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22-2대 황제
디아두메니아누스 DIADUMENIANV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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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안토니누스 디아두메니아누스 (Marcus Opellius Antoninus Diadumenianus) |
출생 | 208년 9월 14일 |
로마 제국 | |
사망 | 218년 6월 (향년 9세) |
로마 제국 제우그마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218년 5월 ~ 218년 6월 (1개월) | |
전임자 | 마크리누스 |
후임자 | 엘라가발루스 |
부모 |
아버지 :
마크리누스 어머니 : 노니아 켈사 |
종교 | 로마 다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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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2-2대 로마 황제. 217년 5월 아버지 마크리누스에 의해 카이사르로 선임되었고, 218년 5월 아우구스투스로 격상되었지만 218년 6월 8일 엘라가발루스를 황제로 옹립한 반란군과의 안티오키아 전투에서 아버지가 패배한 후 추격대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2. 생애
208년 9월 14일 카라칼라 황제의 근위대장 마크리누스의 아들로 출생했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마크리누스는 근위대 몇 명을 사주해 카라칼라를 시해한 뒤 황제가 된 후 다음과 같은 편지를 아내에게 보냈다고 한다."오펠리우스 마크리누스가 아내
노니아 켈사에게. 사랑하는 아내여, 우리가 얻은 행운은 헤아릴 수 없소."
현대 역사가들은 이 편지는 지어낸 것으로 간주하며, 노니아 켈사(Nonia Celsa)라는 인물이 실존했는지도 의심한다. 영국의 고대 역사가 및 고고학자인 앤서니 리처드 벌리(Anthony Richard Birley)는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서 그가 외할아버지로부터 이름을 물려받았다고 언급한 대목에 주목해, 마우레타니아 속주의 검찰관이었던 하이우스 디아두메니아누스(Haius Diadumenianus)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디아두메니아누스의 어머니 이름은 노니아가 아니라 '하이아(Haia)'였들 것이다.
217년 4월 8일 카라칼라가 살해된 뒤 4월 11일 군대에 의해 황제로 추대된 마크리누스는 아들을 카이사르로 세우고 프라이토리아니에게 안티오키아에 있는 아들을 메소포타미아로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이후 디아두메니아누스가 카이사르로 선임된 것을 기념하는 동전이 동방의 여러 화폐 주조소에서 발행되었다.
218년 5월 16일, 율리아 마이사가 장녀 율리아 소아이미아스가 낳은 아들 엘라가발루스를 카라칼라의 사생아로 사칭하고 3군단 갈리카를 포섭해 마크리누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동방 로마군은 자신들을 우대해줬던 카라칼라를 그리워했고, 니시비스 전투를 치른 후 2억 세스테르티우스라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점령한 영토들을 포기하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파르티아와 평화 협약을 맺은 마크리누스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라칼라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에게 희망을 걸고 반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마크리누스는 반란 소식을 듣고 근위대장 울피우스 율리아누스를 파르티카 제2군단 부대와 함께 남쪽으로 보냈지만, 율리아누스는 린치를 당해 쫓겨났고 파르티카 제2군단 군인들 역시 새 황제의 편을 들었다. 이에 마크리누스는 군대를 이끌고 근위대가 주둔한 아파메아에 도착한 뒤 그곳에서 아들을 아우구스투스로 승격시켜 공동 황제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가문이 황위를 대대로 이어받을 것임을 명백히 했다.
그러나 마크리누스는 218년 6월 8일 안티오키아 전투에서 반란군에게 패배했다. 마크리누스는 보스포로스 해협 쪽으로 도주하면서, 충성스러운 하인에게 아들을 맡겨 파르티아로 피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디아두메니아누스는 그해 6월 말 제우그마에서 체포된 후 처형되었고, 그의 수급은 엘라가발루스에게 전달되었다. 얼마 후 마크리누스 역시 칼케돈에서 체포되었고, 카파도키아의 아르켈라이스에서 백인대장에게 처형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엘라가발루스는 디아두메니아누스의 수급을 기념품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원로원은 율리아 마이사의 요청에 따라 마크리누스 부자에게 기록말살형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