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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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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
등장인물 / 조선 ( 1부 · 2부) 설정 ( 입신체비) 개변된 역사 / 조선 웹툰

1. 개요2. 1부
2.1. 조선2.2. 명/만주/몽골2.3. 일본2.4. 유럽/중동2.5. 아프리카
3. 2부
3.1. 조선3.2. 명3.3. 일본3.4. 유럽3.5. 중동/남아시아/아프리카3.6. 폴리네시아3.7. 아메리카3.8. 호주
4. 외전(근현대+일부 조선 후기)
4.1. 조선 후기
4.1.1. 조선4.1.2. 유럽
4.2. 근대4.3. 현대

1. 개요

근육조선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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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부

2.1.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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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명/만주/몽골

2.3. 일본

2.4. 유럽/중동

2.5. 아프리카

3. 2부

3.1.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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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3. 일본

3.4. 유럽

3.5. 중동/남아시아/아프리카

3.6. 폴리네시아

3.7. 아메리카

3.8. 호주

4. 외전(근현대+일부 조선 후기)

1부에서의 최영직과 2부에서의 김성원의 활약으로 인해 변해버린 근현대사의 인물들과 조선 후기 인물

4.1. 조선 후기

4.1.1. 조선

4.1.2. 유럽

4.2. 근대

4.3. 현대

거의 대부분의 국내 대체역사소설들이 그러하듯이 근대 이전 인물들과는 달리 현대인들 중 실존 인물들은 대부분 이름이 약간씩 바뀌어 있다. 참고로 두 주인공들의 가족들이 역사 변동 이후에도 그대로인 이유는 작가피셜 주인공 보정 때문이라고.

[1] 다른 부족들은 조선에 귀부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절박한 상황인데다 수양대군의 근육에 혹해 일찌감찌 조선에 귀부해서 우대를 받았고, 이중 아구지는 정충렬이라는 이름을 받아 훗날 조선의 명문가로 성장하는 회령 정씨의 시조가 된다. [2] 세조 대에 이루어진 일로, 이시애의 난 진압 부대가 그대로 북방으로 올라가 이만주 토벌에 나섰지만 조선에서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만주는 그걸 예상을 못 했는지 본거지에 있다가 사망. [3] 타이순 칸을 생포하기 위해 김종서가 순수한 일대일 대결로 승부를 내는 것을 제안, 수양대군이 몽골 전통 스포츠인 부흐를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내수린을 도입해 결투를 벌인다. 그런데 타이순 칸은 근육이 좀 있는 90 kg 정도의 체구인데, 수양대군은 전형적인 보디빌더형 근육덩어리에 체중만 120 kg를 넘어가는 괴물이라 주먹질, 발길질도 허용되지 않는 레슬링 룰로는 이 체급차를 극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신나게 던져지고 굴렀다. 현대의 레슬링이나 이종격투기도 체급차이를 극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에 체급별로 나눠서 경기를 치르곤 한다. 웹툰에선 아예 F5, 쵸크슬램, 자이언트 스윙등 온갖 고급기술들을 다 맛보고 항복을 선언한다. [4] 에센의 조카로써, 원 역사에서 다얀 칸의 아버지. 원래 에센이 황금씨족이 아니라 칸이 될 수 없어서 자기 여동생을 타이순과 결혼시켜 조카를 칸으로 만들 계획이었는데 에센이 패배하면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아들은 아들인지라 정이 들어 내치지 못했다고. [5] 이 지헤는 350화의 댓글에서 밝혀졌는데, 바지사장 신세를 벗어나는 방법이라고한다. [6] 정화의 마지막 원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젊을 때는 천축에 가서 검은 돌을 본 적도 있고, 지금도 자신이 3년만 가르치면 조선도 천축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고 큰소리 칠 정도로 실력에 자신이 있는 듯. [7] 7촌이면 증조부의 형제의 손자다. 이쯤 되면 현대에서는 친척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과거에도 '사돈의 팔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먼 친척 관계이다. [8] 당대의 지식 높은 고승들은 경전을 산스크리트어로 읽었어야 하므로 가톨릭 사제들이 라틴어를 하듯 산스크리트어를 구사 가능했으므로 신미대사가 산스크리트어로 인사하자 바로 고승 흉내가 파훼되어 버렸다. [9] 막부의 군사와 치안 담당기구인 사무라이도코로(侍所)의 장관직에 임명될 수 있던 4개의 가문. [10] 이 시기 낙양은 이미 쇠퇴해가는 도시였기 때문에 쓸쓸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괜히 화려해 보이기 때문에 실패작이라고 여긴다. [11] 광맥 찾는 사람 [12]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엉터리로 가르쳐 주면 엿먹이려는 것이 티가 나므로 이미 사장된 고려시대 재배법을 알려줬다. [13] 애초에 궁궐에선 비상이 들어간 안료를 금지했으니 그야말로 택도 없는 거짓말이다. [14] 사실 도주 자체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아에 끝장을 보기 위한 조선의 계책이였다. 조선은 경인왜변에서 포로로 잡힌 노리나오의 아들을 몰래 풀어주면서 노리나오를 처벌할 것이라고 흘렸고, 이 때문에 노리나오는 호소카와가 부르기 전에 도주에 성공했다. 난감해진 호소카와는 조선에 시부카와 가문의 도주 사실을 통보하였지만, 조선은 호소카와가 핑계를 대며 명나라의 황명을 거역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쟁을 계속해 호소카와 가문은 완전히 망해버린다. [15] 배는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홍길동이 난파선으로 착각할 정도였고, 율도에 도착하기 3일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서 조금만 늦었어도 죄다 아사할 뻔 했다. [16] 그 건축법이라는 게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만들어 눈이 쌓이지 못하고 떨어지게 만드는 방식인데 문제는 일본인의 신장에 맞춘 사이즈 였던지라,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들 정도로 낮고 비좁아서 율도 수령으로 부임한 아들 한보를 보러온 한명회가 보고 내 아들이 이런 비좁고 흉물스런 관아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거냐며 경악했다. [17] 전주 이씨진주 이씨로 착각하고, 진주에 왕족이 산다고 생각해 이런 왕족들을 인질삼아서 탈출하려 한다. [18] 조선이 인삼 씨앗으로 수작을 부렸다고 이야기하자 '일본 영주들이 과하게 욕심을 부렸다'고 믿지 않았고, 아녀자에게 두들겨맞고 잡혔다는 말에는 '끝까지 거짓말한다'고 대노했다. [19] 인도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인 후추값을 떨어뜨려 무역 수익을 줄어들게 만드려는 수작이였다. 다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방식으로 엿을 먹는데, 오스만 제국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인 커피원두는 조선에 수출할 때 죄다 볶아서 종자로서의 기능을 없애고 수출하였지만 메흐메트 2세에게 악감정을 품은 피지배국 출신 농민들이 조선으로 이주할 때 커피 종자를 몰래 숨겨갖고 가는 바람에 조선에서도 대양도(대만)에서 커피 재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20] 오스만과 적대 관계인 티무르 제국 백양 왕조에 군수품 지원, 맘루크 왕조에는 홍삼 판매로 상잔 유도, 그리고 오스만과 맘루크 항구에 대한 직접 공격 등. [21] 나중에 도나텔로의 제자들에게 이 말을 들은 수양대군은 괜히 안평대군을 갈군다. [22] 정확히는 올때는 32명이 왔는데 한명은 한반도의 극단적인 기후로 인한 폐렴으로 죽고 다른 한명은 고향에서 사자를 잡듯이 호랑이를 잡겠다고 사냥을 나섰다가 당해버렸다. [23] 설카타거북의 등껍질은 영양섭취상태 등의 차이로 매끈하게 자라거나 가시돋친듯이 울퉁불퉁하게 자라거나 한다. [24] 그 당시 거북이 등껍질은 용골(龍骨)이라는 약재로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25] 실제로 수은복용 외에도 생리혈을 얻겠다고 궁녀들을 학대하기도 했다. [26] 참고로 수은 중독 증상에는 근손실과 기억 장애가 있다. [27] 일곱 살 때 조선 사신이 찾아오지 직접 조선말로 대화한다. 황제가 조선말을 배울 만큼 조선의 국력이 올랐다는 묘사이기도 하지만 만력제 본인의 능력이 출중했음을 무시할 수 없다. [28] 현재 만력제의 유해는 문혁시기에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당했지만 당시 남아있는 발굴기록에는 허리가 굽은 꼽추에 가까워서 일상에 지장이 있었던데다가 설상가상으로 한쪽 다리가 너무 짧아서 걸어다니는데도 큰 지장이 있었을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29] 남경이 함락되면 남경과의 무역에서 큰 수익을 얻는 조선에 피해가 간다는 이유로 탈출하지 않고 남아 맞서 싸웠다. 심지어 왕족이라 먼저 탈출한 진해대군조차 그냥 도망간 게 아니라 해적들이 들끓는 장강에서 정보를 수집해서 넘겨줌으로써 공을 세웠다. [30] 원래 역사에서는 태업을 하면서도 동창을 통해 정보를 모았고 군 관계의 신료의 감시와 빈자리가 생기면 바로 바로 채웠었다. [31] 북경을 재건하는데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데 명의 행정체계는 부정부패로 제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라 재건비용 마련이 힘들고 놔두자니 명의 몰락이 시작되었음을 상징하는 광경이기에 어떻게든 재건해야 하는 상황. 거기다 도주에 성공한 2만여명의 대연군은 개개인이 막대한 재물을 가졌으며 스페인의 테르시오와 비슷한 수준의 훈련을 받아 불만을 품은 자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군대로 훈련시킬 수 있는 정예화된 반란군이고, 신하국인 조선에게 구원받아 명의 위신이 추락했기 때문에 명나라 곳곳에서 반란군이 일어날 것이 예정된 상황이다. 그렇다고 다시 태업을 했다간 이여송에게 맞서다가 불구가 된 황태자 주상락이 황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32] 대륙의 패권싸움에서 패배한 뒤 조선의 권유로 명나라 조정이 통째로 춘천으로 천도하였고, 현대에도 명나라 고유 영토로 취급되고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명목상으로 명나라일뿐 대한공화국의 보호를 받아 고유의 문화와 황위를 이어나가는 처지이다. [33] 삼년상을 치를 경우 본인의 세력이 흩어질 것이고, 치르지 않으면 유교 사상이 남아 있는 명에서 탄핵감이다. [34] 유성룡도 듣자마자 명나라 이름이 아닌데 혹시 일본인인가? 하고 여겼다. 사족으로 저 발음을 일본식으로 읽는다면 코스기 친파치 정도. [35] 만약 조선이었다면 형무소에 수십 년 간 처박혀 있어야 하는 중범죄자라도 당장 사면하고 관직을 내릴 정도의 대발견이라고. [36] 북원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걔들이 왜 쳐들어오는 거냐며 어리둥절하고 북원은 딱히 원한 없는 상대에겐 순순히 항복하면 죽이지는 않는다고 들었다며 항복할 생각이었던 걸 보면 본인은 부하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걸 아예 몰랐던 게 확실하다. [37] 특히 우역 피해를 직격으로 맞은 조선 북인 측의 분노가 매우 심했다. 북원의 칸은 그래도 좀 불쌍했는지 '조선 애들은 착하니까 얘들한테 맡기면 그래도 목숨만은 살려주겠지'하고 형벌에 쓰일 수레바퀴를 맡겼더니 손바닥만한 수레바퀴를 들고 온다(...) [38] 이때 칸은 그의 처분을 천신 텡그리에게 맡긴다며 살려줄 것이면 비가 내리겠지만 아니면 말라죽을 것이라고 했다. [39] 소빙하기가 다가와 점점 북원이 살기 힘든 땅이 되었음에도 두배나 되는 기병들을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한 (북원 입장에서) 정체 불명의 정예군의 존재가 두려워 남하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이때 남하하지 못한 세력들 중 일부는 조선의 호주 개척단에 참가해 호주로 건너갔고, 거기서 부를 쌓아 일가족을 전부 이주시켰으니 북원도 어느 정도 살 길이 열렸을 것이다. [40] 조선이 명의 신하국을 자처하고 있는 상황이라 명에서 토벌을 명할 경우 조선과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여송이 전쟁을 위해 경진만란 당시 사로잡혀 몽골에 노예로 팔린 스페인 선원들을 사들여 그들의 총포제작 기술과 군대 운용 노하우를 습득하였지만, 조선 기준으로는 지방군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기에 본격적으로 붙으면 순식간에 쓸려나갈 것이 뻔했다. [41] 본인도 자신이 천명을 쥐고 대륙의 모든 힘을 동원한다면 모를까 그 전에는 승산이 없다고 말했다. [42] 유성룡이 요동에서 수상한 정황이 보이자 조사하러 왔을 때 날카로운 추리력으로 진상에 도달할 기미가 보이자 '도저히 속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유성룡의 평판을 이미 알고 있던 이여송이 숨겨봤자 얼마 안가 들통날것 같아서 그냥 자기 입으로 순순히 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정과 계획을 전부 설명하고 여섯 달만 못 본척 해달라고 부탁한다. [43] 요청한 자금과 물자는 부패한 관리들에게 떼먹혀서 자기 사비를 털어도 충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고, 돈이 없으니 방어설비를 갖추려고 했던 일들은 죄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44] 물자를 착복하는 자들은 황제의 명을 어긴 죄를 적용하여 이들에 대한 즉결심판권을 부여받았다. [45] 유성룡이 이런 방어체계를 구축한 이유는 애초에 일본은 화약병기가 발달하지 않아 장거리 화포라고는 명나라에서 노획한 게 전부였던데다, 큐슈에 세운 성형 요새가 포탄에 한해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방어력을 자랑하였기에 여차하면 성벽 믿고 뻐긴다는 선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46] 그래도 이여송이 평하길 이틀만 더 버텼어도 자신들이 졌을 거라고 평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싸움이었다. [47] 건축과 목공 쪽의 재능이 엄청나서 당대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되곤 한다. 문제는 황제로서의 일을 내팽겨치고 취미에만 몰두해 암군이 되었다는 것이다. [48]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오다 노부히데와 이름이 같다. [49] 애초에 상이경이 아케치에게 속은 것도 '머리의 피부색을 보니 승려로 위장하려고 갑자기 머리를 깎은 게 아니라 원래 대머리인 게 확실하니 승려 맞겠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50] 작중에서 160cm 이상이라 언급되었는데 그 당시 육식문화 자체가 없었던 일본 기준으로는 엄청난 장신이다. [51] 주인공 유성룡은 토키치로라는 이름은 몰랐으나, 특유의 초상화를 본 일이 있어 신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이름을 쓰는 적 없는데도, 유성룡도 작가 서술도 모두 히데요시라고 지칭한다. 일단 이 문서에서는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인 히데요시를 사용한다. [52] 이때 병든 노모에게 귀한 산삼을 계속 구해 달여 마시며 극진히 간호한 일화가 나온다. 안타깝게도 끝내 노모는 병사하고 만다. [53] 줄로 인형극을 하듯이 대국 상황을 알려 여러 기사들에게 도움을 받는 사기 바둑인데, 그처럼 자신도 꼭두각시 신세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던 것. 하지만 유성룡이 바둑을 너무 잘 두는 바람에 이런 사기 바둑을 했음에도 일방적으로 발렸고, "내가 이렇게 줄로 명령받는 꼴이다"라는 의도는 "내가 이렇게 줄로 사람을 부린다"로 잘못 읽혀버렸다. 그가 했던 행동 자체는 그 처지에서 가족과 자신의 목숨을 모두 구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지만, 작가의 말마따나 현대인 김성원이 히데요시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안타깝게 기회를 얻지 못한 셈. [54] 계획을 세운 뒤 길거리에서 검은 서양식 복장을 입고 여인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춤을 춘다. [55] 명군한테 노획한 화포는 성형 요새의 정신나간 방어력에 막혀서 별 피해도 못 줬고, 참호를 파서 접근하려 했더니 측량기로 참호를 관측해 좌표를 찍어서 날려대는 포격에 좌절, 땅굴을 팠더니 미리 주변에 땅굴 감지용으로 깔아놓은 나무를 보고 땅굴을 눈치챈 유성룡이 날린 포격에 땅굴이 무너지며 또 좌절, 아예 포격으로 무너뜨릴 수도 없게 깊게 땅굴을 팠더니 그것까지 예상하고 미리 깔아놓은 가짜 석축에 낚여서 힘들게 판 땅굴만 날려먹고 유성룡에게 흑룡세로 인성질까지 당한다(...). 흑룡세를 보고 저건 뭔 노루얼굴을 형상화했냐며 까긴 했지만. 이후 유성룡에 대한 히데요시의 평가는 밥 먹을 때도 전쟁계획서를 보며 입맛을 돋구며 머리를 까보면 전쟁이라는 단어만 가득할 전쟁에 미친놈이 되었다. [56] 카츠요리에게 조선국왕을 사로잡아 가신으로 삼게 하라는 억지스러운 요구도 당하는데, 이건 실제 역사에서 본인이 고니시에게 시전했던 억지다. [57] 원 역사의 임진왜란에서 산성들이 함락된 이유가 장기전을 고려하지 않아 물 등의 필수물자가 부족해서였는데 이걸 알고 있던 유성룡이 왜군이 처들어오기 전에 이를 보완해놓았던 데다, 진주성 공방전에서는 히데요시가 닌자를 파견해 진주 일대를 정찰한 뒤 이동하던 며칠 사이에 진주성 옆에 성을 2개나 더 쌓아놨고, 조선군의 방어상태를 확인하려 시도한 공격은 근육질의 유생들이 던지는 역기용 플레이트와 각종 쇳덩어리들에 짓뭉개지면서 좌절되었다. 이 때 나온 대사 중 하나가 "네놈들 봉 무게는 조상님도 못 들어준다!" [58] 애초에 살아났다고 해도 조선에 전쟁의 원흉으로 지목된 상태에서 그런이가 권력을 잡도록 방치할리가 없으니..... 애시당초 불가능한 꿈 아니 망상이었다. [59] 단편으로 대역갤에 연재되었던 초창기 근육조선에서도 히데요시는 참피 드립이 듬뿍 들어간 캐릭터였다. 그 영향이 남아 있는 셈. [60] 히데요시는 속으로 멍청한 짓거리라고 깠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그 조선이 무서워서 아무도 이와미 은광을 뺏을 생각을 안하는 건데 그 보호비 조금이 아깝다고 뒷배를 걷어차 버렸으니... 설령 히데요시가 이겼다고 해도 20년 안에 내분, 혹은 다른 다이묘의 침략으로 멸망했을 것이라고 한다. [61] 이는 조선&명나라와의 협상에서도 드러난다. 요컨대 "우리는 이렇게 사니까 저들도 이렇게 살 것이다." 라는 시선으로 타국의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건 서양인 뱃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결점으로 나온다. [62] 이연을 알현한 게 입신체비 시간이였던지라 운동 직후의 불끈불끈한 근육을 보고 겁에 질린 묘사가 나오기도 하였다. [63] 유성룡은 폭발적인 이름이라 평하였다. 후쿠시마가 충심을 갖고 장렬하게 폭사한 회차에서 이 세계관의 후쿠시마엔 원자력 발전소 자체가 건립되지 않았다고 한 작가의 말은 덤.(정말로 이 세계관에선 후쿠시마라는 이름이 폭발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기에 원전의 터로는 불길하다 하여 짓지 않았을 것이다.) [64] 하주도에 성을 새로 쌓는 걸 유성룡이 일부러 설계를 뻥튀기해 더 큰 규모로 제자들에게 흘리는데, 덕분에 일본군은 출병 당시까지도 성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오판한다. [65] 참고로 부하들은 와키자카가 자결했다 생각하고 조선에 항복했고, 부하들이 희멀건 죽으로 속을 달래고 있을 때 와키자카는 굶주림과 파도에 휘말리고 있었다 한다. [66] 원 역사에서 제주도는 말, 표고버섯, 귤 등의 진상품을 바치느라 힘겹게 살았지만 여기서는 1부에서 수양대군이 역사를 뒤튼 덕분에 대부분의 공납은 폐지되었고 귤이 유일한 진상품이였다. 와키자카가 조정에 진상하고 남은 귤을 먹는 걸 보고 주민들이 열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두들겨 패고 난 뒤에 보니 왜인이라는 걸 깨닫고 "어이구 이 친구, 말이라도 하지." 라며 미안해하는 깨알같은 개그는 덤. [67] 전후 보상으로 배를 5척 받았기에 이걸로 어업활동을 하던 중 자신이 표류했던 섬의 미역을 떠올리고 미역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68] 몰래 건미역에 설탕을 타 불려서 미역에 단맛이 감돌게 되어버렸다. [69] 항복하면서 주군을 7번은 바꿔야 무사라며 말하며 비굴한 모습을 보였는데 원 역사에서는 그가 모신 주군이 10명에 가문으로 치면 4개 가문에 달했었다. 다만 불리해지면 바로 줄을 바꾼 건 아니고 나름 주종관계의 의리를 다하고 바꾼 거라 비웃음의 대상이 되긴 했어도 이 문제로 공격받진 않았다고 한다. 근육조선에서도 히데요시가 먼저 자기들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거라 충분히 배신할 명분이 있기도 했고. [70] 구키 요시타카가 일본에 내는 세금은 세토 내해에서 나오는 항구의 수익에 대해서만 납부하고 대양도 무역에서 나오는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안내고 있기 때문에 안그래도 알짜배기 수입원을 빼앗긴 다테 마사무네는 속만 끓이고 있는 상태이다. [71] 이조차도 선발대를 너무 박살내놓으면 본대가 회군할 게 뻔했기에 왜군을 깊숙히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적당히 뭉개놓은 결과가 괴멸적이였던 것. [72] 사망 이후 흘러나온 토사물에서 술 냄새가 엄청나게 풍겼다고 하며 이 사실이 밝혀진 뒤 허준은 주군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들의 뺨을 때렸다. 참고로 원 역사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사망하였다는 게 일본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73] 다테가 쇼군이 된 후 그를 보좌한다는 명목으로 북인 기병 2만 명을 빌려주었는데, 이들은 근육조선 세계관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대국인 조선에서도 함부로 운용하기 힘든 비싼 군대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치르는 거나 다름없는 유지비가 깨지고 있어서, 이 말을 들은 유성룡은 내가 마사무네의 입장이었다면 다 때려치우고 은거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다. [74] 작가의 말
나오에 카네츠쿠: 일본의 권력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조선왕 이연이 1위 조선의 세자저하가 2위 3위는 내 주군이며 다테는 대충 250위다.
구키 요시타카: 250위라 하시니 너무 높게 보신 것 아니오? 북인 기병들 아래에 있으니 3만위쯤 하겠는데?
[75] 본래 조선은 임대만 할 계획이었지만, 다테는 한술 더 떠서 '항구 확장해 놓을 테니 더 비싼 값에 항구 이용권으로 사가세요'라는 제안을 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제안한 금액에 팔릴 거라는 걸 예상하기라도 한 듯 공사 준비를 미리 마쳐 놓고 조선의 답이 오자 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76] 북인 기병의 경쟁심을 자극해 스스로 간척 작업을 돕도록 하여, 유지비를 충당하고 자신의 권위도 살리는 등 사람 부리는 데 능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77] 실제로 조선이 아메리카 대륙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뒤 현존하는 구리광산 중 매장량 끝판왕 격의 유타주의 빙햄 구리광산 지역 채굴에 착수했고, 도자기는 유성룡이 현대인의 지식을 이용해 본차이나를 연구하여 막 시제품을 내놓기 시작한 상황인지라 본인도 모르게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상황이 되었다. 여담으로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낸 백자를 본 유성룡의 평가는 개밥그릇이였으니 도자기를 밀어줬다면 거하게 말아먹었을 상황이였다. [78] 여기에는 상국인 명나라에 바치기 위한 쌀을 재배하는 농지라는 명분으로 다른 다이묘들의 침략을 방지하고 농지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비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만에 하나 이곳을 빼앗기게 된다면 식량 지원을 못 받게 되는 명나라의 직접적 압박과 명나라의 지시를 받은 조선군이 나설 게 뻔하기 때문에 당장 북인 기병 2만에게 날뛰라는 연락만 해도 일본에 막을 힘이 없는 상황이다. 누구도 빼앗을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79] 이때 어쩔 수 없이 규슈의 판매 가능성을 열어 놓는 조약을 포함하는데. 이 조약은 시간이 지난 후 일본에서 끄집어 내고 조선 황실에서 하야하는 핑계로 이용된다. [80] 여기에는 음식에 대한 관심보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절약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실제 다이묘 회의가 벌어질때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직접 주방을 지휘하기도 했었다. [81] 영토침탈 문제도 문제였지만 조선의 지원을 받아 화포를 다루게 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스페인 탐험대가 전멸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82] 여기에는 전권을 위임했던 측근이 무능해서 복잡한 외교적인 일을 할 능력이 없어서 편히 하려고 후자로 조언한 것도 크다. [83] 위에서부터 접근하자니 입신체비와 유교 사상이 강한 조선 조정에 먹힐 턱이 없으며, 당시 유럽처럼 지방 각 지역을 특정 가문이 세습하면서 다스리는방식이 아닌 중앙정부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하여 다스리는 형식이라 중간 관리에 포교하는 방식도 적용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아래로부터 접근하자니 하층민들도 그럭저럭 잘 사는 조선 백성들에게 내세에 대한 약속은 매력적이지 않다. [84] 게다가 입신체비의 종가인 수양대군의 직계후손인 영흥부정이다. [85] 농사와 입신체비를 가르치는 등 일을 도우며, 압도적인 완력으로 힘 추장으로 추대된다. 그러나 따로 선교는 하지 않았고, 자신을 도와주는 이방인의 신앙에 호기심을 가진 원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천주교에 입문하게 된다. 그래서 7년이라는 단기간에 1만 명의 신도를 모았다. [86] 식량이 부족해지자 메뚜기 떼가 나타나 식량을 대신해 주고, 40세가 넘고 입신체비도 제대로 못 했는데 근손실은커녕 3대운동 1천근을 달성하는 등 신이 직접 돕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의 기적이 연달아 일어났다. [87] 근육조선 스토리 전개의 가장 큰 축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물귀신 심보이다. 내가 고생하는 만큼 남들도 기필코 끌어들여 고생시키겠다는 모습이 곳곳에서 묘사되며, 2부 주인공인 유성룡도 초기에는 헬창이 되기 싫어 입신체비를 피하려 들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입신체비를 회피하려는 천주교 신부들의 모습에 분개해 불교 승려들과 합심하여 신부들을 굴리는 등 남들을 고생시키는데 도가 튼 모습을 보이고 있다. [88] 선교사가 1천 명의 신도를 만들면 위대한 선교자로 추앙된다. 그런데 세스페데스는 고작 7년만에 1만의 신도를 늘렸으니 거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자 중 하나로 추앙받을 수 있을 수준이다. [89] 시성의 기적은 미주의 천주교 선교, 독사의 자식(악어)으로부터 신자들을 지켰다라는 2가지 항목. [90] 당장 위에 적혀있는 십자버티기 5시간도 수행할 때 30분만 버텨도 대단한 거고 5시간 버티면 어깨가 빠져서 불구가 될 거라며 말렸으며, 5시간을 버틴 이후 의원으로부터 진찰을 받을 때 이유를 들은 의원이 농담하지 말라고 말할 정도였다. 유성룡은 후에 기적의 증거로 삼기 위해 버텼던 십자가를 강화도 성당 지하에 보관하였다. [91] 원 역사에서는 만찬회에서 오줌을 너무 참아 급성 방광염으로 11일만에 사망하였다. [92] 이런 유럽 중심적인 생각을 들은 유성룡은 분개하여, 명나라의 강대한 포텐셜과 함께 '동아시아에서는 각 지방을 영주가 아닌 중앙정부가 임명한 관리들이 다스린다'고 설명한다. 이 말인즉 유럽 전체만큼이나 거대한 중국 대륙이 단일 세력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것이라, 장수들은 크게 충격받았다. [93] 엄청난 근육 때문에 묶어서 조이고 뒤트는 류의 고문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 이걸 보고는 '고문 기술자들이 차마 성직자를 고문할 수 없어 봐 주는구나!'라는 오해를 한다. 뒤늦게 모즈구스를 막기 위해 온 로베르토가 세스페데스가 힘으로 고문틀을 푼 것을 보고 하느님이 도와서 풀어 준 것으로 오해했고, 고문 기술자들은 근육으로 이뤄낸 탈출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세스페데스가 무서워서(...) 그냥 기적이라고 증언한다. [94] 사실 세스페데스를 도우러 온 로베르토 일행의 발소리였다. [95] 근육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그의 공방에는 알몸 상태의 남성모델이 있었고 그 때문에 동성애자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다고 한다. [96] 제동장치가 없어서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출 방법이 없었다는 것과, 상단에 포가 달려있는데 그 당시 화약병기에서 분출되는 매연이 엄청난지라 이걸 배출할 방법이 없어 실전에선 못 써먹는다고 한다. [97] 그리고 이때 만들어진 요리는 프랑스에서 조선식 요리라며 퍼진 모양이라, 당대인인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물론 후대의 히틀러까지도 프랑스 요리를 디스한다. 아예 현대까지도 기름기 많은 요리가 대세여서 비만 등의 이유로 국민 평균수명이 저하되었을 정도다. [98] 심지어 이때 내전 중이었으나 동방의 사절단이 왔다고 해서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지만 일시적인 휴전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먼저 공격을 하고 그도 모자라서 아직 싸우기도 전에 승전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국 이 승전연 중간에 패전 소식이 들어오면서 반란이 일어난다. [99] 수도를 버리고 도주한, 사실상 패배한 상황에서 수장만 암살한다고 권력이 다시 돌아올 리가 없기 때문, 오히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악수다. [100] 접근하면 비격진천뢰를 맞고 유폭당할 수 있기에 상대방이 확실하게 항복의사를 밝힐 때까지 원거리 포격전을 벌여야 한다. 드레이크의 지시를 어기고 섣불리 접근하던 잭 선장이 지휘하던 스패로우 호는 아예 비격진천뢰를 맞고 침몰했다. 이렇게 원거리 포격전을 벌이다보니 포탄과 화약값이 많이 나와 해적질에 성공해도 이득이 안 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다. [101] 이걸 본 폴리네시아 사람이 "저 거지 놈들은 뭔 생각으로 여기서 떠다님?" 이라고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102] 원 역사에서는 스페인과의 전쟁으로부터 8년 뒤인 1596년에 이질로 사망했다. [103] 그동안 스페인 배를 상대로 해적질을 일삼아왔고 영국 해군 지휘관으로서 전쟁까지 벌인 작자가 느닷없이 우리 모두 주님의 종이니 당신들을 도와주고 이슬람 해적들을 소탕해주겠다고 하니 호주와의 거래를 모르는 스페인 입장에서는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 하느님의 은총으로 회개한 거 아니냐는 소수 의견도 있는 모양이지만 세스페데스 신부의 언급을 볼 땐 최소한 스페인 내에서는 그가 열병에 걸려 미친게 맞다는 결론을 낸 듯하다. [104] 카리브해 일대에서 활동하던 영국 해적들이 면직물 무역을 위해 활동영역을 중동지역으로 옮겨버린 바람에 해적의 위협이 사라져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아메리카 대륙으로 스페인을 비롯한 온갖 국가에서 더 많은 개척단을 파견하게 된 것이다. [105] 부하들을 설득할 때 우리는 민간인이나 납치해 팔아넘길 정도로 겁쟁이가 아닌 진정한 바다사나이들이라는 로망적 이유와 캐번디시의 선단을 턴 뒤에 그들의 보화를 노획할 수 있다는 실리적 이유를 제시하였다. [106] 스페인의 우호국인 조선에 보낸다고 하면 침략의 고삐를 늦출 것으로 기대하였다. 실제로 이 소식을 접한 펠리페 2세는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107] 당시 호주에서 판매하는 면직물 가격은 영국 시세의 8분의 1로 드레이크나 엘리자베스 1세가 눈이 돌아갈만한 저가였고, 면직물 무역이 궤도에 오른 이후에는 영국을 경유해 유럽 각국에도 수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108] 다만 이렇게 팔린 무고한 사람들은 목화농장으로 보내기 전에 솔로몬 제국에서 조사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109] 영국에서 실존했던 능지형과 맞먹는 잔인한 형벌로 피부를 벗겨낸 뒤 생식기를 자르고 내장을 파내서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죽게 만드는 사형법이다. 캐번디시를 사로잡은 뒤 영국의 법에 따라 처벌하라는 이순신의 말에 여왕의 명을 거역하였으니 반역죄를 적용하여 드레이크가 교수척장분지형을 선고하였다. [110] 무굴제국에 팔려가면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이왕 죽을 거 때깔이라도 곱게 가자는 심정으로. [111] 마차에 돛을 달아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게 설계된 마차. 바람만 제대로 타면 하루에 80km 이상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112] 거석을 탁자로 삼고 그 위에 집을 지어 18인이 당대에 걸쳐 의원을 구성하는 근력 내각제다. [113] 아파치 부족 일파 중 일부 부족이 개척단을 습격했다가 패배하고 도주하면서 무고한 부족의 집락이 자신들의 근거지인 것처럼 위장하여 공격받게 만들었다. 사실을 전달받은 부족연합이 조선의 분노는 정당하며 속인 부족들의 잔당들을 두들겨패서 사죄하게 만들 정도로 비겁한 행동을 했다고 여겼다. [114]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부족에게 조선산 황소 100마리를 선사하였다. 조선산 황소는 버팔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온순한 녀석이고 마릿수도 많아서 주변 부족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보상이였다. 나중에는 황소를 더 받고 싶다며 알아서 복속을 청할 정도. [115] 아메리카 원주민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깃털로 장식된 모자이다. [116] 인간과 역사적으로 접촉을 자주 해 온 야생동물들은, 인간을 최상위 포식자로 인식하고 되도록 피하려 한다. 그러나 호주의 야생동물들은 인간을 접할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117] 작가의 답변을 보면 시열아, 네가 태어날 적에 수양자께서 근육이라 속삭이셨다라는 드립이 나온다. [118] 근력만 믿고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뜻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송시열이 처음 본 근적들은 내전을 피해 명나라에서 피난온 사람들을 괴롭히던 중이였다. [119] 이때 근적들을 응징해 붕탁이라는 이명이 붙었다. 내수린 단장도 송시열이 내심 근적들을 응징하는 걸 눈치채고 응원했기에 송시열이 탈퇴한 후 극단원이 돌아가면서 붕탁을 연기하며 근적들을 응징하기로 한다. [120] 향후 서안대군의 시호는 목종으로 정해졌는데 시법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는 암군을 의미하는 시호이다. 근육조선 시대에 총 2명의 암군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로, 어진이 상대적으로 마르게 그려져 근육을 중요시하는 근육조선에서의 그의 위상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121]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유성룡을 태국에 파견했으나, 유성룡이 태국에서 말라리아에 걸리면서 죽을 뻔 하면서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뻔 했다. 그나마 유성룡이 그걸 알아서 적당히 무마해 준 덕분에 치명적인 화는 면했다. [122] 이준의 말년에 송시열이 조정에 입사하게 되었다. [123] 좌찬성을 흑산도에 부임 시키려고 했다. 문제는 흑산도는 그렇게 큰 섬도 아니고, 무엇보다 저런 대기근에서 전라도 목포의 흑산도로 가라는 것은 사실상 가서 죽으라는 소리. [124] 일반적으로 미적분의 개발자는 라이프니치와 뉴턴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페르마가 그보다 먼저 미분을 개발했다. 자세한 것은 항목의 페르마 미분 참조. [125] 본래 데카르트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대로 철학 강의를 위해 스웨덴에 갔다가 허약한 체질이 스웨덴의 혹한 및 여왕이 요구한 빡빡한 스케줄을 못 버텨 폐렴에 걸리고, 이에 더해 그를 시기한 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도록 수작을 부리는 바람에 사망했다. 그런데 근육조선 세계관에선 근육 철학자로 거듭나 튼튼해진 덕으로 폐렴에 걸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26] 이 과정에서 이형과 내수린을 벌여 패배한다. 김구는 180cm 정도 되는 거구였는데, 150cm 수준의 단신인데다 자신보다 20살이나 많은 이형의 면직락(DDT)에 당해 눈을 까집고 기절한 채로 바닥을 뒹굴다가 실려나갔다고 한다. [127] 그의 누나는 일본인 여성 최초로 삼대 운동 일천 근을 달성하는 업적을 세웠다고. 아무래도 료마의 세번째 누나인 사카모토 오토메(坂本乙女)로 추정된다. 원역사에서 무려 키 174cm에 체중이 100kg에 육박하는 거구였는데 입신체비를 단련했다면 말이 필요없다. [128] 을병대기근 당시 맺은 협약에는 일본이 하주도를 되살 수 있는 대신 주민의 이주비용을 일본이 부담한다는 조항이 있고, 나중에 일본과 대한제국이 맺은 조약에서 '양국이 공증한 기타 외교문서는 50년마다 자동 갱신된다'는 문구가 있다. 즉 을병대기근 협약 또한 자동적으로 갱신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129] 이때 일본의 GDP는 대한제국의 화폐가치로 약 900억원이었으니 GDP의 1/3을 요구한 것이다. 물론 대한제국이 좀 많이 잡기는 했지만, 최익현의 계산에 따르면 원래 아무리 적게 잡아도 약 200억원은 필요했다고 한다. [130] 순나라에서 건양제를 무너트리기 위해 인두세를 매겨서 현물을 모았다. [131] 애초에 건양제가 거래 성사에 절망한 이유는 대한제국이 피해를 입어서가 아니라, 큐슈 반환으로 일 폭탄이 떨어져서 가뜩이나 적은 수면시간이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거래 자체는 전혀 손해볼 것 없다고 여겼다. [132] 원 역사에서 대한제국이 되기 직전 1~2년간의 짧은 기간 동안 사용한 연호 건양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대 황제로 언급되는 광무제의 광무 역시 마찬가지 [133] 그나마도 이건 평상시 기준이고, 전시상황이나 뭔가 커다란 업무가 터지면 업무시간은 더 늘어난다. 당연히 수면시간은 나락으로... 대전기에는 2시간으로까지 줄었다고 한다. [134] 작중 언급에 의하면 155cm의 단신으로, 입신체비에 매우 불리한 신체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삼대 천근에 성공했다는 언급이 있다. [135] 참고로 김구는 한양 국립대 사학과 교수인데, 사학과는 수양대군의 적장자인 도원군 이장이 시작을 끊은 학과이기 때문에 사학과 교수는 보통 3대 1000근, 아무리 못해도 3대 800근 이상을 들 수 있어야 한다. 즉 김구는 아무리 못해도 3대 500kg이상인 근육맨이며, 비록 당시 김구는 근위병을 뚫고 오느라 코피가 흐르는 등 만전이 아님을 감안해도 이런 김구를 내수린으로 제압한 이형이 이상할 정도로 강한 것이지, 절대로 김구가 약한 게 아니다. [136] 의외로 펀치는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섬세한 손가락이 부서질 수 있기 때문. 손날은 그럴 걱정이 없어 카포네의 두개골을 부술 기세로 힘껏 내려쳤다.(...) [137] 원 역사에의 미합중국이 아닌 미국 동부지역에 세워진 유럽계 국가의 명칭이다. 서부지역은 조선계 국가인 미국(迷國)이 세워진 상태. [138] 실제로 현실의 베이브 루스는 방탕한 생활로 몸을 망가뜨리고 연습을 게을리 해서 성적이 베이브 루스치고는 망하기도 했었고, 이를 쇄신하려 다시 몸 관리를 하기도 하는 등 신체 기복이 심한 선수였다. [139] 실제 벽을 부쉈고 그걸 본 술집에 있던 신사는 누가 미친 황소를 술집에 풀어놨어라는 비명과 함께 달아났다. [140] 당시 황실은 하야했지만 그들이 관리하던 주요 사업들은 그대로 있어서 거대 기업이 된 상태였다. 당시 같이 있던 마피아들도 그걸 알고 우리가 포드 조카를 건드렸다고 평했다. [141] 근육조선 세계관에서 미국은 단일국가인 미국(美國)이 아닌 조선문화권의 서부지역 미국(迷國)과 유럽문화권의 동부지역 아메리카로 나뉘어있는 데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견제하고 있던 상황이고, 소련은 공산혁명 이후 건국된 서부지역 소련과 적백내전에서 도주에 성공한 로마노프 왕가가 다스리는 동부지역 러시아 왕국으로 나뉘어있는 데다 대한 공화국을 견제하기 위해 80여 개 사단을 극동 지역에 배치해둔 상태라 두 국가 모두 원 역사만큼의 저력은 없는 상태이다. 그렇잖아도 대한제국 -> 대한 공화국의 견제로 원 역사보다 축소된 대영제국을 건설한 영국은 미국의 지원을 받지못하는 상태로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나치 독일에게 패배하였고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모스크바가 함락당하는 등 나치 독일에게 처절하게 발린 상태였다고 한다. [142]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장애인부양자는 부역을 면제하고 잘 보살핀 가족에겐 포상을 줬으며 학대는 엄벌에 처했는데 # 이들의 후손인 대한 공화국 국민들은 이에 분노를 느낄만 했다. [143] 원 역사에서처럼 권총으로 자살하려 하였는데 누군가가 탄창을 싹 비워둔 상태였고 숨겨둔 독약을 먹었더니 누군가가 수면제로 바꿔놓은 상태였다. 수면제의 약기운이 돌아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1차 세계대전 때 기념품으로 챙겨둔 수류탄을 사용해 자살했던 것. 헤르만 괴링이 전범재판에서 총통의 생포를 위해 노력했다고 증언한 걸 봐선 괴링의 지시로 권총탄과 독약을 빼돌린듯 하다. [144] 일본에서 내전이 격화되면서 그를 보호하기 위해 한양 국립대학교 총장이 된 김구가 교수로 섭외하였다. [145] 원 역사의 미시마 유키오는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을 두고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평을 남겼다.자기도 자살했으면서 미시마 유키오의 말이 맞다면 아마 이 세계관의 다자이 오사무는 천수를 누리다 갔을지도? [146] 그나마 모델이 능력있는 지휘관이라 3개월이었지 아니었다면 1개월 안에 끝났을 거라 한다. [147] 자동소총은 2차 세계대전 말기인 44년에 최초의 돌격소총이 개발되었고 이 당시 보병의 기본화기는 볼트액션식 소총이 주류였었다. 기관총은 보병화기가 아닌 분대지원 화기취급이었는데 원 역사에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사용된 독일군의 MG42만 해도 탄약 무게까지 합쳐 10kg이 넘어가며 미군의 M1917 브라우닝까지 가면 탄약 무게까지 합쳐 20kg이 넘어가므로 사격시의 반동까지 감안했을 때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들고 다니며 쏘는 건 엄두도 못 내는 물건들이기에 보병화기로 사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근육조선 세계관의 대한 공화국 군인들은 105mm탄도 가벼워서 입신체비에 도움이 안 된다며 깔 정도로 근대는 물론이거니와 현대 시점에서도 타국은 엄두도 못 내는 고화력 고중량 병기를 마음껏 운용할 수 있는 군대이기에 가능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입신체비로 단련된 장병들의 화력은 일반인 이상일 텐데, 엄폐물째로 사살하며 기동하는 군대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148] 페니실린은 상온에 보관할 경우 액상이라면 유통기간이 길어야 보름으로 매우 짧다. 길어도 보름마다 페니실린을 교체해야 한다는 소리가 되는데 아무리 대량생산을 했다고 해도 최전선을 포함한 전군에게 페니실린을 보름마다 교체한다면 들어갈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149] 휘하 장병들의 잔혹행위에 대한 방임과 다른 국방군 장성의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방임죄 [150] 홀로코스트에 관여한 독일군 포로들을 내수린을 빙자해 때려죽였다. 죽어도 싼 놈들이긴 했지만 포로 살해는 엄연한 범죄다. [151] 서술 자체는 개그이지만 소련 입장에서는 겁먹을 수밖에 없는 협박이다. 대한 공화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한 이유가 나치 독일의 학살행위를 응징하기 위해서였고, 종전 이후 카틴 학살이 폭로되어 행여나 대한 공화국이 자신들을 공격할까봐 강제 점령중인 동독 지역을 반환하고 스탈린이 은둔해버릴 정도로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이였다. 더군다나 러시아 왕국은 한때 대한제국의 황족과 혈연관계를 맺은 나라였으므로 대한 공화국의 비호를 받고 있는데다 대한 공화국의 황족은 평화적으로 황실을 폐지하면서 여전히 공화국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가문으로 남아있었고 이러한 정세가 맞물린 소련 입장에서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상대이기에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52] 실제 목적은 황실 폐지를 통해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하루에 6시간만이라도 자고 싶어하는 종친 전원이 찬성했다. [153] 이후 시베리아와 공화국의 사이가 좋은 걸로 봐서도 원만했던 걸 부정할 건은 없다. [154] 다른 무장친위대 출신들도 중상이거나 의식불명 상태였다. [155] 부공차의 경우 마닐라에서의 민간인 학살 소식을 듣고 경악하며 우리 부대 관할구역에서 그 짓거리하면 아군이고 뭐고 공격하겠다며 엄포를 놓아 필리핀인을 보호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156] 원 역사에서의 행적과 겹쳐보면 그냥 개그이지만 대한 공화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입신체비 = 효도고의적 근손실 = 불효 인 셈이므로 대놓고 불효하자는 문제 발언이 된다. [157] 위에도 언급되지만 홍범도가 이름을 붙여줬다. [158] 규슈 반환 당시 규슈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하르빈 인구의 3할을 차지하고 있어서 규슈 출신 거주민들이 사는 신도시가 구주거리라고 명명되었다. [159] 모렴야 본인은 각종 채소와 부가 재료들을 조합하여 최적의 맛을 이끌어낸다고 이야기하였는데 이를 들은 김상옥은 현존하는 각종 포와 엔진을 조합하여 최적의 전차를 찾아내라고 지시하였다. 이 결과 나온 것이 강구트급의 130mm 부포를 주포로 장착하고 960마력의 엔진을 달고 중장갑을 둘러 티거 2도 상대하기 버거운 괴물전차인 41식 전차였다. 원 역사로 치면 SU-100Y의 화력에 IS-2급의 방호력과 IS-7급의 기동성을 가진 괴물급 중전차인 셈이다. [160] 히틀러는 채식주의자로 유명했다. [161] 건양제의 몇가지 꼼수도 섞여있었다. 먼저 이탄이 타티아나와 알아가기 위해 러시아로 가게 되면 당연히 보좌관들이 따라서 갈 텐데, 이 보좌관들이 니콜라이 2세의 허영심을 마구 긁어대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부설비용을 러시아에서 내게 될 테고, 동시에 황실에 쏟아지는 수많은 일감중에서 유럽 관련은 처가인 로마노프 황가에게 맡기면 된다며 부담시켜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건양제처럼 업무에 치여 살던 황실의 종친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탄이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은근슬쩍 혼약이 성사되기만을 바란 것은 덤. 그 바쁜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이탄이 러시아에서 잘 지내기를 바란 건지 다크서클이 짙게 낀 종친 전원이 이탄이 떠나는 걸 배웅하러 나왔다. [162] 원래 웨이트 위주의 운동 자체가 관절에 무리가 많이 가는 까닭에 나이들어서 관절염에 많이 시달리는데 근육조선에서는 입신체비가 기본이므로 인공관절 등 관절손상에 대비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나라에서 무료로 수술해줄 정도로 인공관절시술은 흔해졌지만 이수길은 자신의 잘못으로 국가예산을 쓰게 할 순 없다고 거절했다. [163] 당시 입신체비가 명나라에 퍼지지 않았으니 입신체비사도 아니고 무인이니 근지구력을 위해 지방이 좀 있는 게 정상이고, 설령 창을 휘둘러도 훈영제식법이 있으니 근육이 많을 리도 없다며 수정안을 제시하였다. 그렇게 수정된 그림을 보고 진짜 고증대로 하려면 지방을 좀 더 늘려야겠지만 차마 거기까진 못하겠다고 말한건 덤. [164] 작중 남동생의 언급으로는 일본은 인구가 적어 유저수의 20% 정도고 중화민국이 50%. 국내는 한 0.1% 될까 싶다고한다 [165] 최영직의 남동생이 계속 퇴짜당한 지나치게 근육넘치는 진양옥의 일러스트를 가지고 대한 공화국의 동업자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다들 별문제 없다고 말할 정도다. [166] 엄연히 명나라의 황족임에도 일반인인 최영직의 사촌 여동생과의 결혼에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데, 이는 사실상 이름만 남은 명나라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래도 황태자는 나름 명문가 여성이랑 결혼시킨다고 하지만 친왕들은 연애결혼을 해도 아무도 신경 안쓴다고. 최영직은 딱 '인기 없는 연예인' 수준의 대접이라고 평했다. [167] 다만 일종의 보정이 걸린 것인지 수양대군이 아놀드라고 말한 것을 수양대군의 부인은 아논두라고 듣고 어떤 분이냐며 물어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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