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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저온/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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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읽기 전에3. 목록
3.1. 15세기 이전3.2. 16세기3.3. 17세기3.4. 18세기3.5. 19세기
3.5.1. 1800~ 1870년대
3.5.1.1. 1851년(철종 2년)3.5.1.2. 1852년(철종 3년)3.5.1.3. 1860년(철종 11년)3.5.1.4. 1864년(고종 1년)3.5.1.5. 1877년(고종 14년)
3.5.2. 1880년대
3.5.2.1. 1881년(고종 18년)3.5.2.2. 1882년(고종 19년)3.5.2.3. 1883년(고종 20년)3.5.2.4. 1884년(고종 21년)3.5.2.5. 1885년(고종 22년)3.5.2.6. 1888년(고종 25년)
3.5.3. 1890년대
3.5.3.1. 1891년(고종 28년)3.5.3.2. 1892년(고종 29년)3.5.3.3. 1893년(고종 30년)3.5.3.4. 1895년(고종 32년)3.5.3.5. 1897년(고종 34년, 광무 원년)3.5.3.6. 1898년(고종 35년, 광무 2년)3.5.3.7. 1899년(고종 36년, 광무 3년)
3.6. 20세기3.7. 21세기

1. 개요

한반도에 찾아온 이상 저온을 시기별로 나열한 문서이다.

2. 읽기 전에

아래의 사례는 ~ 가을에 기온이 낮게 나타난 경우에 대해 다루며, 겨울( 12~ 2월)의 이상 저온에 대한 내용은 간략하게만 서술하고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 한파/사례 문서들을 참조하면 된다. 또한 전국 평균 기온은 본격적인 전국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를 기준으로 통계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2021년 3월까지는 대체적으로 1981~ 2010년까지 30년간의 평균 기온을 기반으로 서술된 내용이 많으니, 1980년대 이전의 평균 기온은 1981~ 2010년 평균 기온에 비해 다소 낮으며 이상 저온의 강도가 더욱 강하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는 것이 좋다.

본 문서에서는 19세기의 기후를 서술할 때 한수당연구원 블로그[1]의 글을 자료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 글을 보면 블로그 주인의 약력이 있으니 후술할 자료들은 신빙성이 높은 편이다.[2]

3. 목록

3.1. 15세기 이전

3.2. 16세기

3.3. 17세기

17세기 소빙하기가 절정에 달해 연도가 네 자릿수로 바뀐 이후로 평균 기온과 최저 기온이 가장 낮았던 시기로 추정되며[25] 이에 관련된 기록들이 아주 많다. 아래 나열된 기록들은 모두 조선왕조실록이 출처이다.
기근의 참혹이 올해보다 더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가 몸에 절박하므로 서로 모여 도둑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집에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는 자는 곧 겁탈의 우환을 당하고 몸에 베옷 한 벌이라도 걸친 자도 또한 강도의 화를 당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무덤을 파서 관을 뻐개고 고장(藁葬)을 파내어 염의를 훔치기도 합니다.

3.4. 18세기

3.5. 19세기

3.5.1. 1800~ 1870년대

3.5.1.1. 1851년(철종 2년)
3.5.1.2. 1852년(철종 3년)
3.5.1.3. 1860년(철종 11년)
3.5.1.4. 1864년(고종 1년)
3.5.1.5. 1877년(고종 14년)

3.5.2. 1880년대

이 시기 무렵( 1870년대 중반~ 1880년대)부터 한반도의 과거 날씨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비공식 관측 자료가 존재한다.[91] 아래 1886년까지 서술된 내용은 당시 일별 기상 관측을 한 지역들 중 서울과 그나마 가장 가까운 일본 나가사키 지방의 기온을 대조한 것이다. 5월부터 9월까지는 서울과 차이가 크지 않으나 11월 중순~ 2월 서울과 12~17℃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1887년부터는 인천 해관기상관측자료를 참고하여 더욱 정확한 기온으로 서술하였다.
3.5.2.1. 1881년(고종 18년)
3.5.2.2. 1882년(고종 19년)
이 해는 1월 하순에 강력한 남풍으로 인한 고온 정황이 보여 1월은 약 -2~-3도 사이로 평균기온이 현대 평년과 비슷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6월 상순에 역대 최강의 이상 저온이 발생했다. 그리고 12월도 매우 추운 편에 속했다.
3.5.2.3. 1883년(고종 20년)
다음 해 보다는 좀 덜 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 해도 크라카타우 화산 분화로 인해 매우 낮은 연평균 기온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9월 하순에 이상 저온이 매우 심각했다.
11월 말에 겨울이 시작되고 연못이 얼어붙으며 이 내렸다.
3.5.2.4. 1884년(고종 21년)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이상 저온 중에 가장 비정상도가 큰 해 중 하나이다. 3 ~ 5월, 9월 이상 저온이 심하지 않았고 8월 상순은 당시 치고 조금 더운 편이었으나, 중하순에는 저온이 매우 심했다. 10~ 12월의 압도적인 이상 저온 한파가 가장 기록적이고[96] 1월도 추운 편이었으며, 2월, 6월에도 강한 이상 저온이 발생했다. 이같은 극한 이상 저온의 원인은 1883년 크라카타우 화산 분화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이 기상 관측이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1947년 이상으로 상당히 낮은 연평균 기온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3.5.2.5. 1885년(고종 22년)
1885년은 비공식 자료이기는 하나,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한수당연구원 블로그에 따르면 이해 한반도 8월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이상 저온이 길게 이어져서 결국 역대 순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낮은 연평균 기온이 나왔다고 한다.
3.5.2.6. 1888년(고종 25년)

3.5.3. 1890년대

일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은 인천, 부산의 해관기상관측자료를, 월 평균기온은 한수당연구원 블로그 자료를 참고했다. 해관자료의 일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을 통해 추정한 월 평균기온은 한수당연구원에 기록된 월 평균기온보다 0.7℃ 정도 낮다고 생각되며 이를 통해 인천과 부산의 월 평균기온을, 인천과 서울의 기온 차이를 계산해 서울의 일최저기온, 일최고기온, 월평균기온을 추정하였다.

1890년대도 1910년대 처럼 봄철 저온현상이 잦았다.
3.5.3.1. 1891년(고종 28년)
3.5.3.2. 1892년(고종 29년)
3월 이상 저온이 매우 심했던 해이다. 서울과 인천의 3월 평균기온이 0℃ 내외로 1936년, 1957년 3월과 비슷하다. 기온 양상도 1957년 3월과 매우 비슷하다.[110]
3.5.3.3. 1893년(고종 30년)
역대급 라니냐가 발생해서 저온 현상에 영향을 받은 해이다.
3.5.3.4. 1895년(고종 32년)
3.5.3.5. 1897년(고종 34년, 광무 원년)
3.5.3.6. 1898년(고종 35년, 광무 2년)
기온 양상이 1916년과 매우 비슷하게 1~2월(특히 1월)은 고온 현상이 심했으나 3~7월에는 저온 현상이 심했다. 1,3,7,8월은 1916년과 비슷하고 2,5월은 1916년보다 살짝 높고 4,6월은 1916년보다 살짝 낮았으나 전반적으로 대동소이했다.
3.5.3.7. 1899년(고종 36년, 광무 3년)

3.6. 20세기[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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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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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명 한상복, 1940~2023. [2] 다만 해당 블로그에 기재된 월평균 기온의 경우 산출 방식이 현대와 달라서 현대의 방식으로 계산된 월평균 기온보다 0.5~1℃ 정도 높게 적혀있는데,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당시에는 오전 9시, 오후 3시, 오후 9시로 일 3회 측정에 대한 평균치가 바로 일평균 기온을 산출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는 오전 3시, 오전 6시, 오전 9시, 오후 12시, 오후 3시, 오후 6시, 오후 9시, 오전 0시로 일 8회에 걸쳐 측정된 시간대별 기온을 합산하여 일평균 기온을 산출해낸다. 하루 중 기온이 대체적으로 가장 낮은 시간은 늦은 밤~새벽 사이인 오전 0~9시 사이인데, 19세기 일평균 기온 산출 과정에서는 오전 0~9시 사이(0시, 3시, 6시)를 모두 빼먹었으니 당연히 현대와 같은 산출 방식보다는 수학적으로 높게 산출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월평균 기온도 실제보다 다소 높게 계산될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3] 원문에는 서울로 번역되었는데, 고구려의 서울이므로 당시 수도였던 국내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곳의 현 위치는 중국 지린성 지안시 일대. 북한 만포시와 바로 마주볼만큼 북한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4] 이하 신라 왕들의 기록 모두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이다. [5] 서리가 나무나 풀 등의 물체에 들러붙어서 얼어붙은 것 [6] 이 시기에는 현대라도 기상학적 가을이 시작되고 북쪽에서 찬 바람이 내려와 더운 기운이 식어서 쌀쌀해진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나, 여전히 나뭇잎이 많고 물이 어는 현상은 당연히 어림도 없는 시기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얼음이 얼었다는 기록이 튀어나왔으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10월을 넘어가기도 전에 얼음이 보였다는 것일까? 참고로 기상 관측 사상 9월 하순에 가장 낮은 최저 기온을 기록한 1928년 9월 26일의 경우, 서울 최저 기온이 3.2℃로 당시조차도 얼음이 얼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연실색할 상황이다. [7] 실내의 공기 중 수증기가 승화하여 유리창에 얼어붙어 만들어지는 서리 [8] 현재의 대전 충청남도 공주, 논산에 걸쳐 있는 산이다. [9] 물론 이 당시가 정말 여름인데도 가을과 같은 날씨를 보였다는 것인지 단순히 비유적 표현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한여름에 날씨가 평년보다 상당히 시원했다는 막연한 추측만 가능할 뿐. [10] 서울 [11] 충청남도 금산 [12] 함경남도 영흥 [13] 대구광역시 군위 [14] 충청북도 옥천 [15] 북한 강원도 이천 [16] 북한 강원도 안변 [17] 북한 강원도 법동 [18] 강원도 고성. 현재 간성이 있던 지역은 남한 고성 북한 고성으로 나뉘어져 있다. [19] 강원도 고성 현내면 [20] 경상북도 영주 [21] 아예 닷새 동안 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22] 죄수를 어느 한 곳에 계속 두게 하는 형벌이라고 한다. [23] 그리고 이해 11월에는 다른 의미로 해괴한 기록이 있으니, 음력 9월 30일(양력 11월 8일)에 살구나무에 꽃이 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24] 1505년 2월 22일(양력 4월 6일)자 기록 [25] 서울특별시/기후 문서에 작성된 서울의 일별 역대 최저 기온 극값을 확인해보면 상반기는 4월 20일까지 영하로 뒤덮여 있는데, 만약 17세기로 범위를 넓힌다면 이 영하의 기온이 4월 20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4월 전체를 뒤덮는 것은 물론 5월까지 영하로 뒤덮일 것으로 의심되며,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내륙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7~8월에도 영하로 추정되는 기온이 기록되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두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매우 추웠던 시기. [26] 경기도 양주 [27] 북한 강원도 통천 [28] 이 기록이 믿기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적자면, 당시에는 '기군망상죄'라는 죄목이 있어서 어떤 일을 거짓으로 보고해서 왕을 속인 것이 들통나면 국왕의 진노를 사서 몸과 목이 분리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따라서 제정신인 신하라면 거짓 보고를 올리기란 꿈도 못 꿀 상황. 게다가 이 결빙 사건이 사실인지 해당 지역에 사람을 보내 확인했다고 하고, 이후로 거짓이었다는 말도 없는 것을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9] 동해는 최대 수심이 3,600m에 달할 정도로 깊어서, 겨울 한파가 찾아와도 서해보다 수온이 높다. 따라서 강릉처럼 동해안에 접한 지역이 -25℃ 이하로 내려갈 정도의 초강력 한파가 몰아지치 않는 이상, 동해는 결빙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해에는 1월도 아닌 4월 동해가 결빙되었다고 하니, 4월 강릉의 최저 기온이 과연 몇 ℃까지 내려갔을까? 게다가 4월이 이 정도였다면, 1월에는 최저 기온이 얼마나 내려갔을지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4월 동해 앞바다가 사흘이나 얼어붙었다는 기록을 참조하면, 이해 1월에는 강릉 -30℃ 이하, 서울 -35℃ 이하의 비현실적인 한파가 찾아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30] 사실 4월이 내린 경우는 현대에도 간혹 있는 일이지만, 4월 중순에 서울에서 이 쌓인 사례로는 거의 없는 기록이며 후술할 1911년의 사례가 있다. 당시 17세기임을 감안하면 그리 놀랍지는 않으나, 앞의 각주에 설명한대로 4월 동해가 얼어붙을 정도의 한파였고 서울에서는 적설까지 기록되었다. [31] 양력 6월 28일자 기록. [32] 광주광역시 [33] 현대에는 2010년 4월 14일 광주에서 이 내려 당일 치러질 예정이었던 야구 경기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17세기에는 이러한 늦장 이상 저온이 한 달 뒤에도 나타날 정도였던걸로 보인다. 이때 당시 광주의 최기온이 9.6℃에 불과했고 서울도 6.4℃에 불과했기에, 단순하게 대입한다면 5월 5일광주 최고기온이 9.6℃, 서울이 6.4℃에 불과한 셈이 된다. 이미 이 정도만 해도 1917년 5월 초순의 저온보다 더 심각한 셈. [34] 두 기록 모두 1659년 3월 5일(양력 3월 27일)자 기록이다. [35] 1659년 3월 8일(양력 3월 30일)자 기록 [36] 1659년 [[3월 25일] [37] 1659년 3월 26일(양력 4월 17일)자 기록 [38] 1659년 3월 29일(양력 4월 20일)자 기록 [39] 1659년 3월 2일(양력 4월 22일)자 기록 [40] 1659년 3월 4일(양력 4월 24일)자 기록 [41] 1659년 3월 29일(양력 5월 19일)자 기록 [42] 1659년 4월 2일(양력 5월 22일)자 기록 [43] 평안북도 초산 [44] 충청북도 단양 영춘면 일대이다. [45] 전라북도 남원 운봉읍 일대이다. [46] 함경도 경성(現 함경북도 경성)은 개마고원 북한의 추위로 유명한 지역들에 비하면 많이 온화한 기후를 가지는 지역이다. [47]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서북 지역에 있었던 으로, 현재의 영주 풍기읍, 봉현면, 안정면 예천 은풍면, 효자면이 속한 지역이다. [48] 이 지역이 상당한 일교차를 자랑하는 지역이기에 9월 하순에 눈이 내리고 새들이 얼어죽었다면 영하가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1969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로 9월 하순에서 가장 낮은 기온은 6.2℃. [49] 경상북도 영덕 [50] 현대 강계 8월 평균 기온은 서울 9월 날씨와 거의 일치한다. 서울에서 9월 하순에 이 날리고 서리가 발생한 것과도 비슷한 사례이다. [51] 물론 진주는 내륙이라 현대에도 일교차가 무지막지하게 커서 최저 기온은 꽤 낮은 경우가 많다. 2021년에는 10월 18일에 영하를 기록했을 정도다. 그러니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을 시간인 밤과 새벽에 눈에 내렸다고 하면 그나마 아귀가 들어맞을 것으로 보인지만, 그렇다 쳐도 강원도 산간도 아니고 8월에 따뜻한 경상남도 지역에서 적설이 쌓일 정도의 눈이 내렸다. [52] 1708년 3월 22일(양력 4월 12일)자 기록 [53] 1709년 2월 26일(양력 4월 5일)자 기록 [54] 물론 4월에 적설이 기록될 정도로 이 내렸다는 기록은 있으나, 며칠 연속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 [55] 1972년 4월 1일 -4.3℃ [56] 1743년 3월 29일(양력 4월 23일)자 기록 [57] 기록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58] 1780년 10월 27일(양력 11월 23일)자 기록 [59] 그 뒤에도 해를 넘긴 1781년 겨울 2월 하순에도 한겨울 추위처럼 추웠다고 언급될 정도였다. 공교롭게 100년 뒤인 1880년에도 11월부터 추위가 시작되고 1881년 3월까지 추위가 풀리지 않았다고 하며, 200년 뒤인 1980년에는 11월에는 이상 고온이었지만 12월에 추위가 시작되었고 역시 1981년 2월 하순~ 3월 상순까지 추웠다. [60] 1783년 12월 7일(양력 12월 30일)자 기록. 국왕 정조가 직접 " 작금의 날씨가 갑자기 독하게 추워졌다\"라고 언급한다. 작금이라는 표현을 보아 하루~이틀 전부터 날씨가 크게 뒤바뀐 듯. [61] 1784년 2월 27일(양력 3월 18일)자 기록 [62] 200년 뒤인 1984년 3월에도 때늦은 추위로 인해 서울 월평균 기온이 2.5℃에 그쳤고, 마지막으로 3월 평균 기온 2℃대를 기록하였다. [63] 1796년 3월 12일(양력 4월 19일)자 기록 [64] 되짚어보자면 4월 중순이 다 지나가도록 꽃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기서 이미 벚꽃이 제일 늦게 피었다는 1936년 4월보다도 더 심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짐작할 수 있다. 현대에는 평년 기준으로 개나리 진달래라도 3월 하순~ 4월 상순에 피니... 괜히 사관이 기록할 만한 일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신하가 하는 말이 "원래 이 시기가 자주 추운데 꽃이 안 피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라고 대답하기까지 한다. 이어서 " 북악산을 보니깐 새하얀 눈빛도 나던데요?\"라고 하자 "그래도 이 시기까지 내리는 건 정상이 아니지"라고 하는 격이다. [65] 1796년 3월 26일(양력 5월 3일)자 기록 [66] 공교롭게 200년 뒤인 1996년 4월에도 하순 일부를 빼고는 전부 이상 고온이 전멸하다시피 하여 월평균 기온이 10.2℃에 불과하였다. 물론 1996년 4월 1796년 4월보다 월평균 기온이 낮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만약 1796년 4월 기온이 1996년과 같았다면 당시로써는 평년 수준인 것이다. [67] 이로부터 몇 개월 뒤인 10월에는 월 강수량이 126mm, 11월 98mm, 12월 47mm로 시기에 걸맞지 않은 폭우가 내린 것으로 추정되어 1796년 한 해는 상당히 특이한 양상을 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8] 1871~ 1900년 당시 10월 평균 기온은 18.1℃이며, 1991~ 2020년 기준으로는 19.7℃이다. [69] 현대의 서울로 치면 다소 이상 고온이지만 상하이는 북위 31°에 해양성 기후라 기온도 높고 늦게 식으니 이 정도면 매우 심한 이상 저온이다. [70] 1991~ 2020년 기준으로 2℃ 정도 낮다. [71] 그리고 베이징, 상하이 쪽을 보면 1~ 2월 한파가 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겨진 기록으로 보면 이후 등장할 1~ 2월 한파 3월 이상 저온을 동시에 띈 해들의 조상격이다. [72] 3월 5월에 비하면 양반인 수준일 뿐, 4월도 그렇게 높다고 보기 힘들다. 베이징 상하이 4월 평균 기온이 각각 13.3℃와 14.1℃로, 19세기 후반 4월 평년과는 거의 비슷하나, 1991~ 2020년 기준으로는 1~2℃ 가량 낮다. [73] 1991~ 2020년 5월 평년 기준으로 3.8℃나 낮다. 그러나 1863년 5월 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이 고작 16.9℃( 1991~ 2020년 기준 평년보다 4.0℃나 낮음)에 그쳐 역대 최하위였는데, 이때 베이징은 결측 상태인지라 1860년 5월이 진짜 역대 최하위인지는 불명. [74] 상하이 1991~ 2020년 5월 평년 기준 [75] 1991~ 2020년 기준 2.6℃ 낮다. [76] 1991~ 2020년 기준 3.6℃ 정도 낮다. [77] 1991~ 2020년 기준 3℃ 가량 낮다. [78] 1991~ 2020년 기준 3.6℃ 정도 낮다. [79] 1877년 10월~ 1878년 2월과 같은 유형이라 생각하면 된다. 차이점은 1861년 1월 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이 역대 최하위이고, 1878년 1월 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이 역대 최하위다. [80] 덧붙여 1860년 여름 베이징, 상하이 둘 다 그렇게 덥지도 않았기에 한반도도 마찬가지로 여름이 그리 덥지 않았을 것이므로, 한파의 기세가 상당한 1월( 베이징 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을 보면 서울은 대략 -6~-7℃로 추정)과 그렇게 따뜻할 것 같지 않은 2월, 상술했듯이 추운 봄철, 덥지도 않은 여름철, 급격히 추워지는 가을철까지 사계절 모두 골고루 이어진 이상 저온 때문에 1860년의 연평균 기온은 심각하게 낮았을 것으로 추정되기까지 한다. 결국 이해에 이상 저온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달은 6월 9월밖에 없었다. [81] 이 정도는 서울로 쳐도 이상 저온에 속한다. 그러나 당시 기준로 보면 다소 높기는 하다. [82] 예시로, 1892년 3월 서울이 0℃대 초반(추정)일 때 상하이는 5.8℃였고, 1898년 3월 서울이 0℃대 후반(추정)일 때 상하이는 6.7℃였으며, 1936년 3월 서울-0.3℃일 때 상하이6.1℃였고, 1970년 3월 서울이 0.4℃일 때 상하이는 6.2℃였다. [83] 현대 상하이 3월의 월평균 기온 평년값이 9℃대이며 1월에 평년 수준이거나 조금 낮으면 월평균 기온 4℃대가 기록되기도 한다. 서울로 치면 1월 평균 기온 -2~-3℃에 대응된다. 이는 다시 말해, 1월 수준의 월평균 기온이 3월에 기록된 셈이다. [84] 아쉽게도 동시대에 상하이와 함께 기상 관측이 시행되었던 베이징은 결측으로 인해 1864년의 기록이 공백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동시기 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85] 그리고, 1864년 1월 2월 한파가 무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도 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이 1월에 1.1℃, 2월에 2.3℃를 기록했는데, 서울로 치면 1월-7~-8℃, 2월-5~-6℃에 대응된다. 따라서 상하이의 공식 기온 자료에 근거해 보면 1864년 서울은 월평균 기온이 1월 -7~-8℃, 2월 -5~-6℃, 3월 0~-1℃라는 미친 기온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일제강점기 한파 이상 저온마저도 울고 갈 수준이며, 특히 2월 3월의 월평균 기온은 공식적인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저치보다 약간 더 낮을 가능성도 높아보인다. [86] 이날의 이상 저온은 꽤나 범위가 넓어서 서울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같은 날 일본 도쿄에서 뜬금없이 최저 기온이 8.4℃까지 내려갔기 때문. 참고로 현대 도쿄 사람들은 10월 중순에 최저 기온이 9℃로 떨어져도 춥다는 반응을 내보인 적이 있는데, 그때가 다름 아닌 2021년 10월 중순이었다. [87] 재미있게도 100년 뒤인 1977년 10월 10월 평균 기온이 16.7℃로, 역대 3위에 드는 이상 고온을 기록하였다. [88] 그 뒤로도 한기가 멈추지 않고 남하해 11월, 12월, 이듬해인 1878년 1월, 2월 모두 강추위가 기록되는 진풍경이 계속되었다. 특히 1877~ 1878년 겨울 한반도는 비교적 덜했지만 중국(특히 남부 지역)의 한파가 매우 기록적이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한파/사례 문서 참조. 10월은 그저 전조 현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89] 1877년 10월 하순에 도쿄에서 한기 남하가 이루어진 증거가 남아있으나, 한반도 날씨의 간접적인 증언을 해줄 나가사키는 당시 기상 관측이 시행되지 않았다. 주변 지역들인 가고시마 등은 아예 전쟁이 막 끝난 터라 분위기가 뒤숭숭하기도 했고. 그나마 도쿄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하코다테( 1872년 시작)와 삿포로( 1876년 시작)조차 1877년 당시의 기록이 아예 없으며, 네무로, 히로시마 등은 1879년에 시작했으니, 남은 기록이라곤 도쿄 뿐이다. [90] 1907년 10월 기상 관측 이후로 가장 낮은 기온이 [91] 개화기 시기에는 2010년대 이후에 맞먹는 폭염도 있었지만 그만큼 한파도 매우 강했던 시기이다. 다만 서울만 비공식 관측이 이루어졌던 1887~ 1890년 이상 고온이 심했다. [92] 1921년 6월 상순에 서울이 8~9 ℃를 연일 기록하였는데, 당시 나가사키 극값은 12.3 ℃. [93] 원래 나가사키에서 1월에 -4 ℃ 이하를 기록하면 서울은 최소 -16 ℃에 최대 -21 ℃ 정도로 강력한 추위에 속한다. 그런데 이 해는 12월에 -4 ℃에 준하는 기온을 기록했으니 12월 치고는 매우 추운 한파였을 듯하다. [94] 4월 1일 서울에서 최저 기온 -4.3℃, 최고 기온 5.5℃, 일평균 기온 0.0℃라는 한겨울 이상 저온이 있었다. [95] 조선에서는 '노월(魯越)'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두음 법칙을 빼면 '로월'이 되어 본명과 상당히 비슷해진다. [96] 후술하겠지만 공식 기상 관측 이후 가을철 이상 저온 현상이 가장 심했다는 1912년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정말 유래없는 초강력 이상 저온이었다. [97] 최소 -17~-18℃ 이하의 강한 한파가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나가사키의 -4.1℃는 상당히 큰 한파로, 2016년 1월 24일(다만 이해는 유달리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 지방이 매우 기록적인 한파였다), 1917년 1월 8일 등이 그렇다. 이 두 한파 당시에 서울이 각각 최저 기온 -18.0℃, -20.4℃를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서울 1884년 1월에 한기 축의 중심이 아니었어도 최소 -16℃ 이하의 최저 기온을 기록했을 듯하다. [98] 1921년 6월 상순에 나가사키 12.3℃, 서울 8~9℃대의 한 자릿수 기온이 연일 관측된 것을 보면 이해 6월도 한 자릿수까지 내려간 것은 거의 자명해 보인다. 사실 이것보다 더 압도적인 이상 저온 1882년에 있기는 하다. [99] 이미 나가사키에서 10월 한 자릿수라는 것 자체가 초강력 한파가 있었음을 보이는데, 10월 중순에 최악으로 추웠던 1924년, 1956년 10월 20일 나가사키 기온이 11℃대였음을 볼 때, 서울-3~-4℃ 이하의 경악스러운 수치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서울이 1.3℃를 기록한 최근 사례인 2021년 10월 17일 나가사키 기온( 10월 18일 극점)은 12.6℃였다. [100] 다만 9월 1912년 9월이 더 우위였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101] 11월 말에 내려온 한기가 12월 초순에 더 쎄지면서 계속 이어지다 물러난 정황도 있다. 이때 12월 초순에 기록됐을 최저기온이 어림잡아 -14℃~-16℃선이다. 최근 2022년 12월 초순의 한기 남하로 인해 사람들이 버티기 힘들어했는데, 1884년 11말12초는 이것과 비교도 안 되게 춥고 길었다. 한마디로 이 시절은 원래 강력한 한기+아직 추위에 덜 적응됨+강력한 바람-+ 패딩이 없음- 이 3박자에 의해 체감온도를 한없이 급감시켰을 것은 덤. [102] 해당 블로그에서는 부산 뿐만 아니라 1884~ 1903년간의 인천 원산의 기록도 있으나, 1885년은 결측인 것인지 혹은 데이터가 유실된 것인지 아쉽게도 자료가 없다. 그리고 1887~ 1890년 서울은 비공식 자료가 있지만 다른 지역들은 모두 결측되었다. 또한 해당 블로그의 자료는 실제 측정값보다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어서 적혀있는 기온보다 더 낮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기 바란다. [103] 역대 최저 13위 [104] 역대 최저 11위 [105]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해당 블로그의 월평균 기온이 해관기상관측자료를 통해 본 실제 기온보다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로는 1936년 4월보다 약간 더 낮았을 가능성도 있다. [106] 1위는 1936년 으로 10.1℃였다. 여담으로 21세기에서 가장 추운 2010년이다. [107] 이보다 7월 평균 기온이 낮았던 해는 1931년, 1941년, 1954년, 1974년, 2003년 밖에 없다. [108] 게다가 저 블로그에 기재된 평균 기온이 실제보다 다소 높은 것을 감안하면 부산도 12.7℃가 아니라 12℃대 초반일 수도 있다. [109] 여담으로 1885년 한반도 뿐만 아니라 옆 나라 일본에서도 이상 저온이 이어진 해였다. 일본 대한민국보다도 이른 1875년부터 공식 기상 관측을 시작해서 이 당시인 19세기의 기온이 공식 자료로 남아있는데, 일본 기상청의 도쿄 1875~2020년 월평균 기온 자료를 보면 당시 일본 한반도보다 이상 저온이 훨씬 심해서 1885년 연평균 기온이 13.1℃역대 최저 2위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역대 최저 1위가 바로 전년도인 1884년12.9℃이다. 즉 일본 1884~ 1885년까지 2년 연속으로 부동의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1, 2위 기록을 갈아치우는 엄청난 이상 저온이 계속된 것이다. 서울의 경우 연평균 기온 13℃ 정도는 평년보다 높은 것이지만, 대한민국보다 훨씬 온화해서 연평균 기온이 16.3℃인 도쿄 기준으로는 엄청난 이상 저온이다. 도쿄에서 21세기인 현대 기준으로 지난 20년간 가장 낮았던 연평균 기온인 2017년의 15.8℃와 비교해보면, 이 당시인 19세기에 얼마나 이상 저온이 심각했을지 체감이 될 것이다. 이를 서울로 대입하자면 연평균 기온이 12.5℃ 서울이 각각 9.1℃9.3℃라는 역대급 이상 저온을 기록한 셈. 1907년 서울 공식 기상 관측 이래 1년 전체가 이상 저온으로 점철되어 연평균 기온 최저 1위를 기록한 1947년9.6℃인데 이보다도 더 낮다는 뜻이다. 그런데 비교적 따뜻했다는 다른 지역들도 1884~ 1885년에 저 정도였다면 서울은 진짜로 연평균 기온 9.1~9.3℃를 찍었을 것 같다. 만약 더욱 심각하면 8℃대 후반으로 굴러떨어졌을 수도. [110] 그러나 1957년은 4월 극초반까지 강한 저온이 이어지다가 이후로 대체로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는점에서 차이가 있다. [111] 다만 저 월평균 기온 기록 자체가 원래의 값보다 높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한파/대한민국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해관기상관측자료의 기온 자료를 통해 월평균 기온이 -7℃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1900년 1월이 -6.1℃로 표시되어 있는 등의 예시가 있다. 따라서 실제로는 저 블로그에 적힌 수치보다 더 낮아 아마도 3월 1936년이나 1970년 수준, 4월 1915년, 1956년, 2013년 수준, 5월 1908년, 1956년 수준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0.1℃, 8.8℃, 14.2℃ 정도로 예측되며, 이를 서울로 대입할 경우 3월은 0℃대 초반, 4월은 9℃대 중후반, 5월은 15℃ 전후로 예측된다. [112] 공식 최저 기온이라고 가정하면 5월 상순 역대 최저 기온 4위에 해당하는 값이다. [113] 일 최저기온 평균 -8.5°C, 일 최고기온 평균 -1.7°C [114] 일 최저기온 평균 -8.0°C, 일 최고기온 평균 1.6°C [115] 참고로 1890년부터 2023년까지 집계된 6월 1일의 최저평균이 15.5℃이다. 7월과 9.5℃나 차이난다. [116] 참고로 이때 인천은 최저 13℃였다. 나가사키가 기온이 낮다 하여 서울인천이 무조건 그보다 낮다라는 전제에 의문이 드는 기록. 다만 여름철이면 그럴 수 있다. [117] 1939년, 1994년과 비슷했다. [118] 인천은 봄철에 기온이 서울보다는 낮음을 감안해야 한다. [119] 차이점이라면 1932년 7~ 8월 상순이 굉장히 더웠지만, 1895년 여름은 더운 시기가 있기는 했지만 심하게 덥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120] 이 자료도 한수당연구원 블로그가 출처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해당 블로그는 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에 기록된 기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기록된 경향이 있다. 따라서 1897년 4월 평균 기온도 실제로는 이보다 낮아서 인천은 8℃대 중후반, 부산은 11℃대 중반을 나타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맞다면 4월의 경우 서울 인천보다 1℃ 정도 높으니 서울 역시 9℃대로 추정되는 상당히 낮은 기록이다. 1915년, 1956년, 2010년과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의 일 최저기온 평균은 5.0°C이다. [121] 다만 이것도 당시에는 기온을 어림해서 0.5℃ 단위로 표기했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다. 오차 범위가 9.8~10.2℃ 사이이므로, 정확한 기온은 10.0℃보다 약간 낮을 수도 있다. 오차 범위를 고려해도 확실하게 100% 확률로 10℃를 넘는 날이 처음 등장한 것은 5월 6일 12.0℃를 기록하면서부터였다. [122] 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1981~ 2010년 평균 값으로 1898년 3월을 확인해보면 시베리아 부분이 온통 보라색으로 칠해진 것을 볼 수 있다. 서울은 -2~-4℃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진 모양인데, 공식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낮은 3월 평균을 기록한 1936년 3월만큼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1890년대 1930년대보다 평년 기온이 높았는지는 미지수이므로 딱 잘라서 확언하기 어렵다. 한반도가 엄청난 이상 저온에 시달리며 세계 기준으로도 역대급 한파가 찾아온 1893년 1월이 1위이고 2월은 3위를 차지했다. [123] 이를 보아 서울 1898년 1~ 3월 1916년 1~ 3월과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다. 1월은 0℃ 전후, 2월은 -0℃대 사이로 평년보다 크게 높았으나(실제로 위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하면 1981~ 2010년 기준 1월은 평년보다 높고, 2월은 살짝 낮다), 3월도 평년보다 한참 낮은 0.5~1℃ 내외로 추정된다. 다만 6년 전인 1892년보다는 조금 높다. 어쨌든 이 빨라지는 현대와는 정반대로 겨울이 길어졌다고 밖에 부를 수 없을 지경. [124] 공식 기상 관측 이래 6월 역대 최저 기온을 상순, 중순, 하순별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6월 상순: 1921년 6월 2일 8.7℃
6월 중순: 1926년 6월 15일 10.5℃
6월 하순: 1956년 6월 27일 12.4℃

1898년 6월은 혼자서 상순, 중순, 하순 모두 저 기록들을 가볍게 깨거나 비슷한 날씨가 있었으니, 당시 6월 이상 저온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125] 게다가 저 33.6℃ 기록도 반짝 더위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기록된 날짜가 8월 29일이다. 8월 상순도 아니고 더위가 많이 풀릴 하순에 이 정도의 기온을 기록했다는 것은 정반대의 의미로 기록적이라고 할 수 있다. [126] 1900년 20세기가 아니지만, 19세기에 넣으면 1900년대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더욱 부자연스러우니 20세기 문서에 정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