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로마 제국 107-3대 황제 Λέων Διογένης | 레온 디오예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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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069년경 | ||
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 |||
사망 | 1087년 | ||
로마 제국 드리스트라 | |||
재위 | 로마 황제 | ||
1070년 ~ 107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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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제호 |
레온 디오예니스 Λέων Δούκα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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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레온 Λέω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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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디오예니스 Δούκα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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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로마노스 4세(아버지)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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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
종교 | 기독교 ( 동방 정교회) | ||
왕조 | 두카스 왕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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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두카스 왕조의 황제. 1070년 형제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와 함께 로마노스 4세의 공동 황제가 되었지만 1071년 아버지가 만치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에 사로잡힌 뒤 폐위된 뒤 수도원에 감금되었다. 1081년 알렉시오스 1세에 의해 속세로 나온 뒤 자신을 구해준 알렉시오스 1세를 위해 정력적으로 활약하다 1087년 페체네그와의 전쟁을 치르던 중 전사했다.2. 행적
1069년경 로마노스 4세와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동생으로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가 있었다. 1070년 동생과 함께 로마노스 4세의 공동 황제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1071년 아버지가 만치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의 포로로 전락한 뒤 귀족들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로 인해 입지를 상실한 그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수도원에 갇혔다. 이제 영락없이 수도자로 지내는 듯했으나, 1081년 3월 황위에 오른 알렉시오스 1세가 그와 니키포로스를 수도원에서 꺼내주고 황족으로서 예우를 해줬다. 안나 콤니니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구해준 알렉시오스에게 감격하여 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1081년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군이 디라히온을 포위했을 때 황제와 함께 출진했다. 황제는 노르만군의 기세가 강한 것을 보고 섣불리 맞붙지 말고 장기전을 꾀하려 했지만, 그는 디라히온을 어서 구출하고 노르만인들을 응징해야 한다며 전면전을 벌이자고 촉구했다. 알렉시오스 1세는 아직 황위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도를 오래 비우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 말에 따라 디라키움 공방전을 치렀으나 참패했다.
1085년 스파르타 공작에 선임된 그는 1087년 페체네그를 상대하는 알렉시오스 1세의 원정에 동참했다. 드리스트라 전투 때 황제의 허락을 받고 최전선에 나아가 적진을 향해 용감하게 돌격했으나, 적의 마차에 접근했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그가 이렇듯 알렉시오스 1세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과는 달리, 동생 니키포로스는 알렉시오스 1세를 제거하기 위해 암살 음모를 꾸몄다가 1094년 발각되어 실명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