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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17:47:44

이하영(1858)

대한제국 중추원 의장·부의장
大韓帝國中樞院議長·副議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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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이용익 이윤용 이재순 이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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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 (친미파) 친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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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억 박정양 서재필 신채호 이완용
안경수 안창호 양기탁 윤치호 이용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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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년 7월 17일 제명되었다.
조선의 붕당
( 관학파 · 훈구파 · 사림파 · 동인 · 서인 · 남인 · 북인 · 소론 · 노론 · 개화당 · 수구파 · 정동파 · 위정척사파 · 급진개화파 · 온건개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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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식민지 · 강점기 · 병합
* 박영효 등이 고종의 퇴위에 협조한 대신들을 암살하려다 처벌된 사건은 이완용이 고종 퇴위를 반대하던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음 }}}}}}}}}

조선귀족
朝鮮貴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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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2년 도박죄로 구속되어 일시적으로 예우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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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상 이근택 이완용 이재곤 이지용
이하영 임선준 장석주 조중응 조희연
조민희 한창수
찬의
강경희 권봉수 김만수 김사묵 김영한
남규희 민상호 박경양 박승봉 박제빈
박중양 염중모 유맹 유정수 윤치오
이건춘 이겸제 이재정 이준상 정인흥
조영희 조희문 한창수 홍승목 홍종억
부찬의
고원식 구희서 권태환 김교성 김낙헌
김명규 김명수 김준용 김필희 김한규
김한목 나수연 민건식 민원식 박제환
박희양 서상훈 서회보 성하국 송지헌
송헌빈 신우선 신태유 어윤적 엄태영
오재풍 오제영 윤치오 이도익 이만규
이봉로 이원용 이항직 정동식 정병조
정진홍 조병건 조재영 조제환 조원성
최상돈 한동이 허진 홍우철 홍운표
홍재하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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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고희경 권중현 민병석 민영기 박영효
송병준 이하영 윤덕영 이윤용
부찬의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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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김영한 김한목 남규희 민상호
민영찬 민형식 박승봉 박이양 박기양
박상준 박승봉 박의병 박제빈 박중양
백인기 상호 서상훈 신석린 신응희
어윤적 엄준원 염중모 유맹 유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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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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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김명규 김명준 김상설 김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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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 이근우 이기승 이도익 이동우
이만규 이병렬 이병학 이택규 이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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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연 현은
참의
구연수 김윤정 김춘희 김한목 김희작
남규희 민병석 박기순 원응상 윤갑병
윤정현 장헌식 정건유 현기봉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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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윤덕영 이윤용
칙임 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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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진 박철희 박희옥 방의석 방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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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렬 이선호 이은우 이종섭 이충건
이진호 이택규 이희덕 이희적 인창환
장대익 장석원 장직상 장헌근 정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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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국 최윤 최윤주 최준집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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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업 황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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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필성 김병원 김성규 김제하 박상준
어윤적 유만겸 유성준 진희규 홍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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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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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박중양 윤치호 이범익 이진호
한상룡
칙임 참의
고원훈 김관현 김명준 김사연 김연수
김영배 김영진 김우영 김윤정 김태석
김화준 박두영 박상준 서상훈 신석린
안종철 원덕상 유만겸 유진순 이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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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 한규복
주임 참의
강이황 권중식 김경진 김동준 김병욱
김부원 김사연 김신석 김원근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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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병 방의석 서병조 손창식 송문화
신현구 양재창 원병희 위정학 이경식
이기찬 이승우 이신용 이영찬 이익화
이종덕 임창수 장용관 장윤식 장준영
장직상 전덕룡 조병상 조상옥 차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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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
김하섭 문명기 이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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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직 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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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귀족 자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colbgcolor=#0B0B3B><colcolor=#ffde09> 대한제국 중추원 의장
이하영
李夏榮 | Lee Ha-young
파일:091406459000.jpg
출생 1858년 8월 15일
경상도 기장현 동면 이천리
(現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읍 이천리)[1]
사망 1929년 2월 27일 (향년 70세)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본관 경주 이씨[2]
직업 통역관, 외교관, 정치가, 기업인
치행 (致行)
금산 (琹山)
종교 무종교 ( 무신론)
작위 조선귀족 자작
부모 부: 증 내부대신 이유수
모: 증 정경부인 서산 추씨
형제 제: 이준영[3], 이태영[4], 이선영[5]
자녀 자: 이규삼(출)[6], 이규원, 이규복, 이규성
녀: 서정교의 처, 이규성의 처
비고 을사삼흉[7]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1. 개요2. 생애3. 평가4. 기타5. 같은 가문의 인물 목록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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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한말의 외교관이자 정치가, 관료.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을사삼흉[8]이라 부르기도 한다. 1858년 [음력] 8월 15일생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관이다.

을사조약 당시에 표면상으로는 반대를 했으나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었고 이후 조선귀족 자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고문으로 지내는 등 친일 행보를 이어갔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하영(1858)/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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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

이하영이 미국 정부로부터 백만불(현재 원화로만 계산해도 11억 원)을 당겼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김옥균은 그로부터 불과 3년 ~ 4년 전 일본에 무상 차관을 빌리러 갔다가 실패했고, 차선책으로 국채 발행을 시도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게다가 그 돈을 써서 미군을 빌려온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어쨌든 이하영이 미국에 돌려주지 않은 16만 불 중 얼마를 비상금으로 놔뒀는지는 몰라도, 당시 조선으로서는 막대한 돈이었을 텐데 그 행방이 투명하지 않다. 하여간 고종이 목돈을 만들라고 사람을 보내면 곱게 오는 경우가 없었다. 갑신정변을 말아먹은 김옥균 역시 1882년 제물포 조약 직후 일본에 가서 받은 17만 엔을 귀국해서는 수중에 한 푼도 안 남았다고 하는 걸 보면, 용처가 개혁을 위한 군자금이었다고 해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고(한성순보를 창간하는데 썼다고도 한다), 결과적으로 개혁에 독이 됐다. 당시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던 많은 중도적 정부 인사들마저 등 돌리게 만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884년 무상 차관을 준대서 김옥균이 일본에 갔건만 결국 일본 정부한테 찬바람을 맞았다. 1882년 임오군란 역시 불량미라는 불투명한 재정 집행이 도화선이 된 참사였다.

이하영은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에, 2007년 대한민국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의 친일 반민족 행위 195인 명단에 올랐다. 2008년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 인명 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도 선정됐다.

4. 기타

5. 같은 가문의 인물 목록

※ 을사삼흉 이하영은 선조 때 영의정 이항복의 장남 이성남의 9대손이고, 독립명문가[11] 이회영 6형제[12]는 이항복의 차남 이정남의 9대손이다. 이회영의 형 이석영의 양부이기도 한 고종 때의 영의정 이유원 역시 이정남의 후손이다. 같은 가문의 일원임에도 동시대에 극과 극의 행보를 보였다. 족보에서는 이하영의 증조부 이흥혁 및 그 후손을 모두 삭제하였다.[13]

: 친일반민족행위자, : 독립유공자[14]



(이하영의 증조부 이하 족보에서 삭제)* 증조부: 이흥혁. 증 비서승.* 조부: 이응효. 증 의정부 참찬.* 부: 이유수. 증 내부대신.* 본인: 이하영. 대한제국 중추원 의장, 외부대신, 법부대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조선귀족 자작. 친일반민족행위자(을사삼흉). 이항복의 10대손.* 동생: 이준영[18]. 대한제국 법부· 학부협판[19]. 강원도 관찰사. 국문학자.* 아들: 이규원. 대한제국 궁내부 시종원 시종[20]. 이왕직 찬시[21]. 대륙고무공업주식회사 이사. 조선물산장려회 이사. 조선불교단 이사. 조선실업구락부 평의원. 동방직물판매주식회사 대표이사. 조선귀족 자작. 조선귀족회 부회장. 창복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자.* 손자: 이종찬. 제8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제9·10대 국회의원. 일본군 경력으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되었으나, 습작 거부, 친일행적 공개 반성, 군의 정치적 중립성 강조 등의 행보로 참군인으로 칭송받기도 하였다.




6. 여담

윤치호 역시 구한말에 영어를 습득한 인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 경주 이씨 집성촌이다. # [2] 백사공파 10대손. 중시조 35세 '榮'자 항렬이다. [3] 대한제국 법부·학부협판, 강원도관찰사. 일본 훈3등욱일중수장. [4] 군수. [5] 참봉. [6] 동생 이준영의 양자로 출계. [7] 을사조약 당시에는 중립을 지키거나 반대하였지만 후에 친일로 전향한 민영기, 이하영과 함께 고종을 압박한 이재극 이렇게 3인을 통틀어 말하는 용어로 정식 학술 용어는 아니다. [8] 이하영, 민영기, 이재극 [음력] [10] 다만 이완익은 1870년대에 친일파로 전향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기도 전인 1904년에 죽었다. [11] 이회영 일가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그 공로로 광복 후 일가에서 건국훈장·건국포장 13명을 배출하였다. 건국훈장(12명) : 이건영, 이석영, 이철영, 이회영, 이시영, 이호영 등 6형제,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 이건영의 장남 이규룡(생부는 이회영), 이석영의 장남 이규준, 이회영의 차남 이규학·3남 이규창, 이회영의 사위 장해평(이규숙의 남편). 건국포장(1명) : 이시영의 장남 이규창(초명은 이규봉). [12] 요절한 이소영을 제외하고 흔히 이회영 6형제로 칭한다. [13] 이흥혁부터 삭제한 것은 이하영의 후광으로 증조부 이흥혁은 비서승, 조부 이응효는 의정부참찬, 부친 이유수는 내부대신으로 추증되어 이하영의 친일행적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14] 광복 후 건국훈장, 건국포장 등을 받은 인물들만 포함함. 기타 독립운동가들은 포함하지 않았음. [15] 都事. 종5품 관직. [16] 直長. 종7품 관직. [17] 입양되었다. 생부 성명미상. [18] 李準榮. [19] 協辦. 각부 대신(大臣)의 하위직. 갑오개혁 이전에 각조 판서(判書)를 보좌하던 참판(參判)과 유사함. [20] 이규원은 종2품까지 가자(加資;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올리는 일)되었다. [21] 찬시(贊侍). 한일병합 이후 일제가 이왕직(李王職)에 개설한 시종과 같은 관리이다. [22] 郞廳. 일반적으로 정3품 이상 당상관에 비교하여 종3품 당하관 이하의 관원을 지칭하나, 좁은 의미로는 6조의 정5품 정랑 또는 종6품 좌랑을 지칭한다. 또한 비변사, 경리청, 준천사 등 일부 관청에는 낭청 자체가 종6품~정7품의 관직 명칭이다. [23] 부(府)를 관할하던 종2품 지방 장관직. 경주·평양·전주·영흥·함흥·의주·강화·광주 등 8곳의 부가 있었다. 부윤은 절제사(節制使)를 겸직하였다. [24] 참판은 6조의 장관인 판서를 보좌하는 종2품 차관직이다. 각 조의 중요 사무는 판서, 참판, 참의가 합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상당한 발언권이 있었다. [25] 조부는 이세필의 3남 충청감사 이형좌(李衡左), 부친은 이조판서 이종백(李宗白)이다. 이세필의 장남 이태좌의 아들 이종성에게 입양되었다. [26] 고종 때 영의정 이유원의 양자로 출계. [27] 일찍 사망. [28] 생부는 이회영. [29] 이건영의 양자로 출계. [30] 초명은 '이규호'. [31] 초명은 '이규석'. [32] 초명은 '이규봉'. [33] 초명은 '이규홍'. [34] 생부는 이회영.