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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콘스탄티우스 2세의 황후.2. 생애
제1차 사두정치 시기 서방의 카이사르(부황제)였던 콘스탄티우스 1세의 아들인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와 세베루스 왕조의 후손이며 오래된 이탈리아 귀족 가문인 풀비우스 일가의 후손인 갈라의 딸이다.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나, 일부 학자들은 로마식 작명법에 의거해 '율리아 콘스탄티아'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형제자매로 성명 미상의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 콘스탄티우스 갈루스가 있었고, 이복 형제로 율리아누스가 있었다.에우세비우스의 <콘스탄티누스의 생애>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1세는 재위 30주년 기념식을 치른 직후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와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의 딸을 결혼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337년 5월 22일 콘스탄티누스 1세가 사망한 뒤 황족들이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들어갔다가 그 해 여름에 콘스탄티우스 2세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장병들에 의해 피살당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 성명 미상의 남자 형제도 살해되었다. 두 형제 콘스탄티우스 갈루스와 율리아누스는 목숨은 건졌지만 니코메디아로 이송되어 6년간 유폐생활을 하다가 342년 카파도키아의 마르켈룸에 유폐되어 바깥 출입이 금지된 채 힘겹게 살아가야 했다. 그러다 350년 마그넨티우스의 반란을 진압하는 동안 제국 동방을 책임질 황족이 필요했던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석방되었다. 이에 대해 아타나시오는 저서 < 아리우스파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인류의 공통된 감정은 그(콘스탄티우스 2세}로 하여금 자신의 친족조차 아끼도록 유도할 수 없었다. 그는 삼촌을 죽였고 사촌을 몰아냈다. 그는 삼촌의 딸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인 또는 친척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그녀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다만 콘스탄티우스 2세가 두 번째 황후 플라비아 에우세비아를 353년 초에 맞이했던 것을 볼 때 그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