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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6-21 13:12:37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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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이탈리아|]]
캄파니아[Reg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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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여명기2.2. 시칠리아 왕국 시대2.3. 나폴리 왕국 시대2.4. 프랑스 혁명과 양 시칠리아 왕국 시대2.5. 이탈리아 통일 후
3. 인구4. 문화5. 지형
5.1. 캄피 플레그레이
6. 교통7. 치안8. 구경거리9. 음식10. 스포츠11. 얘기거리12. 서브컬쳐에서의 나폴리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easyglot.files.wordpress.com/cropped-napoli.jpg
Vedi Napoli e poi muori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로마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

이탈리아 캄파니아의 주도(州都)이자 중심 도시며, 이탈리아 통일 전까지 천년 가까이 북이탈리아와는 전혀 판이한 역사를 이어온 남부 이탈리아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지금도 남이탈리아의 중심 도시이다. 지중해에 닿아 있는 항구도시로 영어로는 네이플스(혹은 네이플)라고 한다. 나폴리라는 이름에서 보여 주듯이 그리스의 식민도시 네아폴리스가 그 기원이지만 아직까지 학계에선 논란이 있다.

참고로 위 사진에 보이는 봉우리 두개의 높은 산은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이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날, 북풍이 아닌 동풍이 불었다면 폼페이 대신 나폴리가 멸망했을 것이다.

2. 역사

파일:Castel_Nuovo_(29)_(15584302832).jpg
나폴리의 중근세를 함께 한 카스텔 누오보. 이곳을 장악해야 도시를 얻을 수 있었다.

2.1. 여명기

개요에서 기술되었듯 논란이 있지만 옛 나폴리 땅에 그리스인들이 식민지 도시국가인 네아폴리스를 세웠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네아폴리스라는 단어는 네아가 new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폴리스 도시의 의미이다. 즉, 신도시. 신도시가 있다는 건 구 도시도 있다는 의미고, 그 구도시가 다름 아닌 후에 파르테노피아 공화국의 어원이 되는 파르테노페(Parthenope)이다. 원래 그리스 정착지는 기원전 20세기쯤부터 새워졌지만 기원전 9세기쯤에 지금의 나폴리 시의 남서쪽(지금의 카스텔 산 엘모 (Castel Sant' Elmo)가 있는 곳 근처)에 파르테노페가 새워져서 번성하다가 기원전 6세기쯤에는 쇠퇴하고서는 약간 북동쪽 내륙(지금의 나폴리 중심가)으로 들어가서 재건한 게 네아폴리스가 되었다고 하며 현대에는 둘 다 나폴리시에 속한다.

그리스인들이 세웠다지만 쿰마인들이 주민이었으며, 후에 에트루리아의 연맹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라티움족의 반란에 의해 에트루리아가 엎어지고 그 자리에 로마 왕국이 들어서면서 나폴리도 로마의 일원이 된다. 폼페이가 대지진과 화산 폭발로 큰 타격을 입고 그저 그런 농촌이 되기 전까지는 번창하는 폼페이-헤르쿨라네움 도시권에 속해 있었다. 긴 로마 제국의 황금기에도 끝이 찾아와 훈족 게르만족의 발흥에 의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나폴리 지역에는 동고트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동고트 왕국(493~540)이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멸망당했고, 나폴리는 동로마 제국의 영역이 된다. 이때부터 나폴리는 1300여 년간 북부, 중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왕국, 교황령)과 다른 역사를 걷게 된다.

2.2. 시칠리아 왕국 시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9px-Kingdom_of_Sicily_1154.svg.png

11세기 중반, 프랑스 왕국 노르망디 지역에서 온 기사인 루제로 1세가 동로마 제국령이었던 남이탈리아를 점령했다. 11세기 후반에 아랍 사라센 왕국령 시칠리아 섬까지 점령한 이들은 2대째인 루제로 2세가 대립교황 아나크레투스 2세로부터 왕위를 인정받아 왕국으로 성립되었다. 노르망디는 그 기원이 바이킹이니, 바이킹이 지중해까지 진출해 세운 왕국이 바로 이 시칠리아 왕국이다.

2.3. 나폴리 왕국 시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42px-Italia_Regno_di_Napoli_locator.svg.png
시칠리아 왕국의 왕통이 혼인을 통해 신성 로마 제국 호엔슈타우펜 왕조에게로 넘어가자, 황제와 사이가 나쁜 교황의 요청으로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아우며 앙주·멘· 프로방스의 영주인 샤를이 와서 호엔슈타우펜 왕조를 절멸시키고 새로운 시칠리아 왕이 돼 앙주 왕조를 세웠다. 샤를은 나폴리의 영주로서는 괜찮았으나 시칠리아에서는 동로마 제국 정복을 위한 중과세로 인해 민심을 잃었고, 결국 1282년 3월 30일에 시칠리아의 만종이라는 학살사건이 일어났다. 샤를 왕과 로마교황에게 불만을 품은 시칠리아 주민들이 프랑스계 주민 4000여 명을 학살하고 혁명을 일으킨 이 사건으로 인해 샤를 왕은 시칠리아 섬의 지배권을 잃고 시칠리아 왕국은 분열돼 시칠리아 섬에는 바르셀로나 가문의 아라곤 왕 페드로 3세가 왕위에 등극하고 남이탈리아는 앙주 왕조의 통치하에 놓인다. 당분간은 서로가 시칠리아 왕국이라고 주장했지만, 수도가 나폴리인 반도측이 편의상 구분하기 위해 나폴리 왕국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 이 명칭이 보급되었다.

앙주 왕가의 적통이 끊기면서 지파인 앙주-두라초 가문과 앙주 왕가를 모계로 계승한 발루아-앙주 가문이 내분을 벌려 발루아-앙주 가문의 르네(레나토) 1세가 나폴리 왕위를 획득했으나, 1442년 아라곤왕 알폰소 5세가 르네 1세를 무찌르면서 한동안 중단되었던 아라곤과 나폴리의 싸움은 아라곤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 국왕 샤를 8세가 모계로 앙주 왕가의 계승을 주장하며 1494년에 나폴리를 침공해 잠깐 나폴리 왕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1504년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에 의해 앙주 왕가의 권리는 소멸되었고 나폴리 왕국은 당분간 아라곤 연합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2세기 동안 나폴리 지역은 왕국의 지위를 잃고 스페인 국왕이 보낸 나폴리 총독 관할지역이 되는 신세가 된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 잠시 오스트리아령이 되었다가,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에서 카를로 7세에 의해 독립 왕국의 명칭을 되찾기까지...

2.4. 프랑스 혁명과 양 시칠리아 왕국 시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KingdomoftheTwoSicilies.png

허나 카를로 7세가 죽고 불과 30년도 지나지 않아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파르테노피아 공화국(1799~1806)이 세워지고,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당했다가(1806~1815), 나폴레옹 실각 후 빈 회의의 결과에 따라 부르봉 왕가가 복귀하고 시칠리아 왕국과 병합되어 양시칠리아 왕국(1816~1861)이 세워졌다. 이 왕국은 이탈리아 통일전쟁이 일어나 주세페 가리발디에게 점령당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2.5. 이탈리아 통일 후

이탈리아의 통일로 결국 남이탈리아는 1300년 만에 최초로 (북)이탈리아에 예속되었고, 신생 이탈리아 왕국의 도시가 되었다. 일개 지방 도시로 전락한 나폴리는 그 성세가 쇠퇴하여 많은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미국, 아르헨티나 등 신대륙으로 이민을 떠나게 됐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3년에는 연합군의 공중 폭격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1일 해방되었다.

1946년 왕정 폐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는 80%가 왕정을 지지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사보이아 가문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4] 국민투표에서 왕정 폐지가 결정되자 나폴리에서는 왕정 폐지를 이끌었던 공산당 왕당파 사이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열혈 왕당파들은 나폴리에 왕정 신정부를 수립하고자 했으나 이탈리아의 마지막 국왕 움베르토 2세는 이를 거부하고 망명을 떠나 무산되었다.

나폴리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에 공업도 나름대로 꽤나 발달해왔지만, 남부 각지에서 빈민들이 몰려들면서[5] 사회 문제 등이 심각하게 되었으며 마피아 세력의 중심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나폴리 역에서 내리면 성격 안좋아보이는 깡패들이 종종 보이는 재래시장을 발견할 수 있고동양인에게 주는 신기한 동물 쳐다보는 듯한 눈길은 보너스, 폰팔이장물들이 시도때도 없이 붙으며, 길 가다 이유없는 시비를 거는 놈들도 널렸거니와, 번화가에서 벗어난 내부로 들어가면 지나가던 운전자가 빨리 안전한 데로 나가라고 친절하게 조언해주는 동네이다. 이런 막장급 마경이 되면서부터 위에 나온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란 속담은 '죽고 싶으면 나폴리로 가라'란 비아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폴리가 위치한 캄파니아 주의 1인당 GDP는 2008년 PPP 기준 $18,900 정도로 동유럽을 제외하면 유럽 최저 수준이었다.

즉, 원주민인 쿰마인-그리스-에트루리아- 고대 로마-동고트족- 동로마 제국-노르만-신성로마-프랑스-아라곤- 합스부르크-나폴레옹 제국-이탈리아 통일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민족의 지배를 받은 땅이라 할 수 있다.

3.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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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화

동로마 문화에 이어 스페인의 영향을 이어받았고, 17세기에 후세페 데 리베라에 의해 번성한 화파인 나폴리파의 중심지였으며, 독특하면서도 환상적인 풍경 묘사로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5. 지형

베수비오 화산의 서쪽 기슭까지 이르고 있으며 따라서 시가는 동쪽으로 차차 높아지는 경사지에 자리하고, 토양은 비옥한 화산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아열대산인 오렌지의 가로수가 끝없이 연속되는 모래 해안은 배후의 베수비오 화산과 더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따라서 예로부터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하나이다.

기후 자체가 연중 내내 온난하며 주변에는 오렌지· 올리브같은 지중해성 농작물들이 번성하게 자란다. 세계 3대 미항[6] 의 하나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가 보면 그다지 실감나지는 않을 정도.[7] 생각외로 가을과 겨울엔 비가 많이 내려서 연간 강수량은 1000mm 정도로 많은 편.

대개 선원들이 꼽는 미항은 항구에 들어올 때 산이 보이는 곳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항구에서는 산이 잘 보이지 않고, 선원들이 산이 있는 내륙으로 가기 힘든 것을 감안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사실 나폴리가 아니라 나폴리 근교의 소렌토 아말피 등이 아름다워 미항으로 부르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8]

또 사실 항구 자체는 그다지 미항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변의 카프리맥주 섬이나 혹은 해안 절벽에 따닥따닥 붙은 아기자기한 마을이 멋진 경관을 이룬다. 따라서 나폴리에 가면 도시도 멋있지만, 차를 빌려서 주변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지중해를 음미하길 추천한다.

남쪽으로 사철을 이용해 베수비오, 폼페이, 소렌토로 갈 수 있다.

베수비오 화산 인근에 있어서 폼페이처럼 화산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배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인해 나폴리가 큰 피해를 입은 사례는 없다. 나폴리 시민들은 나폴리의 수호성인인 성 야누아리오(Ianuarius)가 화산으로부터 나폴리를 지켜준다고 믿고 있다.

5.1. 캄피 플레그레이

초화산인 캄피 플레그레이가 도시 옆에 있다! 구글 어스로 나폴리 왼쪽을 보면 분화구같이 생긴 게 여럿 있는데 그게 바로 캄피 플레그레이와 그 기생화산[9]이다.
어쨌든 이게 터질 경우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생기고 이탈리아, 알바니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국가 막장 테크의 지름길로 갈 게 확실하기에 학계에서 주목받는 화산 중 하나이다. 마지막 분출은 1538년. 사실 위의 베수비오 화산도 캄피 플레그레이의 기생화산에 불과하다. 단지 폼페이 때문에 더 유명할 뿐.

참고로 캄피 플레그레이는 초화산 중 인구밀집지대에 가장 가깝다(!).[10] 어쨌든 이게 터지면 M 7급의 대지진, 산사태와 이로 인한 쓰나미[11], 화쇄류 등으로 상술했듯이 수백만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생길 것이다. 유튜브에 보면 쓰나미로 인해 이탈리아는 물론 스페인, 그리스, 북아프리카, 발칸 반도, 몰타, 터키,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키프로스 등 지중해 연안이 모조리 쓸려나가는 수백~수천미터의 메가 쓰나미 발생 위험이 있다는 시뮬레이션도 있다! 거기다가 이탈리아 남부는 농업과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그 농업과 관광업의 기반 시설인 농지와 유적 등이 최소 수십 센티미터에서 최대 수 미터의 화산재에 파묻혀 날아가 버리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화산재로 인한 항공편 결항까지 감안하면 경 단위의 피해와 유럽 경제의 전체적 마비까지도 예상된다. 또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마지막 빙하기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3만 9천년 전 분화 수준으로 대분화를 할 경우 이탈리아와 유럽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기근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인구밀집지대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초화산은 대략 그리스의 산토리니 정도 되겠다.

6. 교통

로마에서 교통지옥을 체험했다면 나폴리에선 추억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훨씬 안 좋다.[12] 건널목에 신호등이 없는 곳이 꽤 많아 길을 건널 때도 조심해야할 정도.

한때 (구시가지만 치자면)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도시였던 명성이 있는 만큼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을 크기가 아니며, 지하철 시스템은 노선 자체가 복잡하면서도 시설은 매우 열악하고, 트램은 관광구역을 벗어나 있어 사실상 도움이 안 되며, 버스는 노선도 자체가 없어서 불친절하다. 일단 지하철은 1호선과 교외선 및 푸니쿨라가 트레니탈리아 소속, 2/3호선이 나폴리 메트로 소속이며, 트램과 버스 운영사가 또 다르지만 모두 통합권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기차의 경우 중앙역(Napoli Centrale) 단 하나만 있고[13], 이 안에 국철인 트레니탈리아 노선과 사철인 치르쿰베수비아나(Circumvesuviana)[14]가 다니고 있다. 당연하지만 사철은 유레일 패스를 사용할 수 없는데, 사실상 교외선 전철이나 다름없다. 가리발디 역 근방에 이탈리아 대표 시외버스인 시타(Sita)가 있으니 참고.

7. 치안

범죄율이 막 생각하는 대로 최악은 아니지만 높은 편이다. 이탈리아 3대 마피아 세력[15] 중 하나인 카모라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유명 관광지 근처(나폴리역 근처는 위험하니 조심하자)는 순찰 경관도 많아서 위험하지 않으며 소매치기 등의 범죄를 제외하고는 관광객이 체감할 정도는 아니지만 북부 지역인 스캄피아 지역은 공동주택의 관리 실패로 마약 거래의 온상지라서 치안이 좋지 않다.

영화 고모라에서는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 마피아 세력, 동네 양아치들이 날뛰는 마경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이 영화의 원작은 나폴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쓴 르포다.[16] 이들과 연루된 부정부패도 극심한 편. 나폴리의 쓰레기 대란도 쓰레기 수거업을 독점하고 있는 마피아와의 갈등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마피아 세력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도시 전체적으로 쓰레기가 많은 편인데다 관광지를 벗어나면 노숙자들도 보이는 등 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는 생각이 꽤 들 것이다.

8. 구경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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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246> 문화유산
1979년

발카모니카의 암각화
1980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와
도미니코 수도원 및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최후의 만찬'
1980년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
1982년

피렌체 역사 지구
1987년

베네치아와 석호
1987년

피사의 두오모 광장
1990년

산지미냐노 역사 지구
1993년

마테라의 동굴 주거지와 암석교회
1994년

베네토의 비첸차 시와 팔라디오 양식 건축물
1995년

시에나 역사 지구
1995년

나폴리 역사 지구
1995년

크레스피 다다
1995년

르네상스 도시 페라라 포 삼각주
1996년

몬테 성
1996년

알베로벨로의 트룰리
1996년

라벤나의 초기 기독교 기념물
1996년

피엔차 역사 지구
1997년

카세르타의 18세기 궁전과 공원, 반비텔리 수도교, 산 레우초
1997년

사보이아 왕가의 거주지
1997년

파도바 식물원
1997년

포르토베네레, 친퀘테레와 섬들
1997년

모데나의 대성당, 토레치비카, 피아차 그란데
1997년

폼페이·헤르쿨라네움·토레 아눈치아타 고고 지구
1997년

코스티에라 아말피타나
1997년

아그리젠토 고고 지구
1997년

카살레의 빌라 로마나
1997년

수 누락시 디 바루미니
1998년

아퀼레이아의 고고 지구와 가톨릭 성당
1998년

우르비노 역사 지구
1998년

칠렌토·발로디디아노 국립공원 파에스툼과 벨리아 고고 유적지
1999년

티볼리의 빌라 아드리아나
2000년

베로나 시
2000년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유적
2001년

빌라 데스테, 티볼리
2002년

시칠리아 남동부 발디노토의 후기 바로크 도시
2003년

피에몬테 롬바르디아의 사크리 몬티
2004년

체르베테리와 타르퀴니아의
에트루리아인 네크로폴리스
2004년

발 도르차
2005년

시라쿠사와 판틸리카 바위 네크로폴리스
2006년

제노바: 르 스트라다 누오보와 팔라치 데이 롤리
2008년

알불라·베르니나 지역의 래티셰 철로
2008년

만토바와 사비오네타
2011년

이탈리아의 랑고바르드 왕국(568년~774년 권력의 장소)
2011년

알프스 주변의 선사 시대 호상 가옥
2013년

토스카나의 빌라 메디치와 정원
2014년

피에몬테의 포도밭 경관:
란게-로에로와 몬페라토
2015년

아랍-노르만 팔레르모 그리고
체팔루 대성당과 몬레알레 대성당
2017년

16~17세기 베네치아의 방어 시설:
스타토 다 테라 - 스타토 다 마르 서부
2018년

이브레아 – 20세기 산업도시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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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에트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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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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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나폴리 역사 지구
영어 Historic Centre of Naples
프랑스어 Centre historique de Naples
국가·위치 이탈리아 나폴리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6년
등재기준 (ii)[17], (vi)[18]
지정번호 726

9. 음식

이탈리아 하면 누구나 떠올릴 스파게티(토마토 소스 및 봉골레)와 피자의 발상지가 이곳 나폴리인 만큼 누구나 이곳을 방문한다면 원조의 맛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작 실제로 가보면 나폴리는 식당이 별로 없는 게 함정. 대부분이 피제리아(Pizzeria)[23] 고, 극히 일부만 고급 식당으로 되어 있으며, 어지간한 식당들 모두 시에스타 타임을 갖기 때문에 도저히 여유를 두고 먹을 수 없게 만든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딱 점심 타임과 저녁 타임에만 운영한다. 브레이크 타임

그나마 피제리아에서 나폴리 피자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위안을 삼자. 어지간한 피제리아가 모두 본격적인 화덕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어서, 미리 만들어서 파는 곳이 아닌 이상 아무데나 들어가도 평균 이상의 맛이 나온다. 가격 또한 고급 레스토랑보다 저렴한 편이다. 추천할 집으로는 디 미켈레, 디 마테오, 지노 솔비로(Sorbillo) 같은 곳이 있다.

이탈리아 국기를 닮은 마르게리타 피자를 최초로 개발해 만든 원조집은 Brandi라는 리스토란테이며, 레알레 궁전과 플레비스치토 광장 사이 위쪽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자리세 1.30유로가(2017년 3월 기준) 별도임을 참고할 것.

나폴리타노라는 지역 특유의 피자도 유명하다. 나폴리탄 스파게티 또한 이곳의 지명을 땄지만 사실상 일본 요리다. 진짜 나폴리 사람들은 요리로도 안 쳐준다고.

진짜 나폴리 유래의 스파게티는 " 알리오 에 올리오"가 있다. 마늘과 올리브유로만 맛을 낸 서민음식.

10. 스포츠

연고 축구팀으로 SSC 나폴리가 있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 팀 소속이었다. SSC 나폴리 세리에 A에서 만년 중하위권이었으나, 1984년 6월에 마라도나를 영입한 후 1984-85 시즌 리그 3위, 이후 1989년까지 2번의 리그 우승, 코파 이탈리아 우승, UEFA 컵 우승 등 숱한 우승컵을 잇따라 들었다.

하지만 마라도나가 떠난 후에는 추락하여 3부리그까지 내려가고, 파산까지 당하였다. 하지만 영화인 데 라우렌티스가 인수하여 2007년에 드디어 다시 세리에 A 무대를 다시 밟았다. 그의 의욕 넘치는 투자에 점점 성적이 올라오더니, 10-11 시즌엔 감독 마짜리가 이끄는 삼각편대의 힘으로 리그 3위까지 차지하며 개편 후 UEFA 챔피언스리그에 처음 진출하였다. 그 위에는 오직 밀라노 연고의 두 팀뿐이었다. 그 후 11-12시즌엔 코파 이탈리아 우승, 12-13시즌엔 세리에 A 준우승까지 하였다.

그 후 13-14 시즌엔 인테르로 간 마짜리의 후임으로 라파엘 베니테스를 선임하고 카바니를 판매한 돈으로 리빌딩을 거쳤는데, 챔스에서 죽음의 F조에 드는 불운을 겪었고 유로파에서 삽질하였지만 리그에서 3등을 하고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했다.


2005년 디에고 마라도나 치로 페라라의 은퇴 경기에 방문했을 때의 영상인데, 과연 종교가 따로없는 무시무시한 인기를 자랑한다. 실제로 마라도나교가 존재하기도 하다. 이런 과거 때문에 아직까지도 나폴리에서는 마라도나가 살아있는 으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부고가 전해진 후, SSC 나폴리의 홈 구장도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개칭했을 정도.

한 가지 더욱 재미있는 점은 나폴리의 한 레스토랑의 입구 옆에는 마라도나를 위한 작은 제단이 걸려있는데, 마라도나의 사진이 당시 SSC 나폴리에서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으로 되어있다. 가게 주인이 말하길 마라도나가 있을 때만큼 나폴리가 축구를 잘한 적이 없었다고. 그래서 비록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사람이긴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제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 이 가게마저도 유명세를 타면서 또 다른 랜드마크로 급상승.


축구를 사랑하고, 그만큼 축구에 예민하다. 이과인 통수 때문에 유벤투스 유니폼만 봐도 분노 섞인 욕설을 들을 수 있다. 나폴리의 라이벌인 유벤투스 로마의 유니폼을 입고 나폴리에 가진 말자.

11. 얘기거리

세계 굴지의 성악가들이 주로 즐겨부르는 노래들 또한 나폴리 민요가 많고, 성악 입문자들이 가정 먼저 접하는 민요 또한 나폴리 민요일 정도로 음악으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 나폴리이다.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새로운 오페라 양식을 창안한 나폴리 악파가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관광 차원에서 현지에서 들어보기는 어려운 편.

세계 3대 야경의 도시에 자주 이름이 올라온다.[24] 그런데 기본적으로 나폴리 거리가 그다지 깨끗한 편은 아니고[25], 밤거리 치안도 좋지 않은 관계로 몸소 체험하기는 많이 어려운 편.

13세기에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설립되어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대학인 '나폴리 대학교'가 있으며,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곳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좌파의 지지기반이 이탈리아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곳 중 하나다. 현재 나폴리 시의회의 집권여당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인 이탈리아 민주당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좌파연합 세력이다.

영화감독 파올로 소렌티노가 이 곳 출신이다.

12. 서브컬쳐에서의 나폴리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등장인물 토니오 트루사르디, 브루노 부차라티, 나란차 길가, 판나코타 푸고, 자이로 체펠리의 고향이며 5부 황금의 바람의 주무대로 영어인 네아폴리스(Neapolice)로 언급된다. 또한 일본계 이탈리아인인 죠르노 죠바나 역시 이 곳을 정신적 고향으로 여기는 듯.

영화 고모라의 배경이다.

도미네이션즈 부두 원정 목적지 중 하나로 등장한다.


[Regione] 레조네 [2] Città metropolitana di Napoli [3] 전형적인 러시아의 그리스식 지명법 중 하나다. 세바스토폴, 심페로폴, 마리우폴, 스타브로폴이 대표적. 여담으로 심페로폴의 경우 교외에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스키타이 네아폴리스라는 도시의 유적이 있다. [4] 정작 사보이아 가문의 본거지였던 피에몬테 토리노 발레다오스타 아오스타에서는 왕정 폐지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이탈리아 통일 초창기 사보이아 가문이 토리노를 버리고 피렌체로 도망치듯 천도하면서 이미 민심이 나빠졌는데 제2차 세계 대전 중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독일 국방군이 이탈리아 북부를 점령해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을 세워 내전이 일어났고 이탈리아 북부는 그 피해 현장이 되었기 때문. [5] 사실 이러한 이촌향도 현상은 타 유럽국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남부지역 개발에 실패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던것이다. [6] 3대 미항은 리우데자네이루, 시드니, 나폴리를 의미한다( 샌프란시스코, 마르세유, 밴쿠버 심지어 빅토리아 항구 등을 집어넣기도 하는데 아니다.). 그런데 최근 평판 기준으로는 그중 나폴리가 가장 안좋다. [7] 본래 미항이라는 것의 기준이 '해안지역이지만 산이 있어서 입항할 때 항구의 위로 산이 보인다는 것'이 미항의 결정 포인트였으니 예전 시대를 생각해본다면 나폴리는 충분히 미항으로 선출될 자격은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지만 [8] 여기는 진짜 풍광이 좋다. 그림 엽서로 만들어 질 정도. 사진을 보면 "아. 거기."라고 알아 차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9] 제주도의 오름 같은 거다 [10] 사실 다른 초화산들은 우리의 조상들도 화산이 위험한건 알았는지 인구밀집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은데, 가령 백두산은 드넓은 만주의 허허벌판과 개마고원 사이에 있고, 7만 4000년 전 인류를 없애버릴뻔 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토바 화산은 정글 한가운데에 있다. 또한 그 옐로스톤 국립공원도 와이오밍 주 한복판의 숲속에 있다. 그런데 이 화산은 인구 수백만의 대도시 바로 앞에 있으니 학자들이 예의주시할 수밖에. [11] 구글 어스로 보면 알 수 있듯이 바다 바로 앞에 있다. [12] 당장 여행 커뮤니티만 가도 "나폴리에서 길 건널 때 죽는 줄 알았어요"라는 후기가 수두룩하다. 나폴리를 가는 여행자들의 최대 고민 두 가지로 교통과 치안을 꼽는다. [13] 나폴리 첸트랄레(Napoli Centrale) 또는 나폴리 피아차 가리발디 (Napoli Piazza Garibaldi)으로 주로 표기되는데, 전자는 국철, 후자는 나폴리 지하철과 사철 교외전철인 치르쿰베수비아나 노선이 다니는 역의 이름인데 둘이 바로 붙어 있다. 중앙역이 있는 광장 이름이 가리발디 광장인데 그 광장 이름을 딴 역이 앞에 하나 더 있는 셈. 마치 서울역과 구 지하철 서울역 앞 역 관계, 또는 일본 오사카의 오사카역과 우메다역 관계와 유사하다. [14] 이탈리아에서 탈 수 있는 전철, 지하철, 기차 중 가장 개판이다. 기차 자체가 폐기차를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을 만큼 상태가 안좋으며, 기찻길도 안그래도 950mm 협궤인 데다 관리상태까지 개판이라 멀미하는 사람도 속출한다. 좁은 데다 낡았는데 전철 안에서 연주를 하며 구걸하는 사람까지 있어서 매우 복잡하다. 1호선의 종점이 소렌토라서 나폴리에서 캐리어 등 많은 짐을 들고 소렌토로 이동하는 여행자가 많은데 문자 그대로 존나 힘들다. 안그래도 짐을 놓을 만한 곳이 적은데(좌석 쪽에는 아예 없다고 보는게 좋다) 엄청나게 흔들리는 데다 나폴리-소렌토 구간은 이용자도 많다. 여기에 음악을 연주하며 구걸하는 이들이 밴드째로 온다면... 굳이 장점을 꼽아보자면 싸고 폼페이 유적을 가는데는 사실상 필수다. [15]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 칼라브리아 은드랑게타, 나폴리의 카모라. [16] 덧붙여 이 사람은 르포를 써 마피아 세계의 실상을 알린 이후 마피아들의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못해 경호원을 끼고 살다가 이민갔다. [17]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18]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19] 때문에 이 구역의 모든 건물 아래로 땅을 팔 수 없게 되어있다. [20] 건물 위로 빨랫감이 널려 있다거나... 그런것. [21] 제목의 푸니쿨리 푸니쿨라 자체가 Funicolare(케이블카)를 의미한다. 단, 케이블카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는 가공삭도 방식이 아니라 노면전차와 유사한 형태의 강삭철도 방식. [22] 폼페이라는 이름을 가진 역이 2개 있다. 하나는 폼페이 스카비, 다른 하나는 (일반) 폼페이. 현지인들은 신시가지인 일반 폼페이역에서 내리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지만, 폼페이 유적은 반드시 폼페이 스카비 역에서 내려야 한다. 신 시가지에서도 갈 수는 있지만 매우 귀찮아진다. [23] 피자 등 가벼운 음식을 주로 파는 식당. 흔히 생각하는 정식 식사를 파는 레스토랑보다는 좀 편한 이미지다. [24] 나머지 2군데는 홍콩 일본 하코다테 [25] 일부는 오히려 더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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