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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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농업기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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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동물과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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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식품산업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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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생명과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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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에코시스템공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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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농업개발협력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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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용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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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사이언스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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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서울大學校 政治外交學部 SNU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Rela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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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
<colbgcolor=#ffffff,#191919>학과 발족
1946년 10월 학부 승격 2010년 5월 |
학부장 | 안도경 |
전공주임 |
정치학전공 손인주 외교학전공 박종희 |
정원 | 학부 74명 |
주소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사회과학대학 16동[1] |
링크 |
공식 홈페이지 총동창회 홈페이지 |
[clearfix]
1. 개요
서울대학교의 정치학을 전문으로 하는 학과. 전임 교수가 총 29명으로 정치학 관련 학과로는 국내 대학 중 최다이다. 출범 이후 한동안 정치학과와 외교학과, 두 개 학과로 분리되어 운영되었으나(통합 이전까지 정원 각 27명), 2010년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치외교학부로 통합된 후 재학생들은 정치학 전공 또는 외교학 전공 중 선택할 수 있다.기존 정치학과에서 다루는 정치학의 제 분야( 정치사상, 비교정치, 한국 정치, 공공정책 및 행정) 및 외교학과에서 다루는 국제정치학, 지역연구 등을 두루 포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치사, 공법 등으로 학과 소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해방 이래, 정치외교학부 재학생은 4.19 혁명 선언문의 " 적색 전제와 백색 전제에의 항의"라는 문구가 표현하는 것처럼, 반탁 학생운동, 4.19 혁명, 6.3 항쟁 등 민주화 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학과 졸업생들 역시 관계로 진출하여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거나 정계와 언론계에서 현대적인 민주정치 확립에 기여하는 등, 현대 한국의 정치사에 있어 작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의 한국에서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외교 및 국제기구에 다수의 졸업생이 진출하여 세계 속에서의 한국 위상 제고에 힘쓰고 있다.
2. 연혁 및 역사
<colbgcolor=#EEEEEE>1926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정치학과 |
1927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
1937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제2류 |
1945 | 경성대학 법문학부 정치학과[2] |
1946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과 |
1955[3]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과/정치학과 외교학전공 |
1959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외교학과 |
1975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 |
2010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정치학전공/외교학전공 |
2.1. 창립과 분과
식민지 조선 시기를 포함할 때, 한국 최초의 정치학과는 1926년에 개설된 경성제국대학의 정치학과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 정치학이라는 학문이 독립된 영역을 갖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고, 제국대학 중 법률학과와 정치학과를 구분하는 곳도 도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 두 곳밖에 없었고 도쿄•교토제대 역시 정치학과 졸업생에게 법학사를 수여했기 때문에 경성제대에서 정치학과를 독자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적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이듬해인 1927년 정치학과는 법률학과와 통합되어 법학과가 되었으며 정치학과 진입생들은 법학과로 졸업하였다.[4] 다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법학과는 일본 제국대학의 작은 '법학부'와 같은 기능을 했기 때문에, 1937년부터 법학과를 1•2•3류로 세부 구분하여 2류가 정치학전공, 3류가 경제학전공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학과로서 정치학과는 해방 직후 법문학부 법학과의 1•2•3류가 각각 법학과•정치학과•경제학과의 세 학과로 분과됨에 따라 부활했으나[5] 국대안에 의해 경성대학이 폐지되고 국립서울대학교에 각 학과가 편입되면서 문리과대학 소속이 된다.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전경 |
서울대학교 설립 당시, 이와 같이 일본 학제[6]와 달리 정치학과가 문리과대학에 개설된 것은 미국 학제의 문리과대학(College of Arts and Sciences)의 전례를 따른 것이다. 통상 문리과대학으로 번역되는 미국의 College of Arts and Sciences는 한국보다 넓은 범위의 학과를 포괄한다. 예컨대 하버드 대학교의 경우, 경제학과를 비롯해 대부분의 전공이 동 대학 문리학부 소속이며, 직업 취득과 관련된 단과대학(원)만 별도로 분리되어 있다. 당초 서울대학교 역시 문리과대학 구성에 있어 동일한 구상을 갖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경성대학 법문학부의 문과계통 및 이공학부의 이과계통, 그리고 정치학과가 단순 통합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는 경성대학의 좌우익 대립 및 국대안 파동 과정에서 기존 경제학과 교수진이 모두 이탈하였기 때문이다.[7]
이 과정에서 경성대학 법학과, 경제학과 재학생[8] 및 예과 졸업 후 학부 진학자 다수가 경성제대의 부지를 점유하고 타 전문학교와 섞이지 않은 정통 후신으로 인식된 문리과대학으로 소속을 옮기기를 희망했고, 정치학과의 정원은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타 문리대 학과의 세 배에 달하는 60명의 정원을 출범 당시부터 확보하게 되었다.[9] 이 과정에서 정치학과는 한동안 경성대학과 부지를 공유하고 타 전문학교와 섞이지 않은 정통 직계로서 인식되었고, 해방 정국 당시의 한국인들의 높은 정치에 대한 열망과 맞물려 확고한 위상을 자랑할 수 있었다.[10] 문리과대학, 그리고 정치학과가 지닌 경성대학과의 연계성은 서울대학교 설립 직후 발생한 제2대 총장 이춘호 박사의 사임을 부른 법과대학과 동숭동캠퍼스 강의실분쟁으로 이어지는 등 타 단과대학과의 충돌로도 나타나기도 했다.
정치외교학부의 또다른 전신인 외교학과는 1955년 개설된 정치학과 내 외교학전공으로 출발, 1959년 독립된 학과인 외교학과로 승격되었다. 대학신문에 따르면, 외교학전공 개설 이전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외교학전공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대학원 과정으로 외교학과 창설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두 학과의 분리 계기로 명목상 이승만 정부의 외교관 양성기관 설립 의도를 드나 실제로는 정치학과 내 교수간 갈등[11]이 원인이었다고 설명되고 있다.
2.2. 가열찬 학생운동
정외학부(당시 정치학과)는 1946년 정식 설립된 직후부터 반탁 학생운동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는 해방정국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학과 특성 상 유달리 정치의식이 강한 인재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기인한 것이다. 아울러, 국대안 파동을 거치고 재조직된 서울대학교, 그것도 경성대학의 직계 후신이었던 문리과대학을 구성하는 학과 중 정치학과가 가장 규모가 컸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12] 이 당시 사회주의 계열 학생 운동에 맞서 채문식이 경성대학[13]-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우파 계열 학생 운동을 이끌고 있었으며, 보성전문학교- 고려대학교의 이철승, 연희전문학교- 연희대학교의 이동원 등과 함께 전국학생총연맹을 조직하여 반탁 운동에 나섰다. 이외에도 엄영달, 박준규(1925) 등이 반탁운동의 기수로 활동하였다.[14]1940년대의 운동이 일종의 적색 전제에 대한 반발이었다면, 6.25 전쟁 이후 1950년대 폐허 속의 학생 운동은 이승만 정부의 문민독재가 강도를 더해감에 따라, 백색 전제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전후 정치학과 중심의 문리대 독서회인 신진회와 이를 둘러싼 1957년의 류근일 필화 사건은 뒤이을 4.19의 대표적인 전조라 할 수 있다. 전후라는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반권위주의,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을 띠고 출범한 학회 신진회는 무산대중의 단결, 새로운 국가 건설 등을 학회지 논문에서 과감히 주장한 류근일이 국가보안법 저촉을 이유로 구속되며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한국에 있어서의 무산계급 운동의 세력적 기반과 그 이념적 기초는 서구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잉여노동가치를 착취당하는 산업 노동자군이 뚜렷이 하나의 대계급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으므로 한국 무산운동은 그 계급적 기초를 인텔리겐차들에 의해 지도되는 근로 소시민과 농민과 노동자들의 전체 무산대중 층과 이에 협력, 합세하는 진보적 프롤레타리아 군중의 총화에 구해야 할 것이다.
특권적 관료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전체적, 억압적 공산주의를 다 같이 경험한 우리의 인민대중들은 새로운 형의 조국을 얼마나 갈구해 마지않는가. 끝으로 한 가지 제시하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전체 무산대중은 단결하라!’는 외침인 것이다.
류근일 - 모색, 무산대중을 위한 체제로의 지향 中 출처
특권적 관료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전체적, 억압적 공산주의를 다 같이 경험한 우리의 인민대중들은 새로운 형의 조국을 얼마나 갈구해 마지않는가. 끝으로 한 가지 제시하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전체 무산대중은 단결하라!’는 외침인 것이다.
류근일 - 모색, 무산대중을 위한 체제로의 지향 中 출처
필화 사건은 류근일의 무죄 방면으로 종식되었지만, 신진회는 해체되었다. 그러나 신진회는 이수정, 윤식, 이영일, 김정강 등의 활동가를 길러내는 요람이 되었다. 1959년 봄 이수정, 유세희, 이장춘, 서정복, 윤식 등은 '후진국문제연구회'를 결성하여 사실상 신진회를 재건하였다.[15] 1960년의 4.19 혁명에서는 후진국문제연구회 출신 학생이 선언문 작성, 운동 기획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해내고 만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및 3.15 의거 익일인 3월 16일 김성희 교수의 정당론 수업 후 모인 정치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학생 봉기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곧 문리대 타 학과를 포함한 40여 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들 40여 명은 3학년생(58학번) 윤식(학생회장), 이수정, 황선필, 박실, 양성철 등 14명, 2학년생(59학번) 김영작 등 5명 등 정치학과 학생들을 비롯해, 중문과, 사학과, 철학과 등 문리대 다수 학과로 구성되었다. 집행부는 타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서울 시내 대학 학생 시위일을 4월 23일로 정하였으나, 일정 공유의 혼선으로 고려대학교에서 먼저 4.18 학생시위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사전 예정된 거사일을 앞당겨 4.19일에 문리대를 비롯한 시내 각 대학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4.19 혁명이었다.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학의 현상을 규탄, 광정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선명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제주의의 표독한 전횡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모든 민주주의의 정치사는 자유의 투쟁사다. 그것은 또한 여하한 형태의 전제로 민중 앞에 군림하는 "종이로 만든 호랑이"같이 헤슬픈 것임을 교시한다. 한국의 일천한 대학사가 적색전제에의 과감한 투쟁의 거획을 장하고 있는데 크나큰 자부를 느끼는 것과 꼭 같은 논리의 연역에서,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전제에의 항의를 가장 높은 영광으로 우리는 자부한다.
(중략)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를 보라! 그것은 가식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아래 미칠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 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단기 4293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생 일동[16]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제주의의 표독한 전횡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모든 민주주의의 정치사는 자유의 투쟁사다. 그것은 또한 여하한 형태의 전제로 민중 앞에 군림하는 "종이로 만든 호랑이"같이 헤슬픈 것임을 교시한다. 한국의 일천한 대학사가 적색전제에의 과감한 투쟁의 거획을 장하고 있는데 크나큰 자부를 느끼는 것과 꼭 같은 논리의 연역에서,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전제에의 항의를 가장 높은 영광으로 우리는 자부한다.
(중략)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를 보라! 그것은 가식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아래 미칠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 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단기 4293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생 일동[16]
4.19 혁명의 성공으로 찾아온 민주주의 정부는 뒤이은 5.16 군사정변으로 전복되고 만다. 박정희 정부는 정치외교학과를 시위꾼 양성소로 인식하고 있었으며[17], 실제로 1960년대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의 정치학과는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가장 주요한 반대세력 중 하나였다. 과거와 달리 1960년대 이후의 정치학과(그리고 외교학과는) 정원 30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학과가 되었으나, 제3공화국 하에서도 6.3 항쟁을 주도하는 등 반권위주의 투쟁의 중심에 서있었다. 정치학과 중심의 문리대 학회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와 김중태, 김도현, 현승일, 박범진, 이종률, 김경재 등이 이 시기 대표적인 활동가에 해당한다. 1965년 간첩 조작 사건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이 보여주듯, 권위주의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공판에 나온 김중태 등 민비연 구성원 |
1970년대 이후, 학생운동에서의 엘리트주의적 색채가 옅어지면서 특정 학과, 특정 대학 중심의 운동보다는 전방위적인 학생운동으로 경향이 점차 변화하였다. 그럼에도 87년 6월 항쟁에서 재야 운동가로 활동한 이부영, 김정남을 비롯해 제정구, 김부겸 등을 배출하는 등, 학생운동계의 주요한 일익을 담당하였다고 평가된다.
2.3. 테크노크라트의 요람
정치학과의 목적으로서는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중략) 둘째, 공직에 취임하기에 필요한 준비이다. 공직이라 함은 일반 국가공무원직만이 아니라 사회단체까지도 포함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중요한 사항에 대한 결정력을 갖는 정치인이 아니라, 결정된 사항을 충실히, 그리고 능률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유능한 행정가의 양성이다.
서울대학교 학생안내(1963)[18]
서울대학교 학생안내(1963)[18]
창립 이후 정외학부가 우리 사회에서 수행한 또다른 주요한 기능 중 하나가 공직에 종사할 직업관료의 양성이었다. 전쟁 직후의 폐허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던 당시의 한국에서 사회계열 졸업자를 받아줄 번듯한 직장은 찾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다수의 정치학과, 외교학과 졸업자 다수가 그나마 대학에서 배운 전공지식을 입직 시의 필기고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부부처, 국책은행 등의 문을 두드렸고, 1960년대 이후의 고도성장기에 이들이 경제의 근대화, 사회의 근대화,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위상 제고 등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1950년대의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는 전술한 바와 같이, 문리대 내 타 과에 비해 기형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학과였으나, 80여 명에 달하는 졸업생을 수용할 민간의 기업은 역시 앞서 말한 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 당시의 한국이었다. 이 때문에 이 시기 정부관료의 등용문이었던 고등고시 행정과가 주된 선택지로 각광 받았고 실제로 정치학과 출신 합격자가 적지 않았다. 첫 합격자가 나온 고시 행정과 2회에서는 38명 중 확인 가능한 4명이 정치학과 출신이었다.[19] 고시 4회에서는 24명 중 4명[20], 고시 5회에서는 9명 중 3명[21] 등의 합격자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이들 초기 고시 기수 합격자는 1960년 4.19 혁명 전후로 이승만 정부가 몰락하면서 적지 않은 수가 자의반 타의반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개업이나 실업가로의 변신을 꾀하는 등의 선택을 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공직에서 활약하게 된 건 50년대 중반에 고시에 합격한 이들이었다. 정치학과 출신은 고시 7회(1955년) 합격자 41명 중 9명[22], 고시 8회(1956년) 합격자 11명 중 1명[23], 고시 10회(1958년) 합격자 27명 중 3명[24], 고시 11회(1959년) 합격자 36명 중 5명[25], 고시 13회(1961년) 합격자 72명 중 8명[26], 고시 14회(1962년) 합격자 38명 중 2명[27] 등이다.[28] 또한, 김재익, 김건[29] 등 한국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들도 있다. 이렇게 공직에 입직한 이들은, 경제관료로서, 또는 내무관료나 외무관료로서 한국을 절대빈곤에서 탈출시키고 나아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우 받도록 헌신하게 된다.
김재익(金在益, 1938~1983) |
우선, 경제관료로는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기 한국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한 김재익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국은행 입행 및 유학 생활을 거쳐 당시로서는, 그리고 지금도 보기 드문 스탠퍼드 대학교 한국인 경제학 박사로서 귀국하게 된다. 국가 주도 발전의 경제 컨트롤타워였던 경제기획원에 스카웃, 커리어를 밟아가며 대한민국 제5공화국이 출범하자 경제수석에 발탁, 물가안정화와 정보화, 금융시장의 체질 개선 등 80년대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한다. 김재익의 입학 동기였던 서석준 역시 대표적인 경제관료이다. 고시로 입직한 그는 마찬가지로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실무를 초기부터 제4공화국 말기까지 참여하고, 대한민국 제5공화국 출범 후에는 45세의 최연소 경제부총리에 발탁된다. 우정이 돈독했던 김재익과 서석준은 한편으로 전자가 보다 과감한 미국식 시장화를, 후자가 중화학공업화를 비롯한 70년대의 국가주도 경제성장의 가속화를 각각 원하는 상이한 지향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김동휘 동력자원부 장관, 이기욱 재무부 차관 등도 동시기에 활약한 유사한 연배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고건(髙建, 1938~)[30] |
동시기 내무관료로는 행정의 달인이라 불린 고건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고시로 입직한 고건은 내무부와 지방을 오가며, 농촌의 근대화 사업인 새마을 운동의 기획과 추진에 앞장선다. 이 시기의 내무관료에게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 그리고 폭증하는 도시 인구 유입 등의 미증유의 상황에서 어떻게 지방, 특히 농촌을 이 근대화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도시의 논리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적 능력이 요구되었다. 최연소 전남지사, 서울시장, 내무부 장관 등 중앙과 지방, 농촌과 도시의 요직을 오가며 고건은 공직 커리어 대부분을 이 사업에 매진한 셈이다. 노건일, 전석홍, 강운태 등의 내무관료 역시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반기문(潘基文, 1944~) |
마지막으로 외무관료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기부터 외교관 선발을 목적으로 설치된 고등고시 행정과 제3부[31]와 정치학과의 유일한 국제정치 전임이자 한국 국제정치학의 비조인 이용희 교수의 존재로 많은 학생들이 외교관의 길에 뛰어 들었다. 외교로 인해 분단되고, 절대 빈곤에 머물러 국제사회에서 온전한 시민권을 얻지 못했던 한국인들에게 외교와 외교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게 비쳤을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고등고시 행정과 시절부터 이상옥, 유종하 등 정치학과 출신 외교관이 배출되었으며, 1955년 외교학전공 신설 및 1959년 외교학과 독립 이후 외교학과는 외교관의 산실로서 기능하게 된다. 고등고시 폐지 및 외무고시 부활 간 짧은 공백기를 제외하면, 외무관료 배출 역할은 여전히 왕성하게 기능 중이다. 한국인 최초의 UN 사무총장인 반기문은 그러한 전통이 축적된 산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특기할 만한 점은, 전술한 학생운동에 뛰어든 활동가들과 테크노크라트가 서로 이질적인 집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령, 외무관료로서 왕성한 커리어를 거둔 엄영달은 반탁운동가였고, 내무관료로서 직업이 장관이라는 말까지 들은 고건은 50년대 진보성향의 대표적인 독서회였던 신진회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특히 4.19 혁명은 1960년 당시 정치학과(및 외교학과) 3, 4학년이 주도하였는데, 위에서 인용한 4.19 혁명 선언문 작성자 이수정은 청와대 정무1비서관, 공보수석비서관을 거쳐 노태우 정부 시절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역시 운동에 주역으로 참여한 노건일, 박운서, 이장춘 등도 관계 각 분야에서 주요 직위를 역임하였다. 요컨대 초, 중기의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는 전방위적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 근대화를 이끈 인력의 산실이었던 것이다.
2.4. 통합 학부 출범
2010년에 정치학과와 외교학과가 "정치외교학부"로 다시금 통합되었다. 50여 년만의 통합, 60여 년만의 학부 승격이었다.본래 정치학과는 국대안 과정에서의 전과 희망생 수용을 이유로 문리대 내에서 그 정원이 문학부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기형적인 형태였기 때문에 학과가 개설된 지 얼마 안 된 1952년에 이미 정치학부로의 승격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1959년 정치학과, 외교학과의 분과로 그 필요성이 소멸하게 되었다. 분과 후 50여 년 동안 두 학과는 각각 정치학과는 사상, 외교학과는 한국적 국제정치이론 등의 전문 분야를 특화시켜 왔으나, 한편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담당 분야 중복 등의 비효율도 불가피하게 따라왔다.
통합 논의의 첫 시작은 동창회였다. 1990년 12월 정치학과 동창회와 외교학과 동창회가 분과 후 최초로 합동이사회를 개최하였다. 이윽고 1996년에는 두 동창회가 정치외교학과 동창회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통합 동창회의 건의로 1997년부터 학사 운영 과정에서 양 전공 개설과목의 상호 전공 학점 인정 및 전공필수 과목 교차 지정[32] 등의 보완조치가 행해지는 등 일부 개선이 있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소규모의 교수진과 학생, 양 과 간 중첩되는 연구분야의 존재를 해소하기 위한 통합의 필요성은 늘 잠재된 상태였다.
학부 통합이 이루어진 것은 이로부터 약 15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2008년 1월 동창회 신년 하례식에서 정치학과와 외교학과의 통합 및 정치외교학부 확대 방안이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으로 발생이 예정된 구 법과대학의 정원을 활용하여 학과 증원을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전의 추상적인 논의와 달리, 가시적인 유인의 존재로 인해 통합 논의가 빠르게 진척되었다. 그해 8월에는 동문 출신인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장무 서울대학교 총장 간 면담이 있었으며, 동 시기 졸업 동문 12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합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925명 찬성(74.3%), 105명 반대(8%)와 같이 압도적 찬성으로 나타났다. 그해 12월 학과 통합 추진위원회가 발족하였고, 이듬해인 2009년 5월 추진위-서울대 본부 간 협의에서는 통합에 대한 긍정적인 본부 측의 반응이 도출되었다.[33] 8월에는 논의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치의학전문대학원 체제 전환에 따른 반납된 구 치과대학 학부 정원 45명 중 20명을 학부 통합 인센티브로 신설 정외학부에 배정할 것을 본부로부터 확약 받았으며, 11월 25일 통합안이 최종 승인되었다.[34]
2010년 6월 3일 정치외교학부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그러나 일단 이렇게 통합은 되었으나, 일각에서 '결혼사기단'으로 표현하듯,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양 과의 통합은 명목상의 결합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존재하였다.
통합 10년이 훌쩍 지난 현 시점에서 회고해 볼 때, 단일 자치회(학생회)인 정치외교학부 자치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과 행정실 역시 통합되는 등, 당초의 우려는 기우였던 듯하다.[35] 늘어난 규모와 중복 해소로 이전에 미처 포괄하지 못했던 공공정책, 법철학, 국제정치경제, 정치현상에 대한 데이터과학 적용 등 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가 행해질 수 있었다. 또한, 학부생 차원에서도 규모의 증대로 과거 분리 이전처럼 각기 다른 형태이지만 공동체와 국가라는 공적인 영역에 뛰어들 의지를 가진 인력 간의 소통과 교류의 산실이 마련되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3. 교육
당초 학과가 분리되어 있던 시절에는 정치학과에서도 국제정치를, 외교학과에서도 정치학 기초 및 정치사상을 교육, 연구하는 담당 교수를 두는 등의 경향이 있었다. 가령, 90년대 말까지 정치학과는 정치학원론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2부를 국제관계학 개론에 상당한 내용으로 과목을 편성하였고[36], 외교학과는 각종 국제정치사상 교과목의 내용 상당부분을 고대 및 중세 정치철학 관련 내용으로 편성한 사례가 존재한다.[37] 학과 통합 이후에는 이러한 교수진 및 교육과정상의 중복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해소된 측면이 있다.많은 수의 교수진 및 폭 넓은 학습 선택지에 힘입어 교육 면에서나 연구 면에서나 정치학의 다양한 영역을 포괄할 수 있다는 점이 서울대 정외학부의 특징이다. 영역이 넓다보니 인접 학과들도 많은데, 이들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행정학 교과목은 정치외교학부에서 개설하지만 실제 수업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위탁하고 있다. 5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 행정학이라는 학문이 유입됨에 따라 정치학과에서도 일부 행정학 수업을 개설하기 시작하였으며, 75년 서울대에서 행정학과가 폐지된 이후에는 정치학과(현 정외학부)는 전공과목으로 행정학서론, 인사행정, 재무행정, 행정조직론 4개 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현재 정외학부는 학사편입 시 타 대학 행정학과 출신 지원자의 경우 행정학과를 유사전공으로 보아 지원을 허가하지 않는다. 다만, 1975년 이후 45년 간 개설과목에 변동이 없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학부 차원에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지는 않는 듯하다.
법학 교과목 역시 정치외교학부에서 개설하지만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위탁하고 있다. 지리학과,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서어서문학과, 서양사학과, 철학과, 종교학과가 참여하는 유럽지역학 연계전공을 주관하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지역 연구에서는 아시아언어문명학부와 영역이 겹치고, 국제정치에서는 국제대학원과 영역이 겹친다. 2020년 현재의 교과과정 및 교육, 연구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3.1. 교과과정
정치외교학부 내에 정치학전공과 외교학전공이 설치되어 있으며, 학부 본전공생은 세부 전공을 사전에 택하지 않은 상태로 입학한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두 세부 전공 중 하나의 전공을 택하여 졸업하게 된다.[38] 두 세부전공의 주된 차이는 졸업요건이다. 정치외교학부의 교과과정은 미분류(전공필수, 답사) 과목을 제외하면, 공통 가군(사상, 역사), 공통 나군(각국 정치 및 지역연구), 전공별 다군(전공 심화) 세 개 군으로 분류된다. 정치학전공은 전공필수 3과목 및 가군, 나군, 다군(정치학전공 심화) 각 2개 교과목만 이수하면 되는 반면, 외교학전공은 전공필수 3과목은 물론, 가군, 나군, 다군(외교학전공 심화) 각 3개 교과목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3.1.1. 기초(전공필수)
구분 | 1학기 | 2학기 | ||
교과구분 | 교과명 | 교과구분 | 교과명 | |
1학년 | 전공필수 | 정치학원론 | ||
전공필수 | 국제정치학개론 | |||
4학년 | 전공필수 | 정치학연습 | ||
전공필수 | 국제정치연습 |
전공필수 교과목은 정치학원론, 국제정치학개론 및 학사논문 연습, 단 세 과목으로 적은 편. 앞의 두 과목은 1학년 이수가 원칙이나 막상 졸업이 머지않은 고학번이 되어 재수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졸업 전에는 세부 전공별로 연습 과목을 수강하여 학사논문을 준비해야 한다.[39]
3.1.2. 정치사상
구분 | 1학기 | 2학기 | ||
교과구분 | 교과명 | 교과구분 | 교과명 | |
2학년 | 가군 | 서양정치사상1 | 가군 | 서양정치사상2 |
다군(정치) | 현대 민주주의의 쟁점 | 가군 | 인권 | |
가군 | 국제정치사상 | |||
3학년 | 가군 | 한국정치외교사상 | 가군 | 동아시아정치사상 |
가군 | 현대국제정치사상 | 가군 | 법과 민주주의 | |
다군(정치) | 근대정치정치사상 | |||
다군(정치) | 성과 정치 | |||
4학년 | 가군 | 한국정치사상 | 다군(정치) | 현대정치사상 |
가군 | 동아시아국제정치사상론 | 다군(외교) | 국제문화론 | |
다군(정치) | 정치철학 |
현재 6명의 사상 분야 전임교수가 재직 중이다.(고대 1, 현대 2, 법철학 1, 동양 2) 전임 교수가 없는 근대정치사상 등에 대해서는 특강 또는 강사 섭외 등을 통해 종종 보충하는 편.
초창기 정치학과의 학풍을 주도한 민병태 교수 및 그 직계인 김영국 교수(고대정치사상) 등의 영향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는 전통적으로 정치사상 분야가 강세를 보였다. 특히 고대나 (초기) 근대 정치사상에 강점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정치사상 외 타 분야 및 정치사상 내에서도 보다 다양한 분야로 다각화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인권과 (현대) 민주주의론 등 현대정치이론이 강화되었으며, 지성사와의 접목도 활발해지고 있다.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김영민 교수가 동양정치사상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3.1.3. 비교정치 및 한국정치[40]
구분 | 1학기 | 2학기 | ||
교과구분 | 교과명 | 교과구분 | 교과명 | |
2학년 | 가군 | 비교정치론 | 가군 | 한국정치사입문 |
가군 | 시민정치론 | 가군 | 정치경제론 | |
나군 | 일본정치론 | 나군 | 유럽정치론 | |
다군(정치) | 행정학서론 | 나군 | 중국의 부상과 아시아의 미래 | |
다군(정치) | 정치사회 고전연구 | 다군(정치) | 정치사회 현대이론 | |
다군(정치) | 정치체제와 변동 | 다군(정치) | 북한의 정치와 사회 | |
다군(정치) | 인사행정 | |||
3학년 | 가군 | 한국정치사 | 가군 | 한국헌정사 |
나군 | 동아시아정치경제 | 나군 | 미국정치론 | |
나군 | 중국정치론 | 나군 | 러시아동구정치론 | |
나군 | 미국 정책결정과정의 이해 | 다군(정치) | 한국정치론 | |
다군(정치) | 정당론 | 다군(정치) | 재무행정 | |
다군(정치) | 행정조직론 | 다군(정치) | 의회정치론 | |
다군(정치) | 거버넌스의 이해 | |||
다군(외교) | 비교 연방제와 연방국가 | |||
4학년 | 다군(정치) | 헌법 | 다군(정치) | 국가론 |
정치 하면 쉬이 연상되는 정치제도와 정치과정을 다루는 분야다. 정당, 의회, 선거, 시민사회, 거버넌스, 정치체제 (민주주의론, 권위주의론 등), 정치경제 등 국내 정치외교학과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분야를 포괄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주로 행정학과에서 교육, 연구하는 행정학, 그리고 헌법과 헌정사에 대해서도 교육하고 있다.[41] 최근 10년간 가장 큰 변화는 본래 법대 소속이던 헌법과 헌정사를 교육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에는 정치사회론 강의가 정치사회론1에 해당하는 고전이론과 정치사회론2에 해당하는 현대이론으로 분리되었다.
3.1.4. 국제관계 및 지역연구[42]
구분 | 1학기 | 2학기 | ||
교과구분 | 교과명 | 교과구분 | 교과명 | |
2학년 | 가군 | 국제관계사개설 | 가군 | 한국외교사 |
나군 | 외교정책론 | 나군 | 세계지역연구개론 | |
나군 | 미국과 국제관계 | 다군(외교) | 안보론 | |
나군 | 중국외교정책론 | 다군(외교) | 탈근대세계정치론 | |
다군(정치) | 지구화시대의 정치 | 다군(외교) | 금융과 발전의 국제정치경제 | |
다군(외교) | 한반도와 국제정치 | 다군(외교) | 테러리즘과 반테러리즘의 정치 | |
다군(외교) | 국제정치경제론 | |||
다군(외교) | 무역과 투자의 국제정치경제 | |||
3학년 | 나군 | 러시아 국제관계론 | 가군 | 외교론 |
나군 | 유라시아국제관계론 | 나군 | 유럽지역연구: 유럽연합과 서유럽 | |
나군 | 일본과 국제관계 | 나군 | 중동아프리카 지역연구 | |
나군 | 현대 동북아 국제정치경제 | 다군(외교) | 국제기구론 | |
다군(외교) | 국제정치이론 | 다군(외교) | 분쟁해결과 국제기구 | |
다군(외교) | 국제관계와 국제법 | 다군(외교) | 한국외교정책론 | |
다군(외교) | 정보세계정치론 | 다군(외교) | 환경과 세계정치 | |
다군(외교) | 개발과 협력의 국제정치경제 | |||
4학년 | 나군 | 동남아의 정치와 외교 | 다군(외교) | 동아시아 국제정치론 |
나군 | 한일관계론 |
오랫동안 외교학과가 독립된 학과로 존재해온 만큼 국제관계 기본 이론뿐 아니라, 국제정치경제(IPE) 및 지역연구에 있어서도 다양한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과 특성 상 한국어 교과서 외에도 영어로 된 논문과 단행본을 수강 중 숙독할 것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 국제정치학의 비조 이용희 교수를 비롯해 노재봉 교수, 외교사 및 국제법 연구를 전공으로 하는 김용구 교수, 개화기 연구와 이념의 전파 연구 등에 집중한 하영선 교수 등으로 이어지는 학술적 전통이 탄탄히 유지되어 왔다고 평가 받기도 한다. 이 전통에서 강조된 것은 주체적 국제관계이론 및 국제관계사였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정치이론과 외교정책론은 이전과 같이 계속 교수되고 있으며, 사실 이들은 학부 수준에서는 일부 변주가 가능할 뿐 이미 커리큘럼이 어느정도 자리잡혀있는 전통적인 분야들이다. 국제관계사 분야에서는 전통이 유지되는 가운데, 지성사와 전쟁사 등이 강조되고 있다. '한국적' 외교사의 확립과 역사의 현대적 적용이라는 목적의식이 뚜렷했던 이전에 비하면 보다 현대 역사학의 경향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43] 국제안보는 여러 과목에서 다뤄지지만 국제안보 분야에 확실히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강의는 10년전과 마찬가지로 안보론뿐이다. 국제법 분야는 2000년대 들어 교육이 잠시 맥이 끊기고 법대와 국제대학원에서만 교수된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위탁 개설의 형태로 국제법 교육이 재개되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특징 중 하나는 비교정치학이나 각국의 외교정책론과는 다른 관점에서 국가/지역을 접근하는 지역연구(area studies)가 학부 수준에서 제공된다는 것이다. 지역연구 분야에서는 기존에 다루던 중국, 일본, 러시아, 서유럽에 이어 중동/북아프리카와 동남아 지역을 2010년대에 추가하였다. 다만, 이성형 교수의 요절으로 더 이상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다뤄지지 않고 있으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유럽 지역 역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 지역은 세계지역연구개론 과목에서 맛보기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더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인문대 관련학과나 연계전공을 선택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국제정치경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과목 수가 크게 늘어나, 국제개발, 금융, 무역/투자 등의 주제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또한, 박종희 교수의 부임으로 양적 방법론 (특히 베이지안 방법론)을 보다 잘 가르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학과 내 국제정치경제 분야의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
3.1.5. 방법론
구분 | 1학기 | 2학기 | ||
교과구분 | 교과명 | 교과구분 | 교과명 | |
2학년 | 다군(외교) | 국제정치 자료분석 | ||
3학년 | 가군 | 정치학연구방법론 | ||
다군(정치) | 공공선택이론 | |||
4학년 | 다군(정치) | 게임이론의 정치 | 가군 | 계량정치 |
정외학부 설립 당시만 해도 정치학연구방법론, 공공선택이론 2개 교과목 외에는 방법론 분야 개설 과목이 없었던 만큼 절실히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후 양적 연구 방법론 중심으로 꾸준한 교과목 증설이 이루어져, 현재는 총 5개 교과목이 편성되어 있다.
3.1.6. 답사 및 특강
구분 | 1학기 | 2학기 | ||
교과구분 | 교과명 | 교과구분 | 교과명 | |
2학년 | 답사 | 세계정치의 현장 | ||
답사 | 국제정치의 길잡이 | |||
답사 | 글로벌 리더십 특강 | |||
3학년 | 특강 | 글로벌 리더십 연습 | ||
4학년 | 특강 | 국제정치의 주요쟁점 | 특강 | 정치학 특강 |
2015년부터 동문회의 기금 출연에 힘입어 답사-특강 연계과정인 글로벌 리더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학년에 개설되는 세계정치의 현장(정치전공 개설), 국제정치의 길잡이(외교전공 개설) 교과목에서는 아시아, 유럽 등 각 대륙에 소재한 국가를 답사한다. 3학년 교과목인 글로벌 리더십 연습은 교수-학생 밀착형 학부 세미나로 10명 내외 소규모로 운영되며 교수와 학생이 특정 주제에 대해 특강 및 학기말 논문 작성에 이르는 과정으로 구성된다.[44]
정치학특강(정치전공 개설), 국제정치의 주요쟁점(외교전공 개설)은 기존의 각 전공 개설 교과목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주제를 다루는 수업이다. 선거사, 정치심리학, 북핵문제, 국제규범 등 다양한 주제로 개설된다.
3.2. 교수진
3.2.1. 현직 교수
2024년 현재 국내 최다 전임 교수진인 30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전임 교수로는 석좌교수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객원교수로 조현 전 주UN대사가 재직 중이다. 전임 교수가 없는 공법, 행정학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대학원 위탁 개설의 형태로 교육하고 있다.성명 | 학위 | 연구분야 | 소속 |
강원택 | 서울대학교 지리학 학사 / 英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정치학 박사 | 한국정치, 정당 | 정치 |
권형기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시카고 대학교 정치학 박사 | 비교정치, 유럽정치 | |
김서영 |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美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사회과학 박사 | 방법론, 미국정치 | |
김영민 | 고려대학교 철학 학사 / 美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학 박사 | 동아시아정치사상 | |
김용균 | 서울대학교 생물학 학사 / 美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정치학 박사 | 비교정치, 국제정치경제, 동남아정치 | |
김의영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 박사 | 비교정치, 거버넌스 | |
김주형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인디애나 대학교 정치학 박사 | 현대정치사상 | |
박원호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 박사 | 정치학방법론, 투표행태 | |
백창재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UC 버클리 정치학 박사 | 미국정치, 국제정치 | |
손인주 | 서울대학교 동양사학 학사 / 美 조지 워싱턴 대학교 정치학 박사 | 중국정치, 국제정치경제 | |
송지우 | 서울대학교 사회학 학사 / 美 하버드 대학교 J.D. 및 철학 박사 | 정치철학, 법철학 | |
안도경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인디애나 대학교 정치학 박사 | 공공선택이론, 관료제 | |
유홍림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럿거스 대학교 정치학 박사 | 현대정치사상 | |
이정철[45] |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 서울대학교 정치학 석사, 박사 | 북한정치 | |
임경훈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시카고 대학교 정치학 박사 | 정치변동, 러시아정치 | |
임혜란 |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 美 UC 데이비스 정치학 박사 | 정치경제 | |
김상배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인디애나 대학교 정치학 박사 | 탈근대 세계정치 | 외교 |
김종학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석사, 박사[46] | 한국외교사 | |
박성우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시카고 대학교 정치학 박사 | 고대정치사상, 국제정치사상 | |
박종희 |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 美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정치학 박사 | 데이터 사이언스, 국제정치경제 | |
신범식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 정치학 박사 | 러시아정치 및 외교정책 | |
신욱희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예일 대학교 정치학 박사 | 국제정치이론, 외교정책, 동아시아 국제관계 | |
안두환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 英 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 박사 | 국제관계사 | |
이나경 | 美 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조지타운 대학교 정치학 박사 | 방법론 및 국제정치경제 | |
이옥연 | 美 UC 데이비스 정치학 학사[47] / 美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 박사 | 미국정치, 연방제 | |
이정환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UC 버클리 정치학 박사 | 일본정치, 정치경제 | |
전재성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노스웨스턴대 정치학 박사 | 국제정치이론, 국제안보 | |
정재호 |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 학사 / 美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 박사 | 중국정치 및 외교정책 | |
조동준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정치학 박사 | 국제기구 | |
Brandon Ives | 美 UC 산타바바라 국제학 학사 / 美 메릴랜드 대학교 정치학 박사 | 중동 정치 및 내전연구 | |
반기문석좌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美 하버드 대학교 행정학 석사 | 미분류 | |
조현객원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 佛 툴루즈 1대학 정치학 박사 | 국제기구 |
3.2.2. 전직 교수
성명 우측 상단의 명예는 명예교수임을 의미. 공직 임명 등으로 인해 초기에는 정년을 대학에서 맞이한 교수가 많지 않았다. 정치학과의 경우, 1995년 김영국 교수가 최초로 정년을 맞아 퇴임하기 전까지 단 한 명도 재직 중에 65세 정년을 맞이한 교수가 없었다.성명 | 출신교 | 연구분야 | 소속 |
신도성 | 日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법학사 | 정치사상 | 정치 |
이선근 | 日 와세다대학 문학부 사학과 문학사 | 정치사 | |
한춘섭[48] | 日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 경제학과 경제학사 | 재정학 | |
서임수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제2류[49] 법학사 | 정치이론 | |
김경수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제2류 법학사 | 정치이론 | |
신기석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법학사 | 외교사, 외교정책 | |
박일경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제2류 법학사 | 헌법 | |
임원택 | 서울대학교(1946~1947) 문학사[50][51] | 경제학 | |
민병태 | 日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법학사 | 정치사상 | |
김두희[52] | 日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경제학과 경제학사 | 거시경제이론, 재정학 | |
김성희 | 경성제대 법문학부 법학과 제2류 법학사 | 정당, 정치사 | |
박준규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문학사 | 정치변동 | |
김영국명예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문학사 | 정치사상 | |
구범모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정치학사 | 비교정치 | |
배성동명예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정치학사 | 일본정치 | |
장위돈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오리건 대학교 정치학 박사 | 정치변동 | |
구영록명예 | 켄터키웨슬리안칼리지 정치학과 학사 / 미시간대 정치학 박사 | 국제정치 | |
이홍구명예 | 에모리 대학교 정치학[53] 학사 / 예일 대학교 정치학 박사 | 정치사상 | |
최창규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동양정치사상 | |
최명명예 |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 일리노이 대학교 정치학 박사 | 중국정치 | |
김학준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피츠버그 대학교 정치학 박사 | 한국정치, 구 소련정치 | |
길승흠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미시간대 정치학 박사 | 일본정치 | |
안청시명예 |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사 / 하와이대 정치학 박사 | 비교정치 | |
이정복명예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워싱턴대 정치학 박사 | 한국정치, 정치과정 | |
김홍우명예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조지아대 정치학 박사 | 서양정치사상 | |
황수익명예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인디애나대 정치학 박사 | 공공선택이론 | |
김세균명예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 | 정치사상,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 | |
장달중명예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UC 버클리 정치학 박사 | 일본정치, 북한정치 | |
박찬욱명예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美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 비교정치, 의회, 선거 | |
김용찬[54]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UCLA 정치학 박사 | 근대정치사상 | |
이용희[55]명예 | 연희전문학교 문과 | 국제정치이론 | 외교 |
이정우[56] | 서울대 정치학과 문학사 | 외교정책론 | |
이원우[57] | 서울대 정치학과 문학사 | 외교정책론 | |
박준규[58] | 서울대 정치학과 문학사 | 한국외교사 | |
손제석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국제기구 | |
박봉식명예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국제정치사, 한국외교사 | |
노재봉명예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뉴욕대 정치학 박사 | 국제정치사상 | |
여정동명예 | 서울대 정치학과 정치학사 | 일본 외교정책, 제국주의 | |
동덕모[59]명예 | 애빌린크리스챤대학교 학사 / 콜로라도주립대 역사학 박사 | 한국외교사 | |
김용구 |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사 | 한국외교사, 국제법 | |
정종욱명예 |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사 / 예일대 정치학 박사 | 중국 외교정책 | |
하용출명예 |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사 / UC 버클리 정치학 박사 | 러시아 외교정책 | |
하영선명예 |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사 / 워싱턴대 정치학 박사 | 국제정치이론, 한국외교사 | |
박상섭명예 |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사 / 서던 일리노이 대학교 정치학 박사 | 국제정치사상 | |
윤영관명예 |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사 / 존스홉킨스대 국제학 박사 | 국제정치경제, 남북한관계론 | |
최정운명예 |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사 /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 | 국제정치사상, 국제문화 | |
장인성명예 |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사 / 日 도쿄대 국제관계론 박사 | 동아시아정치사상, 한국외교사 |
4. 자치활동
4.1. 정치외교학부 자치회
2010년 정치외교학부 통합 이전까지는 정치학과와 외교학과 각각 자치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치학과의 경우, 2007년 설립된 정치학과 자치회 및 정치학과 중심의 학내 활동인 모의국회 등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운영되었고, 외교학과는 공식 자치회는 없었지만 정치학과와 마찬가지로 학내 활동인 모의유엔 등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운영되었다. 정치외교학부가 출범하면서, 그간 학과별로 분리 운영된 학생 자치활동에 있어서도 협조의 필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에 따라, 2012년 외교학전공에서도 자치회가 출범하였으며, 정치학전공 및 외교학전공 양 전공 임원 간의 대표자회의 등을 통해 전공진입생 환영회, MT, 정치외교페스티벌[60] 등의 공통 프로그램이 원활히 운영될 수 있었다.상술한 과도기를 거치며 양 전공 간의 거리가 상당 부분 좁혀졌으며, 서울대학교의 학부제 폐지로 절대다수의 신입생이 1학년부터 개별 학과/부에 배정된 상태로 입학함에 따라 세부 전공별 별개의 자치회를 운영할 필요성도 점차 감소하였다. 이에 2017년에는 단일 정치외교학부 자치회가 발족하였으며, 현재 정치외교학부의 각종 자치활동은 단일 자치회 및 정치외교 양 과/반(일치단결, 나침)[61]을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다.
4.2. 모의국회
정치학전공 중심의 자치활동이다.[62] 정식 명칭은 관악민국 모의국회. 연극 형태로 당대 정치현상을 풍자, 비평하는 행사로, 2학년이 대본, 세미나 등의 준비를 담당하고 1학년이 배우로 출연한다.당초 1975년 서울대학교 캠퍼스 종합화 이전까지 모의국회는 법과대학의 단과대학 축제인 낙산제(駱山祭)의 부대 행사로 운영되고 있었다.[63] 그러나 이후 법대 축제인 낙산제가 형해화되고 모의국회 전통 역시 단절된다.
반면, 위와는 별개로 대한민국 제5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1년부터 동숭동 시절의 초대 모의국회 계승을 제창하며 정치학과에서 당대 정국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롭게 모의국회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이후 연례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87년 민주화 이전까지 당대 군부 정권에 대한 항의 내지 비판운동의 성격을 띠었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그 해 쟁점이 된 정치 현안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기수(개최연도) | 제목 | 소재 |
1회(1981) | - | |
2회(1982) | - | |
3회(1983) | - | |
4회(1984) | - | 대미정책 등 국정현안 질의 |
5회(1985) | - | 개헌, 종속적 경제운영 등 |
6회(1986) | - | 대통령 직선제 논의, 종속적 경제운영 등 |
7회(1987) | - | 국회의 국민 대표성 |
8회(1988) | - | 5공 청산, 김현희 사건 등 |
9회(1989) | 공안정국의 본질을 폭로한다 | 전교조 합법화, 국가보안법 폐지, 이내창 의문사 사건 |
10회(1990) | 군부자부당 제1차 전당대회 | |
11회(1991) | 모의 광역선거 | 지방자치제 부활 |
12회(1992) | 제6공화국을 심판한다 | 노태우 정부 비판 |
13회(1993) | 춘래불사춘 | 문민정부 개혁정책 비판 |
14회(1994) | ||
15회(1995) | ||
16회(1996) | 서울대법과 노동문제 | |
17회(1997) | 너희가 민주주의를 믿느냐? 광장 500, 시민들이 함께하는 대선토론회 | 제15대 대선 |
18회(1998) | ||
19회(1999) | 휴전선에 침을 뱉으마 | 남북 대치 |
20회(2000) | 연방제님, 레뒤여[64] | 2000 남북정상회담 |
21회(2001) | ||
22회(2002) | 진정 우리가 원하는 대안 |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한미 SOFA 개정 |
23회(2003) | 노무현과 샌드위치 : 개혁과 현실 | 이라크 파병, 북핵문제,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 |
24회(2004) | 요람에서 대학까지 | 모성보호법 개정, 국공립대 통폐합 |
25회(2005) | Where Should We Be Headed | 징병제와 모병제, 권력구조와 민주주의 |
26회(2006) | 한국경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 : 길 위에서 길을 묻다 | 한미 FTA, 재벌 개혁 |
27회(2007) |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라 | 비정규직 보호법안, 3불정책 |
28회(2008) | 국회의사당, 뚜껑 열리다 | 집시법 개정, 언론의 자유 |
29회(2009) | 개헌이 쳐들어온다 : 개헌, 권력구조 개편 | 대통령 중임제 개헌 |
30회(2010) | Puzzling Puzzle, 대북문제, 그 풀리지 않는 퍼즐 | 북한의 2차 핵실험 |
31회(2011) | 현실을 넘다 : 복G LTE | 보편 복지 논쟁 |
32회(2012) | 대선의 법칙 : 경제민주화 | 경제민주화 논쟁 |
33회(2013) | 언론 : 논의되지 않은 이야기 | 언론 개혁 |
34회(2014) | 정당(Party), 그들만의 파티(Party) |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국 |
35회(2015) | 관제탑 없는 비행기 : 행정부의 비행 | 정치의 무능과 관료 집단의 무능 |
36회(2016) | 침몰하는 황제의 섬 : 대통령 제도 | 신대통령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
37회(2017) | 미완의 협주곡 : 협치 | 다당제와 여소야대 |
38회(2018) | Demograssy | 정당과 시민 사이에서 바라본 지역정치 |
39회(2019) | 푸른거탑 : 모래성 위의 청와대 | 정당, 내각, 청와대비서실 간 관계정립 |
40회(2020) | 청년정치 : 미생에서 완생으로 | 청년의 정치참여 활성화 방안 |
41회(2021)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정당정치의 위기와 새로운 인물의 등장 |
42회(2022) | FANDOM : 정당의 무덤 | 팬덤 정치 |
43회(2023) | POPULISM: 실체 없는 전쟁 | 포퓰리즘 공방의 실제 |
4.3. 모의유엔
외교학전공 중심의 자치활동. 역시 준비요원인 2학년과 팀원인 1학년 모두 세부 전공을 정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외교학전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의국회가 주로 국내 정치 쟁점을 소재로 삼는다면, 모의유엔은 시의성 있는 국제 이슈를 주로 다루는 비평극이라 할 수 있다. 2학년은 연극 기획 및 연출, 1학년은 연기를 담당한다.수십여 년 간 열린 연례행사인만큼, 모의국회와 모의유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간의 인식도 존재한다. 모의국회는 아무리 진지하게 만들어도 예능 같고, 모의유엔은 재밌게 만들어도 다큐가 된다는 평가가 일례.[65]
기수(개최연도) | 제목 | 소재 |
1회(1988) | 한반도 비핵지대안 | 한반도 비핵화 문제 |
2회(1989) | 동아시아에서의 평화 구축 | |
3회(1990) | 페르시아 만 사태의 평화적 해결 | |
4회(1991) | 한반도, 핵, 평화 | |
5회(1992) |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와 국제 질서 | |
6회(1993) | UN체제 개편과 그 전망 | |
7회(1994) | 지구 온난화와 세계 환경정치 | |
8회(1995) | 평화 유지군 활동의 딜레마 | |
9회(1996) | 여성 인권: 성폭력 문제를 중심으로 | |
10회(1997) | Drug : The Coming International Issue | 국제 마약 수사 |
11회(1998) | 국제테러의 실상과 그 대응방안 | 테러 대응 |
12회(1999) | 외채, 60억의 대응 : 외채문제와 그 파괴에 대한 분석 및 해결방안 모색 | 외환 위기 |
13회(2000) | 인권의 보편성, 존재하는가? | 티벳, 노동환경 개선 등 중국 내 인권문제 |
14회(2001) | 신 안보 전략, MD가 그 대안인가? | |
15회(2002) | No Peace without Justice |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UN 회의 재연 |
16회(2003) | Minority Report Refugees | 난민 문제 |
17회(2004) |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 지구, 새천년을 그리다 | 유엔 8대 개발지표 선정 |
18회(2005) | UN Reloaded : 안보리는 공사 중 | 안전보장이사회 개혁 |
19회(2006) | AIDS, 빨간 리본의 진실 | AIDS 확산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공조 |
20회(2007) | 무역과 개발 | 도하개발어젠다 |
21회(2008) | Why do disastrous? : Bomb or Earth | 자연재해 경감 |
22회(2009) | 그 많던 무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 소형무기 불법 거래 통제 |
23회(2010) | Energency |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개발협력 |
24회(2011) | Treasure Ocean | 공해상 심해저 자원의 개발과 분배 |
25회(2012) | 시리아의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시리아 내전 |
26회(2013) | 경제사회이사회 : World Wars, 환율전쟁 | 환율 대립 |
27회(2014) | 체크메이트 : 만들어진 악역, 정해진 결말 | 이란 핵협상 |
28회(2015) | 자선과 독선 사이 : 길잃은 ODA | ODA 논쟁 |
29회(2016) | Global WarNing : There is No Planet B | 파리기후변화협약 |
30회(2017) | Unclear Nuclear : 한국 핵심에서 길을 잃다 | 북한의 6차 핵실험 |
31회(2018) | 이기심의 바다, 표류하는 난민 | 유럽 난민 사태 |
32회(2019) | 인간의 손을 떠난 무기, 어디로 향하는가 | 자율살상무기 규제 |
33회(2020) | 국가들의 가면을 벗기다, 마스크를 벗는 날을 위해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
34회(2021) | ALL IN : 차트 위 엇갈린 국가들 | 암호화폐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
35회(2022) | OFF the WAR |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
36회(2023) | Eye on Curtain: 미중패권경쟁 | 미중전략경쟁 / NPT체제를 둘러싼 미중패권경쟁 |
4.4. AFPLA
Asian Future Political Leaders' Association(아시아미래정치지도자포럼)AFPLA 도쿄대학 지부 홈페이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를 비롯해, 베이징대학 정부관리학원, 푸단대학 국제관계학원, 도쿄대학 법학부 제3류(정치코스), 국립타이완대학 정치학계 등 5개교 정치학 관련 전공 학부생이 모이는 포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2008년 정치학과 시절 처음으로 기획되어 서울대, 베이징대 2개교 합동 행사로 운영되었고, 이듬해 푸단대, 도쿄대로 확대 운영되었다. 2014s년부터는 국립타이완대학도 참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 대학이 1년마다 돌아가며 의장을 맡아 동아시아 관련 정치, 외교, 역사 등 다양한 국제이슈에 대해 약 4박 5일 간 토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정치외교학부 통합 이후에는 정치학전공을 중심으로 운영하되 외교학전공 학생도 지원이 가능하다.
기수(개최연도) | 의장 | 참가대학 |
1회(2008) | 베이징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
2회(2009) | 푸단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
3회(2010) | 서울대학교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
4회(2011) | 도쿄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
5회(2012) | 푸단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
6회(2013) | 서울대학교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
7회(2014) | 베이징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국립타이완대학 |
8회(2015) | 도쿄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국립타이완대학 |
9회(2016) | 국립타이완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국립타이완대학 |
10회(2017) | 푸단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국립타이완대학 |
11회(2018) | 서울대학교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국립타이완대학 |
12회(2019) | 베이징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국립타이완대학 |
13회(2021)[66] | 도쿄대학 | 서울대학교, 베이징대학, 푸단대학, 도쿄대학, 국립타이완대학 |
4.5. 국제교류세미나
국제교류세미나 소개 홈페이지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및 히토쓰바시대학 법학부 학부생 간 매년 국제정치 현안에 대해 토의를 나누는 포럼이다. 1997년 외교학과와 히토쓰바시대 법학부 간 연례세미나로 출범하여, 2002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세미나가 진행되며, 영어 발제 및 프레젠테이션으로 구성된다.
5. 진로
입학 또는 전공 진입 시부터 공적 부문(Public Sector) 진출을 목표로 갖고 있는 학생이 많고, 졸업생 진로 역시 해당 분야에 다소 치우친 감이 있다.[67] 졸업생이 택하는 주요 진로로는 관계, 법조계, 언론계가 있으며, 이외에도 학계 및 각종 공사, 국책은행 등 공공기관 취직, 국제기구 활동 등 공공 분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아울러, 민간 기업 등 전공과 직접 관련이 있지 않은 진로라도 해외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등, 학부 전공을 살리는 졸업생이 많은 편이다.5.1. 관계
학과 창설 이래, 공직 진출은 학부 과정에서 배운 지식을 직접적으로 입직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고 이후에도 간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으로 선호되는 진로였다. 특히, 외교학과가 한동안 독립된 학과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외교관을 다수 배출하였으며, 이외에도 내무, 재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등고시, 특별채용 등의 형태로 공직에 입직한 졸업생이 많다.2000년대 초반에는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통해 학번 당 14 ~ 21명 가량 공직에 진출하였으며[68], 2010년대에 접어 들어서도 매 학번 11 ~ 19명 가량의 졸업생[69] 이 입직하는 등, 큰 편차 없이 꾸준히 선호 받는 진로이다.
5.2. 법조계
근래에 와 졸업생 중 가장 많은 수가 법조계를 진로로 택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학의 본산인 미국과 달리 독립된 법학부의 존재, 통제된 진입장벽 및 극심한 정치변동 등의 요소로 인해 법조계에 진출한 졸업생이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 민주화가 이행되는 등 국내 정치가 안정을 되찾고 사법시험 선발 인원 역시 1,000명을 향해 증가하면서 법조계 진출이 늘어나기 시작하였고[70],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및 법과대학 폐지로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되었다.1990년대 및 2000년대 초반 학번의 경우, 사법시험 및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통해 15명 내외의 변호사가 배출되었으며,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정착된 2010년 전후의 입학생의 경우, 2~30명 가량의 졸업생이 법조계를 진로로 택하고 있다. 2020년 서울대 로스쿨 합격자 중 정치외교 전공자가 22명으로 발표되었는데[71], 이중 서울대 학부 출신이 약 2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5.3. 언론계
언론계 역시 정외학부의 전통적인 주요 진로 중 하나이다. 특히, 공론장이 극히 억압된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는 언론 활동이 곧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공간 그 자체였기 때문에 60~80년대 학번의 경우, 15% 내외의 졸업생이 신문사 등 언론계에 종사하였다. 민주화 이후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이전에 비해 다소 부침은 있으나, 여전히 사회 및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고, 학부 과정에서 익힌 정치학, 국제정치학 지식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진로이므로 언론계 진출은 타 학과에 비해 많은 편이다.2000년대 초반 학번의 경우, 학번 당 6~7명의 졸업생이 신문 및 방송사에서 기자, PD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0년 전후의 학번 역시 4 ~ 9명이 언론계를 진로로 택하는 등, 큰 부침없이 주요 진로로 각광 받고 있다.
5.4. 학계
정치학 및 국제정치학을 대학원 과정에서도 계속 공부하여 학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졸업생도 꾸준히 존재한다. 모과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거나, 유학, 모과 박사과정 등을 통해 정치학자가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정책학 석사 과정을 밟는 졸업생도 종종 배출된다.5.5. 기타
타 학과와 마찬가지로 민간 대기업, 공공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졸업생도 적지 않다. 이밖에도 학부 생활 중 익힌 지식이나 경험 등을 통해 투자은행,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 등에 진출하거나, 재직 중인 기업에서 대외 관련 업무에 종사하게 되는 사례도 있다. 민주화 및 지방자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아직 수가 많지는 않지만 대한민국 국회, 지방의회 등에서 정당인으로 활동하는 졸업생도 돋보인다.6. 출신 인물
진로에서 유추할 수 있듯, 전통적으로 정계, 관계, 언론계에 진출한 동문이 다수 존재.6.1. 정/관계
6.1.1. 국무총리
순번 | 성명 |
22대 | 노재봉 |
30대/35대 | 고건 |
47대 | 김부겸 |
6.1.2. 국회의원
제2대 국회부터 동문 국회의원을 배출하였다. 건국 이후 제12대 국회까지 국내 대학 학과 중 누적 최다 배출 학과였으며, 제13대 국회 이후로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이어 의원 배출 누적 2위이다.채문식( 제11대 국회), 박준규(1925)( 제13대 국회, 제14대 국회), 김형오( 제18대 국회) 등 3인은 국회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6.1.3. 장관
장관급 정무직 등은 제외역임 정부 | 역임자 |
제2공화국 | 이원우( 공보부) |
제3공화국 | 윤천주( 문교부) |
제4공화국 | 유기춘( 문교부), 윤천주( 문교부), 최각규( 농수산부, 상공부), 고건( 교통부), 구태회( 무임소, 제2무임소), 신형식( 건설부, 무임소), 김좌겸( 제1무임소) |
제5공화국 | 고건( 내무부, 농수산부), 서석준( 경제기획원), 손제석( 문교부), 김동휘( 상공부), 박봉환( 동력자원부), 최창락( 동력자원부), 이자헌( 체신부), 조기상(제1정무), 이종률(제1정무) |
노태우정부 | 정영의( 재무부), 최각규( 경제기획원), 최호중( 외무부, 국토통일원), 이상옥( 외무부), 최영철( 국토통일원, 노동부, 체신부), 이수정( 문화부), 강현욱( 농림수산부), 김창근( 교통부), 노건일( 교통부) |
김영삼정부 | 한승주( 외무부), 유종하( 외무부), 강운태( 내무부, 농림부), 이민섭( 문화체육부), 김양배( 농림수산부, 보건복지부), 손학규( 보건복지부), 강현욱( 환경부), 이형구( 고용노동부), 홍사덕(제1정무) |
김대중정부 | 정세현( 통일부), 한갑수( 농림부), 김선길( 해양수산부) |
노무현정부 | 윤영관( 외교통상부), 반기문( 외교통상부), 정세현( 통일부) |
이명박정부 | 고흥길( 특임장관) |
박근혜정부 | 조윤선(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
문재인정부 | 김부겸( 행정안전부), 정의용( 외교부) |
윤석열정부 |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박민식( 국가보훈부), 김영호( 통일부) |
6.1.4. 차관
역임 정부 | 역임자 |
제3공화국 | 정일영( 외무부), 진필식( 외무부), 홍경모( 문공부) |
제4공화국 | 최각규( 재무부, 경제기획원), 남상진( 재무부), 박봉환( 재무부), 서석준( 경제기획원)[72], 조성옥( 문교부), 윤석헌( 외무부), 윤하정( 외무부), 이민용( 외무부), 김동휘( 외무부, 문화공보부), 최창락( 상공부), 김선길( 상공부) |
제5공화국 | 김은호( 문공부), 김흥기( 재무부, 경제기획원), 이기욱( 재무부), 정영의( 재무부), 최창락( 경제기획원), 이상옥( 외무부), 오재희( 외무부), 최호중( 상공부), 류종탁( 농수산부), 이웅수( 교통부) . 이형구( 건설부) |
노태우정부 | 이형구( 재무부, 경제기획원), 강현욱( 경제기획원, 동력자원부), 한갑수( 경제기획원, 환경처), 유종하( 외무부), 송한호( 국방부), 강현욱( 상공부), 이두호( 보건사회부), 노건일( 내무부) |
김영삼정부 | 이부식( 과학기술처), 이시영( 외무부), 정준호( 국방부), 박운서( 상공부), 김도현( 문화체육부), 이진( 환경처) |
김대중정부 | 반기문( 외교통상부), 정세현( 통일부), 김형기( 통일부), 조환익( 산업자원부)[73] |
노무현정부 | 김재섭( 외교통상부), 이태식( 외교통상부), 이규형( 외교통상부), 조건식( 통일부) |
이명박정부 | 권종락( 외교통상부), 안호영( 외교통상부), 김천식( 통일부), 조석( 지식경제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74] |
박근혜정부 | 조태용( 외교부), 임성남( 외교부), 김남식( 통일부), 정관주( 문화체육관광부) |
문재인정부 | 임성남( 외교부), 서주석( 국방부), 김현환( 문화체육관광부) |
윤석열정부 | 김기웅( 통일부), 조주현( 중소벤처기업부), 장호진( 외교부), 문승현( 통일부), 박성훈( 해양수산부), 송명달( 해양수산부), 강인선( 외교부), 강도현( 과기정통부) |
6.1.5. 지방자치단체 관련 인물
성명 | 역임 직위 | 구분 |
강운태 | 전 광주광역시장 | 광역자치단체 단체장 |
강현욱 | 전 전라북도지사, 전주시장 | |
고건 | 전 서울특별시장[75] | |
김양배 | 전 광주직할시장 | |
김완주 | 전 전라북도지사 | |
노건일 | 전 충청북도지사 | |
이시종 | 전 충청북도지사, 전 충주시장 | |
전석홍 | 전 전라남도지사 | |
최각규 | 전 충청북도지사 | |
김도현 | 전 서울 강서구청장 | 기초자치단체 단체장 |
김문원 | 전 경기도 의정부시장 | |
김용모 | 전 인천 남동구청장 | |
김충환 | 전 서울 강동구청장 | |
류경기 | 서울 중랑구청장(전 서울특별시 행정1부시장) | |
박윤배 | 전 인천 부평구청장 | |
신준희 | 전 충북 보령시장 | |
장덕천 | 전 경기도 부천시장 | |
채현일 | 전 서울 영등포구청장 | |
김대기 | 전 강원도 정무부지사 | 광역자치단체 부단체장 |
김일재 | 전 전라북도 행정부지사(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상임위원) | |
배진환 | 전 강원도 행정부지사 | |
박성훈 | 전 부산광역시 경제부시장 | |
서승우 | 전 충청북도 행정부지사 | |
오병권 | 경기도 행정1부지사 | |
이영규 | 전 대전광역시 정무부시장 | |
정선용 | 충청북도 행정부지사 | |
정종제 | 전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 | |
조인동 | 전 서울특별시 행정1부시장 | |
태기표 | 전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
6.1.6. 기타 공직자 및 정당인
성명 | 역임 직위 |
강원국 | 전 대통령비서실 연설비서관 |
강영환 | 정당인 |
강인선 | 전 대통령실 대변인 |
구본태 | 전 국회의장비서실장 |
김건(29년생) | 전 한국은행 총재 |
김건(66년생) |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
김근식 | 정당인, 경남대학교 교수 |
김기섭 |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
김두우 |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
김문환 | 전 주 에티오피아대사 |
김세균 | 전 정의당 대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김웅 | 정당인[76] |
김재익 |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
김정남 | 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 |
김정봉 | 전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보비서관 |
김준동 | 한국남부발전 사장 |
김준석 | 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장 |
김중태 | 정당인 |
김택수 | 한국도로공사 상임감사위원 |
김형탁 | 정당인 |
노광일 | 전 주 태국대사 |
라종일 | 전 주 영국대사, 국가정보원 제1차장 |
류광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조정관 |
박광석 | 전 기상청장 |
박노벽 | 전 주 러시아대사 |
박시종 | 정당인 |
박철희 | 주일대사, 전 국립외교원장 |
백지아 | 전 주 제네바대사 |
변지량 | 정당인 |
서정아 | 전 금융위원회 대변인 |
신장식 | 정당인 |
유병호 | 감사원 사무총장 |
윤창렬 | 전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 |
이동관 |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이명신 | 전 대통령비서실 반부패비서관 |
이병기 | 전 국가정보원장, 대통령비서실장, 주일대사 |
이시형 | 전 주 OECD대사 |
이원석 | 검찰총장 |
이윤우 | 정당인 |
임상범 | 대통령비서실 안보전략비서관 |
임윤태 | 정당인, 변호사 |
장석명 | 전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 |
전옥현 |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 |
정용화 | 정당인 |
전재만 |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 주 태국대사 |
정선용 | 행정안전부 정부혁신조직실장 |
정웅교 | 정당인 |
정종욱 | 전 주 중국대사 |
정진술 | 전 서울시의원 |
정진욱 | 정당인 |
조규광 | 초대 헌법재판소장 |
조민경 | 전 인천 연수구의원 |
차영구 | 전 국방부 정책실장(예비역 육군 중장) |
최삼룡 | 전 대구경북경제자유구청장 |
최상용 | 전 주 일본대사 |
최시중 |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한국갤럽 사장, 기자 |
최환 | 전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
추연곤 | 주 과테말라대사 |
추종연 | 주 콜롬비아대사 |
하영기 | 전 한국은행 총재 |
허대만 | 정당인 |
홍세화 | 전 진보신당 대표, 저술가 |
홍현익 | 전 국립외교원장 |
황서종 | 전 인사혁신처장 |
6.2. 언론계
성명 | 역임 직위 | 출신 |
강인선 | 전 대통령실 대변인, 조선일보 기자 | 조선일보 |
김동욱 | TV CHOSUN 뉴스에디터, 전 조선일보 기자 | |
김연광 | 전 기자 | |
김창수 | 전 국회의원, 기자 | |
김학준 | 전 국회의원, 서울대 교수, 기자 | |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77] | |
박범진 | 전 국회의원, 기자 | |
신재민 | 전 문화체육관광부차관, 주간조선 편집장[78] | |
최구식 | 전 국회의원, 기자 | |
최병묵 | 월간조선 편집장 | |
허원제 | 전 국회의원, 기자 | |
김성열 | 전 기자, 동아일보 사장 | 동아일보 |
김재홍 | 전 국회의원, 기자 | |
김형오 | 전 국회의장, 기자 | |
손세일 | 전 국회의원, 동아일보 논설위원 | |
윤정호 | TV CHOSUN 부본부장, 전 조선일보 기자 | |
이동관 | 전 방송통신위원장, 동아일보 논설위원 | |
이부영 | 전 국회의원, 기자 | |
장병수 | 전 롯데 자이언츠 대표이사, 기자 | |
최시중 |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한국갤럽 사장, 기자 | |
황열헌 | 전 국회의장비서실장, 기자 | |
길정우 | 전 국회의원, 기자 | 중앙일보 |
김두우 |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기자 | |
문창극 | 전 중앙일보 주필 | |
홍사덕 | 전 국회의원, 기자 | |
박성현 | 전 기자 | 한국일보 |
박실 | 전 국회의원, 기자 | |
이동복 | 전 국회의원, 기자 | |
조순환 | 전 국회의원, 기자 | |
김성호 | 전 국회의원, 기자 | 한겨레신문 |
성유보 | 한겨레신문 초대 편집국장, 논설위원[79] | |
신동준 | 전 번역가, 기자 | |
정남 | 전 국회의원, 기자 | 경향신문 |
이민섭 | 전 국회의원, 기자 | 서울신문 |
서정아 | 전 금융위원회 대변인, 기자 | |
김인규 | 전 KBS 사장 | KBS |
성세정 | KBS 아나운서 | |
박민 | KBS 사장 | |
김세의 | 유튜버, 전 기자 | MBC |
김영수 | 전 MBC 사장[80] | |
박경추 | 아나운서국장 | |
연보흠 | MBC 정치국제에디터 | |
이용마 | 전 기자 | |
황선필 | 전 MBC 사장[81] | |
김형민 | 아주경제 논설위원, 전 SBS 기자 | SBS |
박하정 | SBS 기자 | |
손석민 | SBS 기자 | |
이동원 | SBS PD |
6.3. 기타
- 강신택 - 정치학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 강지원 - 변호사
- 계훈제 - 사회운동가
- 구평회 - 기업인
- 권영주 - 번역가
- 김민전 - 정치학자
- 김영국 - 정치학자
- 김운태 - 정치학자
- 김용구 - 정치학자
- 김현성 - 변호사
- 남궁곤 - 정치학자
- 노동일 - 정치학자, 전 경북대학교 총장
- 류준세 - 학원인
- 박봉식 - 정치학자, 전 서울대학교 총장
- 배명훈 - 소설가
- 백완기 - 정치학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 서정민 - 학원인
- 손준규 - 사회학자, 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 송민경 - 변호사
- 오명호 - 정치학자, 전 한양대학교 부총장
- 오연천 - 전 서울대학교 총장
- 위종욱 - 학원인[82]
- 유영익 -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 유홍림 - 현 제28대 서울대학교 총장
- 이만복 - 학원인
- 이재호 - 학생운동가
- 이종 - 이우의 차남
- 이종은 - 미국변호사
- 이희준 - 고고학자
- 임원택 - 경제학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 전용성 - 변호사, 의사
- 정병휴 - 경제학자, 전 조선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 정일배 - 변호사, 학원인
- 차기벽 - 정치학자
- 최정운 - 정치학자
- 하영선 - 정치학자
[1]
1946년 종로 동숭동 캠퍼스에서 발족한 이래, 1975년 관악 캠퍼스 이전 시 6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1995년 2월 현 16동 부지로 이전.
[2]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60년사는 1946.4로 기록하고 있으나, 1945년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미 정치학과가 개설되어 있었다.
[3]
개설은 1955년, 그러나 55학번은 모두 분과 이전에 졸업했기 때문에 외교학과 학적 첫 졸업생은 56학번부터이다.
[4]
사실 강좌제를 채택한 일제의
제국대학 시스템에서 학과는 행정적 구분외에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으며 행정은 법문학부•의학부 등 개별 학부에서 처리하였고 학생들은 학부 소속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1명의 주임교수, 2~3명의 교수와 조수 및 부수 등으로 구성된 강좌를 택해 단위(학점에 해당)을 이수했다. 다시 말해, 오늘날 한국 대학의 OO학과에 대응되는 것은 OO강좌(ex.재정학 강좌)라고 할 수 있으며,
이희승의 경우를 보더라도 법문학부 조선어문학전공 소속으로 취급되었고 법문학부 문학과 소속으로 구분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법문학부에서 법과/문과는
대학예과 선발시 구별되었기 때문에 구분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효석의 경우처럼 본과 진학시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5]
경성대학의 정치학 전임 교원으로는 정진태, 최희범, 전학연이 재직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진태는
유진오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정치학 전임 교수로는 정진태가 있었는데, 경성제대 법과(예과 9회)를 졸업한 좌익 계열 인사였다. 교수직에 있으면서 좌익계열 정치단체인 민전에서도 활동하였는데 국대안 파동 전후로 사직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희범은 만주
건국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최종고(1993, 서울법대의 초기사 (1945~53) -한 사상사적 고찰-)에 의하면 당시 정치학 담당 조교수로 재직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정국 당시 발간된 잡지 삼천리 등에 국제정세 관련 칼럼을 기고하였다. 전학연은 후쿠오카고와 도쿄제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이외에도 행정법 전임으로 재직 중인 이태진은 외부 잡지(금융조합회보)에서는 경성대학 교수 재직 중인 상태에서 사회주의 노선에 가까운 민주주의론, 정치학 개론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넷 모두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외교사/국제공법 전임으로는
신기석(경성제대 법과, 예과 5회)이 1946년 임용(미군정 관보)되었는데, 그는 정치학 관련 교수 중 유일하게 경성대학 해체 후의 문리대 정치학과에서도 교수를 역임하게 된다.
[6]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정치학은 법학부에서 다루고 있으며 정치학과가 따로 개설되어있는 경우도 법학부 소속으로 존재한다.
[7]
경성대학 경제학과는 백남운 등 주요 교수진이 월북하였으며, 좌익이 아니었던 최호진 등도 연희대학 등 타교로 이적하였다. 이로 인해 경제학과는 경성경제전문학교가 개편된 상과대학에 설치되었다.
[8]
예과 진학생 및 1945-46년 사이 구제 대학에서 편입한 학생으로 구성
[9]
가령 경제학자가 되기를 희망한
임원택(도쿄제대 법학부 중퇴, 해방 후 경성대학 법문학부 편입)은 서울대학교 설립 과정에서 정치학과로 적을 옮겼고, 졸업 후 문리대 정치학과, 법대, 상대 경제학과 등에서 경제학 전임 교수를 역임하였다.
[10]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2009년 발간한 『서울大學校政治學科六十年史』에 따르면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은
여순고등학교 재학 중 일제가 패망하자 1945년 10월 귀국하여
경성대학
예과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1946년 9월 정치학과로 진학한 과정을 술회하면서 당시 구제 고교, 대학 출신의 진학 및 학과 선택이 이러한 위상과 관계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또 학과 설립 10년이 지난 1956년 입학한 고건 역시 당시 문리대 정치학과의 커트라인이 근처 법과대학에 비해 10점이나 높았다고 회고하고 있는 등 한동안 이러한 높은 평가는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11]
경성대학 법학과 학생들 거의 전부가 법과대학이나 상과대학으로 통합을 거부하면서 거의 전부 문리대 정치학과로 옮겨온 것처럼 경성제대 법학과 출신 학자들인
신기석,
박일경
서임수,
김경수,
김성희 등도 서울대학교 출범 당시 대부분 문리대 정치학과 교수로 취임했는데(이에 따라 사실상 경성법전이 그대로 계승된 법과대학은 출범 당시 도쿄제국대학과 경성법전 출신들이 주류였으며, 한국전쟁 기간 전시연합대학을 거쳐 휴전 후 서울대학을 재구성하다시피 복구 하는 과정에 가서야 기존에 문리대 정치학과 강사로 있던
황산덕 등 경성제대 출신들 교수들이 법대 교수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외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는
유진오가 경성제대 후배들을 불러서 교수진을
구성하였다), 당시 정치학과 교수진은 이들
제국대학(특히 경성제대파城大派) 출신을 메인으로 하고 소수의
와세다대학(이선근),
게이오기주쿠대학(민병태) 등 일본 최고 사립대학 출신으로만 구성되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일본
구제사립대학을 졸업한 조선인이 대부분
구제전문학교格인 전문부 졸업생이었던 데 반해 정치학과의
이선근,
민병태 교수는 각각
소케이에서
예과를 거친 본과 졸업생이었다. 그런데
이용희(1917) 교수는 식민지 조선의
구제전문학교인
연희전문학교 출신으로 학벌 측면에서
제국대학이나
소케이 본과 등을 졸업한 타 교수들 대비 학벌 측면에서 차이가 나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일본제국 학제의 독•오 법학 중심 정치학과 구별되면서 당시 신학문이었던 영•미권 국제정치학에 집중하면서 외교학전공이 개설되었다는 해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편찬 <<서울大學校政治學科六十年史>>에 따르면 홀로
구제전문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던 이용희 교수를 놓고 타 교수들도 백안시했고 심지어 학생들이 교수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논문심사를 보이콧하는 사태도 있었다고 한다.
[12]
당초, 문리과대학 구성 시 학과별 정원은 20명선으로 통일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대안 파동을 거치고 기존의 경성대학 법문학부 법과에서 분리된 법학과, 경제학과, 정치학과 중 앞의 두 학과가 법학전문, 경제전문으로 흡수되면서 이들(본과생)과 예과생 중 상당수가 캠퍼스에 잔류하기 위해 정치학과로 전과를 희망하였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당시 정치학과는 문리대 중에서도 정원 80명으로 기형적으로 많은 정원을 갖고 있었다. 정치학과의 과다한 인원 문제는 50년대 초 정치학부 승격 논의를 유발하였고, 결과적으로 외교학과 독립이라는 형태로 해소되었다.
[13]
반탁운동 단체인 경성대학 동지회 운영
[14]
문리대에서는
천관우(사학과),
박용만(철학과) 등이 정치학과 외의 대표적인 운동가였다.
[15]
후진국문제연구회는 4.19 이후 다시 신진회로 개명하였다.
[16]
정치학과 재학생
이수정이 작성
[17]
지금도 농민이 아들을 공부시킬 때에는 자기와 같이 손에 흙 묻히고 일하지 않고 공짜로 먹는 벼슬(법과, 정치과)을 하게 하려고 한다."(박정희, 1962)
[18]
당시 정치학과에 재직 중인 김영국 교수가 썼다.
[19]
고석윤(
고건의 형,
상공부 상역국장), 김석준(
문공부 예술과장), 신명범(
재무부 서기관), 김세준(
민주공화당 수석전문위원)
[20]
이상신(경찰전문학교 부교장), 연하구(
외무부 본부대사), 정순근(주
서독대사), 박창남(주
가나대사)
[21]
엄영달(국회의원), 이남기(
코이카 총재), 이원호(주
스위스대사)
[22]
임영득(국회의원,
전매청 관리관), 박만영(내무부 보안과장),
전용성(변호사),
최각규(경제부총리),
오재희(주
일본대사,
외무부 차관), 신기흠(주
나이지리아대사), 한우석(주
네덜란드대사),
최호중(통일부총리,
외무부 장관), 홍성운(서울가정법원장)
[23]
이상옥(
외무부 장관)
[24]
박봉환(
동력자원부 장관),
한갑수(
농림부 장관), 국회의원),
유종하(전
외무부 장관)
[25]
최규봉(법관), 이기욱(
재무부 차관),
서석준(경제부총리),
윤항렬(국회의원,
농림수산부 차관보), 김석규(주
일본대사),
[26]
노건일(
교통부장관),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전석홍(국회의원,
전남지사),
정영의(전
재무부 장관), 권인혁(주
네덜란드대사), 정경일(주
이란대사), 허승(주
세네갈대사), 이장춘(주
오스트리아대사)
[27]
이형구(
재무부 차관), 이승곤(주
오스트리아대사)
[28]
고등고시 행정과는 14회를 끝으로 폐지되었으며, 이후는
행정고등고시로 대체
[29]
한국은행 총재 역임.
나혜석의 3남
[30]
사진은 대통령 권한대행 수행 당시
[31]
정치학, 외교사 등 외교 관련 교과가 응시과목이었으며, 일제의
고등문관시험 외교과와 과목이 동일하였다.
[32]
정치학과는 외교학과 개설 과목인 국제관계사개설을, 외교학과는 정치학과 개설 과목인 비교정치론을 전공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하였다.
[33]
당시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통합에 찬성하는 입장을 내비치며, 당시 서울대학교가 안고 있는 세 가지 과제를 언급하였다. 하나가 정치학과와 외교학과의 통합이었고, 다른 두 과제는 아시아 문명 담당 학부의 신설과 역사학과 통합이었다. 2021년 현재, 전이자는 정치외교학부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의 출범으로 달성하였으나, 여전히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의 통합은 크게 진척되지 못한 상황이다.
[34]
이에 따라 이듬해인 2010년 사회과학대학 대학 입시 선발 정원이 20명 증원되었다.
[35]
통합 직후에는 행정은 물론 자치활동 역시 2007년 설립된 "정치학전공 자치회"와 2012년 설립된 "외교학전공 자치회"가 별도의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36]
정치학과 명예교수인 구영록 교수가 국제정치 전임이었으며, 국제정치학회 회장도 역임하였다.
[37]
외교학과 명예교수인 박상섭 교수는
마키아벨리 전공자로
이탈리아어 원문 군주론 번역을 행한 바가 있다.
[38]
복수/부전공 및 자유전공학부 중 전공 희망자는 학년 구분 없이 신청요건 충족 시 개별 세부전공 진입을 신청하면 된다.
[39]
정치학전공의 논문 연습과목은 당초 존재하지 않았으나 학과 통합 이후 신설되었다.
[40]
정치사,
행정학, 방법론 포함
[41]
전자에 해당하는 교과목은 정외학부 소속이되
행정대학원 위탁 개설, 후자도 정외학부 소속이되
법학전문대학원 위탁 개설
[42]
외교사, 국제법 포함
[43]
외교학과 시절에는 국제정치이론과 한국외교사 과목이 모두를 경악시키는 양의 리딩으로 유명했는데,
하영선 교수의 퇴임 이후 종전의 절반 이하로 감소하였다. 그래도 많다
[44]
교수마다, 해마다 주제가 다르며 1개 학기에 같은 제목의 강의가 여러 개 개설된다. 에티오피아의 근대화를 주제로 구성된 수업도 과거 존재.
[45]
1980년 이후 처음으로 임용된 자교 박사 출신 교수이다.
[46]
소속 전공은 외교학과
[47]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중퇴
[48]
1948년 정치학과 전임강사 재직('48년 문리대 명부) 6.25 전쟁 이후
고려대 경제학과로 이직하였으나, 1956년 요절
[49]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는 1937년 이후 학과를 3개 과정으로 분류하였으며, 제1류는 법률, 제2류는 정치, 제3류는 경제학과에 상당한다.
일제 패망 후, 1945년
경성제국대학이
경성대학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각 류는 각각 법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로 개편되었다.
[50]
문리대 정치학과는 1947년 7월 11일 제1회 졸업생부터 1952년 9월 30일 제7회 졸업생까지는 문학사를 수여하였고 1953년 3월 28일 제7회 후기 졸업생부터 정치학사 수여
[51]
도쿄제대 법학부 2년(1943~1945) 수료 후 편입
[52]
서울대학교 종합화 이후, 경제학과로 소속 변경.
[53]
서울대 법과대학 중퇴
[54]
표절로 물의를 빚어 사직
[55]
분과 전까지는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56]
공주사대 재직 중 서울대 외교학과 창설 직후인 1960년 서울대에 임용되었으나 이듬해인 1961년 의원면직 후 다시 공주사대로 돌아가 정년을 맞았다.
[57]
전임강사로 재직하였으나 1962년 군사정권에 발탁되어 강단을 떠났다. 재직 시 이동희 육사 교수(예비역 육군 준장)의 석사 논문을 지도하였다.
[58]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한 박준규와는 동명이인
[59]
1991년까지는 법과대학 외교사 전임으로 재직
[60]
동문 초청행사
[61]
사회대 학생회 대의원으로는 일치단결, 나침 각 반의 학생회장이 참여
[62]
다만, 준비요원인 2학년, 팀원 1학년 모두 세부전공 진입 전이므로 정치학전공/외교학전공 진입 여부를 정하지 않은 상태.
[63]
단, 1955년 일회성 행사로 문리대에서 서울대학 모의국회가 개최된 바 있다.
[64]
한반도 통일 상황을 가정한 모의 연방의회
[65]
동아일보 부형권 기자(외교89)의 칼럼 인용.
#
[66]
2020년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유행으로 순연
[67]
이른바 '3대 고시'의 명맥을 이어받은 로스쿨(구 사법시험),국립외교원(구 외무고시),5급공채(구 행정고시)에 졸업생의 3분의 2 가량이 진출한다.
[68]
01학번 14명, 02학번 17명, 03학번 21명
[69]
09학번 16명, 10학번 11명, 11학번 19명
[70]
통합 이전인 정치학과 99학번의 경우, 19명(사법시험 14명, 변호사시험 5명)이 법조계에 진출하여 학과 졸업생 중 과반수가 변호사가 되었다.
[71]
해외대학 제외
[72]
제9대, 제12대 차관 역임
[73]
45대 및 46대 역임
[74]
1, 2차관 역임
[75]
관선시절 전라남도지사 및 서울특별시장 각 1회
[76]
제21대 국회 김웅 의원과는 동명이인
[77]
중앙일보에서 이적
[78]
한국일보에서 이적
[79]
동아일보 해직 기자
[80]
서울신문에서 이적
[81]
동아일보 기자 출신
[82]
사회대 학생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