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2-22 14:34:23

테오도시우스(마우리키우스의 아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 실반나쿠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프로코피우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 플라비우스 빅토르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발렌티니아누스 3세
비정통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최후의 순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로마 제국 제64-2대 황제
테오도시우스
THEODOSIVS | Θεοδόσιος
파일:Solidus_of_Theodosius_(son_of_Maurice).pn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
Φλάβιος Θεοδόσιος Τιβέριος Αὔγουστος
출생 583/585년 8월 4일
동로마 제국
사망 602년 11월 27일 이후 (향년 16-19세)
동로마 제국 칼케돈
재위 기간 로마 황제
590년 3월 26일 ~ 602년 11월 27일 (12년)
전임자 마우리키우스
후임자 포카스
부모 아버지 : 마우리키우스
어머니 : 콘스탄티나
종교 기독교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의 64-2대 황제. 590년 마우리키우스에 의해 공동 황제로 선임되었지만 602년 포카스의 난으로 아버지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2. 생애

마우리키우스 콘스탄티나의 장남이다. 에페소스의 요한에 따르면, 그는 583년 8월 4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반면 고백자 테오파니스와 케드레노스에 따르면, 585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587년 카이사르 칭호를 받았으며, 590년 3월 26일에 아버지와 함께 공동 황제로 선임되었다. 597년, 마우리키우스는 장남 테오도시우스를 동방의 황제로, 차남 티베리우스를 서방의 황제로 계승시킨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일부 역사가들은 그가 그의 어린 네 아들들로 하여금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안티오키아, 라벤나에서 제국을 4등분해 통치하는 것을 고려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와 흡사한 정책이다.

601년 말 또는 602년 초, 콘스탄티노폴리스 원로원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게르마누스의 딸과 결혼했다. 이 게르마누스가 티베리우스 2세로부터 카이사르에 선임되었지만 며칠 만에 마우리키우스에게 양보했던 게르마누스와 동일인물인지는 불분명하다. 사모카타의 테오필락투스는 602년 2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났을 때 테오도시우스는 살해당할 뻔했지만 게르마누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기술했다.

602년 가을 포카스가 이끄는 다뉴브 전선군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마우리키우스 황제를 거부할 뿐 황실에 대한 충성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면서, 테오도시우스나 게르마누스를 황제로 받들겠다고 선언했다. 마우리키우스는 즉각 테오도시우스와 게르마누스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소환했다. 테오도시우스는 매질을 당했고 게르마누스는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으로 피신해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자신을 잡으러 온 황궁 근위대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백성들이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황제를 몰아내자며 봉기하자, 마우리키우스는 아내와 여덟 명의 자식, 그의 충신인 동방의 민정 총독 콘스탄티누스 라르디스와 함께 변장을 하고 황궁을 빠져나간 다음 일전에 자신의 도움을 받아 제위에 복귀한 바 있던 사산 왕조 샤한샤 호스로 2세에게 의탁하려 했다., 테오도시우스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콘스탄티누스 라르디스와 함께 호스로 2세를 찾아갔다. 그러다가 도중에 아버지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칼케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칼케돈에 도착했을 때는 아버지와 동생들이 며칠 전인 11월 27일에 처형당한 뒤였고, 그 역시 곧바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하지만 테오도시우스가 체포되지 않고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고, 603년 호스로 2세는 자신을 마우리키우스의 장남 테오도시우스라고 사칭한 자를 전면에 내세우며, 찬탈자를 몰아내고 은인의 아들을 복위시키기 위한 성전이니 로마인들은 적대하지 말라고 선전하며 전쟁을 단행했다. 테오도시우스를 사칭한 이는 네스토리우스파 총대주교 사브리쇼 1세의 집전하에 황제로 추대되었으며, 608년 테오도시오폴리스가 그를 영접한 뒤 사산 왕조에 항복했고, 에데사 역시 609년에 항복했다. 하지만 테오도시우스 사칭자의 이후 행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제임스 하워드-존스턴은 이 테오도시우스가 가짜라는 주장은 동로마 제국의 선전일 뿐이며, 테오도시오폴리스와 에데사의 저명한 지식인들이 사기꾼에게 모두 속았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이 인물이 진짜 테오도시우스라고 주장하지만, 다수의 학자는 이 인물이 가짜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