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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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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인구4. 특징
4.1. 도시건설과 유지보수(베네치아 공학)4.2. 곤돌라의 도시4.3. 베네치아 시민4.4. 오버투어리즘
4.4.1. 도시 입장료 도입
5. 관광
5.1. 구경거리5.2. 여행 시 주의점
6. 운하와 환경 문제7. 관련 작품
7.1. 매체에서의 등장7.2. 베네치아를 모델로 한 도시/국가

[clearfix]

1. 개요

<nopad>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이 도시는 너무나 아름답다"
- 클로드 모네[4]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의 중심 도시. 동시에 해당 도시를 수도로 삼던 과거의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명이기도 했다.

흔히 베니스(Venice)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영어식 발음이다.[5] 본토 이탈리아어 발음으로는 베네치아(Venezia)다. 프랑스어로는 브니즈(Venise), 독일어로는 베네디히(Venedig)라고 부른다. 일본어는 ヴェネツィア, ヴェネーツィア, ヴェネチア, ベネツィア, ベネチア 표기가 혼용된다. 가장 많이 쓰이는 표기는 ヴェネツィア. 인구는 2017년 기준 26만 명으로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이 중 대부분은 바다 위의 구도심이 아니라 육지 쪽의 신도시에 살고 있다.[6] 그리고 신도시에 베네치아의 창구인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7]이 있기도 하다. 현대 도시로서의 중심지는 신도시로 상당히 옮겨왔고, 구도심은 관광지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구도심 도시 전체에 수로가 뚫려 배를 타고 다닌다 해서 도시로 유명하며, 현재도 베네치아 구도심 내부에는 자동차 도로가 하나도 없다. 구 도심 입구쪽의 로마광장(Piazzale Roma, 기차역 옆에 있다)에 시외버스와 차들이 돌아다니지만,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단 한대의 차량도 볼 수 없다. 보행자도로도 좁은 다리나 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오토바이조차 한 대도 볼 수 없다. 따라서 새벽에도 차량 소음 등은 전혀 없다.[8] 거기에다가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벌금을 문다. 따라서 현재에도 구도심 내 이동수단은 튼튼한 두 다리와 수상택시, 수상버스(바포레토) 뿐이다. 심지어 이들도 운행시 발생하는 파도로 인한 도시 균열을 막기 위해 좁은 운하에서는 7km/h, 넓은 곳에서는 11km/h 정도로 속도 제한을 두고 있다. 따라서 무라노 섬이나 부라노 섬을 가지 않는 한 오히려 걷는게 더 빠를 경우도 있다.

베네치아 신도시 지역의 도시철도인 베네치아 트램의 1호선의 남쪽 종점이 구도심의 베네치아 피아찰레 로마(Venezia Piazzale Roma)역이다. 또한 베네치아의 중앙역인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Venezia Santa Lucia)역도 구도심의 북쪽 끝에 있다. 인구 대부분이 신도시 지역에 사는 베네치아의 인구 구조를 볼 때 실질적인 중앙역은 신도시 지역에 있는 베네치아 메스트레(Venezia Mestre) 역으로 볼 수도 있다.

수많은 운하의 물길이 도로를 대신하는 특이한 도시구조 덕에 수상도시의 대명사가 되었고, 운하가 촘촘하게 들어찬 세계의 다른 도시들도 대부분 xx의 베네치아[9]라는 식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웨덴 스톡홀름은 '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며, 그 외에 독일 함부르크 밤베르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포르투갈의 아베이루, 중국 쑤저우, 일본 야나가와 등이 그러한 케이스이다. 대한민국 김포시, 방글라데시도 아시아의 베네치아라고 한다. 도시보다는 규모가 작은, 중국 저장성 퉁샹시에는 수향마을인 우전진이 있다.[10] 작은 운하가 있는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리틀 베니스와 코츠월드 영국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버튼 온 더 워터( Bourton-on-the-Water, 버턴 온 더 워터)가 있는데 둘 다 베네치아와 비교해서는 물의 수위가 낮은 편이다. 자매품으로는 xx의 암스테르담이 있다. 그리고 조금 생뚱맞지만 베네수엘라라는 국가 이름도 여기서 따 온 것이다. 베네수엘라 원주민들이 수상가옥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처음 본 유럽인 탐험가가 베네치아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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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동북부에 거주하던 베네티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는 친절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베네티족의 준마는 뛰어나기로 유명해서 그리스 본토나 식민도시에서도 말을 구하기 위해 베네티족에게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기원전 3세기경부터 고대 로마에게 동화되어 서서히 흡수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로마 시대에는 '베네티아 에트 히스트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11] 현재에도 이 지역에는 베네토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과거 베네티아 에트 히스트리아에 속했던 지역이다. 그런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던 시점에는 '베네티아'가 게르만족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해안가를 일컫는 말이 되었으며, 그 때문에 도시 베네치아에 베네치아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쨌든 고대부터 베네티아 해안가의 석호지대에는 어부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로마인들은 이들을 " 석호 거주민(incolae lacunae)"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본디 습지대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미개발지에 가까웠으며,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베네치아는 5세기경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5세기 고트족 훈족 등 여러 이민족들의 약탈을 피해서 파두아, 아퀼레이아, 콘코르디아, 트레비소, 알티노 등지에서 온 고대 로마 출신 난민들이 이 석호의 섬들(토르첼로Torcello, 이에솔로Iesolo, 말라모코Malamocco)로 모였다. 초기 정착민들의 흔적은 이들의 정착과 함께 건설된 산 쟈코모San Giacomo 성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원래 이 섬에 영구히 정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섬 전체가 습지대였기 때문에 주거 환경이 열악했고, 지대가 물러서 제대로 된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트족이 떠날 때까지 몇 년만 머물 곳으로 여겼다. 그러나 고트족은 서로마를 멸망시키고 아예 이탈리아에 정착해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로마의 피난민들은 어쩔 수 없이 기한없이 머물만한 영구 정착지를 늪지대 위에 건설해야 했다. 그들이 떠올린 방법은 물컹한 토층 아래 단단한 층까지 닿는 기다란 말뚝을 수직으로 섬 전체에 빼곡히 박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 어마어마한 육체노동을 통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석판을 깔아 비로소 건물을 지어올릴 지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6세기 동로마 제국 이탈리아 일대를 수복했을 때는 라벤나 총독부를 두어 통치했는데, 베네치아와 라벤나는 바닷길로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베네치아는 자치적으로 운영되며 독자적으로 성장해나갔다. 이때 게르만족의 한 지파인 랑고바르드족을 피해 온 난민들이 오랜 기간동안 더 유입되었다. 최초의 중앙상임통치위원회tribuni maiores는 568년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말라모코와 토르첼로 등 새로운 항구들이 여럿 건설되었고, 말라모코는 점차 이 지역 중심지가 되어갔다.

파일:Alboin's_Italy-it.svg.png

동로마 제국(주황)과 랑고바르드족(회색), 575년 이탈리아 반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Italien_zur_Langobardenzeit.jpg

동로마 제국(분홍)과 랑고바르드족(주황)이 나와있는 더 자세한 지도

파일:The_Venetia_c_600_AD.jpg

600년 동로마 제국령(분홍) 베네치아

본래 최초의 베네치아 도제인 파올로 루치오 아나페스토(697-717)와 라벤나 총독 파울로스는 동일인물이었고,[12] 그의 후임자는 본래 그 휘하 총사령관이었던 마르첼로 테갈리아노였다. 그러나 726년 성상파괴령을 둘러싸고 동서교회간 논쟁이 일어나자 그레고리오 2세의 촉구에 반응하여 총독의 관할 지역 군인들과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총독을 살해했고, 그들 스스로 지도자를 선출하기로 한다.

파일:The_Venetia_c_720_AD.jpg

720년 동로마 제국령(분홍) 베네치아

처음으로 주민들에 의해 선출된 도제는 우르수스(726-737)였다. 그는 레온 3세의 라벤나 정복을 지지해 군인과 선박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교황은 베네치아에 각종 특권을 내려주고, 우르수스를 공식적으로 지도자로 인정하면서 "히파투스"(로마 시대의 집정관Consul을 뜻하는 그리스어)라는 칭호까지 내리게 된다.

파일:907px-Aistulf's_Italy-it.svg.png

동로마 제국(주황)과 랑고바르드족(회색), 751년 이탈리아 반도

751년경 랑고바르드족은 결국 동로마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를 무너뜨렸지만 베네치아 석호 지역은 남겨두고 있었다. 베네치아 석호 지역은 자치적으로 운영되고는 있었으나,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동로마 제국령이었고, 주민들이 지도자로 선출하는 직위도 공식적으로는 동로마 황제가 임명한 총독이었다.(나중에 공식 명칭도 '도제'가 됨) 이때 총독은 말라모코 섬에 주재하고 있었고, 현재 베네치아로 알려진 리알토 지역은 그저 작은 섬에 불과했다. 랑고바르드족이 이탈리아 본토를 휘젓고 다니면서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은 점점 더 늘어났고, 775년경에는 주교직이 신설되기에 이른다.(현재 베네치아 섬 동쪽 끝에 위치한 San Pietro di Castello가 주교좌였다)

한편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는 동로마 제국과의 세력 싸움의 일환으로 지금껏 그 어떤 민족, 그 어떤 나라도 별 신경 쓰지 않던 이 베네치아 석호 지대를 눈독들이기 시작한다. 그는 아들 피핀을 시켜 배를 건조해 이 지역을 정복하는 일을 전담하도록 한다. 805년 베네치아 내부의 파벌 싸움 및 인접 도시 그라도와의 다툼으로 베네치아는 카롤루스에게 자신들을 보호령으로 삼아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피핀이 베네치아를 장악하자 동로마 제국은 함대를 파견해 피핀을 몰아내고 베네치아를 수복하였다. 피핀은 이를 다시 수복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807년 임시 휴전조약을 맺었다. 카롤루스에게 사신을 보낸 주모자들은 베네치아에 의해 동로마에 넘겨졌고 추방당했다. 810년 피핀은 코마키오의 선박을 빌려 베네치아를 공격했다. 당시 중심지였던 말로모코는 아드리아 해에 면하고 있어 방어에 취약했다. 결국 베네치아인들은 말라모코를 버리고 리알토로 옮겨갔다. 프랑크군은 텅 빈 말라모코를 점령해 약탈하고 불태운 다음 베네치아군을 추적했으나 리알토 군도는 계속 저항했고 물길을 잘 아는 베네치아인과 달리 프랑크군은 얕은 석호 지대의 물길에 어두웠기 때문에 일부 선단이 좌초하고 만다. 시간이 끌리며 케팔리니아 총독 파울루스가 지휘하는 동로마 제국 함대가 반격하자 피핀은 철수했지만 역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812년 새로운 적인 불가르 제국을 견제해야 했던 동로마 제국과 아들과 군사를 잃은 카롤루스 사이에 강화조약이 체결되는데,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남고, 아드리아 해 일대 교역권을 인정받는 대신 카롤루스는 동로마 제국에게 제위를 인정받고(다만 '로마 황제'가 아닌 그냥 '황제'로만 인정) 동맹을 채결했다.

그리고 도제 아녤로 파르티차코(811-827)는 도제의 주재지를 현재 베네치아 위치인 리알토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곳에 최초의 두칼레궁과 산마르코성당을 건설한다.

파일:The_Venetia_c_840_AD.jpg

840년 베네치아

이후 꾸준히 난민들이 유입되고 주민 수가 늘어나는 동안 베네치아인들은 이 일대를 조금씩 간척해 나갔다. 이 간척은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대한민국 새만금이나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졌던 간척과는 큰 차이가 있다. 바다를 막아 담수화시킨 후 매립하는 일반적인 간척과 달리, 베네치아인들은 이 바다를 막을 수도 없었고 막아서도 안됐기 때문에[13] 제방 없이 나무를 엮어 파도만 막을 수 있는 정도로 벽을 쌓고 거대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기초를 만들었다. 이 말뚝 위에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리고 점차 도시가 성장하면서 갈수록 간척지도 넓어지고 더 튼튼하게 기초를 쌓게 되었다.

11세기~12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에 나섰고, 4차 십자군 원정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동 지중해에 영토를 가지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지역 패권을 두고 치열한 전쟁을 하게 된다.

16세기는 서유럽 국가들의 신항로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지중해 항로의 중요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베네치아의 군사적·문화적 전성기는 오히려 이 시기였다. 로마 사코 디 로마로 인해 쇠락하자 베네치아가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또한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하며 군사적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후 신대륙 무역으로 인해 동방 무역 독점이 깨지고 오스만 제국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이 서서히 약해졌다.

1796년 이탈리아 원정을 떠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7년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킨 후 베네치아를 관통하는 거대한 Z자(혹은 S자) 형태의 대운하를 보고 경탄하여 극찬을 했지만 캄포포르미오 조약으로 베네치아를 합스부르크 제국에 넘겨주었다. 1805년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에서 패한 오스트리아 제국[14] 프랑스 제1제국에 빼앗기면서 나폴레옹이 세운 괴뢰국 이탈리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리고 1814년에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다시 오스트리아 제국령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옛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와 옛 밀라노 공국 영토였던 롬바르디아를 묶어서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으로 만들고 합스부르크 왕조 황제가 국왕을 겸하되 왕족을 총독을 보내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지배하였다. 1848년,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실각을 계기로 혁명이 일어나 이탈리아인 정치가 마닌을 대통령으로 하는 '베네토 공화국'이 세워졌지만 1년 만에 오스트리아 제국군의 공격을 받고 다시 항복하여 도로 오스트리아 제국령이 되었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벌어지면서 롬바르디아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영토로 합병되었고,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언되었지만 베네토 지역과 베네치아는 여전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신생 이탈리아 왕국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벌어지자 프로이센 왕국과 손잡고 오스트리아를 공격했고, 전쟁의 결과 베네토까지 합병해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얼추 완수했다. 2015년 1월 1일을 기해 실시된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베네치아현에서 베네치아 광역시로 개편되었다. 이탈리아의 광역시, 참고)'이번엔 반드시'…물난리 겪은 베네치아서 자치권 획득 주민투표

2020년 7월 10일에 베네치아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건설 중인 홍수 예방시스템 ' 모세 프로젝트'가 첫 시험 가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

코로나19 방역조치가 해체돼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서 베네치아의 관광업계가 회복하고 있다. #

3.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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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징

4.1. 도시건설과 유지보수(베네치아 공학)

5세기경 베네치아 초기 정착민들은 토르첼로, 이에솔로, 말라모코 같은 섬에 살았다. 그러나 이 지역은 습지대여서 땅이 진흙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반이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8세기 후반, 랑고바르드족을 피하기 위한 피난민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정주인구가 늘어나자 도시 거주인구를 늘리기 위해 단단한 기초 위에 중층 건물을 세우고 도시면적 자체를 늘려야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9세기 초반 프랑크군을 피해 말라모코를 포기한 베네치아인들은 이후 118개의 섬이 운하와 다리로 연결된 거대한 도시인 '베네치아'가 세워지게될 리알토로 근거지를 옮겨 생활하기 시작하는데, 당시에는 그저 수 많은 작은 진흙 섬이 있던 곳이었다. 사실 섬이라고는 하지만 물 위로 살짝 드러난 퇴적층으로 바다 가운데 개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흔히들 베네치아의 건설을 간척이라고 표현하는데, 일반적인 간척과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베네치아인들은 석호의 개펄에 통나무를 촘촘히 깊이 박아 넣었다. 그리고 나무로 된 기단을 그 위에 얹고, 그 위에 다시 돌을 얹어 건물을 지었다.

파일:external/www.ancient-origins.net/venice-wooden-foundations_0.jpg

이때 쓰인 나무가 바로 오리나무. 오리나무는 이나 습한곳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따라서 습기에 매우 강하며, 공기중에 있을 때보다 물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특성이 있었으므로 당시 베네치아인들은 오리나무의 이런 특성을 활용하여 기반을 다진 것이다.

베네치아 건물의 건축과정이 자세히 알려진 것은 17세기에 이뤄진 연구에 의해서인데,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가 건설될 때는 1,106,657개의 나무 말뚝이 사용되었다. 나무 말뚝은 4미터 길이였으며, 베네치아 공화국의 식민지였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등 아드리아해 연안 도시들에서 나무를 실어왔다. 이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기초를 만드는 데에만 무려 2년 2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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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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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보면 이런 모습이다. 이 육중한 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말뚝 110만개가 쓰였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돌이나 시멘트 등에 비해 내구성이 약한 건축자재로 여겨진다. 잘 부러지고, 뒤틀리고, 부식된다. 하지만 개펄 속에 나무를 박아 넣으면서 공기와의 접촉이 없게 되면 곰팡이나 벌레가 끼지 않아 나무가 썩지 않는다. 초기 습지였던 한양(지금의 서울 지역)도 조선 초기 같은 방식으로 나무를 박아 기초를 다져가며 도시를 건설했다.
도시의 하부구조 관련 영상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실 물이다. 사방이 마시면 큰일나는 바닷물[15]인데다 땅은 진흙이어서 지하수가 나오지도 않는다. 이에 베네치아인들은 빗물을 모아 우물을 만들게 된다. 아래 사진의 광장 지하 단면도에 구조가 나와있다. 광장에는 하얀 돌로 빗물공(孔)이 있는 곳이 표시되어 있는데, 빗물은 이곳에서 경사진 바닥을 따라 모여 바닥으로 흘러 들어간다. 광장 지하에는 거꾸로 된 돔 모양으로 돌을 깔고 그 속을 자갈과 굵은 모래로 채워 빗물이 여과되어 지하에 물이 모이게 한다. 물론 산성비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닌지라 현대에서는 그냥 정수 탱크를 이용하거나 들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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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필요한 전기, 수도, 통신, 가스 등의 도시 인프라는 물 속에 지을 수는 없기 때문에 길 바로 아래 얕은 지하에 건설하여 묻었다.

베네치아 운하에 면한 건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갈수록 약해진다. 조차에 따라 바닷물이 들고 나면서 운하에 면한 벽돌이 점점 침식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벽돌로 쌓은 벽 안의 진흙도 바닷물을 먹어 함께 쓸려 나가기도 한다. 현대에는 모터보트가 강한 물살을 일으켜 침식이 더욱 가속화되기도 했다.[16] 이로 인해 건물의 기초가 점점 약해져 위험한 순간이 닥칠 수도 있다. 또한 유속이 느린 운하에 진흙이 계속 퇴적되어 배가 다닐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이를 유지보수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들이 활용된다. 우선 운하의 일정 구간을 나무로 된 임시 제방으로 막아 물을 뺀다. 그 후 운하에 쌓인 퇴적층을 준설하고, 건물의 기초를 강화시키기 위해 벽 속으로 시멘트를 주입시켜 굳히거나 오래된 벽돌을 바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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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보수공사하는 모습

4.2. 곤돌라의 도시

곤돌라에 대해 설명하자면,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교통수단 중 하나이긴 하지만 실질적인 기능은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나 수상택시에게 내 주었다. 21세기에는 일정 구간을 순회하는 관광 상품일 뿐이다.

그러나 곤돌라가 그저 전통 유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곤돌라 뱃사공은 베네치아 내 최고의 인기 직업 중 하나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힘이 많이 필요하고 역사와 지형만 외우면 아무나 할 수 있는 3D 업종 같지만, 실제로는 관련 학교를 수료하고 적어도 4개 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하며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에 주소를 둔 사람만이 가능한 조건에 굉장히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쳐야 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런 만큼 상당한 고소득 직종에 속하는데 실제로 몇 년 만 일하면 그동안 교육받기 위해 쓴 비용과 곤돌라 비용까지 수월하게 벌 수 있고 오히려 시 외곽의 고급 별장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게 된다. 때문에 곤돌라 뱃사공 되기 위한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베네치아에서 아버지가 곤돌라 뱃사공이면 그의 아들이 특별히 꿈이나 이견이 없는 이상 다음 곤돌라 뱃사공으로 대를 이어 가는 게 일반적이다. 곤수저 아버지의 입장에선 곤돌라 뱃사공이라는 가업과 꿈의 일자리를 자식에게 쉽게 내어주고, 아들로서도 미래 걱정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비싼 곤돌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곤돌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1대당 웬만한 고급 자동차 가격을 훌쩍 넘는다.[17] 게다가 곤돌라 제조 장인들은 총 17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한사람이 완전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곤돌라 용골을 제작하는 장인이 있고 곤돌라 뱃머리를 만드는 장인이 있는 식으로 분업화 되어 있다.

현재 관광용으로만 쓰이는 곤돌라의 개수는 200척에서 300척 정도에 불과하지만 교통수단이 곤돌라밖에 없었던 전근대 시절에는 만여척이 훌쩍 넘었다. 그 중 상당수가 불법으로 운영되는 곤돌라이고 그 색상 또한 다채로워서 문제가 생기자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곤돌라 뱃사공들의 반발로 공화국 시절 원로원에선 합법적으로 인정한 곤돌라는 무조건 검은색으로 칠할 것을 명령해, 다른 색깔로 칠해진 곤돌라는 불법으로 무조건 처벌했다. 게다가 곤돌라의 칸막이를 없앴는데, 그 이유는 칸막이가 쳐진 곤돌라에서 귀족남녀들이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영향을 받아서 현재도 모든 곤돌라는 검은색이고, 칸막이가 없다.

전통적으로 곤돌라를 끄는 사람은 남성이었다. 배를 끌기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있고,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주도해온 이유도 있다. 이것에 대해 부당함을 느낀 한 여성이 소송을 걸었는데 승소하여 유일한 여성 곤돌리에의 타이틀을 얻었다. 딱 1척뿐인 여성 뱃사공(Giorgia Boscolo)이 다루는 곤돌라는 예약 없이는 탈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이후 현역 뱃사공이 성전환 수술을 받고 2호 여성 뱃사공(Alexandra Hai)이 되었다.

과거의 곤돌라 비용은 뱃사공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으나, 현재는 곤돌라 협회에서 지정한 요금을 받는다. 가격은 20분 당 80/100[18]유로. 그리고 곤돌라 뱃사공의 옷 색깔[19]도 협회에서 지정했다. 혼자 타면 가격부담이 꽤 되는 편이라 관광객끼리 모여 갹출하여 타는 광경도 흔하다.
파일:venice-gondolier.png

4.3. 베네치아 시민

관광도시라서 관광객들을 자주 반기는 사람도 있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가게 주인이나 인포메이션에서 물어보면 친절하게 잘 영어로 답해준다.

하지만,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해 관광객 등쌀과 높은 물가, 거주의 불편 때문에 베네치아 구시가지를 떠나는 시민들이 계속 늘고 있기도 하다. 시내로의 화물운송이 쉽지 않으므로 물가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고, 육로로 수레를 끌고 과일 등을 운반할 경우 다리의 계단을 계속해서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과일들이 여기저기 멍들기 일쑤다. 게다가 바다 위의 도시라 습도가 높아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늘 소금기 가득한 공기 때문에 부식도 빠른 편이다.

구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어 사소한 편의나 불편 해소를 위한 인테리어나 수리를 할 경우에도(이를테면 구멍 뚫린 모기장을 수리한다든가 주방의 탄내를 제거한다든가)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게 이탈리아 특유의 느긋한 문화와 결합해 최소 6개월은 걸려야 허락이 떨어진다. 때문에 구시가지의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5만 5천 명 수준으로 1980년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다만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석호 위에 있는 구시가지의 인구로, 빠져나간 인구는 대부분 메스트레와 같은 베네치아시에 포함되어 있는 신시가지에 정착하기 때문에 도시 자체의 인구는 큰 감소폭을 보이고 있지 않다. 하지만 베네치아 시에서는 이 미친듯한 속도의 구시가지에서의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석호 위에서의 호텔 추가 건설을 금지했다.

구시가지가 워낙 작고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정원을 보기도, 갖기도 힘들다. 정원이 있는 집은 정말로 부잣집. 현지인들은 정원을 가지는게 소원일 정도이다.

또한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 도시의 노후화 문제로 매년 몇 cm씩 도시가 침수되고 있어서 007 카지노 로얄에 나온 것처럼 가라앉지 말라고 1층에 커다란 부표를 달아놓은 집들도 있다. 홍수 피해도 심각해서 폭우라도 오는 날에는 해수면이 급속히 상승해서 성 마르코 성당이고 뭐고 다 물에 잠긴다… 1993~2002년 동안 50차례나 침수를 겪었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이른바 ' 모세 프로젝트'를 계획, 준공하고 있다.

2019년 11월 15일에도 해수면 상승으로 시가지 대부분이 침수되었다. 연합뉴스 기사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갖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구시가지에 살고 있는 베네치아 시민들의 자기 도시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한 편이다. 옛날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화와 오스만 제국의 동지중해 지배에 맞서 기독교의 방패라 활동했던 과거를 은근히 자랑스러워한다. 공화국 시절부터 베네치아 인들은 특유의 나라 사랑으로 여러 일화를 만들어낸 바 있다. 당시에 20세기 같이 민족주의가 널리 퍼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경우다. 다만 이것은 일종의 미운 정이 박힌 나이 든 세대들의 얘기고 젊은 세대는 구시가지에서의 생활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

토마스 만 같은 근대 소설가들의 책에서는 베네치아 구시가지에 사는 평범한 어부 같은 사람이 나오지만, 최근에는 집값이 뛰어올라[20] 그런 사람들은 내륙에 있는 신시가지로 나가고, 부유층이 많이 거주한다. 특히 대운하 주변에 깔려있는 과거 거상들이 거주했던 저택들은 멋진 전경과 운치있는 분위기가 겹쳐져 가격이 굉장히 비싸다. 이런 부유층까지는 아니더라도 베네치아 구시가지에 집을 한 채라도 보유하고 있다면 꽤나 안정적인 중상류층이라는 것이다.

4.4. 오버투어리즘

유럽에서 바르셀로나와 함께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적인 도시다. 베네치아 인구는 갈수록 줄어 구시가지 인구는 약 4만 9천 명, 전체 인구는 26만 명 정도인 반면, 연간 관광객 수가 무려 3천만 명에 달한다.

관광객들로 인해 소음 피해, 물가 증가, 사유지 침입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다 보니 주거지구에는 검문소까지 설치해서 관광객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해 분노한 시민들이 시장을 끌어내릴 뻔한 적도 있었다. 1989년 영국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베네치아에서 공연을 벌였는데, 이 당시 수많은 시민들과 문화재청 관계자, 종교인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도시 기능이 마비되고 고출력 사운드로 인해 문화유산들이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해 공연 거부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 않고 안토니오 카셀라티(Antonio Casellati) 시장이 핑크 플로이드의 베네치아 공연을 허가하였고, 그 결과 인구가 5만 명이었던 베네치아에 20만 명의 팬들이 몰렸고, 해당 공연은 위성 중계로 1억 명이 시청하였다. 당연히 베네치아 전체 시민 인구보다 4배나 더 많았던 이 팬들을 감당하지 못해 도시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어 치안이 마비되고 길거리는 쓰레기로 넘쳐났다. 분노한 시민들이 시장 사퇴 시위를 벌였고, 시장은 결국 핑크 플로이드 공연을 주최한 것은 실수였다고 시민들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6월 3일 베네치아에서 대형 크루즈선이 유람선을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사고로 인해 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 이 사고를 계기로 베네치아에서는 크루즈 반대 시위(NO GRANDI NAVI)가 일어나기도 했다. 크루즈선이 사고를 야기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크루즈 여행객들은 돈도 별로 쓰지 않고 떠나기에 경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유행으로 관광객이 대폭 줄어들었고, 2021년 3월 31일부터 대형 크루즈선의 석호 진입이 금지되었다. # 하지만 유럽에서 백신 접종에 속도가 붙으면서 크루즈 운행이 재개되고, 마르게라 산업 항의 인프라 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아 달리 정박할 곳이 없어지자 또다시 크루즈선이 석호로 진입하게 되었고, 또다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

2021년 7월 13일에 이탈리아 정부는 8월 1일부터 대형 크루즈선이 베네치아 석호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행정명령을 다시금 승인했다. #

4.4.1. 도시 입장료 도입

2024년 4월 25일부터 시범적으로 4월~7월사이 이탈리아의 공휴일과 주말을 중심으로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관광객 중 이곳 숙박시설에서 1박 이상을 머무르지 않는 사람은 도시 입장료 1인당 5유로(약 7천원)를 부과한다. #1, #2, 입장권 납부 사이트 1박 이상 머무는 관광객에게는 무료 QR코드가 발급된다. 이는 한산한 평일에 관광을 유도해 인파 분산을 도모한 것이다.

또한 베네치아 태생 시민[21]과 업무 출장·학교·의료 등 사유로 방문한 사람, 14세 미만 청소년과 장애인도 입장료 대상에서 제외된다.

산타루치아역 등 주요 길목에 검표원을 배치하여 관광객에 대해 무작위로 검표를 진행하며 입장료 미납부 적발 시 50~300유로(약 7만~44만원) 수준의 벌금이 부과된다. 다만 겨울철 비수기에는 입장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뉴스 단체 안사(ANSA)는 베네치아에서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처럼 입장료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베네치아가 ' 디즈니랜드'가 됐다는 조롱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1, #2

5.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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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246> 문화유산
1979년

발 카모니카의 암각화
Incisioni rupestri della Val Camonica
1980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와
도미니코 수도원 및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Chiesa e convento domenicano di
Santa Maria delle Grazie con
l'Ultima Cena di Leonardo da Vinci
1980년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
Centro storico di Roma, le proprietà extraterritoriali della
Santa Sede e la basilica di San Paolo fuori le mura
1982년

피렌체 역사 지구
Centro storico di Firenze
1987년

베네치아와 석호
Venezia e la sua laguna
1987년

피사의 두오모 광장
Piazza del Duomo di Pisa
1990년

산지미냐노 역사 지구
Centro storico di San Gimignano
1993년

마테라의 동굴 주거지와 암석교회
I Sassi e il parco delle
chiese rupestri di Matera
1994년

베네토의 비첸차 시와 팔라디오 양식 건축물
Città di Vicenza e le ville palladiane del Veneto
1995년

시에나 역사 지구
Centro storico di Siena
1995년

나폴리 역사 지구
Centro storico di Napoli
1995년

크레스피 다다
Crespi d'Adda
1995년

르네상스 도시 페라라와 포 삼각주
Ferrara, città del Rinascimento,
e il suo delta del Po
1996년

몬테 성
Castel del Monte
1996년

알베로벨로의 트룰리
Trulli di Alberobello
1996년

라벤나의 초기 기독교 기념물
Monumenti paleocristiani di Ravenna
1996년

피엔차 역사 지구
Centro storico di Pienza
1997년

카세르타의 18세기 궁전과 공원,
반비텔리 수도교, 산 레우초
Palazzo Reale del XVIII secolo di Caserta con il Parco ,
l' Acquedotto di Vanvitelli e il Complesso di San Leucio
1997년

사보이아 궁중저택
Residenze della Casa Reale di Savoia
1997년

파도바 식물원
Orto botanico di Padova
1997년

포르토베네레, 친퀘테레와 섬들
(팔마리아 섬, 티노 섬, 티네토 섬)
Portovenere, le Cinque Terre e le isole
(Palmaria, Tino e Tinetto)
1997년

모데나의 대성당,
토레치비카, 피아차 그란데

Cattedrale, Torre Civica e
Piazza Grande di Modena
1997년

폼페이, 헤르쿨라네움 그리고
토레 아눈치아타 고고 지구

Aree archeologiche di Pompei,
Ercolano e Torre Annunziata
1997년

코스티에라 아말피타나
Costiera amalfitana
1997년

아그리젠토 고고 지구
Area archeologica di Agrigento
1997년

카살레의 빌라 로마나
Villa romana del Casale
1997년

수 누락시 디 바루미니
Su Nuraxi di Barumini
1998년

아퀼레이아의 고고 지구와 가톨릭 성당
Area archeologica e
Basilica patriarcale di Aquileia
1998년

우르비노 역사 지구
Centro storico di Urbino
1998년

칠렌토 ・ 발로 디 디아노 국립공원,
파에스툼과 벨리아 고고 유적지
Parco nazionale del Cilento e Vallo di Diano con i siti
Archeologici di Paestum e Velia e la certosa di Padula
1999년

티볼리의 빌라 아드리아나
Villa Adriana, Tivoli
2000년

베로나 시
Città di Verona
2000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유적

Assisi, la basilica di San Francesco e
Altri siti Francescani
2001년

빌라 데스테, 티볼리
Villa d'Este, Tivoli
2002년

시칠리아 남동부 발디노토의
후기 바로크 도시
Città tardo barocche del
Val di Noto (Sud est Sicilia)
2003년

피에몬테 롬바르디아의 사크리 몬티
Sacri Monti del Piemonte e della Lombardia
2004년

체르베테리와 타르퀴니아의
에트루리아인 네크로폴리스
Necropoli etrusche di Cerveteri e Tarquinia
2004년

발 도르차
Val d'Orcia
2005년

시라쿠사와 판틸리카 바위 네크로폴리스
Siracusa e la necropoli di Pantalica
2006년

제노바
: 르 스트라다 누오보와 팔라치 데이 롤리

Genova: Le Strade Nuove ed il
Complesso dei Palazzi dei Rolli
2008년

알불라 ・ 베르니나 지역의 래티셰 철로
Ferrovia Retica nei paesaggi
dell'Albula e del Bernina
2008년

만토바와 사비오네타
Mantova e Sabbioneta
2011년

이탈리아의 랑고바르드 왕국
: 권력의 장소 (568년 ~ 774년)
Longobardi in Italia
: I luoghi del potere (DLXVIII al DCCLXXIV d.C.)
2011년

알프스 주변의 선사 시대 호상 가옥
Siti palafitticoli preistorici attorno alle Alpi
2013년

토스카나의 빌라 메디치와 정원
Ville e giardini medicei in Toscana
2014년

피에몬테의 포도밭 경관
: 란게 - 로에로와 몬페라토
Paesaggio vitivinicolo del Piemonte
: Langhe-Roero e Monferrato
2015년

아랍 - 노르만 팔레르모 그리고
체팔루 대성당과 몬레알레 대성당

Palermo arabo-normanna e le
Cattedrali di Cefalù e Monreale
2017년

16~17세기 베네치아의 방어 시설
: 스타토 다 테라 - 스타토 다 마르 서부
Opere di difesa veneziane tra XVI e XVII secolo
: Stato da Terra-Stato da Mar occidentale
2018년

이브레아
: 20세기 산업도시
Ivrea, città industriale del XX secolo
2019년

프로세코 디 코넬리아노와
발도비아데네 구릉지
Colline del Prosecco
di Conegliano e Valdobbiadene
2021년

파도바의 14세기 프레스코화
Cicli di affreschi del XIV secolo di Padova
2021년

유럽의 거대 온천 도시들
Grandi città termali d'Europa
2021년

볼로냐의 포르티코
Portici di Bologna
자연유산
2000년

에올리에 제도
Isole Eolie
2003년

몬테 산 조르조 산
Monte San Giorgio
2017년

카르파티아 및 유럽의 기타 지역에
생육하는 고대 및 원시 너도밤나무 숲
Antiche faggete primordiali dei
Carpazi e di altre regioni d’Europa
2009년

돌로미티 산맥
Dolomiti
2013년

에트나 산
Monte Etna
}}} }}}}}} ||

5.1. 구경거리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글 베네치아와 석호(潟湖)
영어 Venice and its Lagoon
프랑스어 Venise et sa lagune
국가·위치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7년
등재기준 (i)[22], (ii)[23], (iii)[24], (iv)[25], (v)[26], (vi)[27]
지정번호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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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여행 시 주의점

유명 여행지라면 의례적으로 그렇지만 정말 도둑이 많다. 근데, 다른 곳과는 비교가 안 되게 정말로 많다. 로마 프라하 같은 곳과 더불어 유럽에서 손꼽히는 소매치기들의 소굴. 반 농담삼아 길가다가 보이는 조금 수상한 사람은 다 소매치기다. 수상하다 싶어서 지켜보고 있으면 다른 사람 가방을 뒤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켜보는 동안 내 뒤에 다른 도둑이 내 짐을 뒤져 가져간다. 진짜로.

특히나 주의할 점은 일단 베네치아가 좁은 동네라서 지나다니는 사람과 거리를 벌리기 힘들며, 관광지이므로 쇼윈도가 있는 상점이 꽤나 있는데 이 쇼윈도를 조금 보고 있으면 훔치기도 한다. 실제 팀을 이룬 2인조 도둑이, 한 명은 신문을 보는 척 펼쳐서 가리고 한 명은 훔치는 경우가 잦은 케이스.

위에서 말했듯, 1인의 우발적인 생계형이라기보다도 다인의 계획적인 범죄가 많은 듯하다.

수상버스인 바포레토에서 또한 조심해야 하는데, 배 위라서 도망갈 곳(!)도 없으므로 도둑이 많다. 물론 얘네가 강도는 아니라서 못 도망가는 걸 이용해서 달려드는 건 아니지만… 경험 중에 4인조로 팀을 이뤄 한 명이 가리고 한 명이 훔치길래 알려줘야 하나 마나 보고 있는데 훔치는 사람이 다른데 어딘가 눈치를 보길래 자세히 보니 배의 앞과 뒤에 망보는 일행이 있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하는 듯.

지나가는 한국 관광객들과 말 한두 마디씩 해보면 지갑이나 핸드폰이 없어진 사람을 하루에 몇 팀은 보게 된다. 돈은 여행사 등에서 주는 복대 등에 넣어두고 지갑은 안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잠그자. 안주머니에 넣어뒀다고 안심하면 희한하게 그걸 또 가져간다… 아니면 주머니에 넣고 손을 주머니에 항상 꽂고 다니든가. 뒷주머니엔 절대 넣지 말자.

수많은 관광객이 들고 다닌 바퀴달린 캐리어의 소음공해에 시달리다가 2015년부터 바퀴달린 캐리어(wheelie suitcases)를 금지하고 500유로의 벌금을 물린다…라고 하였으나, 실제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베네치아에서 아무 식당이나(특히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 리알토 다리와 같이 관광객 접근성이 좋은 위치일수록 심하다.) 들어갔다가는 스파게티 한 접시 먹고 났더니 영수증에 50유로[40] 이상(이게 1인당 가격이다.)이 찍히는 충격적인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으므로, 식사하러 식당 들어가기 전에 눈 앞에 보이는 식당 상호를 검색이라도 해보고 들어갈지를 결정해야 한다. 다음은 그러한 식당들의 패턴이다.

1) 식당을 들어가서 메뉴를 고르려고 하면, 점원이 '다른 메뉴들에 비하여 싸지만 맛있다'면서 메뉴를 추천한다. 이때 사용되는 대표적인 미끼로는 'seafood spaghetti'가 있다. 메뉴판을 대충 본다면 까르보나라와 같은 평범한 파스타도 10유로가 넘는데, 그 미끼 메뉴(예의 seafood spaghetti 등)은 고작 8유로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혹하게 된다. 더 막장인 경우는 메뉴판을 보여주고는 점원이 다짜고짜 이 메뉴를 추천한다고 하곤 제멋대로 그 메뉴로 주문을 넣어버리곤 메뉴판을 덮고 들어가 버린다.

2) 자의건 타의건 1에 의하여 해당 미끼 메뉴를 주문했을시 분명히 1에서 메뉴를 소개할 때는 일행이서 먹기 충분할 정도의 양이라고 하지만, 터무니없이 많은 양이 나오게 된다. 1인분이라는 스파게티에는 로브스터 한 마리가 통으로 들어가 있으며, 생선구이는 예상치 못한 대형 생선이 테이블에 올라오게 된다. 이것이 왜 문제이냐 하면, 점원이 추천한 그 미끼 메뉴는 100g 당으로 가격이 매겨지는 메뉴이기 때문이다..즉, 점원이 8유로라고 이야기하면서 추천한 그 스파게티는 실제로는 100g당 8유로인 것으로(물론 점원은 그 추천한 메뉴가 무게당 가격이 매겨진다는 사실 따위 일절 말하지 않는다.), 덜컥 주문하고 나면 도무지 혼자서 다 먹지도 못할 분량의 스파게티를 1인분이라며 내 주고는 무게당 가격을 받는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100g당 8유로이니 5kg 로브스터의 경우...스파게티 1인분에 한국돈 50만원(400유로)에 가까운 아름다운 가격이 나오게 된다.
나중에 반박하려고 하면, 식당에서는 메뉴판 한 구석에 해당 메뉴는 무게당으로 가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알만 하게 적어 놓았단 것을 보여주면서, 고객에게 메뉴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주문했다는 책임을 물으며 계산서에 찍힌 그 바가지 금액을 다 내도록 강요할 것이다. 바가지를 쓰더라도 맛이 있다든가, 저런 미끼 메뉴만 안 시키면 그나마 괜찮지 않겠느냐 생각하기 쉽지만... 애초에 관광객 등쳐먹으려는 게 목적인 식당에서 요리 맛있게 할 리가 없다.

3) 계산서에 나오는 황당한 음식값도 음식값이지만, 거기다가 자리세와 터무니없는 명목의 세금을 동시에 물린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자리세 받는 것은 정상이지만, 보통은 자리세만 받지 도시세(city tax)라는 식으로 세금을 별도로 물리진 않는다. 문제는 이것이 가게마다 1인당 정액으로 정해 놓은 자리세와는 달리, 음식값에 비례한 정률로 나온다는 것. 가령 1에서 바가지 메뉴로 100유로를 물었다면 이에 대한 도시세(라고 주장하는 것)은 12%(식당마다 다를 수 있다. 물론 정상적인 식당에는 이런 거 없다.)로 12유로를 추가로 떼이게 되는 것. 상술한 400유로 짜리 스파게티를 먹었다면 그거 하나 먹고 한국 돈으로 52만원 정도의 가격을 내게 된다.[41]

그러나 여행 책자에 적힌 추천 식당들은 정상적이니 여행 책자를 챙기는 것이 정신 건강상 좋다. 베네치아에서 악명 높은 식당인 'Osteria da Luca'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일본인 학생 4명이 여기에서 먹었다가 1100유로, 즉 한화로 150만원이라는 계산서를 받았다. 이들이 주문한 메뉴는 스테이크 3인분과 생선튀김, 와인 한병, 물이었다고. 분노한 학생들은 경찰에 신고했고 해당 가게는 2만유로(한화 2550만원)의 벌금을 냈다. 벌금을 내긴 했다지만 영업 정지를 먹은건 아닌지, 아직도 멀쩡하게 영업하고 있고 현지 주민들과 가이드들 사이에서 절대 가지 말아야할 식당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구글 맵에서 검색해 보면 여길 들렀던 한국인들의 리뷰를 볼수 있는데, 5명이서 식사하고 397유로(한화 55만원)의 금액을 지불했다는 내용이 2019년에도 올라와 있다.

2019년에도 로마 시내에서 비슷한 사례가 뉴스로 보도되었다. 심지어 해당 식당은 뻔뻔하게 관광객에게 고소드립을 한다.

여름에 살인적인 더위로도 유명하다. 단, 남부 지역같이 햇볕이 강한게 아니고 기온은 30도 초중반대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매우 습하다는 것이다. 정말 미친듯이 습하며 땀이 나다 못해 하루만에 옷에 소금기가 배인다. 본섬에서 물좀 사려하면 이게 또 엄청 비싸다(500밀리리터에 2.5유로씩 달라고 한다). 구 시가지 들어가기 전에 신시가지에서 물을 사서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 기차역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편의점에 물을 아주 쌓아놓고 팔고있으며, 배낭여행족들은 아예 1.5리터들이 물통을 들고 다닌다.

6. 운하와 환경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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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로 유명하며 운하의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수질이 일본의 오다이바와 투톱을 달릴 정도로 최악이다. 위의 사진을 잘 보면 쓰레기도 많이 보인다. 그나마 넓고 물흐름이 빠른 대운하 쪽은 낫지만 주택가 사이 작은 운하의 수질은 하수도 수준이다. 엄밀히 말하면 하수도 수준이 아니라 아예 운하가 하수도로 쓰인다. 16세기부터 사용한 gatolo라는 전통적인 하수관은 운하로 하수를 그대로 배출했고, 현재도 쓰이고 있다. 베네치아 시 전체로 보면 육지 쪽의 마르게라항(Porto Marghera)에 중앙 하수처리장을 1980년대 건설했으나 육지 쪽 신시가지의 하수를 처리하는 것이고 주데카(Giudecca), 산타마르타(Santa Marta), 무라노(Murano) 같은 일부 지역 신축 건물에 하수 처리 시설을 정비했으나 관광지로 유명한 베네치아 구 시가지 본섬은 현대적 하수 처리 시설이 전무 하다시피하다. 물론 완전히 방치한 것은 아니고, 수질정화를 위해 베네치아 내에 총 140개의 소규모 생화학처리시설과 6000개의 정화조를 보급했으나, 아직도 간단한 여과만 형식적으로 거친 후 그대로 배수하는 건물도 상당수이다. 게다가 구시가지가 세계유산이나 마찬가지라 현대적 하수처리 시설을 대규모로 건설하기도 어려워 해결책은 아득하다. 운하의 수질관리 위한 청소와 준설을 하지만, 사실상 1m 정도의 밀물과 썰물의 차에 따른 물갈이에 수질개선을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외해에 바로 접한 것이 아니라 석호로 둘러싸여있어 석호 내부로 갈수록 해수 순환이 느려서 수질이 더욱 안좋다.

수질 문제로 기온이 올라가면 냄새가 더 심해지는 데다가 습기 문제까지 겹쳐 여름에는 상당히 고역이다. 모기가 번식하기 알맞은 조건은 덤. Venice smell로 유럽이나 북미에서 악명이 자자한 편이다. 작가 필립 클로델(Philippe Claudel)의 2014년 산문집 '향기'(Parfums)에는 하수 정화조에서 베네치아의 냄새를 맡았다(How many times, at the edge of my own Petit Canal, have I stopped by the waste watertanks and breathed in Venice.) 표현이 있다. 물론 조수간만 차나 기온의 영향에 따라 냄새 정도가 달라서 악명에 비해 별로 냄새를 느끼지 못했다는 경험담도 있다.

수질을 보면 별로 손발을 담그거나 수영하고 싶은 생각이 없겠지만 여행지의 낭만에 취해 관광객이 운하에 발을 담그는 모습이 보이거나 밀물 때인 아쿠아 알타 (Acqua Alta) 시기에 침수된 광장에서 수영을 하는 관광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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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보고 개방 하수(open sewer)에서 수영하는 짓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현지 주민들은 수영하는 관광객들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러다가 2017년 7월 24일에 외국인 청년들이 베네치아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결국 구속되었다. # 2023년에는 3층에서 뛰어내려 운하에 다이빙한 주민의 영상도 논란이 되었다. #

자신의 면역력의 한계를 시험해 볼 생각이 아니라면 운하에서 물놀이나 물에 접촉하는 것을 삼가는 게 좋다.[42] 미국 여행 사이트에서 안내하는 베네치아 여행 팁 중 하나가 여름에는 곤돌라 타지 말거나 아예 그냥 트라게토(traghetto) 타라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일시적이지만 수질이 좋아졌다는 분석도 나오나 베네치아시 당국은 곤돌라 등 보트 운행이 중단되면서 오염 물질이 운하 바닥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운하 수질 자체가 좋아진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주민들의 이동 제한으로 증기선과 보트 운항이 평소보다 줄면서 대기의 질은 향상되었다. #

7. 관련 작품

7.1. 매체에서의 등장

2016년 6월 9일

7.2. 베네치아를 모델로 한 도시/국가



[1]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기를 약간 변형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Regione] 레조네 [3] Città metropolitana di Venezia [4] 클로드 모네는 1908년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여러 그림을 남겼다. 대표작은 콘타리니 궁전을 그린 그림. [5] 중국어로도 영어식 발음을 따라 웨이니스(威尼斯 / Wēinísī)라고 음차한다. [6] 구시가의 인구는 2016년 기준 55,000명이다. [7] 한국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이곳으로 올 수 있다. [8] 구 시가지 외에 육지 쪽 신도시 및 비교적 넓은 평지가 있는 리도 섬(베니스 국제 영화제 센터가 있는 곳)에는 도로도 있고 시내버스 노선이 운영된다. [9] 혹은 xx의 베니스 [10] 정작 중국 쑤저우시 우전진이 있음에도 유럽풍이 아니기 때문에, 2015년 10월 랴오닝성 다롄시에 유럽풍인 짝퉁 베네치아를 만들기 위해 공사를 했다. 결국 진퉁과 확연한 질의 차이가 나는 등 때문에 유령마을이 되었다. [11] 베네티인들이 살던 베네티아 땅과, 동쪽에 붙어있는 히스트리아(현 이스트리아 반도)를 합친 행정구역이었다. [12] 697년부터 도제를 선출했다는 책들도 있다. 80년대 한 사학자가 베네치아 공화국 최초의 도제가 사실은 라벤나 총독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에 선출의 형식은 따랐으되 라벤나 총독을 선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13] 애초에 육지의 야만족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으니 바다가 필요했다. [14] 1804년 프란츠 2세 동군연합으로 묶여있던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중심의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개편했다. [15] 바닷물은 소금기가 강해 마시면 마실 수록 삼투압 현상으로 인해 물이 빠져나가 탈수 증상에 걸리며,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가 형성된 뒤론 바닷물에 온갖 오염물질이 섞여 들어온다. 당연히 현재는 닿기만 해도 피부병에 걸릴 수 있으며, 그 물을 마시면 죽을 수도 있다. [16] 그래서 구간에 따라서 모터보드의 운행이 아예 금지되기도 하고, 속도제한이 걸리기도 한다. [17] 곤돌라 장식이 멋질수록 비싸고, 제일 싸게 맞춘다 해도 10만 유로를 넘는다. [18] 야간 요금이다. [19] 검은색 가로줄이 있는 흰색 바탕의 옷 [20] 살만한 집 하나 장만하려면 최소 10억은 베이스로 깔아야 한다. 평균적인 월세는 2,000유로 정도 하지만 평균적인 월급은 1500유로다. [21] 베네치아 역사지구 거주자, 베네토주 주민 [2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2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2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2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26]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 [27]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28] Actv에서 운행하는 노선도 2가지가 있다. 일반노선과 관광특수노선. 둘 다 기간권을 구입한 후 이용해야 하는데 후자는 당연히 값이 더 세다. 2012년 중순의 일반기간권 가격은 1회권 6.5유로, 12시간권 18유로, 24시간권 20유로이며 이후 12시간마다 5유로씩 붙는다. 2023년 기준 1회 9.5유로. 30일권 50유로(단, 7일권은 40유로.) 표는 불시에 무작위 선택 검사 방식이며, 걸릴 경우 1회권과 벌금이 합해져 58.5유로가 청구된다. [29] 리도 S.M.E D번 선착장 착발 본섬 순환 계통 N번 바포레토가 운하를 관통한다. [30] 단, 상당수의 바포레토들이 노선도대로 운행하다가 중간 종착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니 어디까지 가는지 항상 확인하자. [31]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부터 시내까지 150-160유로, 산타 루치아역/피아찰레 디 로마에서 시내까지 55-60유로정도 나온다. [32] 야간 운행은 100유로. [33] 곤돌라를 탈 수 있는 지역이 여럿 있지만 산 마르코 광장에서 운영하는 업체의 경우 아예 벳사공의 팁은 요금에 포함되어 있으니 따로 주지 않아도 되고, 노래는 원한다면 사전에 말해 별도로 15유로를 내고, 가수가 같이 타서 불러준다. [34] 신도시에 있는 베네치아 메스트레 역은 VE MESTRE로 표시된다. [35] 커피가 이슬람 세계에서 들어온 걸 떠올린다면 당연히 그 쪽이 빠르다. 또 벨기에에서는 1515년에 카페가 생기기도 했다. [36] 뮤직비디오가 따로 없고 스무 살의 봄 앨범 전체에 관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37] 이탈리아어로 Poveglia 중 glia에서 g는 묵음이 되기 때문에 포벨랴나 포벨리아에 가까우나 로마자 표기에 이끌려 보통은 포베글리아로 알려져 있다. [38] 유럽 곳곳의 페스트 환자 매장지는 지금도 살벌한 경고문이 붙어있다. [39] 다만 1576년 흑사병 환자들의 거주지로 사용된 곳은 이곳이 아니라 아닌 라자레토라는 다른 섬이다. [40] 2020년 기준 한화로 약 6만 8천원 정도.(...) [41] 당연하지만 50만원이 넘는 금액이면 한국에선 웬만한 비싼 요리를 다 먹을 수 있다. 풀 코스로 배부르게 먹어도 그 정도에는 못 미치는 가격이 일반적이긴 한데 문제는 베네치아에선 저게 달랑 스파게티 하나 먹고 내야 하는 가격이라는 것(...). [42] 장염에 걸리면 1주일은 앓아 누울 정도로 고생을 하는데 하물며 외국, 그것도 병원 시스템이 영 부실한 이탈리아라면 고생은 배가 될 것이다. [43] 영어로는 파두아 [44] 한국에서는 '아르트말레이'라고 오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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