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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8 11:30:01

윌프리드 로리에

파일:CBC.png 선정 위대한 캐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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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캐나다의 공영TV인 C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The Greatest Canadian" 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토미 더글라스 테리 폭스 피에르 트뤼도 프레더릭 벤팅 데이비드 스즈키
6위 7위 8위 9위 10위
레스터 피어슨 돈 체리 존 맥도널드 경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웨인 그레츠키
11위~5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루이스 리엘 장 바니에 스톰핀 톰 코너스 닐 영 피터 지조우스키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로미어 달레어르 스티븐 루이스 샤니아 트웨인 바비 오어 마이크 마이어스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무명용사 해롤드 A. 로저스 모리스 리샤르 아서 커리 넬리 맥크룽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노먼 베순 셀린 디옹 아이작 브록 짐 캐리 릭 핸슨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피에르 버튼 마이클 J. 폭스 고든 라이트풋 할 앤더슨 로라 세코드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어니 쿰스 테쿰세 마리오 르미외 브렛 하트 에이브릴 라빈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존 캔디 샌포드 플레밍 윌프리드 로리에 매리 맥스웰 장 크레티앵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레너드 코헨 존 디펜베이커 빌리 비숍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릭 머서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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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제2대 제1대2 제3대
존 맥도널드 경 알렉산더 매켄지 존 맥도널드 경 존 애벗
제4대 제5대 제6대 제7대
존 스패로 데이비드 톰프슨 매켄지 보얼 찰스 터퍼 윌프리드 로리에
제8대 제9대 제10대 제9대2
로버트 보든 아서 미언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아서 미언
제10대2 제11대 제10대3 제12대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리처드 베드퍼드 베넷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루이 생로랑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존 디펜베이커 레스터 B. 피어슨 피에르 트뤼도 조 클라크
제15대2 제17대 제18대 제19대
피에르 트뤼도 존 터너 브라이언 멀로니 킴 캠벨
제20대 제21대 제22대 제23대
장 크레티앵 폴 마틴 스티븐 하퍼 쥐스탱 트뤼도
※ 캐나다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역대 국왕 · 역대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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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제7대 총리
앙리 샤를 윌프리드 로리에 경
Rt Hon. Sir Henri Charles Wilfrid Laurier
파일:The_Honourable_Sir_Wilfrid_Laurier_Photo_A_(HS85-10-16871)_cropped.jpg
출생 1841년 11월 20일
영국령 캐나다 퀘벡주 생로랑티드
사망 1919년 2월 17일 (향년 77세)
캐나다 자치령 온타리오 오타와
국적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868-1921).svg 캐나다 자치령
학력 맥길 대학교
직업 정치가, 변호사
종교 가톨릭
정당
서명 파일:윌프리드 로리에 서명.svg

1. 개요2. 생애
2.1. 총리 이전의 삶2.2. 총리 재임기와 이후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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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다의 정치가. 1896년부터 1911년까지 캐나다의 제7대 총리직을 역임하였다. 15년여간 총리로 있으며 캐나다에서 연속 집권으로는 가장 오랜 총리 생활을 하였고, 당 대표로는 무려 31년여간 있으며 캐나다 주요 정당 정치인 중에선 가장 오랫동안 당대표를 지낸 인물로 남아있다.

2. 생애

2.1. 총리 이전의 삶

프랑스계 퀘벡 주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스코틀랜드 이민자가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의 학교에서 공부하며 영어를 배우고 영국계 문화에도 익숙해졌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영국계와 프랑스계 양쪽 교육을 두루 받은 인물인 셈.

몬트리올 맥길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자유당 소속으로 1871년 퀘벡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874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하원 진출 후 그는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았는지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통합에 노력하였다.

1885년에는 메티스인(프랑스계와 원주민의 혼혈인) 반란을 이끈 정치인 루이 리엘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요구하는 연설로 유명해졌다. 리엘은 그 해 사형당했지만, 로리에는 원칙을 지키고 높은 이상을 가진 인물로 명성을 굳혔다.

그 사이 자유당 정권 시절에는 정부 여러 부처 장관을 지냈고, 야당 시절인 1887년 자유당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1896년 선거에서 자유당은 큰 차이로 승리하여 그는 프랑스계로는 처음으로 캐나다의 총리가 되었다.

2.2. 총리 재임기와 이후

총리가 된 후 캐나다의 중요한 정치적 현안이던 정교분리 문제, 영국· 미국과의 관계 문제, 영국계 프랑스계의 대립 문제 등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며 국민적 통합을 이끌어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총리를 지낸 그는 '20세기는 캐나다의 세기'이라는 슬로건으로 경제 발전에 앞장섰다. 대륙횡단철도를 개통시켜 많은 이민을 유치하고 미국과의 교역을 늘렸다. 영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였으나, 미국과의 관계도 중시하며 캐나다의 독자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독립된 국가들로 이루어진 영연방이라는 개념은 이 때부터 형성된 것이다.

로리에의 경제 정책과 외교 정책은 집권 초중기에 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냈으나, 집권 후반기에 가선 반발도 불러일으켰다. 1911년 총선 이슈는 미국과의 자유무역 조약 문제였는데, 당시 영국계와 프랑스계가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 역설적이지만 통합을 이뤄냈다? 결국 총선에서 자유당은 패하고 로리에도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그 후로도 계속 하원의원직과 자유당 대표직을 지내다 1919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다.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화합을 위해 힘쓴 그는 오늘날 캐나다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3. 여담

파일:pavel-protasov-canada-04.jpg
문명 6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캐나다의 지도자로 나온다.

몬트리올 지하철에 로리에의 이름을 딴 로리에 역이 있다.

캐나다 5 달러 지폐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