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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2 00:00:02

페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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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Femicide: The Politics of Woman Killing(英)
페미사이드: 여성혐오 살해의 모든 것(韓)
발행일 1992년(원서)
2018년(역서)
저자 다이애나 러셀, 질 래드포드 (편저) 외 35명
(Diana E. H. Russell, Jill Radford Eds.)
전경훈 역
출판사 Twayne Publishers(원서)
책세상(역서)
ISBN 9791159313196

1. 개요2. 출간 배경
2.1. 70-80년대의 주요 사건들
2.1.1. 요크셔 리퍼
3. 목차 및 주요 내용
3.1. 챕터별 내용 정리3.2. 페미사이드란?
3.2.1. 그것은 오래되었다3.2.2. 가정에서 가장 위험하다3.2.3. 매체를 통해 정당화된다
3.3. 사건 이후: 합리적 인간과 도발 변론3.4. "한편 인도에서는..."
4. 남은 의문점5. 생각해 볼 점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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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성은 여성들이 자신을 비웃을까 두려워한다. 여성은 남성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한다."
(Men are afraid that women will laugh at them. Women are afraid that men will kill them.)
- 마거릿 애트우드(M.Atwood)
본서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범죄의 범문화적 심각성을 고발하고,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하며, 수사기관의 경각심을 촉구하는, 여성안전에 관련된 대표적인 페미니즘 도서이다. 본서는 2명의 편집자와 다수의 공저자들 및 여성운동 단체들[1]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핸드북 형태의 도서이나, 본서가 자체적으로 소개하듯이 논문집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서의 여러 챕터들 중에는 시인이 쓴 운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

2. 출간 배경

본서의 저술동기는 페미사이드 현상 그 자체를 분석의 동기로 삼은 선례가 전무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미국 영국, 인도의 페미사이드 사례들을 취합하고 정리하여, 페미사이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주류 사회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편집자들은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인도 여성들의 삶을 포함시켰고, 영미권 이외의 다른 이질적인 문화권에서도 페미사이드가 여전히 실존하는 사회적 현상이자 문화적 압력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특히 페미사이드를 "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 여성살해"(the misogynist killing of women by men)로 정의하였고, 이 문제가 가부장적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고 있으나 그것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페미사이드의 개념화 및 논의에 대해서는 하단의 별도 설명을 볼 것.

본서의 저자들은 스스로를 래디컬 페미니즘 계열로 주장하나, 그 논리나 인용되는 인물들을 고려하면 오히려 문화적 페미니즘의 성격도 강하게 띠고 있다. 편저자들도 이에 대해 결론 부분에서 "이 책에서 개략적으로 제시된 급진적 페미니즘은 1970년대 초기의 급진적 페미니즘과는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페미니즘은 남성의 성폭력을 가부장제의 성별 권력관계를 보장하기 위한 기반으로서 인식하고 있다"(p.683)고 선긋기를 하는 걸 볼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 중 상당수는 급진적 노선의 한계를 인식함과 동시에, 여성안전 및 여성 대상 폭력 이슈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런 연속적 관계를 고려할 경우, 본서에서 말하는 '래디컬함' 은 문화적 페미니즘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보인다. 일단 이 문서에서는 여성에게 적대적인 문화적 요소들과 이를 매개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으로 인하여, 본서를 문화적 페미니즘 노선으로 잠정적으로 판단하기로 한다.

본서의 저술연도는 1992년이고, '페미사이드' 용어가 가장 대중적 호응을 얻었던 시절은 1990년 전후인데, 실제로 미국에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는 일명 도덕적 패닉(moral panic)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사람들이 집단적 공황에 빠져 있었다. 온 사방에서 가정폭력, 아동 학대, 성폭력, 여아 강간, 대량학살(mass murder), 연쇄살인(serial killing), 악마 숭배 컬트, 마약중독, 스너프 필름 등 각종 치안 및 안전 이슈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던 것이다. 그 중 사탄숭배 집회나 여아 강간 등은 소문으로 그쳤지만, 70년대부터 잊을 만하면 끔찍한 살인 범죄 소식이 이미 언론을 장식하면서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래 단락 참고. 그리고 맥마틴 보육원 아동학대 논란은 일종의 종합선물세트였다(…).

아무튼 우리 사회 자체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믿게 되자, 보수주의자들은 세상이 타락하고 무너지고 있다며 외치는 TV 속 뉴라이트 계열의 '텔레반젤리스트' 들에게 매료되었고, 진보주의자들은 문화적 페미니즘의 문화검열론에 매료되었다. 이 시기에 저자 러셀이 "미국 여성 둘 중 하나는 강간 및 강간미수 피해자이다" 라고 주장했을 때, 그것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중적으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본서가 " 여성들 다 죽겠다 이놈들아!" 를 외치고 있을 때, 1980년대 미국의 시대적 분위기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편저자 소개를 하자면, 먼저 다이애나 러셀(D.E.H.Russell)은 남아공계 영국인이며, 現 사회학 명예교수(Prof. Emeritus) 신분이다. 미국 여성의 44%는 강간 및 강간미수 피해자라는, 서구 리버럴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주장의 출처가 바로 이 인물이다.[2] 이 인물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혁명 사회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남아공으로 건너가서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그곳에서 체포와 투옥을 반복하면서 온건한 항의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강경투쟁 노선으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한편으로는 1976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국제 여성대상 범죄 심의위원회(ITCW; International Tribunal on Crimes against Women)를 설립하였으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시몬 드 보부아르(S.de Beauvoir)가 개회사를 맡았다고 한다. 페미사이드라는 단어가 세상 빛을 보게 된 것도 바로 이때의 일. 학계에서의 명성이 상당히 높은지, 근친상간 문제를 조명한 《The Secret Trauma》(1986)를 펴낸 공헌으로 사회학계로부터 C.Wright Mills 상을 수상했으며, 인문학계에서도 공헌을 인정받아 2001년에는 미국 인본주의 협회로부터 Humanist Heroine 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The Politics of Rape》, 《Rape in Marriage》, 《Sexual Exploitation》, 《Dangerous Relationships》, 《Against Pornography》, 《Lives of Courage》, 《Crimes Against Women》 등이 있다.

다음으로 다른 편저자 질 래드퍼드(J.Radford)는 영국의 페미니스트로, 폭력 피해여성들에 대한 법률 지원 활동을 하고 있던 현장 운동가이다. 《Women, Policing, and Male Violence》 의 공동 편집위원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위의 러셀이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다면 래드퍼드는 영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양쪽의 교류가 힘들어서 양쪽이 저마다 서론과 결론을 하나씩 쓴 것을 볼 수 있다.

2.1. 70-80년대의 주요 사건들

본서가 저술되기 이전에, 비단 페미니스트 이외에도 온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극악무도한 여성 대상 폭력 범죄자들이 이상하리만치 빈번하게 나타나서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저렇게 미친 놈들이 많아지니,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정도의 한탄을 하면서 혀를 찼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곧바로 모든 사건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가해자가 남성이고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것. 이들은 남성이 여성을 죽이는 행위 자체가 가부장제의 존속에 대한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영미권에서 연쇄살인(serial killing)이라는 개념이 60~70년대 무렵부터 떠오르게 되어 80년대에는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던 한편으로, 비슷한 시기에 점점 더 많은 '부엌에서의 아내 살해', ' 지하실에서의 아내 고문' 과 같은 사건들이 연일 신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전반적 추세로 인해, 여성들은 '풀숲 속의 살인마' 로부터 몸조심을 해야 하니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되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지켜 줄 소중한 보금자리인 가정 역시 더는 안전할 수 없겠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수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과 노상 습격 생존자들이 법정에서 온갖 2차 가해와 모진 수모를 겪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집 밖에서도 위험하고, 집 안에서도 위험한데, 이 위험을 제대로 하소연할 법적인 조치도 충분치 못한 것이다. 이 시기에 문화적 페미니즘이 페미니즘의 주류로 급부상했던 것은 어찌보면 우연이 아니었다.

2.1.1. 요크셔 리퍼

The Yorkshire Ripper

위의 사례들도 유명하긴 하지만, 정말 70년대 영국을 덜덜 떨게 만들었던 인물이라면 역시나 요크셔 리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요크셔 리퍼는 영국의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로, 1973년부터 13명의 여성들을 차례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19세기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의 이름을 따서 요크셔 리퍼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물론 얼마 못 가서 잭 더 리퍼와의 차이점이 나타났다) 그의 실제 본명은 피터 서트클리프(P.W.Sutcliffe)였다. 그는 경찰이 '영국 최대 규모의 범죄수사팀' 을 꾸려서 5년 반 동안 총력대응을 해도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잡히지 않다가, 아주 우연히 가짜 자동차번호판 단속을 나선 경찰관에게 1981년에 붙잡히게 되었다. 체포 이후 "노련하고 훌륭했던 체포" 였다는 경찰측의 자화자찬은 덤(…).

그의 초기 범행은 실제 잭 더 리퍼처럼 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향이 강했다.[3] 그는 자신의 피해자들의 뒤통수를 망치로 때려 죽였으며, 드라이버나 칼을 활용하여 시신의 가슴과 복부를 잔인하게 훼손했고, 그 시신의 옷을 걷어올려서 난자된 몸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해 두었다. 모든 피해자들이 살해당하지는 않았고 간혹 운 좋게 생존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들이 경찰에게 피해자로 인정받기는 꽤 어려웠다고 한다. 초기에 그는 주로 리즈 시에서 활동했으며 그 일대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그는 활동의 범위를 리즈 시 외부로 넓혀서, 사실상 영국 전역의 여성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게다가 성노동자만 골라 죽였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좀 더 대담해졌는지 평범한 여성들까지도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점이 경찰을 혼란에 빠뜨렸는데, 처음 일반인이 살해당하자 "가해자가 뭔가 착각이나 오해를 일으켜서" 그랬을 거라고 설명했다. 이는 ' 정숙하지 못한 여성을 엄히 처벌하는 남성' 이라는 낭만화된 가해자상에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 그러다가 둘째 일반인 여성이 살해당하자, 비로소 경찰은 "완벽히 존중 받을 만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고 발표했고, 영국 전역이 그때가 되어서야 발칵 뒤집혔다. 수사당국에서는 피해예방대책으로 "밤 늦게 외출하지 말고, 옷차림을 정숙하게 하라" 는 소책자를 배포하여 여성단체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본서에서도 요크셔 리퍼 사건을 영국 사회가 소위 ' 성녀-창녀 이분법' 을 범죄 대응에까지 적용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체포된 이후 가해자 서트클리프는 망상적 조현병에 의한 우발적 살인이라는 쪽으로 플리바게닝이 이루어졌다. 가해자의 이야기는 영국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마치 신화적인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졌으며, 그 내용은 외로운 '미친 살인자' 가 등장해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회에 맞서 홀로 전쟁을 벌인다"(p.476)는 것이었다. 즉, 기사(경찰)와 용(범죄자)의 싸움에서 여성의 위치는 볼모로 잡힌 히로인에 불과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붙잡힌 서트클리프는 그저 평범한 영국 젊은 남성들처럼 성차별적 문화에 도취되어 스트립 클럽 음란물, 홍등가, 여성 유혹, 성차별 발언, 음담패설 등을 즐겨 왔음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주위의 남성들은 설령 서트클리프가 "여자들은 다 죽여 버려야 해" 라고 중얼거리는데도 그것을 "남자가 그런 말도 할 수 있지 뭘" 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그가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본서는 서트클리프가 "규범에서 일탈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규범이 과장된 사례다"(p.482)라고 정리했다. 영국 사회가 남성에게 남자다울 것을 요구하는 것을 정말 전적으로 동일하게 실행한 사례가 서트클리프였다는 것.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의 징후를 드러내는 몇몇 위험한 성향들을 드러낼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정상' 으로 여겨서 그가 요크셔 리퍼일 것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은, 특정 범죄와 전체 사회의 관계를 암시한다. 만일, 해당 사건의 가해자가 잡히지 않아서 한동안 수사에 혼선을 겪다가 가까스로 잡혔고, 주변 남성들이 "그가 평소 여자에 대해 욕을 많이 하고 죽여버리겠다고도 했는데, 흔한 남자들 말이겠거니 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고 증언했다고 생각해 보자.[4] 이런 시나리오 상에서라면, 이 살인사건은 특정 개인의 정신병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성 역할이 결부되는 문제로 비화된다. 이 경우 남성이 여성을 "죽이고 싶다" 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정상 범주 내에 포함되는 남자다움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즉, ① 만약 우리 사회가 "여자를 죽여라, 여자는 죽여도 괜찮다" 고 말하는 사회라면, 여자를 정말로 죽인 범죄자의 범죄 징후가 제때 탐지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② 만약 우리 사회가 "여자를 죽이는 건 어떤 경우에도 잘못됐다" 고 말하는 사회라면, 그런 욕설과 살해협박 등을 접했을 때 주위 남성들이 화들짝 놀라서 뜯어말리거나 수사기관 및 복지센터에 연락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나열된 유명 살인마들과 폭력 범죄자들의 사건들을 매해 접하면서, 여성들은 극심한 불안과 안전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본서의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는 메시지를 접하는 1992년 당시의 독자들 역시, 거의 직감적으로 위의 사건들을 떠올리면서 본서를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목차 및 주요 내용


본서에서 수집된 전체 자료들의 양이 너무 많아서, 편저자들은 본서에는 좀 더 학술적이라고 여겨지는 자료들을 모으고, 좀 더 현장에 가까운 자료들은 별도로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Fatal Attractions》 에 모았다고 한다.

챕터마다 색깔이 굉장히 달라져서, 일부 챕터는 시인 팻 파커의 시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윌슨과 데일리, 그리고 캠벨의 학술논문을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캠벨이나 스타우트의 챕터는 구성 자체가 이미 IMRaD 포맷의 범죄학적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1. 챕터별 내용 정리

각 챕터의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하단에 간략히 정리할 것이다. 먼저 페미사이드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서의 설명과 이후 학계의 논의를 설명하겠다. 다음으로 페미사이드 사건이 법정에서 다루어질 때 여성들에게 불공정할 수 있는 요인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문화 간의 대비를 위하여 인도에서 여성들의 안전이 어떻게 위협 받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게 되는 의문점과, 본서가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가질 수 있는 의의를 짧게 짚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네바 무장폭력 및 개발 선언(Geneva Declaration on Armed Forces and Development)에서 조사한 국제 통계를 소개할 것이다.

3.2. 페미사이드란?

"페미사이드 문화는 남성이 숭배되는 문화다. 이러한 숭배는 폭정을 통해 얻어진다. 노골적으로든 교묘하게든, 멍든 우리의 정신, 얻어맞고 죽은 우리의 몸 위에 군림하여 우리를 때리는 사람, 강간하는 사람, 죽이는 사람을 지지하도록 흡수하고 동화시키는 폭정을 통해서다."
- p.59

많은 남성들이 '페미사이드' 라는 단어를 접하면 강간범으로 모자라서 이젠 살인자 취급인 건가 싶은 반감을 느끼곤 하지만, 실상 이 단어는 여성과 살인이 잘 연결되지 않던 종래의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나타났다.[5] 다시 말해, 기존에는 남성들이건 여성들이건 페미니스트건 간에, "살인은 남자들이 겪는 거고, 여자들은 강간을 겪는 거지" 라는 인식이 강했다. 리즈 켈리(L.Kelly)와 같은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던 것 역시, 젠더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바로 강간이었지, 살인이 아니었다. 남성이 여성을 대상화한다면, 여성을 죽이는 행위는 소중한 오나홀을 부수는 멍청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성범죄 피해자들을 '생존자' 라고 불러주는 것 자체가, 성범죄의 가장 극단적인 결과는 살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강간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만 해도 남성이 성차별적인 동기로 여성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은 의외로 생소했다.

물론 많은 인구학자들과 범죄학자들, 심리학자들과 통계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실제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고 하면 그 피해자는 여성이기보다는 남성인 경향이 더 많다. 따라서, 본서가 남성의 사망자 중 살해 피해자 비율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의미로 페미사이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이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단지, 저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남성이 여성보다 살해당하는 빈도가 더 높긴 하지만 남성이 단지 남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p.37).[6] 페미사이드라는 개념을 통해서 여성이 겪는 살해 사건들에 이름붙이기(naming)를 하는 것은, 실제로 어떤 여성들은 성차별적 동기로 인해 (안 죽어도 될 상황에서도)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가시성 높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가시성 높은 다른 성범죄와는 달리, 페미사이드는 피해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피해경험을 증언할 사람이 없어지게 되며, 결과적으로 가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찍이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강조해 왔다. 개인적으로는 강간이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강간은 가부장제를 지속시키고 여성들의 저항 의지를 꺾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본서의 표현에 따르면, "강간은 성 정치학의 직접적 표현이며 남성중심적 성 규범에 순응하는 행위이고, 젠더를 현상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테러리즘의 한 형태다"(p.44). 그런데, 본서는 페미사이드 역시 사회적 의미에서라면 강간과 정확히 동일함을 강조한다. 물론 실제로 죽이는 행위 자체도 다른 '살아남은' 여성들이 몸을 사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보다 일반적으로는 살해 협박을 통해서 이미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살인은 강간 가정폭력으로부터 의외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저자의 기존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를 강간한 남편들 중 22%는 "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아?" 라는 협박을 일삼았다. 그렇다면 페미사이드는 단순히 여성을 죽이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설령 여성을 죽이더라도 괜찮으며 동정받을 수 있고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매우 특수한 문화적 메시지를 담은 협박의 효과 또한 갖는다. 제 2의, 제 3의 인간 말종이 양산되는 것이다.

나무위키에 한정하여 본서를 정리하자면, 본서에서 지적하는 (서구권의) 페미사이드는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로는 여성에 대한 경멸과 살해의 쾌락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연쇄살인마들의 묻지마 살인이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위에서 소개한 '요크셔 리퍼' 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여성들, 특히 성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연속적인 범죄의 희생양으로서 여성들을 손쉽게 선택한다. 피해 여성들은 이들과 아무런 안면이 없으며, 말 그대로 '풀숲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덮쳐드는' 유형의 사고를 겪는다. 실제로 살인사건 전문가인 제인 카푸티(J.Caputi)에 따르면, 연쇄살인 피해자들의 80% 이상은 낯선 여성이라고. 하지만 이런 연쇄살인 페미사이드는 하단에 소개할 다른 유형에 비해서는 그 발생 비율이 더 낮은 편이다.

둘째로는 여성에 대한 소유의식과 권리의식에 의해 추동되는 가까운 남성로부터의 폭행을 들 수 있다. 앞에서의 연쇄살인마들과는 달리, 이들은 자신의 가정 내에서 자신의 아내를 폭행한다. 70-80년대에 세간을 놀라게 했던 몇몇 가해자들은 아내를 주방이나 지하실 등지에서 (때로는 자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빈번히 폭행했고, 일부는 심지어 고문하거나 살해하기까지 했다. 오늘날 흔히 데이트 폭력이라고 불리는 친밀한 파트너 폭력(이하 IPV; intimate partner violence) 역시 피해 여성과 장기간 깊게 알고 지낸 관계의 남성이 저지르는 살인사건을 포함한다. 본서에서 초점을 맞추는 2가지 유형의 페미사이드를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집 밖에서는 연쇄살인마를 조심하고, 집 안에서는 남편을 조심하라" 로 정리될 수 있다.

본서에서는 페미사이드의 원인이 남성들의 권리의식(entitlement)에 있다고 본다. 편저자에 따르면 "많은 남성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여성들로부터 취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p.51). 즉 여성들이 그들의 요구를 좌절시키면, 그 결과로 난폭한 폭력성을 보이게 된다는 것. 본서가 구체적으로 한정하지는 않았으나, 이 동기의식은 특히나 IPV에서의 페미사이드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으리라 보인다. 남편이 아내를, 혹은 남친이 여친을 폭행한다는 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 접촉이나 신체적 친밀감을 요구할 때 여성은 그것에 응당 부응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문화적 전제가 깔려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일반화하면, 남성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둘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7] 그래서 아내가 이혼을 선언할 때, 여친이 결별을 선언할 때, 애인이 외도 및 불륜을 저질렀을 때, " 내가 널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 버리겠어! 널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겠어!" 라는 식으로 페미사이드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저런 상황에서 분노가 치미는 것은 당연히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본서가 주장하는 것은, 그렇다고 식칼 잡아들고 상대방을 냅다 찌르는 걸 괜찮다고 말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IPV 유형의 페미사이드는 흔히 말하는 '안전 이별' 과도 의미가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3.2.1. 그것은 오래되었다

위에서 페미사이드를 연쇄살인과 가정폭력으로 한정하긴 했지만, 본서의 1부에서는 페미사이드가 흔한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된 것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영국의 역사에서 페미사이드는 수백 년 정도는 족히 그 역사를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공저자 매리엔 헤스터와 프랜시스 코브의 글 두 편을 소개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16-17세기 영국의 마녀사냥 풍조,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 가정폭력이 이미 현대적인 페미사이드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헤스터는 소위 마녀광풍(witch-craze)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주제로 삼는다. 이 당시에 피의자의 90%는 여성이었고, 소수의 남성은 여성과 관련된 문제로 고발당했다. 보통은 "나이 들고, 하위 계층이고, 가난하고, 미혼이거나 과부인 여성들"(p.68)이 타깃이 되지만, 이는 더 손쉽게 고발할 만한 여성들이 그들이기 때문이었다고. 이 이전에도 마녀 비난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지만, 16세기 들어 이를 공식적으로 고발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나타났다는 점, 그리고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등 여성 군주들이 출현하면서 남성들이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맥락 속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 때에는 법정에 회부된 마녀술(witchcraft) 사건이 엄청나게 폭증했으나, 바로 다음 왕인 제임스 1세의 재위 기간에는 사건 회부 건수가 거짓말처럼 기저 수준까지 급감했다는 점이다. 이것을 페미니즘을 동원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흥미롭게도, 여성이 젠더적 일탈이나 섹슈얼리티적 탈선에 더 취약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아직 정교분리가 확고하지 못했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젠더 규범에 불복종하는 것은 곧 종교적 교리에 불복종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이단죄가 적용되었으며, 모든 여성들은 아담을 타락시킨 이브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브가 그러했듯이, 모든 여성들은 언제든 남성을 타락시킬 준비가 되어 있고, 특히나 "성적으로 만족할 줄 모르며, 그들의 몸과 결합한 남자들을 파멸로 이끈다고 여겨졌다"(p.69).[8] 그리고 이에 덧붙여, 조지프 스웨트넘(J.Swetnam) 등은 여성이 이처럼 성욕에 취약하기 때문에, 만일 악마가 나타나서 남성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유혹한다면 더 쉽게 넘어갈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드세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자다운 여성들은, 그런 면모를 얻기 위해 먼저 악마와 동침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런 생각이 폭넓게 퍼지자, 나중에는 사생아 출생과 같은 지역사회의 소소한 스캔들마저도 "악마의 자식을 낳았다" 는 괴소문이 덧씌워져서, 강간 피해자가 도리어 이단으로 몰려 죽는 일도 벌어졌다고.

다음으로 빅토리아 시대로 넘어가 보자. 공저자 프랜시스 코브는 이미 1878년에 이혼법을 지지하기 위하여 영국에서 남편이 아내를 얼마나 학대하는지 고발하는 글을 썼다. 그 노력이 성과가 있었는지, 당해 시행된 이혼법은 가정폭력 피해 아내가 남편과 분리될 수 있도록 별거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했다. 문제는 그 이전까지의 영국의 관습법 자체가 남편의 아내 폭행을 아주 정상적이고 장려할 만한 것으로 취급했다는 점이었다. 아내의 행동의 책임은 남편에게 지워졌고, 남편이야말로 아내를 교정하고 훈육할 권리가 있다고 간주했다. 당장 오늘날까지 영어권에 정착된 관용어 'rule of thumb' 자체가, 이 시절 남편들이 아내를 매질할 때 엄지손가락 굵기를 회초리 굵기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체벌로 미화된 폭력은 가히 고문에 가까울 정도의 광기마저도 정당화하곤 했다. 그리고 이혼법에 따라 가정폭력 혐의를 받게 된 남편들은 아주 당당하게 "내 것을 내 마음대로 못 한단 말이냐" 면서 분개했다.

이 시절 벌어졌던 사건들을 저자가 일부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는데,[9] 이들은 저술 3~4개월 전에 수집된 범죄의 사례들이다. 그 극악함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고문에 가까울 정도의 광기' 라는 표현이 전혀 부족하지 않을 정도. 저자는 구타(beating)라는 용어 자체가 이 사건들의 본질을 제대로 묘사하기에는 너무 일상적이고 밋밋하다고 주장했으며, 흔히 생각하는 '구타' 장면은 남편이 본격적인 고문을 시작하기 이전의 준비운동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부 예를 들자면... 칼로 찌르거나 부지깽이로 난타하는 것은 많이 '젠틀맨' 다운 행동이었고, 어떤 이는 아내에게 황산을 끼얹었고, 어떤 이는 아내를 아예 참수했으며(…), 어떤 이는 아내의 몸에 불 붙은 파라핀 램프를 냅다 던지기도 했고, 가장 심한 인간백정의 경우에는 자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내를 산 채로 주방 화덕에 밀어넣고 고기 굽듯이 빙글빙글 돌린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형용하기도 힘들 만큼 끔찍한 사건들이 남편의 아내 훈육이라는 이름 하에 전부 허용되었다. 이 아내들의 죄라면 빅토리아 시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뿐.

저자가 정리한 법정 기록들과 문헌들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학대한 동기에 대해서도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학대의 동기는 대부분 찌질하기 짝이 없는 것뿐이었다. 아내가 생활비를 달라고 구걸해서, 아내가 남편이 술 마실 돈을 주지 않아서, 남편이 귀가했는데 아내가 먼저 잠들어 있어서, 아내가 술에 취해 있어서, 남편들은 자식들이 울고불고 매달리는 앞에서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어 걷어차고 매질하고 칼로 찔러댔다. 심지어 이들은 아주 적극적이고 고의적으로 살해의사를 내비쳐서, " 하늘 같은 남편이 왔는데 퍼질러 자고 있는 년은 죽여야 해!" 라고 진술하는가 하면, 아내가 생존한 일부 사례에서는 죽이지 못해 아쉽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불행히도, 법정 역시 이들의 편인 것으로 보였다. "아내의 죽음이 남편의 폭행의 직접적 결과였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 는 판결은 심지어 남편이 아내의 몸을 토막쳐 죽인 사건에서도 내려졌다고...

여러 페미니즘 관련 문헌들에서도 언급되지만, 빅토리아 시대는 그야말로 성차별과 위선이 극치를 달리던 시대였다. 그나마 기사도가 남성의 미덕으로 인정되면서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이 시절에 정말로 '기사' 같은 신사들에게 우대받을 수 있었던 여성들은 기껏해야 상위 1% 미만의 극소수 귀부인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여성들이 짙은 화장과 넓디넓은 새장 치마를 두르고서 손등으로 신사들의 키스를 받는 동안, 수많은 평범한 여성들은 결혼 전에는 존중 받을 만한 순결한 처녀로서 살기 위해, 결혼 후에는 남편의 가장 충실한 하녀가 되기 위해 비참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아갔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당대의 위대한 사상가였던 존 스튜어트 밀(J.S.Mill)이 제기했던 것이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가 느낀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글로 남긴 것이 바로 저 유명한 《 여성의 종속》 이었고, 여기서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리버럴 페미니즘이 출발했던 것이다.

3.2.2. 가정에서 가장 위험하다

"1986년 영국 내무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중략) ...당신을 죽일 가능성이 가장 많은 사람은 밤에 걸어잠근 문 바깥에 있는 낯선 남자가 아니라 그 문 안에 있는 남자다."
- p.512

위에서 언급했던 끔찍한 가정폭력의 유산은 아직 서구사회 내에 잔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은 여성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지만, 역설적으로 남성과 함께 살 때는 치명적인 성폭력으로부터 가장 덜 안전한 장소가 된다"(p.157). 위험에 처한 여성들이 가장 믿을 수 있고 가장 보호받을 수 있고 가장 안전을 느껴야 할 대상은 자기 남편일 텐데, 정작 남편들이 실제로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이들로부터 벗어나 탈출하더라도, 어떤 남성들은 끝내 쫓아와서 아내를 살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심지어 인도 원주민, 우간다 원예농업 사회, 콩고 원주민, 기타 사실상 모든 인류 문명과 문화권에서 나타난다고.

보통 언론에 의해서 흔히 묘사되는 '치정 살해' 는 대부분 질투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여성의 질투는 대개 제약되어야 하고 조절되어야 하는 나쁜 마음이라고 여겨지지만, 남성의 질투는 그렇지 않다. 고대 그리스에서 멜라네시아의 부족 사회, 그리고 현대 미국의 다양한 지역들과 주에 이르기까지, 남편들은 자신의 집에서 외간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폭력을 행사하여 그 아내를 죽이는 것이 정당하다고 인정 받아 왔다. 인간은 자제력을 갖춘 합리적 존재라는 법학적 인간관은, 유독 간통 현장에서는 그 자제력이 당연히 깨질 것이라고 전제한다. 남성이 질투할 때에는 사람 여럿 잡는 것쯤은 충분히 있을 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질투 가설' 은 여러 이유로 부적절할 수 있는 명명이다. 공저자 윌슨과 데일리는 그들의 기고에서, 질투라고 막연히 알려진 살해 동기는 사실 아내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배타적이고 강제적인 접근 및 소유욕이라고 하였다. 전통적으로 수사당국은 제3자의 존재가 특정될 때에만 살해 동기가 질투라고 이해하며, 이로 인해 단순히 여성 쪽에서 관계를 끝내려는 것을 참지 못하여 벌어진 살해 사건은 질투로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3자에 대한 질투가 주요 동기라면, 단순히 " 우리 그만 헤어져" 라고 했을 때 살인을 저지르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난관에 봉착한 수사 당국은 결과적으로 정신병 혹은 우발적 분노로 사태를 설명하려고 애쓰게 된다.

아내의 섹슈얼리티를 독점하려는 동기가 아내를 살해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에 대해, 버지니아 대학교 정신과에서는 일명 배우자 살인 증후군(spousal homicide syndrome)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이들 연구실에 따르면, ① 가해자의 과거 불륜 전력 + ② 여성의 즉각적인 결별 선언 + ③ 여성의 불륜 후 당당한 태도 + ④ 여성을 사랑한다는 남성의 자기인식이 합쳐져서 결과적으로 아내를 살해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사회학자 피터 침보스(P.Chimbos)의 결론과도 유사한 것이다. 아내 살해의 동기의 대부분은 불륜과 같은 섹슈얼리티 문제였고, 가해자 대다수가 저소득층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문제는 살인의 동기로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직장 문제나 자녀 문제 역시 아내를 살해하는 동기가 되지 못한다고.

아내가 남편의 구박과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접하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왜 굳이 함께 살아? 그냥 이혼해! 도망쳐!" 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적잖은 아내들이 별거를 선언하거나, 몰래 빠져나와서 친정이나 친구 집으로 도망쳐 숨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아내들도 "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널 못 가져!" 라고 외치는 남편으로부터의 살해의 위험을 피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대중매체의 이미지와는 다소 다른 것이다. 흔히 버림 받은 아내가 벌이는 복수극이 통속적인 소재로 쓰이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별거 중인 아내를 전 남편이 식칼 들고 쫓아가서 살해하는 사건이 훨씬 더 흔하다. 윌슨과 데일리의 통계에 따르면, 별거 중인 아내가 전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사례와, 별거 중인 남편이 전 아내에게 살해당하는 사례의 비율이 10.6 : 1 수준이라고 한다. 식칼 들고 쫓아오는 아내는 창작물 바깥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FBI 수사기록을 활용한 캠벨의 논문에 따르면, 아내에게 살해당한 남편의 79%는 과거에 아내를 학대한 전력이 있었다. "아내들도 남편을 똑같이 죽일 수 있는데 왜 자꾸 남자들만 잘못했다고 함?" 이라는 불만이 틀린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편들이 식칼 들고 뛰어다닌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윌슨과 데일리는 IPV 페미사이드의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악화요인들 몇 가지를 말미에서 언급하고 있다. ① 아내의 나이가 어릴수록 위험이 커진다. 특히 아내가 20대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피해 발생 비율이 급격하게 감소하는데, 이는 젊은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 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극심한 위협요소이기도 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② 부부 간 나이의 차이, 즉 남편과 아내의 나이의 차이가 클수록 위험이 커진다. ③ 혼인 기간이 짧은 신혼 부부일수록 위험이 커진다. ④ 혼인 신고가 되지 않은 '동거인' 일 때 위험이 커진다. ⑤ 특히, 미국인일 경우 위험이 커진다. 미국의 IPV 페미사이드의 위험성은 유럽에 비해서 5~10배 더 높으며, 미국의 가장 폭력적인 몇몇 도시들의 경우에는 유럽보다 15배 더 높다고 한다.

3.2.3. 매체를 통해 정당화된다

80년대는 굳이 문화적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기독교 우파에서도 세상이 타락해 간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을 만큼 가학적이고 잔인한 농담들이 심지어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가에서조차 널리 퍼져 있었다. 본서에서 드는 예를 소개하자면, 한 대학교 남자화장실에는 " 층간소음에 암캐들(bitches)이 항의한다면, 납땜 인두를 달구어서 보지를 지져 버려라" 라는 낙서가 발견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시절 사람들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그렇게 우악스럽고 잔인할 수 있었을까? 본서에서는 그 이유로서 당시 크게 확대되던 음란물 시장, 특히 고문 포르노 내지 고어노그래피(gore-nography)를 거론하고 있다. 즉, 여성들은 마음껏 상처입히고 강간하고 죽여도 상관없으며, 그들도 내심 그걸 원한다는 식의 메시지 탓이라는 것이다.

FBI에 따르면, 이 시기에 테드 번디(T.Bundy)나 에드먼드 켐퍼(E.Kemper) 등의 수많은 성범죄 살인자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의 1순위 관심사로 음란물을 꼽았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이 시기에 유행한 슬래셔 영화나 스플래터(splatter), 스릴러, 히어로물 등에서도 여성이 고문당하는 장면 및 처형당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이런 씬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아서, 심지어 코미디 장르인 〈Harlem Nights〉 에서도 에디 머피(E.Murphy)가 재스민 가이(J.Guy)와 하룻밤 자고 나서 곧바로 그녀를 죽이는 장면이 등장하며, 믹 재거(M.Jagger)나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등도 강간과 살인을 노래한 적이 있었다고.

본서에 따르면, 미디어는 위의 가정폭력 및 아내 살해 범죄에 대해서도 공정하지 못한 보도를 일삼곤 한다. 4부의 공저자 샌드라 맥닐은 언론 모니터링을 통해서 IPV 페미사이드를 "비극으로 끝난 집안 다툼" 처럼 범죄의 성격을 희석시키고, 피해자가 갈라서기를 원했다는 사실은 감추고 가해자가 함께하기를 원했던 욕망만을 반영하여 "끝내 함께 죽은 부부" 같은 식으로 묘사하곤 했다고 고발한다.[10] 물론 고인을 위로하기 위한 방편이겠으나, 결과적으로는 고인을 모욕하게 되는 셈. 이처럼 가해자의 시점에서 가해자 중심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언론은 피해자의 행동이나 동기를 놓치고, 설명할 수 없게 되고, 이해할 수 없게 되는 문제를 겪게 된다. 그래서 IPV 페미사이드 사건 뒤에는 피해자의 친구나 친정 등을 중심으로 언론이 말하지 않았던 소문만이 무성하게 남게 될 뿐이라고.

특히 미디어는 가해자 남성을 살인자로서 다루는 게 아니라 마치 비극적 영웅인 것처럼 묘사한다. 본서에 따르면, 미디어가 가해자 남성을 비난하지 않는 이유는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한 남자를 대단히 탁월한 비극의 영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p.341). 이런 경향은 가해자 남성이 아내를 죽인 뒤 자신도 따라 죽는 경우에 특히 두드러진다. 스탕달(Stendhal)은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남편에 대해서 오셀로에 빗대어 설명하는데, 실제로 자살이 포함되는 여성 살해 사건은 남성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비극 서사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은 가해자의 질투다. 가해자 남성이 '아내에게 불륜 상대가 있었을 것' 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서 이중 비극으로 짜여진다. 이 사건은 이제 신문에 "한 남성이 질투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를 죽여야 했다", "그는 질투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 서사를 따라 보도되는 것이다.

위에서도 소개했던 인물인 제인 카푸티는, 이처럼 폭력에 사람들이 무감각해지고 도리어 폭력을 칭송하게 되는 경향은 섹슈얼리티의 가치의 저하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서구 가부장적 사회에서 폭력과 섹스는 서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폭력은 섹스를 정의하고 섹스는 폭력을 정의함으로써, 폭력적 행위를 통해 성적인 자극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11] 고어노그래피, 즉 성적인 내용 없이 폭력적 영상만을 활용하여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장르가 확산되면서,[12] 남성들은 이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 자체가 (특히 성적으로) 매력적인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이로써 남성들에게는 위험한 선택지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여성의 옷을 벗긴 뒤에 드러난 젖가슴을 애무하는 것 외에도, 그 드러난 젖가슴에다 총을 쏘는 것 역시 선택지의 하나로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70-80년대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폭력에 대한 체계적 둔감화' 의 정점은 소위 " 스너프 필름 논란" 에 있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75년 뉴욕 경찰청이 남미의 지하 음란물 영화 몇 편에서 "실제 살인 장면을 발견했다" 고 발표했던 것과 맞물린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살인이 성적 쾌감과 엮일 수 있겠다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정말로 이를 소재로 한 〈Snuff〉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이 발칵 뒤집혔고, 미국 여러 지역들에서 상영 금지 조치가 내려지거나 극심한 항의로 인하여 조기 종영되기도 했다. 와중에 뉴욕에서는 한 극장에서 100~500달러 정도를 받고 비밀리에 상영하는 바람에 페미니스트들이 극장주 리처드 데임스(R.Dames)를 상대로 2급 외설죄 고발장을 제출하는 일도 있었고, 열 달 후에야 데임스 측이 여성들에게 공개 사과하는 조건 하에서 고발이 철회되는 쪽으로 간신히 합의되었다고 한다.

본서에서 소개하는 〈Snuff〉 의 대강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모티브는 찰스 맨슨(C.Manson)의 속칭 "맨슨 패밀리" 에서 따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곳은 남미의 한 컬트 공동체. 많은 젊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 사탄' 이라고 칭하는 한 남성 교주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나날이 가해지는 모진 고문을 기쁘게 견뎌 낸다. 갈수록 폭력의 강도가 거세지다가, 마침내 그 클라이맥스에서 이들은 임산부의 배를 가르기에 이른다. 희생자의 불룩한 배를 번뜩이는 칼이 파고드는 순간 사방으로 피와 양수가 흩뿌려져 쏟아진다.

알고보니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전부 극중극이었다. 마지막까지 무사히 촬영을 마친 제작진들 중에서 금발의 한 보조 스태프가 감독에게 다가가, 마지막 장면에서 성적으로 흥분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감독을 유혹하여 관계를 갖지만, 감독은 갑자기 단검을 들고 그녀를 잔혹하게 도륙한다. 놀람과 공포에 질린 그녀의 비명이 무색하게, 그녀의 신체가 하나하나 해체되고 조각나고 난자당하는 장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 직후 올라가는 스탭롤.

페미니스트들은 위의 영화가 일종의 Bakky 사건 같은, 피해자 여성의 동의 없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저질러진 살해 장면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뒤늦게 제작진들이 나서서 전부 실제상황이 아니라 연출이라고 말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여전히 이런 류의 '스너프 필름' 딱지를 달고 유통되는 영상물들이 모두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버클리 페미사이드 정보교환소' 에서는 연쇄살인마가 여성을 살해하는 동안에 직접 촬영한 영상물이라고 알려진 자료들이 전부 모여 보존되어 있는데,[13] 만일 이런 범죄자들이 자신이 촬영한 실제 영상을 " 모두 연출입니다" 라는 식으로 둘러대어 스너프 필름으로 유통시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 결국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당대 미국 사회가 '사실이든 연출이든 간에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정상인 사회' 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데 있었다. 오히려 섹스를 폭력과 구분하지 못하기에, 끔찍한 살인 장면을 봐도 그것에 흥미진진해하고 짜릿해하는 병든 사회라는 것이다.

3.3. 사건 이후: 합리적 인간과 도발 변론

"우발적 살인 평결이 지닌 함의는 명확했다. '여자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남자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강하고, 더 독립적이라면, 그들이 이 부적절한 남자들에게 지배되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죽음에 법적 책임이 있다. 여성의 힘과 독립성은 의도적인 도발 행위로 해석되며 이는 폭력에 대한 남성의 책임을 감소시킨다.'"
- p.439

페미사이드 범죄자가 법정 재판대에 오르게 되면 무엇을 놓고 법적 공방을 벌이게 될까?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할 많은 '떡밥' 들은 주로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 즉 가해자에게 가해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논리와 관련이 있다. 본서에서 다루는 영국의 재판정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내를 때려죽이고 찔러 죽이고 쳐죽인 남편들은 하나같이 "제정신 아닌 채로 욱 해서 한 짓입니다" 라고 항변했다. 이들은 "세상의 그 어떤 합리적 인간(reasonable man)일지라도, 아내로부터 그와 같은 '도발' 을 받게 되면 얼마든지 아내를 살해하게 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재판정에서 주된 논점은 아내가 이혼하자고 말하거나, 별거를 선언하거나, 여친이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들이 과연 남성에 대한 도발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심지어 합리적인 이성과 교양을 갖춘 일반인, 즉 '합리적 인간' 조차도 평정심을 잃고서 상대방을 칼로 찌를 정도로 심각한 도발인가에 맞추어졌다. 그리고 가해자는 대부분 자신의 친구들을 데려다가 증인석에 세워서, "피고는 좋은 사람이며, 성실한 가장이다" 의 한 마디만으로 자신의 '합리적 인간' 으로서의 지위를 손쉽게 획득했다. 이 논리를 통해, 가해자들은 계획된 살인이 아닌 우발적 살인으로 판결 결과를 간단히 바꿀 수 있었다. 아무리 몇 달 동안 "널 죽이겠어" 라고 협박했더라도, 온갖 준비물과 여비까지 챙겨서 아내를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살해했더라도, 어쨌거나 "순간적으로 욱 해서 죽인" 것으로 인정되었다. 영국에서 계획된 살인은 최하 무기징역이었지만, 우발적 살인은 최하 보호관찰 및 집행유예였다. 심지어 위에서 보았던 고든 애셔 같은 사람들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법정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다음에는 진짜 정상적인 여자를 만나야겠소이다"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발 변론은 합리적 인간일지라도 갑작스럽게 일시적으로 자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증거가 있을 때에나 성립하지만, 본서의 공저자 수 리즈(S.Lees)는 이상한 세 가지 가정이 있다고 지적한다. ① 합리적 인간이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이성적으로 처신할 것이지, 왜 아내가 순종적이지 않았다고 해서 자제력을 잃고 살인마저 저지르게 된다는 말인가? ② 합리적 인간이 도발을 겪는다면 그것을 여성에게도 적용해서 아내 구타나 강간 사건에 활용해야지, 왜 남성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하는가? ③ 합리적 인간이 자제력을 상실할 만한 상황이었다는 변론은, 어째서 숙고적이고 계획된 살인 모의의 증거물까지도 무효로 만들어서 판결을 뒤집는가? 영국의 법 체계는 남녀에 따라 이중잣대가 적용된다는 것이 수 리즈의 지적이다.[14] 특히 북미에서는 피고측의 반박 변론 이후 검찰 측에게 이를 재반박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영국에서는 검찰이 그런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문제가 더 크다고 한다.

이처럼 IPV 페미사이드 가해자가 법정에서 도발 변론을 펼친다는 것은, 곧 "피고가 원고에게 자신과의 배타적 성적 접촉을 요구했을 때 원고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이는 칼부림까지도 초래할 수 있을 만큼 전면적이고 중대한 도발이다" 라는 메시지를 호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합리적 인간의 지위를 주장한다는 것은, 곧 "피고가 원고의 그러한 도발로 인해 좌절감을 겪는다면, 어떤 합리적 이성과 교양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그 즉시 원고를 죽이기로 결정할 수 있다" 는 메시지를 호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국인들도 이게 일반적으로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유독 그 원고가 '아내' 가 되고 그 피고가 '남편' 이 될 때에는 "그럴 수 있지" 라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 이상한 논리가 멀쩡히 먹혀들어가는(…) 영국 법정의 작태를 지켜보며, 편저자 질 래드퍼드는 심지어 "혼인증명서는 살인면허증이 된다"(p.498)고까지 한탄한다.

3.4. "한편 인도에서는..."

위에서 보듯이, 본서는 일차적으로 영국 미국의 남성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어서 페미사이드를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문제에 봉착한다. 우리가 어떤 사회현상을 발견했을 때, 그 현상이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공간에 한정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통시적 접근과 횡시적 접근을 적극 동원하여, 옛날에나 지금에나 그 현상이 꾸준히 나타나 왔는지, 다양한 문화들 속에서 그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자칫 페미사이드가 영국과 미국에만 한정하여 나타나는 서구 특정적인 현상이라는 반론이 가해질 수 있다. 이런 비판의 여지를 의식한 저자들은 인도의 공저자들을 다수 동원하여, 페미사이드가 문화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문제임을 보여주려 한다.

물론 오늘날 일부 순진한 배낭여행족을 제외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알다시피, 인도는 전혀 여성에게 호의적인 나라가 아니다. 이것은 근래 페미니즘을 통해서 갑자기 대두된 것도 아니고 저 동인도 회사나 19세기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서 상세히 기록되고 비판되었으며 지탄받았던 문제였다. 오죽하면 주방에서 타죽은 부인에 대한 흉흉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겠는가(…). 본서에서도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인도의 여성 운동가들이 증언하는 끔찍한 페미사이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무위키에 한하여 이를 정리하자면, 인도의 페미사이드 역시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 유형은 사티(sati) 풍습, 즉 남편이 먼저 죽었을 때 과부가 된 아내가 남편을 따라 불에 타 죽는 악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티는 힌두교 신앙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이들의 믿음에 따르면 남편의 이른 죽음은 아내의 전생 혹은 현생의 죄 때문이라고 여겨졌으며, 여성은 신성한 존재이지만 남편이 없는 여성은 오염된 존재라고 간주되어야 한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서, 아내의 친정 쪽에서도 사별 이후 아내가 만에 하나라도 임신하게 되면 가문 간에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으므로 가능한 한 자결하기를 원했고, 사티 과정에서 막대한 금전적 재분배가 발생하기에[15] 지배적 사회 질서에 의해 암묵적으로 꾸준히 장려되어 왔다. 희생자들 본인들도 일단 죽는다면 여신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고 가문에도 영광이 되며 자기 자신 역시 평생 고결하게 살았던 성녀임을 입증 받는 기회였기에, 그리고 만일 사티를 회피하면 가문에서 버림받고 가장 천한 대우를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야 했기에[16] 사실상 선택지는 없는 셈이었다.

그리고 둘째 유형은 지참금에 얽힌 여아살해 문제이다. 물론 여아살해 자체는 고대 그리스 외에도,[17] 이누이트, 펀자브 카슈미르, 카스트 교리, 아메리카 원주민, 이슬람 쿠란 등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며, 민속학자 존 매클레넌(J.F.MacLennan)은 족외혼(exogamy)이 여성 영아살해를 초래한다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지참금 하면 일차적으로 나오는 지역은 바로 인도. 첫째딸 정도라면 그럭저럭 넘기는 집이 많긴 하지만, 특히나 저소득층 가정일 경우에는, 둘째딸부터는 태어날 때부터 가족들이 그저 침묵하거나 비탄에 잠길 뿐이라고 한다. 인도의 빈민층 및 서민 가정에서 딸을 둘 이상 기른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려운 문제로, 많은 가정들이 둘째딸부터는 일부러 방임하거나, 대충 키우거나, 좀 더 적극적일 경우에는 아예 태어나자마자 협죽도 같은 독초를 먹여서 죽여 버리곤 한다.

인도는 여성 영아사망률이 남성 영아사망률보다 더 높은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이다. 아들보다 딸은 덜 먹이고, 짧게 먹이고, 내버려두고, 아파도 병원에 보내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아예 가족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18] 이 모든 성차별이 가혹한 지참금 문화로 인해 시작되었다. 저소득층들은 딸을 지참금과 함께 시집보내는 것에 대한 막중한 경제적 부담으로 인하여, 그리고 자신이 겪은 고통을 딸에게 대물림하기 싫어서 딸이 태어나면 그 즉시 살해할 동기를 갖는다. 아예 어떤 가정들은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화단에 독초를 기르는 경우도 있다고... 인도의 한 병원에서는 해마다 출생하는 여아 600여 명 중에서 95% 이상이 산모와 함께 야반도주 내지는 실종되며, 의사와 간호사들도 그 이유를 알기에 어찌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 어째서 이런 악습이 지속되는가 하니, 바로 아들을 갖고 있는 집의 이해관계 때문(…). 신랑 쪽에서는 아들의 결혼식을 통해서 아주 한몫 제대로 챙기려 하고, 신부 쪽에서는 그 무지막지하고 비인간적인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말 그대로 집안이 거덜나고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로 생고생을 하게 된다. 이해관계가 이러한지라,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저소득층일수록 지참금 문화를 가장 크게 지지한다. 쉽게 말해, 없는 사람들이 더하다(…). 아들 하나 결혼시켜서 인생 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이 있는 집에서도 아들 역시 키우고 있다면, 딸을 시집보낼 때 필요한 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아들을 통해 지참금을 최대한 '뜯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19] 본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고, 딸은 날 때부터 엄청난 부채다"(p.254).[20] 그래서 당장 내일 먹을 것이 걱정인 가정에서 딸을 낳은 아내는 남편에게 구박을 받으며 멸시당하고, 결국 딸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으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는 것. 본서에서 고빈드 켈카르가 지적하듯이, 이 끔찍한 지참금의 지불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닌데다 처가가 이를 지불하지 못해 아내가 남편에게 살해당하더라도 담당경찰이 '그냥 자살이네'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이 또 다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는 '가문의 명예' 를 중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설령 지참금 풍습이 없는 곳에서 생활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새로 들어온 아내가 우리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는지" 에 대한 가혹한 기준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본서에서는 인도계 영국인들이 보여주는 영국에서의 IPV 페미사이드 사례들을 거론한다. 위에서 잠시 소개했던 뭄타즈 베이그 아내 살해 사건 외에도, 이 사람들은 영국 내에서도 '작은 인도' 를 만들어서 주류 영국 사회에 압박을 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1986년 5월에 벌어진 구르딥 카우르 산두(G.K.Sandhu)에 대한 살인 사건이 바로 그것.[21] 이 인물은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과 별거를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이후 시숙(남편의 형)이 "우리 가문에 불명예를 끼쳤다!" 면서 남편과 함께 쫓아왔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잔혹하게 폭행하여 살해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인종을 망라한 여성인권 단체 "구르딥 카우르 캠페인"(Gourdip Kaur Campaign)이 결성되었는데, 관련 재판이 끝난 이후까지도 이 단체는 인도인 커뮤니티와 가해자 가문으로부터 꾸준히 살해협박으로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본서는 종종 영국 내의 아시아계 남성들과 아시아인 공동체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행간에서 종종 드러낸다.

4. 남은 의문점

5. 생각해 볼 점

빅토리아 시대와 그 이전의 영국 사회에서 "나 아내 때리고 고문했다" 는 남성들 사이의 술자리 농담거리였다(…). 여성들이 항의하지 않았다면 남성들이 '아내를 때리는 건 나쁜 행동' 이라는 현대적 인식을 한참 더 늦게 갖게 되었을 수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이 인류 역사 발전에 공헌한 것 중 하나는 아마도 이것일지도 모른다. 인류는 의외로 오랫동안 가정폭력이 왜 문제라는 건지 몰랐다. 본서는 아내를 구타하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남성들을 고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고발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또한 본서는 폭력이 갖는 성적 흥분의 기능에 대해 잘 지적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화에서 폭력적 행위는 일부 취약한 남성들에게 성적인 흥분을 불러일으키며, 섹스와 폭력이 마치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믿어지게 한다.[23] 성부정주의에 경도된 일부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이 "모든 섹스는 곧 폭력이다" 를 주장하면서 성긍정주의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적어도 저항의 대상이 '섹스와 폭력을 거짓으로 일체화하는 사회적 풍조와 매스미디어' 로 맞춰진다면, 그들의 활동은 의의를 찾을 수 있을 듯싶다. 건강하고 이성적인 사회라면, 섹스라는 친밀하고 소중한 시간이 폭력으로 얼룩질 때, 그것에 대해서 과감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3부에서 다루는 인종차별과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는, 언뜻 인종 문제와는 무관해 보이는 국내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관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면, 본서에서 소개되는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반남성적 메시지에 대해서 딱 잘라 반대하고 선을 긋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본서 외에도 벨 훅스(B.Hooks) 같은 저명한 흑인 페미니스트들도 마찬가지이다. 본서에서는 ' 남성 말살' 을 부르짖는 백인 여성들을 제지하면서 ' 남성들과의 협력' 을 주장하는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자신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숙이고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식이었다.
"어떤... 심각한 차이들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중략) ...백인 활동가들이 관련될 때면,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해요. '음, 이런 식으로 일을 해야죠.'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말해요. '음, 여러분의 경험으로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의 경험으로는 그렇게 해선 안 돼요.'"
- p.303

만약, 이런 차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하는 것도 의미심장할 것이다. 흑인들은 더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인 문화를 갖고 있어서 남성들을 섣불리 배척하지 않는 것인가? 혹은 흑인 남성들도 자신들과 같은 '똑같은 피억압자' 라는 의식이 있어서인가? 아니면, 백인들 특유의 개인주의적이고 결정론적인 사고로 인해 백인 여성들이 유독 남성 말살을 부르짖게 된 것인가? 어쩌면 백인 여성들은 특정 인구집단의 말살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의 특권적 지위가 있어서인가? 한 발 더 나아가자면, 생물학적 남성 자체를 악마화하는 ( 워마드 부류의) 국내의 일부 페미니스트들도 백인에 가까운 특권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학계 역시 무턱대고 ' 남성혐오란 실존하지 않는다' 만 반복하기보다는, 이와 같은 의견차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할 듯싶다.

다음으로,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성노동자을 거론할 수 있다. 본서에서 소개되는 사례들을 보면 영미권의 연쇄살인마들은 성노동자만 골라서 살해하고, 사적으로도 "그년들을 전부 잡아 죽일 것" 이라며 공언하곤 한다. 아마도 이는 일정 부분은 성노동자일수록 경찰 수사가 느슨하고 사회적으로 가해자가 동정표를 많이 받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피해자가 성노동자일 경우에는 '윤락녀', '업소녀' 라는 단어가 쓰일 수 있다.[24] 참고로 유영철의 경우 보도방 여성들을 많이 살해하긴 했으나, 일반적으로 그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처럼 약하다 싶은 다른 피해자들도 많이 죽였으며, 가장 간편하게 죽일 수 있었던 대상이 바로 보도방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연쇄살인마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많이 노리고, 그들의 가장 쉬운 먹잇감이 바로 성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본서가 시도한 문화 간 비교를 논의해 볼 수 있다. 제가 되는 영국과 미국, 인도에서 모두 '여성이 남성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 하면 페미사이드를 당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문화권을 나눌 경우, 서구-개인주의-존엄 문화(ex. 미국, 영국)에서는 여성의 이혼/결별 선언에 대해 남성이 "내 존엄과 자존심에 상처를 낸 도발이다!" 라고 받아들인다면, 비서구-집합주의-명예 문화(ex. 중동, 인도)에서는 남성이 "저 여자가 우리 가문에 불명예를 끼쳤다!" 라고 받아들인다. 특히 유럽계 영국인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이주해 온 유색 인종 이주자 1세대들도 모두들 가정폭력과 아내 살해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본서에서 "남성 폭력의 이러한 기본적 사실들은 모든 사회와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p.597)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단, 본서에서 다루지 않는 경우는 비서구-집합주의-체면 문화(ex. 대한민국) 등이 있으며, 여성의 결별 선언에 대해 남성이 '남들 앞에서 자기 체면이 깎였다고 여겨' 페미사이드를 저지를 수 있을지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25]

이제부터 하단에서 보게 되겠지만, 여러 문화들 사이에서 페미사이드가 공통적인 메커니즘을 통해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질적으로 서로 상통하기는 할지언정 그 경중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즉, 페미사이드가 유독 심각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페미사이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나라가 있다. 모든 문화권들에서 여성들이 수도 없이 죽어나가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SBS 마부작침 보도에 따르면, 과거에는 우리나라도 IPV 페미사이드에 대해 본서에서 묘사한 것과 유사한 법정 판결이 나오곤 했으나, 2014년 이래로는 의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26]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는가? 여기에 페미사이드 발생률을 낮출 수 있는 힌트가 있는가?" 와 같은 생산적인 질문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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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리엔 헤스터(M.Hester), 루선 롭슨(R.Robson), 프랜시스 코브(F.P.Cobbe), 도로시 스타인(D.K.Stein), 마리루이제 얀센-유라이트(M.Janssen-Jurreit), 팻 파커(P.Parker), 마고 윌슨(M.Wilson), 마틴 데일리(M.Daly), 재클린 캠벨(J.C.Campbell), 리키 그레고리(R.Gregory), 고빈드 켈카르(G.Kelkar), 라젠드라 바지파이(R.Bajpai), S. H. 벤카트라마니(S.H.Venkatramani), 캐런 스타우트(K.D.Stout), 제이미 그랜트(J.M.Grant), 캔디다 엘리스(C.Ellis), 베벌리 싱어(B.R.Singer), 샌드라 맥닐(S.McNeill), 데버러 캐머런(D.Cameron), 베벌리 라벨(B.LaBelle), 크리스 도밍고(C.Domingo), 제인 카푸티(J.Caputi), 루시 블랜드(L.Bland), 수 리즈(S.Lees), 더스티 로즈(D.Rhodes), '구르딥 카우르 캠페인'(Gurdip Kaur Campaign), '사우설 블랙 시스터스'(Southall Black Sisters), 수잔 레이시(S.Lacy), D. A. 클라크(D.A.Clarke), 아이린 무센(I.Moosen), '프레잉 맨티스 여성여단'(Preying Mantis Women's Brigade), 멜리사 팔리(M.Farley), '어노니위민'(Anonywomen), 은토자케 샹게(N.Shange) [2] 이 주장은 나중에 엘리자베스 바댕테르(E.Badinter) 등에 의해 '원치 않는 성적 접촉' 조차도 실질적인 강간으로 잘못 취급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 잘못된 길》 도서 참고. [3] 잭 더 리퍼도 그랬고 유영철 역시 그랬지만, 성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강력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고 수사도 난항을 겪기가 쉽기 때문에 연쇄살인마들이 손쉬운 타깃으로 선택하곤 하는 인구집단이다. [4] 그런데 예컨대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경우, 가해자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오히려 사회 부적응 양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 역시 생각해 볼 만한 점이 많지만, 우리나라의 여성 살해가 남성의 사회 부적응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문헌은 아쉽게도 거의 없다. [5] 용어 자체는 1974년에 캐럴 올록(C.Orlock)이라는 작가의 미출판 원고에 'femicide' 라는 신조어가 섞였음을 알게 된 저자 러셀이 1976년 ITCW에서 처음으로 활용함으로써 창안된 것이다. [6] 이 대목에서 직감적으로 남성들의 산업재해를 떠올렸다면, 이미 '재해로 인한 사망도 젠더사이드(gendercide)로 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논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문서 최하단의 개념화에 대한 단락을 볼 것. [7] 이와 관련된 현대의 연구에서도 가해 남성이 상대방 여성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며, 결별과 같은 살해의 '트리거'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BBC 보도기사 [8] 현대인들은 흔히 "남성의 성욕은 제도적인 일부일처제로는 도저히 충족할 수 없을 만큼 끝이 없다" 는 논리를 들어서 공창제 등에 찬성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보자면, 인류는 남성보다는 여성의 성욕이 더 강할 거라고 믿었던 기간이 더 길었다. 당장 현대에 와서도 정신분석학은 남성이 (여성에게는 없는) 초자아(superego)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잘 조절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9] 저자가 나열한 가해자들의 목록도 있다: 제임스 밀스(J.Mills), J. 콜먼(J.Coleman), 존 밀스(J.Mills), 제임스 로런스(J.Lawrence), 프레더릭 나이트(F.Knight), 리처드 마운틴(R.Mountain), 알프레드 로버츠(A.Roberts), 존 해리스(J.Harris), 리처드 스컬리(R.Scully), 윌리엄 화이트(W.White), 윌리엄 허셀(W.Hussell), 로버트 켈리(R.Kelly), 토머스 리처즈(T.Richards), 제임스 프리킷(J.Frickett), 제임스 스타일스(J.Styles), 존 할리(J.Harley), 조지프 무어(J.Moore), 조지 스미스(G.R.Smith), 알프레드 커민스(A.Cummins), 토머스 패짓(T.Paget), 알프레드 에더링턴(A.Etherington), 제레마이어 피츠제럴드(J.Fitzgerald), 패트릭 플린(P.Flynn), 존 차노크(J.Charnock), 토머스 할로(T.Harlow). [10] 사실 똑같은 맥락에서, 국내에서도 동반자살을 언론이 동반자살로 보도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 적이 있다. 죽고 싶었던 한 사람이 죽고 싶어하지 않았던 처자식들을 억지로 끌어안고 함께 뛰어내리게 되면, 결과적으로 언론은 그들 모두가 죽고 싶어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게 마련이라는 것. [11] 저자가 인용한 닐 맬러무스(N.Malamuth)의 사회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남성들 중의 10%는 아무런 성적인 내용 없이 단순하게 남성이 여성을 폭행하고 칼로 찌르는 잔인한 영상을 볼 때에도 성적 흥분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12] 여기서 저자는 〈 13일의 금요일〉 및 〈 사이코〉 를 그 사례로 들고 있다. 〈사이코〉 의 유명한 샤워실 씬의 경우, 실제로 평론가 레이먼드 더그냇(R.Durgnat)은 "즐기지 않기에는 지나치게 에로틱하고,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소름끼치는, 음란물 같은 살인 장면"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1947년의 〈I, the Jury〉 를 필두로 하여, 〈Singled Out〉, 〈The Tool Box Murders〉, 〈Pieces〉, 〈Prizzi's Honor〉, 〈Harlem Nights〉 가 70-80년대에 제작되었던 고어노그래피 성향의 영화라고 한다. [13] 본서에서는 자신의 살인행각을 촬영했던 가해자들의 실명까지 직접 거론하고 있다: 하비 글랫먼(H.Glatman), 케네스 비앙키 & 안젤로 부오노, 로런스 비태커 & 로이 노리스, 프레드 더글러스(F.B.Douglas) & 리처드 에르난데스(R.Hernandez), 레너드 레이크(L.Lake) & 찰스 응(C.Ng), 애슐리 램비(A.Lambey) & 대니얼 드퓨(D.T.Depew) 등. [14] 본서에 따르면, 실제로 남편의 상습적 구타를 반평생 당해 오다가 끝내 남편을 살해한 노인 여성 파멜라 메긴슨(P.Megginson)은 합리적 인간 변론이 전혀 인정되지 못했으며, 아랍계 영국인으로써 매우 의도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아내 살해를 계획했던 데다 심지어 법정에서 대놓고 "아내를 죽이기로 했다" 고 노골적으로 증언하기까지 했던 뭄타즈 베이그(M.Baig)는 우발적 살인 혐의만 인정되었다. 수 리즈는 여성들이 남편의 폭행에 저항할 때에는 정당방위가 더 많이 이용되며, 여성들은 합리적 인간 변론에 구태여 의지하느니, 차라리 정반대로 '월경전 증후군 때문에 그랬다' 고 자신의 비합리적 동기를 강조할 때 판사를 납득시키기 쉬울 거라고 말한다. [15] 사티로 희생되는 여성은 가능한 한 호화로운 치장을 하고 화형장(?)에 도착해야 했으며, 구경꾼들에게 귀중품 중 일부를 즉석에서 뿌려주어야 했고, 불타죽은 이후에 브라만 지배층이 남은 유물을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었다고 한다. [16] 특히 이발은 무조건 불가촉천민들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어서, 유독 브라만 계층의 여성들이 사티를 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17] 고대 그리스 기록물을 보면 79가구의 아들의 수가 118명인 반면 딸의 수는 28명이고, 아테네의 경우도 61가구에서 아들이 87명이고 딸이 44명이었으며, 델포이 밀레투스는 600가구 중 딸을 둘 기르는 가정이 1% 미만이었다고 한다. [18] 인도에서 유년기 영양실조 비율은 남아에게서 28%, 여아에게서 71%이며, 연간 병원 치료 횟수는 남아가 여아보다 2배 더 많고, 여성문해율은 25%인 반면 남성문해율은 48%이며, 남아들의 84%가 학교에 등록한 반면 여아들은 54%에 그치게 된다. [19] 본서가 길게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이 문화권에서 딸의 비혼이란 애초부터 선택지의 하나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 본서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여자아이들의 목숨 값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고 부모조차도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문제 때문에, 오늘날 천인공노하는 "인도 남성들의 여아 집단 성폭행 사건" 들이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문화에서는 결국 여자아이들은 주인 없는 몸뚱이(?)가 되는 셈이고, 인도 남성들은 '굳이 여자아이라서' 성욕을 느끼는 것보다는 '더 쉽사리 쓰고 버릴 수 있어서' 여자아이를 범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21] 일반적으로 범죄 정보에서 피해자의 이름보다는 가해자의 이름이 중요하지만, 이 사건은 관련 여성운동 단체가 피해자의 이름을 따서 활동하고 있으므로 피해자의 이름을 소개한다. [22] 본서 6장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소개되는 페미니스트 운동가로, '알몸의 여성이 가슴과 국부를 벌리고 피웅덩이 속에서 살해당한 것처럼 연출된' 사진 작품이 여성 대상 폭력을 성애화한다고 비판하여, 대학생 때 이 사진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자기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서 사진을 전부 찢어버리는 ' 반달리즘' 테러를 일으켜서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23] 아마도 이것은 일본 서브컬처에서 흔히 말하는 " 료나물" 같은 장르와도 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료나물 애호가가 일상생활에서 과연 어떤 차이를 보일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아 보인다. [24] 《한국의 연쇄살인》 같은 문헌에서도 이 지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대목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5] 물론 우리나라에도 정절, 절개, 열녀 같은 개념들은 분명히 존재해 왔다. 하지만 직접적 살해의 동기로서 "우리가 그렇게 이혼해 버리면, 내가 남들 보기 부끄러워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겠느냐? 내 체면을 짓밟은 넌 죽어야 해" 라는 심리가 나타날지는 확실하지 않아 보인다. [26] #SBS1 #SBS2 이 보도에 따르면, 전체 사건의 71%는 가정폭력이 연관되어 있었고, 피해자 3명 중 2명은 아내 쪽이었으며, 남편을 살해한 아내보다 아내를 살해한 남편의 형량이 두 배 가량 높았고, 형량감경 요인 (가정폭력 여부) 역시 피해자가 남편 쪽일 때 더 많이 반영되었다. 아내를 살해한 남편의 30%가 기존에 이미 중범죄 전력이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