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그럼에도 페미니즘: 일상을 뒤집어보는 페미니즘의 열두 가지 질문들 |
발행일 | 2017년 1월 20일 |
저자 | 윤보라 (편저) 외 11명 공저 |
출판사 | 주식회사 은행나무 |
ISBN | 9788956605906 |
#교보문고 |
1. 소개 및 출간 배경
본서는 《 경향신문》 에 연재된 페미니즘 기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다양한 배경의 페미니스트들이 한국 사회의 이슈를 진단하는 페미니즘 대중서이다. 기획을 담당한 경향신문에 따르면, "현재 진행형 문제에 도발적으로 현상을 진단하고,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한다"(p.8)고 본서의 위치를 설명하였다.본서는 구체적인 이론적 논의를 하기보다는 얕은 수준에서 각각의 이슈들을 페미니즘의 인식론을 통해 한 번씩 비추어 보는 데 만족하고 있다. 특히 6장은 사실상 에세이 내지 신변잡기 수준의 가벼운 글에 가까우며, 10장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광범위한 참여 및 지지를 독려하는 장이다. 따라서 복잡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8장 및 9장에는 성매매에 관련한 국내 페미니즘 진영의 엄청난 키배가 담겨 있으므로(…) 성매매 이슈에 관련하여 논의를 확인하고 자료를 모으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도서가 되었다.
본서는 (9장을 제외하면) 《 경향신문》 뉴스큐레이션 사이트 ' 향이네' 에 연재된 ' 페미니즘이 뭐길래' 시리즈를 바탕으로 제작되어서, 본서를 굳이 구매하거나 대출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열람이 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저자들의 면면도 해당 언론사 중심의 네트워크인 것을 볼 수 있다. 서문의 성격을 갖는 "기획의 말" 에 따르면, 본서의 출간 배경은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시점에서 주요 쟁점들을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풀고 기존의 관념에 균열을 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2015년 이후로 국내에서 페미니즘이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본서도 그 중에 함께 섞여서 출간된 경우다.
본서의 공저에 참여한 저자들을 소개하자면 각각 다음과 같다. 이하의 프로필은 출판사 측의 속날개 소개를 참조하였으며, 본서 저술 당시 시점의 프로필임에 유의.
- 김보화 : 저술 당시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에서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 여성학 전공자.
- 김은희 :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연구위원,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 김홍미리 : 한국여성의전화 소속 활동가.
- 나영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정체화. 적녹보라 패러다임을 강조하는 인식론.
- 박은하 : 언론인으로서 《 경향신문》 사회부, 디지털뉴스팀, 기획부를 거쳐, 저술 당시 《주간경향》 근무 중.
- 박이은실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운영위원, 학술지 《여/성이론》 에디터. 지순협(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소속.
- 손희정 : 영화학 전공자. 영화평론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활동 이력. 《 페미니즘 리부트》 등 저술.
- 엄혜진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컬리지 객원교수. 여성학 전공자.
- 윤보라 : 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박사수료.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공저자 참여 이력.
- 은하선 : 섹스토이샵 '은하선토이즈' 운영자. 《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이기적 섹스》 등 저술.
- 조서연 : 국문학 전공자. 대중매체 비평에 관심. 《 그런 남자는 없다》 공저자 참여 이력.
- 홍태희 :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 목차 및 주요 내용
- 기획의 말 (경향신문 향이네)
- 1장: 메갈리아의 '거울'이 비추는 몇 가지 질문들 (윤보라)
- 2장: '여자도 군대 가라'?--군 복무와 성평등의 관계에 대하여 (조서연)
- 3장: 치정과 멜로, 그 경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묻다 (김보화)
- 4장: 남성 진보 논객과 담론 헤게모니--'청년 진보 논객' 데이트 폭력 폭로에 부쳐 (김홍미리)
- 5장: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정치 (김은희)
- 6장: 나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 ( 은하선)
- 7장: 여성을 사랑하는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나영)
- 8장: 성노동 비범죄화, 한국에서는 안 될 일인가? (박이은실)
- 9장: 성매매 비범죄화, 안 될 일이다 (박은하)
- 10장: 일하겠다, 그러니 돈·욕·매 앞에 평등을 허하라 (홍태희)
- 11장: 여성들은 왜 '속물'이 되어야 했나 (엄혜진)
- 12장: '진짜 페미니즘'을 찾아서--타령을 도태시키고 다시 논쟁을 시작할 때 (손희정)
위에서 9장의 경우 《경향신문》 에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8장의 내용이 기사화되고 나서 이에 대한 반박의 개념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본서의 10~12장은 향이네 측에서는 9~11회 기사로 넘버링되어 있다.
4장에서 거론되는 '청년 진보 논객' 은 한윤형 비평가, 그리고 그 사람의 친구는 김민하 비평가이다. 문제의 논객은 2013년에 여성혐오에 관련된 논문을 저술하여[1] DBpia 상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서울국제영화제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주제의 패널로 참석하기도 한 대표적인 남페미로 꼽힌다. 하지만 2015년 11월 16일자 페이스북에 정작 자신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은 한 번도 페미니스트로 자처했던 적이 없다고 한다. 4장은 한윤형 씨의 2015년 6월경의 데이트 폭력 이슈가 완전히 매듭지어지기 이전에 피해자에게 부과되는 2차 가해를 줄이기 위한 의도를 갖고 저술된 글이다.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페미니즘은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접근하고 진단할 수 있으며, 한국 사회에 매우 시의적절한 논의가 될 수 있다.
- 페미니즘적 비평은 인터넷 사회, 징병제, 폭력의 의제화, 섹슈얼리티, 정치, 성적 지향, 성매매 등에 적용될 수 있다.
- 우리 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비판적 젠더 담론의 출발점을 그어 볼 수 있다.
2.1. 챕터별 내용 정리
각 챕터의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하단에 간략히 정리할 것이다. 먼저 "여자도 군대 가라" 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서 이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여군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를 살펴본다. 다음으로 페미니즘 정치학의 관점에서, 특정 여성 정치인을 여성의 대표자로 삼거나 여성 인구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논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매매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성매매를 성노동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성노예로 볼 것인지에 대한 대립되는 두 장을 연이어 소개한다. 마지막으로는 본서를 끝까지 읽고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들을 짚어볼 것이다.-
1. 메갈리아의 '거울'이 비추는 몇 가지 질문들
국내 인터넷 문화 생태계에서 메갈리아의 기원은 정당한 문화적 계승자로서의 지위를 박탈하기 위하여 고의로 오도되어 왔다. 메갈리아의 진짜 기원인 남자 연예인 갤러리의 동향은, 농담과 유희의 언어가 어떻게 비장한 투쟁의 언어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 여성들의 삶의 고충과 어려움을 남성들과 나누고 소통하기 위하여, 메갈리아의 담론 투쟁은 여전히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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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자도 군대 가라'?--군 복무와 성평등의 관계에 대하여
여성 병역에 대한 주장이 많지만, 실상은 여성의 고생을 원할 뿐 여성이 대등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성차별의 정당화이다. 실제 여군들은 군인다움과 남성성이 서로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군대 자체가 남성적인 체계이기 때문에 이는 함정에 빠지는 것과 같다. 군대에서 유능한 면모를 보이는 여성들은 지배 질서에 큰 위협이 되며, 이 때문에 더 여성적으로 혹은 이성애 성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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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치정과 멜로, 그 경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묻다
데이트 폭력은 여성의 사적 영역을 통제하는 데 봉사하며, 남성이 남성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실천된다. 여성들의 피해 경험은 동의를 통한 섹스와 명확히 분리되지 못하며, 불균형한 젠더 권력으로 인해 동의는 유효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데이트 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성찰적 감수성을 키우고 페미니즘을 실천함으로써 여성들의 경험을 소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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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성 진보 논객과 담론 헤게모니--'청년 진보 논객' 데이트 폭력 폭로에 부쳐
진보 진영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기존의 남성 논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판단중지를 선언하며 침묵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가해자가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박탈하고, 논객들이 젠더 문제를 사유하는 것을 방해하며, 진보와 페미니즘 간의 분열을 초래한다. 남성 논객들이 이런 사건에 대해 진실하게 성찰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젠더 질서 또한 전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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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정치
박근혜로 인해 불거진 질문, 즉 여성 대통령은 여성을 대표하느냐는 질문은, 남성에게는 똑같은 질문을 하지 않기에 문제적이다. 2012년 대선의 박근혜뿐만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유세 역시, 여성의 정치 참여를 젠더가 아닌 성별로 환원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기존의 여성 정치 운동이 애썼던 여성할당제 이슈는 궁극적 목표가 아니며, 남성 정치세력에게 여성 정치인이 이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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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
저자가 언론사에 섹스에 관련된 글을 기고하는 동안, 저자는 남성들의 좁은 식견을 드러내는 다양한 악성 덧글들에 직면해야 했다. 사실 '여성' 이 '섹스' 를 말한다고 꼭 공격받기보다는, 저자는 페미니즘의 편에 서서 무책임한 남성들을 꾸짖기 때문에 반감을 사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저자는 다른 여성 섹스 칼럼니스트들과 달라지므로, 그들과 자신을 한데 묶어서 다루는 것을 반갑지 않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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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성을 사랑하는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는 여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의적 기준들을 다수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차별을 정당화하고 억압적 구조를 영속화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별 이분법적 기준은 많은 성 소수자들이 겪는 억압의 원인이 되며, 이는 여성 억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레즈비언도 여성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구조적 변혁을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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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성노동 비범죄화, 한국에서는 안 될 일인가?
2005년 성매매 특별법 및 2015년 국제앰네스티 발표에 즈음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성매매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논의가 이루어졌다. 성매매에 대한 관점은 전면 불법화를 주장하는 근절론, 공창제를 주장하는 합법화론,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비범죄화론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성적 서비스로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게 하자는 것만큼은 유효한 비판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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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매매 비범죄화, 안 될 일이다
성노동론자들은 홍등가 철거민을 내세우지만, 실상 국내 성매매 풍속의 주류는 룸살롱이며, 룸살롱은 어차피 비범죄화된 영역이다. 해외의 소위 모범적이라는 사례들도, 세계화 추세 속에서 타국 여성의 납치와 인신매매, 착취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성매매는 성적 서비스의 거래가 아닌 여성에 대한 지배권을 거래하는 부자유한 시장이며, 갑질과 접대로서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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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일하겠다, 그러니 돈·욕·매 앞에 평등을 허하라
아직까지 재산과 의사표현, 권력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온라인에서의 젠더 전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신변의 안전이나 공적 영역, 사적 영역 등 모든 점에서 남성이 이 젠더 전쟁의 승기를 잡곤 한다. 따라서, 여성들이 고통을 토로하면 지지해야 하고, 여성주의 경제학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반듯하게 하려 하면 장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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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성들은 왜 '속물'이 되어야 했나
무한경쟁과 각자도생, 실력주의가 통용되는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은 점점 속물화를 강요 받지만, 한편으로는 된장녀, 김치녀라는 조롱도 함께 받는다. 하지만 어떤 인생의 선택을 하든 안전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자기계발서들이 제시하는 행복의 해법은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해결하지 못한다. 남녀 모두의 행복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자기계발서의 조언을 따를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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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진짜 페미니즘'을 찾아서--타령을 도태시키고 다시 논쟁을 시작할 때
기존에는 페미니즘의 적들로부터 '진짜 페미니즘' 논란이 불거졌지만,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도 비슷한 동향이 감지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적녹보 패러다임으로, 젠더 문제에 노동 문제와 생태 문제를 희석시키는 잘못된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노동-생태-젠더 억압 문제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으며, 적녹보 패러다임도 똑같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페미니즘 노선이다.
2.2. 여성징병제와 여군
저자 조서연(2017)이 다른 도서인 《 그런 남자는 없다》 6장에서도 서술한 바 있지만, 국내에서 양성평등을 외칠 때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반응은 "그럼 여자들도 똑같이 군대 가든가!" 이다. 과거 페미니즘이 익숙하지 않던 시절에는 여성들도 일차원적으로 " 우리는 애 낳잖아!" 라고 받아치곤 했지만, 오늘날에는 좀 더 페미니즘에 엄밀하게 입각하여 대답하려는 고민이 있어 왔다. 문제는, 서구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여군의 확대가 양성평등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여성도 군대 가라는 반응에 대해 무조건 옳다거나 그르다는 식으로 단정할 수가 없었다는 것.여기서 조서연(2017)은 M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을 통하여, 이런 "군대 가라" 논리를 설명하고자 시도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흔히 비난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의 속성, 즉 "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자, 무능하고 한심한 자, 공동체 의식이 부재한 자"(pp.41-42)들이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점차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는 서사를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조서연(2017)은 여성들이 아무리 군사훈련을 받더라도 이들은 늘 한 단계 부족한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끈질긴 체력, 성공적인 임무 완수, 보람 있는 땀방울로 묘사되는 여성들이 아니라, 기진맥진한 휴식, 후회 어린 심경, 남성들에 대한 경의와 찬사로 가득한 인터뷰로 묘사되는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즉, 남성들이 원하는 건 여성들이 그들과 대등한 ' 군필자' 가 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힘겨움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처럼 각개전투가 포함된 기초군사훈련이나, 잘해봐야 유격 훈련 정도만 맛보기로 경험시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2]
여군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군사적 가부장제에 부역시키려는 시도" 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에서는 "군 내부에 여성들의 가치를 수혈하여 군사적 가부장제를 약화시키려는 시도" 라고 호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서연(2017)은 후자보다는 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신시아 인로(C.H.Enloe)의 문헌을 들어서, 이스라엘이나 노르웨이 등의 징병제 국가에서나 미국, 일본, 스웨덴 등의 모병제 국가에서도 여전히 군대 내에서건 군대 밖에서건 성차별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특히 국내에서 종종 해외 모범사례로 지목되곤 하는 이스라엘군의 경우, 여군들은 여기서도 여전히 사무직, 행정직, 비서직 등을 전전할 뿐이며, 성희롱을 겪더라도 은폐해야 하고, 남성들의 사기를 높여 주는 '꽃 같은' 존재로서만 선전되고 있다고.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그럼 여군 본인들은 여성징병제 내지 여성의 군 복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저자는 2012년의 한 문헌을 소개한다.[3] 이 문헌에 따르면, 여군들은 군 생활에 대해서 자기실현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고, 자신의 '여성성' 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고 이를 없애려 하고 있다. 또한, 군인다움과 남성성을 서로 분리함으로써, 여성인 자신 역시 군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에서 한 훈육관이 외쳤던 "소대장은 군인이 되라고 했지, 남자가 되라고 안 했습니다!" 라는 한 마디가 이를 명확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서연(2017)은 이미 군대라는 체계 자체가 남성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군인다움과 남성다움이 과연 분리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본서에서 소개하는 사례 중에 흥미로운 것으로 엠버 씨의 출연을 언급할 만하다.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 2기에 출연한 엠버 씨는 우수한 실력으로 각종 신체적 혹사를 견뎌내는데, 각개전투든 유격훈련이든 워낙에 수월하게 수료하는 탓에 훈육관들조차 당황할 정도였다고. 이처럼 '군인으로서 유능한' 여성에 대해서 제작진은 어떻게 묘사했을까? 조서연(2017)은 엠버 씨가 훈련 중에 선글라스를 벗은 남성 교관에게 반해버리는 장면이 방송 중에 뜬금없이 끼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장면을 통해서 "...사실은 그녀도 여자랍니다!" 와 같은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하고, 이를 통해 시청자들을 안심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시청자들이 만일 해당 장면에서 호감과 편안함,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장면이 지배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줌으로써 대중에게 수용되기 때문이라는 것.
2.3. 박근혜, 준비된 여성 대통령?
본서가 《 경향신문》 에 쓰이던 2017년은 한창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그런데 여기서 박근혜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다양한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박근혜의 실패는 과연 여성들의 실패로 볼 수 있는가? 박근혜가 '여성' 이라는 점이 중요한가? 박근혜 대통령은 페미니즘과 국내 여성들의 삶의 수준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했는가? 여성이라면, 아니 적어도 페미니스트라면, 마땅히 박근혜와 같은 여성 정치인에게 지지를 보내야 하는가? 실제로 워마드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에도 오로지 '여자'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극우 성향의 우리공화당 인지연 후보를 지지했었는데, 이것을 페미니스트 정치학으로 불러야 하는가?우선, 김은희(2017)가 페미니스트 정치학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서 주의를 주었던 것이 몇 가지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페미니스트 학생들은 2015년부터 이미 박근혜가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할 때 반대 시위를 벌였으며, 대표적인 범보수 여성조직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그런 이대생들을 질책하고 훈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과연 박근혜가 여성을 대표하는지, 여성 정치인은 여성 친화적인지 같은 질문들은 유독 여성 정치인에게만 던져지지만, 남성 대통령이나 남성 정치인에게는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예컨대, '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남성들의 정치 참여를 증진한다고 봐야 하나요?' 같은 식의 질문은 어색하다는 것이다. 김은희(2017)는 본서에서,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그런 질문에 직접 대답하기보다는, 그런 질문을 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제기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고 소개한다.
2012년 한국 대선으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 당시 국내의 보수측은 박근혜를 후보로 세우면서 그 슬로건으로 "준비된 여성 대통령" 을 내세웠다. 김은희(2017)는 이 슬로건의 저의가 바로 "생물학적 여성이라면 (똑같은 여성인) 박근혜 후보를 마땅히 지지하는 것이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는 논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 슬로건은 누가 여성인지, 박근혜가 왜 여성을 대표하는지 같은 주제들에서 자의적으로 설정했으며, 그 과정에서 박근혜는 정치적 청사진을 지닌 '우리가 믿고 따를 리더' 라기보다는 그저 '가장 순수한 한 명의 여성' 으로서만 다루어졌다.[4] 이런 논리의 문제를 지적해야 할 진보측 진영에서도, 그 내부의 남성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여성 이슈에 밝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지적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서 김은희(2017)가 드는 인물이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다. 클린턴 역시 2012년의 박근혜 선거 캠프와 거의 유사한 전략을 취했다. 클린턴은 내각 50%의 여성 충원을 약속했으며 '우리 여성들' 의 투표를 호소했다. 하지만 클린턴이 패배하자, 민주당에서는 " 여성이 여성을 배신했다!" 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분석이다. 미국의 젊은 진보 여성들은 여성이 정치한다는 것, 여성들이 연대한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일방적으로 정해 준 논리를 따르지 않았다. 예컨대 수전 서랜든(S.Sarandon)과 같은 젊은 진보 여성들은 성별에 근거한 투표 호소에 냉소를 보내고는 버니 샌더스에게 투표했고, 많은 여성 유권자들은 버니 샌더스 이후로는 이번에는 녹색당의 질 스타인 같은 인물들로 넘어가 버렸다. 저자는 이것이 여성에 대한 배신은커녕 도리어 페미니스트 정치의 복원이라고까지 말한다.
참고로 언급할 만한 것은, 저자 김은희(2017)는 남녀동수(parity), 즉 정치 영역에서의 남녀 비율이 50:50을 달성하자는 목표에 대해서 선을 긋는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여성 운동에서 모든 여성들은 동질적이라는 가정을 구태의연하게 견지했기 때문이고, 여성들을 가급적 많이 연대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심지어 페미니즘 이론 내적으로도 반발이 심했던) 여성 50% 의무할당제 같은 얼핏 달콤해 보이는 구호를 내걸었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단기간에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실현하기 위한, 페미니즘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공학적인 시도에 가까웠으며, 그나마도 정치문화를 바꾸기보다는 그저 '끼어들기' 만이 가능했을 뿐이라는 비판이다.
2.4. 성노동론? 성노예론?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과연 ' 성노동자' 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성노예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치열한 키배를 벌여 왔다. 우리나라에서 이 논쟁은 2004년에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되던 당시에 한 번 불이 붙었는데, 전자의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면서 "성매매의 합법화 또는 비범죄화" 가 대안이라고 주장했고, 후자의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입법에 찬성하면서 "성구매자 남성을 처벌하고 성판매자 여성은 구제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2015년에는 전세계적으로 다시금 이 논쟁에 불이 붙었는데, 이번에는 국제앰네스티가 8월 11일에 "성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 이라고 말하면서,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성노동에 대한 모든 것을 비범죄화하는 것이라고 결의하였던 것이다.8장에서 저자 박이은실(2017)은 이에 대한 의견을 크게 3종류로 나누어 구분하는데, 나무위키 한정으로 첫째 의견은 "성노예론" 으로,[5] 셋째 의견은 "성노동론" 으로 지칭하기로 하겠다. 아쉽지만 둘째 의견은 본서에서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 근절론 : 성매매 특별법의 논리적 근거로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가 상품으로서 거래되는 모든 상황을 범죄로 규정하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 합법화론 : 근절론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면서 성매매 시장을 양지화하자는 의견으로, 공창제는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네덜란드나 독일을 모델로 따르고자 한다.[6]
- 비범죄화론 : 근절론도 비현실적이고, 합법화론도 국가의 지나친 개입이기에, 성매매 시장에 아예 문제삼지 말자는 관점이다. 단지, 이런 시장이 존재하고 그 시장에 노동자들이 있다면, 노동 관련 법을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박이은실(2017)은 비범죄화론의 관점을 따르는 성노동론자이며, 근절론이 "중산층 기혼 이성애 중심적인 기존 성 윤리 안에서 유리한 입지는 갖지만 그다지 큰 실효는 거두지 못한다"(p.154)고 본다. 저자는 8장에서 일명 '10문 10답' 을 통하여 페미니즘이 성매매 여성들을 노동자로 대우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단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성역이라거나 거래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식의 생각 자체만으로 무엇을 범죄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 여성들이 몸을 파는 것을 문제시해야 하는가?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모든 임금노동자들이 제각기의 방식으로 '몸을 팔아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단지 그 상품이 섹슈얼리티일 뿐이다. 성매매가 열악한 환경이기에 안 되는가? 그럼 법적으로 범죄화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적절한 대책이다.
8장에서 박이은실(2017)은 성매매 여성들이 어쩌다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 왜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며, 왜 성매매를 심지어는 원하기도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확인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일단 성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최소한 그들의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게 만드는 것 정도는 충분히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성노예론자들은 포주를 언급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관점일 뿐이다. 성노동론의 관점에서 포주와 성매매 여성의 위치는 연예기획사 사장과 연예인 사이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특히 노동자 지위는 "에이전시와의 계약 조건을 협상할 때"(p.156)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성노예론자들은 성매매 여성들이 포주들의 꼭두각시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능력조차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생각"(p.163)이며, 이는 여성들은 합리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는 남성들의 통념과도 맥이 닿는 것이다.
이번에는 관점을 바꾸어, 성노예론자들의 의견을 살펴보기로 하자. 인터넷에는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9장에서 저자 박은하(2017)는 8장에 대한 전면적인 반론을 시도한다. 물론, 성노예론자들의 일반적인 논증이 그렇듯, 여기서는 포주의 존재가 매우 핵심적이다. 이 관점에서 섹슈얼리티 상품의 판매자는 여성이 아니라 포주이고, 여성은 경제주체가 아니라 그저 예쁜 오나홀 같은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성노동론에서는 '생계형 성매매' 만큼은 포주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전형적 사례인 가출청소년 성매매에 있어서도 여학생들은 늘 자기네 '가출팸' 에 남성 가출청소년을 반드시 끼워넣는다고 한다. 성매매를 안전하게 성립시키려면, 그 과정에서 여성 측이 판매권을 이양할 포주 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9장에서 박은하(2017)는 성노동론자들이 성매매 하면 막연히 떠올리는 이미지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도전한다. 이들이 말하는 성매매는 마치 청량리 588 같은, 가게마다 홍등이 켜져 있고 아가씨들이 창가에 줄지어 앉아 있는, 그러나 조만간 철거의 위기에 놓여 있는 으슥한 골목이다. 문제는, 이것이 더 이상 현대 대한민국 성매매 문화의 주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박은하(2017)는 성노동론자들이 "홍등가의 비범죄화, 윤락여성들의 생계지원" 을 위해 비범죄화를 요구하지만, 실상 대한민국에는 이미 비범죄화 영역에 속해 있는 성매매의 현장이 있으니, 그 정체는 바로 룸살롱이라고 지적한다. 성노동론이 옳다면 룸살롱은 이들이 꿈꾸는 이상이 실현된, 성노동자들이 행복한 근무환경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던가? 저자는 룸살롱, 단란주점, 보도방 등지에서 남성 고객들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신체유린 행위가 빈번히 나타난다고 비판한다. 더 이상 성매매 여성들은 '불쌍한 철거민' 도 아니고 '내일 끼니를 걱정하는 저소득층' 인 것도 아니다. 그들은 짙은 화장과 명품 백으로 온몸을 치장한 채로 룸살롱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들 또한 성적 학대를 겪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해서는 성노동론이 설득력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박은하(2017)가 제시하는 또 다른 성노동론의 맹점은, 성매매 현장에서 판매되는 서비스가 순수하게 섹슈얼리티의 성격을 갖는다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성노동론자들은 성매매에 대해 말할 때, 비용을 치른 남성이 방에 들어오고 → 페니스의 질내삽입이 이루어지며 → 사정 후 남성이 방을 나가는 프로세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박은하(2017)가 지적하는 룸살롱에서의 성매매 양상은 남성들이 돈을 내고 여성에게 마음껏 갑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구매하는 행위에 가깝다. 즉, 섹슈얼리티의 충족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가혹행위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돈을 내고 구매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룸살롱의 성매매는 유독 "타인 지배의 체험" 을 제공하기 때문에, 룸살롱이 홍등가를 누르고 대한민국의 주류 성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홍등가에서는 여성을 품에 끼고 가슴을 주무르면서 노래를 한다거나 계곡주 같은 것이라도 마실 수가 없지만, 룸살롱에서는 그런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 요컨대, 대한민국에서 성매매란 생물학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시장이 아닌, 사회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시장이 되는 셈이다.
9장의 말미에서 박은하(2017)는 룸살롱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관료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접대' 문화를 지적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룸살롱은 "을이 갑에게 여자를 끼고 주무를 권리를 진상하는 곳"(p.181)이라고 하며,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 홍등가에 가는 게 일탈로 취급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상적인 회식 이후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프로세스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결국, 문제될 것이 없는 정상적 삶의 일부처럼 되어 버리는 것. 그나마 홍등가를 때려잡는 성매매 특별법이라도 있으니 룸살롱에 대해서도 "이러면 안 된다" 는 막연한 사회적 인식이라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아무튼 박은하(2017)는 어떤 노동이 "갑질과 왜곡된 성 인식, 배금주의와 부패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면"(p.182) 그것을 가치중립적으로 노동이라거나 서비스 산업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하면서,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상의 양측 논리에서 성노동론 측의 주장의 분량이 부족하게 보인다면, 이는 8장에서 이 떡밥의 전반적인 개요를 개관하느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 반면, 9장에서는 성노동론을 반박하기 위한 논증들로만 꽉꽉 채워 놨기 때문이다(…). 아무튼 양쪽의 관점을 도표의 형태로 정리하자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모바일 환경에서는 열람이 어려울 수 있다.)
성노동론 | 주제 | 성노예론 |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서비스 시장 | 성매매란? | 인권을 유린하는 문화적 현상 |
여성 본인 | 성판매자 | 포주 남성 |
에이전시 | 포주의 위치 | 경제주체 |
경제주체 | 여성의 위치 | 판매되는 상품 |
홍등가로 출퇴근 | 성매매 양상 | 룸살롱 파견직 |
섹슈얼리티 | 거래 상품 | 갑질 체험 |
노동자로서의 협상력 강화 | 구제대책? | 법적 처벌을 통한 여성보호 |
3.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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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1장 18-19페이지에서, 저자 윤보라(2017)는 나무위키의 강된장남 문서의 삭제와 부활을 페미니즘적인 의미로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저자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메르스 갤러리 이슈화 직전에 벌어졌던 강된장남 사건[7]은 메르스 갤러리의 기원이며, 메갤이 정당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만큼 심각했던 스캔들이었다. 그 결과, 남성들은 메르스 갤러리를 마음 편히 비난하기 위해, 어떻게든 강된장남 사건에 대해서는 숨기고자 급급하게 되었다. 나무위키에서 사건 직후 해당 문서가 생성되었으나 곧 삭제된 것이 바로 이를 입증하는 근거이다. 이후 해당 문서는 남연갤 쪽으로 넘겨주는 리다이렉트 형태로 부활했는데, 이것은 남성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제의 사건을 희화화할 수 있을 만큼의 심리적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설명은 역설적으로, 저자 윤보라(2017)가 연구한다는 소위 "인터넷 문화 생태계" 라는 것이 적합한 연구방법론을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오도된 해석을 낳기 쉬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강된장남 사건은 그저 DC 남연갤 및 유관 갤러리에서나 핫 이슈였을 뿐, 나무위키를 비롯한 DC 바깥의 커뮤니티에서는 그저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설령 이 작은 사건이 훗날 인터넷 세계의 지형을 뒤바꾸는 나비 효과를 일으켰다 하더라도, 당시의 나무위키 이용자들이 그것을 예지했을 리가 없었다. 나무위키에서 "어디서 또 이상한 어그로가 끌린 모양" 이라고 반응한 것은, 그들이 메르스 갤러리의 정당성을 차마 인정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광대한 인터넷 세계에서는 너무 흔하고 너무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링크즉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나무위키 입장에서 모든 커뮤니티의 사건사고들을 세세하게 별도 문서화하는 것은 운영의 무질서에 가까웠고, 그나마 그 서술의 가치를 인정하여 (아예 지우지는 말고) 남연갤 문서 속으로 병합하자는 타협안이 나온 것이다. 이를 간과했기에 윤보라(2017)는 나무위키에서 문서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에 대해 설득력 부족한 추측을 내세운 것이다. 윤보라(2017)의 해석은 그저 수정 코멘트에 남겨진 내용에 근거할 뿐인데, 그마저도 심지어 캡처해서 본서에 떡하니 게시한 r.11 코멘트에 "상세근거는 토론참조" 라고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토론을 전혀 참조하지 않았다!
또한 관련 토론들을 열람한다면 알 수 있는 것으로, 강된장남 문서를 처음 개설하고 가장 크게 기여했던 noro*** 사용자는 나무위키의 토론 프로세스에 적극 협조하면서 해당 문서를 타 문서에 병합하자는 합의안에 무난히 동의하였다. #링크1 더불어, 메르스 갤러리 문서의 토론 스레드에서도 문제의 서술 내용을 정리하여 보존하기로 함께 조율한 기록 역시 확인된다. #링크2 물론 나무위키 이용이 익숙하지 않다면 이런 '절차' 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자기 논리의 '미싱 링크' 를 채우기 위해 이상한 주장으로 땜질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무위키를 실제로 이용하는 입장에서 윤보라(2017)의 분석을 납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이에 대해서만큼은 " 그것 역시 남성지배적 인터넷 문화 때문" 이라는 짜증스러운 반응보다는 더 정교한 반응이 나와야 할 것이다. 사실 박가분 씨가 《 혐오의 미러링》 에서 비판했던 지점도 문화비평가들이 인터넷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방법론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윤보라(2017)는 23페이지에서 국내 인터넷 세계에서의 젠더 담론이 "친메갈이냐 반메갈이냐" 의 단 하나의 잣대만으로 이쪽 저쪽으로 편을 갈라 나뉘어서 싸우는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아쉬운 일이지만, 이와 같은 통찰력은 나무위키에 대해서도 충분히 선보여질 수 있었다. 문제의 '친메갈 vs. 반메갈' 전선(戰線)을 뒤집어 보면 고스란히 '반나무위키 vs. 친나무위키' 라는 이음동의(異音同意)의 전선이 성립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자의 전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며 안타까워하는 윤보라(2017)가 정작 후자의 전선에서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반메갈 측에서도 나무위키에 대해서는 소위 " 나무위키 꺼라" 같은 관용적 표현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양가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페미니즘 진영과의 반달리즘 전쟁에 있어서만큼은, 나무위키는 유용한 아카이빙 장소로 대우를 받고 있으며 소위 '메라포밍' 이 벌어지면 이를 막으려 한다. 괜히 반메갈 진영 일각에서 " 사관" 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찬사를 늘어놓았던 게 아니다(…). 사실, 나무위키가 만들어지고 유명세를 타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반페미니즘 성향의 여성시대 해명글 조작 사태를 비판하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시대 측에서 대놓고 나무위키를 모함하면서 거짓말을 감추려고 반달리즘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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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페미는 말해야 하나, 침묵해야 하나?
본서 4장에서 김홍미리(2017)는 《 한겨레21》 및 남성 진보 논객들이 진보진영 내에서 불거진 데이트 폭력 이슈에 대해 "나는 남자이기에 판단하지 않겠다" 고 말하는 경향을 비판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진보 남성 논객들의 소위 판단중지는 '선택적 판단중지' 일 뿐이며, 이것이 기존의 안티페미니즘적 정서와 결합하게 되면 수많은 피해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해자는 자신의 과오를 성찰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남성 논객들의 젠더 이슈에 대한 분석은 무뎌질 것이며, 진보가 페미니즘을 '우리' 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그저 젠더 문제만 벌어졌다 하면 손쉽게 아웃소싱을 주는 사상으로만 치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식견이 있는 사회평론가들이 젠더 문제에 대해서 남녀를 막론하고 목소리를 내고 공론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남페미들이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도외시한 비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남페미들은 젠더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개입을 거부하는 페미니스트가 있을 때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SNS 상의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국지혜(2017)는 《 근본없는 페미니즘》 에서, 남페미들이 페미니스트 진영 내부에서 한 마디만 거들면 곧바로 크게 환영을 받고 칭송을 받는 경향이 있다고 하면서, 여성의 목소리가 여성의 영역에 '침범' 한 남성들의 발화권력으로 인하여 다시 한 번 가려지게 된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국지혜(2017)는 논쟁적인 주장을 꺼낸 여성 페미니스트는 SNS 상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차단되지만, 남페미는 그런 주장을 해도 차단을 겪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심지어 이를 두고 "온라인 페미사이드" 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들어서 문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남페미들은 '남자라는 죄' 로 입단속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김홍미리(2017)의 잘못인 건 아니지만, 본서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국지혜(2017)의 주장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남페미들에게 일관된 시그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페미들로서는 자신이 하는 말마다 여성 운동가들에게 '또 남성들이 숟가락 얹는다' 는 비판을 받고, 말 한 마디 잘못 놀렸다가는 몇 배로 큰 규탄의 집중포화를 받아야 하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논의를 주도할 의사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남성들 사이에서도 데이트 폭력과 같은 스캔들이 발생하면 진지한 사유와 성찰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담론장을 주도하지 않더라도 그런 활동을 하는 간접적인 길이 있을 수도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 남성 페미니스트》 에서 해외 철학자들이 이미 언급했던 바 있다. 본서는 김민하 씨의 글을 들어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려 하지만, 그런 진심이 국지혜 씨 같은 사람들에게까지 통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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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윤형 (2013). 왜 한국 남성은 한국여성들에게 분노하는가: 여성혐오,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떤 특수성. 문화과학, 76, 185-201.
[2]
그러나 가짜 사나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남자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영 좋지 않다.
[3]
김엘리 (2012). 초남성 공간에서 여성의 군인되기 경험. 한국여성학, 28(3), 145-180.
[4]
실제로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골수 지지층이나, 이후 최순실 게이트 당시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던 고령층의 논리가 "아유, 얼마나 불쌍하냐.
어린 나이에 부모를 한날 한시에 잃었으니. 이제 대통령 좀 시켜줘야지..." 수준에 머물러 있었음을 상기할 수 있다(…).
[5]
물론 금전적 대가를 지불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
노예" 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9장의 박은하(2017)는 "돈을 냈으니 뭘 해도 괜찮다" 고 여겨서 오히려 여성을 더 극심하게 굴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6]
단, 공창제에 대한 주요 비판으로서, 8장에서 박이은실(2017)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국가가 관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의 반론을 하고 있으며, 9장에서 박은하(2017)는 유럽의 사례 역시 자국 성매매 시장에 '아가씨' 를 조달하기 위해
동유럽 등지에서 소녀들을 납치하고
인신매매하는 범죄조직들이 자생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 이외에 둘째 의견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없다. 관련기사로서 한 네덜란드 언론인이 자국의 공창제를 비판한 사례가 확인되므로 참고.
#
[7]
해당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대략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여초 갤러리로 알려진
남자 연예인 갤러리에 한 30대 남성이 자기 회사에 다니는 20세 여성에게 고백을 하겠다고 글을 올렸고, 이에 남연갤 측에서 그 여성이 얼마나 부담스럽겠냐며 매우 불쾌해하면서 악플을 달았다. 그러자 그 남성은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와인처럼 숙성되는 법' 이라고 항변했지만, 이는 다시 '남자도 남자 나름이지, 된장은 숙성해 봐야 강된장일 뿐' 이라는 남연갤 측의 비아냥에 부딪혔다. 결국 그 남성은 '너희들은 줘도 안 먹겠다' 면서 욕을 퍼붓고 남연갤을 떠나면서 사건이 마무리되었지만, 때마침 메르스 사태로 인해 메갤이 개설되면서 남연갤 갤러들이 대규모로 이주하고 남성들에 대한 광범위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서 윤보라(2017)는 남연갤을
메갈리아의 모태라고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