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言 論) / Press, Journ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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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개인이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 기자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신문, 인터넷, 방송사 등 매체를 이용해 그 정보를 뉴스의 형태로 보도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주장을 논설한다. 사전적으로는 정보전달, 여론형성, 의제설정, 환경감시, 오락제공의 5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2. 법적 의미
헌법의 '언론ㆍ출판'의 자유에서 말하는 '언론'은 (개별 법률의 언론 개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행위 일반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헌법 제21조의 언론ㆍ출판의 자유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발언과 출판의 자유(freedom of speech and press), 독일 기본법 제5조의 언론의 자유(die Pressefreiheit)와 보도의 자유(die freiheit der Berichterstattung)에 상응한다.언론중재법의 "언론"이란 방송,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 뉴스통신 및 인터넷신문을 말한다(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국내에서는 소위 말하는 '메이저 언론'이라 불리는 신문사, 방송사 등과 이외 수많은 매체들이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
3. 역사
언론의 시작은 고대 로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59년 집정관으로 집권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각종 의사록[1]을 원로원들과 시민들을 위해 매일 취합해서 발표하라고 지시했는데 집중된 정치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일간 관보의 정식 명칭은 악타 디우르나 포퓰리 로마니(Acta Diurna Populi Romani: 로마 인민의 일일 활동)이다. 처음에는 원로원과 민회의 의사록을 공개토록 했고 후에는 황제의 칙령, 정치 토론, 재판 결과, 주요 인사의 부고, 명절과 축일 등을 수록하는 등 현대의 신문에 보다 가까워진 형태를 보였다. 이 악타 디우르나는 언론의 시조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매일'이라는 뜻의 디우르나(Diurna)가 영단어 저널(Journal)의 어원이 되었다.4. 언론의 의의와 한계
4.1. 의의
대한민국 언론은 과거 일제시대 해방과 군부시대 종식,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언론이 본래의 제 기능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국민을 대변하는 정의의 목소리이자 국가의 수호자가 된다. 일부 관계자들만 알고 넘어갈 부정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누구인가 생각하면 답은 어렵지 않다. 이렇게 대중에게 정보 전달을 하여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의 뒤를 이은 제4의 권력으로 비유된다.양날의 검과 같은 형태로 언론에 대한 비판들은 언론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도 많지만 언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생긴 것에서 유래되는 것 또한 상당하다. 대중들은 이를 혼동하여 언론 자체를 욕하는 경우도 있는데 언론의 입장에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 게다가 언론에서 제대로 문제점을 파고들어 지적하더라도 대중들이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함몰돼서 언론을 비난하는 경우들도 존재한다.[2]
게다가 언론이 정부의 하수인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조차도 정부에서 언론의 힘을 알고 이를 악용하기 위해 언론을 속박하고 제약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방적인 주장을 보도해서 보내는 것을 노골적이거나 암묵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사례도 결국 언론은 자유를 빼앗기고 그들이 강요하는 대로 방송을 하면서 이용당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언론이 강요당하지 않았음에도 당사자들 스스로 이득을 위해 타협하는 경우들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것은 언론의 잘못이 분명히 맞다.
현재 점점 고도화되는 사회에서 개개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사는 것에도 매우 바빠서 사회가 올바르게 돌아가는지 그렇지 않은지 어떠한 일이 생기는지 아는 것이 점점 힘들어 지고 있는 사회다. 게다가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한계와 제약으로 시민들이 일일이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고 위법을 하거나 비정상정인 운영을 하는지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감시와 견제가 없다면 정부와 기업이 무슨일들을 하는지는 이미 사회에서 명백하게 입증되었다.
감시와 견제가 존재했음에도 정부와 기업에서는 여전히 편의와 복잡한 과정의 생략을 통한 효율성을 운운하며 공정성과 정당성을 무시하고 불도저식 업무처리를 해왔었다. 이러한 비정상들을 감시하고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언론이며 국민들은 언론에 대해 항상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며 언론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항상 확인해야만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을 시민과의 관계나 문화 관점에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산업으로의 언론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저열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 구조화된 비정상적인 언론산업에서 생산하는 내용물의 품질이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조직이 합리적인 경제기구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는 대중권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기업이나 인물들은 대중권력을 이해하고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삼는다. 언론산업의 문제는 자신들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권력 카르텔을 통해 살아남기 때문에 발생한다.
언론이 생존을 위해 정치인, 대기업 등과 유착하게 되면 법도 개정해주고 인적 진출도 시켜주는 권력을 위해 언론플레이를 통해 선동을 일삼고 언론 자신이 권력이 된다. 특히 이런 언론은 선거 결과에 관심이 많다. 선거가 자신들의 생존에 직결된다고 보고, 선거에 개입해서 판을 만들여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3]
일부에서는 정치판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는 왜곡과 여론조작과 정보조작이야말로 언론의 본질이자 존재의의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러한 인식은 언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폭로의 시발점이 JTBC가 입수한 태블릿이었다.
비록 우스갯소리이기는 하지만 '"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마법의 단어'라는 말은 언론의 순기능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 중 하나이다.
4.2. 한계
당신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보가 없는 사람이다. 당신이 신문을 읽는다면, 당신은 잘못된 정보를 얻는 사람이다.
마크 트웨인
사회가 복잡해지고 거대해지면서, 직접적인
경험만으로는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매체를 통하여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사고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이러한 대중매체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신문기사도
기자가 보고 들은 내용을 쓰는 것이며, 방송 또한 촬영한 내용을 편집을 거쳐서 방송하기 때문에 좋건 나쁘건 대중매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게이트 키퍼의 존재로 인해 중요한 내용들이 걸러질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마크 트웨인
현대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매체를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선동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언론을 장악하는 것으로 독재자의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냐면 권력 중 언론권력이 제일이라고 하는 말까지 있을 정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는 유용한 길이지만, 그만큼 타락하기도 쉽기 때문에 대중매체를 접할 때에는 반드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PR을 정치적으로 가장 먼저 활용한 것이 아돌프 히틀러라는 것을 상기시키자. 현대에도 북한의 김정은이 있다. 많은 선진국에서도 그 정도만 덜할 뿐 언론과 유착 관계를 맺으려는 권력층을 볼 수 있다. 즉,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부정을 대중에게 폭로하는 역할을 하는 줄 알았는데, 도리어 그 반대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왓치맨에서 나오는 "누가 감시자를 감시하는가"란 대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물론 역사가 길고 신뢰 높은 정론지라면 적어도 인터넷 커뮤니티, SNS 보다 믿을 수 있지만, 그래도 비판적 시각을 버려서는 안된다.
왜곡 보도가 일어나는 원인은 언론계의 정경유착에 취약한 수익 모델에 있다. 과거처럼 시민의 구독료로 언론이 유지되던 시절에는 정권의 탄압을 받더라도 데스크도 자기 월급 주는 시민 상대에 최소한의 선은 지켰다. 하지만 현재는 뉴스 기사를 돈 내고 유료로 구독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언론사도 정부 광고나 기업 광고가 수익의 전부이다. 즉 조중동이건 한경오건 언론사 기사는 독자 입장에선 광고 노출을 위해 깔아두는 미끼 수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같은 이유로 국가(외국 포함)의 예산 및 광고 투자나 금융계의 자금 로비에 취약하다. 국가적인 예시로 차이나머니가 있고, 금융계의 예시로 게임스탑 주가 폭등 사건에서 금융투자자들의 도를 넘은 황금만능주의 및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게이머들을 전 세계 언론이 전부 게이머들의 투정으로 묻어버리려는 행태를 보인 것이 있다.
왜곡 보도는 2010년을 기점으로 현재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언론에서 유튜브와 같은 매체에서 채널이 개설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관심도를 높여 구독자를 모으기 위해 독자들에게 일부러 혼란을 주는 제목을 작성하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거짓말을 기사로 작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4] 이 때문에 언론의 자유도와는 달리 언론의 신뢰도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언론계에서는 이 신뢰도 문제를 지적하면 마치 언론의 자유 자체를 침해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조사한 '언론인들이 스스로 느끼는 언론 자유도'는 2009년 3.06점, 2013년 2.88점, 2017년 2.85점으로 하락세를 보였다가 2019년 3.31을 기록하면서 지난 10년 이래 가장 높았는데, #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최근 공개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에서 한국인들의 뉴스 신뢰도는 21%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40위로 나타나 #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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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경우 국제뉴스 보도를 분석하면 거의 미·중·일 같은 특정 국가들에만 기사가 집중된 편향성이 심하다. # 또한 특정한 나라(대부분 미국· 영국) 레거시 미디어들의 기사 내용을 그대로 번역하는 수준이고, 그 기사에 대한 국내 언론과 기자의 문제제기, 비평, 비교 등은 찾아볼 수도 없다.[5] 그 번역마저 똑바로 하면 모르지만, 발번역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한국 언론사에서는 항상 RPG를 로켓 추진 수류탄, 또는 로켓 수류탄이라고 직역해버리는 요상한 버릇이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중모드를 의미하는 Dual Mode를 가져다 두 개로 번역하는 구글번역기보다도 심각히 못한, 국어국문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대학생도 안할 것 같은 역대급 대참사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한국 언론사들의 전체 문맥은 안보고 단어 하나 하나의 개별 번역만 해놓고 대충 순서만 끼워맞추는 식의 발번역 문제는 극초기 구글 번역기 이상으로 심각하다.
최근 빅테크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언론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기도 하다.
5. 각종 오해와 통념들
-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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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일부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컴퓨터 및 인터넷 사용 및 중독의 급증으로 "
컴퓨터는 중독상자"라는 말도 있다.
다만 이제는 텔레비전이 상자가 아니라 얇은 판때기가 됐다. - 설령 바보상자가 맞을지라도 최근에는 양질의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나오고 널리 퍼지는 등 보완을 해 나가고 있다.
- 오히려 최근에는 생활의 지혜 등을 제공하는 TV 프로그램들의 보급으로 인해 적절한 텔레비전 시청은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적이 있다.
- 그리고 재난발생시 사람을 살리는 역할까지 한다.[6]
- 어떤 논란중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있는 것은 논란 당사자가 언론들을 사주하고 협박하기 때문이다. 이를 고발하는 인터넷 댓글을 쓰면 곧바로 블라인드 처리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 해당 논란이 외압을 겪든 겪지 않든, 사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특정인에게 명예훼손이 될 위험이 있거나 사이트 주제와 무관한 경우에는 얼마든지 삭제될 수 있다.
- 언론사들이 반응을 잘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취재 및 탐문 결과 한쪽의 일방적인 진술만이 있을 뿐 교차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팩트의 부족.
- 물론, 언론이라고 무조건 중립적이고 진실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아니라서, 게이트키핑을 통해 언론이 자기들 이해관계에 맞지않는 내용은 보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음모론 수준의 낭설을 끌고 오지 않아도, 당사자의 협박때문에 특정 사건에 대한 내용이 의도적으로 보도되지 않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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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언론이나 사이트 관리자들의 압력(?)의 이유로는 그렇게 과격한 음모론적 발상 없이도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다. 저 멕시코 마약 카르텔도 이 정도로 완벽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마약 카르텔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국제사회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심지어 이들조차도 언론의 눈과 귀를 완전히 가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이들은 합법적인 단체가 아니니까 언론들과의 유착이 어려운 것도 있다. 검찰이나 기업 관계자 같은 유력자라면,
어느 정도 언론과 유착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정재계 인사들과 유착한 언론사와 정반대 논조를 띄는 언론사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 사실이 폭로된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각도기는 항상 잘 챙겨 가지고 다니자
- 우리 사회의 여론은 메이저 언론사들이 꽉 잡고 있으며,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여론은 얼마든지 좌지우지될 수 있다. 우리는 언론의 이익에 철저히 봉사하고 있으며, 그들이 보여주는 대로 보고, 그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을 뿐이다.
-
어떤 의미에서는 일정 부분 진실을 담고 있는데, 예컨대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라는 용어는 언론이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제설정(agenda setting)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과연 언론이 의제를 만들고 이끄는지, 아니면 대중이 만든 의제 중에서 언론이 지네 입맛에 맞는 걸 고르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는 커뮤니케이션학자 사이에서도 매회 꾸준히 오르내리는 문제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이 "알 수 없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교과서에는 언론이 정책에 대한 해설과 비판을 제시하여 여론을 이끈다고 말한다. - 그러나 이런 생각이 아예 배후세력 음모론으로까지 이어지면 곤란하다. 언론이 힘을 쥐고 있는 건 맞지만 대중을 무기력하게 만들 만큼 강한 힘은 아니다. 예컨대 언론인들에게 개혁의 칼날을 들이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보자. 많은 언론인들이 대놓고 징징거리며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문제가 많은 악법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 사례 언론 관련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멋모르는 대중들은 언론들이 입을 모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두들길 때 그것에 맹목적으로 찬동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투덜거림에도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대중들도 언론이 어떤 프레임을 만드는 것을 감지했을 때는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일반적일지는 모르겠으나, 흔한 음모론에서 말하는 배후세력의 지위로까지 격상될 만한 장악력은 명백히 아니다.
- 언론에서도 자기네 밥그릇을 깨면서까지 소신있게 정의를 부르짖고 진실을 보도하는 양심 있는 기자들도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칼럼 및 사설들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환영하는 한국일보의 한 논설위원
-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중립적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논조의 두 신문을 함께 펼쳐놓고 관련기사를 서로 대조하며 읽으면 된다.
-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상당히 쉽지 않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논조가 다른 신문들은 대부분 의제설정(agenda setting) 자체도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 모월 모일 하루라고 하더라도 정치/사회/경제/문화 등에서 이슈는 많이 있으며, 편의상 A, B, C, D, E, F 6가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쪽 논조의 두 신문은 각각 A, B, C, 그리고 A, C, E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저쪽 논조의 두 신문은 각각 B, D, F, 그리고 D, E, F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높다. 가판대에 놓인 신문사들의 헤드라인만 보더라도, 이쪽 신문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반면 저쪽 신문은 저 사건에 주목하고 있는 차이가 자주 보인다.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나 대한항공 086편 이륙지연 사건,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정도쯤 되는 엄청나게 큰 이슈가 아닌 이상 동일한 사안에 대한 교차검증은 의외로 쉽지 않다.
- 해외 신문사들도 점차로 모니터 화면을 반반 나누어 'blue feed', 'red feed' 같은 식으로 보수들이 좋아하는 기사와 진보들이 좋아하는 기사를 페이스북 조회순으로 대조해 보여주고 있다. 두 집단이 너무나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슈별 대조에는 한계가 있으며, 같은 사안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접하기보다는 이쪽에서 전혀 접하지 못했던 사안들을 저쪽에서 확인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 다만 중립적이게 될 수 있는가는 차차하고, 서로다른 기조의 신문사를 둘다 보는 것이 여러 이슈를 접하여 시야를 넓히고 한 쪽 관점에 매몰되지 않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나 요즘 시대에는 알고리즘의 발달로 점점 이용자가 보고 싶은 내용만 보게 되면 극단적인 견해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국내 언론보다 외신 보도가 더 공정하고 중립적이며 객관적이고 신뢰성이 있다.
- 옥스퍼드 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매년 발행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의 언론신뢰도 부문에서 세계 주요 40개국 중 대한민국은 4년 연속 꼴찌를 기록중으로, 국내 언론이 외신보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 # # #
-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언론의 수준이 떨어지고 언론에 대한 전체적 인식이 안 좋아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이지 외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을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외국에도 기레기나 막장 채널, 편파, 왜곡보도로 악명높은 황색언론이 많이 존재한다. 찌라시로 악명높은 Bild나 The Sun 등등... 미국 언론은 우리나라 언론보다 색깔이 더 명확해서 당장 미국 대선 때 CNN은 힐러리를 대놓고 지지했고, FOX NEWS는 트럼프 지지 색을 드러냈다.[7] 잘못 보다가는 한쪽의 입장에 치우칠 수도 있다. 또한 외국에도 시민기자 제보 같은 것을 유명 통신사 이름으로 올리기도 하므로[8] 영어로 적힌 기사라고 해서 무턱대고 동경하고 신뢰해서는 안 된다.
- 외신이라고 해도 결국 지구는 이어져 있으므로 국내세력과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완전한 제3자의 입장이 될 수는 없다. 언론도 기업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이상 자본의 흐름에 얽매여있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외신도 예외가 아니다. 간혹 한국인이나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이 국내 언론의 편향적인 관점으로 기사를 외신에 투고해 놓고는 해외의 일반적인 의견인 척 국내외 여론을 호도하는 경우도 있다.더 심할 때는 아예 검은 머리 외국인처럼 이름과 국적만 외국인 한국인이 이런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기도 한다. 이는 겉모양만 외신일 뿐 실질적 내용은 국내언론이나 다름없으므로 이를 토대로 국제여론을 가늠하는 것은 몹시 위험하다. 애초에 이런 기사가 실리는 외신은 외국에서도 신뢰도가 낮은 편이다.
- 같은 성향의 언론사끼리는 서로 친하다.
- 경우에 따라 진실. 만일 진영논리가 필요하거나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논리가 발동한다면 서로 친한 척을 한다(…) 그리고 정치성향이 비슷하다는 것은 공유하는 패러다임도 비슷하다는 것이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도 비슷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의외로 죽이 잘 맞을 수도 있다.
- 그러나 또 어떤 경우에 따라서는 꼭 친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처음에는 하나의 언론사였는데 일부가 내분을 겪은 뒤 뛰쳐나가서 새로운 언론사를 세운 경우.' 즉 공유하는 패러다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렇게 서로 유사함에도 함께 일하기 싫어할 만큼 심각한 갈등과 감정의 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사내 정치싸움과 파벌, 언론 외적인 문제들에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개신교계에서 교파들이 그렇게 사분오열된 상황도 이와 꽤 유사하다.
6. 언론 관련 명언, 명대사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뭐하러 개돼지들한테 신경쓰고 계십니까?
그들은 술자리,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이에게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이에게 울거리를, 욕하고 싶어하는 이에게 욕할 거리를 주면 됩니다.
영화 내부자들 중, 조국일보 이강희[11]
그들은 술자리,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이에게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이에게 울거리를, 욕하고 싶어하는 이에게 욕할 거리를 주면 됩니다.
영화 내부자들 중, 조국일보 이강희[11]
매스 미디어의 존재가 현대에 있어서의 사회 변혁의 페이스를 가속화시킨 것은 틀림없다.
S.하야가와(미국의 교육자)
S.하야가와(미국의 교육자)
라디오는 인간 부재의 장치이다.
피가도(스위스의 철학자)
피가도(스위스의 철학자)
문학과 저널리즘의 차이는 저널리즘이 읽어서 재미없는 것이며, 문학이 읽히지 않는 점이다.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
여성은 존재하는 것으로 뉴스감이다.
저널리스트의 속담
저널리스트의 속담
저널리즘의 힘은 크다. 세계를 설득할 수 있는 유능한 편집자는 모두 세계의 지배자가 아닐까.
토머스 칼라일
토머스 칼라일
저널리즘은 이미 모든 국내에서 최고의 힘이 되었다.
S.보울즈(미국의 편집자)
S.보울즈(미국의 편집자)
7. 매체에 따른 종류
8. 위키와 언론
일단 위키에서도 레퍼런스를 찾을때는 언론을 많이 참조하는 편이다. 다만 나무위키는 제도권 언론이라는 타 위키에는 없는 개념이 있어 토론시 정해진 언론사의 기사만 근거로 인정되기도 하니 유의해야 한다.9. 관련 문서
- 언론 관련 정보
- 방송 관련 정보
- 가공의 언론
- 가짜뉴스
- 게이트키핑 - 차단자. 걸러주는 필터. 방송 쪽을 참고하자면 지면상의 이유로, 혹은 시민들이 알 필요 없거나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차단하기도 하고 정책 쪽은 특정 정책이 실현되도록 조장한다. 순기능이든 역기능이든, 우선은 차단하고 거른다는 점은 분명하다.
- 귀스타브 르 봉
- 국개론
- 군중심리
- 권력
- 기레기
- 메이저 언론
- 미국 언론의 편향성
- 선동
- 중우정치
- 언론사
- 언론인
- 언론자유지수
- 언론플레이
- 여론조작
- 율리우스 카이사르
- 의료 언론
- 저널리즘 토크쇼 J
- 파나마 페이퍼즈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흑색선전
- 황색 언론
- 조중동
- 한경오
- 미디어 바우처
- 공영방송
- 제도권 언론
[1]
회의 내용과 결과를 기록한 문서
[2]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 대표적인데 이때 진보, 보수를 초월해서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대중들은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한 한 언론사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서 비난을 퍼붓었다.
[3]
정권이 기자출신들에게 기관장 자리를 주거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하지 않거나 청와대 참모로 들이지 않는 경우 이런 경향이 강해진다. 다양성과 자유가 보장되는 것으로 평가 받는
미국조차도
언론 신뢰도는 정치인보다 낮을만큼 왜곡이 상당한 수준이다. (2016년 기준)
[4]
외국에 나간 사람들도 느끼고 있다고 한다.
[5]
일부 기사는 번역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왜곡이 될 수도 있다.
[6]
일본에서 어떤 지역의
긴급지진속보가 전국으로 송출되는 방송사는
NHK가 유일하다. (다른 언론들은 지역민방이기 때문에 지진발생지역에서만 송출된다.) 그래서 타 지역에서 지진피해지역의 정보를 수집할 때에는 NHK가 많이 유용하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다음 날인 4월 15일의
NHK 뉴스 오하요 닛폰에서 구마모토 현청의 재해대책본부의 모습을 중계할 당시 대책본부의 화면에 NHK의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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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언론색만 강할 뿐 보도 자체는 신뢰할 수 있는 반면 폭스 뉴스는 오보율이 CNN의 3배에 가까운 60%에 육박하기에
가짜 뉴스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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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통신사는 사실여부를 확인하지만 일부 외신은 면책사유를 위해 "Not verified by(검증되지 않은)..." 표현을 기사 속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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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언론을 통제하여 하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론은 여론을 통제하고, 민주국가에서 정부는 국민 즉 여론에게 통제당하기 때문에, 통제의 일방성을 주장하기에는 미묘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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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언론을 대표하는 명언으로 소개되는데, 사실은 언론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지식인 집단(
관료제)에 대한 말이다.
군대라는 무력집단를 통제하는 지식 전문가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11] 놀랍게도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한 고위공무원이 나타났다.
군대라는 무력집단를 통제하는 지식 전문가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11] 놀랍게도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한 고위공무원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