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colcolor=#fff> 존 브라우닝 John Brown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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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존 모지스 브라우닝 John Moses Browning |
출생 | 1855년 1월 23일 |
미국 유타주 오그던[1] | |
사망 | 1926년 11월 26일 (향년 71세) |
벨기에 리에주 | |
직업 | 총기 설계자 |
수상 |
존 스콧 메달 (1905) 레오폴드 훈장 (1914) |
자녀 | 10명 |
종교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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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계 총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서 현대 총기 기술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총의 역사는 존 브라우닝의 등장 전과 후로 나누어 진다고 봐도 될 정도로, 그가 총기 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나 유진 스토너, 존 개런드 같은 유명한 총기 개발자들도 존 브라우닝의 설계를 기반으로 총기들을 개발한것이다. 자동권총, 자동소총, 중기관총, 산탄총 등 현대의 모든 총기들은 그의 설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의 총기 발전사는 브라우닝 한 사람의 일대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의 걸작들과 그 제품이 주무장인 중장비들(Vehicles) 중에서도 걸작 중의 걸작만 추려낸 것들이다. 하단에는 그의 무기를 사용한 영웅들인 앨빈 C. 요크와 존 바실론의 사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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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생과 업적
총포 기술자인 아버지[2] 밑에서 자라면서 일을 도우며 기술을 배웠다. 10살 때 아버지의 폐품 창고에서 모은 부품들로 작동하는 총을 만들었으며, 14살 때 이미 실물 크기의 거의 완벽한 대포의 목제 모형을 만들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한다. 23살 때 싱글샷 라이플을 설계 생산하여 명성을 높였다. 당장 4명의 형제와 같이 조그마한 공장을 차려 판매를 하였는데 판매를 시작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재고가 바닥날 정도로 잘 팔렸다고 한다. 결국 이 설계의 우수성은 윈체스터사의 사장이 직접 찾아가서 계약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윈체스터에서 대량 생산된 이 싱글샷 라이플은 존 브라우닝 최초의 히트작이 되었고, 아직도 팔고 있다!이후, 계속해서 윈체스터와 거래를 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총들을 설계했는데 1886년 무렵에 가장 유명한 레버액션 소총인 윈체스터 M1886를 개발했다. 이 총은 기존의 레버액션의 구조적 취약성을 해결하여 소총탄급의 강한 탄약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윈체스터 M1895에서는 지금까지의 튜브형 탄창 대신에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박스 탄창을 도입했는데 이로 인해 탄약 길이의 제약이 적어져 더 강력한 탄약을 쓸 수 있는 동시에 무게중심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역시 아직도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 모델이 된다. 사냥을 좋아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이 총을 애용했는데 'Big Medicine'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또한 이후 펌프액션 산탄총의 원형이 되는 윈체스터 M1897를 개발한다. 원체스터 1886과 마찬가지로 최초는 아니나 지금까지 뭔가 문제가 있던 신기술을 최초로 제대로 된 물건으로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로 최초의 펌프액션 산탄총은 스펜서 모델 1882이다.
세계 최초의 반자동 산탄총인 Auto-5의 개발 이후 윈체스터와 새로운 조건으로 계약을 맺으려 했으나 서로 어긋나고[3] 브라우닝은 레밍턴과 계약하려 했으나 이 역시 레밍턴의 사장이 급사하는 바람에(이후 맺은 계약에 따라 레밍턴에서 동 모델이 생산되었다.) 어긋나버리고 벨기에의 당시 작은 총기 회사였던 FN과 협력을 하게 된다. FN과의 계약 이후 브라우닝은 소구경 자동권총에 집중하게 되는데 9년도 안 돼서 50만 정 이상이 팔린 브라우닝 M1900, M1908 Vest Pocket 같은 성공작을 연달아 쏟아낸다. 얼마나 성공적이었냐면 당시 유럽에서는 브라우닝은 곧 권총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일 정도였다. 이 때문인지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가끔 나온다. 1차 대전의 시발점이 되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 때도 쓰였고(M1910), 도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도 브라우닝 권총(M1900)을 썼다. 이후에 개발한 모델들이 대박치면서 FN도 함께 성장했다. 사실상 FN이 지금과 같은 커다란 회사가 되는 데 이 사람이 혼자서 반 이상은 공헌한 셈이다.
또한 최초의 가스압 작동 기관총을 개발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이는 우연히 형제들과 사격 연습을 하다가 총구 앞의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프로토타입 가스압 기관총. |
위의 기관총 세 종류와 M1918 브라우닝은 국가에 직접 라이선스를 팔았는데 계속해서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에서 처음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였다고 한다.(물론 당시로써는 적은 금액은 아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애국 관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1차대전 종전 후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FN사에서 계속 일을 하게 되는데 이때 남긴 것이 브라우닝 하이파워 자동권총이다. 특이하게도 이 시기에는 자신의 장기인 자동 혹은 반자동 화기 대신에 스포츠 샷건을 만드는데 이 또한 21세기 와서도 생산-판매하는 명품이 된다. 잘 생각해보면 올림픽 클레이 슈팅에서 쓰이는 총기들이나 사냥용 엽총들이 이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걸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영향을 준 총.
이렇게 해서 존 브라우닝은 총기의 세계에 엄청난 업적을 남기고 1920년에 벨기에로 건너간 뒤에 브라우닝 하이파워를 설계하던 중 심부전으로 71세에 사망했다.
3. 결과물
대부분의 자동/반자동 화기가 쓰는 반동을 이용한 리코일/가스압 양대 방식을 모두 써서 많은 화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이후 만들어지는 현재 사용되는 거의 모든 자동/반자동식 화기의 기초 설계는 이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당장 반자동 권총의 노리쇠와 총열덮개를 합쳐서 슬라이드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의 아이디어였고, 현대의 반자동 권총 중에 슬라이드를 안 쓰는 물건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수준이다.그의 영향력은 그가 죽은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1906년에 설계한 M1911[5]이라든지, 1차대전 직후에 완성한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은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 중이다. 현 서방권 기관총을 거의 석권하다시피 한 FN MAG도 사실상 브라우닝 BAR의 내부구조를 위아래로 뒤집고 탄띠급탄식으로 바꾼 거나 다름없다. 브라우닝 다음 세대의 전설적인 총기 개발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그의 첫 총기가 브라우닝 권총이였고, 그 권총을 끊임없이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브라우닝 총기의 특징인 '단순함', '완결성' 이 두가지를 평생 총기 개발의 모토로 삼았다. 심지어 그는 AK-47이 자신이 개발한게 아니라 개량한 것이라고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에서 말할 만큼[6] 브라우닝에게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물론 진짜 AK-47이 브라우닝 권총을 개량해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단순함과 완결성을 모토로 만들었다는 소리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실제 AK-47은 브라우닝이 개발한 레밍턴 모델 8의 개량형과 꽤 닮았다. #
살아 생전에 128개의 설계를 등록했고 그중 100개 이상이 실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콜트와 FN 양쪽에 특허를 같이 판 총기가 많아 제조 회사와 이름만 다르고 구조는 거의 동일하다시피한 총기들이 꽤 있는 편이다. 하단에는 이 사람이 설계하거나 제작에 공헌을 한 주요 총기/총탄을 나열한다.
3.1. 총탄 (카트리지. 탄피식)
3.2. 총기
3.2.1. 자동권총
- FN M1900 - 세계 최초로 슬라이드를 장착한 자동권총이다.
- 콜트 M1900
- 콜트 M1902
- 콜트 M1903
- M1903 Pocket Hammer
- M1903 Pocket Hammerless
- FN M1903
- FN M1905
- 콜트 M1908 Vest Pocket
- 베이비 브라우닝
- 콜트 M1905
- FN M1910 - 속칭, "브라우닝 M1910".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에서 황태자를 암살할때 사용된 총이라 천만명을 죽인 총이라는 별명도 있다.
- M1911-"영원한 걸작"
- 콜트 우즈맨(Colt Woodsman)
- Hi-Power ( 브라우닝 하이파워 시리즈)
3.2.2. 라이플
- 윈체스터 M1885 - 아까 위에서 설명한, 존 브라우닝 최초의 히트작이다. 심지어 존 브라우닝 사후 9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베스트셀러 총기이다(...).
- 윈체스터 M1886 - 레버액션 소총으로 이전의 레버액션은 구조상 강한 탄약을 사용할 수 없었는데 이를 해결하여 이후 나온 레버액션들에 영향을 주었다.
- 윈체스터 M1890
- 윈체스터 M1894
- 윈체스터 M1895
- 레밍턴 모델 8
- FN 트럼본
3.2.3. 산탄총
- 윈체스터 M1887 - 혹은, 윈체스터 M1887/1901.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영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서 한 손으로 휙휙 돌리며 쐈던 산탄총이 바로 이거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에서도 이 총을 휙휙 돌리면서 쏘는 것을 볼 수 있다(아킴보 한정).
- 윈체스터 M1897 - 흔히 트렌치 건으로 알려진 총으로 1, 2차 대전에서 많이 사용했다.
- 브라우닝 Auto-5, 레밍턴 M11 - 세계 최초의 반자동 산탄총이다. 거기다가 1900년대 초에 만들어졌으면서 1998년에 단종될 때까지 사냥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 스티븐스 모델 520
- 레밍턴 M17
- 브라우닝 Superposed
- 이사카 M37
- 브라우닝 B25 - 1925년부터 현재까지 생산중인 다목적 O/U(상하쌍대) 더블배럴 산탄총. 파생형으로 앞에 숫자가 붙는다(B125, B425 등). 현재는 일반형인 B525, 고급형인 B725 를 생산 중이며, 일본의 총기회사인 미로쿠 공업소[7]를 인수하면서 B525는 일본에서 생산한다.
3.2.4. 기관총
- M1895 콜트-브라우닝
- M1917 브라우닝
- M1918 브라우닝 - Browning Automatic Rifle Model 1918. "M1918" B.A.R.
- M1919 브라우닝
-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 흔히, ".50 cal"
- M4 37mm 기관포 - P-39 에어라코브라와 P-63 킹코브라의 주무장, 그리고 PT 보트의 덱건(!) 등으로 사용되었다.
4. 여담
사실 아버지가 당시 기준으로 다산과 일부다처를 장려하는[8] 몰몬교도가 아니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존 브라우닝의 어머니와 결혼 전에 이미 12명의 자식이 있었고 결혼 후에는 2명의 아내와 10명의 아이가 가족에 추가된다. 이런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본인도 몰몬교를 믿긴 했지만 딱히 아버지처럼 크게 종교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다.[9]참고로 이복동생 조나단 에드 브라우닝(Jonathan Ed. Browning, 1859 ~ 1939)도 총기개발자였다. 1차 대전 이후 미군 반자동소총 사업에서 콜트 M1929를 제출했으나 탈락했고, 윈체스터 사에서 이 총을 기반으로 G30, G30M, M2를 거쳐 개량한 끝에 M1 카빈이 탄생했다.
아들인 발 앨런 브라우닝(Val Allen Browning, 1895 ~ 1994)은 브라우닝 암즈 컴퍼니를 물려받아 경영하면서 동시에 자선가로 활동하였고,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아버지가 설계한 M1918 브라우닝을 처음으로 지급받은 제 79보병사단에 배속되어 1차 대전에 참전했다.[10]
평소 생활은 천재들이 으레 그렇듯 뭔가 나사빠진 사람 같았으며 한번 일에 빠지면 식음을 전폐하고 일했다고 한다. 어떤 때는 2년 사이에 혼자서 30여 개의 총기를 설계할 정도로 미친 듯이 일했다고 한다.
총덕들 사이에서는 이름을 가운데 이름까지 포함해서 "존 모세(모지스) 브라우닝"이라고 부르는 때가 있는데, 이는 브라우닝이 전 세계의 모든 군대와 총덕을 구원한 모세와 같은 인물이라는 의미로 부르는 극존칭이다.
폴아웃: 뉴 베가스의 DLC Honest Hearts에서 몰몬교도인 조슈아 그레이엄이 M1911을 가리켜 "400년 전의 내 동포가 설계한 물건"이라며 이 사람에 대한 드립을 친다. 조슈아와 그의 뉴 가나안 사람들이 즐겨쓰는 .45 ACP 권총이 브라우닝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듯... 폴아웃 세계관이 핵전쟁으로 역사고 뭐고 먹고사는 것만 급급한 세상이라는 점을 보면 이 세계관에서 존 브라우닝의 존재는 몰몬교도 사이에서만 계속 전해져 내려온 듯하다.
[1]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북쪽으로 50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다. 이 도시 역시 솔트레이크 시티처럼
모르몬 교도들이 건설한 도시인데, 존 브라우닝의 아버지는 이곳에 정착한 정착민 1세대였다.
[2]
존 브라우닝의 아들인 발 브라우닝이 쓴 존 브라우닝의 자서전에는, 존의 아버지는 총기나 무기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냥 돈을 받고 일하는 직장이니까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던 총기 생산자였다고 말한다. 다만, 아들인 존이 총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니 많이 도와주긴 했다고 나온다.
[3]
해당 산탄총이 크게 흥행할 것이라 예상한 브라우닝은
로열티 지급을 요구했으나 윈체스터에서 거부했다. 결국 윈체스터 사는 Auto-5가 출시되고 나서 뒤늦게
윈체스터 M1911이라는 반자동 산탄총을 독자 개발했으나 설계 결함으로
과부 제조기라는 오명만 얻고 말았다.
[4]
출처는 건페디아와 히스토리 채널의 The tales of guns
[5]
100년 가까이 쓰다못해 노후화되니 새로운 총을 만들지 않고 이 권총을 베이스로 커스텀해서 쓸 정도인데 그 권총이
MEU. 심지어는 이 권총을 대체하기 위해 다시 M1911 기반 권총을 출시했는데 그 권총이 바로
M45A1이다.
[6]
松本 仁一 <<カラシニコフ>> 2004 P.74
[7]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클레이 사격인들 사이에서 저렴하고 내구성이 좋은 입문용 총기로 많이 추천되는 회사이다.
[8]
현재는 일부다처가 금지되었다.
[9]
그래도 다산을 장려하는 몰몬교의 영향인지 아버지처럼 자식은 많이 두었다. 레이첼 테레사 차일드 브라우닝과 결혼하여 총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10]
소위로 참전하였고, 최종 계급은
중위였다. 이때 발 브라우닝이 아버지가 설계한 총인 M1918 브라우닝을 들고 찍은 사진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