도착하는 즉시 실명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시는 즉시 이행되었지만, 미하일 타로니티스만은 그의 아내이자 알렉시오스의 누나인 마리아가 간절히 호소한 덕분에 눈이 멀지 않았다.

콘스탄티노스 본인은 자신을 복위시키려는 음모에 개입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마케도니아 중부에 있는 세레스 인근 영지에서 조용히 지냈으며, 알렉시오스가 세르비아 공작 부칸을 징벌하기 위해 원정을 단행하다가 자신의 영지에 들렀을 때 음식을 정성껏 대접했다. 그러다가 1095년 또는 1097년에 영지에서 사망했다. 마리아는 아들이 사망하자 매우 낙심했고, 속세를 떠나 수녀원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