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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72년경 |
사망 | 1450년 3월 23일 (향년 78세) |
아버지 | 콘스탄틴 데야노비치 |
어머니 | 트라페준타의 에우도키아(양모) |
남편 | 마누일 2세 |
자녀 |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 요안니스 8세, 테오도로스 2세 팔레올로고스, 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콘스탄티노스 11세,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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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마누일 2세의 황후.2. 생애
1372년경 세르비아 왕국의 지방 영주였던 콘스탄틴 데야노비치의 딸로 출생했다. 친모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유년기에 양모인 트라페준타의 에브도키아에게 양육되었다. 부친 콘스탄틴은 오스만 술탄국의 바예지트 1세의 봉신이었으며, 1395년 로바인 전투에서 전사했다. 엘레니는 1392년 동로마 제국의 황자 마누일 2세와 혼인하였고, 1399년 남편이 황제가 되면서 황후로 즉위했다. 그녀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 요안니스 8세, 테오도로스 2세 팔레올로고스, 안드로니코스 팔레올로고스,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콘스탄티노스 11세,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토마스 팔레올로고스를 낳았다. 이외에도 두 딸을 낳았지만 성명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1425년, 마누일 2세는 오스만 술탄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침공을 가까스로 막아낸 뒤 황위에서 물러나 '마테오스'라는 이름의 수도자로 지내다 7월 21일에 사망했다. 엘레니 역시 키라 마르타 수도원의 수녀가 되었고, "절망한 자들의 희망"이라는 이름의 양로원을 성 베드로 수도원 내에 짓는 걸 도왔다. 1448년 장남 요안니스 8세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노스 11세와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가 차기 황제를 놓고 대립했다. 그녀는 콘스탄티노스를 지지했고, 콘스탄티노스가 1449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할 때까지 섭정을 맡았다. 콘스탄티노스 11세는 황위에 오른 뒤 엘레니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콘스탄티노스 드라가시스 팔레올로고스라고 지었다.
엘레니는 1450년 3월 23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사망일은 정교회에서 기념되고 있으며, 그녀의 두개골은 성유물로 취급되어 그리스 로우트라키에 있는 성 파타피오스 수도원에 보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