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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155년 |
사망 | 1211년 |
아버지 | 안드로니코스 카마테로스 |
어머니 | 칸타쿠제노스 가문의 여식 |
남편 | 알렉시오스 3세 |
자녀 | 엘레니 앙겔리나, 안나 앙겔리나, 에우도키아 앙겔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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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앙겔로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3세의 황후.2. 생애
1155년경 메가스 드롱가리오스와 판세바스토스의 직함을 가진 고위 관리 안드로니코스 카마테로스와 칸타쿠제노스 가문의 여식의 딸로 출생했다. 그녀는 알렉시오스 1세의 황후인 이리니 두케나의 친척이었다. 1169년 알렉시오스 앙겔로스와 결혼하였고, 딸 엘레니, 안나, 에우도키아를 낳았다. 이중 막내딸 안나는 훗날 니케아 제국을 건국하여 동로마 제국 부활의 초석을 닦은 테오도로스 1세와 결혼했고, 차녀 에우도키아는 알렉시오스 5세와 결혼했다. 1195년 4월 8일 남편이 동생 이사키오스 2세를 폐위하고 황제가 되었다. 이때 그녀는 황궁을 장악하고 두카스 가문의 힘을 빌려 반정부 세력을 진압했으며, 원로원에 막대한 뇌물을 줘서 남편이 황제로 인정받게 하였다. 뒤이어 세계 총대주교와 시민 대표단이 궁정을 방문하여 미래의 새 통치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에우프로시나는 훌륭하게 대응하면서 시민들을 설득했다. 만족한 시민들은 이후 원로원과 협력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 거리를 단장하고 알렉시오스 3세의 입성을 축하하였다. 이로서 정권의 인수인계가 완료되었다.당대 기록에 따르면, 에우프로시나는 남편의 이름으로 제국을 사실상 통치했다고 한다. 그녀는 스스로 명령을 내리기도 했고, 남편이 제정한 법령까지 알맞게 수정하였고, 유능한 인물인 콘스탄티노스 메소포타미스를 장관에 임명해 바닥을 드러내는 국고를 충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형제인 비실리오스 카마테로스와 사위 안드로니코스 콘토스테파노스는 에우프로시나가 신하들 중 한 사람인 바타체스와 간통했다고 고발했다. 알렉시오스 3세는 바타체스를 처형했고, 에우프로시나는 1196년 10월 황후의 예복을 벗고 네마타레아의 수녀원으로 추방되었다. 두카스 가문에서 알렉시오스에게 그녀를 복위시켜달라고 설득했고, 그녀는 6개월 후인 1197년 봄에 황후로 복귀할 수 있었다.
1203년 4차 십자군이 알렉시오스 4세의 꾀임에 넘어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오자, 알렉시오스 3세는 시민들을 독려하여 침략군에 맞섰다. 그러나 민심이 그에게 등을 돌리면서 상황이 위태로워지자, 알렉시오스는 국고에 있는 막대한 보물과 가족들을 데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났다. 그러나 에우프로시나는 미쳐 떠나지 못했고, 알렉시오스 4세에 의해 투옥되었다. 이후 알렉시오스 5세가 알렉시오스 4세를 죽이고 황위에 오르자 석방되었지만, 1204년 4월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자 알렉시오스 5세와 함께 탈출해 모시노폴리스로 도주했다. 그곳에 있던 알렉시오스 3세는 알렉시오스 5세를 실명시켜 십자군에게 보내버렸고, 십자군은 알렉시오스 5세를 처형했다.
이후 에우프로시나는 남편과 함께 테살로니키를 거쳐 코린토스로 도망쳤다. 그러나 코린토스에서 십자군 장성 중 한 사람인 몬페라토의 보니파초 1세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이후 이탈리아의 몬페라토로 이송된 알렉시오스 3세는 1209년 이피로스를 지키고 있던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니케아 제국에 들어왔다. 알렉시오스 3세가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에게 데스포티스 작위를 내려준 뒤, 아내 에우프로시나를 이피로스에 두고 홀로 니케아로 건너가 사위 테오도로스 1세에게 제위를 요구했다. 테오도로스가 거부하자, 룸 술탄국으로 향하여 마누일 마브로조미스 등 여러 신하를 규합하고 투르크군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1211년 니케아 제국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테오도로스 1세는 이들을 격파하였고, 포로로 잡힌 뒤 실명형에 처해져 유폐된 후 얼마 안가 사망했다.
에우프로시나는 이피로스에 머물다 아르타로 이동해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1211년경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