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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리 라스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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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그리고리 라스푸틴
Григорий Распутин | Grigori Rasputin
파일:그리고리 라스푸틴.jpg
본명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Григо́рий Ефи́мович Распу́тин[1]
Grigori Yefimovich Rasputin
출생 1869년 1월 21일[2]
러시아 제국 토볼스크현 튜멘군 포크롭스코예
(現 러시아 튜멘주 야르코보구 포크롭스코예)
사망 1916년 12월 30일[3] (향년 47세)
러시아 제국 페트로그라드
(現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적
[[러시아 제국|]][[틀:국기|]][[틀:국기|]]
직업 농부, 수도자, 순례자, 예언자
성별 남성
신체 193cm, 85kg, O형(Rh-)
부모 조부 야코프 라스푸틴
아버지 예핌 야코블레비치 라스푸틴
어머니 안나 바실리예브나 파르슈코바[4]
배우자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두브로비나 (1887년 결혼)
자녀 장남 드미트리 라스푸틴 (1897~1937)
장녀 마트료나[5] 라스푸티나 (1898~1977)
차녀 바르바라 라스푸티나 (1900~1925)
다른 4명의 자식은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
종교 러시아 정교회

1. 개요2. 이름에 관해서3. 일생
3.1. 요승의 등장3.2. 비극의 시작3.3. 국정3.4. 죽음과 의혹
3.4.1. 널리 알려진 살해 과정
4. 예언?
4.1. 분석
5. 성기6. 대중문화7. 비슷한 사례

[clearfix]

1. 개요

러시아 제국 때의 인물. 본래 떠돌이 수도자에 불과했으나,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인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황태자의 병을 호전시킨 업적으로 황제의 탄탄한 신임을 얻은 후부터 비선실세가 되어 국정을 제멋대로 휘두르면서 러시아 제국의 몰락에 막대하게 일조한 인물이다.

당시 러시아 제국 유럽 주요 국가들 중에서도 전제군주제 체제와 농노제에 머물러 있었고, 대내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미 망국의 요인이 가득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국의 멸망을 앞당기다 못해 로마노프 왕조의 이미지에도 크게 먹칠하였다. 결국, 그의 사후 황제 가족을 포함한 로마노프 황실 관계자들은 물론 러시아의 내전으로 많은 러시아 국민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나라를 망친 간신 그 자체이다.

그래서인지 서구권에서 라스푸틴은 간신의 대명사 중 하나처럼 되었을 정도다. 러시아에서는 괴승(безумный монах)으로 불리고, 영어권에서는 미친 수도자 라스푸틴(Rasputin the Mad Monk), 한국에서는 요승 라스푸틴 등으로 불린다.

2. 이름에 관해서

그의 이름 중 라스푸트(распут)방탕이란 뜻이며, 그리고리가 방탕한 놈이라서 라스푸틴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은《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에서 유래되어 퍼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어방탕라스푸츠트보(распутство)이다. 현대 러시아어라스푸트(распут) 자체는 아무런 뜻이 없고, 드물게 인명으로 쓰일 뿐이다.《 러시아어 사전》에 따르자면 распут-라는 단어들은 썩 긍정적이진 않지만 중립적인 단어로서 '얽히다', '엮이다'라는 어원이며 '교차로'(распутье)란 뜻도 있다.

러시아어 위키피디아에서는 라스푸틴이란 이름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데, 조상인 나손 표도로프(Насон Фёдоров)의 별명이 로스푸타(Роспута)였고, 이 별명이 후대로 넘어가면서 로스푸틴(Роспутин)이 되었다가 19세기부터 라스푸틴(Распутин)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58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미 '라스푸틴'이라는 성을 가진 이가 그리고리의 아버지 예핌 라스푸틴을 포함하여 30명이 넘었다. 유래를 따지자면 '라스푸틴'이라는 성은 라스푸티차와 교차로에 가깝다고 한다. 출처

상식적으로 라스푸틴의 조상도 개성(改姓)을 하면서 자신을 방탕한 놈이라고 정할 리는 없으니 러시아어 위키피디아의 서술이 더 신빙성이 높다. 성의 유래가 방탕한 놈이라는 것은 그저 끼워 맞추기에 불과하다. 아마도 당대의《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을 집필하던 이가 적당히 러시아어를 알아서 생긴 일인지도 모른다.

라스푸티차와 엮어서 라스푸틴의 진짜 저주는 러시아 혁명이 아니라 라스푸티차라고 한다는 개그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이 라스푸티차라는 단어와 라스푸틴이라는 이름의 앞부분 음절이 비슷하기 때문에, 과거 만화영화 아나스타샤에서 등장하는 악독한 라스푸틴이 퍼부은 저주가 러시아 혁명이 아니고 라스푸티차 현상으로 러시아의 교통이 마비되는 것이라는 유머도 있을 정도다. 당연히 라스푸티차 현상은 라스푸틴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있던 러시아 특유의 자연재해다.

3. 일생

3.1. 요승의 등장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라스푸틴은 1869년 시베리아 튜멘 군의 작은 마을인 포크롭스코예(Покровское)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는 다녔지만, 학업에는 불량해서 문맹이었다. 그의 부모인 예핌과 안나 사이에는 예브도키야, 드미트리, 안드레이, 글리케리야, 마리야 등 여러 자식이 있었으나 모두 영아기에 사망하고 살아남은 건 그리고리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라스푸틴은 1887년 프라스코비야 두브로비나를 만나 결혼을 하고 7명의 자식을 낳았으나 살아남은 건 드미트리, 마트료나(마리야),[6] 바르바라 셋 뿐었다. 그렇게 가정을 이룬 라스푸틴은 1897년부터 15년 동안 수도승을 자처하며 러시아 전역을 떠돌았다. 그리스 아토스 산, 이스라엘 예루살렘,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등을 순례하며 영적 스승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7]

다만 정식으로 신학을 배운 적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로마노프 황실의 마지막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마지막 차르》에 따르면 흘리스트파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있다고 한다. 흘리스트파는 죄를 지어 그 죄를 사함으로서 천국에 도달한다는 종교적 신념을 가졌으며 러시아 종파 중 가장 악질적이고 비밀스러웠다고 한다. 그들은 일부러 죄를 지어야 했으므로 의례 중 난교를 하거나 채찍질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의례 끝에 처녀의 가슴을 잘랐다는 이야기도 돈다고. 이러한 흘리스트파의 의례는 원래 술꾼, 난봉꾼이던 라스푸틴 성향과 잘 맞았고 영적 체험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넷플릭스 드라마의 설명은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흘리스트파는 그 옛날의 보고밀파처럼 엄격한 금욕주의를 강조하고 성욕과 식욕 등을 억제했고 의례 중의 난교와 채찍질은 루머로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 종파 중 가장 악질적이고 비밀스럽지도 않았다.[8]

3.2. 비극의 시작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부터였다. 그는 강신술, 신지학 등, 여러 사이비 종교적 활동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각 지방의 사람들과 귀족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 내 귀부인들에게 큰 추앙을 받았으며 그중에는 훗날 그를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소개하는 안나 알렉산드로브나 비루보바 부인과, 밀리차 대공비, 아나스타시야 대공비[9]와 같은 황족들도 다수 있었다.[10]

그리고 1905년 11월 라스푸틴은 비루보바 부인의 주선으로 처음으로 차르 부부와 접견했는데,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신의 사람'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큰 호감을 샀다. 그 뒤 황태자의 치료를 위해 알렉산드라 황후의 부름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올라왔고, 이 첫 치료에서 라스푸틴은 혈우병으로 인해 사경을 해매고 있던 알렉세이 황태자의 상태를 호전시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당시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라 황후와의 사이에서 1남 4녀를 보았는데, 막내인 알렉세이 황태자 혈우병 환자로 태어난 탓에 황제 부부와 온 황실이 근심하던 차였다.[11] 하나밖에 없는 황태자가 불치병에 걸린 끔찍한 현실에서 차르 부부는 여러 의사들을 황태자에게 붙여봤으나 차도는 없었고,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라스푸틴에게 처음으로 치료를 맡겼다.

그가 사용한 치료요법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리적인 치료보다는 알렉세이에게 마음의 안정을 취하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픈 어린이에게는 사무적인 태도로 대하는 의사들보다 인자한 아저씨가 건네는 자상한 말이 더 편안했던 셈. 그리고 그 당시에는 혈우병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의사들도 손 쓸 방도가 없었고, 환자를 안정시켜서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 적어도 그 당시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한편으론 소 뒷걸음질에 쥐잡은 형태로 라스푸틴이 적절한 처방을 행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의사들이 알렉세이 황태자에게 처방한 약 중엔 아스피린[12]도 있었는데 마침 라스푸틴이 끼어들어 기존의 약 처방을 못하게 하면서 알렉세이의 증상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파일:external/damn-damninterestingc.netdna-ssl.com/rasputin.jpg
라스푸틴의 손에 놀아나는 차르 부부를 풍자한 그림.[13]

이후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라 황후의 총애를 받아 종교와 외교, 심지어는 내정까지도 간섭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로 떠올랐다. 매점매석은 물론 자기 마음대로 수상과 장관을 임명하고 파면하는 권력을 행사했는데, 이는 능력에는 관계없이 라스푸틴에게 아첨하는 정도에 좌우되었다. 물론 라스푸틴의 국정 농단 시기에도 표트르 스톨리핀 같은 명재상이 있긴 했지만 좌익 혁명가에게 암살당했다. 그 후임으로 블라디미르 코콥초프[14]가 재상이 되었고 코콥초프는 라스푸틴을 축출할 것을 황제에게 건의했지만 오히려 본인이 정계 은퇴를 해야 했다.

니콜라이 2세는 정치가 적성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 러시아 제국의 차르로 즉위했을 당시 자신의 매제에게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고 스스로 밝힐 정도로 황제로서 무능한 인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 나라를 다스려주겠다는 라스푸틴이 나타나고, 특히 사랑하는 아내 알렉산드라가 황태자를 구해준 라스푸틴을 감싸고 도니 마음 약한 니콜라이는 그를 두둔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알렉산드라 황후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내성적이고 신비주의 면모가 있어서 황후가 사교계의 중심으로서 차르를 도와 귀족들을 이끌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러시아 황실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고립된 생활을 하는 일이 빈번했기에 황제를 보필해야하는 황후로서 완전히 실격인 사람이었다.

이런 무능한 차르 부부를 등에 업고 라스푸틴은 차르 부부 앞에서는 성자인 척 하면서 뒤로는 세력을 점점 키워나가다 못해 황실 내 귀부인들에게 성추행도 서슴치 않는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해왔고 차르 부부도 이를 막긴 커녕 오히려 그를 두둔했다.[15] 당연히 라스푸틴은 황족들과 귀족들에게 공분을 샀으며 당장 황태후인 덴마크의 다우마, 황제의 여동생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16], 황후의 둘째 언니인 옐리자베타 대공비도 "라스푸틴을 멀리하라."라고 충고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 황후는 이런 인척들의 간언을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다.[17]

또한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딸들인 공주들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공주들이 잠옷바람으로 있는 방에 드나들 정도였다고 한다. 라스푸틴은 공주들 앞에서는 경건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였고 공주들도 그를 '남동생의 병을 고쳐준 착한 할아버지' 정도로 생각해서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으며[18], 총살당하는 그 순간까지 라스푸틴의 사진을 부적삼아 몸에 지니고 있었다.[19]

당시 4명의 황녀들이 혈우병 환자들이라는 기록은 없었고[20] 황녀 모두가 처형되어 자손을 남기지 못했지만 아나스타시야 황녀는 발가락 염증과 기관지염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당시로서 드문 연애결혼 끝에 화목한 가정을 꾸렸지만, 알렉산드라는 러시아 사교계에서 겉돌고 있었고 겨우 얻은 아들이 혈우병이란 사실에 자신 때문이란 죄책감으로 우울증 증상까지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황태자뿐만 아니라 황녀들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텐데 아마 이런 마음을 파고들어 라스푸틴이 공주들의 지지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라스푸틴이 황후와 공주들을 범했다"라는 성추문이 끊이지 않았으며[21] 심지어 이런 소문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황제 일가가 폐위된 뒤 유배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황족들을 구경한 주민들이 알렉산드라 황후를 보고 "저 늙은 여자에게 대체 뭐가 좋다고 라스푸틴이 껄떡댄 걸까?"라고 수근거렸을 정도였다. 이후 니콜라이 2세 일가를 처형한 뒤에 시신을 묻는 작업을 맡은 볼셰비키들은 " 니키 그 독일 썅년에게 라스푸틴이 자기들 등 뒤에서 지들 딸래미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를 두 눈으로 보게 해주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황족들을 처형한 야코프 유롭스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22][23]

3.3. 국정

라스푸틴이 지나칠 정도로 국정에 간섭하긴 했지만, 결과만이라도 좋았더라면 요승이라느니 미친 수도자라느니 하는 말을 듣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라스푸틴의 간섭은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전쟁으로 러시아의 국내외 사정이 안 좋아지자 니콜라이 2세와 라스푸틴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나마 좋게 봐줄 만한 건 대부분의 일에서 전쟁반대를 주장하며 러시아 제국을 평화상태로 유지하는데 기여했다는 것 정도. 애초에 라스푸틴은 제1차 대전에 러시아가 끼어드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24]

이러한 비선실세 이야기와 관련해서 수정주의적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일단 아무리 러시아 제국이 당대 서유럽의 선진국만은 못해도 세계 열강으로 손꼽히는 강국인데, 문맹이 실세로서 국가에 암약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며 지금까지 라스푸틴에 대한 이야기들은 매우 과장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다양한 여행경험이 있고 카운슬링에 매우 뛰어난 평신도인 라스푸틴이 반전주의와 독일계 황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때문에 실세로서 무언가를 할 능력 자체가 없다며 과도하게 매도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호감을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교묘히 사로잡아 이용해먹는 능력이란 게 딱히 학교를 가야 배울수 있는 능력이 아닌 만큼 단지 학력이 낮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권력자와의 개인적 관계를 이용하는 실세가 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25]

3.4. 죽음과 의혹

라스푸틴 당시에 러시아 제국에는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이라는 귀족이 있었다. 유수포프 가문은 유목민계 노가이 칸국의 지도자 유수프비(Юсуф-бий)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본래는 무슬림 가문이었으나 17세기 무렵에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표도르 1세로부터 공작위를 받게 됐다.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은 군 중장이었던 펠릭스 수마르코프옐스톤(Феликс Сумароков-Эльстон) 백작과 지나이다 유수포바(Зинаида Юсупова) 여공 부부의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펠릭스의 형 니콜라이는 젊었을 때 결투하다가 죽었기에 펠릭스가 유수포프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 성씨를 이어받았다. 유수포프 가문은 어머니의 가문이었다. 그럼에도 외가의 후계자가 된 이유는 외가의 마지막 구성원이 펠릭스 공작의 어머니 지나이다 유수포바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펠릭스의 아내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Ири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는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 크세니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의 딸이므로, 펠릭스는 니콜라이 2세의 조카사위(생질서)가 된다. 펠릭스의 장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26] 니콜라이 1세의 막내 아들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4남으로 펠릭스의 장모이자 산드로 본인의 아내인 크세니야와는 5촌 숙질간이었다.

1916년 12월 20일, 펠릭스 유수포프를 중심으로 한 반(反) 라스푸틴 황족 · 귀족들이 라스푸틴 몰래 궐석재판을 실시하고, 일방적인 재판 진행 끝에 사형을 선고했다.

황족들 중에서도 라스푸틴을 죽이고 싶어 안달난 이들은 많았으나, 하필 펠릭스 공작이 앞장서 라스푸틴 암살에 나선 이유를 두고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라스푸틴이 공작의 얼굴을 보고는
"당신은 게이 아닌가. 나는 게이가 싫다!"
하고 말해 그때부터 원한을 품었다는 설. 펠릭스 공작은 부모가 딸을 기대했기 때문에 어릴 적 여장을 하고 자랐던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여장을 하는 취미가 있었다. 이후 아버지에게 크게 깨진 이후 그만뒀는데, 라스푸틴의 게이 주장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무엇보다 라스푸틴은 정교회 수도자였고 기독교에서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만큼 라스푸틴 역시 이런 부분때문에 정말로 펠릭스 공작을 경멸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하나는 유수포프 공작의 아내 이리나 공주의 미모에 흑심을 품은 라스푸틴이 찝적대자 공작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 그의 암살을 모의했다는 설이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아내한테 추근대는데 분노를 안 하겠는가. 젊은 시절에 여장 취미가 있던데다 양성애자로 의심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이리나 공주와의 금슬은 그런대로 괜찮아서 말년까지 잘 해로했다고 한다.

파일:Felix Yusupov and Princess Irina.jpg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과 그의 아내 이리나 공주

파일:Princess Irina of Russia.jpg
유수포프 공작의 아내 이리나 공주

3.4.1. 널리 알려진 살해 과정

라스푸틴은 1916년 12월 30일에 유수포프와 반 라스푸틴 황족들의 계략에 속아 잔치에 초대되어, 치사량만큼의 청산가리가 든 케이크 와인을 먹었다. 그런데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고 죽었어야 할 인간이 2시간이 지나도 죽기는커녕, 노래를 부르고 파티를 즐겼다. 청산가리는 섭취 시 의식을 잃기까지 약 5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위험한 독극물이므로,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이유에서든 독이 듣지 않았다는 이야기. 놀란 암살자들은 속으로 공포에 떨었지만 너무 늦으면 시체를 몰래 처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결국 계획의 핵심인물인 유수포프가 권총을 꺼내 라스푸틴을 쏘았다.

그 직후 암살자들은 즉시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외투를 두고 온 바람에 황급히 다시 돌아온 유수포프가 보니 라스푸틴은 살아있었고 오히려 유수포프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 했다. 이후 다시 다른 황족들이 쏜 총에 맞았지만 라스푸틴은 여전히 죽지 않았고, 파티장 밖으로 도주하던 도중 곤봉 쇠사슬 따위로 얻어맞은 다음 네바 강 부근으로 말에 묶인 채 질질 끌려갔지만 그때까지도 멀쩡히 살아있었고, 끝내 꽁꽁 얼어붙은 네바 강 아래로 던져졌다.

그리고 며칠 뒤 라스푸틴의 시체를 건져내 조사해 보니 치명상은 총상이었으나 사인은 익사였다. 라스푸틴의 불가사의하기까지 한 사망 과정은 정황상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황족들이 자기들 딴에는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었든지 아니면 운이 나빴을 수도 있다. 분명 음식에 독을 타긴 탔지만 하필 라스푸틴이 음식에서 독이 안 든 부분만 우연히 골라서 먹었을 가능성도 있다. 누굴 독살한다고 준비한 음식에 죄다 독을 떡칠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독살 관련 사건에서는 의외로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죽이려고 이후에도 몇 번이고 작정하고 수작을 부렸는데 죽지 않았다면 이건 정말 살해하려는 쪽이 멍청했거나, 이 양반이 천운을 타고났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말 이쪽이 괴물 같은 생명력의 소유자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검 책임자였던 코소로토프가 인터뷰한 기록에 의하면, 라스푸틴의 시체에서는 익사나 독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괴승 라스푸틴의 죽음을 둘러싼 허와 실을 참고.

지금도 라스푸틴 처단 현장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수포프 궁전은 라스푸틴 처단 당시를 재현 및 보존하고 있고 박물관으로 쓰인다. 유수포프 궁전 홈페이지

4. 예언?

라스푸틴은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 편지를 남긴다.

나는 내년 1월 1일이 오기 전까지 살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러시아 제국의 국민들과 러시아의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내 형제와도 같은 러시아 국민들의 손에 죽게 된다면, 러시아 황제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왕조는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지속할 테니까. 그러나 내가 만일 특권층, 귀족들의 손에 죽어 그들이 내 피를 솟구치게 만든다면, 그들의 손은 앞으로 25년간 피에 젖은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를 떠날 것이며, 25년간 형제들은 형제들을 서로 죽이고 미워하게 될 것이고, 끝내 러시아에 귀족이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리라.

러시아의 황제여, 만일 당신이 나 그리고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게 된다면 당신은 다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의 일족 중 누구라도 내 죽음에 연루된다면, 2년 내에 당신의 일족, 가족과 자식들까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러시아 민중들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

나는 가지만, 나는 내가 사라진 이후 황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할 책무를 느낀다. 반성하고 신중히 행동하라. 당신의 안전을 생각하고, 당신의 일족들에게 내 피의 앙갚음이 있을 것임을 알려라.

나는 죽을 것이며, 더 이상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 기도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굳게 가지며 당신의 가족을 생각하라.
그리고리 씀.

그가 죽은 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모든 황제 일가는 볼셰비키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가 남긴 말과 달리 그의 죽음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이후 러시아 제국을 계승한 소련 적백내전과 공산당의 분열, 대숙청 등 내부 분열에 시달렸으며 정확히 25년 뒤에는 독소전쟁이 발발한다.

다만, 정작 암살 주범인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과 아내인 이리나는 목숨을 건져 각각 1967년, 1970년까지 제 명을 누리다 죽었고, 공범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30]도 1942년까지 살다 죽었다. 드미트리 파블로비치의 아버지와 이복동생은 이후 공산혁명으로 살해당했지만, 본인은 라스푸틴을 죽인 덕분에(?) 살아남았다. 라스푸틴 살해에 격노한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가 가담자들을 처벌하려 했지만, 다른 황족들이 탄원하여 잠시 가택연금에 처했다가 페르시아(이란) 국경으로 보내버렸기 때문. 물론 혁명으로 인해 고국에서 쫓겨나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평생을 외국을 전전하다 죽었기는 하다.[31] 펠릭스 유수포프는 혁명 이후 소련 정부에서 고위직을 제안했으나 거절한 적이 있다.

그 밖에도
러시아가 제1차 세계 대전에 개입한다면, 셀 수 없는 눈물이 강을 이루리라
니콜라이 2세에게 경고한 적이 있다.

사실 단순히 우연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 편지가 진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편지의 필체와 문법이 그가 생전에 썼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1. 분석

이것이 예언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상식적인 분석에 가깝다. 원래 예언이나 점술이라는 분야 자체가 정말 초월적인 능력이라기보다는 대상을 관찰하고 분석해 어떤 사람인지 추리해내는 경우가 많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척척 알아맞히니 듣는 사람은 놀라고 신통하다고 느끼게 된다. 애초에 교묘한 언행으로 황제와 황후를 구워 삶고, 온갖 모략에 도가 튼 귀족들 틈바구니에서 자기 세력을 키웠던 인물이니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을 테고, 당시 러시아 민중의 비참한 삶을 보면 라스푸틴이 간신배이긴 하나 정치감각이 있는 인물이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내용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신하가 숙청당할 때 김홍집처럼 백성들한테 붙잡혀 죽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다수가 왕이나 권력층한테 숙청당했음을 생각해보면 라스푸틴이 상황과 자신의 처지를 판단하고 나서 내린 결론을 토대로 황제에게 보낸 일종의 협박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전쟁에 개입하면 셀 수 없는 눈물이 강을 이룬다."라는 부분 역시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말이다. 전쟁은 승전국, 패전국 가리지 않고 눈물 흘리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 다만 일반적으로 눈물을 적게 흘리는 쪽이 승전국이고 많이 흘리는 쪽이 패전국일 뿐이다. 물론 러시아는 둘 다 아니었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러시아의 패색이 짙던 1916년에는 하반기부터 정치권의 동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구치코프를 중심으로 10월당을 비롯한 우파 세력들이 결집하고 있었고 라스푸틴이 죽은 12월에는 아예 쿠데타까지 모의했다. 이 12월 쿠데타 모의의 핵심 인물인 구치코프는 황제의 면전에서 라스푸틴을 쳐낼 것을 강경하게 주장했으며 이에 알렉산드라 황후가 격분해 구치코프를 목매달라고 길길이 날뛴 것은 유명한 일이었다. 만약 1916년 하반기에 페트로그라드에서 우파 세력들이 쿠데타를 성공시켰다면 가장 먼저 죽을 사람은 라스푸틴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라스푸틴의 편지는 단순히 정치권의 동향을 분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국인 시녀 릴리 데인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직접 겪어본 후 라스푸틴을 신뢰했다고 한다. 2살 난 아들이 심각한 디프테리아로 위독할 때 라스푸틴이 찾아와 아이 침대 옆에서 눈에 힘주고 빤히 쳐다보자 얼마 후 무슨 짓을 해도 안 깨어나던 아이가 눈을 뜨더니 갑자기 말까지 하면서 라스푸틴을 "삼촌"이라고 불렀다고. 그는 아들이 살아날 거라는 말을 하고 돌아갔는데 그대로 되었다고 한다.

5. 성기

그는 키가 큰 동시에 성기 크고 아름다운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이 사진에서(혐짤 및 충격주의) 엄청난 굵기와 길이(23cm)를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병원에서 열린 "에로틱 박람회"에서 전시된 라스푸틴의 성기이다. 그런데 이것만 해도 피가 빠지고 많이 작아진 것이다. 평소에는 길이가 30cm, 발기 시에는 40cm에 달했다고 한다. 그의 추종자 중에는 이런 대물에 반한 여성들도 꽤 있었다 카더라.

라스푸틴을 암살하고 나서 시신을 처리하던 이가 라스푸틴의 성기를 보고 요물이라며 칼로 잘라갔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살아있을 때 잘랐다고도 전해지기는 하나, 부검 담당자 인터뷰에 의하면 살아있을 때 성기는 붙어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 뒤에 표본통에 담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보존된 라스푸틴의 성기는 최소 3개라고 한다. 그중 하나는 해삼으로 판명되었으나 나머지 둘은 모두 실제 성기라고 하는 러시아 내의 풍문이 있다.[33] 그러나 이건 러시아 내 풍문일 뿐이라 검증할 길은 없다. 해삼의 경우처럼 다른 사람의 성기로 사기를 쳤다고 보는 게 옳다.

라스푸틴의 딸 마리야는 아버지의 음경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였다. 마리야는 1977년 사망할 때까지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위에 나온 러시아 박물관에 있는 음경 2개도 사람의 것이 아니라 대형 동물의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성기를 절단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6. 대중문화

의문의 치유 능력이나 암살 당시의 정황 등 여러 가지 미스테리한 면모 때문에 이런저런 루머에 연루된다. 대표적으로, 오컬트적인 힘을 빌리려 했던 아돌프 히틀러를 도와주었다는 이야기. 이는《 헬보이》에서도 다루어진다.

라스푸틴은 미디어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정도가 아니라 거의 90%는 악당 주술사 또는 만악의 근원으로 등장하여 큰 일을 벌인다. 거기다 음모론자들은 이 인간이 불사신 생 제르맹이 아닐까 망상하기도 한다. 창작물의 특성상 실제로 라스푸틴이 영적이거나 마법적인 힘을 가지고 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초인에 가까운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라스푸틴의 기이한 일대기는 영화로 수차례 제작되었는데, 특히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다룬 영화나 영상물에서는 필수요소급으로 등장하며, 라스푸틴 역 뿐만 아니라 니콜라이 2세 등 라스푸틴과 관련된 인물들은 의외로 쟁쟁한 배우들이 연기한다.

실제 행적만 봐도 선역으로 그려질 수가 없는 인물이긴 하나, 특히나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34] 관련 창작물에서는 백이면 백 악역으로 등장한다. 황실을 부정적으로, 혁명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작품에서는 당연히 천하의 악당이고, 반대로 혁명을 부정적으로, 황실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작품에서도 '황실 사람들은 다 선량했는데 사악한 라스푸틴이 그들을 속이고 농락하는 바람에 혁명이 일어났다'라는 식이다.

대머리 남캐같이 미형으로는 잘 안 나온다.

7. 비슷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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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련 가계도. 1906년부터 라스푸틴노비흐(Распу́тин-Но́вых)라는 성씨를 사용하였다. '노비흐'(Новых)는 러시아어 형용사 '노비'(новый)의 복수 생격형 표현이다. [2] 율리우스력 1월 9일. [3] 율리우스력 12월 17일 [4] 다섯명의 형제가 있었지만 모두 어릴때 죽고 그리고리 라스푸틴 혼자 외동으로 자랐다. [5] 마리야로 개명. [6] 각주에서 선술했듯이 마리야로 개명했다. 라스푸틴 사후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갔다가 1935년 미국으로 이주해 서커스단의 호랑이 조련사로 살았다. 기사. [7] 아토스 산이나 예루살렘, 카파도키아는 모두 기독교, 특히 정교회에서는 성지 혹은 유서 깊은 장소이며 라스푸틴은 일부러 그런 곳을 골라 다녔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최태민이 사이비 교주로 활동하던 시절 과거 무당들의 영적 수행장소로 이름높던 계룡산 보문산 일대에서 득도했다고 약을 팔고 다녔다. [8] 실제로 거세파( 스콥치)가 있었고 난교와 채찍질이 루머로 알려진 흘리스트와 달리 스콥치는 정말로 거세를 했으며 증거 사진도 남아 있다. 사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고초를 겪는 장면을 연출한 다큐 드라마처럼 넷플릭스의 다큐 드라마들은 시청률과 관심을 끌기 위해서 역사에 장난질을 치는 경우가 있다. [9] 몬테네그로 왕국의 초대 국왕 니콜라 1세의 딸들. [10] Smith, Douglas (2016). Rasputin: Faith, Power, and the Twilight of the Romanovs. Farrar, Straus and Giroux. [11] 황태자의 혈우병은 황후의 외할머니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유전된 것이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유럽의 할머니라 불릴 정도로 많은 자손들을 두었고, 딸들과 손녀들은 또 유럽 여러 나라로 시집을 가서 아이들을 낳았다( 빅토리아 여왕/가족관계항목 참조). 그래서 알렉세이 황태자 외에도 여러 나라 왕실의 여러 후손들이 혈우병 유전자를 물려받아 고생해야 했다. [12] 아스피린은 해열과 진통 효과는 좋지만 항응고 성질이란 부작용이 있기에, 혈우병 환자에겐 오히려 독이 되는 약이다. [13] 위에 적힌 글은 현대 러시아어로 '러시아 황실 집안(Российский царствовавший дом)'이다. [14] 1909년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저격 직전 이토를 영접했던 사람 맞다. 저격 사건 당시 코콥초프는 러시아 재무대신이었다. [15] 실제로 공주들의 가정교사가 라스푸틴에게 성추행을 당한 걸 고발하자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이 하는 일은 모두 성스러운 것"이라며 오히려 가정교사를 해고하는 작태를 보였다. 황실의 시녀나 가정교사쯤 되면 본인도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는 귀족인 게 보통인데, 신분제가 있던 시절에 일개 평민 출신 사이비 종교인이 그런 사람을 추행한다는 것은 당연히 엄벌에 처해도 모자랄 일이다. 그런데도 황후는 오히려 라스푸틴을 두둔한 것. [16] 니콜라이 2세의 장녀 올가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공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황후와 공주들은 모두 라스푸틴에게 헤롱헤롱대고 있었기에 사실이 아니다. [17] 당시 올가 여대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황실 일원들과 러시아 사교계는 알렉산드라 황후를 그리 좋은 눈으로 보지 않았었기에 황제 부부의 대외적 인간관계는 최악이었다. 결국 라스푸틴 일로 인해 황후의 이미지는 걷잡을 없을 정도로 추락했고 아예 독일 스파이라는 시선까지 받게 되었다. 라스푸틴을 황실로 입성시켜 국정에까지 끌어들여서 나라를 망치는 알렉산드라 황후에 대한 평판이 어찌나 최악이었던지, 처형된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시신을 묻던 볼셰비키가 알렉산드라 황후를 '독일 썅년'이라는 멸칭으로 불렀을 정도다. [18] 출처: Massie, Robert K. (1967). Nicholas and Alexandra. New York: Dell Publishing Co. ISBN 0-440-16358-7 pp. 199–200. [19] 출처: Robert K. Massie, The Romanovs: The Final Chapter p. 8 [20] 유전성 혈우병의 경우 혈우병 유전인자를 가진 X염색체 두 개를 모두 가진 여아는 대부분이 사산된다. 거기다 니콜라이 2세가 혈우병 환자가 아닌데다 혈우병 유전자는 열성이기 때문에 딸들이 혈우병 환자가 아니다. [21] Mager, Hugo. Elizabeth: Grand Duchess of Russia, Carroll and Graf Publishers, Inc., 1998 [22] 자신들이 황제 일가를 죽이기 전에 황녀들을 강간하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징징댄 것이다. 이들은 시신을 묻을 트럭을 징발한 표트르 예르마코프가 모은 사람들이었는데, 질이 안 좋은 죄수들이었다니 놀라울 것도 없을 듯. 자세한 것은 Wendy Slater의《The Many Deaths of Tsar Nicholas》 2 참고. [23] 다만 한국에서는 왠지 모르겠지만 "공주들이 라스푸틴을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다. 이런 추측이 도는 이유는 덕혜옹주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비극적인 삶과 낭만적인 이야기가 맞물리고, 거기다 올가 황녀가 라스푸틴을 멀리하라고 간언한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인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와 이름이 같은 데다가 총명한 제1황녀로서 알렉세이 황태자를 제치고 황위계승자 이야기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라스푸틴을 싫어했다는 추측이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 [24] 사실 이건 라스푸틴의 상황도 근거가 될 수 있다. 라스푸틴이 실세가 된 건 알렉산드라 황후의 뒷배가 작용했는데 알렉산드라 황후는 독일계고 전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하는 거니 전쟁이 일어나면 황후에 대한 인심도 안 좋아지고 그건 자기에게 좋을리가 없다. [25] 반대로 고학력 고소득 직종이라고 다 유능하거나 지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고학력자들이 세간의 인식과 달리 사이언톨로지같은 고학력자를 대상으로 지적 허영심이나 우월감 등 간지러운 곳을 살살 긁어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거나 어이없게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엄청 많다. [26] '산드로'라는 애칭이 있다. [27] 먼나라 이웃나라 러시아》 근현대편 77페이지에서, 라스푸틴은 1914년에 겪은 암살 미수 이후로 단 음식과 술을 먹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유수포프 일당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하여 케이크 외 다른 음식들과 술에도 모두 독을 준비했다. 라스푸틴이 두 시간이나 음식을 먹는 모습을 계속 본 귀족들이 사색이 된 걸로 봐서는, 라스푸틴이 유수포프가 준비한 음식 중 뭘 먹긴 먹었음이 확실하다. [28] 4KCN + 5O2 → 2K2CO3 + 2CO2 + 2N2 [29] 청산가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독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의사들 역시 그것의 독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거사에 참여했던 의사가 의학을 제대로 배운 게 맞다면 청산가리의 치사량을 모를 수 없다. [30] 니콜라이 2세의 사촌 [31] 또한 1932년, MGM에서 라스푸틴과 황후(Rasputin and the Empress)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에서는 '나타샤'라는 캐릭터가 그리고리 라스푸틴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다. '나타샤'라는 캐릭터는 MGM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러시아의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 유수포바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심원단은 영화를 두 번 검토한 이후 원고(이리나)가 명예훼손을 당했다는데 동의했다. 이리나와 남편 펠릭스 유수포프는 항소 법원에서 127,373달러(2020년 2,464,000달러 상당)의 손해 배상금을 받았다. 이후 더 이상의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 영화는 수십 년 동안 배급이 중단되었다. 이 소송 사건 이후 다른 영화 제작사들은 비슷한 법정 소송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픽션 면책 조항을 넣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난 이후 영화 뿐만 아니라 게임, 애니, 소설, 만화 같은 다른 매체에서도 픽션 면책 조항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32] 이 때 황태자 알렉세이는 부상으로 인한 내부 혈종과 합병증으로 거의 죽기 직전 상태였다. [33]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복음경증(diphallia)일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음경이 2개 이상 달린 경우이다. 정상적인 성기가 2개 달린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혐짤로 분류될 만큼 이상하다. 정 궁금하다면 구글에 영명을 쳐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라스푸틴의 성기가 컸다는 소문은 많아도 성기가 2개였다는 소문은 없으므로 이럴 가능성은 없다. 정말 성기가 2개였다면 단순히 성기가 컸다는 것보다 훨씬 기괴한 일이기 때문에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가 없다. [34] 러시아식 발음이나 당시의 작위를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부르는 게 맞지만, 해당 매체들이 한국어로 번역될 때는 보통 '아나스타샤 공주', '아나스타샤 황녀' 등으로 지칭된다. [35] 당대 최고의 미인이며 키도 굉장히 크다. [36] 사실은 몸이 기계로 된 인공생명체다. [37] 실제로 컨셉 아트 중 라스푸틴의 모습을 한 유리가 존재했다. 아마 기획당시엔 라스푸틴과 동일 인물로 설정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게 정설이라면 확장팩 유리의 복수도 사실 러시아 제국을 몰락시킨 소련 공산당에 대한 반공주의 수도승 라스푸틴의 복수라는 의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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