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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05:23:30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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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c002d><colcolor=#fff>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Assassination of John F. Kennedy
파일: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직전.png
▲ 케네디 대통령이 피탄되기 직전 촬영된 사진
파일:KENNEDY IS KILLED BY SNIPER.jpg
▲ 암살 다음날의 뉴욕타임스 1면[1]
▲ 사건 발생 위치
발생일 1963년 11월 22일 오후 12시 30분경[CST]
유형 살인
발생 위치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딜리 플라자
가해자 리 하비 오즈월드
범행 동기 미상[3]
피해자 <colbgcolor=#bc002d> 사망 존 F. 케네디 (제35대 미합중국 대통령)
J. D. 티핏 (댈러스시 경찰관)
부상 존 코널리 (제39대 텍사스 주지사)
제임스 타그 (민간인)

1. 개요2. 전개
2.1. 암살범 체포, 그리고 피살
3. 수많은 의혹들과 음모론
3.1. 암살 배후 의심 대상3.2. 존 F. 케네디를 목표로 한 게 아니다?
4. 케네디 암살 사건 기밀문서 공개5. 대중문화에서의 등장6.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JFK23.jpg
1977년에 제작된 ABC TV의 2부작 영화 '리 하비 오스왈드의 재판'의 재연 장면.
파일:jackie.jpg
실제 피격 이후의 사진. JFK에서도 그대로 묘사된다.[4]

1963년 11월 22일 리 하비 오즈월드가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살해한 사건.

미국 역사상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일어난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매킨리 대통령 암살 이후 62년만에 일어난 암살 사건이자 암살 사건 중 유일하게 현대에 일어난 데다 수많은 관중들과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는 도중에 암살당했기에 그만큼 사회적 파장과 충격이 큰 사건이었다. 거기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오스왈드 또한 연행되는 과정에서 암살되어 동기와 배후에 대해 알 수 없게 되어 수많은 음모론으로까지 이어진 사건이기도 하다.

2. 전개


1963년 집권 3년차이자 재선 출마를 1년 앞두고 있었던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B. 존슨의 정치적 기반인 텍사스 댈러스로 유세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고 그 해 11월 22일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와 함께 에어 포스 원을 타고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준비된 링컨 컨티넨탈 차량을 타고 댈러스 시내인 딜리 플라자 인근으로 향했는데 오후 12시 30분 경 갑자기 딜리 플라자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케네디의 머리에 총탄이 직격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충격적일 수 있으니 재생 주의.[5]
#

당시 댈러스에 살던 에이브러햄 저프루더[6]라는 시민이 홈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퍼레이드를 촬영하러 나왔다가 암살 장면을 녹화했다. 이후 저프루더 필름은 케네디 암살을 담은 가장 유명한 영상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

첫 발은 빗나가 길바닥을 맞혔으나 또 다시 총성이 울려퍼졌고 두 번째 총탄이 케네디의 목을 관통한 후 앞좌석에 있던 존 코널리 주지사까지 부상을 입혔다. 옆좌석에 앉아 있던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남편이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남편에게 손을 뻗는데 이때 세 번째 총탄이 발사되어 목을 부여잡고 있던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를 관통해 버렸다.[7] 병원 도착 당시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쓰러진 케네디 대통령을 태운 차 내부는 피로 흥건했다고 한다. 링컨 컨티넨탈은 특수 제작된 차량으로 방탄 기능이 있었지만 퍼레이드를 위해 지붕을 열어 둔 상태였기 때문에 방탄 기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8] 케네디 대통령이 머리를 저격당한 직후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차량의 후방 보닛으로 올라타는 장면이 있는데 뇌조각을 줍고,[9] 뒤에서 올라타는 경호원을 잡아주기 위함이라는 의견이 정론이다.[10]
파일:external/thimg.todayhumor.co.kr/1410478451aZgzHkW9BvucS4IEXrDNMXdwFQhk1B5.jpg

대통령을 태운 차량은 급히 인근에 위치한 파크랜드 메모리 병원에 도착했고 뒤이어 린든 B. 존슨 부통령이 병원에 도착했다. 대통령은 30분 가량 호흡이 붙어 있었지만 과다출혈로 숨졌다. 다만 설령 운 좋게 살았다고 해도 이미 뇌의 절반이 날아갔으므로 최소 식물인간이 되었을 것이다.[11] 게다가, 이미 혈관이 많이 모여 있는 부분인 목에 총을 맞았기 때문에 만일 머리에 총을 안 맞았었더라도 지혈 기술 미비로 인해 과다출혈로 숨졌을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사망 후, 케네디 대통령의 시신은 영부인 및 존슨 부통령과 함께 에어 포스 원으로 이동, 워싱턴 D.C.로 향했다. 존슨 부통령은 법적 절차에 따라 기내에서 선서를 하고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미국 정부는 사건이 벌어진 지 약 1시간 후인 오후 1시 30분에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것을 알렸고[12] 경찰과 FBI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엘름가 교과서 건물을 포위해 건물 6층에서 탄피 3개와 암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 총기를 발견했다.

2.1. 암살범 체포, 그리고 피살

파일:external/thimg.todayhumor.co.kr/1410478470DUzYzBPoW7u.jpg
리 하비 오즈월드와 그가 사용했던 이탈리아 카르카노 M91/38 라이플
파일:external/thimg.todayhumor.co.kr/1410478475Na8tRztmkkBhnErF.jpg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6층에서 발견된 탄피
경찰은 대대적으로 암살범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사건 발생으로부터 2시간쯤 뒤 근처 극장에 숨어있던 교과서 보관 직원이었던 미합중국 해병대 출신의 리 하비 오즈월드(Lee Harvey Oswald)를 암살 혐의로 체포했다. 그러나 오즈월드는 자신의 범행 사실을 부인함과 동시에 "나는 봉(patsy)이다."라고 주장했다.
파일:external/cdn.inquisitr.com/Jack-Ruby-Files.jpg
[13]
그리고 오즈월드는 이틀 뒤(1963년 11월 24일) 경찰서에서 감옥으로 압송되던 도중 댈러스 나이트클럽 경영자 잭 루비에게 살해당했다.[14] 그리고 이 살해 장면도 TV에서 생중계되었다.[15] 잭 루비는 마피아와 깊이 연루되어 있던 자였는데 감옥에 수감되어 사형 집행을 기다리다가 폐암에 걸려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1967년에 병사했다. 잭 루비의 살인 동기, 권한 없이 수차례 경찰서를 드나들 수 있던 이유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자 의회는 당시 연방 대법원장인 공화당원 얼 워런[16]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 통칭 워런위원회(Warren Commission)를 발족해 케네디 암살에 대해 조사하게 했다. 워런 위원회는 총알은 암살 현장 옆에 있는 교과서 배급 건물(Texas School Book Depository) 6층에서 발사되었으며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냈다. 특히 루비와 오즈월드의 연결점을 조사했으나 둘은 일면식도 없었던 사이라고 발표했으나 독립 연구자들은 다르게 판단한다.

3. 수많은 의혹들과 음모론


암살자도, 그 배후나 목적에도 불분명한 점이 많고 암살자로 여겨지는 자가 적절한 동기도 없이 살해되었고, 암살자를 살해한 범인의 동기마저 매우 의심스러운 가운데 이후 마틴 루터 킹, 로버트 케네디 암살 등이 이어져 9.11 테러와 함께 음모론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마법 총알 등의 상당수 의혹들은 여전히 의심을 사고 있다. 2017년 이후 의회가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관련된 기밀 서류를 해제할 것을 명령했으나 트럼프 행정부 바이든 행정부 모두 이를 거부했다. "모든 음모론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사실 총알이 몇 발이 날아왔는지, 어디서 날아왔는지조차 논란이 분분했기 때문에 이러한 음모론이 생긴 것은 불가피했다. 무엇보다도 황당한 것은 중요한 단서가 될 케네디 대통령의 를 현재 잃어버린 상태다. 뇌 조각을 짜맞춰서 총알이 날아온 궤도 및 각도 등을 알 수 있는데 이걸 잃어버린 바람에 암살자의 위치 및 공모자 여부가 전부 미지수로 남아 버렸다. 중요한 건 사건 당일 파크랜드 병원 의사들이 본 케네디의 상처와 워싱턴 베세다 해군병원에서 의사들이 본 케네디의 상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오랜 동안 공식 기록은 파크랜드 병원 의사들이 본 것을 외면해왔다.

암살 음모론을 다룬 영화가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91년 작 < JFK>이다. 케네디 암살 사건을 10여 년 동안 조사한 짐 개리슨 뉴올리언스 지방검사의 수사 기록을 토대로 제작했다. 실제 개리슨의 수사는 독립 연구자들의 공모 연구를 위주로 하였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기관과 몇몇 인물들의 의심스러운 행적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짐 개리슨에게 CIA와 케네디 암살을 공모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클레이 쇼는 자신이 CIA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부인했으며 이후 무죄를 선고받았고 1974년에 사망했다. 하지만 1979년에 전 CIA 국장 리처드 헬름스가 1975년에 발행된 Coup d'état in America[17]라는 저서의 명예훼손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하면서 쇼가 실제 CIA의 정보원이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만 헬름스는 정보기관에 협력했던 정보원과 실제 CIA 직원과는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CIA에 협력한 미국인은 15만명 이상이며 다양한 사회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미국인들이 정보원으로 CIA에 여러가지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쇼는 이들 중 한 명이었으며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의 물건을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가였기 때문에 주로 라틴아메리카 쪽의 정보를 CIA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CIA에게 해외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는 수많은 끄나풀 중 한 명에 불과했으며 이런 쇼가 CIA와 함께 중요한 작전을 수행할 만큼의 위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18]

조 페시가 연기한 데이비드 페리는 짐 개리슨에 의해 클레이 쇼와 함께 케네디 암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자신은 리 하비 오즈월드를 모른다며 부인하다가 1967년 사망했다. 하지만 1993년 PBS 방송에서 데이비드 페리와 리 하비 오즈월드가 함께 찍힌 1955년 민간 항공 순찰대 야외훈련 사진이 공개되었다. # 이 사진뿐 아니라 페리와 오즈월드의 관계를 드러내는 간접 증거는 더 많으나 페리가 오즈월드의 케네디 암살에 연관되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데이비드 페리의 동료로 지목되었던 가이 베니스터는 전직 FBI 요원 출신 사립탐정으로 반 카스트로 쿠바인들과 함께 반공 활동을 했다. 오즈월드는 친 카스트로 성향의 FPCC(Fair Play for Cuba Committee)라는 좌익 단체의 이름을 빌려서[19] 길거리에서 홍보 전단지를 배포했는데 이 전단지에 적혀 있는 주소가 바로 가이 베니스터의 사무실이 있는 뉴먼 빌딩이었다. # 하지만 정작 FPCC는 뉴먼 빌딩에 뉴올리언스 지부 같은 건 없었고 오히려 뉴먼 빌딩에는 반카스트로 성향의 반공 단체인 쿠바혁명위원회, 자유쿠바위원회 같은 단체들이 있었는데 피그스만 침공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단체들로 피그스만 침공에 동원되었던 쿠바 망명자들의 상당수가 이 단체들 소속이었다.[20] 이 단체들의 뉴올리언스 지부가 베니스터의 사무실 위층에 있었는데 뉴올리언스 지역지의 보도에 따르면 베니스터는 피그스만 침공에 필요한 군수품을 제공했다고 하며 1961년 루이지애나주 군수품 창고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가이 베니스터는 짐 개리슨의 수사가 시작되기 2년 전인 1964년에 사망했다.

반박이 가능한 대다수의 의혹과는 별개로 오즈월드와 함께 암살에 연관이 있는 것으로 지목되었던 인물들이 공교롭게도 실제로 CIA, FBI, 쿠바 등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CIA와 클레이 쇼가 케네디 암살의 배후라는 짐 개리슨의 수사는 직접적인 증거가 모자랐고 배심원단은 판단에 따라 결국 관련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와 관련된 음모론의 생명력이 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배후자로 지목된 인물들의 의심스러운 행적 때문이다. 관련자들의 의심스러운 행적에 대한 논란은 관련자들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명확한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사우스월 기자도 저서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에서 의혹을 제기했다.

독립 연구자들이 제기하는 공모설들에 따르면 원래 퍼레이드 루트는 암살 시도가 실패했을 때 도피를 위해 직선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시장이 독단적으로 바꿨다. 그것도 S자형으로. 이 루트대로 가면 코너를 돌기 위해서 감속해야 하고 그러면 저격이 쉬워진다.

텍사스주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기에 텍사스에서 부검을 해야 했다. 비밀경호국이 물리력을 써서 워싱턴 베세다 해군병원으로 이송했다. 부검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에게 부검을 맡겼고 시신과 뇌는 비밀경호국에 의해 병원에서 강제로 이동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그리고 정말 오즈월드 혼자 벌인 일인지, 아니면 배후가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심지어 오즈월드는 실제 총격을 하지도 않았으며(그리고 가명으로 총기를 우편 구매하는 건 추적이 될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오즈월드가 총을 쏘았다는 지문, 화약 잔사 등도 없고 경찰서에서 심문을 한 기록도 없다. 오즈월드가 너무나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해 아내 마리나는 러시아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제럴드 포즈너는 Case Closed에서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고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대다수는 숨겨진 배후가 있다고 믿는다.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책들도 여전히 출간 중이다.

케네디라는 전 세계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고작 단독 암살범 한 명이 일으킨 사건에 허무하게 죽을 리 없다는 등의 인식 때문에 그렇게 믿는 듯 하다. 표현을 약간 바꾸자면 음모론이 너무 신빙성 있기도 하고. 수수께끼에 접근할 때 유용한 법칙이자 도구인 이득을 본 사람과 그 이득의 양을 탐색하는 데 다다르면 일종의 이득의 발생량이 정서불안자의 우연한 한 방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크다(심지어 오즈월드가 교과서 창고 빌딩에서 목격되었을 때, 살인을 저지른 이 치고는 너무 차분한 표정이었다).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대강의 정황이 아주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는 이상 군소문이 끊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배후 지목도 결국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이득이 발생했는지가 핵심 용의 중 하나다.

이러한 음모론 때문에 영화나 게임을 비롯한 매체에서는 사실 오스왈드는 연막이고 케네디 암살은 "XXX 세력의 배후로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소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암살 사건 당시 총성을 들었다는 제보가 여럿이다 보니 지금도 존재하는 딜리 광장(Dealey Plaza)의 '푸른 언덕(grassy knoll)'은 총성이 들린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시 놀의 펜스 뒤에서 뱃지를 단 이가 총격을 가했다는 '배지맨' 가설 등을 믿는 이들이 있다. 케네디가 총격을 받은 뒤 케네디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기 때문이다. 뒤에서(교과서 창고 빌딩) 쐈다면 케네디 고개는 앞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참고로 미국인의 80% 이상이 1964년 워런 위원회에서 내린 리 하비 오즈월드의 단독범행이라는 공식 결론보다는 외부세력이 개입했거나 사건이 은폐됐다는 음모론을 더 믿고 있다고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도 공식 결론보다 음모론을 더 많이 믿고 있다. 심지어 마틴 루터 킹,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1976년 미국 의회에서 발족한 하원 암살 위원회(HSCA)에서도 일부 하원의원들이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는 소수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음모론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도 케네디 암살 사건은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믿지 않는 경우가 많기도 한 음모론이기도 하다. 그만큼 여러가지 의혹들이 많았던 사건이었다.

사실 케네디 암살 사건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린든 B. 존슨의 비행기 안에서 이루어진 대통령 취임선서였다. 이 취임선서에는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참석했는데 케네디 일가와 케네디의 측근들은 남편의 암살로 큰 충격을 받은 재클린 여사를 굳이 참석시켜야 했냐고 불만을 토해냈다. 이에 존슨은 케네디의 친동생이자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케네디와의 협의 하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로버트 케네디는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결국 두 사람의 주장 중 어느 쪽이 맞는 지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3.1. 암살 배후 의심 대상


다음은 음모론에서 케네디 암살의 주체로 거론되는 것들이다. 2003년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 "암살 배후"로 꼽은 순서는 FBI/CIA 25%, 마피아 25%, 린든 B. 존슨 18%, 소련 15%, 쿠바 15% 순서였다.

3.2. 존 F. 케네디를 목표로 한 게 아니다?

일각에서는 오즈월드의 암살 목표가 케네디 대통령이 아니라 동승하고 있던 존 코널리 주지사였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주장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그럼 왜 이러한 주장들은 묵살되고 오즈월드는 케네디 암살범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당시 FBI 수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가 FBI 요원이 암살의 발단이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조직에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차단시켰다는 설, 그리고 하나는 새로 대통령으로 임명된 부통령 린든 B. 존슨이 자신의 인생의 모든 문제가 코널리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오즈월드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게 밝혀질 경우 코널리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질 것을 우려해서 덮었다는 설이다.[26]

참고로 존 코널리 주지사는 이 때 총알이 신체의 여러 군데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케네디의 목을 관통한 총알이 코널리의 폐와 손목을 관통하고 허벅지에 박힌 것. 물론 코널리 본인은 치료를 받고 죽음을 면하는 데 성공했다. 코널리는 이후 공화당으로 당적을 이전해 닉슨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 등을 지내고 부통령 후보직도 제의받는 등 닉슨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약했다.[27]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든든한 후원자를 잃으면서 끈이 떨어졌고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 경선에도 나왔으나 낮은 지지율로 인해 대선 후보가 되지 못 하고 정계에서 은퇴해야 했다. 정계 은퇴 후 코널리는 1980년대와 90년대 내내 칩거 생활을 하다가 1993년 폐 섬유종으로 인해 사망했다.

4. 케네디 암살 사건 기밀문서 공개

2017년 10월 26일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기록수집법에서 규정한 공개 시한이 만료됨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2,891건의 기밀문서가 공개되었다. 본디 3,140건을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국가 안보 문제로 인해 수백건은 향후 180일 간의 추가 검토 끝에 공개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공개한 문서에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공개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여러 추측들이 제기되었는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한 주장은 "오즈월드는 실제로 CIA와 같이 일한 적이 있지만 이후 독단적으로 JFK를 암살했고, 오즈월드와의 연결고리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CIA가 관련 정보들을 단속했다"는 것이다. 상당히 현실성 있는 가설이다. 다만 이렇게 되면 잭 루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오즈월드의 단독 총격( 볼트 액션 소총 3발 사격)으로 JFK의 몸에 무수한 총상을 남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5.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워낙 유명한 사건이다 보니 대중매체에서 자주 등장한다.

또 범인이 리 하비 오즈월드가 아니라는 음모론을 소재로 하여 케네디를 암살한 진범이 오즈월드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아래는 각 작품별로 케네디를 암살한 진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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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작품별로 케네디를 암살한 진범들 】
* 왓치맨(영화판) - 코미디언[32]
  • 더 록에서는 주인공이 굿스피드가 메이슨이 교회에 숨긴 기밀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케네디를 죽인 게 누구인지 아느냐고 아내에게 물어보며 다른 진범이 있다는 암시를 하고 영화가 끝난다.

6. 여담

일본에서는 미국과 협약을 맺어 최초로 위성중계방송을 실시했는데 하필 첫 생중계에서 대통령이 암살되었던 바람에 TV 앞에 모인 많은 일본인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사건 2일 전 케네디는 축하 메시지를 미리 촬영해 두었는데 결국 제때 전해지지 못한 채 사건 관련 뉴스로 대체되었고 이후 따로 방송되었다.

케네디가 유세 도중 사망한 후 뉴욕 국제공항은 그의 이름을 따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으로 개칭하였다.

또 1963년까지는 벤저민 프랭클린을 도안으로 하여 발행되고 있었던 미국의 50센트 주화도 케네디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1964년부터는 케네디로 도안을 변경해 발행하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케네디가 총에 맞은 직후 갑작스러운 사태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는데 케네디의 행렬 뒤에 버스를 타고 따라가던 언론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중 톰 위커란 기자는 재빨리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고 댈러스 국제공항으로 가서 긴급 기사를 작성한 다음 자기가 소속된 뉴욕 타임스 사에 공중전화로 기사를 구술했는데 취재 수첩에 쓸 시간도 없어서 대통령 행사 일정이 인쇄된 종이의 뒷면에 기사를 썼다고 한다. 이 보도로 위커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전해받은 미국 TV 방송들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내보냈으며 당시 미국의 유명 언론인이자 뉴스 앵커였던 월터 크롱카이트가 비보를 전하며 눈물을 삼키는 장면은 방송 역사에 길이 남았다.

[1]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케네디가 댈러스의 카퍼레이드 중 저격수에 의해 암살당하다: 존슨은 비행기에서 대통령 취임을 선언하다." / 작은 글씨는 " 존슨은 단합을 요구하다", " 좌파 저격수가 기소당하다" / " 코널리 주지사 역시 피격; 케네디 여사는 안전" 뉴욕 타임스는 절제된 편집을 추구해 긴급한 뉴스가 아닌 이상 큼직한 헤드라인을 뽑지 않는다. 이처럼 뉴욕 타임스가 이례적인 헤드라인 편집을 선보인 또 다른 역사적 사례로는 진주만 공습, 로버트 F. 케네디 암살 사건, 리처드 닉슨의 사임, 소련 붕괴, 9.11 테러, 버락 오바마 당선 등이 있다. [CST] 미국 중부 표준시각 [3] 가해자인 리 하비 오즈월드가 체포되어 압송되던 도중 잭 루비에게 살해되면서 정확한 범행 동기와 배후의 존재 여부 등 사건의 진상은 미궁 속에 빠졌다. [4] 재클린은 케네디의 비산된 소뇌를 수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뇌 일부를 수습하여 파크랜드 병원 의사들에게 건넸다는 증언이 있으며 극심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에 어떻게든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수습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5] 29초 즈음에 케네디 대통령이 머리에 총알을 맞아 쓰러지는데 이전에 이미 관통당한 목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4분 35초에 같은 장면이 확대 슬로우 모션으로 나오는데 이때 다시 날아온 총알에 두개골이 으스러져 허옇게 드러나고 뇌 일부가 시트로 쏟아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나마 1963년에 촬영한 저화질 영상이라서 아주 심각한 고어함은 없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부검 사진도 돌아다니는데 흑백 사진이긴 하지만 화질이 정확해서 고어할 수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말 그대로 머리가 폭발해서 의 절반 이상이 없다. 개요 문단에 있는 사진은 흑백인데다 그의 머리 부분의 화질이 좋지 않아 판독이 쉽지 않지만 이미 케네디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뒤의 사진이다. [6] 러시아 제국 치하 우크라이나 출생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의류제작자다. [7] 당시 부검 사진을 보면 두개골이 문자 그대로 폭발해 버리면서 대뇌조직 대부분이 튀어나갔다. 케네디는 오래 전부터 심각한 척추 손상으로 인한 통증으로 허리에 늘 고정 복대를 차야 했고 첫 번째로 목이 관통당했을 때 고정 복대만 없었다면 허리를 숙여 피할 수 있었겠지만 불가능했다. [8] 본래 경호실에서 안전 문제를 고려해 방탄 지붕을 둔 채로 운전할 것을 강력히 권했지만 케네디가 군중들과 보다 가까이 하고 싶다면서 한사코 사양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비극이 되었다. [9] 파라마운트의 다큐 '존.F 케네디의 죽음: 의사들은 무엇을 보았나'를 보면 재클린에게서 뇌조각을 받았다는 파크랜드 의사의 증언이 나온다. [10] 정론이 여러 근거로 뒷받침됨에도 "그냥 도망가려는 것 아닌가?"하는 주장이 있어왔다. 주장의 신빙성 여부와 별개로 옆에서 사람이 총에 맞았으면 도망치는 게 이상하지 않기에 이 주장을 이용해 재클린을 깐다면 억까도 이런 억까가 없는데(...) 아닌 게 아니라 케네디 부부가 누렸던 아이돌적 인기와 재클린 케네디가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하며 얻게 된 안티팬들을 묶어보면 '속물 재클린이 JFK를 배신했다' 식의 팬덤서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케네디 부부에 대한 격렬한 빠와 까 모두 수그러들었지만, 그래서 이게 왜 비방인지 이해할 수 없어졌기 때문에 계속 재생산되는 면이 있다. [11] 즉, 이 정도면 사실상 즉사한 것과 다름없다. 다른 암살된 미국 대통령들(가필드, 매킨리)의 경우 총에 맞았어도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었지만(레이건이 그렇게 해서 살아났고,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 케네디와 링컨, 특히 케네디의 경우는 그럴 틈마저 없었다. [12] 이때 CBS-TV 월터 크롱카이트 앵커가 감정을 억누르며 속보로 전한 것이 유명하다. [13] 이 사진을 찍은 <댈러스 타임스헤럴드>의 사진기자 로버트 잭슨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할 때 현장에서 저격범의 총신을 보았으나 사진을 찍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로버트는 이를 자책하며 저격범 오즈월드의 사진을 찍겠다고 신문사에 요청하여 경찰의 촬영 허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로버트는 댈러스 경찰서 앞에서 찍은 이 사진으로 1964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4] 위 사진에서 밝은색 정장과 중절모를 쓴 사람이 당시 댈러스 경찰서 형사였던 짐 리벨이다. 1950년 4월부터 1975년 4월에 퇴임할 때까지 형사로 근무하였다. 그가 오즈월드가 살해될 당시에 착용하고 있던 사진 속 정장과 중절모는 이후 6th Floor Museum에 전시 중이다. [15] 위 사진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있는 톰 페팃 기자는 오즈월드가 총에 맞아 쓰러지자 "오즈월드가 총에 맞았습니다. 오즈월드가 총에 맞았습니다. 누군가 총을 지닌 채 들어왔습니다. 여기 댈러스 경찰서 본부 지하는 매우 혼란에 빠졌습니다. 형사들이 총을 들었습니다. 오즈월드가 총에 맞았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He's been shot, He's been shot! Lee Oswald has been shot! There's a man with a gun. And it's absolute panic, absolute panic here in the basement of the Dallas police headquarters! Detectives have their guns drawn. Oswald has been shot. There's no question about it.)"를 외치며 몹시 상기된 표정이 되었다. [16] 골수 공화당원으로, 캘리포니아주 연방 검사를 시작으로 공직 경력을 쌓기 시작해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떨어진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재임하다가 아이젠하워 대통령 말미에 연방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흑백 인종차별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렸고 미란다 원칙을 확립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존 마셜 연방대법원장과 함께 가장 존경받는 연방대법원장이다. 다만 아이젠하워는 워런을 연방대법원장에 임명한 것을 매우 멍청한 선택이었다고 후회했다. [17] 케네디 암살 사건에 관련된 정부 문건을 바탕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CIA의 연관성에 대해 쓴 책으로 1992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18] 기밀 해제된 CIA의 문건에 따르면 클레이 쇼는 1949년부터 정보기관의 정보원으로 활동했으며 CIA의 보안인가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19] 1963년 5월에 오스왈드가 스스로 자칭 FPCC 뉴올리언스 지부를 창설했고 오스왈드는 이 지부의 유일한 회원이었다. [20] 1963년 8월에 오즈월드는 FPCC의 전단지를 나눠주다가 카를로스 브링기에르라는 반 카스트로 성향의 쿠바 망명자와 싸움이 붙어 함께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이때 찍힌 머그샷이 아직도 남아 있다. # 오즈월드는 이전에 브링기에르의 가게에 방문해서 카스트로와의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했으나 거절당하고 며칠 뒤에 나타나더니 반카스트로 단체들이 입주한 뉴먼 빌딩의 주소가 적힌 FPCC의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이에 화가 난 브링기에르와 오즈월드가 싸움이 붙은 것이었다. 브링기에르는 반 카스트로 단체인 DRE(Directorio Revolucionario Estudantil)의 수장이었는데 자신에게 카스트로와 싸우고 싶다고 반 카스트로 성향인 척 접근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꿔 카스트로를 옹호하는 단체의 전단지를 돌리는 오즈월드를 향해 공산주의자, 카스트로의 요원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DRE의 뉴올리언스 지부도 뉴먼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으며 다른 반카스트로 단체와 마찬가지로 CIA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21] 특히 CIA가 추진한 쿠바 침공, 이른바 피그만 침공이 실패하자 케네디는 "CIA를 1천 개의 조각으로 찢어 허공으로 날려버리겠다!"는 발언을 할 만큼 분노했다. 당연히 CIA에서는 그런 케네디를 싫어했고 따라서 케네디 암살의 배후로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 [22] 1969년에 뉴올리언스 지방검사 짐 개리슨에게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어 기소당했지만 이후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1974년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전이성 폐암으로 알려졌다. 이후 5년 뒤인 1979년에 실제로 CIA의 라틴 아메리카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클레이 쇼에 대한 재판은 현재까지 케네디 암살사건과 관련된 유일한 재판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동시에 미국 역사상 최고로 형편없는 형사사건이라는 오명도 함께 가지고 있다. [23] 닉슨은 대통령 출마를 피하려고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했고 케네디 자신은 1964년 대선에서 넬슨 록펠러와 맞붙을 것으로 예상했다. [24] 실제로 미국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있는 JFK :배신당한 대통령이라는 다큐에서는 군부가 어떻게 케네디 대통령을 길들이려고 하고 군부가 대통령이 유약하고 군을 싫어한다는 이미지를 띄도록 선전선동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5] 오즈월드가 실제로 JFK를 저격한 것은 맞는데 이것이 빗맞았지만 총성에 놀란 신참 경호원의 실수로 쏜 총알이 JFK를 죽였고 정부가 이를 오즈월드에게 그냥 뒤집어 씌웠다는 설이다. [26] 코널리와 존슨은 정치 입문 전부터 알고 지낸 절친 사이였다. [27] 케네디의 정적이었던 닉슨, 존슨 두 명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존 코널리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도 만만치 않다. [28] 케네디가 승인, 방조한 베트남 군부의 쿠데타와 응오딘지엠 살해를 말한다. 망명 중이었던 쩐레수언은 재클린 케네디에게 조전을 보내서 위문하면서 이제 당신도 남편이 살해당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이라고 위문을 가장한 딜을 먹였다. [29] FBI 국장이 모은 걸 메이슨이 훔쳤는데, 케네디 암살 사건과 로스웰 UFO 추락 사건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스터리들의 해답이 담긴 기밀자료가 필름에 담겨 있다. 이걸 모처에 숨기고 FBI에 체포된 메이슨은 알카트라즈 감옥에 들어가 30년을 복역한다. [30] 역사에서처럼 대통령 직위를 승계받은 린든 B. 존슨 다음으로는 JFK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어 형의 꿈이었던 미국인의 인류 최초 달 착륙을 성공시킨다. [31] 참고로 치매를 앓는 주인공이 기억하는 케네디의 또 다른 말로(末路)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과 미국이 각각 마이애미 키예프를 상호 핵폭격하는 단시간의 제한 핵전쟁을 벌인 끝에야 유엔의 중재하에 가까스로 종전 합의에 도달했으며 제한 핵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진 케네디는 다음 대선에서 공화당의 넬슨 록펠러에게 정권을 내주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된다. [32] 영화 인트로에서 암살 장면이 재구성되어 나온다. 그러나 코믹스판 프리퀄에서는 케네디 가문의 친구로 케네디가 죽었을 때 코미디언은 몰록을 족치고 있었다. [33] 확실하게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작중 정황과 묘사 등 여러 떡밥들을 보면 메이슨이 어떤 식으로든 오즈월드와 함께 암살한 것이라고 떡밥을 던진다. [34] 미끼 역인 리 히비 오즈월드, 케네디 암살 직후 대통령직을 승계받은 린든 B. 존슨, 그리고 세간에 케네디 암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알려진 댈러스 시민이자 진짜 암살범인 에이브러햄 저프루더(Abraham Zapruder, "Z"라고 명명됨) 모두 템플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케네디는 (3번째) 에덴의 조각을 이용하여 국민들에게 민주적인 투표를 할 수 있게 했지만 기사단에 의해 암살당했다. 덧붙여 케네디가 소유하고 있던 에덴의 조각은 암살 직후, (2번째) 에덴의 조각에 현혹된 운전사가 빼돌렸다. [35] 킹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광범위한 자료 조사를 한 결과 자신도 믿기 어려웠지만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 맞고 잭 루비도 누구의 사주 같은 것 없이 충동적으로 오즈월드를 죽인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음모론을 믿는 독자들에게는 킹도 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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