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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066년경 |
사망 | 1138년 2월 19일 (72세) |
콘스탄티노폴리스 | |
배우자 | 알렉시오스 1세 |
자녀 | 안나 콤니니, 마리아 콤니니, 요안니스 2세,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 에우도키아 콤니니, 테오도라 콤니니, 이사키오스 콤니노스, 마누일 콤니노스, 조이 콤니니 |
아버지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어머니 | 불가리아의 마리아 |
종교 | 동방 정교회 |
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의 제2대 아우구스타 | |
왕조 |
콤니노스 왕조 (Komnenian Dynasty) |
전임 | 알라니아의 마리아(두카스 왕조) |
후임 | 헝가리의 이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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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의 황후.2. 생애
1066년경 두카스 가문의 수장이자 만치케르트 전투에서 로마노스 4세를 배신하여 동로마군이 셀주크 제국에게 참패당하게 만든 장본인인 안드로니코스 두카스와 불가리아의 마리아 사이에서 출생했다. 안드로니코스는 콘스탄티노스 10세의 조카이며, 미하일 7세의 삼촌이다. 1078년경, 12살의 나이에 알렉시오스 콤니노스와 결혼했다. 이것은 니키포로스 3세에 대항하여 콤니노스 가문과 두카스 가문이 연합하기 위해 맺어진 정략결혼이었다. 두카스 가문을 배척하던 알렉시오스의 어머니 안나 달라시니는 결혼을 결사 반대했지만, 알라니아의 마리아 황후가 지지를 표했고 알렉시오스가 고집을 부리면서 결국 성사되었다.1081년 4월 1일, 알렉시오스가 니키포로스 3세를 몰아내고 새 황제로 등극했다. 이때 안나 달라시니가 이리니 두케나와 이혼하라고 권했다는 소문과 알렉시오스와 알라니아의 마리아 황후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마리아가 새 황후가 될 거라는 소문이 동시에 돌았다. 이에 두카스 가문이 압력을 행사했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코스마스도 이리니를 황후에 앉히도록 설득했다. 알렉시오스는 자신을 양자로 삼고 혁명이 성공하는데 크게 기여한 마리아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기에 망설였지만, 결국 일주일만에 이리니를 황후로 세우기로 했다. 그 대신, 마리아의 외아들 콘스탄티노스 두카스를 공동 황제로 세우고 후계자로 공인했다.
이렇게 어렵게 황후가 되었지만, 남편의 모후인 안나 달라시니가 궁중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했기에, 그녀의 입지는 미약했다. 안나는 며느리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푸대접했고, 알렉시오스 역시 원치않은 결혼이었기 때문인지 그녀를 홀대했다. 심지어 안나 콤니니가 1083년에 태어났을 때, 알렉시오스는 딸의 훈육을 알라니아의 마리아에게 맡겼다. 그래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안나 콤니니에 따르면, 그녀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걸 선호했다고 한다. 또한 집안일을 하는 걸 좋아했고,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걸 즐겨했다고 한다.
1096년 말 안나 달라시니가 정계를 은퇴하고 수녀원에 들어간 뒤, 알렉시오스는 비로소 이리니를 총애했다. 이리니는 1107년 남편이 보에몽 1세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 종군하였고, 1112년 체르손 왕국에 대한 원정을 떠날 때도 동행했다. 한 번은 알렉시오스가 진중에서 심한 호흡기 질환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 이리니는 남편을 밤새도록 품에 안고 정성껏 간호했다고 한다. 한편, 이리니는 알렉시오스에게 자신의 아들 요안니스 2세 대신 안나 콤니니와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를 후계자로 삼으라고 권했다.[1]그러나 알렉시오스는 아들을 통해 안정된 왕조를 이룩하고 싶었기에, 아내의 제안을 단호히 물리쳤다.
1118년 알렉시오스가 임종을 맞이할 때, 이리니는 옆에서 간호하는 동시에 장녀 안나와 사위 니키포로스를 후계자로 세울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녀는 안나와 함께 케하리토메네 수녀원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그 후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고아들을 교육하며 여생을 보내다 1138년 2월 19일에 사망했다.
[1]
이리니가 아들인 요안니스를 놔두고 이랬던 이유는 안나가 엄청나게 총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편인 니키포로스도 상당히 유능했기에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