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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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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183c><colcolor=#fff> 제17대 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
김영수
金榮洙 | Kim Young-su
파일:김영수1935.jpg
출생 1935년 1월 23일
경상북도 청도군
사망 2024년 8월 2일 (향년 89세)
본관 김해 김씨
재임 기간 제17대 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
1988년 11월 2일 ~ 1989년 2월 10일
학력 경북고등학교 (졸업 / 34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 / 학사)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수료)
가족 배우자 서정진
장남 김세훈, 장녀 김수진, 차남 김세의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0
경력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
중앙일보 정치부장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
중앙일보 논설위원
한국기자협회 회장
문화방송 보도국 방송위원
문화방송 보도국장
제10대 국회의원 (전국구 / 유신정우회)
한국연합광고 이사
한국연합광고 대표이사 사장
제17대 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
한국종합화학공업 이사장
한국방송개발원장
강서방송 대표이사 사장
강서방송 고문
일출봉기업 회장
1. 개요2. 생애
2.1. 사망
3. 여담4. 참고 자료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언론인, 정치인.

2. 생애

1935년 1월 23일,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34회)[1],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1958년 연합신문 기자로 입사한 후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근무했다. 1960년 합동통신에 있을 때는 4.19 혁명 직전 마산에서 일어난 시위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1964년 박정희 정부가 신문 기사와 논평을 정부가 심의해서 신문 발행을 정지·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하자 국회 기자단을 대표해 '24시간 취재거부 시위'를 주도하는 등 언론윤리위원회법에 반대하는 투쟁에 앞장섰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8월 17일 기자협회 추진위원장으로서 전국 19개 언론사 기자 200여 명과 함께 한국기자협회를 창립했다.

파일:김영수 리즈시절.jpg
1964년 8월 17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총회 당시 연설하는 모습.[2]

1965년 중앙일보로 이직해 정치부 차장을 지냈고, 1966년부터 1967년까지 제3대 한국기자협회 회장을 지냈다. 1969년 정치부장으로 승진한 후 편집국 부국장, 논설위원(1972~1973) 등을 거쳐 1973년 문화방송 보도국 방송위원으로 이직했으며 동년 8월부터 해설위원으로 이동한 후 10월 보도국 부국장도 겸했다가 1974년부터 1978년까지 보도국장으로 재직했다.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유신정우회 전국구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 문화방송 자회사인 한국연합광고 상임이사(1983~1984), 사장(1984~1988)을 역임하다가 1988년 11월 2일 전임 황선필 사장이 파업으로 사임해 공석이 된 문화방송 사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극심한 노사분규 끝에 '유신 사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1989년 2월 10일 최석채 회장과 함께 3개월 만에 사퇴하면서[3][4] MBC 역사상 최단명 사장이 되었다.[5]

이후 한국종합화학 이사장, 한국방송개발원장, 강서방송[6] 사장 및 고문 등을 지내다 2004년부터 일출봉기업 회장으로 재직했다.

2.1. 사망

2024년 8월 2일 21시 35분, 향년 89세로 사망했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조화와 국민의힘 대변인 정광재의 조문을 비롯하여 여러 전현직 국회의원이 조화와 조문을 하였고, 정치, 경제, 사회, 금융계 지도자들의 조화와 조문이 이어졌다.

둘째 아들 김세의 일베에 부고를 올렸다.
[ 커뮤니티 규정 위반으로 삭제된 가세연 김세의 대표의 부친상 조롱 자제 호소문 원내용 펼치기 · 접기 ]
파일:김영수 부고.png
제목:김세의 본인입니다
작성자:카리나윈터김채원웬디 [7]
시간:03:29:11 [8]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너무나 예정에 없던 소식이라....

지방 출장으로 KTX를 타고 내려가던 중 급하게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하필 논란의 중심에 선 지금

저에 대한 욕설과 비난은 감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에 대한 조롱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성범죄자 쓰레기 이근새끼는

조의를 빙자해 패륜적 작태를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근 당나귀 씨발새끼 성범죄자는 제가 목숨걸고 지옥으로 보내겠습니다.

일베 게시판 이용자 여러분

제가 일베 이용자 여러분들께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습니까?

저는 MBC 기자를 할때에도 일베기자라는 낙인을 받더라도 끝까지 일베를 응원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제가 이렇게 일베에서까지 조롱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저는 여혐 커뮤니티 펨코를 비난하면서도

끝까지 일베의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일베에도 인간 이하의 글들을 작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베에서 저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을 두고 잔치국수 운운하는 패륜적 발언을 하는 쓰레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베의 가치와 중요성을 항상 공개적으로 말해왔던 사람입니다.

일베가 이렇게 오염되어서 되겠습니까?

너무나 속상하네요.

펨코 등 다른 커뮤니티에서 조롱하는 것은 그러려니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10년 넘게 응원했던 그리고 언제나 일베 기자라고 조롱까지 감수했던 저에게

지금 일베에서까지 저의 아버지에게까지 조롱 게시글을 올리는 현실

너무나 슬픕니다
출처: #

3. 여담

4. 참고 자료

5. 둘러보기

파일:통일주체국민회의_휘장.svg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제1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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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우회
77석
갈봉근 고재필 김봉기 김성환
김세배 김영광 김영수 김영자
김옥렬 김용호 김윤환 김종하
김주인 박동묘 박준규 박현서
박형규 백두진 백영훈 변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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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희 최우근 태완선 한기춘 한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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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동 김유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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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만제와 동기다. [2] 현수막에 ' 언론윤리위법을 즉시 철폐하라'라고 적혀 있다. [3] 사장 취임 당시 노조는 유신정우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며 파업했고 최석채 회장, 강성구 전무 등과 함께 출근저지 투쟁을 당했다. 노조의 저지로 취임식도 치르지 못했다. [4] 최석채 회장 역시 김영수와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에는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매우 비판적인 언론인이었다. 대구 매일신문 테러 사건,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 당시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며 언론자유를 수호하다 고초를 겪었고, 1971년 12월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국가보위법 지지 보도를 하라는 압력에 굴하지 않고 조선일보 주필직을 사임하였으나 1973년 이후 문화방송 회장,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으며 친정권 인사로 돌아서게 된다. [5] 2006년 MBC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밝히기를 1990년 KBS 사태 당시 서기원 KBS 사장처럼 공권력을 동원해 사장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공권력을 들이밀 수 없다며 사퇴했다고 한다. [6] 옛 송원그룹 계열 케이블SO. 2004년 태광그룹으로 매각되어 2006년 '티브로드강서방송'으로 변경된 후 2013년 티브로드한빛방송으로 합병되었다. [7] 김세의 본인 닉네임 [8] 정확한 게시 날짜는 8월 3일로 추정된다 [9] 여담으로 김세의 역시 아버지 김영수와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에는 진보 성향의 기자였다가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 이후 보수 성향으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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