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어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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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글 목록 ]
- ||<tablebgcolor=#FFFFFF,#1c1d1f><tablecolor=#000000,#E5E5E5><tablewidth=100%><width=10000><colbgcolor=#fff><-2>
↓ 1980년대 ↓ ||
1981년 Ce n'était qu'un rêve · La voix du bon Dieu 1985년 L'amour viendra · Tellement j'ai d'amour pour toi · D'amour ou d'amitié 1983년 Mon ami m'a quittée · Un enfant 1984년 Ne me plaignez pas · Une colombe · Mon rêve de toujours 1985년 Un amour pour moi · Vois comme c'est beau · C'est pour toi · C'est pour vivre · Dans la main d'un magicien · La ballade de Michel 1986년 Billy · L'univers a besoin d'amour · Fais ce que tu voudras 1987년 On traverse un miroir · Incognito Je ne veux pas · Lolita (Trop jeune pour aimer) 1988년 Comme un cœur froid · La religieuse · Ne partez pas sans moi · Délivre-moi · Jours de fièvre · D'abord, c'est quoi l'amour" 1989년 Can't Live with You, Can't Live Without You ↓ 1990년대 ↓ 1990년 (If There Was) Any Other Way · Unison · Where Does My Heart Beat Now 1991년 The Last to Know · Beauty and the Beast 1992년 Je danse dans ma tête · If You Asked Me To · Nothing Broken but My Heart · Love Can Move Mountains 1993년 Water from the Moon · Un garçon pas comme les autres (Ziggy) · When I Fall in Love · The Power of Love 1994년 L'amour existe encore · Misled · Think Twice · Only One Road · Calling You 1995년 Pour que tu m'aimes encore · Je sais pas · Next Plane Out · To Love You More 1996년 Falling into You · Because You Loved Me ·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 · The Power of the Dream · All By Myself 1997년 Call the Man · J'attendais · Tell Him · Be the Man · The Reason · My Heart Will Go On 1998년 Immortality · Zora sourit · The Prayer · I'm Your Angel · S'il suffisait d'aimer 1999년 On ne change pas · Treat Her Like a Lady · That's the Way It Is ↓ 2000년대 ↓ 2000년 Live (for the One I Love) ·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 I Want You to Need Me 2001년 Sous le vent 2002년 A New Day Has Come · I'm Alive · Goodbye's (The Saddest Word) 2003년 I Drove All Night · One Heart · Tout l'or des hommes · Have You Ever Been in Love 2004년 Et je t'aime encore 2005년 Je ne vous oublie pas 2006년 Tous les secrets · Tout près du bonheur · I Believe in You (Je crois en toi) 2007년 Et s'il n'en restait qu'une (je serais celle-là) · Immensité · Taking Chances 2008년 Eyes on Me · A World to Believe In · The Prayer (Live) · Alone · My Love ↓ 2010년대 ↓ 2012년 Parler à mon père 2013년 Loved Me Back to Life 2014년 Incredible 2015년 L'hymne 2016년 The Show Must Go On · Encore un soir · Recovering 2018년 Ashes 2019년 Imperfections · Lying Down · Courage
<colbgcolor=#abc4d8><colcolor=#000> 셀린 디옹 Céline Dion CC[1][2]OQ[3] |
|
본명 |
Céline[4] Marie Claudette Dion 셀린 마리 클로데트 디옹 |
출생 | 1968년 3월 30일 ([age(1968-03-30)]세) |
캐나다 자치령 퀘벡 주 샤를마뉴[5][6] | |
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7] |
직업 | 가수, 배우, 사업가, 프로듀서[8] |
종교 | 가톨릭 |
신체 | 171cm |
활동 | 1980년 - 현재 ( 휴식) |
데뷔 |
1981년 싱글
Ce n'était qu'un rêve (데뷔일로부터 [dday(1981-11-06)]일째, [age(1981-11-06)]주년) (프랑스어권) |
1990년 Unison (데뷔일로부터 [dday(1990-04-02)]일째, [age(1990-04-02)]주년) (월드와이드) |
|
학력 | 라벨 대학 명예 박사[9] |
가족 |
외할아버지 로리트 아킬레 탕기 외할머니 앙투아네트 세르게리 아버지 아데마르 디옹(1923~2003) 어머니 테레즈 디옹(1927~2020) |
배우자 | 르네 앙젤릴(1994년 결혼 / 2016년 사별) |
자녀 |
아들 르네 샤를 앙젤릴(2001년생)[11] 아들 에디 앙젤릴, 넬슨 앙젤릴(2010년생)[12] |
장르 | 팝, 댄스 팝, 샹송, 소프트 록, 팝페라[13] |
별명 | CD[14], Queen Cèline, 파리올림픽 개회식 수호자 |
레이블 | CBS, Epic, Columbia 550, Legacy |
재산 | 8억 달러 (한화 약 1조 600억) |
관련 링크 | | | | | | | |
음원사이트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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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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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opad> |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더불어 세계 3대 디바로 불릴만큼 전설적인 가수 중 한 명이며[16][17] 특히 유럽에서의 인기가 굉장히 높았는데, 이는 1988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해 우승한 덕이 크다.[18] 영국에서 싱글을 2백만 장 이상 판매한 기록을 보유한 여성 아티스트[19][20]이자 1억 9천 5백만 장의 앨범을 판매했으며, 앨범과 싱글을 합친 판매량은 2억 장이 넘는다.[21]
라이브 공연에서도 매우 강세를 보여서 라스베이거스 공연 수입까지 포함할 경우 여가수 누적 공연수입 역대 1위이다.[22][23]그래미 어워즈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앨범'까지 수상하는 등 굉장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2. 커리어
2.1. 1980년대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캐나다 퀘벡 주에서 태어났다. 프로필에 기재되어 있듯이 14남매[24]중 막내[25]로 출생해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지냈다 한다.[26]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분위기는 화목했고 셀린의 부모님[27]은 음악을 매우 사랑하여 빈곤한 환경에서도 작은 피아노 바를 운영하기도 하면서 셀린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였다고 한다. 그것도 머지 않아 12살이라는 어린 나이[28]에 Ce n'était qu'un rêve (그것은 단지 꿈이었을 뿐)'이라는 곡을 작곡하고 녹음했다. 셀린의 오빠는 이 곡의 데모 테이프를 '르네 앙젤릴'이라는 매니저에게 보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자 자동 응답기에 "당신은 그 곡을 들어보지 않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들어봤다면 연락을 안 했을 리가 없으니까요."라고 남겼다. 데모 테이프를 들은 후 르네는 그 즉시 셀린에게 연락을 했고, 자신의 집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전 재산으로 셀린의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때 시작된 인연은 이후 부부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진다. 남편 르네 앙젤릴은 2016년 1월 14일,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여기에 언급된 오빠도 이틀 후 1월 16일 암으로 사망한다.프랑스어권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으면서 1982년 'Tellement J'Ai d'amour pour Toi'라는 곡으로 일본 야마하 국제 콘테스트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1988년에는 'Ne partez pas sans moi'란 곡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29] 그랑프리를 따기도 했다.[30] 오디션으로 대성공한 가수였다.[31] 국적이 다르긴 하였지만 이 노래는 셀린 본인이 노래를 했다. 작사는 그리스인, 작곡은 스위스인이 했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ESC) 1988에서 스위스 국가 자격으로 출전했다. # 이 우승에 얽힌 비화가 있다. 마지막 판정 직전까지 2위였던 스위스가 1점 차이로 영국을 역전하며 우승했다. ESC 1988 판정은 각 나라마다 10국가에 1-8, 10, 12점씩을 주었는데 마지막 유고슬라비아 심판에게 6점을 받아서 최종 137점을 얻은 스위스의 셀린 팀이 우울해하고 아직 점수 호명이 안된 영국이 좋아하면서 영국의 우승이 확정나나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영국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셀린이 우승을 거두었다. 호명 직후 셀린의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 전역에만 국한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셀린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고선[32][33] "나도 저 사람처럼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자 르네가 영어로 앨범을 녹음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때부터 셀린은 가정 교사를 두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2.2. 1990년대
1990년, 영어로 된 데뷔 앨범 'Unison'을 발표했다.[34] A-ha와 같은 가수의 프로듀서였던 크리스토퍼 넬을 주축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댄스 팝과 팝 락이 적절히 배합된 앨범이었다. 첫 싱글 ' (If There Was) Any Other Way'는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에 올랐지만 셀린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것은 다른 발라드 곡 "Where Does My Heart Beat Now"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른 곡으로 빌보드 연말 차트 37위에 랭크되었다. 이 곡은 폭발적으로 터져나가는 발성의 팝 락 곡으로 그녀는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디바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녀의 가창력일 뿐, 상업적인 측면에서 이때까지는 저 둘과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디옹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Where Does My Heart Beat Now'는 알아도 누가 그 노래를 불렀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노래가 아닌 자기 이름을 알린 것은 ' Beauty and the Beast'부터 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앨범이 미국에서만 100만 장 이상이 팔려 영어권 데뷔에 성공했다.이후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장편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주제가 Beauty and the Beast를 피보 브라이슨과 듀엣으로 부르고 걸프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을 격려하는 곡인 'Voices That Care'에서도 여성 솔로파트를 맡는 등 인기가 날로 더욱 높아져 갔다. Beauty and the Beast는 싱글차트 9위까지 오르며 히트했고 그래미에서도 수상에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발표한 2집에서도 'If You Asked Me To', 'Nothing Broken But My Heart', 'Love Can Move Mountains' 등의 히트곡이 터져 나왔다. 이곡들은 셀린과 많은 작업을 한 여류 히트메이커 다이안 워렌의 곡들로 모두 빌보드 40위권에 안착했다. 또한 프린스가 작곡해 준 with this tear는 그녀의 가창력뿐 아니라 섬세함이 더해짐을 증명해 준다. 이 앨범에서는 멜로디 메이커 월터를 주축으로 만든 앨범으로 1집보다 훨씬 감성적인 멜로디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 Beauty and the Beast'가 아카데미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것이 셀린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데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here Does My Heart Beat Now | Beauty and the Beast |
When I Fall In Love live (Live) |
이런 활발한 영어 앨범 활동 중에도 그녀는 꾸준히 프랑스어 앨범을 발매했는데 특히 1995년 발매된 D'eux는 프랑스어 앨범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고 프랑스에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된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장자크 골드만이 메인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프랑스 내에서만 720만 장이 팔렸으며 세계적으로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셀린 디옹의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이 앨범의 인기가 워낙 대단해서 프랑스에선 무려 44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다음 앨범인 Falling into You 역시 이 앨범에 밀려 2위를 차지했을 정도이다.
이후 기세를 몰아 4집 ' Falling into You'는 미국에서만 1천만 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3,0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Because You Loved Me, '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37]' 그리고 국내에서 오빠 만세로 잘 알려진 ' All By Myself' 등이 히트했다.[38]디옹의 커리어에서 가장 성공한 두 앨범 중 하나인데, 5집이 'My Heart Will Go On'에 집중된 인기라고 한다면, 4집은 ' Because You Loved Me'가 대표적이긴 하지만 비교적 고루고루 인기를 얻었다. 3집 때까지 머라이어 캐리에 밀려 콩라인이던 셀린 디옹은 이 앨범으로 소니에서 주요 가수로 격상되었다.
'Because You Loved Me'는 영화 '업클로스 앤 퍼스널 (Up Close And Personal)'에 삽입되어 메가 히트를 쳤고 빌보드에서 6주간 1위를 했으며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거의 1년 동안 랭크되어 있음은 물론, 그래미 어워드에서 'Album Of The Year'를 수상했다. 당연히 투어도 대박을 쳤으며 첫 내한 공연도 이때 이루어졌다. 이렇게 대박 행진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당대 탑스타였던 머라이어와 디바의 시초인 휘트니의 아성을 넘기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Because You Loved Me (Live) | All By Myself (Live) |
다음 해 발표한 5집 ' Let's Talk about Love'는 미국에서만 무려 천만 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 세계적으로 3,0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특히, 영화 '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은 셀린 히트곡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이 무렵 그녀의 앨범이 1초당 1장씩 팔려나간다는 통계자료까지 나왔으니 말 다한 것이다. 게다가 타이타닉의 OST 역시 3천만 장이 넘게 팔렸는데,[39] 이 앨범은 'My Heart Will Go On' 이외의 트랙이 전부 클래식 음악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한 곡의 힘이 컸다. 사실 본 앨범에서도 완성도와는 별개로 싱글은 'My Heart Will Go On'을 제외하면 별로 히트한 싱글이 없었다.[40]
게다가 곡의 싱글마저 미국에서 한정판으로 풀어버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매진이 되었다. 소니의 대표적인 흑역사 중 하나가 됐다. 그런고로 그 해에는 'My Heart Will Go On'이 수록된 5집과 타이타닉 OST 양 쪽 모두 3천만 장이 넘게 판매된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기록이다. 보통 2~3년 틈을 두고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인 팝계에서 다작을 하면서도 이렇게 메가 히트를 시켜버렸으니 그야말로 리즈 시절을 달렸다.
셀린 디옹의 최대 히트곡 "My Heart Will Go On (Live)" |
이후 크리스마스 앨범과 베스트앨범을 발표했다. R. 켈리와의 듀엣 ' I'm Your Angel'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하는 등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내에서 많이 팔린 캐럴 음반들 중 하나다.[42]
The Prayer |
내는 앨범마다 최소 1,000만 장 이상은 팔아버리는 당시 셀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였다.
또한 이 시기 그녀의 베스트앨범 'All The Way...a Decade of Song'을 발매하는데 2,000만 장 이상 판매라는 베스트앨범으로선 믿기 힘든 판매량을 기록한다. 다만 여기엔 신곡 7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그녀의 네 장의 앨범(4집, 5집, 캐롤 음반, 베스트앨범)은 96~99년 4년간 1억 장을 돌파했고, 여기에 타이타닉 OST는 포함조차 되지 않았으니 90년대 중후반은 그야말로 셀린 디옹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90년대 전체 음반 판매량에서도 남녀, 장르 통틀어 1위다. 90s Celine Dion No.1
2.3. 2000년대
그러다 어느 날 남편 르네가 후두암에 걸리자 활동을 중단하면서까지 남편 병간호에 나섰다. 다행히 르네의 병은 호전을 보였으며 시험관 시술로 아들까지 얻는 겹경사를 맞았다. 사생활이 안정을 찾으면서 6집 'A New Day Has Come'[46]와 7집 'One Heart'[47]가 연이어 발매되었지만 예전만 한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라스베이거스에서 장기 공연을 하면서 여전한 가창력을 발휘했다. 그 해에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판 앨범[48]을 중박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나, 그전 앨범들에서 워낙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인 것과 대비되는 점, 또한 6집에서는 전작들과는 달리 싱글 차트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을 보았을 때 확실히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49]
앨범 판매량도 어마무시 하지만 라이브 활동이 인상적인 디바로도 꼽힌다.[50]그녀보다 라이브 콘서트 활동을 더 잘한 여가수로는 마돈나밖에 없다. 물론 셀린 디옹의 곡 난이도도 난이도인 만큼 사전녹음도 대다수이긴 하다. 그러나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중 라이브 활동을 뽑으라면 그녀보다 잘한 가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예시로 2007~09년의 'Taking Chances Wolrd Tour' 는 역대 라이브 투어 중 11위[51][52]21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예 라스베이거스에 공연장을 새로 지어 레지던스 쇼 형식의 공연을 하고 있다. 2003~07년의 'A New Day' 에 이어 2011년부터는 'Celine' 을 진행 중이다. 2019년까지 계약된 상태다. 셀린디옹의 콘서트 티켓은 2000~2009년에만 7.2억 달러, 환율 1,000원만 잡아도 7200억이 넘게 팔렸다. 또한 2006년쯤에 셀린 디옹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는 말이 나왔고 그것을 라스베이거스의 건조한 공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아예 공연 장소에 가습기를 설치했다.
프랑스어와 영어 양쪽으로 나누어진 음악 활동으로 인해 라이브 투어 또한 세트리스트를 영어권 대상과 프랑스어권 대상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53]프랑스어권 세트리스트가 영어/프랑스어 곡이 대략 반반 섞인 구성인 데 비해 영어권 세트리스트는 한두 개 정도의 프랑스어 곡만이 포함되는 차이를 보인다.[54]이유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역대 프랑스어 싱글 중 유일하게 영국 차트에 들었기 때문인 듯 하다. 늘 끼는 곡은 'Pour que tu m'aimes encore'. 2008년 내한공연 당시 셀린의 코멘트는 '한 곡 정도는 프랑스어 곡을 불러야 해요' 였고 당연하게도 관객의 호응은 공연 전체에서 최하를 달렸다.[55]
캐나다 퀘벡 주 출신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 외에 일본 로컬 활동 이력도 특이한 점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 드라마 주제곡으로 사용된 'To Love You More'[56]는 서양인으로는 12년 만의 오리콘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고 'Be the Man' 은 아예 일본어판 싱글이 처음 발매되었다. 근래에는 2007년 'Taking Chances' 앨범의 'A World to Believe in' 에서 이토 유나와 듀엣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해서 월드 투어의 일본 방문 시에는 도쿄 돔과 교세라 돔 오사카 기본 방문. 'Taking Chances Tour' 에서는 일본 공연 입장료가 대한민국보다 훨씬 저렴하고 전체 개최국 중에서도 밑에서 2번째였을 정도이다. 내한 활동 경력으로는 1997년에 한번, 2008년에 이은 두번째 내한 공연을 펼쳤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달리 보존을 잘한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관객들을 감동시킨 바가 있다.[57][58]내한공연 동안 한국 힐튼 호텔에 투숙한 게 인상 깊었는지 한국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내한공연 후 캐나다 잡지에서 한국식 온돌에 앉아 아들과 같이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리고 1997년 내한공연 당시 마치 씨디를 틀어놓은 듯한 라이브였지만 씨디를 튼 게 아니냐는 의혹이 들 정도였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앵콜곡 한곡없이 공연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다만 저 두 가수의 내한 라이브 비디오가 있는 방면 셀린의 1997년 첫 내한 방문 때는 비디오가 없고 2008년 두번째 내한 비디오만 간간히 있는 편이다.
셀린이 선배가수든 후배가수든의 곡을 커버로 많이 부르는것 으로 유명하지만[59] 퀸의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2008년인 Taking Chances Wolrd Tour을 시작으로 이후 줄곧 퀸의 Show Must Go On을 라이브로 선보이며[60]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공연과 투어에 집중하며 앨범은 간간이 내고 있다. 2003년 이후 라스베이거스에서 계속 진행 중인 그녀의 쇼는 이미 라스베이거스의 상징이 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다음 가는 라스베이거스의 최고 거물 가수로 등극했으며 그녀 이후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제니퍼 로페즈, 레이디 가가도 라스베이거스 쇼에 참여하지만 그녀만 한 실적을 거두지는 못했다.[61] 2000년대 들어서 그녀의 활동은 싱글과 프로모션 활동보다는 콘서트와 공연에 집중하는 형태라 싱글 성적은 부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고정 팬층 덕에 앨범 판매량은 그럭저럭 나오고 있다. 'Taking chances'와 'Loved me back to life' 앨범 역시 350만 장, 150만 장 정도 팔렸다.
현재까지도 전성기의 가창력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오히려 파워는 전성기보다 조금 떨어졌을지 몰라도 전성기보다 더 깔끔한 목소리, 기교, 그리고 고음역대에서의 편안하고 완벽한 소리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목소리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어불성설일 것이고 20, 30대 당시의 카랑카랑한 미성에서 서서히 40, 50대의 깊고 굵은, 따스한 목소리로 변해왔다.
휘트니 휴스턴이랑 머라이어 캐리는 소울 스타일 창법이었는데, 이쪽은 믹스 보이스가 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셀린 디옹의 대표곡인 'I surrender가 사례다. 듣다 보면 머리가 아플 정도.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사생활에서도 구설수가 나왔는데, 셀린 디옹은 남편인 르네 앙젤릴과도 항상 사이가 좋았고 사생활에서도 구설수는 나오지도 않았다. 약물이나 술에는 입도 대지 않고, 스스로를 빈틈없이 다스렸기 때문이다. 휴스턴이 숨을 거두었을 때, 나온 인터뷰에서 마약이 그녀의 모든 것을 뺏어갔다고 화냈다. 더구나 흥청망청거리는 분위기가 싫어서, 뒤풀이 파티에도 안 간다고 한다. 그 할리우드 연예계에서 정말 보기 드문 유교걸 느낌이다,
크라이슬러와도 연이 깊은 가수이다. 1980년대 및 1990년대에 캐나다 퀘벡 주 프랑스어 광고에 주로 출연한 바 있었으며, 이후 2004년에 퍼시피카 및 다수 크라이슬러 라인업 광고에 목소리 및 출연을 한 적이 있다.
2.4. 2010년대
2010년대에도 앨범을 간간히 내고 있는데 꾸준하게 평타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발매했다 하면 100만 장은 기본으로 넘겨주고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발매된 두 장의 프랑스어 앨범 Sans attendre와 Encore un soir는 프랑스에서만 연속으로 80만 장을 넘게 팔며 프랑스의 국민 가수급 위엄을 보여주는 중. 싱글 실적이 없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2016년에는 프랑스 싱글 차트에서 9년 만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2013년, Loved Me Back To Life를 발매했다. 20~30대의 목소리에서 40~50대의 목소리로 변화되는 것을 선명히 보여준 앨범이었다. 프로듀서에는 시아[62]가 참여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앨범을 들으면 시아 스타일을 명확히 들을 수 있다. 특히 Water And A Flame은 아델과 Daniel Merriweather가 참여한 곡으로 셀린이 커버했다고 한다.
2017년에는 디즈니 미녀와 야수 실사 영화의 OST ' 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를 불렀다. 91년 피보 브라이슨과 불렀던 미녀와 야수(애니메이션)의 주제가 ' Beauty and the Beast' 이후로 무려 25년 만에 동일 작품의 실사화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63] 시간의 흐름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발라드이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흐른다.
영화 공개 이후로 라스베이거스 쇼에서 처음으로 ' 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를 공개하는 셀린 디옹. 벨과 같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아이처럼 떨려 하는 셀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곡이 끝난 뒤에 자신과 비슷한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를 무대 위로 불러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드레스가 워낙 예뻐서 공연 전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고.
정말 긴장되면서도 들뜨는 기분인데요. 25년 전에 저는 운 좋게도 마법 같은 영화
미녀와 야수에
참여했어요. 저의 연예계 생활 중에 가장 대단한 순간 중에 하나였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지요. 그리고 25년이 지나서, 디즈니가 저에게 다시 한번 요청했어요. 미녀와 야수의
실사영화 버전에 참여해서 노래를 녹음해 줄 수 있겠냐는 거였죠. 관객 여러분도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자, 지금 들려드릴 신곡은 '
어떻게 한 순간이 영원이 될까요(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입니다. 오늘 콘서트에서 관객 여러분께 최초로 들려드릴게요.
2018년에는 데드풀 2의 OST를 불렀다. 약을 거하게 빤 뮤직비디오까지 공개했다. 무대에 난입한 데드풀의 더티섹시한 춤사위와 노래가 끝난 뒤 데드풀과 셀린의 대사가 일품. 셀린이 의외로 코미디 연기도 잘 한다며 팬들도 좋아하는 분위기이다.[64]
데드풀: 셀린! 황홀했어요.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공연은 처음이에요.
셀린: 정말 너무 감사해요! 너무 고마...
데드풀: 아뇨, 제가 고맙죠! 근데... 우리 다시 찍어야겠어요.
셀린: 그러죠. 왜죠?
데드풀: 그게 너무 잘 불러버리신 거죠. 이거 데드풀 2에요. 타이타닉(같은 걸작)도 아니고... 지금 10점 만점에 11점이걸랑요~ 한 5점이나 5.5점으로 불러주심 감사하겠슴다. 맞춰주쇼.
셀린: 보소! 이 몸은 원래 10점 만점에 11점짜리야! 그니깐 걍 쨔져~ 스파이더맨 총각.
데드풀: 아... 씨... 엔싱크 섭외할걸.[스포일러]
셀린: 정말 너무 감사해요! 너무 고마...
데드풀: 아뇨, 제가 고맙죠! 근데... 우리 다시 찍어야겠어요.
셀린: 그러죠. 왜죠?
데드풀: 그게 너무 잘 불러버리신 거죠. 이거 데드풀 2에요. 타이타닉(같은 걸작)도 아니고... 지금 10점 만점에 11점이걸랑요~ 한 5점이나 5.5점으로 불러주심 감사하겠슴다. 맞춰주쇼.
셀린: 보소! 이 몸은 원래 10점 만점에 11점짜리야! 그니깐 걍 쨔져~ 스파이더맨 총각.
데드풀: 아... 씨... 엔싱크 섭외할걸.[스포일러]
2019년 6월 8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2003년 시작한 라스베가스 레지던시 쇼(2003~2007년 'A New Day' / 2011년~2019년 'Celine')를 마무리했다.[66]
2019년 11월 15일, 새 정규 앨범인 'Courage'가 발매됐다. 콘서트 덤핑 등으로 기대 이상의 초동 판매량을 선보이며 빌보드 200 차트에서 오랜만에 1위를 차지 하였으나 엄청난 낙폭을 보이며 2주차에 차트 밑바닥으로 추락하였다... 역대 낙폭 2위라는 신기록을 세운 셈[67] 세계적으로 80만 장 가량 팔렸다. 판매량 자체는 아쉬우나 연차를 생각해보면 선방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2.5. 2020년대
2021년 5월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 #셀린의 버클리 음악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2022년 12월 8일, 희귀 질환인 강직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e) 투병 사실을 밝혔다. # # 2023년 2월 1일, 셀린의 큰언니 클로데트[68]가 인터뷰에 나와 셀린의 소식을 전했다. # 클로데트에 따르면 셀린은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의료진한테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2023년 2월 15일, 발렌타인 기념이자 그녀가 출연할 영화[69]인 Love Again의 트레일러가 나왔다. Love Again. 이 영화의 주연으로는 샘 휴건과 프리양카 초프라이며 장르로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예고편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셀린과 배우들의 재미난 애드립 장면이 많이 나온다.[70]이 영화는 5월 12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개봉을 일주일 앞당겨 5월 5일 날 미국 한정 개봉 예정이다.[71]
2023년 4월 13일, 신곡 Love Again을 YouTube및 Spotify에 발표했다.
2023년 5월 27일, 위에 서술한 대로 치료중에 있었으나 강직인간증후군이 심해지면서 건강 상의 이유로 결국 2023~2024년까지 있는 Courage World Tour 유럽 일정을 모두 취소하였다. #또한 이 질병 때문에 현재 셀린이 사망했다는 가짜뉴스 또한 판 치고 있다. 아마 새해 인사 이후로는 셀린이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 듯 하다. 그렇지만 클로데트 디옹은 가끔씩 인터뷰에 나와 셀린이 치료에 만전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2023년 9월 6일, 셀린의 백싱어들이 모여서 작은 콘서트를 개최했는데 셀린이 복귀하길 염원하는 마음에서 열었다 하여 Pour toi Celine이라 한다. 안타깝게도 셀린 디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023년 9월 3일, 셀린이 출연한 영화 Love Again이 넷플릭스에서 개봉한다. 하지만 미국 한정..
2023년 11월 1일, Celine Back
근 3년동안 카메라에 보이지 않다 라스 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캐나다 친선 경기에 응원차 방문하였다 한다. 세 아들과 함께 셀린은 서 있는 채로 웃으며 카메라에 잡혀 팬들의 걱정을 한시름 덜기도 했다.
2023년 11월 3일, 케이티 페리의 마지막 라스베이거스 레지던시 공연장에서 모습을 비추었다. Celine In Las Vegas 2023, 셀린 말고도 찰스 3세의 아들인 해리 왕자와 그의 부인인 메건 마클도 참여 했었다. 왕실 가족의 등장도 놀랍긴 했지만 셀린의 나들이 행적이 더 주목 받았다. 앞서 말한 두 차례의 행보로 팬들은 셀린이 무대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며 환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2023년 12월 19일, 언니 클로데트 디옹이 언론을 통해서 셀린이 강직인간증후군의 병세가 악화됨에 따라 근육통제능력을 상실했음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 한 달 전만 해도 공식석상에 나서 회복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부분.[72]
2024년 2월 1일, 셀린의 다큐멘터리가 제작예정 되었다. 그동안의 커리어 및 현재 앓고 있는 강직인간증후군을 어찌 대처하는지를 방영한다.
2024년 2월 5일, 셀린이 그래미 시상식에 시상자로 나섰다. 앞서 병세가 악화됐다는 뉴스가 나온지 3달만에 공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테일러 스위프트한테 올해의 앨범상을 시상해주었다.[73] [74]
2024년 3월달, 셀린[75]이 그래미 시상식 이후에도 행보를 계속 하고 있다. 쉴 수 있음에 그런지 자녀들과 함께 자신이 팬으로 속해있는 하키 팀에도 명단을 호명하고 응원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2024년 4월 23일, 보그 프랑스 잡지의 파격적인 표지로 복귀 신호를 암시했다. 자신은 한번도 패션을 돈 주고 사지 않았던 적은 없다며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현재 일주일 중 5일은 운동 및 보컬 코치를 하고 있다 한다. 불치병이라고 자책하는 것보단 이 불치병과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굳어졌다고 밝혔다. 그것 외에 과거 타이타닉에 대한 일화를 말해주기도 하였으며 중간중간에 휘트니 휴스턴의 Run To You를 열창하던가 자신의 곡 Imperfections를 부르는 등 팬들로 하여금 기대하는 반응이 나왔다.
2024년 6월 25일에 셀린의 다큐멘터리 'I AM CELINE DION'이 Prime Video을 통해 방송 예정이다. 셀린 본인이 불치병인 강직인간증후군을 투병하는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고 한다. 이를 위해 뉴욕에 방문한 모습도 보였다.
그러던 2024년 7월,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 성화 봉송 이후 에펠탑에서 사랑의 찬가( Hymne à l'amour)를 열창하며 복귀 무대를 프랑스계로서 가장 크고 뜻깊은 장소에서 가지게 되었다. 강직인간증후군을 투병 중인 그녀가 당당하게 병마를 이겨내고 에펠탑에 올라 공연한 모습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인간승리이자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76]추가하자면 이 공연 직후로 셀린이 라이브로 했느냐 사전녹음을 사용했느냐에 따른 갑론을박이 매우 심하게 논쟁되었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의하면 셀린이 투병 이후 첫 라이브 공연이었으며 이는 어느 올림픽 사상 최초라고도 밝혔다.
2024년 10월 7일, 슈퍼볼 출연을 암시하는 병맛 광고를 SNS에 업로드 하여 팬들로 하여금 웃음과 기대를 주었다.
2024년 10월 9일, 켈리 클락슨이 셀린의 데표곡인 My heart will go on을 존경심을 담아 커버한 모습에 감동해 직접 메시지를 남겼다.
2024년 11월 2일, 조금조금씩 활동을 계속 해오던 와중 본인과 본인 가족이 아델의 라스 베이거스 레지던시를 찾아간 것에 대한 것을 SNS에 업로드 하였다. 아델은 셀린 디옹의 궁전에서 2년동안 공연한 것에 감사함을 표하며 셀린이 방문한 것이 본인한테는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며 밝혔으며 셀린 또한 본인이 투병 중에 아델의 노래가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며 서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이 만난 영상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팬들도 전설들의 만남에 감격했다 또는 듀엣을 원한다[77]등의 반응을 보였다.
3. 셀린 디옹과 타이타닉[78]
처음에 셀린 디옹은 'My heart will go on'을 부르고 싶어 하지 않아했다. 이 명곡의 탄생에는 복잡한 비화가 숨어있는데, 'My heart will go on'은 원래 보컬이 들어간 노래가 아니라 순수 악기로만 연주되는 오리지널 스코어 즉, 'instrumental' 음악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칫 영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어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자신의 영화에 보컬이 들어간 음악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의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제임스 호너는 이 원칙에 의해 스코어 음악만 작곡했으나, 영화 마지막에 관객들의 마음을 감싸 안아줄 보컬과 가사가 있는 음악이 필요함을 직감했고 작사가에 작사를 의뢰한 후 친분이 있던 셀린 측에 이 곡을 의뢰했다. 타이타닉을 감상할 때 음악에 주의 깊게 집중하면 알 수 있듯이, 'My Heart Will Go On'이라는 곡을 구성하는 세 가지의 테마(틴 휘슬 솔로, verse, 후렴)는 모두 스코어 음악의 구성요소로, 남녀 주인공의 관계를 상징하는 악절로 영화상에서 반복되어 활용되다가, 엔딩 크레딧에 이르러 하나의 보컬 곡으로 집대성된다.
하지만 1년쯤 앞서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의 주제곡 Because you loved me으로 영화 OST로 성공을 거둔 상황에서[79]또 다른 영화 OST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고 한다.[80] 하지만, My heart will go on을 듣고 대박을 예상했던 남편 르네 앙젤릴과 제임스 호너가 "반드시 노래를 불러야 된다!"라고 셀린을 강력하게 설득했지만 셀린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한다. 그러나 남편 르네 앙젤릴의 간곡한 부탁 끝에 "정 그러면 데모 녹음이나 한 번 해보자." 싶어서 정말로 단 한 번에 원 테이크(!)로 녹음을 한 노래가 바로 'My heart will go on'이었다. 제임스 코든[81]쇼에서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냥 한번 불러나 보자는 마음으로 원 테이크로 불렀는데 어느 순간 그 노래를 듣던 스튜디오에 있던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고. 또한 놀라운 점은 저 원 테이크를 녹음 했을 때도 셀린은 복통 및 컨디션 상태가 최악 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몇 잔을 마시며 녹음했다 한다.
녹음 전 과정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 시작으로 제임스 호너는 노래하고 싶어 하지 않는 가수와 보컬과 가사가 들어간 음악을 자신의 영화에 넣고 싶어 하지 않는 감독을 설득해야 되는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나온 전략이, 제임스 카메론의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 날, 셀린이 녹음한 데모를 은근슬쩍 틀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보컬이 들어간 노래를 듣자마자 예상대로 카메론은 크게 노했으나 노래가 절정에 달하자 My heart will go on에 반해버려서 "OK!"를 했다. 그렇게 호너의 의지가 통했고, 결국 이 노래는 역사에 남을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전설이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노래가 My Heart Will Go On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My Heart Will Go On이 수록된 타이타닉 OST 앨범과 셀린 디옹의 정규 5집 Let's talk about love 앨범 양쪽이 모두 3천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미국에서 한정판으로 그 판매량이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싱글이 1600만 장이 넘게 팔린 전무후무한 "'대히트"'를 기록한다. 결국 발매 후 팔아치운 My Heart Will Go On이 들어간 음반은 총 8천만 장이 넘는 셈이다.
셀린이 이전과 이후 발표한 노래들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 OST 역사를 전부 통틀어서도 이 정도까지 대히트를 기록한 노래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래서 셀린은 "Thank God, they didn't listen to me."[82]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83] 아무튼 영화가 개봉한 뒤 역사에 길이 남을 대흥행을 했고 덩달아서 노래까지 공전의 히트작이 되면서 부랴부랴 새롭게 편곡을 하여 다시 녹음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영화에 엔드 타이틀로 들어간 곡과 실제 싱글컷된 곡이 조금 다르다. 뮤직비디오 녹음 또한 신기하게 녹화되었는데 바로 2배속으로 촬영된 것이다. 촬영된 2배속 영상을 느리게 재생해 위에 있는 뮤직비디오가 완성됐다 한다. 그리고 이 사실과 별개로 윌 제닝스와 제임스 호너[84]가 작사작곡한 셀린 디옹의 노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OST Then You Look At Me가 있는데 이 곡도 셀린의 My Heart Will Go On만큼의 난이도와 예술력이 있었지만 굉장히 알려지지 못했다.
또다른 재밌는 사실로는 셀린 디옹의 My Heart Will Go On의 공연인데 주목할 점은 1998년 아카데미 공연 때이다. 셀린이 차고 있는 목걸이가 실제 영화 타이타닉에 나온 그 목걸이 인데 가격이 워낙 천문학적이라 경호원들이 셀린 대신 목걸이를 보호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셀린이 My Heart Will Go On 공연을 할 때마다 하는 가슴을 팍!! 치는 동작을 이때에도 했다. 때문에 목걸이는 떨어져서 경호원들의 분위기가 암울해 졌다고...
2023년 3월 23일, My Heart Will Go On 25주년 특집으로 셀린 팀에서 뮤직 비디오를 공개했다. 위 영상을 보면 4K 화질로 당시의 셀린의 모습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뮤직비디오와는 다르게 셀린 디옹의 My Heart Will Go On 뮤직비디오에서는 타이타닉의 어떠한 장면도 연출되지 않았다.[85]
4. 음반
4.1. 영어 앨범
- Unison (1990) 3,500,000장
- Celine Dion (1992) 6,000,000장
- The Colour of My Love (1993) 20,000,000장
- Falling into You (1996) 32,000,000장
- Let's Talk about Love (1997) 31,000,000장
- These Are Special Times (1998)[86] 12,000,000장
- All the Way... A Decade of Song (1999)[87] 22,000,000장
- A New Day Has Come (2002) 12,000,000장
- One Heart (2003) 4,000,000장
- Miracle (2004) 2,000,000장
- Taking Chances (2007) 4,200,000장
- Loved me back to life (2013) 1,700,000장
- Courage (2019) 800,000장
- Spotify Singles (2020)
4.2. 프랑스어 앨범
- La voix du bon Dieu (1981)
- Céline Dion chante Noël (1981)
- Tellement j'ai d'amour... (1982)
- Les chemins de ma maison (1983)
- Chants et contes de Noël (1983)
- Mélanie (1984)
- C'est pour toi (1985)
- Incognito (1987)
- Dion Chante Plamondon (1991) 1,500,000장
- D'eux (1995) 7,000,000장 [88]
- S'il Suffisait D'aimer (1998) 3,900,000장
- 1 Fille & 4 Types (2003) 1,500,000장
- D'elles (2007) 1,000,000장
- Sans Attendre (2012) 1,300,000장
- Encore un soir (2016) 800,000장
4.3. 라이브 공연 및 앨범
- Les chemins de ma maison tournée(1983~84)
- C'est pour toi tournée(1985): Céline Dion en concert(프랑스어) - 1985년 5월 31일 몬트리올 Place des Arts 공연.
- Incognito tournée(1988)
- Unison Tour(1990~91)
- Celine Dion in Concert(1992~93)
- The Colour of My Love Tour(1994~95): À l'Olympia (프랑스어) - 1994년 9월 28~29일 파리 Olympia 공연.
- D'eux Tour (1995~96): Live à Paris(프랑스어) - 1995년 10월 20~24일 파리 Le Zénith 공연.
- Falling into You World Tour(1996~97)[89]
- VH1 Divas Live (1998) - Celine Dion과 Mariah Carey, Aretha Franklin, Gloria Estefan, Shania Twain이 헤드라이너로 출연 (게스트 Carole King)
- Let's Talk About Love World Tour(1998~99): Au cœur du stade(프랑스어) - 1999년 6월 19~20일 파리 Stade de France 공연.
- A New Day...(2003~07 첫 레지던스 쇼): A New Day... Live in Las Vegas(영어) - 라스 베이거스 Colosseum at Caesars Palace 공연.
- Taking Chances World Tour(2008~09): Taking Chances World Tour: The Concert (영어. 2008년 8월 12~13일 보스턴 TD Garden 공연) Tournée Mondiale Taking Chances: Le Spectacle (프랑스어. 2008년 8월 31일~9월 1일 몬트리올 Bell Centre 공연)[90]
- Celine sur les plaines(2008년 8월 22일) - 퀘벡 400주년 기념 공연.
- Celine(2011~19) - 라스 베이거스 레지던스 쇼[91]
- Courage World tour(2020~2023)[92]
4.4. 싱글
||<-5><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c1d1f><tablebordercolor=#fff><rowbgcolor=#fff> Celine Dion 싱글 차트인 기록 ||
<rowcolor=#000> 연도 | 곡명 | 비고 | ||
1990 | (If There Was) Any Other Way | #35 | - | |
Where Does My Heart Beat Now | #4 | #72 | ||
1991 | Beauty and the Beast | #9 | #9 | [93] |
1992 | If You Asked Me to | #4 | #57 | |
Nothing Broken but My Heart | #29 | - | ||
Love Can Move Mountains | #36 | #46 | ||
1993 | When I Fall in Love | #23 | - | [94] |
The Power of Love | #14주 | #4 | ||
1994 | Misled | #23 | #15 | |
Think Twice | #95 | #1 | ||
Only One Road | #93 | #8 | ||
Pour que tu m'aimes encore | - | #7 | ||
1996 | Falling into You | #10 | ||
Because You Loved Me | #16주 | #5 | [95] | |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 | #2 | #3 | ||
All By Myself | #4 | #6 | ||
1997 | Call the Man | - | #11 | |
Tell Him | #3 | [96] | ||
The Reason | #11 | |||
My Heart Will Go On | #12주 | #1 | ||
1998 | Immortality | - | #5 | [97] |
I'm Your Angel | #14주 | #3 | [98] | |
1999 | Treat Her Like a Lady | - | #29 | |
That's the Way It Is | #6 | #12 | ||
2000 |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 - | #19 | |
2002 | A New Day Has Come | #22 | #7 | |
I'm Alive | -[99] | #17 | ||
Goodbye's (The Saddest Word) | - | #38 | ||
2003 | I Drove All Night | #45 | - | |
One Heart | - | #27 | ||
Have You Ever Been in Love | -[100] | - | ||
2007 | Taking Chances | #54 | #40 | |
2008 | Eyes on Me | - | #113 | |
The Prayer | #70 | - | [101] | |
Alone | -[102] | #85 | ||
My Love | - | #129 | ||
2014 | Loved Me Back To Life | #14 | ||
2018 | Ashes | -[103] | #86 |
4.5.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 우승
5. 평가
5.1. 음악적 능력
동세대 여가수들 중 단연 최상위권의 가창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3대 디바답게 발성, 가창력 등이 매우 뛰어나다. 셀린은 1옥타브 미(E3)부터 3옥타브 미(E5)까지, 두성도 3옥타브 시(B5)까지 지지가 되며 저음, 흉성, 두성 모든 음역대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상단 음역(Upper Register)에서 믹스보이스를 3대 디바 중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더 두성에 가까운 접근법으로 Upper Register에 접근할수록 음을 더 잘 지지할 수 있으며 성대 주변 불필요한 긴장이 줄어든다. 이때는 믹스보이스로 3옥타브 솔(G5)까지 지지할 수 있다.맨 끝부분에선 아주 잠깐이지만 E6이나 휘슬 레지스터까지 사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5.1.1. 음역대 및 여러 발성 분석
성종: 하이 소프라노 (High Soprano)음역대: Bb2 ~ C6 ~ G7[108]
저음 (Lower Register): 셀린 디옹은 완전히 투사된(projected) 1옥타브 미(E3)음을 무리 없이 내며[109] 어떨때는 간혹 잘 투사된 1옥타브 레(D3)를 내기도 할 정도로 저음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그녀의 성종이 하이 소프라노(Light-lyric이나 혹은 Full-lyric) 임에도 불구하고 1옥타브 초반 음역대까지 굉장히 잘 투사된 음을 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평균적으로 소프라노의 저음의 한계는 A3~B♭3 정도라는 점, 심지어 메조 소프라노의 저음의 한계가 G3~G♯3라는 점을 생각하면 셀린은 저음역에 굉장한 강점을 가진 것이다. 이 부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곡으로는 Then You Look At Me, Have You Ever seen in love, Taking Chances 등이 있다.
벨팅/믹스보이스 (Belting/Mix): 비음(Nasality)을 고의로 섞어 쓰는 창법[110] 때문에 과소평가되는 음역대인데, 사실 셀린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3옥타브 미(E5)를 무리 없이 지지했고, 심지어는 무려 3옥타브 파♯(F♯5)와 3옥타브 솔(G5)[111]까지 지지를 한 적이 있다. 특히, 2옥타브 솔(G4)에서 3옥타브 레(D5) 부분의 중단 벨트(Mid Belt)가 굉장히 발달되어있으며[112] 셀린의 D5, 특히 존 레논의 " Imagine" 커버 공연의 마지막 D5가 많은 찬사를 받는다. 한편 그녀의 상단 벨트는(Upper Belt/E♭5 ~ ) 셀린이 주로 활동했던 9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볼 경우, E5 이상부터 지지를 하지 못하거나 음이 갈라지는 문제가 있어서[113]중단 벨트에 비해 셀린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셀린의 최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90년대 초반까지는 E5~G5 음을 지지한 적이 상당히 있었고 조금 더 가벼운 접근 방식으로 믹스(Mixing)를 하여 불필요한 긴장이 덜한 G5 음들을 보여준 적이 있기 때문에, 나쁜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단 벨트에 비해 상단 벨트가 약할뿐이지 상단 벨트에서도 상당한 두각을 보인다. 후술하겠지만 뛰어난 자기 관리로 50대를 넘은 현재까지도 3옥타브 도♯(C♯5)정도는 무리 없이 지지하는 만큼, 특히 중단 벨트(Mid-Belt)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숙련도와 일관성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곡으론 The Power Of Love, All By Myself, To Love You More 등이 있다.
보컬 민첩성 (Vocal Agility): 음을 정확하고 빠르게 바꾸는 능력을 말한다. 즉, 리프 (Riffs)를 뜻하는데, 셀린 디옹은 굉장히 복잡한 리프를 하면서도 음정이 굉장히 정확하며 음이 플랫되거나 샤프가 되는 경우를 보기가 매우 힘들다고 평가받는다. 굉장히 민첩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리프가 너무 과도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사소하게 일어나는 문제라 별 큰 약점은 되지 않는다.[115] 이 부분도 벨팅과 더불어 과소평가 받는데, 셀린은 이부분에서 엄청난 강점을 지녔다. 흉성에서 두성으로 매끄러운 성구전환도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이 부분을 가장 느낄 수 있는 곡으로는 Love can move mountains, Loved Me Back To Life, Immortality 등이 있다.
셈여림 (Vocal Dynamics): 소리의 음량(세기)를 조절하는 보컬 운영. 예를 들어, 크레센도, 피아니시모, 포르티시모 등등을 뜻하는데, 셀린 디옹은 다양한 역학들을 적절하게 잘 사용한다고 평가 받는다.[116] 심지어 보컬 런 (runs)을 하면서 메사 디 보세도 매우 안정적으로 사용할 정도다.
사실상 셀린 디옹의 보컬 전성기는 따로 기준을 정할 순 없다. 정확한 건 라이브 공연을 준비할 때 리허설을 들어보면 앞서 서술한 내용보다 보컬 능력이 더 있을 수 있다.
5.2. 영향력
어덜트 컨템퍼러리와 스텐다드 발라드가 주 장르이기 때문에 평론가들의 평가는 박하다.[117]그와 상관없이 역사에 남을 위대한 목소리와 엄청난 상업적 성공으로 꾸준히 회자되며 후대 뮤지션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레지던시 공연을 시작한 이후로 후대 뮤지션들도 관례적으로 라스베이거스 레지던시 공연을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로서 창출된 문화적, 경제적 효과는 어마어마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현재에 와선 그녀의 커리어와 가창력 또한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재평가 받고 있는데, 1980, 90년대 때는 강력한 벨팅 창법과 탁월한 리듬감을 가진 휘트니 휴스턴, 돌고래 창법[118]와 엄청난 기교를 보여준 머라이어 캐리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었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위에 서술한 대로 셀린 디옹의 엄청난 음악적 능력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3대 디바에 있는지도 의문을 걸때도 있다.[119]
하지만 휘트니 휴스턴은 마약, 이혼, 가정불화 등 사생활 문제로 계속해서 커리어가 침체되었고, 결국 전성기에 비해 한참 모자른 가창력으로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모습만 보여주다 재기에 실패하며 2012년에 사망하였다.[120]
머라이어 캐리는 2001~2004년에 한번 침체기를 겪고 난뒤에 2005~2008년도에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에 잦은 립싱크 논란, 가창력 저하로 인한 라이브 문제로 곤혹을 겪다보니 예전에 비하면 평가가 많이 내려간 상태가 되었다.[121][122]
이에 반해 셀린 디옹은 사생활 문제는 물론 가창력 문제없이 가수 생활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며, 예전만큼의 인기는 아니어도 적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3대 디바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오히려 앞서 언급한 두 디바들 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3대 디바 모두 전성기 시절에 엄청난 고음과 넓은 음역대를 오고 가는 고난이도 노래들로 인기를 누린 공통점이 있는데, 셀린 디옹만큼은 다른 두 디바와 큰 차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말년의 휘트니 휴스턴과 현재도 같이 활동하고 있는 머라이어 캐리 둘 다 20대 시절엔 벨팅과 가성, 휘슬 창법을 이용한 뛰어난 가창력을 보여주며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지만, 대신 엄청난 성대혹사로 2000년대 이후엔 들쭉날쭉한 라이브로 혹평을 받았었다.[123]
특히 휘트니는 마약으로 성대에 치명타를 입어 아예 재기불능한 수준으로 떨어졌었고, 머라이어 캐리는 성대결절 문제는 있어도 조금만 잘 쉬다오면 라이브는 가능하지만, 본인의 전성기에 비하면 기량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124]
그에 비해 셀린 디옹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두성, 믹스보이스 창법을 기반으로 노래를 기복 없이 잘해왔기 때문에 적어도 디바로썬 셀린 디옹을 높게 쳐주는 경향이 있다.[125][126][127]나이를 먹은 현재는 노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파워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다른 가수들이 비하면 아직도 디바로써의 위용은 여전하다.
한국에선 아쉽게 두 디바보단 인기가 덜한 면이 있다. 휘트니와 머라이어는 둘 다 한국에서 100만장씩이나 판 앨범들이 있으나, 셀린 디옹만 없다.[128][129]
다만, The power of love나
의외로 패션 분야에서도 명성이 드높다. 1999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입고 나온 리버스 턱시도가 가장 유명하다. 빌보드에선 그녀를 스트릿 패션의 아이콘이라고 칭한 바 있다. #
5.2.1. 그녀에게 영향을 준 인물
그녀에게 영향을 준 인물 | |||||||
엘비스 프레슬리 | 비틀즈[131]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캐롤 킹 | 아레사 프랭클린 | 마이클 잭슨 | 프레디 머큐리 | 휘트니 휴스턴 |
5.2.2. 그녀의 영향을 받은 인물
- 드레이크
- 라라 파비앙[132]
- 레이디 가가
- 리아나
- 리오나 루이스
- 마일리 사이러스
- 비욘세
- 브리트니 스피어스
- 제시 제이
- 제니퍼 허드슨
- 아델[133]
- 아리아나 그란데
- 테일러 스위프트
- 케이티 페리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켈리 클락슨[134]
- 샤니아 트웨인[135]
- 샘 스미스
- 찰리 푸스[136]
5.2.3. 그녀의 목소리를 칭찬한 인물
- 라이오넬 리치
- 비 지스
- 셰어
- 엘튼 존
- 오프라 윈프리[137]
- 원 리퍼블릭
- 콜드플레이
- 니콜 셰르징거
- 캐롤 킹[138]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139]
- 패티 라벨
- 데이비드 포스터[140]
- 브라이언 아담스
- 루치아노 파바로티
- 저스틴 비버
6. 수상 외 기록
셀린은 오랜 경력 동안 뛰어난 상업성을 이룬만큼 어마무시한 기록과 수상도 이루어냈다. 셀린은 그래미 어워드 5회 , 월드 뮤직 어워드 12회 , 빌보드 뮤직 어워드 7회 ,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6회, 주노 어워드 20회 , 펠릭스 어워드 50회 등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 그녀는 주노 어워드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상을 받은 아티스트이자 역대 최다 노미네이트 아티스트다.1993년
그래미 베스트 팝 보컬 듀오 퍼포먼스[145]
1998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Favorite Female Pop/Rock Artist
캐나다 훈장 오피서(OC), 퀘백 주 훈장 오피서 (OQ) 수훈
1999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Favorite Adult Contemporary Artist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Favorite Female Pop/Rock Artist 및 Favorite Adult Contemporary Artist
2004년
월드 뮤직 어워드 다이아몬드 상
2008년
캐나다 훈장 컴패니언(CC)으로 훈위 승급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
3000만장 이상 판매 앨범을 2개를 보유한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아티스트(4집 Falling into You)(5집 Let's Talk about Love)
남아프리카[146] 및 스위스[147]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여성 아티스트
7. 어록
나는 한번도 멋져 본 적이 없으며 상관하지 않습니다.
I've never been cool - I don't care. 출처
I've never been cool - I don't care. 출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성숙해지고 지식이 된다는 것 입니다. 아름답다, 나는 그것을 아름다움 이라고 부른다.
There's no such thing is aging, but maturing and knowledge. it's beautiful, I call that Beauty. 출처
There's no such thing is aging, but maturing and knowledge. it's beautiful, I call that Beauty. 출처
8. 필모그래피
- Touched by an Angel
- The Nanny
- All My Children
- La fureur de Céline
- Des fleurs sur la neige
- Quest for Camelot as Juliana (노래)
- Céline sur les Plaines
- Celine: Through the Eyes of the World (본인 역)[148]
- Sur la piste du Marsupilami
- Hell's Kitchen
- Muppets Most Wanted
- Love Again (본인 역)
9. 여담
- 마돈나,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가장 자수성가한 여성 아티스트다. 덧붙여 엄청난 워커홀릭이다. 1981년 데뷔 이후 거진 40년동안은 음반 활동, 방송 활동, 콘서트를 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당연한 소리지만 세계적으로 역대급으로 대성공한 가수인 만큼 엄청난 부자다. 헐리우드 여성 연예인들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에 있는데, 여성 가수 재산 순위의 1위는 약 17억 달러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리아나[149]이다. 그 뒤로 마돈나와 셀린이 8억-9억 달러로 따르고 있다. 가수로서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어를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한화로 400~500억 정도의 수익을 매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원래 셀린은 수줍음이 많아 대중들 앞에 나서기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데이비드 포스터: 오브 더 레코드》에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걸로 무대 공포증이 있다고 보긴 어렵고 데뷔 초기부터 대중들 앞에 설 무대를 많이 했기에 이겨낸 거 같다.
-
지미 팰런 쇼에서의 예능.[152] 무대 뒤에서는 매우 재미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능에 출연할때는 차분한 발라드를 부르는 진지한 팝의 여왕이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 매우 호통한 이모라는 인식이 되는 편.
-
제임스 코든 쇼의 카풀 노래방에서의 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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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메이커 또는 막장 수준의 악마의 재능이 일상인 헐리우드에서 톱가수임에도 정말 드물게 인성이 좋기로 유명하다. 남의 말을 안 좋게 하는 경우가 절대 없다.
데뷔 초기 때는 마돈나,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를 동시에 칭찬한 일도 있었는데 이때[153]부터 인성이 좋은 부분이 보였다.[154]
물론 이후로도 디스는 물론이고 막말이나 인종차별 따위 논란도 없다.[155][156] 미국은 이런 거에 별로 터부가 없고 오히려 디스전을 즐기기도 한다.[157] 그러나 셀린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연예인에 대한 인터뷰를 해도 항상 칭찬과 좋은 말로 일관한다. 예를 들면 한때 헐리우드의 막장파티걸[158]이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공연에서 트월킹이나, 혀를 내미는 퍼포먼스로 논란이 있었던 마일리 사이러스와 같은 경우이다. 가는 말이 고우니 오는 말도 고와서 아무와도 갈등이 없다.[159] 그리고 머라이어 캐리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팬들의 말도 있는데 과거 Divas Live 1998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에 맞선 셀린에 대해 머라이어가 디스 같은 비슷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일뿐, 머라이어는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 일 때 셀린의 노래 The Power Of Love를 부른 참가자한테 셀린 디옹의 노래를 부른 것에 대해 좋다고 평가했다.[160]그리고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라이어가 라스 베이거스 공연을 할 때 셀린은 2018 아시아 투어를 진행하고 있었다.[161]셀린도 데뷔 초기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티스트 중에 머라이어가 있다고 밝혔었다. 데뷔 초 셀린의 인터뷰, 또한 셀린도 디스같은건 안하는 성격이고 예전에는 머라이어와 찍은 사진도 있다. 현재는 둘이 SNS 계정도 맞팔로우 하는 중이다.[162]또한 커버도 자주하는 편인데 그녀의 히트곡중에도 커버곡이 많기도 하다.[163][164]
-
디즈니 실사 영화 《 미녀와 야수》시사회에 왔다가 한 무개념 기자에게 그래미에서 아델이 비욘세를 누르고 상을 받은 일에 대해서 질문을 받자[165] 기자의 손을 잡아주며 "당신에게 무례하게 굴고 싶은 게 아니지만, 난 여기 그래미에 대해 말하러 온 게 아니에요. 난 여기에 미녀의 야수 영화를 위해 왔답니다. 당신도 그 영화의 어떤 부분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하고 부드럽게 타일렀는데 classy[166]하다며 칭찬을 받았다.
- 유일한 갈등으로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처음 시작할 때 뮤즈와의 사건이 있긴 했다. 지금은 유명하지만 당시는 상대적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2003년 뮤즈에게 소니가 뮤즈 측에 돈을 주고 판권을 사서, 라스베이거스 공연의 타이틀로 쓰려고 했다. 뮤즈는 거부하면서 인터뷰를 했다. 셀린의 음악을 비하하고 자신의 팬들도 마찬가지로 셀린의 음악을 싫어한다고 했다.[168]처음에는 셀린이 5만 달러를 지불하고 판권을 인수하려 했지만 뮤즈의 반대 끝에 셀린은 그냥 공연 타이틀을 'A new day'로 바꿨다.
- 자신에게 엄청난 부와 성공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정작 자신은 "고음 범벅 노래들을 콘서트에서 두 시간 동안 부르는 것이 지겹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My Heart Will Go On'은 특히 너무 많이 불러서 정말 싫다고 하면서 자신이 죽을 땐 절대 틀지 말라고 했을 정도. 하지만 최근에도 불러달라고 요청하면 많이 부른다(…)
-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가수이자 프랑스[169]에서도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전무후무한 가수기도 한다.[170]또한 미국 출신이 아닌 스타 중에서도 미국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스타기도 하다. 특히 캐나다에선 최고 훈장까지 수여받고 신 같은 대우를 받는다.[171][172]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정상급의 가창력에 미모까지 겸비하여 연기 활동을 하는 등 압도적인 스타성을 만들었던 데 반해 셀린은 영화 OST를 더 많이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셀린의 전성기가 저 둘보다 낮은건 아니었다. 주 전성기가 1997년[173]과 2008년[174]인데 왕실 공연도 몇차례 섭외되고 보통 인기가 강한 세계적인 가수라 해도 실천하기 힘든 걸 수차례 실천한 바 있다.[175]
- 머라이어 캐리보다 먼저 데뷔했음에도 셋 중 가장 막내라고 하는데 이는 셀린 디옹이 떠오른 시기가 영어권에 한정했을 때 머라이어보다 늦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셀린도 머라이어와 똑같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 바 있다. 다만 머라이어[176]처럼 싱어송라이터를 직업적으로 삼았지 않았을 뿐 셀린도 자신의 데뷔 곡은 자작곡으로[177]했으며 캐럴도 공동작곡한 바 있다. 다른 두 디바가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자신의 가창력을 거의 상하지 않게 보존하여 활발히 공연을 보였다. 그러나 2022년을 기점으로 희귀질환을 겪게 되었으며, 2023년에 근육 통제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결과가 발표되면서 가수 커리어에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하다. 콘서트를 앞두고 목 상태가 좋지 않자 아예 말을 하지 않았던 일화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쇼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있는 향락적인 문화를 경계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음주나, 마약 같은 것들과는 정말 거리가 멀다. 대신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저택에다가 워터 파크를 만들고 신발도 3천 켤레나 사긴 하지만 적어도 지나친 음주나 마약에 쩔어있는 것에 비하면 매우 건전하다.
-
Trump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광팬이기도 하다. 90년대 전성기 일때는 트럼프가 프랑스에 직접 와 셀린을 프랑스에 있는 가장 재능 있는 사람 이라고 소개 할 때도 있었다. 후에 트럼프가 체포 되고 난 후 집 안을 압수수색했을 때는 셀린의 사진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 유튜브 시대 이전에 전성기가 끝나긴 했지만 유튜브에서도 조회수가 제법 잘 나오는 90년대 팝가수 중 한 명이다. 같은 세계 3대 디바인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에 비해 낮긴 해도 몇몇 뮤직비디오는 1~3억대 영상이 있고 라이브 무대 또한 1억 조회수가 넘고 그 가까이 있는게 태반이다.
- 다른 팝스타들과 다르게 가족들과 사이가 좋은 걸로도 유명하다. 사실상 부모님, 형제 모두가 음악인이기도 하지만 셀린의 모든 콘서트에는 가족이 동반한다.
- 2014년에는 소유 부동산이 화제가 됐는데 플로리다의 7200만 달러짜리 저택을 시장에 내놓았고 3천만 달러 상당의 캐나다 성도 시장에 나왔다. 캐나다 출신이라서 그런지 당연히 NHL의 팬이다. 실제로, 카나디앵 드 몽레알의 인수를 시도한 적도 있다.
- 사생활의 유일한 잡음이라면 남편 르네 앙젤릴과의 결혼 당시에 생겼는데 다름 아닌 르네가 셀린보다 26살이나 연상이었던 것.[178][179] 무엇보다 첫만남은 그녀가 12살 때인데, 부모를 떠나 파리에서 가수로 준비하면서 홀로 고립되던 그녀가 의지할 곳은 르네뿐이었다. 셀린이 어린 시절에 치아가 고르지 못한 것을 약점으로 대중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르네가 위로를 해주면서 용기를 주었다. 셀린이 스무살이 되자 연인 사이로 발전했으며 셀린에게 있어 르네는 첫 연애 상대이자 첫경험 상대라고. 근데 르네와 연인 사이로 발전한 뒤에 어머니한테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할 당시에 르네는 두번째 결혼생활 중이었다(…) 르네는 이혼 위자료와 거액의 도박 빚이 있었는데 셀린이 전부 지불했다. 찐사랑에 겨우 이런 장애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 결혼 이전에는 매니저의 역할에 머물렀지만 이후로 르네는 셀린의 음악 커리어를 완벽하게 외조했으며 셀린 역시 암 투병을 하는 르네를 음악 활동을 중단하면서까지 극진히 간호하며 르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 아이를 낳으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르네는 2002년에 한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는데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났으며 피해자라고 주장한 한인 여성과 그 남편도 공갈협박과 범죄 공모 혐의로 기소 당했으나 수사 과정에서 증거로 제시한 물증들이 충분히 수사에 활용되지 못한 점을 들어 이들 부부에게도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이 났다. 단, 뇌물 간청 혐의는 그대로 유지하여 기소되었다.
- 다만 르네 사후, 장남과 동갑(!)인 12살의 어린 여자아이를 파리에 고립시키면서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고 비록 정식으로 연인 사이로 발전한 건 셀린이 스무살 때였다지만 어쨌든 두번째 결혼생활중에 그녀와 외도를 한 것에 대해서 르네에 대한 비판이 많다. 아무리 셀린이 남편과 사별한 후에 줄곧 싱글로 지낼정도로 남편바라기라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둘의 관계가 전형적인 그루밍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미성년자 시절에는 철저히 매니저와 가수라는 비즈니스 관계였던게 분명하고 이미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세상 돌아가는 일 다 아는 만 26살에 셀린이 그루밍의 여파로 그와 결혼까지 갔다고 보는건 르네에 대한 과한 매도이면서 셀린을 너무나도 무시하는 시각이다.
- 2019년 2월에는 스페인 출신 댄서 겸 패션 디자이너 페페 무뇨스(Pepe Muñoz)[180]와 함께 파리 패션위크에 등장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이패션모델 수준의 다이어트를 해서 엄청나게 마른 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혔다. 51세가 된 셀린 디옹의 모습. 이 때 남편과 사별한 후라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거식증에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10. 둘러보기
<colbgcolor=#fff,#000> 셀린 디옹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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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
카롤라 | 린다 마틴 | 니암 캐바나 | 폴 헤링턴 & 찰리 맥게티건 | 시크릿 가든 | |||||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
이미어 퀸 | 카트리나 앤 더 웨이브즈 | 다나 인터내셔널 | 샤를로트 닐손 | 올센 브라더스 |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
타넬 파다르 & 데이브 벤튼 & 2XL | 마리 N | 세르타브 에레네르 | 루슬라나 | 엘레나 파파리주 |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
로디 | 마리야 셰리보리치 | 지마 빌란 | 알렉산데르 뤼박 | 레나 |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
엘 & 니키 | 로린 | 에멜리 데 포레스트 | 콘치타 부르스트 | 몬스 셀멜뢰브 |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
|||||
자말라 | 살바도르 소브랄 | 네타 | 던컨 로렌스 | (2021년으로 승계) | |||||
2021년 | 2022년 | 2023년 | 2024년 | 2025년 | |||||
모네스킨 | 칼루쉬 | 로린 | 네모 |
역대 그래미 시상식[181] | ||||
올해의 레코드상 | ||||
<rowcolor=#000> 제40회 ( 1998년) |
→ |
제41회 ( 1999년) |
→ |
제42회 ( 2000년) |
"Sunny Came Home" 숀 콜빈 |
→ |
"My Heart Will Go On" 셀린 디옹[182] |
→ |
Smooth 이탈 셔 & 롭 토머스 |
셀린 디옹의 주요 등재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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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디옹의 주요 저널 및 여론조사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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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디옹의 기네스북 등재 기록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기네스북 세계 기록 | |
Most Canada No.1 sales by a solo artist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음반 판매를 기록한 솔로 아티스트 |
||
아티스트 | 수치 | |
셀린 디옹 | 210만장 | |
등재 날짜 | 출처 | |
2017년 5월 11일 | Canada No 1 |
[include(틀:기네스 등재 기록, TitleEn=All time Solo artist to Debut at No.1 on the France Single and Album, TitleKr=역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과 앨범을 보유한 예술가, Link=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472856-best-selling-album-france,
Who=셀린 디옹, What=최초, Where=NOT APPLICABLE, When_Y=2017년, When_M&D=-)]
{{{#!wiki style="margin:-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284c> |
기네스 세계 기록 |
}}} | |||
Top selling album act in Europe
(역대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을 보유한 예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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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대상 | 기록 | 장소 | 등재 시일 | |||
<rowcolor=#000,#fff> 셀린 디옹
|
최초
|
NOT APPLIC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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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세계 기록 설명 페이지 |
기네스북 세계 기록 | |
Most JUNO awards won for Album of the year of solo artist 올해의 앨범으로 가장 많은 JUNO 상을 수상한 솔로 아티스트 |
|
아티스트 | 수치 |
셀린 디옹[183] | 3개[184] |
등재 날짜 | 출처 |
2018년 3월 25일 | ! |
}}} ||
[1]
캐나다 훈장 1등급(Order of Canada)
[2]
최고위 훈장
[3]
Ordre national du Québec(퀘벡주 훈장)
[4]
패션브랜드
셀린느과 혼용될 때도 있으며 셀린느 디옹이라고 나오기도 하면서 이름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 예시로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셀린의 노래를 부른 셀린 탐. 셀린 탐의 부모는 자매를 낳으면서 한명은 셀린 한명은 디옹이라 붙여주었다.
[5]
몬트리올 외곽의 소도시이다.
[6]
실제로 샤를마뉴 거리에 가면 셀린 디옹 대로라는 길과 표지판이 있다.
[7]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프랑스 귀족 집안 출신이라 한다.
[8]
직업적으로는 잘 어필되지 않았지만 엄연히
싱어송라이터이다.
[9]
퀘백에 있는 대학으로 고등학교 자퇴를 한 셀린한테 큰 영예라 했다.
[10]
배우자인 르네 앙젤릴과 더불어 셀린의 데뷔에 힘써준 인물, 르네 앙젤릴 사망 후 이틀 뒤에 암으로 사망했다.
[11]
시험관을 통해 출생했다.
[12]
쌍둥이
[13]
다장르면의 셀린 영상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셀린처럼 다장르적으로 도전한
아티스트도 찾기 어렵다. 흔히 셀린 디옹하면
가곡스런 이미지가 다지만 그녀는 많은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
[14]
자신의 이름 약자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CD를 틀어놓은 듯한 라이브를 선사하기도 해서 이렇게 불린다.
[15]
다른 백과에서도 싱어송라이터로 많이 소개되고 자작곡도 많은 편이다.
[16]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3대 디바인 휴스턴, 캐리보다는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이유는 알려진 대로 뜬 시기가 가장 늦었으며 더불어
음반도 내느라
빌보드에 집중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HOT 100 기준으로는 두 디바에 비해 한참 적긴 하나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 기준으로는 최다 보유로 어덜트 컨템퍼러리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셀린 디옹이 슈퍼스타로 떠오른 3집 활동 시기는 1990년대 초반 캐리, 휴스턴의 전성기보다 늦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셀린 디옹의 곡도 두 디바와 비슷하게 대한민국 연예인들도 커버를 많이 했지만 두 디바에 비해 덜 조명받았다.
[17]
그러나 셀린의 히트 곡인
My Heart Will Go On은 영화 타이타닉의 인기에 힘입어 인지도가 매우 높으며,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와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에 뒤지지 않는다. 셀린 디옹을 모르더라도 이 노래는 아는 경우가 많다.
[18]
유럽에서 가장 데뷔가 빨랐으면서 불어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19]
영국에서의 판매 기록은
기네스에도 등재 돼있다.
[20]
하지만 이러한 결과와 비례로
브릿 어워드하고는 아직까지도 인연이 없다.
[21]
셀린 디옹 홈페이지나
소니에 따르면 2억 5000만장이 넘는다고 한다.
[22]
최근 음반도 대형 아레나 투어를 매진시켰을 정도로 티켓파워가 여전하다.
[23]
투어 같은 경우에는 40년동안 쉬지 않고 꾸준히 해왔으니 티켓파워가 강세이다.
[24]
셀린이 음악적 능력이 타고 났듯이 형제자매들도 음악엔 소질이 보였다.
!
[25]
여기서도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셀린의 아버지인 아데마르 디옹은 결혼 하고 나서 부터는 아이 갖기를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4명의 아이까지 둔 걸 보면...-
[26]
아기 때는 서랍에서 잠을 자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27]
부모님 두 분 다 퀘백 주에선 방송인을 직업으로 삼았다.
[28]
셀린은 학교에 다닐때도 마른 체격과 고르지 못한 치아로 뱀파이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며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왕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인성이 바른 걸 보면 가정 분위기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인 듯 하다.
[29]
한국으로 따지면
슈퍼스타K가 유럽 전체로 열리는 버전이라 보면 된다.
[30]
이상의 세 곡은 2005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On ne change pas에 수록되었다.
[31]
한국에선
서인국하고 비슷한 부분이 많다.
[32]
이후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까지 듣게되자 휘트니 노래도 커버하면서 영어권 데뷔에 더욱 영향을 끼치게된다.
[33]
휘트니와 비슷하게 셀린도 성가대 출신이다. 가수 데뷔 시작 이전에도
CCM가수로 시작한 바 있다.
[34]
셀린이 영어 데뷔를 하긴 했어도 정규 2집을 빼면 전체적으로 유럽풍 느낌이 나는 곡이 대다수이긴 하다.
[35]
당시 고전 팝 리메이크 열풍을 주도했던 포스터답게 이곡 역시 원곡의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36]
영국 차트 1위
[37]
이곡도 커버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당시 진행중이던 밴드가 음반을 내진 않았기에 셀린이 원곡이라는 말이 맞긴 하다.
[38]
이 All By Myself에는 또다른 재밌는 일화가 있는것이
넷플릭스 시리즈 데이비드 포스터 오프 더 레코드에 나온다.
데이비드 포스터에 관한 다큐멘터리인데 잠깐 셀린의 이야기도 나온다. 셀린이 포스터와 만난 장면과 All By Myself를 녹음한 장면인데 그중에 All By Myself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인 Anymoreeee 고음(F5)파트다. 사실 포스터 본인도 이 불가능한 파트를 셀린한테 맡겼다 한다. 물론 동기부여로 셀린한테 이 고음을 소화하지 못하면 아랫층에 같이 녹음작업을 하고 있는 휘트니 휴스턴을 불러와 대신 녹음을 시킬 것이었다. 결과적으론 셀린은 그 고음을 완벽하게 소화했지만 포스터는 이 말도 안되는 고음을 7번이나 더 시켰다고 한다. 그러면서 포스터 본인도 그때 당시 셀린이 자신을 엄청 미워했을것 이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39]
싱글로만 약 690만장
[40]
My Heart Will Go On 이후
비 지스와 함께한 Immortality는 나름 히트했지만, 미국을 제외하고 유럽, 호주, 캐나다에서만 발매되었다.
[41]
참고로 이때의 아카데미 시상식 때의 시청한 사람이 5500만명으로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다.
[42]
머라이어 캐리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작사작곡해서 현재까지 1위 캐럴 음반이어도 2위가 바로 셀린디옹의 캐롤이다. 그녀 역시 Don't save it for all Christmas day이라는 캐롤을 공동작곡해서 캐롤쪽 인기 역시 낮진 않다.
[43]
이곡은 1998년 캐럴 앨범인 There are Special Times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1999년 오스카에서 휘트니와 머라이어의
When You Believe와 같은 순간에 불렸다. 물론 당시 주제가상으로는 When You Believe가 수상했다.
[44]
영상 속 라이브는 2010년대.
[45]
출처
[46]
1200만 장 그해 전체 음반량 판매 순위 2위. 당시 9.11 테러 때문에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지만 이 앨범이 미국인들에게 위로곡으로 쓰여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47]
600만 장
[48]
1위는
에이브릴 라빈
[49]
셀린 디옹이 공백기를 가졌던 3~4년동안 인터넷의 발달로 불법 다운로드가 급증해 음반시장이 전세계적으로 붕괴 수준으로 급격히 몰락하던 시기였다. 물론 잘 팔던 가수들은 가끔가다 2000만 장씩 넘기기도 했지만 2010년대 이후 부턴 유로 다운로드뿐만 아니라 스트리밍 시장도 급격히 성장해 이젠 1000만장 넘기기도 어려워졌다.
[50]
전성기 때는 파리 라이브에 이틀 만에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어마무시한 티켓파워가 있었으니 그 위엄이 더 돋보인다.
[51]
여성 중 2위
[52]
1위 마돈나
[53]
대표적으로 2008년 콘서트인 Taking Chances World Tour에선 보스턴 라이브인 영어권과 몬트리올 라이브인 프랑스권을 따로따로 DVD로 제작하였다.
[54]
셀린의 영어권 데뷔 이후 프랑스인들은 셀린의 프랑스어의 발음이 영어 발음으로 많이 치우쳐졌다는 말을 많이 하고는 한다.
[55]
그래도 마지막에는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56]
현재 한국인들도 많이 듣는 셀린의 곡 중 하나이다.
[57]
역대 내한공연한 아티스트 중엔 최상급의 모습만 보여주었다.
[58]
이 내한공연에서도 재미있는 사실이 보통의 연예인인 경우 인천공항에서의 공항샷을 보여주는 바 있지만 셀린은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당연히 셀린이 인천공항으로 올 거라는 예상으로 그때 기자들도 집합 수준으로 모여 있었다. 하지만 셀린이 김포공항에 있었으니 내한공연 검색을 해보면 공연모습만 나오지 공항에서의 모습은 거의 잡히지 않았다.
[59]
대표적으로
티나 터나,
신디 로퍼,
프레디 머큐리 등등.
[60]
Show Must Go On 공연 이전에는 We Will Rock You를 선보인다.
[61]
물론 가가나 로페즈도 라스베이거스 레지던시로 전석을 매진했는데도 불구하고 셀린만큼의 실적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 셀린 디옹을 라스베이거스 쇼에서 뛰어넘는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62]
셀린과 시아는 매우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63]
참고로 'Beauty and the Beast'는 실사영화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와
존 레전드가 불렀다.
[64]
여기서도 드러나는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의 캐나다 사랑.
[스포일러]
그리고 3편 오프닝은 진짜로 엔싱크의 Bye Bye Bye를 삽입했다.
[66]
이 대장정의 라스베이거스 쇼는 1000회를 넘게 했다 하여 지구촌 화제 뉴스에도 나왔다.
[67]
1위는
본조비의 새 앨범
[68]
Claudette Dion. 셀린이 신인이었을 때 곁에서 음악가로 함께 활동한 바 있다.
[69]
따지고 보면 자신의 연기로써는 첫 데뷔작이다.
[70]
참고로 영화
프로듀서에도 셀린이 있고 OST도 셀린이 직접 작곡했다 한다. 아마도 예전부터 영화 출연에 관심이 깊었던 셀린이 이번 영화에 뜻깊은 감정이 생긴 거 같다.
[71]
참고로 5월 12일은 셀린의 새 음반 5개를 발표한다.
[72]
하지만 이 강직인간증후군이라는 병 자체가 희귀병이긴 하지만 사망률은 매우 낮다. 또한 몸 전체가 항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아닌데도 셀린이 휠체어가 타고 다니는 딥페이크가 꽤 많이 유포됐다. 정작 셀린은 휠체어를 타지도 않아 미디어에서 매우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다. 그밖에도 셀린이 사망했다는 가짜뉴스가 적지않게 유포되고 있다.
[73]
상을 받은 테일러가 셀린 디옹을 무시하는 태도로 보였다고 논란이 생기기도 했는데 테일러 팬들은 선배 가수인 셀린 디옹의 질병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라고 반박하지만 영상을 보면 테일러가 셀린하고 눈도 안 마주치고 상을 받는 장면도 있어 예의에 어긋났다고 대중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74]
후에 그래미 어워드 관객석에서 찍힌 영상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소감 후 들어갈 때 인사하는 모습이 찍혔다. 또한 같이 찍은 사진도 공개되었다.
[75]
자신이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화장 하나 없이 나오는 셀린의 모습에 몇몇 대중들도 놀랐다.
[76]
셀린이 사랑의 찬가를 부른 것이 이번 올림픽이 처음은 아니었다. 프랑스 방송 중 드문드문 부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2015년
아메리카 뮤직 어워드 최초로 불어 공연 때도 사랑의 찬가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당시
2015년 11월 파리 테러로 인해 프랑스인들이 깊은 슬픔 때문에 위로곡으로 공연을 펼쳤다 한다. 하지만 공연 영상을 보면 목소리가 갈라지는 듯한 모습도 보였는데 이것은 셀린 본인이
강직인간증후군 투병 중임과 동시에 남편인 르네 앙젤릴도 암으로 투병 중 이었기에 심리적으로도 보컬적으로도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77]
두 사람의 노래 색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
[78]
타이타닉 사고와 관련해 셀린의 조상과도 연이 있었다 한다.
[79]
비록 My heart will go on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80]
더군다나 앞서 말한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의 주제곡 말고도 셀린은 이미 많은 영화 ost에 참여해 그 때 당시에도 영화 ost 대표 가수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오죽하면 ost 전문 가수라고 듣기까지 했다. 또한 영화 출연에도 욕심이 있었으나 정작 출연은 못하고 주구장창 노래만 불렀으니..
[81]
지미 팰런쇼에서도 똑같이 밝혔다.
[82]
하느님 맙소사,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던 게 다행이네.
[83]
셀렌 디옹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타이타닉 OST 부른 사람“ 이라고만 알려주면 “아, 그 가수!” 라고 할 정도 다.
[84]
타이타닉 작사작곡가들
[85]
타이타닉의 저작권 문제상의 이유라 하지만 뮤직비디오 공개 이전의 팬들이 만든 영상에는 영화와 셀린의 장면이 혼용돼서 연출된다.
[86]
캐럴 앨범
[87]
첫번째 베스트 앨범
[88]
역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프랑스 차트에서 44주간 1위를 했으며 프랑스 내에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보다 더 팔렸다. 후에 나온 그 Falling Into You마저 이 앨범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89]
첫번째
내한공연 성사
[90]
두번째
내한공연 성사
[91]
총 1000회이상 공연으로 역대 1위
[92]
당초 투어보다 훨씬 긴 기간이었지만 코로나 및 셀린의 지병으로 계속 지연되었다가 결국 2023년 6월 11일 전면 취소되었다.
[93]
with Peabo Bryson
[94]
with Clive Griffin
[95]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 12주 1위,
One Sweet Day와 동률.
[96]
with
Barbra Streisand
[97]
with
Bee Gees
[98]
with
R. Kelly
[99]
버블링 언더 #11
[100]
버블링 언더 #4
[101]
with
Josh Groban
[102]
버블링 언더 #24
[103]
버블링 언더 #17
[104]
벨기에 출신으로, 90년대 캐나다로 국적을 옮겼다. 전 세계 2천만장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캐나다를 대표하는 가수. 제 2의 셀린 디옹이라고도 불린다.
[105]
빌보드가 발표한.
[106]
이외에도 빌보드가 지어준 '파워발라드의 여왕'(Queen of Powerballad)가 있다.
[107]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던 것이 그녀가 가창력으로서 약할거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기는 하는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아래 서술할 음악적 능력에도 괜히 3대 디바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108]
0옥타브 시b ~ 4옥타브 도 ~ 5옥타브 솔
[109]
20대 시절에도 1옥타브 파♯(F♯3)까지 안정적으로 지지할 정도로 신인 및 성조가 소프라노 치고는 저음이 상당히 탄탄했다. 이후 나이가 들음과 동시에 연차가 지나면서 기량의 발전으로 1옥타브 미(E3)까지 일관적으로 지지가 가능해졌다.
[110]
음색의 셀린 디옹이라는 말답게 음색을 개성적으로 들리게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즉 Stylistic.
[111]
Divas Live 1998이 대표적인 예시다. 아레사 프랭클린과 3옥타브 파♯(F♯5)대결을 했을때도 안정적으로 지지했다.
F♯5
[112]
일명 셀린의 Money Note라고 불린다.
[113]
그래서 "
All By Myself"의 하이라이트 F5를 대부분 E♭5로 1키 반을 낮추어 했다. 물론 1997년
그래미 어워드 공연에서 E5로 1키 낮춰서 하이라이트를 소화한 적도 있다. 하지만 역시 그 공연에서도 잘 들어보면 하이라이트(" ~ Anymore ~") E5를 할 때 음이 갈라졌다.
All By Myself 1997 Grammy 이후로도 All By MySelf는 재생을 주로 사용하였지만 2015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라이브를 선보인적 있는데 이때는 조금 나아진 모습이다.
[114]
프린스 커버
[115]
이는 머라이어와 휘트니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116]
의외로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셈여림을 지키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면 체력이 빨리 달기 때문에 음정이 불안해지는 원인이 된다.
[117]
대표적 사례로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가 있다. 주로 클래식한 노래를 음반으로 내다보니 평론가들은 후퇴스럽고 발전이 없다 혹평했었다. 또한 이것 때문에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보다 노래를 못한다는 말도 있었으면서 두 디바들과 다르게 셀린의 선정 리스트는 극히 적은걸 볼 수 있다.
[118]
휘슬 레지스터.
[119]
물론 상대적으로 그랬다는 거지, 셀린 디옹도 탁월한 리듬감과 멜라스마는 가지고 있었으며 1990년대 이후에 수백, 수천만장씩은 팔던 인기가수였고 1996년도 falling into you 시절부터 99년도 세기말까지는 두 디바는 물론 웬만한 팝스타들 보다 인기가 많았다.혼자서 3000만장씩 팔아재끼며 소니뮤직 먹여살리던 시절
[120]
다만 휘트니의 성대가 망가진 것은 오로지 마약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마약이 가장 큰 원인이기는 하지만, 지나친 흡연과 과도한 라이브 공연도 성대결절에 걸리는 큰 원인이었다. 일단 흡연이 성대에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휘트니는 데뷔하고 10년 동안 400번이 넘는 라이브 공연(월드 투어)을 했고, 거의 모든 공연을 라이브로 소화했다. 이러니 성대가 망가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121]
특히 한국에선 내한공연 때마다 불성실한 태도와 기대에 못미치는 라이브를 선보이며 평가가 많이 하락했다.
[122]
다만 불멸의 캐롤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로 새로운 커리어를 갱신하면서 이쪽도 싱어송라이터로 재평가 받고 있으며 코로나 사태 이후 공연을 안하다 보니 가창력이 많이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23]
원래 성대근육도 결국 인간의 장기인지라, 소모품 같은 것 이다. 휘슬은 당연하고 가성, 벨팅 창법도 성대에 엄청난 무리를 주는 창법이다.
[124]
특히 머라이어는 술을 좋아해 성대결절이 악화되는 요인이 컸다.
[125]
그렇다고 셀린 디옹의 노래들이 쉽다는건 절대 아니다. 다른 두 디바들과 보통 다른 가수들 노래하고 비교하면 당연히 엄청나게 어렵다.
[126]
극한의 기교가 적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녀가 주로 라이브로 선보이지 않는 곡인 Then you look at me, water from the moon, Love doesn't ask why나 주로 알려진
All By Myself, To Love You More,
My Heart Will Go On은 두 디바의 극한 난이도의 곡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되는 수준의 곡들이다.
[127]
특히 1998년 VH1에서 방영됐던 divas live 무대
#에서, 머라이어 캐리를 포함해서 다른 가수들이 아레사 프랭클린의 독주에 상대도 못했는데, 셀린이 혼자 나서서 고음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다... 심지어 진심으로 붙은것도 아니고 방송(쇼)이니 만큼 재미를 주기 위하여 한 행동이었는데도 아레사 프랭클린과 붙을 정도니 3대 디바란 칭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무엇보다 이 divas live에서 셀린 혼자 좋지 않은 마이크를 사용했다 한다.
[128]
휘트니
The Bodyguard OST 130만장, 머라이어
Music Box 100만장.
[129]
심지어 전세계적으로 3000만장이나 넘긴
Falling into You나
Let's Talk about Love도 두 디바에 대단한 판매량에 비해 국내에선 적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Let's talk about love는 13만장 정도 팬매했지만, Falling Into You는 이마저도 판매하지 못했다. 이 저조한 판매량의 원인은 당시
소니의 판매전략 이라는데에 말이 많이 나오긴 한다.
[130]
이건 위에 언급된 두 디바가 이례적으로 인기(판매량)가 대단했던 경우인데. 21세기 이전만 해도 제대로 된 음반판매량 집계 시스템도 부족했고, 불법복제 음반판매가 기승을 부렸던... 시절이라 국내가수 음반들 마저도 탈세하려고 몇십만장이 기본적으로 누락됐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90년대 까지만 해도 소속사가 알아서 집계하고 신고하던 시절이었다.) 두 가수의 음반이 그걸 뛰어넘고 100만장을 돌파했던것...
[131]
특히
존 레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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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셀린 디옹이라고 불리는 인물.
[133]
셀린 디옹의 엄청난 팬으로, 과거 셀린이 씹었던 껌까지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또한 비유도 많이 되기도 한다. 두 사람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 듯 하다. 현재도 셀린과 친분이 깊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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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노래 할 때 2개의 폐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보컬리스트다. 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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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의 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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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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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Celine Dion is an international treasure And I have to say one of the most genuine people I've ever met.》저는 셀린 디옹이 국제적인 보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진실된 사람으로 말해야겠어요. 라는 말을 했다.
[138]
5집 앨범 Let's talk about love에 'The Reason'에 작사작곡을 맡고 1998년 Divas Live에서 같이 이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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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heard a lot of voices but hers is so special, a gorgeous instrument. She's got such a great heart and sensitivity that it makes me proud to sing with her.》많은 목소리를 들어봤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 특별하고 멋진 악기입니다. 그녀는 그녀와 함께 노래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훌륭한 마음과 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했다.
[140]
《She is the greatest singer on the planet.》그녀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다. 라는 말을 했다.
[141]
자신이 셀린과 8촌 관계라고 말한 적 있다.
[142]
원래 미국 가수들이라도 개인적으로 엄청 사이가 안좋은거 아니면 서로간의 업적이나 재능을 칭찬해주기도 한다. 원래 마이클 잭슨이나 셀린 디옹은
성자에 가까웠던 사람이기도 했고, 3대 디바 모두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143]
다만 마돈나 같은 경우에만 선후배 가릴 거 없이 언론 인터뷰에서 디스를 날려대기로 유명했지만 유일하게 셀린한테만 날리지 않았다. 되려 칭찬을 해주었다고. 여기에는 마돈나와 셀린이 8촌 관계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 외 셀린은 데뷔 초기에 마돈나의 Papa don't preach를 커버한 적 있다. 셀린 외 마돈나는 다른 디바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역시 마여사 그래도 이쪽도 나이를 먹고 21세기가 되자 디스보다는 칭찬을 해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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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머라이어의 전 남편이자 소속사 사장이었던 토미 모톨라도 칭찬하였다. 《She is one of the real people in the business. Cèline, without. question, is the greatest singer in the world.》그녀는 업계에 봉사하는 실제 인물중 하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셀린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다. 라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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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y and the b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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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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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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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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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리아나의 재산은 사업의 성공으로 크게 증가한 면이 더 크다. 물론 가수 활동으로도 엄청 벌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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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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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라라 파비앙도 비슷한데 라라 파비앙은 10개 국어로 노래 한다. 다만 셀린 같은 경우 노래만 할 수 있는 정도인지 구사만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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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예능이었지만 나이가 든 상태에서 후배 가수들 곡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완벽 커버했다. 특히 시아 부분에서는 매우 압도적인 인상을 남기면서 그녀의 예능감이 어떤지 보여주었다.
[153]
이때는 마돈나부터가 휘트니 휴스턴, 자넷 잭슨, 머라이어 캐리를 디스하던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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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셀린도 데뷔 초기 이긴 했지만 머라이어도 데뷔 초기 였다. 완벽하게 알 수 없었을 수도 있는데 셀린은 머라이어의 칭찬에 말을 아끼지 않았다.
[155]
인성이 좋기로 유명한 사례는 2008년 그녀의 두번째 내한공연에서도 보인 적 있는데
# 그녀의 내한공연이 끝나고 한 댄서를 무대 위로 모신다는 말과 함께 Addie Yungmee라는 댄서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셀린은 Addie Yungmee의 고향은 여기고 고향에 돌아온 것을 축하한다고 환영했다. Addie Yungmee 또한 무대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했으며 셀린에 이러한 대우는 해외에 있을때도 똑같이 유지됐다 하였다. 또한 셀린의 백업싱어 중 한명은 한국인 아이를 입양하기도 했다.
[156]
여기서 나오는 Addie Yungmee라는 분은 한국인 댄서로 2000년대 셀린 말고도
셰어하고
마돈나의 댄서기도 했다.
[157]
머라이어 캐리의 경우는
에미넴과 싱글 컷을 하면서 디스전을 하기도 했다. 다만 이쪽은 오랜 기간에 걸친 에미넴의 허위사실 유포로 분노가 극에 달한 머라이어가 'Charmbracelet' 등에서 타이르다가 '
Obsessed'로 디스를 시전한 것이다.
[158]
2005~ 2007년까지 브리트니의 암흑기였다.
[159]
성격이 좋은것도 있지만 다른 디바들과 다르게 기쎄지 않은 자존심도 이런 셀린의 성자같은 분위기에 한몫 하는거 같다.
[160]
여기서 주목할 건 The Power Of Love의 원곡자는 제니퍼 러쉬이다. 설렁 머라이어가 이 사실을 몰랐을지 언정 공식 석상에선 셀린 디옹의 이름을 처음 거론하기도 한것이며 덧붙여 노래도 마음에 든다고도 했으니 사이가 나쁘다고 볼수는 없다.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 때의 머라이어가 셀린의 노래를 부른 참가자한테 셀린의 노래를 선택한 게 마음에 든다 말하는 머라이어
[161]
셀린이 라스 베이거스에 자리를 비운걸 머라이어가 자리를 채웠다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162]
덧붙이자면 머라이어는 셀린이 평론가들한테 혹평을 받고 있을때도 자신은 셀린의 노래 스타일이 과격적이고 도전적이다 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163]
대표 커버 히트곡: If You Asked Me To, The Power Of Love, All By Myself
[164]
이런 대표 히트 커버곡은 휘트니도 못지 않게 가지고 있다. Saving All My Love For You, Greatest Love Of All, I Will Always Love You 등 거의 원곡인줄 알았던거에 보여
세계 3대 디바의 위용이 드러난다.
[165]
당시 그래미에서의 이 수상에 대한 논란이 유색인종들 사이에서 컸던 걸 감안하면, 전혀 연관 없는 영화 시사회에서 이런 큰 논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건 그저 '셀린 디옹이 그래미에 대해서 이러이러하게 거론했다' 따위의 기사로 화제를 모으려는 수작이다. 즉 그녀를 화제 제조기로만 보는 굉장히 무례한 짓으로, 다른 가수였으면 표정이 의아해지거나 썩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을 일이다.
[166]
대충 한국식으로 끕이 된다 정도의 말이다.
[167]
2007~2008년 경에 무이자송의 원곡으로 유명했던 노래.
[168]
디스전이긴 했지만 셀린은 그냥 무시했다.
[169]
프랑스 차트에서도 40주 이상의 기록을 가진 곡들이 다수이다.
[170]
빌보드 기준으로는 역대 여자가수 8위, 90년대 기준으론 3위.
[171]
실제로 캐나다에선 셀린 디옹 얘기만으로 캐나다인들과 친해 질 수 있다니 말 다 한 것이다.
[172]
이건 정치적으로도 예외는 아닌데 일례로 캐나다가 안보리 진출을 계속 실패할 때 셀린 디옹을 섭외해 홍보에 앞장선 적 있다.
셀린 디옹, 안보리. 다른것도 아니고 나라의 안보에도 앞장설 정도니 그 위엄이 보인다.
[173]
IMF
[174]
제 2의 금융위기
[175]
다만 셀린도 아쉬워 하는건 전성기 시절부터 배우로서의 활동은 적었던 것. 예능에서의 모습이 특화되긴 했었지만 셀린 본인도 배우 활동을 겸임하고 싶었다 했다. 물론 지금은 3대 디바 모두
멀티 엔터테이너이다.
[176]
머라이어도 데뷔 곡 빼고는 공동작곡으로 활동한게 많다.
[177]
1981년 프랑스어 싱글 데뷔곡.
[178]
이 둘의 관계를 오픈했을 때 데뷔과정부터 셀린을 서포트해준 역할을 잘 아는 팬들은 대부분 응원했으나 셀린의 가족들은 철저히 둘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르네의 장남인 파트리크와 셀린은 동갑(…)이며 별 의미는 없지만 파트리크가 셀린보다 2개월 먼저 태어났다.
[179]
아이러니 하게도 가족들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둘의 결혼생활이 망하리라고 예상했으나 결과적으론 매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물론 밑에서도 후술하겠지만 르네 사후, 이 둘의 관계가 전형적인
그루밍인지라 비판이 있긴 했다
[180]
셀린과의 열애설이 돌았으나 커밍아웃한 게이라는게 밝혀졌다.
# 셀린의 전속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181]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 바랍니다.
[182]
같은 노래로 올해의 노래상도 수상.
[183]
외에
마이클 부블레, Arcade Fire. 캐나다 아티스트들이 등재.
[184]
1집 Unison, 3집 The Colour Of My Love, 5집 Let's talk about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